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27 - IF : 만약 그녀가 용사였더라면. (1)
"아파, 아파, 아파...! 아, 아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피와 살육을 즐긴다는 마족도 뿔이 잘리면 우는구나.
그런 감상을 떠올리며 멍하니 검을 휘둘러 목을 잘라냈다.
...이제야 조용하네.
"용사님, 감사합니다! 마을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별말씀을요, 라는 대답 같은 건 튀어나오지 않았다.
별말씀이 맞았으니까.
마족들이 공격당할 동안 당신들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지?
어째서 싸우는 자와 지켜지는 자가 정해져 있느냔 말이야.
나는 대체 무얼 위해서 마족들을 죽이고 있는 걸까.
여신께 선택 받았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성검을 쥐고 있어서일까.
"...다른 사람에게 성검을 넘겨주고 싶네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긴다.
고깃덩이가 타오르고 남은 역겨운 냄새와 비릿한 혈향까지.
죽음 위를 덮는 죽음은 저절로 내 눈을 감게 만들었다.
이런 광경 따위, 보고 싶지 않았어.
대체 왜 내가 용사 같은게 되어야만 했던 걸까.
'당신은 성녀이자 용사가 되어주셔야겠어요.'
차라리 골목길을 전전하던 때가 훨씬 더 좋았다.
그때는 춥고 배고플지언정 이 정도로 죽음과 가깝지는 않았으니까.
심지어 그 뒷골목에서 보던 추악한 것들보다 더한 것들을 눈 안에 담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이 살겠다고 이웃을 버리는 이들.
항복하는 마족들을 고문하고, 노예로 만드는 이들.
내 몸을 탐하는 역겨운 시선들까지.
"이 여정은, 대체 언제쯤 되어서야 끝날까요..."
그리고 그 여정이 끝난 뒤의 나는, 과연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도 한참이나 되었더랬다.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죽인 마족들과 그 마족들이 죽인 사람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나타나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왜 죽였냐고 들러붙고, 왜 죽게 두었냐고 들러붙고.
딱히 죽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해도 들어먹지를 않았다.
나 또한 너희들처럼 그저 죽여야 했기에 죽였다고 말하면 뭐, 더 미쳐 날뛰어서 말하기를 포기한 것도 있지만.
"왜, 왜 이렇게 늦게 온 건데?! 용사라며! 저번에는 마을 전체를 지켜내는데 성공했다며! 그건 거짓말이었던 거야? 빌어먹을 왕국 녀석들, 거짓말을 해도 그런 거짓말을...! 저딴 년이 대체 어떻게 용사인 건데?!"
"..."
마족들이 침공해올지 모른다고 경고를 해줘도 들어먹지 않은 건 바로 당신들이었다.
내가 있어서 안전할 거라고, 나를 믿고 있다고, 용사님이라면 분명 모두를 지켜낼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식으로 말한 건 바로 당신들이었다.
내 능력 밖의 일을 내가 당연히 해낼 것이라고 믿은 건, 바로 당신들이었다.
내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위험하다고 말하고,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라고 말하고, 도망치라고 말해도 끝까지 마을에 남아있던건 바로 당신들이었다.
"대답해! 대체 왜 지켜내지 못한 건데?! 이럴 거면 왜 이 마을에 온 거야! 아니, 네가 온다고 해서 마족들이 이쪽으로 온 거 아니야?! 아아, 그런 거였어! 어쩐지! 마족 녀석들이 너만 노린다 했어!"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왜 인간은 말이라는 걸 하는 걸까.
차라리 성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 따위 겪지 않았어도 좋을 텐데.
분명 조금 전까지는 구해줘서 고맙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면서, 저 말 몇마디에 순식간에 태도를 뒤집어서는 나를 증오해대기 시작한다.
"꺼져, 꺼져버려! 이 역병 같은 년!"
"다시는 이 마을에 돌아오지마!"
"차라리 저 녀석이 마족한테 죽어버리면 침공을 멈출지도 모르잖아?"
"애초에 마족들이 침공하기 전부터 용사가 나타났다느니 뭐니 말한거 보니까 저 년 때문에 침공한게 맞다니까?"
그게 맞았다면 왕실에서 가장 먼저 나를 죽이지 않았을까.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이쪽은 그냥 웃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하지만 용사라는 위치는 그런 비웃음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용사는 그저 사람들을 구할 뿐이지, 그 외에 다른 것들은 하지 않으니 말이다.
"죽으면 편해질까."
입으로 터져나오는 입김과 함께, 검은 소망 한 줄기가 흘러나왔다.
***
겨울은 모든 생명체들에게 혹독한 계절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북부의 겨울은 특히 더 혹독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지.
그래, 나를 혐오하는 사람들을 피해서 결국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북부까지 찾아왔더랬다.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서 쫒겨나면 어쩌지, 하고 걱정도 했었지만 다행히 쫒겨나지는 않았다.
...용사라는게 대체 뭔지. 내가 그저 칼을 든 미친 여자였다면 어쨌으려고.
"북부까지 찾아온 건 좋지만, 대접할게 없군. 이곳은 원래 이런 곳이니 이해 부탁한다."
"...쫒아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에요."
차가운 방을 받기는 했지만, 북부 그 어느 곳이 차갑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차가움조차 따스하게 느껴지는건 왜일까.
나를 쳐내지 않고, 욕하지 않고, 쫒아내지 않아서 그런 걸까.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이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용사님, 혹시 식사 하세요?"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서 한참.
슬슬 피부를 꿰뚫는 추위에 익숙해질 무렵, 문 밖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사를 할 거냐는 단순한 물음.
지극히 단순한 물음이 이렇게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다니.
"...식사도 주시나요?"
"앗, 넵!"
"...너무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염치가 없네요."
"아니, 아니예요! 용사님이 해주시는 것에 비해서 식사 대접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걸요!"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는 사용인에 심장이 쿡쿡 찔려왔다.
내가 해주는게 대체 뭘까.
사람들을 지켜주는 것? 하지만 지키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는걸. 그리고 그 지키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욕이란 욕은 다 먹었고.
그렇다고 마족들을 죽이는 일을 해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면ㅡ
ㅡ누군가를 죽이는 것으로 대접 받는게, 과연 잘 하는 일일까?
"일단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말라구요? 지금 시기에는 먹을게 별로 없으니까요."
그런 말을 하며 복도 너머로 총총 사라지는 사용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금 침대 위에 올라가 쭈그려 앉았다.
...다시 차가워졌네.
기껏 따뜻하게 데워놓았는데, 잠시 엉덩이를 떼어냈다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채였다.
아까워라. 뭐, 다시 따뜻하게 만들면 될 뿐이지만서도.
"흠, 얼어죽지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아직 죽지는 않았구나."
"...네에, 아직은 살아있어요."
"말도 잘 하고. 생각보다 북부에 적응을 잘 하는 체질일지도 모르겠군."
"...그럴지도요."
북부에 적응을 잘 하는 체질이라는 건 고통이나 괴로움을 잘 참는 걸 말하는 걸까?
어찌되었던 칭찬을 받으니 괜히 기분이 좋고 그랬다.
내가 칭찬을 받는 건 마족들을 죽일 때 말고는 없었으니 말이다.
이게 대체 뭐라고 이렇게나 기쁜 건지.
베시시, 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상대도 마주 웃어보였다.
예쁜 미소구나, 정말이지.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하지 않았구나. 나는 에반젤린 폰 트리슈라움, 부족한 몸이지만 북부의 수장을 맡고 있지."
"저는ㅡ"
ㅡ뭐라고 소개하면 좋을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름 없이 살다가, 교단에서 잠시 불린 세례명 말고는 따로 이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 이후로는 언제나 용사, 용사님 같은 호칭으로 불렸지.
어쩌면 내 이름이 용사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루에도 몇번이나 했었더랬다.
그래,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건 그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냥, 용사라고 불러주세요."
"..."
"...죄송해요. 따로 말씀드릴 이름이 없어서."
사람이 소개를 하는데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게 바로 용사라는 호칭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북부의 여왕에게 있어서는 용사라는 이름도 별로였던 걸까.
기껏 만난 좋은 사람에게 미움 받고 싶지는 않은데.
"용사라는 인간이 이토록 불쌍한 인간일 줄이야."
"불쌍? 제가요?"
불쌍하다는 말은 또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골목길을 전전하다가 교단에 들어가, 결국 용사가 된 나를 대체 누가 불쌍하다고 생각할까.
평생 동안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따뜻한 밥을 먹게 되고, 깨끗한 옷을 입게 되기까지 했지.
심지어 사람들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용사가 되어서 여신께서 내려주셨다고 알려진 성검까지 손에 쥐게 되었고.
그런데, 이런 내가 불쌍하다니.
"그래, 불쌍하고 가엾구나."
"...그런가요."
북부의 여왕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애초에 저런 말에 화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주제를 모르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화낼 이유가 없다는게 더 크기도 했지만.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용사가 아니라 바로 너라는 사람 그 자체니까."
"..."
어째서?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이었다.
나에게서 용사를 빼면 대체 무엇이 남는다고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걸까.
심지어 북부의 여왕인 사람이.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거부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부터 거절이라는 단어 자체가 머릿속에 없었다는게 맞는 말이겠지.
"...이런 이름으로 괜찮으실지 모르겠지만, 제 이름은ㅡ"
"..."
"ㅡ엘리, 라고 해요."
아마도, 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