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클럽
“차장님, 그러지 말고 2차 딱 한 병만 더해요.”
“오늘은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직 초저녁이잖아요. 그러고 일찍 집에 가서 할 일도 없으실 것 같은데 2차 같이 가자고요.”
“누가 누구 얘기를 하는 거야? 강대리야 말로 빈집에 돌아가기 싫어 떼쓰는 거지?”
두 사람은 그렇게 추운 거리 한 복판에서 계속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같은 회사 동료인 둘은 좀 전에 오랜만에 성과급이 나온 걸 기념하는 부서 회식이 끝나고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갈 길을 재촉하는 추운 날씨와 함께 두둑한 주머니와 다음날부터 시작하는 공휴일이 낀 연휴에 대한 기대감으로
회식이 끝나자마자 각자 가족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이나 애인들과 만나기 위해 미리 약속한 장소로 너나할 것 없이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각자 애인 없는 노처녀 윤차장과 솔로인 강대리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던 것이었다.
아직 술이 덜 취한 두 사람은 그 뒤로도 그렇게 한동안 각자 2차를 가야하는지에 대해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강대리의 끈질긴 고집에 윤차장이 마지못해 승낙하고 말았다.
강대리는 2차 갈만한 장소를 찾아 걸으면서 살짝살짝 곁눈질로 윤차장을 쳐다보곤 했다.
올해 드디어 30을 넘긴 듣기 좋은 말로 골드미스인 윤차장은 그러나 아직까지 창창한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나이보다 앳돼 보이는 얼굴이나 피부하며, 평소 열심히 관리한 덕에 늘씬하면서도 탱탱하고 육감적인 몸매는
늘 주변 남자들의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시키게 하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도 그런 자신의 미모의 힘을 잘 알고 있는지 굳이 숨기려하지 않고 더 화사하게 꾸미고 다니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다.
오늘도 그녀는 자신의 잘록한 허리,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늘씬한 각선미 등 자신의 아름다운 몸매를
값비싸 보이는 부드러우면서도 몸에 착 달라붙는 정장으로 우아하고 비싸게 한껏 포장해서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그녀에게 아직 애인이 없다는 게 참 이상하기도 할 만 했지만, 그녀의 외모와는 반대로 자신의 똑똑함과 함께
남보다 빠르게 승진한 차장이라는 직위에서 오는 콧대 높은 자존심과 우월감, 이기적인 성격 등은 그녀를 대하는 남자들로
하여금 정나미 떨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도 자기 잘난 맛에 회사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차장님, 저기가 어때요. 제가 지난번에 가 봤는데 분위기 좋아요.”
“강대리 수준에서 좋은 거 아니야? 강대리처럼 칙칙하고 우울할 것 같은데.”
“제가 보증할게요. 정말 인테리어도 아늑하고, 안주도 맛있다니까요. 값도 싸요.”
“만약 거짓말이면 강대리가 다 내기야. 실망시키지 말라고.”
두 사람은 그렇게 계속해서 툭탁거리면서도 강대리가 말했던 술집으로 향했다.
큰 길에서 한 발짝 벗어나 안쪽 골목에 늘어선 각종 음식점과 술집들 사이에서도 그 끝 쪽 한적한 곳에 자리한 빌딩의 지하에
위치한 그 술집은 어두운 배경색으로 인해 그렇게 확 눈에 띠지는 않았지만, ‘클럽 모나코’라고 적힌 간판이나
들어가는 입구가 깔끔하면서도 멋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둘이 계단을 내려가 반투명한 유리문을 열자 어둑어둑하면서도 멋있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마치 고급 와인바 같은 분위기였다.
한쪽에 위치한 각종 술이 전시되어있는 바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앞으로 펼쳐진 광택 나는 나무 바닥 위로 각종 테이블과 함께
여기저기 몸이 푹 들어갈 정도로 푹신한 소파들과 거기에 둘러싸인 낮은 탁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검게 칠해진 천정에서는 여러 개의 텅스텐 조명이 밑으로 늘어져서는
그 아래 자리 잡고 있는 테이블과 사람들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리고 바 맞은편으로는 공연을 위한 작은 무대가 자리해 있었다.
손님은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았지만, 미리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무대에서 공연 중인 가수의 노래에 흠뻑 젖어있거나, 또는 일행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실내를 둘러보던 두 사람은 점원의 안내를 받아 곧 무대 근처 빈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럭저럭 분위기는 좋네. 강대리 보기보다 수준이 높은 걸?”
“너무 사람 무시하지 마세요. 저도 분위기 좋은 곳에서 술 마시는 게 좋다고요.”
“근데 메뉴가 전부 칵테일 아니면 와인 종류잖아. 강대리 아무래도 여기 여자 꼬시려고 개발한 거 아냐?”
“아니 제가 그렇게 엉큼하게 보입니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차장님한텐 손 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걱정 푹 붙들어 매세요.”
“그 얘기 은근히 기분 나쁜데? 내가 그렇게 매력 없어 보여?”
그 말과 함께 윤차장은 강대리 쪽으로 몸을 붙이며 윗몸을 살며시 기울였다.
그러자 윤차장의 하늘하늘한 얇은 블라우스의 갈라진 틈 사이로 그녀의 살집 좋은 가슴골이 선명히 드러나 보였다.
거기에 몸에 짝 달라붙는 정장 덕에 확연히 드러나는 윤차장의 미끈하게 잘빠진 몸매는 강대리에게 가까이 붙은 채로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예쁜 얼굴과 함께 스포트라이트 같은 텅스텐 조명 아래에서 섹시함을 강하게 풍겼다.
그녀의 살짝 벌린 촉촉이 젖은 붉은 입술과 그와 대조되는 하얀 피부,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수 냄새 또한
그 느낌을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윤차장의 도발적인 행동에 강대리는 당황해서 뒤로 물러나며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본 윤차장은 재미있다는 듯이 까르르 웃으면서 몸을 세웠다.
덕분에 자신이 놀림 당했다는 것을 안 강대리는 화가 나서 다시 한 번 얼굴을 붉혔지만,
윤차장은 그것엔 관심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선 점원을 불러 마실 것을 주문했다.
화낼 순간을 놓친 강대리는 곧 자기도 음료를 주문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뾰루퉁한 강대리의 표정을 본 윤차장은 계속해서 ‘남자가 속이 좁네’, ‘그런 성격으론 여자에게 인기 없다’ 등등의 말들로
계속 강대리의 속을 긁어대며 놀려대기 바빴다.
윤차장의 가벼운 놀림은 주문한 칵테일과 안주가 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강대리도 거기에 지지 않으려고 간간이 반격을 시도했지만, 불행하게도 별로 성공하지도 못하고
거꾸로 계속 말꼬투리를 잡혀 놀림만 당할 뿐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잠시 티격태격할 동안, 그들 앞쪽에 있는 무대에서 연주가 끝나고 조명이 밝아졌다.
두 사람은 갑작스런 분위기 변화에 금세 입을 다물고 ‘무슨 일인가’ 하는 호기심으로 앞쪽을 쳐다보았다.
무대정리가 끝나자 곧 누군가가 조명 속으로 걸어 나왔다. 무대 가운데 들어선 사람은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오늘같이 스산한 밤에 저희 클럽을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아, 근데 갑자기 나온 제가 누구냐고요?
저는 보다시피 평범한 남자지만, 여러분의 기분을 북돋아 주기 위한 약간의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할까요.”
남자가 그 말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손을 한번 움직이자, 손에는 어느새 장미꽃 한 송이가 들려져 있었다.
남자는 장미 한 송이를 앞에 있던 여자 손님에게 건네주고는 무대로 돌아왔다.
그제야 그 사람이 마술사라는 것을 안 손님들은 급격히 호기심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마술사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술사는 젊은 나이임에도 꽤나 훌륭한 마술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 카드 마술을 선보일 땐,
그는 현란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으로 멋진 장면을 연출해 관객들을 감탄하게 하곤 했다.
거기에 더해 물건을 사라지게 하거나 카드 모양과 숫자를 맞히는 난이도 있는 마술과 함께
손도 안대고 테이블에 놓인 관객의 물건을 들어올리고, 불태운 물건을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 같은
보통의 클럽이나 술집에서 선보일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고급 마술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손쉽게 성공시켰다.
손님들은 마술사가 새로운 마술을 보여줄 때마다 무대나 실내 곳곳을 훑어보면서 무슨 장치나 속임수가 없는지
확인하고자 했지만, 모두 다 그들 바로 눈앞에서 마술이 벌어지는 데도 그 어떤 속임수도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더 마술사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다.
마술사는 이런 마술쇼 경험이 많은지 중간 중간 재미있는 연출과 유머를 끼어 넣으면서 노련하게 자신의 의도대로
쇼를 이끌고 있었다.
“모두 즐거우신가요? 자, 오늘은 분위기가 정말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색다른 마술을 선보일까 하는데요. 괜찮으시죠?
그럼 손님들 중 누구 한 분 도와 주셨으면 합니다. 어, 거기 여자분 어떠신가요?”
마술사가 둘러보다가 손으로 가리킨 사람은 다름 아닌 칵테일을 홀짝홀짝 마시면서 재미있게 마술을 구경하고 있던
윤차장이었다.
그런데 평소 콧대 높고 무아독존 하던 윤차장도 갑자기 조명을 받자 당황스러웠는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차장님, 뭐해요? 얼른 안 나가세요?”
“아, 아니 이건 창피하게 어딜 나가......”
“그래도 사람들이 이렇게 쳐다보는데요.”
“그러니까 더더욱 어떻게 나가라고......”
하지만 이렇게 빼던 윤차장도 주변에게 끊임없이 쏟아지는 박수 세례와 강대리의 부추김에 밀려
마지못해 엉거주춤 일어서더니 어느새 무대 위에 서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박수소리에 윤차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런 관객들의 반응을 손을 들어 가라앉힌 마술사는 윤차장을 뒤돌아보고 말했다.
“어렵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가 아니면 이름이?”
“저, 윤소정이요.”
“아,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이름이군요. 자, 그럼 소정씨,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여기 의자에 앉아주세요.”
윤차장은 그 말에 따라 무대 한가운데 준비된 의자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최면술이라고 들어보셨죠? 이제부터 제가 소정씨께 최면을 걸겠습니다.”
“저, 그게......”
“그렇게 겁내 하실 거 하나 없습니다. 단지 제가 여기서 최면을 걸 수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 시켜주시면 됩니다.
만약 최면에 안 걸리셨다면, 안 걸렸다고 말하시고 그냥 일어서서 자리에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알았죠?”
“아, 예......”
“소정씨, 그러면 이제 온 몸의 긴장을 푼다고 생각하고 힘을 빼세요. 그리고 가만히 이 라이터 불빛을 바라봐 주세요.”
“저, 이건......”
“불빛에 집중하세요. 불빛을 볼수록 점점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아, 그렇게요.”
마술사는 윤차장에게 계속해서 암시를 걸면서 라이터 불이 흔들리지 않게 천천히 팔을 양 옆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뒤 윤차장은 라이터 불빛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불빛에 맞춰 눈이 흔들리면서 서서히 눈꺼풀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자, 이제 당신은 온 몸의 긴장이 다 풀리고 편안한 상태입니다. 그대로 천천히 눈을 감고 제가 하는 말을 듣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제 목소리만 들립니다. 잘 들으세요. 제가 지금부터 숫자를 10부터 거꾸로 셀 겁니다.
숫자가 점점 작아질수록 당신은 더욱 더 몸에 힘이 빠지고 편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 말을 들을수록 당신의 마음도 역시 더욱 평온해 집니다.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마침내 끝나게 되면, 당신의 몸과 마음은 내가 말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10, 9, 8......”
관객들은 마술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과연 윤차장이 정말 최면에 걸리는지 궁금해 하면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숫자가 줄어들수록 윤차장의 몸은 마치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축 늘어져 갔다.
마술사가 숫자를 거의 다 불렀을 무렵엔 거의 앉은 채로도 중심을 못 잡을 정도로 흔들거릴 정도였다.
“3, 2, 1, 자 소정씨, 이제 당신은 제가 말한 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눈을 뜨고 의자에 똑바로 앉으세요.”
마술사의 말이 떨어지자,
신기하게도 좀 전까지 흐느적거리던 윤차장은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눈을 뜨고는 앉는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
그러자 최면을 거는 동안 윤차장의 변화를 지켜보던 관객들 사이에는 약간의 감탄과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마술사는 그것을 눈치 챘는지 관객 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이제 소정씨는 완전히 최면상태에 빠져있습니다. 근데 혹시 서로 짜고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말인데 사실 확인을 위해서 간단한 마술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걸 보시면 여러분의 의심을 풀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말과 함께 마술사는 앉아있는 윤차장 양 옆으로 줄을 맞춰 의자 3개를 나란히 붙여놓고는 윤차장을 의자들 위에 눕게 했다.
“소정씨, 이제 당신은 침대에 누운 것처럼 편안해 집니다. 그리고 잠에 빠져듭니다. 서서히 졸음이 오고 눈이 감깁니다.
예, 이제 당신은 잠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요. 당신은 잠이 들었기 때문에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치 나무토막처럼 당신의 몸은 굳어선 누운 채로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손가락,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 상태에서 당신은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 편안함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됩니다.”
그러자 윤차장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정말 편안함을 느끼는 듯한 모습으로 의자에 완전히 기대어 누워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마술사는 그녀 뒤로 돌아가더니 갑자기 가운데 있던 의자 2개를 뒤로 확 빼냈다.
놀랍게도 윤차장은 좀 전의 모습 그대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단지 머리와 발로만 온몸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빼고는.
기묘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얼굴색 하나 변화 없이 꼿꼿하게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입은 계속해서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충분히 관객들에게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던 마술사는 뺐던 의자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그녀를 다시 앉게 했다.
“자, 이제 그녀가 최면에 걸린 것을 확인 했으니 좀 더 가보도록 하죠. 소정씨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마술사의 말에 따라 윤차장은 조금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지금 소정씨는 제 말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착한 아가씨군요.
근데 이왕 시작한 거 오늘 소정씨가 제 조수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괜찮으시겠죠?”
“예~.”
“근데 조명 밑에 서있으니 볼 때마다 소정씨의 아름다움이 정말 빛을 발하는군요.
당신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 특별히 하는 운동이 있습니까?”
“예. 요가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하셨죠?”
“10년 정도 했습니다.”
“와 정말 오랫동안 하셨군요. 그 정도면 꽤 잘하실 것 같은데 한 번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예~.”
“그런데 지금 복장은 요가하기에는 좀 불편해 보이는 군요. 좀 더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마술사는 갑자기 큰 천을 꺼내서 윤차장에게 들리고는 목 아래로 몸을 완전히 가리게 했다.
그리고 천 가운데 살짝 갈라진 틈으로 한 손을 넣더니 한 번 휘저었다가 다시 손을 뺐다.
그런데 들어갈 때는 분명 빈손이었던 마술사의 손에 뺄 때는 뭔가가 딸려 나왔다. 그건 바로 윤차장의 블라우스였다.
사람들의 놀라움도 잠시, 마술사는 계속해서 틈 사이로 치마, 스타킹, 신발 등을 순서대로 꺼냈다.
이쯤 되자 주변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객석에선 다음엔 뭘까 하는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목이 마른지 침을 꼴딱 삼키는 남자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모두들의 예상대로 다음번에 나온 것은 보랏빛 레이스 달린 브래지어였다.
그 다음을 상상하던 관객들은 그러나 마술사가 윤차장에게서 몸을 돌려 한쪽으로 걸어가자 아쉬운 나머지 신음소리를 냈지만,
다음 순간 마술사가 다른 옷가지를 손에 들고 나타나자 다시 한 번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술사가 두 손을 들어 관객들에게 보여준 옷은 다름 아닌 검정 그물스타킹, 빨간 하이힐과 함께
몸에 딱 붙는 광택 나는 검은색 무대용 쇼걸 복장으로 레오타드(leotard) 같이 몸에 쫙 붙는 형태지만
목에서 가슴 앞부분은 연미복 마냥 깃과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 모양이었다.
거기에 붉은 나비넥타이와 손목에 걸치는 장식용 흰 커프스(cuffs)까지 모두가 완벽하게 한 조를 이루고 있었다.
마술사는 천천히 그 옷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준 뒤에 하나하나씩 윤차장이 들고 있는 천 사이로 집어 넣었다.
보는 사람들은 과연 그렇게 설렁설렁하게 넣는데도 제대로 옷을 입기는 할까하는 눈초리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술사가 천 사이로 모든 옷을 넣고 곧바로 구령을 외치자,
바닥으로 천이 떨어지면서 복장을 완전히 갖춰 입은 윤차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대복은 윤차장에게 딱 맞춘 듯이 달라붙어서는 그녀의 완벽한 글래머 몸매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관객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곧 엄청난 박수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 앞에서 좀 전까지 무대에 나오기 조차 부끄러워하던 윤차장은
제정신이라면 결코 입으려고도 않을 그런 복장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당당하게 자신의 몸매를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마술사의 조수 역할이라는 암시에 확 빠진 것처럼 마술사의 지시에 따라 환한 웃음을 띠고는
모델처럼 몸을 이쪽저쪽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새 복장을 자랑하기 바빴다.
그 뒤로도 윤차장의 최면쇼는 계속 이어졌다.
마술사가 말하는 대로 윤차장은 미소 짓는 얼굴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요가 실력을 하나하나씩 선보이기 시작했다.
과연, 수년 동안 요가를 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는지, 윤차장은 아주 유연한 몸놀림으로 다리를 양 옆이나 위 아래로
일자로 벌리거나 물구나무 서기, 목 뒤로 다리 올리기 등 보통사람이면 힘들 법한 동작들을 전혀 어려움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 운동복이 아닌 몸에 짝 달라붙은 무대의상 덕에 그녀가 과감한 동작을 취할 때마다
그녀는 비록 의도하진 않았지만 민망한 포즈로 자신의 온몸 구석구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조수 역활에 충실하려는 듯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열심히 갖가지 요가자세를 취하면서도 얼굴엔 계속 미소를 띠고 있었다.
“소정씨 정말 훌륭하군요. 이제 그만하고 일어서도 좋아요. 자, 수고한 소정씨에게 박수 한 번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객석에서 또 다시 박수소리가 울렸다.
윤차장은 마치 무대 위에서 커튼콜을 하는 공연배우처럼 우아하게 상체를 숙이고 여러 차례 인사를 했다.
얼마 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마술사는 다시 윤차장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소정씨, 갑작스럽겠지만, 소정씨는 특별히 좋아하는 동물이 있습니까?”
“예~.”
“무슨 동물을 좋아하시죠?”
“으~음, 개, 강아지를 좋아합니다.”
“음, 본인처럼 예쁜 것을 좋아하시는 군요. 그럼 개를 키워보신 적도 잇습니까?”
“예, 3년 전까지 하나 키웠습니다.”
“그럼 지금은 요?”
“메리가 죽은 뒤로는 안 키우고 있습니다.”
“그 강아지 이름이 메리였던 모양이군요. 어떤 강아지였죠?”
“예, 작고 앙증맞은 요크셔테리어였어요. 털이 길고 부드럽고, 주인인 저를 잘 따른 대다가 애교가 많았죠.”
“음, 설명만으로는 우리가 메리가 얼마나 앙증맞고 애교 많은 강아지였는지 잘 모르겠군요. 그럼 이러면 어떨까요?
소정씨가 메리가 되어서는 우리에게 얼마나 앙증맞고 애교 덩어리 강아지였는지 보여주는 겁니다. 괜찮으시겠죠?”
“예~?”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그저 잠시 소정씨가 메리가 되면 되는 겁니다. 자,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따르세요.
두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머릿속을 비우세요. 그래요. 깨끗이 비우는 겁니다. 이제 당신의 머릿속은 하얀 도화지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메리를 떠올려 보세요. 오직 메리의 기억만 떠올립니다. 소정씨, 메리가 잘 보이나요?”
“예~, 잘 보입니다.”
“이제 지금 당신의 머릿속은 오직 메리의 모습으로만 가득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메리가 했던 행동이나 특징들을 자세히 떠올려 봅니다. 잘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젠 당신은 메리가 됩니다.
메리의 모습이나 특징, 버릇들이 생생하게 기억나면서 당신은 메리처럼 생각하게 되고, 메리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자, 이제 제가 숫자를 10부터 거꾸로 셀 겁니다.
숫자가 줄어들수록 당신은 점점 자신이 메리가 되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자, 10, 9, 8......”
마술사는 박자를 맞춰 천천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모든 관객들은 과연 윤차장이 그 말처럼 될지 궁금해 하면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숫자가 줄어들어도 가만히 눈을 감고 서있는 윤차장의 모습엔 아무런 변화가 없어보였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은 이번에는 마술사가 좀 무리했다가 실패한 모양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술사는 그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똑같은 목소리로 숫자를 세었다.
“......3, 2, 1. 자, 메리, 이제 눈을 뜨고 저를 봅니다. 시작.”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차장이 보여준 모습에 관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윤차장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마술사에게 붙어서는 마치 주인에게 애교를 떠는 강아지마냥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그녀의 변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동안, 마술사는 잠시 강아지와 노는 것처럼
윤차장에게 여러 가지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정말 자신이 강아지가 된 것처럼 왈왈 짖기도 하고, 꼬리를 흔들 듯이 엉덩이를 양 옆으로 흔든다던가
혀를 내밀고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부탁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마술사는 윤차장의 그런 모습이 충분했다고 생각했는지, 계속해서 그녀에게 다른 동물이 되도록 암시를 걸었다.
그녀는 마술사의 말 한마디에 비둘기가 되었다가도 토끼나 말, 코끼리의 흉내를 내곤 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었지만, 윤차장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 자기 맡은 역할에 몰두하고 있었다.
“자, 이제 원래대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셋을 세면 당신은 좀 전의 일은 잊고 다시 한 번 제 아름다운 조수로 돌아옵니다.
하나, 둘, 셋!”
그러자 윤차장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다시 몸을 꼿꼿하게 세워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미소를 지으며
마술사 옆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마술사는 그런 윤차장을 잠시 제자리에 세우고는 무대 뒤에서 뭔가를 들고 돌아왔다.
그건 속이 비치는 자그마한 아크릴 상자였다.
작은 여성이 감싸 안아도 그 안에 다 들어갈 만큼 작은 그 상자를 옆에 있는 카드 테이블에 올려놓고
마술사는 관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이제 마지막 쇼입니다. 오늘 조수로 도와주시는 분이 너무나도 잘하셔서 한동안 안하던 건데 한 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소정씨의 몸을 이 상자 안에 넣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마술쇼를 보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다들 좀 전의 요가 시범으로 윤차장의 몸이 꽤 유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체격 있는 글래머 몸매인 그녀가 들어가기엔 상자의 크기가 너무 작아보였기 때문이었다.
관객들에겐 그 전의 묘기들은 두 사람이 서로 짜고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 상자 마술은 척 보기에도 물리적으로 전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마술사는 여전히 자신 있는 모습으로 윤차장을 우아하게 이끌고는 테이블 앞에 세웠다.
그리고 신발을 벗게 하고는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로 윤차장을 올렸다. 이제 작은 테이블 위로 윤차장이 꽉 차게 서 있었다.
그녀가 테이블 양쪽 끝에 간신히 두 발을 걸치고 일어서자 그녀의 벌려진 다리사이에 위치한 상자는 그 크기가 더욱 작아보였다.
마술사는 그 상태에서 미닫이 형태인 상자의 위쪽 뚜껑을 열고는 윤차장이 그 안에 한 발을 넣고 서도록 했다.
그 다음 장면은 관객들이 모두 보면서도 믿지 못할 정도였다.
마술사는 요령 있게 상자 속에 있는 윤차장의 다리를 접게 하더니 다음엔 그녀의 엉덩이가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 상태로 마술사는 그녀의 두 팔을 접어 몸에 꼭 붙이게 하더니 상체를 구부려 한쪽 어깨를 상자 속에 밀어 넣었다.
계속해서 그녀의 머리까지 정리해서 접어 넣고 남은 다리 한쪽을 완전히 접어서는 남은 부분에 밀어 넣은 다음
열려있던 뚜껑을 밀어 상자를 닫았다. 마술사가 윤차장을 상자에 넣는 데는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보는 사람들은 이런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은 것과 같은 결과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관객들을 앞에서 마술사는 여유 있게 테이블 위에 있는 상자를 돌리면서 속임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은 투명 상자에 꽉 들어찬 윤차장의 몸은 더 이상의 여유는 없다는 듯이 투명 벽에 착 밀착해서는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마술사가 그녀를 상자 안에 옆으로 눕힌 모양으로 넣었기 때문에 한 번에 그녀의 머리에서부터 어깨, 다리와 함께
그녀의 살집 좋은 허벅지와 엉덩이, 그 사이 은밀한 부분까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런 민망한 상태에서도 전혀 꼼짝 못하고 있는 윤차장은 단지 숨 쉬면서 나오는 입김이
간간히 투명 벽에 김을 서리게 하는 정도로 아직 살아있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놀람과 감탄으로 한동안 계속된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마술사는 다시 상자의 뚜껑을 열고는 천천히 윤차장을 꺼내기 시작했다.
넣을 때와는 반대 순서로 팔, 다리를 하나하나 꺼내는 모습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상자 밖으로 다 나온 그녀의 모습은 그러나 아직 최면상태여서인지 얼굴엔 특유의 멍한 눈빛과 무표정 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가쁘게 숨 쉬는 모습에서 몸을 접고 있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곧 얼굴에 미소를 띠고는 마술사를 따라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다시 한 번 객석에선 뜨거운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열렬한 환영에 마술사와 윤과장은 계속해서 마무리 인사를 하며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한동안 계속된 관객들의 박수는 무대가 정리되고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분위기가 정리되고 나서도 사람들의 화제는 단연 마술사의 화려한 마술에 관한 것이었다.
손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대하지 않은 괜찮은 볼거리를 접한 것에 꽤나 만족해 보였다.
하지만, 다들 마술쇼의 감흥에 빠져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시간이 꽤 흘렀어도 윤차장이 아직 자리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누구의 자리가 비었는지 일일이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손님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강대리는 안절부절못하며 윤차장이 왜 안돌아오나 걱정할 것 같은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여유 있는 모습으로 칵테일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손님들이 자기 쪽에 전혀 관심을 보내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천천히 자신과 윤차장의 물건들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 순간 강대리가 향한 곳은 의외로 출입구 옆 카운터가 아닌 무대가 자리 잡고 있는 쪽 근처에 있는
작은 직원용 출입문 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않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강대리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는
문 안쪽에 비좁은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않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강대리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는
문 안쪽 비좁은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복도 안쪽에는 방이 몇 개 있는지 한쪽으로 문 3짝이 줄지어 있었다.
그러나 강대리는 갈 곳을 아는 것처럼 그 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그 짧은 복도 끝에서는 어둠에 가려 잘 눈에 띄지 않는 다른 문 하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대리는 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누군가 문 밖을 확인하는가 싶더니
조용히 문이 열렸다.
강대리는 다시 한 번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옆에서 마술사가 조용히 문을 닫더니 강대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좀 늦었군요.”
“예. 남들이 눈치 안채게 조심하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