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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33화 (333/342)

Chapter 333 - IF : 만약 그녀가 용사였더라면. (7)

치료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만약에라도 에반젤린이 죽으면, 어떻게 하지?

그 생각에 몸을 떨며 한참을 기다렸더랬다.

물론 수녀님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해도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으니까.

끼익ㅡ

"같이 오신 분은 이제 괜찮아요, 엘리."

"...정말, 요?"

쿵쿵 뛰던 심장이 차츰 가라앉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지금껏 긴장하고 있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참아낼 수 있었다.

살아서,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자, 이리 오세요. 지금은 당신의 상태가 더 걱정이니까."

"저는,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리 용사의 몸이라고는 해도, 그 정도로 쇠약해졌으면 언제 큰일날지 몰라요."

그런가?

잠시 수녀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은 익숙해서 그런지 지금 내 몸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아아, 차라리 내가 에반젤린의 몫까지 전부 아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그랬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여기, 몸이라도 녹이세요."

"...감사합니다. 갑자기 찾아왔는데 이런 대접까지 해주시고..."

솔직히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것도 무언가 확인을 가지고 움직인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들 중 가장 가능성이 높고, 믿을 수 있는 길을 따라온 것 뿐이었지.

그야, 다른 인간들은 믿을 수 없었으니까.

아무리 이름 높은 명의라고 해도 그것이 나에게 손가락질 하던 인간들 중 하나라면, 절대 에번젤린의 목숨을 맡길 수는 없었다.

"괜찮아요.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서 좋은 걸요?"

"그래도, 저 때문에 교단에서 쫒겨나신 거잖아요."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만ㅡ 저는 지금 이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답니다."

수녀님이 교단에서 쫒겨난 이유는, 내가 그녀에게 밖에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 했기 때문이었다.

어린아이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몰랐던 그녀는 결국 나를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섰고, 그 짧은 나들이 중 여러가지 먹을 것을 사주었더랬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단으로 몰려도 할 말이 없는 일이기는 했다.

교단의 성녀로 내정된 아이를 몰래 바깥으로 데려간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제가 계속 교단에 있었다면 이렇게 만날 일도 없지 않았겠어요?"

"그건... 그렇네요."

그녀가 교단을 떠날 때, 어렸을 적의 나는 그저 울기만 할 뿐이었다.

내 잘못이었는데. 그녀가 떠날 일이 아니었는데.

뒷골목을 전전하던 그때를 잊지 못해 교단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한 건 나였고, 그녀는 그저 내 부탁을 들어줬을 뿐이었더랬다.

"자, 일단 드세요. 배부터 채워야 뭐라도 기운이 나지 않겠어요?"

"수녀님은,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손에 들린 따스한 스프를 바라보고 있다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나에게 음식을 주셨었지.

숟가락에 엉겨붙는 스프를 입에 집어넣자, 따스함과 고소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용사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린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걸까.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데.

***

에반젤린이 깨어난 건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난 다음이었다.

북부 전사의 피가 흐르는 그녀조차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깨어날 정도의 부상.

조금이라도 더 심각했다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아슬아슬한 정도였었다.

"...목이 마르구나."

"에반젤린 씨!"

"...엘리."

사람의 뼈가 일주일만에 붙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에반젤린의 회복 속도는 가히 경이롭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 애초에 그 정도 부상에서 깨어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살아남았구나, 결국은. 하지만, 이래서야 죽은 거나 다름 없겠어."

"..."

제 손을 내려다 보며 말하는 에반젤린 씨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누가 보아도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손은 감정의 격류 때문이 아닌 신체의 결함으로 인해 경련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검을 들고 전장에 서는 그녀에게 이런 후유증은 절대 씻어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일 터였다.

...그리고 이것 또한, 나 때문이고.

"몸 상태가 멀쩡했다면 북부로 돌아갔겠지만, 이래서야 의미가 없겠구나."

"죄송해요."

"..."

"저 때문에 이렇게ㅡ"

"아니."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올린 에반젤린이, 그대로 내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위로, 해주는 걸까.

하지만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에반젤린이었다.

어느 하나 가진 것 없는 사람인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모든 것을 가지고,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모든 것을 잃었는데 위로를 받기는 커녕 나를 위로하고 있다고?

"내가 이렇게 된 건, 내가 약했기 때문이다. 절대 네 탓이 아니야."

"하지만, 제가 없었다면 마왕이 북부로 올 이유가ㅡ"

"지금 당장은 그랬겠지. 하지만, 마족들이 너만을 쫒아다니고 있었다고 한다면 큰 착각이다."

마족들은 내가 어디에 있던지 상관 없이 인간들을 공격해 왔다고, 에반젤린이 말했다.

인간의 향한 그들의 증오심은 이미 평범한 수준을 진즉 넘어섰다고 했던가.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 마음이 놓이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젠가 다른 인간들에게 들었던 '너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어.' 같은 말 따위가 전부 틀렸다는 뜻이었으니까.

...마음이 놓이는 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네가 살린 목숨이니, 네 뜻에 따르마."

"딱히 정해둔 건 없는데요... 일단 에반젤린 씨를 살린다는 것만 생각해서, 아하하..."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본 적이 없었서, 현재에 충실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에반젤린이 무사히 치료된 지금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가 않는달까.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서 계속 지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수녀님께 민폐가 될 터였다.

"나를 데리고 지내기에는 손이 많이 갈 텐데."

"몸 쓰는 일이라면 자신 있어요!"

"...그렇구나."

한숨을 폭 내쉰 에반젤린이 살풋 웃어보였다.

평소와 같은 미소. 평소와 같은 표정.

그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에반젤린은 에반젤린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가 처한 상황에 절망하지 않는, 그런.

"원하신다면, 계속 이곳에서 지내셔도 좋아요. 입이 둘 늘어난다고 해서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니까요."

"그러면 너무 실례가 아닌지..."

"당신이 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제 곁에 두면서 돌봐주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아서요. 제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주세요."

본인이 이기적인 것처럼 이야기 하고 계셨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를 배려하는 말이었다.

나는 이 정도로 배려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닌데 대체 왜.

끝 없는 자기 혐오가 심장에 차올랐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받아들여, 엘리. 지금까지 고생 많이 했으니까, 이 정도는 받아도 괜찮아.

머릿속에서 속살거리는 목소리를 따라서, 몸에서 천천히 힘을 뺐다.

"피곤하면 조금 주무세요, 엘리."

"...조금만, 조금만 잘게요."

몸을 뉘이지는 못했지만, 그저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좋음이 몰려왔다.

나, 지금까지 엄청 피곤했었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과 함께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정신의 끈을 놓자, 순식간에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

"...잠들었구나."

"그렇네요. 요 며칠 동안 제대로 주무시지를 않아서 어찌나 걱정했는지..."

앉은 자세임에도 곤히 잠들어 있는 엘리를 바라보며 짧은 숨을 토해냈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않았다고...

확실히, 북부에 있을 때도 무언가에 쫒기는 것처럼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않았었지.

만약 몸 상태가 조금이라도 더 좋았었더라면 분명ㅡ

"그보다, 치료해줘서 고맙구나. 사례를 하지 못하는게 안타까운 일이다만."

"괜찮아요. 사례는 이미 저 아이를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설득할 생각인가?"

"최소한의 정도로만요. 비록 쫒겨난 몸이기는 하지만, 일단은 여신님의 종인 몸이니까요."

"그런가."

저런 여자아이 하나에게 모든 것을 맡긴 여신 따위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엘리와 자신을 받아들여준 선의까지 폄하하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 꼼짝없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본인을 살려놓기까지 했더랬다.

목숨을 빚진 이상, 선을 넘지 않는다면 그녀의 행동에 무어라 왈가왈부 할 수는 없겠지.

"상태를 말씀 드리자면, 이제 예전 같이 몸을 움직이는 건 힘들 거예요. 치료 시기가 늦은 것도 있고, 애초에 뼈가 잘게 부서진 것 때문도 있고요."

"흠."

"불편하긴 하겠지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애초에 부서진 뼈가 겨우 일주일만에 붙은 것도 경이로운 수준이니까요."

냉정하지만, 동시에 부드럽게 내 상태를 진찰한 여인이 걱정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성자의 눈빛이구나.

불우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자를 보면 발 벗고 나서는 자 특유의 눈이었다.

여신의 종이라는 변명을 하기는 했지만, 엘리를 설득하려는 것도 분명 그런 이유 때문일 터였다.

"자, 당신도 조금 주무세요. 잠을 자는 것만큼 확실한 치료법은 없으니까요."

"...그래, 고맙구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답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스르르 눈이 감겼다.

아무래도, 피곤한 건 엘리 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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