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2 - IF : 만약 그녀가 용사였더라면. (16)
의미 없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금 우스운 소리였지만, 마왕을 오두막으로 데리고 온 건 아무런 생각 없이 벌인 일이었다.
죽여야 할 대상을 굳이 거둔 이유가 무얼까.
손바닥에 남아있는 흉터의 감촉을 되새기며, 숨을 들이쉬었다.
아팠을까? 아팠겠지. 아마 지금도 고통스러울테고.
"읏, 흐으, 으..."
연고를 바른 직후에는 괜찮겠지만, 그런 미약한 진통 효과로는 오랫동안 견딜 수 없을 터였다.
발이나 손의 상처도 꽤 심한 것 같았고.
'...뭐야, 걱정이라도 하고 있는 거야?'
마왕을 걱정하는 용사라니, 이것 만큼 우스운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지금은 용사도 마왕도 아닌 존재들에 불과했지만, 서로에게 기본적으로 남아있는 인식이라는 것이 쉽게 사라질 법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무리 저런 자그마한 몸을 하고 있더라도 그녀와 나 사이에는 투명한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자면 마왕과 용사라는 두꺼운 벽이 저런 가녀린 모습으로 인해서 그나마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만ㅡ
뭐, 어쨌든.
"...괜찮으세요?"
"...으."
"..."
깨지 않은 걸 보면 엄청 피곤한 것 같은데, 그런 피곤한 상태에서도 저 정도로 신음할 정도라면 정말 꽤 상당한 고통인 모양이었다.
안쓰러워라.
아니, 안쓰럽다고 느끼는게 맞나? 상대는 마왕인데.
혀를 쯧쯧 차면서도 흘러내린 이불을 슬쩍 집어들어 그 위에 덮어주었다.
아무리 집 안이라고 해도 공기가 차가웠기에, 이런 식으로 이불을 다 걷어차고 잤다가는 분명 감기에 걸릴 것이 분명했다.
상처가 났거나 아플 때 가장 위험한 병이 바로 감기였다.
어렸을 적 몸이 다쳐서 쉬고 있을 때 감기에 걸려서 죽을 뻔한 적이 있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더워."
"더워도 조금 참아요. 그러다가 감기까지 걸리면 진짜 죽을지도 모르니까."
"...으응."
잠꼬대로 내뱉은 말인 것 같기는 했지만, 일단 대답은 꼬박꼬박 해줬다.
마음 같아서는 방금 칭얼거린걸 그대로 마왕에게 다시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만약 본인이 나에게 그랬다는걸 들으면 얼마나 수치스러워할까.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하찮은 목소리였기에 안타까움이 더더욱 커지고 마는 것이었다.
"열이 오르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럴 줄 알고 미리 물수건을 준비했지.
미지근한 물에 푹 담겨있던 수건을 들어올려, 마왕의 이마 위에 슬쩍 올려두었다.
죽지 마세요. 제 손에 죽기 위해서 저를 찾아왔다면서, 겨우 흉터 따위에 지면 안 되잖아요?
마음 같아서는 신성력을 이용해 치료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여신님의 신성력이 마왕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었기에 차마 시도할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녀님께 의술이라도 배워둘걸.
억지로 잊고 있던 와중 느끼는 빈자리에 심장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 분은, 제가 당신을 어떻게 하기를 바라고 있을까요. 죽이기를 바랄까요? 아니면, 당신을 돌보기를 원하실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무시하라고 할지, 대화를 나누어 보라고 할지ㅡ"
그만. 그만하자, 엘리. 이 이상 중얼거려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
내가 두 사람처럼 되지 못하는 이상, 내가 두 사람이 어떤 말을 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하는 건 그 어떠한 의미도 없을 터였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조용히 잠들어 있는 마왕의 얼굴을 둘러본다.
검은색의 머리카락과 새하얀 피부,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눈코입까지.
몸이 커다랬을 적에는 분명 미인상이었는데 말이지...
"..."
"뭔가 이렇게 보니까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탁자 밑에 쭈그려 앉아서 제 흉터를 만지고 있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혐오스럽다기보다는 귀엽다는 감상이 훨씬 더 컸다.
마치 어린아이가 제 비밀기지랍시고 탁자 밑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달까.
물론 그 안에 들어있는건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마왕이었겠지만, 외형에서 나오는 감상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조금만 쓰다듬어볼까.'
용사에게 쓰다듬 당하는 마왕이라니.
상상만 해도 어색하기 그지 없는 장면이었지만, 오히려 그 정도로 어색했기 때문에 더더욱 시도할 법한 일이었다.
만약 깨기라도 한다면 그 얼굴을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이겠지.
용사에게 쓰다듬어진 마왕이라는 꼬리표가 분명 평생 동안 그녀의 등 뒤를 따라다닐 터였다.
뭐어, 직접 본 사람은 나 이외에 존재하지 않겠지만서도.
"으음..."
분명 바깥의 칼바람에 머릿결이 상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마왕의 머리카락은 그 부드러움을 잃지 않고 있었다.
몸이 어려져서 더 그런 건가?
부드러운 실타래가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스스로의 머리카락과 살짝 비교를 해봤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차이나잖아.
최근 들어서 꽤 관리를 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한 종족의 왕씩이나 되는 이의 머리카락과 비교하기에는 아직 상당히 이른 듯 싶었다.
"...어머니."
그리고, 그렇게 쓰다듬기를 한참.
힘 없이 튀어나온 한 마디에, 나는 마왕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라니. 그건, 나를 말하는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마왕이 말한 어머니라는 것은, 분명 그녀 자신의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겠지.
이제는 죽어서 볼 수 없는, 그런 존재.
"저는 당신의 어머니가 아니에요."
마왕에게 어머니라고 불린 것이 기분 나빠서 이런 소리를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다른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ㅡ 어머니가 될 자격 따위가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어서 한 말이었지.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니 그 입술을 꾹 잡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어떻게든 참앙낼 수 있었다.
...자고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건 여기까지 하자.
***
그리운 꿈을 꾸었다.
아직 내가 마왕이 아닐 적의 일.
아주 잠시 뿐이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의 일.
어머니와 함께하던 그 순간의, 일.
아마 분명 뒷뜰에 들어온 자그마한 마수에게 밥을 주었던 걸로 기억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좋은 마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모습까지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약자를 돌보는 마왕이 되렴, 아리엘.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단다.'
그리고 그 한 마디에 네, 하고 대답한 것 까지도.
어머니가 말씀하신 약자에는 동족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도 포함 되었을 터였다.
어떻게 보자면 인간 또한 그 약자의 범주 내에 속할 터였고.
하지만 나는 동족들을 위한다고, 동족들의 뜻에 따른다는 이유로 동족들이 그들을 학살하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었더랬다.
물론 말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ㅡ 말을 한 뒤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절대 말렸다고 볼 수 없겠지.
"...아."
그래서 그런지, 오늘도 무수히 많은 인간들에게 목이 졸리는 꿈을 꾸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그래도 따스한 손길이 그들을 물리쳐준 것 같기는 했지만ㅡ 그들의 원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것 같은 찝찝함과 답답함.
그들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는 용사가 내 목을 잘라준다면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용사."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자, 침대맡에 엎드려서 곤히 잠들어 있는 용사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방비하구나. 정말이지, 상상 이상으로 무방비해.
본인의 눈앞에서 잠든 이가 마왕이라는 걸 과연 자각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의 무방비함이었다.
아대로 내가 도망치거나 본인에게 해를 끼치면 어떻게 하려고.
아니면 지금의 나 따위로는 본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는 자신감일까.
'아니면, 언제 죽어도 상관 없다는 걸지도 모르지...'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우습기는 하겠지만, 나와 용사는 꽤나 닮은 점이 많았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스스로의 목숨에 대해 그리 큰 가치를 느끼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일 터였다.
그건 소중한 이를 잃음으로 삶의 의지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성장하며 겪어온 일들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 걸까.
"용사, 일어나거라. 벌써 아침이다."
"...으."
"용사가 마왕 앞에서 그리도 무방비하면 어떻게 하자는 건지..."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는 묘한 기분이 들 것 같아서, 서둘러 용사를 깨웠다.
분명 용사라고 불리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족들 중 가장 허약한 이보다 훨씬 더 얇은 선을 가진 어깨를 보니 뭔가 두들길 때마다 약자를 괴롭히는 것 같아서 느낌이 이상했다.
물론 지금은 내가 용사보다 훨씬 더 약한 약자의 입장에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아무리 어깨를 두들겨도 용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용사, 용사? 어제 어느 정도 시간이 되어서야 잠에 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 피곤해질 거다."
용사의 생활 패턴을 걱정하는 마왕은 또 어떨까.
볼을 콕콕 찌르자 표정을 찡그리는 용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결국은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는 뭐, 일으켰던 허리를 눕히고는 그대로 다시 베개 위에 머리를 얹었다.
깨우기에는 그른 것 같으니, 나도 다시금 꿈 속 세계로 향해볼까.
눈을 감으니 잠이 솔솔 쏟아졌다.
아무래도, 이 몸뚱이는 겨우 그 정도의 일을 겪고도 상상 이상으로 피곤했던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