소설리스트

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68화 (268/342)

Chapter 268 - 그냥, 미움 받고 싶지 않아서.(5)

"아서, 괜찮느냐?"

"...괜찮아."

하나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지만, 아서는 나에게 연신 괜찮다는 말을 계속 해댔다.

봐, 얼굴이 홀쭉하잖아.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일이 있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분명 내가 먼저 뻗어버릴 줄 알았는데 신기하단 말이지...

"아리엘, 앞으로는 적당히 마실게."

"...뭐, 너도 성인이니까 조절은 알아서 생각하겠지만서도."

"아니, 앞으로 내가 과하게 먹으려고 하면 꼭 말려줘."

진지하게 말하는 아서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배가 부풀어 오른 것을 보면 꽤나 많이 한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나지를 않으니 기분이 조금 묘했다.

차라리 떠오르는거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말이지.

"아서, 혹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느냐?"

"..."

"아서?"

"...그냥, 굉장했지."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만큼 애매한 말이기도 했고.

굉장했다니, 대체 뭐가?

나와의 관계가? 아니면 정신을 잃은 내가? 아니면 술에 취한 채로 하는 섹스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없는 대사에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우리 사이에는 비밀이 없는 것 아니었나?"

"...미안, 아무리 그래도 말해줄 수 없을 것 같아."

진심으로 미안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서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말하면 또 어쩔 수 없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서에게 너무도 약했다.

마음 같아서는 끝까지 캐묻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러고 보니까, 아리엘은 정확하게 어떤 마족이야?"

"어떤 마족이냐니, 무슨 뜻이냐 그게."

"왜, 예를 들면 마족에서 몽마라던지 종류가 조금씩 있잖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간들 사이에서 통하는 인종과 비슷하다고 해야겠지.

그런 의미에서 따지자면 나는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특별한 마족일 터였다.

정확하게 따지고 본다면 내 종족 자체가 마왕이라고 봐도 될 정도일지도.

내 어머니와 완전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똑같이 생겼으니까.

"뭐, 마왕이지 않을까. 나와 같은 특성을 가진 마족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

"왜, 뭔가 비슷한 마족이라도 찾은 것 같느냐?"

"아니, 딱히."

끝까지 숨기려고 하는게 조금 수상하기는 했지만 뭐어ㅡ

비슷하다고 해봤자 몽마 같은거나 상상했겠지.

솔직히 이 몸뚱이는 몽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혹적인 수준이었으니까.

아서 같은 변태 용사 정도는 순식간에 먹어치울 정도로 말이다.

"아무튼, 이걸로 당분간은 또 강제 금욕 생활이구나."

"..."

"왜, 입으로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건가?"

"아니?! 전혀 아닌데?!"

당황하기는.

이런 노골적인 농담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원래는 내가 아서에게 휘둘리는 쪽이었는데 이렇게나 아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니.

조금 성격이 나빠진 것 같지만, 이 정도면 허용 범위 내나 다름 없었다.

애초에 마왕인데 성격이 좋은 것도 이상하고.

"이리 오거라. 조금만 안자꾸나."

"...그래."

하루 종일 아서를 껴안고 있다가 그 품에서 벗어나니 조금 품이 시려웠다.

역시 인간이 제일 따뜻해.

차가운 공기를 녹이는데 가장 좋은 건 바로 인간의 체온이었다.

봐, 지금도 조금 정도만 가까워졌을 뿐인데 이렇게나 따뜻하잖아?

"그나저나, 요즘 들어서 날씨가 많이 따뜻해진 것 같구나."

"북부에도 봄은 있다고 했으니까. 거기에 세계수까지 있으니까 더 따뜻해진 것 같기도 하고."

북부에 있어서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세계수의 뿌리가 뻗어져나간 곳이 많아서 그런지 대부분 따뜻해지고 있는 추세였다.

에반젤린은 농사가 잘 되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없다고 좋아했더랬지.

확실히, 한 나라의 왕으로써 보자면 국민들이 죽어갈 이유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이니 충분히 기뻐할만한 이유였다.

"으응, 그나저나... 역시 너무 많이 쌌구나."

"미안."

"미안하라고 한 말이 아니라, 그냥 뒷처리가 힘들어서 그렇구나."

우리 둘이서 한 은밀한 행위를 다른 누군가에게 치워달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이렇게 배가 빵빵해진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압박을 받으면 가랑이 사이에서 질질 흘러나오기까지 했고.

그렇게 되면 또 아서 혼자서만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겨우 청소 정도로 고생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서의 몸뚱이가 너무 고성능이었지만서도.

"아서, 혹시 배고프지 않느냐?"

"고프기는 하지?"

"그러면 빨리 처리하고 밥이나 먹자꾸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상당히 배가 고파서."

배가 이렇게나 부풀어 올랐는데 엄청나게 배고프다니, 조금 아이러니하구나.

뭐어, 그런 의미에서 잘 부탁할게.

까치발을 짚고서는 아서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겼다.

어째 전부 떠넘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아서도 이해 해주겠지.

***

"수고했다."

"딱히 수고까지야."

용사의 신체는 이불 빨래까지도 아무렇게나 해내는 수준이었던 걸까.

언젠가 사용인들의 일을 조금이라도 맡아서 해보고 싶은 마음에 이불 빨래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진심으로 죽는 줄 알았다.

설마 빨래를 하다가 몸살이 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만약 엘리의 정성 가득한 간호가 아니었다면 한 달 정도는 고생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이제 아침ㅡ 아니, 점심을 먹으러 가자꾸나."

"그래."

아기가 들어찬 건지 정액의 무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을 가누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팔 좀 빌릴게 아서.

보기만 해도 든든한 팔을 꼭 껴안고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자아, 균형 잘 잡으란 말이야.

"마왕님, 기침하셨습니까?"

"일어나 있었구나, 메이아."

"시장하실 것 같아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식당으로 향하니 메이아가 우리 둘을 맞아주었다.

아서를 마치 찢어죽일 듯이 노려보는데 확실히 이 정도로 배가 부풀어 있다면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겠지.

그럼에도 아서의 몫까지 준비한 것을 보면 마음씨 하나는 정말 착한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상을 주도록 할까.

"...마왕님?"

"고맙구나, 언제나."

"...과찬의 말씀을."

뭐, 그렇다고 특별한 상을 준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면서 칭찬해주는 정도랄까.

그것마저나 기쁜 모양인지 메이아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새겨져서, 뭔가 나까지 덩달이 기분이 좋아져 버렸다.

"언젠가 마왕님을 닮은 아이를 보는 것이 제 소원이 되어버려서요."

"...그렇구나."

평소에는 보여주지 않던 해맑은 미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게 바로 동족에게서 느낄 수 있는 애정이라던지 그런 거려나.

이렇게 되어버리면 힘을 내서 100만 명을 전부 낳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뭐랄까, 행복하게 살아야지.

지금보다 더.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메이아도 같이 앉아서 먹었으면 좋겠지만, 전부 거절하는 통에 언젠가부터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너무 높은 사람 대하듯이 대하지 말라고 부탁했는데도 그녀의 태도는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뭐랄까, 이제는 상관과 부하의 관계보다는 가족 같은 관계이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솔직히 누군가의 위에 선다거나 그런 건 내 취향이 아니니까.

...옛날의 나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메이아, 음식 솜씨가 늘었구나. 엄청 맛있어."

"감사합니다, 마왕님."

그렇게 식사와 칭찬을 번갈아가며 하는 도중이었다.

뭐랄까, 예정되어 있었지만 지금 순간이라는건 예상하지 못했다고나 할까나...

"이 쓰레기 용사가!! 대, 대체 무슨 짓을 한 건데?!?!!"

"우큿?! 큿, 콜록, 콜록 콜록!!"

"아리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식당 문이 열리며 엘리야가 등장했다.

그것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어, 어, 어떻게 그런! 그런 망측한 짓을 하루 종일 할 수가 있는데?!"

"...이미 다 알고 있는거 아니었어?"

"그거랑 조금 전에 본 거랑 느낌이 다르잖아?! 그런, 그런 파렴치한 짓을! 그것도 감히 아리엘 씨한테!!"

아서에게 뛰어가서는 다다다 말을 쏟아낸다.

마음 같아서는 눈앞의 남자를 마구 두들겨주고 싶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안 들어서 억지로 참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구나. 전부 봐버렸구나.

어느 부분을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나와 아서가 진득하게 사랑을 나누는 부분을 본 것이겠지.

확실히, 엘리야가 죽은 나이로 따져도 꽤나 선정적인 장면일 터였다.

'나쁜 기억을 보는 것만 안 좋은게 아니구나.'

이런 경우에는 내가 행복했던 기억마저도 별로 좋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이번에는 뭐라고 설득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응, 그냥 지금은 가만히 있자.

굳이 입을 열어서 잔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아리엘 씨! 아, 아무리 그래도 야외에서 그러는 건 조금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아?!"

"아."

그때인가.

조금만 더 자극을 주면 펑ㅡ 하고 터질 것 같은 얼굴색이었다.

으음, 그 일에 대해서는 내가 딱히 할 말이 없는걸.

말해도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아서 때문에 그랬단다."

"야!!!"

"아리엘?! 윽?!"

그래서 옆에 멀뚱히 서 있던 아서를 팔았다.

나는 모르는 일이야. 그러니까 네가 알아서 해결해, 아서.

슬쩍 고개를 돌리고는 메이아와 눈을 마주쳤다.

어때, 이제 조금 기분 풀려?

그런 내 눈빛에 메이아가 눈꼬리를 둥글게 휘었다.

아무래도 내 대처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