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그 배우가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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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그 배우가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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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그 배우가 누군데?
2023.03.01.
“뭐지, 저 사람들?”
차창 밖을 쳐다보던 마 여사가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예령은 무슨 일인가 싶어 시모가 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게요. 뭘까요? 저 사람들 다 기자 같은데.”
청담동 주얼리 숍, 로젤의 건물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노트북 가방을 어깨에 메고 한 손엔 대포처럼 보이는 큰 카메라를 든 것이 영락없는 기자의 모습이었다.
“기자? 기자들이 왜 저렇게 깔려 있어? 로젤에 무슨 일이라도 터졌다니?”
마 여사는 기자란 말에 썩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듯 인상을 썼다.
“글쎄요. 아까 성 매니저랑 통화했을 땐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 그저 당분간 예약 손님만 받는다고.”
“예약 손님만?”
“네. 아마 기자들 때문에 그랬나 봐요. 가서 물어보면 되겠죠. 무슨 일인지. 김 기사님, 저기 건물 뒤쪽으로 가주세요.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죠.”
“예. 작은 사모님.”
김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핸들을 돌렸다. 골목으로 진입한 차는 건물 뒤쪽에 있는 주차장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매장으로 올라가자, 차가 들어오는 걸 확인했는지 성 매니저가 다가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마 여사님. 오늘은 작은 사모님도 같이 오셨네요?”
“예령이가 오늘 쉰다고 해서. 그나저나 무슨 일 있어? 바깥에 사람들이 많이 있던데.”
“아, 기자들 말이죠? 저희도 참, 이게 무슨 일인지.”
성 매니저의 얼굴에 애매모호한 미소가 걸렸다. 좋으면서도 난감했다. 매장을 찾아온 기자들은 여럿이었지만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어떤 여배우가 저희 제품을 착용해서요. 요즘 그분이 인기가 많다 보니, 착용한 액세서리에도 관심이 많은 모양이에요. 안 그래도 알음알음 알아보신 분들이 저희 매장에 연락을 주셨는데. 최근엔 어디서 정보가 샌 건지 기자들까지 취재를 하러 오더라구요. 그 제품이 저희 게 맞는지, 맞으면 또 누가 사 갔는지 알려줄 수 있냐면서요.”
“그 배우가 누군데?”
“윤세경 씨요. 혹시 보셨어요? 요즘 그분이 출연한 드라마가 인기가 있거든요.”
성 매니저의 말에 예령의 귀가 쫑긋 섰다. 시선을 내린 그녀는 마 여사와 성 매니저를 번갈아 보았다.
“내가 요즘 드라마를 안 봐서. 근데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아, 그 아가씨 태조네 회사 소속 아니니?”
“네. 맞아요.”
마 여사의 물음에 예령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동시에 지난번 식사 중에 봤던 세경의 반지를 떠올렸다.
그때 분명 도련님에게 선물을 받은 거라고 했다. 어머님의 선물을 사러 갔다가 세경 씨 것도 샀다고.
이거 성 매니저의 말 한마디에 두 사람의 관계가 들통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아가씨는 무슨 제품을 착용했는데? 있으면 한번 보여줘 봐.”
“반지예요. 죄송하게도 그게 한 세트만 만든 거라서요.”
“한 세트?”
“네. 커플링이거든요. 메인 스톤이 다이아인.”
“아아, 그래서 기자들이 몰려온 거구나. 애인이 있나 싶어서. 본인이 사간 건 아니고?”
“네. 남자분이 사 가셨어요.”
성 매니저가 대답을 하면서도 뭔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니라면 분명 윤세경이 착용한 건 지난번 진 대표가 사 갔던 그 반지였다.
그걸 윤세경이 꼈다는 건,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뜻이 아니었나? 근데 왜 마 여사님은 아무것도 모르시는 거지?
“여사님, 혹시 아드님이…….”
성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두 사람의 관계를 물으려는 찰나, 마 여사의 옆에 있던 예령과 눈이 마주쳤다.
“…….”
뒷말을 삼킨 성 매니저가 입을 벙긋거렸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달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은 예령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왜 말을 하다 말아? 내 아들이 뭐?”
마 여사의 채근에 예령을 보고 있던 성 매니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말을 돌렸다.
“어, 둘째 아드님이 사 가신 선물 잘 받으셨나 해서요.”
“브로치 말이지? 잘 받았지. 성 매니저가 추천해 줬다고 하던데.”
“네. 뭘 사면 좋을까 고민하시길래 저번에 사모님이 브로치를 보신 게 생각이 나서 제가 추천해 드렸어요.”
“걔는 나 말고 제 여자한테 그런 걸 사줘야 하는데.”
마 여사가 한숨처럼 흘리는 말에 성 매니저가 조용히 웃었다.
여사님, 이미 아드님이 하나 사 가셨어요.
“안 그래도 그 브로치랑 어울릴 만한 목걸이 좀 사려고. 곧 친목 모임이 있거든. 성 매니저가 추천 좀 해줘. 예령이는 어떤 게 좋겠니?”
“저도 사주시려고요?”
“그럼 여기까지 와서 내 것만 사겠어?”
자신이 그리 속 좁게 보이냐며 마 여사가 눈을 흘겼다. 예령은 시모의 팔에 매달려 애교를 부리듯 웃었다.
“저는 그냥 있는 거 하고 가려고 했거든요.”
“너도 이왕 온 김에 하나 골라. 다른 사람 기죽일 만큼 화려한 걸로.”
“그러세요. 마 여사님이 사주신다는데.”
성 매니저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마 여사가 응접실 소파에 앉자 직원이 미리 준비해 둔 다과를 가지고 왔다.
“차 드시고 계시면 제가 준비해서 가지고 올게요. 작은 사모님은 어떤 제품을 보여드릴까요?”
“음, 저는 밖에서 좀 둘러보고 와도 될까요?”
예령이 응접실 밖을 가리켰다. 찻잔을 든 마 여사는 한번 둘러보고 오라며 손을 까닥거렸다.
금고에서 상자 몇 개를 챙겨 온 성 매니저가 마 여사를 응대하는 동안, 예령은 천천히 매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20여 분이 지나, 성 매니저가 응접실에서 나오더니 예령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음에 드는 건 있으세요?”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드네요.”
생글생글 웃은 예령이 쇼케이스 안에 진열된 물건들을 살폈다. 성 매니저는 예령을 졸졸 따라다니다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저…… 반 관장님.”
몸을 돌린 예령이 성 매니저를 쳐다보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응접실 쪽을 힐끔대던 그녀가 예령의 옆에 바짝 붙여 목소리를 죽였다.
“혹시, 반 관장님은 알고 계시는 거예요?”
“도련님이 반지 사가신 거요?”
예령의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뜬 성 매니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아, 그럼 역시…….”
진 대표와 윤세경이 만나고 있었구나!
성 매니저가 놀라 벌어진 입술을 두 손으로 막았다.
“어? 근데 왜 마 여사님은…….”
“뭐. 아직은 비밀이랄까.”
입술을 끌어올린 예령이 매장 밖을 응시했다. 여기선 별로 얻을 게 없다 여겼는지 주차장에서 죽치고 있던 기자들 중 몇몇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성 매니저님도 당분간 조심해줘요. 이것도 매장의 신용과 관련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죠? 설마 고객들이 구매한 상품 목록을 외부에 노출하거나 하는 건…….”
“어휴, 그 부분은 저희도 주의하고 있죠. 아까 전엔 당연히 마 여사님도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해서…….”
성 매니저가 머쓱하게 웃었다. 아들의 일이라 마 여사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고가의 반지를, 저렇게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에게 선물했을 땐 가족들에게 이미 소개도 마친 줄 알았는데.
“음? 한데 마 여사님은 모르는 걸 반 관장님은 어떻게 알고 계세요?”
“제가 좀 촉이 좋아서.”
예령이 눈을 찡긋거리며 하는 말에 성 매니저가 웃었다.
“일단 저희 쪽은 언론 인터뷰는 곤란하다고 일관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근데 계속 이렇게 대응해도 괜찮은 건가요?”
“음.”
팔짱을 낀 예령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세경의 배도 조만간 불러올 테니 슬슬 열애설이든 뭐든 흘리는 게 나을 것 같긴 했다. 게다가 기자들이 저렇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파파라치 같은 게 따라붙을 수도 있고.
‘시기상 썩 나쁘지 않단 말이지.’
드라마도 막바지에 접어들었겠다, 은근히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다 종영 후 밝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일단 지금처럼만 응대해줘요. 이후엔 어떻게 할지 도련님한테 듣고. 내가 매니저님한테 연락하라고 말해둘게요.”
성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
“뭐? 아무도 모를 거라고?”
“…….”
“아뉜데. 다 알고 있는뒈.”
우현이 옆에서 얄밉게 비죽거렸다. 태조를 놀리는 데 재미를 붙였는지 밉살스럽게 튀어나온 주둥이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태조는 그런 우현을 한번 노려보고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세경의 반지에 대한 관심이 잠시 사그라드는가 싶더니,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하나가 새로운 불을 지피고 있었다.
[윤세경이 부부이몽에서 끼고 나온 반지 제가 청담동 로*에서 보고 온 거랑 똑같은 거 같은데. 메인이랑 서브 스톤까지 다 찐 다이아! 거기다 커플링! 그럼 저 반지는 애인한테 받은 걸까요?]
불씨가 된 글을 날개 달린 듯 사방팔방으로 퍼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기자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러더니 이젠 윤세경의 반지가 정말 커플링이냐며, 지금 사귀는 사람이 있냐 확인하는 전화까지 걸려 오고 있었다.
“거 봐. 누구 하나 알 거라고 했지?”
“그러게.”
“어쩔 거야? 그냥 확 터트려? 세경 씨 지금 연애 중이라고?”
“아니. 지금은…….”
태조가 말하려는 찰나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이 길게 울렸다. 액정에 형수님이라는 발신인이 떠오르자 우현이 어서 받으라며 태조를 재촉했다.
“네, 형수님.”
- 로젤에 기자들 깔린 거 알아요?
인사도 생략한 예령이 대뜸 본론부터 던졌다. 태조가 구겨진 미간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그래요? 몰랐는데. 거기 가셨어요?”
- 좀 전까지 거기 있었죠. 어머니랑 같이.
어머니?
주름을 펴던 태조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 세경 씨 반지가 핫해서 기자들이 물어보러 왔대요. 그거 누가 사 갔는지. 성 매니저가 어머니를 보면서 아리송한 표정을 짓더라고. 도련님이 사 갔는데 왜 아무것도 모르시지? 하는 얼굴이던데?
“그래서요? 성 매니저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습니까?”
- 아무 말 안 했어요.
“…….”
- 내가 말하지 말라고 신호를 줬거든.
예령의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어머니께 들키지 않은 건 모두 제 덕인 줄 알라며 그녀가 으스댔다.
“그건…… 감사하네요.”
- 맨입으로만?
“…….”
- ……저기요, 도련님. 전화 끊은 거 아니죠?
태조의 침묵이 길어지자 예령이 살짝 꼬리를 내렸다.
“나중에 만나면 절이라도 할까요?”
- 됐어요. 징그럽게 절은 무슨. 그냥 농담한 거지. 그보다 성 매니저한테 연락 한번 해줘요. 갑자기 기자들이 매장에 찾아오니까 그쪽도 당황한 모양이더라구. 일단 기자들한텐 모른다, 알려줄 수 없다고 잡아떼라 했어요.
“잘 하셨어요. 성 매니저한텐 제가 따로 연락해 볼게요. 저희도 지금 그 부분은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 중이라.”
- 회사에도 기자들이 찾아오고 그래요?
“직접 오기보단 전화가 자주 오죠.”
-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애설도 좀 흘리고 그래요. 이것도 나름 좋은 기회잖아.
확실히 자연스럽게 열애 사실을 터트리기엔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다만 아직 드라마가 종영 전이라 당장 확정적으로 밝히는 건 무리가 있었다.
“좋은 기회긴 한데, 당장은 무리예요.”
- 그래요, 뭐. 그건 도련님이랑 세경 씨가 정해서 하겠지. 아무튼 빨리 밝히고 어머니께도 인사드려요. 이러다 아드님 연애를 언론으로 먼저 접하시겠어.
그러다 후폭풍을 견딜 수 있겠냐며, 예령이 한 마디 덧붙였다.
“그 전에 말씀드려야죠. 네, 그럼 들어가세요, 형수님.”
태조가 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우현이 궁금한 듯 물었다.
“왜, 뭐? 무슨 일 있으셨대?”
“로젤 매장에 기자들이 왔었다고. 오늘 형수님이랑 어머니가 거길 방문하셨다고 하네.”
“그래서? 기자들이 뭘 알아냈대?”
“그건 아니고. 거기 매니저님도 당황하셨으니 연락 한번 해달라고.”
“어휴, 난 또.”
별일 없었다는 말에 안도한 우현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앞으론 어쩔 거야? 드라마는 이제 중반 넘어가서 2주 정도면 마무리될 텐데. 그전까지 좀 버텨볼까?”
태조가 고민하듯 턱을 문질렀다. 어차피 커플링이라고 소문이 난 마당에 아니라고 부정하면 후에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거였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배우 개인의 사생활이라 확인 중이다. 나중에 알아보고 알려드리겠다, 이런 식으로.”
우현이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왠지 모르게 전화벨 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오는 듯해 고개를 떨군 그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