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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광염 소나타 1-0화 (1/34)

 ٩(ˊᗜˋ*)و 감상용입니다 갠소하세요♥ORH ٩(ˊᗜˋ*)و

[BL]광염 소나타 1

00.

폴란드 최고의 문화유산. 폴란드인들의 자랑거리. 폴란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우승자에게 금메달을 수여할 정도로 공신력을 갖춘 「쇼팽 국제 콩쿠르」는 자국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프레데리크 쇼팽을 기려 시작된 피아노 경연 대회로, 5년에 한 번씩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개최된다.

유럽 음악사의 정수를 간직한 이 대회는 전 세계 피아니스트들의 프로 등용문이라고 칭해도 모자람이 없다. 내로라하는 거장들로 구성된 심사 위원진과 문화적 소양이 남다른 청중들은 엄중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참가자들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고, 평가한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콩쿠르이기 때문에 우승자는 물론이고 입상한 연주자 전원은 음악가로서의 미래를 보장받게 된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도 전부 이 콩쿠르를 거쳐 갔다.

이 대회는 자신들이 지닌 무거운 권위를 의식하듯 우승할 만한 인재가 없다고 판단되면 우승자의 자리를 과감히 공석으로 두기도 했다. 실제로 쇼팽 국제 콩쿠르는 1990년과 1995년 연속으로 우승자를 배출하지 않았는데, 덕분에 2000년 경연의 출전자들은 막대한 부담을 안고 출사표를 던져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십수 년 후, 계절처럼 다시 도래한 결전의 10월 21일. 쇼팽 국제 콩쿠르는 바르샤바에서 치러진 경연 대회에서 역대 가장 압도적인 점수 차로 위대한 우승자를 선발했다.

만 19세의 한국인 피아니스트 승요한이 그 장엄한 무대의 빛나는 주역이었다.

“The Winner of the Chopin competition 1st prize and gold medal goes to(이번 쇼팽 콩쿠르의 우승자는)…….”

장내가 고요했다. 시상자는 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는 요한을 정확히 가리켰다.

“Johann, S!”

우승자가 호명되자, 함께 출전했던 연주자들은 당연히 그의 수상을 예상했다는 듯 요한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요한은 쑥스럽게 웃었다. 클래식 전문가들과 애호가들 사이에서 그는 이미 콩쿠르에 지원서를 제출하기도 전부터 우승자로 점쳐졌다. 이변은 없었다.

콩쿠르 우승자를 선정한 폴란드 바르샤바 필하모닉 콘서트홀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청중들은 물론이고 경연 내내 출전자들과 함께 연주한 오케스트라, 참가자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검토하며 점수 매기던 심사 위원들까지 전부 음악계를 뒤집어 놓을 천재의 우승으로 인해 잔뜩 들떠 있었다.

식순 맨 마지막. 대통령 내외와 심사 위원, 관계자, 청중 전원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오늘의 주인공인 승요한이 무대에 올랐다.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1위를 한 피아니스트 승요한에게 금메달을 수여했다. 무대 위에 입장한 대통령이 검은 연미복 차림의 키가 훌쩍 큰 남자에게 메달을 건넸다.

객석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창백한 피부, 부드럽게 흩날리는 차분한 검은색 머리카락, 길고 얇게 쌍꺼풀진 깊은 눈매, 건조한 무표정을 할 때엔 서늘한 인상의 미남인 듯하던 수상자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리자마자 온화하고 상냥한 인상으로 금세 탈바꿈됐다.

심미안적으로도 완벽한 금년도 우승자, 요한은 청중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오자 그는 부끄럽다는 양 메달을 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자 손가락이 길고 커다란 손이 쑥스러운 미소를 완전히 숨겼다.

입상자들의 기념 연주가 끝난 후 그는 우승자 특혜인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열연했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청중들은 전부 일어나 기립 박수로 그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연주에 화답했다.

이로써 그는 세계 3대 콩쿠르라 일컬어지는 「차이콥스키」, 「퀸 엘리자베스」, 그리고 「쇼팽 콩쿠르」의 우승 트로피를 모두 석권한 천재 피아니스트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세계 클래식 음악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것이다.

* * *

천국과 지옥.

낮과 밤.

태양과 달.

이렇게 이란성 쌍둥이처럼 짝지어진 명사들에는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개념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결코 공존할 수는 없고, 또 비슷한 기능을 하지만 특성은 정반대인 대척점에 있다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 낮과 밤. 태양과 달…….

요한과 나.

<올해 입상자들은 내년 초까지 유럽이랑 아시아를 순회하면서 갈라 콘서트를 연대요. 한국에도 위너 콘서트 하러 갈 것 같아요. 바르샤바 필이랑 같이요.>

셔츠의 커프스단추를 풀어내던 요한이 거울에 비친 수현에게 문득 물었다.

<머리 많이 길었네요. 잘라 줄까요.>

요한은 서서히 수현을 향해 다가섰다. 그의 차가운 손가락이 수현의 뒷머리 틈새를 비집고 가느다란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손끝이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건반 위를 스치듯 날이 서 있었다. 머리카락들이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수현은 갑자기 느껴지는 냉기로 목덜미를 떨었다.

<이제 우리 잘 수 있어요?>

그와의 관계에선 늘 일정한 규칙이 필요했다. 대부분 ‘거래’의 형식을 띠었으나, 두 사람은 ‘약속’이라고 불렀다. 그가 원하는 게 생기고 그것이 자신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라면,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그가 합당한 조건을 내미는 식이었다. 반대로 수현이 원하는 일이 생기고, 그것이 요한의 희생을 요하는 일이라도 적용되는 규칙은 똑같았다.

서로 간에 이 규칙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섹스를 원하는 그에게 세계 유력 3대 피아노 콩쿠르 입상이라는 조건을 내건 것은 2년 전의 자신이었다.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자로 호명되던 어제저녁, 이미 마음속으로는 그가 이렇게 나오리란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형, 저 하고 싶어요.>

그는 식은땀으로 군데군데가 젖은 수현의 티셔츠를 벗겨 내고, 커다란 손으로 뒷머리를 그러쥐듯 휘어잡았다. 자신으로부터 응답이 있기도 전이었다. 당장은 무엇보다 찝찝한 몸부터 차가운 물로 헹궈 내고 싶지만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 온 그는 잠깐의 틈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피아노를 두드리는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요한의 섬세한 손이 건반 위를 유영하듯이 수현의 온몸 위로 불거진 뼈마디를 더듬고, 실오라기 하나 없이 전라가 된 몸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수현은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 그가 유린하고 있는 것은 몸이 아니라, 정신이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수현은 그의 품에 안겨 시체처럼 몸을 늘어뜨렸다.

<역시 안 되겠어요.>

그는 끝이 날카로운 잭나이프로 수현의 뒷머리를 조금씩 잘라 내기 시작했다. 조금 전 그가 얘길 꺼냈을 때부터 이 또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머리 많이 길었네요. 잘라 줄까요.》

그건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었다.

수현은 그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삐뚤삐뚤하게 잘라 낸 뒷머리 덕에 목이 훨씬 시원하다는 것으로 위안했다. 길이가 들쑥날쑥한 터럭들이 바닥에 떨어져 발치를 어지럽혔다. 그중 몇 가닥은 쇄골 위로 조금 침입한 듯 부근이 간지러웠다. 수현은 눈을 차분히 감았다 떴다.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넌 왜 그렇게 날 간절히 원하지?’

예전의 반짝반짝하던 자신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수현은 너무나도 볼품없었다. 요한은 마치 그 무언의 질문을 알아듣기라도 한 양 대답했다.

<사랑해요.>

<…….>

<같이 자고 싶어요.>

더 이상 들려오는 음성은 없었다. 대신 행위가 끊임없이 돌아왔다. 그는 건반을 연주하는 것처럼 수현의 온몸을 어루만지고, 꽃에 물을 주듯 붉은 입술에 키스하기 시작했다.

수현은 푹신한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차갑고 기다란 손가락이 가랑이 사이로 신중하게 파고들었다. 그것은 꽃잎을 하나씩 떼어 내는 것처럼 허벅지 주변부의 살들을 매만지다, 곧 은밀한 내부를 꿰뚫었다.

어두운 방 안에 탁한 숨이 내려앉았다. 애써 다른 것에 집중하기 위해 창밖을 응시한 수현의 눈앞에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이 바로 보였다. 낯선 바르샤바의 밤이 새까맣게 깊어 가고 있었다. 어쩐지 기분이 서글펐다.

뺨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등으로, 마침내 등에서 엉덩이까지…… 요한의 손길이 질척한 탐색전을 펼쳤다. 요한은 지금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하고 있을까. 어쩌면 장난기 넘치는 라벨의 「물의 유희」일지도 모른다. 그가 어떤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든 그의 손끝에서 전이된 음악은 수현의 귀로 스며들어 와 베토벤 소나타 「비창」으로 들렸다.

<여기 느껴져요?>

<읏, 아파…….>

<아파?>

<하…… 읏!>

손가락이 빠져나간 좁은 공간이 다시 수축하려 움찔거렸다. 요한은 그 사이를 비집고 그대로 자신의 것을 박아 넣었다. 꿰뚫린 하반신을 위로할 그 어떤 자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단하게 곤두선 그의 것이 밀부를 가르고 들어와 내부를 뜨겁게 휘저었다. 그가 드나들 때마다 땀이 찬 살결끼리 맞부딪치는 것처럼 찐득한 마찰음이 연신 이어졌다. 잔뜩 억눌려 탁한 숨소리가 귀가 예민한 요한의 귓가에, 수현의 귓가에 동시에 퍼져 나갔다.

그가 뿌리까지 전부 욱여넣을 기세로 박을 때마다 수현은 구역질이 치밀었다. 요한의 것이 안팎으로 드나들며 내부를 찔러 댔다. 이러다가 장기가 모조리 위로 쓸려 식도를 타고 역류할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귓가에선 환청이 들렸다.

《이걸로 결별이야.》

<아, 요한. 나 토할 것 같아.>

요한은 대답 대신 키스했다. 입 속으로 토악질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표현처럼 보였다. 난생처음으로 느끼는 생경한 고통을 애써 견디며 수현은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그의 것이 자신의 내부에 관통해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는데도 그는 아득히 먼 사람처럼 보였다.

이런 역겨운 짓을 몇 번을 견뎌 내야 널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얼마나 더 널 버텨 내야 그날을 덤덤히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거지?

피아노 앞에 앉으면 모든 피아니스트들은 치명적인 독재자가 된다. 자신 위의 요한처럼. 그는 이토록 아름다운 외형을 지니고도, 타고난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도 내면이 지독하리만치 어둡고 광폭했다. 그렇다면 그의 앞면은 귀족들의 우아한 모차르트, 뒷면은 난청으로 고통받던 후기 베토벤일까. 아니, 그런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그의 복잡함을 표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이 관계의 이유를 사랑이라 말하지만 수현은 이게 정복감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랑이 뭔지 모른다.

나의 독재자.

그.

요한.

그는 신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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