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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74화 (274/342)

Chapter 274 - 단란한 가족.(1)

"...왜 그러세요?"

"다른 아이들 앞에서는 말하지 않을 생각이니?"

"...제 마음이에요."

꿈에서 깨어난 뒤로부터, 나와 여신의 관계는 조금 바뀌었다.

원래라면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의식을 희미하게 하고 있던 여신이 이제는 하루 종일 의식을 붙잡고 있는달까.

애초에 잠이 필요 없는 존재라서 그런지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데,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이제 와서는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정말이지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자, 우리 화해도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도 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니?"

"...당신이랑은, 쌍방이잖아요."

하긴, 어떻게 보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었지.

요컨대, 여신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자신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미치도록 수치스러운 것이겠지.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가 가장 부끄러운 법이었으니.

"그러면 천천히 하자꾸나, 천천히."

"바보."

"나쁜 말 금지."

"멍청이."

갑작스럽게 매도를 시작하는 여신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언제나 이런단 말이지.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도, 금새 기분이 나빠져서는 뜬금 없이 매도의 말을 잔뜩 내뱉는데.

물론 매도라고 하기에는 그 수위가 매우 낮아서 그냥 어린아이의 투정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지만서도.

"또 뭐가 그렇게 불만이느냐, 응?"

"...솔직히 말하면, 저주부터 해제해달라고 할 줄 알았어요."

저주, 저주라...

일단 아서에게 걸려있는 저주는 이제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한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아서가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성욕이 늘어나는 저주 따위,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아서에게 있어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니 이제 남은 저주라고 한다면 단 하나.

"100만이나 낳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하나를 낳는데도 그렇게 죽으려고 했으면서."

"..."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입도 뻥긋 안 하네요, 당신."

내가 말한다고 해서 그 저주를 지워줄 수 있을까.

아니, 설령 지울 수 있다고 해도 내가 납득할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겠지.

모든 책임에서 도망치는 선택 따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요. 사실, 신의 힘을 전부 잃은 시점부터 그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사라졌답니다."

"그렇구나."

"원망스럽죠? 죽일 만큼 때리고 싶죠? 마구 욕하고, 내가 왜 그런 꼴을 겪어야 하는지 화내고 싶죠?"

"나는ㅡ"

"아아, 알아요, 알아. 분명 용서한다고 하겠죠. 100만의 아이들을 전부 낳겠다고, 어떻게든 해내고야 말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겠죠!"

투덜거리는 듯한 말투와 함께 아이의 손바닥이 침대를 팡팡 두들겼다.

먼지조차 나지 않는 힘에 슬퍼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메이아의 청소 솜씨를 칭찬해야 하는 걸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여신의 말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렇게나 말을 길게 끌었는지.

"...거짓말이었어요."

"...응?"

"100만을 낳아야 한다는 말, 거짓말이었다구요!"

마치 커다란 비밀을 말하듯, 여신이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실제로도 커다란 비밀이기도 했고.

아, 그렇구나. 100만을 낳아야 한다는 말이 거짓말이었구나.

눈을 깜빡이고, 고개를 갸웃했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즉시 손을 뻗었다.

"뭐라고?!"

"자, 잠깐?! 갑자기 가까워지지 마세요, 당신!"

"아니, 방금 했던 말부터 다시 말해보거라! 거짓말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ㅡ"

그렇다면 내가 받아야 할 속죄는?

지금까지 희생되었던 사람들을, 되살릴 수 없다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저 구렁텅이 너무로 떨어지는 것 같은 감각.

순간 흐려진 시야에 손을 늘어뜨리자, 여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에게 달라붙어왔다.

"당신, 괜찮아요?! 100만이나 낳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기뻐하지는 못할 망정 왜 그런 얼굻을 하는 건데요, 대체?!"

"그렇지만,"

"..."

"그렇지만, 그건, 내가 책임져야할 사람들이었어."

맹세했더랬지.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내겠다고.

하지만 그 맹세를 지켜내지 못하게 된 이상, 나에게 무슨 가치가 있지?

'그만. 이런 우울한 생각은 그만해. 아리엘, 너는 언제나 극한의 극한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경향이 심하니까, 이딴 생각 그만두고 정신 차려.'

"흐으......"

어떻게든 패닉에 빠지는 것을 막기는 했지만, 눈물이 흘러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다시 살아나지 못할, 나와 여신의 증오로 인해 희생당한 이들을 향한 슬픔의 눈물.

미안해, 미안해요, 다들.

어떻게든 눈물을 그쳐보려고 했지만, 마치 댐에 구멍이 난 것처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늘어나, 그 줄기가 강해질 뿐이었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런 나를 벙찌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여신이었다.

"100만이라는 건, 지금까지 지나왔던 세계에서 죽은 인간들의 숫자였어요."

"...그 말은ㅡ"

"같은 사람을 두 번이나 낳을 수는 없다는 뜻이에요."

그렇겠지.

전 회차에서 죽었지만, 지금은 살아있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세상은 엉망이 될 테니까.

작은 깨달음을 얻고는 탄식을 내뱉었다.

그 순간, 눈물을 뚝뚝 흘렸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래서 사람 말은 끝까지 들으라고 했던 거였구나.'

정확히 말하자면 신이지만.

아무튼, 충격이 가시지 않아 계속해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내가 완전히 울음을 그친 건 여신이 내 정수리를 슥슥 쓸어줄 때 즈음이었다.

...쓰다듬는거 너무 능숙하잖아.

새삼스러운 감상과 함께 놀란 눈으로 여신을 바라보자, 떨떠름한 시선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그 아이가, 하도 쓰다듬어 달라고 하니까... 그렇게 됐어요."

"...어머니가?"

어머니가, 여신에게 쓰다듬 받는 것을 좋아했다고?

열심히 기억을 뒤졌지만, 떠오르는 건 없었다.

물론 아직 떠올리지 못한 기억들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감이 절대 내 기억 속에 그런 장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겠지.

자신이 쓰다듬 받는 모습을 보여줄 마왕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정말이지, 쓰다듬는 감각까지 똑 닮아서는... 읏."

"자, 잠깐?!"

이번에는 여신의 차례였다.

내가 눈물을 그치고 멍하니 여신의 손길을 받고 있자니, 갑작스레 감상에 잠긴 여신이 눈물을 뚝뚝 흘려대기 시작했다.

한 명이 그치면 한 명이 울고.

이 골치 아픈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밖에 없었다.

...덕분에 옷소매가 잔뜩 젖어버린 건 또 다른 이야기였지만.

"흐아아아아앙!!!!"

"아가?!"

그리고 그런 여신의 눈물을 멈추게 만든 건 또 다른 울음 소리였다.

내 옆에 놓여 있는 아기 침대에 누워 있는 아기ㅡ 할리벨의 울음 소리.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서둘러 달려들었지만, 아기의 울음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설마 시끄럽게 한 대가를 받으라던지 그런 거려나.

"쉬이, 미안하구나. 시끄럽게해서 미안해. 그러니까 뚝 그치자, 응?"

"흐으, 흐으응, 흐으으..."

이마와 볼에 계속해서 뽀뽀를 해주고, 부둥부둥 달래자 그제서야 겨우겨우 울음을 그친다.

내가 울 때는 가만히 있더니 왜 여신이 울 때만...

우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여신이 안쓰러워 슬쩍 정수리를 쓰다듬어줬다.

미안하구나, 진심으로.

"아가, 설마 내가 여신과 대화하는게 시끄러워서 그랬던 거니?"

"...흥."

콧김을 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맞는 듯 싶었다.

...대체 질투심이 얼마나 강한 걸까.

"하아, 정말이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구나."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품에 안긴 아기가 방긋 웃어보였다.

어느 행복한 날의 일이었다.

***

본인은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다면 들키고 싶지 않더라도 들킬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니, 애초에 들키지 않을 생각 자체가 없던 걸지도 모르지.

제 앞에 앉아있는 아이ㅡ 여신을 유심히 바라보며, 아서가 침음을 삼켰다.

'아리엘이랑 똑같이 생겨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어.'

마음 같아서는 동네의 불량한 양아치처럼 시비라도 걸고 싶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아리엘과 닮아있어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양심의 문제라고나 할까, 아니면 정말 그녀가 딸처럼 느껴져서 그런 걸까.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아리엘을 어떻게 속여넘긴지는 모르겠지만ㅡ"

"딱히 속여넘긴적 없는데요."

"...말했어?"

무어라 경고의 말이라도 해주려고 입을 열었는데, 오히려 자신 쪽이 더 놀라버리고 말았다.

설마 말을 할 줄이야.

이제는 들켜도 상관 없다는 건가?

기억이 돌아왔다는걸 들켰는데도 불구하고, 여신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태연한 정도가 넘어서 그냥 당당했다.

"차라리 기억을 얻기 전으로 돌아가지 그래?"

"...손 치우세요."

"싫은데?"

조금은 심보가 더러웠을지도 모르지만, 이 빌어먹을 꼬맹이의 뺨을 놓아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 때문에 더더욱 힘이 들어갈 뿐이었지.

"아프니까, 치우, 라고요!"

"싫다니ㅡ"

하지만 그게 패착이었다.

"...흐."

"...흐?"

"흐아..."

"..."

"흐아아아아앙!!!!!!"

설마 그거 조금 잡아당겼다고 울어버리다니.

'그' 여신이 아이처럼 엉엉 우는 모습에, 절로 정신이 멍해졌다.

그의 등짝에 아리엘의 손바닥이 날아든건 잠시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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