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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외전 (2) - 뜨거운 밤을 위하여 (98/100)


98. 외전 (2) - 뜨거운 밤을 위하여
2023.07.08.



 


“어머, 이게 뭐야. 호텔 스위트룸 숙박권?”

예령이 봉투에 담긴 물건을 꺼내며 활짝 웃었다. 세경이 예령의 생일 선물로 준비한 건, S호텔의 스위트룸 숙박권이었다.


“그냥 말로만 예약했다 말하긴 그래서. 그건 호텔에서 준 거고, 룸은 아주버님 이름으로 예약해뒀어요.”

윤조에게 그날 스케줄을 물어 준비한 선물이었다. 바깥에서 식사만 하고 집으로 들어올 것 같단 말에 세경은 두 사람이 더 오붓한 시간을 보냈으면 해서 룸 하나를 잡아 둔 터였다.

그 외에 다른 의미가 하나 더 있다면…….


“흐흠. 고마워. 근데 여기 거기 아냐?”

“거기라뇨?”

예령이 의미심장하게 묻자 옆에서 음식을 욱여넣던 심 원장이 물었다.


“이 호텔, 세경이가 태조랑 첫날밤을 보내고 규원이를 가진…….”

“어, 언니!”

세경이 붉어진 얼굴로 소리를 지르자 예령이 깔깔 웃었다. 심 원장이 오호, 하는 호기심 어린 탄성을 내뱉었다.


“부끄러워하긴. 우리 동서 이럴 때면 귀여워 죽겠다니까.”

“그 호텔 터가 좋은 걸지도. 나중에 나도 우리 자기랑 가 봐야겠네.”

심 원장이 예령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세경을 놀렸다.


“근데 규원이는요? 오늘 같이 올 줄 알았는데.”

“그이가 데리고 갔어요. 요즘 규원이가 아빠랑 회사 가는 거 너무 좋아해서.”

“어른들이 귀엽다고 이것저것 주기도 하니까. 참, 요즘 태조도 회사로 들어온다는 말이 있던데.”

예령이 청포묵 하나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지난번 가족 식사 때 아버님께서 태조에게 회사로 들어오라는 말을 했던 터였다.

그간 엔터 사업을 운영한 경험으로 미디어 쪽을 맡아 보라고.

진 엔터는 JK 미디어의 자회사로 인수하려는 것 같은데, 아직 태조는 회사로 들어갈 생각이 없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었다.


“그이는 아직 회사로 들어갈 마음이 없는 거 같아요. 3-4년 정도는 진 엔터 쪽에 있으려는 거 같고. 자기가 진행 중인 영화랑 드라마도 있으니까. 아마, 회사로 들어간다면 대표 자리는 강 상무님한테 넘기고 갈 거예요.”

“그만큼 회사 키우는데 고생했고 애정도 있으니까. 동서 만난 것도 그 자리에 있어서 그랬던 거 아닌가? 일찌감치 미디어 쪽에 자리 잡고 있었어 봐. 두 사람 이렇게 만났겠냐구.”

“에이. 언니 어차피 인연은 다 만나게 되어 있어요. 게다가 태조가 미디어 쪽에 자리 잡으면 더 쉽지. 누가 아나? 세경 씨 톱스타 되고 태조가 광고주가 돼서 만났을지? 아니면 누구 소개로 우연히 딱 만나거나.”

심 원장이 제 말에 취한 듯 손가락을 딱 부딪쳤다. 예령은 드라마를 한 편 쓴다며 피식 웃었다.


“그보다 식사 다했으면 슬슬 일어날까? 해정이 너도 시간 더 낼 수 있지?”

“응급콜만 없으면 괜찮은데. 왜요? 어디 가려구요?”

“세경이가 호텔 숙박권도 줬는데. 그냥 갈 수 있나?”

예령의 입술이 짓궂게 올라갔다.

그냥 가지 않으면 어딜 가나요?

무슨 의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두 사람을 보며 예령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



“음.”

세경의 입에서 긴 침음이 흘러나왔다. 일단 예령이 주기에 받아오긴 했는데.


“이걸 입느니 차라리 벗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샤워를 마치고 배스 가운 하나만 걸친 세경이 깊은 고뇌에 빠졌다.

낮에 식사를 하고, 세경은 두 사람과 함께 속옷 가게에 들렀었다.

야경이 끝내주는 호텔 숙박권도 얻었겠다, 이건 남편과 뜨거운 밤을 보내라는 의미라며 예령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야릇한 속옷 하나를 골랐다.

그 와중에 괜찮다는 세경에게도 예령은 선물 하나를 안겨주었다. 오늘 밤, 꼭 입어보라는 말에 일단 가지고는 들어왔는데…….


“이건 아닌 거 같아.”

속옷을 입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줄은 처음 알았다. 꽤 비싼 속옷인 거 같은데, 왜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걸까?

이걸 입고 태조에게 보였다간 앙큼한 고양이가 아니라 야한 고양이가 될지도 몰랐다.


“일단 빨리 방 안으로 들어가서…….”

태조가 들어오기 전에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다. 속옷을 챙긴 세경이 막 욕실을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똑똑.


“혹시 잠든 거 아니지?”

문 손잡이를 잡으려던 손이 멈칫거렸다. 욕실에서 나오지 않는 아내가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세경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품에 안은 속옷을 꽉 움켜쥐었다.


“다 했어요. 금방 나갈 거예요.”

깊게 숨을 몰아쉰 세경이 문 쪽에 얼굴을 대고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태조는 거실로 내려갔으려나?

문을 연 그녀가 욕실 밖으로 재빨리 발을 내디딜 때였다.


“뭐 하느라 이렇게 오래 걸려?”

“엄마야!”

바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세경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품에 있던 속옷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뭘 그렇게 놀라. 무슨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피식 웃은 태조가 바닥에 주저앉자 세경도 재빠르게 몸을 낮췄다. 하지만 그의 손이 떨어진 속옷을 줍는 게 더 빨랐다.


“…….”

“…….”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얼굴을 붉힌 세경이 태조의 손에서 속옷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거…… 당신이 산 거야?”

“아니요. 선물 받은 거예요.”

“누구한테?”

“예령 언니한테요.”

세경이 남편을 힐끗거렸다. 태조가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근데 왜 안 입고.”

“이, 이걸 어떻게 입어요.”

“그럼 지금은 뭘 입고 있는 건데?”

태조가 입을 가린 채 세경에게 물었다.

그녀는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쫑긋거렸다. 차마 가운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나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태조의 시선이 느리게 자신의 몸을 훑는 것이 느껴졌다. 세경이 벌떡 일어나 침실로 도망치려 하자 태조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왜…….”

몸을 일으킨 태조가 세경에게 다가왔다. 팔목을 쥐고 있던 손이 은근슬쩍 소매 아래로 들어와 맨살을 문질렀다.

그가 만지고 있는 살갗이 간지러운 건지, 심장이 간지러운 건지 모르겠다. 살짝 몸을 뺀 세경이 발끝을 꼼지락거렸다.


“지금 규원이 자고 있거든.”

“그, 그래요?”

규원이가 자는데, 왜 당신 눈빛이 변하는 건데요?

주춤거린 세경이 마른침을 삼켰다. 도망칠 구석을 찾느라 뒤를 힐끗 돌아봤지만, 그 사이 태조가 다가와 세경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밀착된 몸 사이로 단단해진 무언가가 느껴졌다. 두 사람을 감싼 공기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조금 아쉽네. 입은 것도 보고 싶었는데.”

태조의 시선이 세경의 손에 들린 속옷에 머물렀다. 허리를 감싸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은 그녀의 등 허리를 쓱 쓸어올렸다.


“자, 잠깐…….”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야릇한 느낌에 세경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녀는 제게 다가오는 태조의 입술을 손끝으로 막았다.


 


“당신, 좀 진정하고.”

태조가 아내와 눈을 맞춘 채 그녀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저를 거부한 것에 심통이 난 게 틀림없었다.


“이 상황에 어떻게 진정하라고.”

세경을 번쩍 안아 든 태조가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세경을 눕힌 그가 자신의 셔츠를 벗어 던지며 세경을 내려다보았다.


“사람을 부추겼으면 책임져야지.”

“누가 부추겼다고…….”

세경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의 시선은 태조의 몸에 고정되어 있었다.

곧게 뻗은 어깨와 운동으로 다져진 몸, 매끈한 피부 아래 균형 있게 자리 잡은 근육까지.


“그래서, 싫다고?”

짓궂은 미소를 지은 태조가 세경의 가운 앞섶을 벌렸다. 긴장한 듯 작게 들썩이는 목선을 더듬던 그가 도드라진 빗장뼈를 훑었다.

매번 저한테 앙큼한 고양이니 뭐니 해도, 진짜 앙큼한 건 이 남자일지도.


“누가 싫다고 했어요?”

세경이 두 손으로 태조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의 얼굴을 제 앞으로 끌고 온 그녀가 태조의 입술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추었다.


“대신 흔적은 남기지 마요. 나 드라마 촬영해야 하니까.”

“안 보이는 데다 남길게.”

허락을 받은 태조가 세경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포갰다.

***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가는 중이었다.

예령은 차창 밖을 보며 생글거렸다. 신호에 걸린 차가 잠시 멈추자, 웃고 있는 아내를 보며 윤조가 물었다.


“바깥에 뭐 재밌는 거라도 있어?”

“아뇨.”

“근데 왜 그렇게 웃어? 뭐 즐거운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윤조가 예령의 손을 잡고 손깍지를 꼈다. 신호가 다시 파란 불로 바뀌자 윤조가 핸들을 쥔 채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그냥 동서가 생각나서.”

그녀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꽃다발을 만지작거렸다. 아까 집에서 나오기 전에 세경과 잠깐 통화를 했었다.

제가 사준 속옷을 제대로 써먹었냐고 하자, 한참을 우물쭈물하더니 입지도 못했다고 하는 게 얼마나 귀여웠던지.


“제수씨는 왜?”

“내가 선물 하나를 해줬거든. 잘 쓰진 못했는데 목적은 달성한 거 같아서.”

“당신 제수씨가 마음에 드나 봐?”

“예쁘고 착하잖아. 내 생일이라고 호텔 스위트룸도 잡아서 주는데. 내가 안 예뻐할 수가 있어?”

예령이 윤조의 손에 장난스럽게 입을 맞췄다. 차가 호텔 앞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발렛을 맡기고 로비에 들어섰다.

체크인을 한 두 사람은 카드키를 받고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23층 스위트룸에 도착한 예령이 키를 꽂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

환하게 밝혀진 룸 안엔 미리 준비된 선물이 놓여 있었다. 꽃바구니에 꽂힌 카드엔 생일을 축하한다며 좋은 밤을 보내라는 세경의 메시지도 담겨 있었다.


“이거 봐. 내가 이러니 예뻐할 수밖에.”

예령이 손에 든 카드를 흔들었다. 윤조는 예령의 옆에 앉아 그녀가 건네주는 카드를 받아 보았다.


“여기 와인이랑 케이크도 있네. 우리 좋은 시간 보내라고 미리 준비해 놨나 봐.”

와인병을 든 예령이 오프너로 코르크 마개를 땄다. 그녀가 잔에 술을 채우고 윤조에게 와인을 건넸다.


“예령아.”

“응?”

예령이 잔을 한 바퀴 돌리며 입가에 가져가 댔다. 그는 아내가 상처받지 않을 만한 말을 고르듯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우리 그만할까? 시험관 하는 거.”

예령의 손이 멈칫거렸다. 윤조도 이런 말을 하는 게 마냥 편치 않은 듯 쓰게 웃었다.


“매번 병원 갔다 오면, 너 힘들어하잖아.”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호르몬 주사를 맞는 것도 일이었지만, 매번 임신이 아니라는 결과에 그녀가 남몰래 울음을 삼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윤조는 늘 마음이 쓰였었다.


“당신 아이 갖고 싶어 하는 건 알지만. 너무 힘들면 그만하자. 나는 너만 있어도 되니까.”

누구보다 예령이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건 알고 있었다. 먼저 보낸 아이에 대해 그녀가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그렇기에 제가 먼저 나서 그녀에게 말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예령은 제 몸이 축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는 일에 매달릴 테니.


“사실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

“근데 나 당신 어릴 때 사진이랑 규원이 보면서 욕심이 나더라고. 나도 당신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예령아.”

예령이 손에 든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남편을 보며 싱긋 웃었다.


“알아. 옆에서 지켜보는 당신도 나만큼 힘들다는 거.”

“…….”

“그래도 조금만 더 노력해 보면 안 될까? 나 올해까지만 시술 더 받아 볼게. 그래도 안 되면……. 그건 그다음에 다시 생각해 보자, 응?”

윤조의 품으로 파고든 예령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올망졸망한 눈으로 자신을 보자, 그가 졌다는 듯 옅게 웃었다. 이런 거에 제가 약하다는 거 뻔히 알면서.


“내가 널 어떻게 이겨. 대신 하나만 약속해. 네 몸부터 챙기겠다고.”

“걱정 마. 나 요즘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씨익 웃은 예령이 윤조의 몸 위로 제 무게를 실었다. 소파에 누운 그가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예령이 윤조의 가슴에 손을 대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런 의미로, 자기도 지금부터 노력해야지?”

“응? 지금?”

얼떨떨하게 저를 올려다보는 남편을 보며 예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릴 새도 없이 윤조의 목 아래로 손가락을 넣은 그녀가 그의 넥타이를 풀고 있었다.


“저기, 예령아 여기 소파인데…….”

“자기, 지금 장소가 중요해?”

대담한 아내의 행동의 윤조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예령은 그의 셔츠 단추를 풀며 남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묻었다.

아직 와인엔 입도 대지 않았는데, 아내의 입안에서 번져오는 포도주 향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반예령, 너 진짜…….”

거듭 부딪치는 말랑한 입술에 이성이 뚝 끊어졌다.

윤조의 입에서 그르렁거리는 신음이 쏟아졌다. 몸을 일으킨 그가 예령을 눕힌 채 그녀의 위로 몸을 겹쳤다.

밤보다 짙은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인 듯 엉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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