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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41화 (341/342)

Chapter 341 - IF : 만약 그녀가 용사였더라면. (15)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와 용사는 생각보다 잘 맞는 한쌍이었다.

애초에 누구 하나 말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언제나 주변이 조용했고, 식사 같은 것도 둘 다 까다롭게 먹는 편이 아니다 보니 반찬 투정도 없었다.

심지어 취미조차 까다롭지 않아서 서로 자신만의 공간에 앉아있는 것이 전부.

아마 지금 쯤이면 본인 방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아얏."

겉으로는 잔뜩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있어서 고통이란 어떻게 보면 생소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느껴본 고통 그 이상의 것.

강인했던 몸으로는 느낄 수 있는 고통의 한계치가 낮은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몸이 약해진 뒤에 느끼는 고통은 한계가 없었다.

치유력 또한 상상 이상으로 약해진 채.

정말 이 정도면 평범한 인간 아이보다 약한게 아닐까?

아직까지 상처 투성이의 발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신음을 흘렸다.

"...정말이지, 그 성검이라는 건 대체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할 지경이구나."

이렇게 보여도 마족의 왕이라는 작자인데, 그런 존재의 몸뚱이에 바람 구멍을 내다 못해 이 정도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니.

심지어 용사만 들 수 있게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동족까지 들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이상했다.

여신이라는 자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그런 무기를 만든 걸까.

조금 궁금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여신에게 직접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살아남은게 참 신기한 것 같기도 하고..."

성검이 꿰뚫은 자리를 보니 흉측한 흉터가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자그마한 몸뚱이에 이 정도 크기의 흉터가 생길 수 있다니, 참 재미있구나.

울룩불룩 튀어나온 부분을 콕콕 찌르니 마치 불에라도 데인 듯이 아파왔다.

"읏, 흐..."

"뭐 하시는 건가요, 당신."

"히얏?!!?!"

그렇게 한참이고 신음을 흘리고 있자니, 갑자기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하찮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키다가, 위에 툭 튀어나온 탁자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머리를 박아, 결국 눈물을 찔끔 흘려버리고 말았다.

가, 갑자기 들어오면 내가 놀라지 않느냐.

그런 의미를 담아서 올려다 보니, 용사의 눈동자가 잔뜩 한심함을 담았다.

서로의 개인적인 시간은 보장해주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본게 아니었던 게냐?

"식사 시간이 되어서 찾으러 왔는데, 설마 그런 곳에서 그런 짓을 하고 계셨을 줄은 몰랐는데요."

"...딱히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만."

"뭐, 자해하는 취미라도 있는 건가요? 흉터를 만지면서 막 신음을 흘리시던데."

"......"

다른 사람ㅡ 인간이 보기에는 조금 이상하게 보였으려나.

아니, 이건 그냥 인간이든 마족이든 상관 없이 전부 이상하게 볼 것이 분명했다.

고통이 신기해서, 이런 흉터를 가지고도 살아남았다는게 신기해서 만졌다고 한다면 너무 말도 안 되는 변명일까.

...솔직히, 나 자신조차 스스로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기는 했지만서도.

"미안, 하구나. 기분 나빴다면 앞으로는 자중하마."

"아니, 그러다가 상처라도 덧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는 건데요?"

"...아."

천천히 내 몸을 훑어내리는 눈동자에는 혐오의 감정 따위 단 한 조각도 담겨있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원래대로라면 이 하찮은 몸뚱이 따위, 용사의 손에 찢겨나갔어야 했을 터였다.

그런데 용사는 나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신발을 주고, 나를 안아서 본인의 소중한 이들과 살던 오두막으로 온 다음 식사까지 꼬박꼬박 챙겨줄 정도였다.

만약 나였다면 그녀처럼 할 수 있었을까?

...아니,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겠지.

"마침 연고가 있으니까, 그거라도 발라드릴게요. 마족에게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맙구나."

"상처가 덧나서 죽으면 안 되니까요."

그녀는 언제나 그런 핑계를 대고는 했더랬다.

내가 자신의 손에 죽어야 하기 때문에 나를 죽일 수 있는 다른 요소들을 전부 배제하려는 느낌.

그건 순수한 배려라고 보기에는 날카로웠고, 복수를 위한 준비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부드러웠다.

이걸 과연 무어라 부르는게 좋을까.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가, 연고가 담긴 통을 들고 들어오는 용사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알 수 없는 것에 굳이 당장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겠지.

이런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은, 그냥 복잡하고도 미묘하게 두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자, 이리로 오세요. 설마 계속 탁자 밑에 있을 생각은 아니죠?"

"아니, 아니다. 끄응, 좁은 곳으로 계속 들어가려고 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몸이 와있더구나."

원래도 어둡고 좁은 곳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마왕의 체면이라는게 있어서 별로 시도를 하는 편은 아니었더랬다.

그런데 이렇게 마왕의 직함을 내려놓고, 몸뚱이마저 작아지니 내 몸에 딱 맞는 좁은 공간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참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달까.

애초에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는 조건은 전부 달랐고, 내 쪽은 내 몸에 꼭 맞는 좁은 공간에 있는게 바로 그런 경우였으니 말이다.

물론 용사에게는 이런 내가 한심하게 보였을 테지만서도.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고양이라... 본 적 있다. 귀여운 생명체더구나. 마왕성에도 한 마리 살고 있길래 매일마다 밥을 주고 그랬지."

"...네?"

"왜 그러느냐?"

뭔가 요상한 용사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검은 털의 고양이가 불행의 상징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마왕성에 사는 검은 털의 고양이는 뭔가 나를 닮아있어서 더 정이 가고 그랬더랬다.

노란색 눈동자가 내 황금빛 눈동자를 닮은 것도 있었고, 인간들에게 미움 받는다는 점에서도 뭔가 동질감을 느꼈었지.

"음,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강경파의 동족들에게 들키지만 않았다면 좋을 텐데. 그 녀석들은 인간들 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 있는 생명체 대부분을 혐오하니 말이다."

"...마왕이, 고양이를 길렀다니."

"음? 길렀다기보다는 그저 밥을 줬을 뿐이다만."

마계에 있을 때도 주변의 동물들에게 먹이를 건네주고는 했었지.

사람의 손을 타면 야생에서 살아가지 못한다고 해서 엄청 가끔씩만 줬었지만서도.

"...뭔가 제가 생각하던 마왕과는 너무 다르네요. 마왕이라고 한다면 주변에 얼쩡거리는 성명체 따위는 전부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그럴 것 같은 인상이었는데."

"나라고 해서 아무나 죽이고 다니지는 않는다만. 애초에, 내 손으로 인간을 죽여본 적 따위 단 한 번도 없다."

"그 잘난 동족들이 죽인 인간들의 목숨이 바로 당신이 죽인 목숨이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뾰족하게 쏘아붙이는 모습에 한숨을 내뱉듯이 답했다.

내가 조금만 더 단호했더라면 동족들이 인간들을 죽이지 못하게 할 수 있었을까?

이제서야 하는 후회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자, 이리 오세요."

"...그래."

침대 위를 탁탁 두들기는 용사의 손짓에 낑낑거리며 침대 위로 올라가려고 힘을 주었다.

하지만 남은 건 침대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수치심 뿐.

상상 이상의 쪽팔림에 침대보를 붙잡고는 그대로 침대 위에 얼굴을 묻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탁자 밑에서 발라달라고 할 걸.

아니, 애초에 그냥 내가 바른다고 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하아, 대체 얼마나 더 한심한 모습을 보일 생각인데요. 왜, 하찮은 모습을 보여서 제가 당신을 죽이지 못하게 만드려는 속셈인가요?"

"..."

"뭐, 귀가 붉어진 걸 보니 일부러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요."

"흐앗..."

용사가 내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는 그대로 들어올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올라가지 못했던 침대 위에 슬며시 올려두었다.

...그 순간 느낀 수치심이란 대체.

입을 열면 이상한 목소리가 튀어나갈 것 같아서 결국 꾹 다물어 버렸다.

마족 망신은 마왕이 전부 다 시키는구나.

아, 이제는 마왕이 아니니까 딱히 망신은 아니려나.

"아파도 조금 참아요. 바르면 조금 나아질 테니까."

"...읏."

용사의 손에 묻은 연고가 그대로 내 가슴팍의 흉터 위를 덮어냈다.

차갑고, 끈적끈적하고 미끌거리고ㅡ

으, 마치 마수의 침 같은 감촉이로구나.

솔직히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고통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 굳이 입을 열거나 하지는 않았더랬다.

"어때요.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아요?"

"조금이 아니라, 엄청 나아진 것 같구나."

아직 제대로 마르지 않아서 끈적함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이 정도면 뭔가 손이랑 발에도 전부 바르고 싶을 정도로구나.

피딱지가 져있는 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시선을 돌리니, 용사가 뭔가 엄청난 걸 목격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보느냐?"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음, 그러면 한 가지 부탁할게 있다만. 그러니까, 그래. 연고의 여유가 남는다면 혹시 손이랑 발에도 발라도 되겠느냐?"

같은 침대에 앉아있음에도 시선이 맞지 않아, 고개를 들어올리고는 용사를 향해 정중하게 부탁했다.

하지만 뭐랄까. 이런 내 부탁을 듣자마자 슬쩍 고개를 돌리는 건 아무래도 거절 당했다는 의미이겠지.

그래도 뭐,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용사와 마왕의 관계라는 건 그런 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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