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3 - IF : 전부 다 낳은 뒤에 지구로 보내졌다면.(8)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될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양아치 인간의 머리통을 부수고 온 건 꽤 좋은 선택인 듯 싶었다.
피와 살육의 향을 맡은 마왕의 육체가 고양되어, 지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불한당들의 위치를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예를 들자면, 그래. 저쪽에 살기를 질질 흘리는 녀석이라던지.
아니먼 편의점 안쪽을 훔쳐보며 혜린에기 욕정하는 놈이라던지.
"조금은 비합리적인 종족이라고 생각 했지만, 지금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구나."
이 정도로 전투적인 종족을 굳이 만들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애초부터 그렇게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을 테니까.
어쩌면 진화가 그런 식으로 된 걸지도 몰랐고.
"누가 시켜서 보냈지?"
"무슨ㅡ"
"세 번 묻지 않아. 누가 시켜서 보냈지?"
근처에 숨어있던 남자의 목을 부여잡고는 조용히 물었다.
말은 할 수 있지만, 충분히 위협은 될 정도의 힘.
아니, 어쩌면 분위기 상으로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선택 여하에 따라서 이 자리에서 죽을지 살지가 결정된다는 것을.
"너, 너를 잡으러 간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됐ㅡ"
"내 질문은 그게 아니었다만."
"...알려 줄게! 알려줄 테니, 목숨만은 살려줘!"
"좋아."
목숨을 살리는 것 정도야 간단한 일이었다.
그저 죽이지 않으면 될 일이었으니까.
솔직히 다른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지만, 내 소중한 존재를 위험하게 만드려고 한다면 또 이야기가 달랐다.
혜린. 지구에 와서 생긴 나의 소중한 친구이자 동생.
원래 있던 세계에도 친구 비슷한 관계가 없는 건 아니었다. 엘리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친구에 가장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평범한 종류의 교류를 통해 사귀게 된 친구는 혜린이 처음이랄까ㅡ
뭐, 어디까지나 엘리와 비교했을 때 평범하는 것이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외로움도 한몫 했겠지만.'
내 가족들은 나를 착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친절하게 굴지는 않아, 너희들에게만 특히 더 친절하게 구는 거지.
오히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배타적이라는게 맞겠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 아니라 인간.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엘을 낳은 순간까지는 모두에게 친절했었지.
다른 인간들의 손에, 아이들이 다치기 전까지는.
"네가 멈추라고 하면, 다른 녀석들이 말을 듣나?"
"주, 중지! 작전 중지! 중지!!"
"말을 참 잘 듣는구나."
나에게 붙잡힌 남자가 양팔을 흔들며 소리를 질러댔다.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숨어있는 다른 녀석들은 충분히 보고 들을 정도의 소리와 행동이었다.
하지만 뭐랄까, 아무래도 나에게 붙잡힌 인간은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에게 들켰다는 걸 깨닫자마자 편의점을 향해 뛰어가는 걸 보면, 그들에게 쥐여주기로 한 돈이 이 남자의 목숨값보다 더 많은 듯 싶었다.
"살고 싶나?"
"사, 사,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당장 뛰어가서 다른 녀석들을 막아."
"네, 넵!"
이미 편의점에 가까워진 녀석은ㅡ 그래.
어쩔 수 없나.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는 돌덩이를 집어들어, 그대로 손에 쥐었다.
으드득, 하는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것이 조금 살벌한 것 같는 했지만ㅡ
"ㅡ이건 전부, 날 화나게 만든 너희들의 탓이다."
그 이후의 일은 뭐, 간단했다.
아니, 간단했다기보다는 깔끔했다.
내 손에 부스러진 돌이, 내 손을 떠나 깔끔하게 명중했다는, 그런.
보통 '벌집을 만든다.'라는 표현을 쓸 때는 손에 총기류가 들려 있어야 맞는 말이겠지만, 마족의 육체는 단지 돌의 부스러기만 되어도 인간을 충분히 벌집으로 만들 수 있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르작거리는 게 꼭 벌레 같구나.
밟아 주이고 싶을 정도의 징그러움이었지만, 지금은 굳이 그러고 싶비 않았다.
혜린이 근처에 있으니까, 이런 내 모습은 보여주기 싫어.
"여기 와서 이놈 좀 치우거라."
"예, 예! 알겠습니다, 아가씨!"
서둘러 바닥에 쓰러진 덩어리를 치우는 인간들에게 코웃음을 치고는 그대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참으로 즐겁구나.
청명한 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을 즐기며 걸음을 옮기자 혜린의 고개가 들어올려졌다.
아무래조 조금 전까지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지 황급히 주머니 안에다가 핸드폰을 집어넣는데,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내 눈에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리고는 즉시 자리에 일어나서 인사ㅡ 를 하려고 한 것 같은데...
"언니? 언니가 왜 여기 있어요?"
"그냥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어서 들렀다만, 안 되는 거였나?"
"아뇨? 아뇨아뇨아뇨아뇨! 물론 제가 되도록이면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언니가 원하는대로 하는 게 맞으니까요!"
"다행이구나. 싫어할까 걱정했는데."
"제가 그런 걸로 언니를 싫어할 리가 없잖아요!"
방긋 웃으며 말해오는 혜린에 심장이 쿡쿡 쑤셨다.
뭔가 양심이 엄청나게 찔리는 걸.
막 사람을 죽이고, 그 다음이는 아주 벌집으로 만들기까지 했는데 이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니.
돈을 받으려고 하는 녀석들을 완전히 처리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상도 분명 방해 받겠지.
하지만 왜일까.
"내가 사람을 죽여도?"
이런 질문을 한 의도가 뭘까.
나는 대체 무엇을 바라고 혜린에게 이런 질문을 한 걸까.
인정 받고 싶어서?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혜린이 받아들여줄 수 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만약이라는 것도 이미 저지르고 온 일이라는 것에서 더더욱 모순적이었다.
어때, 혜린.
내가 사람을 죽여도, 나를 좋아해줄 수 있어?
"착한 사람을 죽인 게 아니면, 언제까지고 좋아할 수 있어요."
"...착한 사람이라."
착한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죽은 이의 돈을 받으려고 다른 이를 공격하려고 한다거나, 다른 사람을 납치하려고 한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런 자기 합리화를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혜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겠지.
하지만 그걸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아니, 언젠가는 말해줄 터였지만 일단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면, 얼굴도 봤으니 이만 돌아가마."
"에에, 이렇게 얼굴만 보고 그냥 가는 거예요?"
"그러면, 저번처럼 같이 있어줄까?"
"...그건 거절할게요. 언니가 옆에 있으면 또 다른 사람들한테 시달릴 거 같으니까요."
집에서 봐요, 언니.
짧은 한 마디와 함께 생긋 웃어보인 혜린과 잠시 마주웃고는 편의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으음, 도망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구나.
충분히 도망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덩어리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
아무리 도망쳐도 결국에는 내가 본인들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한 두려움 때문에?
"그래서, 너희들에게 의뢰한 남자가 있는 곳은 어디지?"
"바로, 안내 해드리겠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 때문일까.
***
이곳에서 임지섭이 거리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많은 머릿수의 부하들.
부유하다는 것 이상으로 넘쳐나는 돈.
명함 뿐이지만 가지고 있는 대형 회사의 회장이는 지위까지.
그 세 가지만 가지고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고, 무엇이라도 가질 수 있었다.
뚜ㅡ 뚜ㅡ 뚜ㅡ 뚜ㅡ
"...뭐야, 이 새끼? 저번에도 전화 잘못 걸었다더니 이번에도 또 잘못 건건가? 쯧쯧..."
기분 좋은 날이었다.
지금껏 받지 못한 돈 대신에 그런 여자를 가질 수 있게 되다니.
들리는 말로는 남자의 빚 따위를 자신이 왜 갚아야 하냐고 물었다는데ㅡ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것 따위는 별 상관도 없었다.
겨우 그 따위 푼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핑계로 써먹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것이나 다름 없겠지.
"그런 경국지색의 여인이 내 손에 들어온다라... 그래, 위대한 성공에는 훌륭한 여자가 따라붙는 법이지."
지금까지 아껴뒀던 술의 병을 드디어 열게 되겠군.
애초에 실패할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인터넷 상에 사진이 꽤 나돌고 있었기에 자신의 휘하에 있는 자들이 아닌 다른 녀석들에게 의뢰까지 맡겼더랬다.
충분한 현상금을 내걸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오겠지.
심지어 수금을 위해 보낸 녀석은 자신의 오른팔이나 다름 없는 녀석이었다.
"저, 회장님?"
"응? 내가 들어올 때는 노크를 하고 들어오라고 말 했어, 안 했어?!"
"그, 그렇지만, 조금 급한 일이라서 이렇게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급한 일? 무슨 급한 일?"
"저, 그게ㅡ"
툭.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묵직한 음성.
소리가 들려온 곳을 가로막는 부하를 치워낸 임지섭이,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 무슨ㅡ"
머리 없는 시체.
아니, 머리 없는 시체 뿐이라면 상관 없었다.
하지만 목에 새겨진 저 문신은 분명ㅡ
"나를 잡으라고 의뢰를 했다지."
"뭣..."
"나를 붙잡지 못하면 혜린이를 인질로 붙잡으라고도 했고."
"..."
압박이ㅡ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죽음을 향한 압박이ㅡ
"그래서 이렇게 직접 왔다만ㅡ 어때, 잡을 수 있겠나?"
ㅡ그의 바로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