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2/34)

01.

요한.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힘든 성씨 때문에 그는 주로 이름인 ‘요한(Johann)’으로 친숙하게 불렸다. 서명은 ‘John S’로 약칭을 썼다. 위대한 선대 음악가인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나, 요한 슈트라우스와 같은 스펠링을 쓰기 때문에 각종 비평지에선 종종 별명처럼 주니어라고도 칭했다.

그는 동방의 한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 배출한 전무후무할 세계적인 음악가이자, 3대 유력 콩쿠르의 우승을 전체 석권한 천재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크고, 마디가 넓고, 뼈마디가 불거진 곧고 아름다운 손을 지녔다. 이 커다란 손은 늘 건반 위에서 가장 유려하게 춤을 췄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 천재 아티스트의 충격적인 데뷔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한국 나이로 열일곱이던 해였다. 혜성처럼 등장한 변방의 어린 예술가는 심사 위원과 관객들을 유려하고 정교한 연주로 충격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당시 대회의 위원장이던 명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그의 출전에 약간의 특혜를 부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우승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 때문에 그해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1등이 없었다.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 심사 위원 대다수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왔지만 그는 대회가 끝난 뒤 모국인 한국으로 홀연히 돌아가 버렸다. 이후 수많은 악계의 지도자들이 백방으로 그를 찾으려 했으나 그 뒤론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3년 뒤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돌연 모습을 드러낸 그는 당당히 그해 우승 트로피를 손에 얻었다. 그리고 3년 전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홀연히 한국으로 되돌아갔다.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콩쿠르에 출전하는 것은 연주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요한은 입상자 순회공연의 기회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곤 다시 한국행을 택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전문가들과 세계의 수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은 그가 같은 해 있을 쇼팽 콩쿠르에 출전 준비를 하려는 게 아닌가 조심스레 점쳤다. 권위 있는 상을 전부 석권하겠다는 목표가 아닐까 했던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같은 해 10월. 짐작대로 그가 이미 쇼팽 콩쿠르 참가 지원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는 심사 위원, 참가자, 청중, 심지어 본인까지 모두가 승요한이 우승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경연에 들어갔다. 이변은 없었다. 마치 출정한 장수가 전리품을 하나하나 수집하듯이, 혹은 적진의 비밀 기지들을 하나씩 함락해 나가듯이 유력 콩쿠르의 위너 트로피를 차근차근 손에 넣은 것이다.

쇼팽 콩쿠르는 그 어느 해보다도 성황리에 끝마쳤다. 경이로운 우승자인 그는 클래식의 본거지, 유럽으로 첫발을 전격 내디뎠다. 그리고 음악사에 길이 남은 위대한 악성들의 뒤를 이어 자신의 이름을 차분히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콩쿠르 위너 콘서트 직후 요한은 독일의 유명 클래식 소속사와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클래식 음반계의 쌍두마차 DG·머큐리와 이례적으로 동시 앨범 독점 협약을 맺었다. 공연에서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온 것은 카라얀의 제자이자, 세계적인 명지휘자인 카를 하이네만이었다.

그는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요한을 처음 본 뒤 지금까지의 행보를 전부 지켜봤다며 요한의 쇼팽 콩쿠르 우승을 자신의 일보다 더 기뻐했다. 특히 자신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의 공연에 함께해 달라는 러브콜을 몹시 적극적으로 보냈다. 요한은 수많은 공연 요청 중 하이네만의 것을 제일 먼저 수락했다.

하이네만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그의 첫 정식 데뷔 무대였다. 명지휘자 존 바비롤리 경이 이끄는 할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재클린 뒤 프레의 경우처럼, 요한은 단번에 주목받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대열에 발을 내디뎠다.

그는 승승장구했다. 데뷔를 기점으로 세계적인 지휘자, 세계 유수의 빅 오케스트라들을 정복하고 틈틈이 공연한 피아노 독주회에 이르기까지 하루 24시간이 숨 쉴 틈도 없이 모자랐다. 독일을 기반으로 한 그는 유럽 각지의 오케스트라들은 물론 차차 미국으로 영역을 넓혀 시카고 심포니, 뉴욕 필하모니 등의 유명 오케스트라와도 협연 무대에 올랐다.

훌륭한 음악가들이 으레 그렇듯 그 역시 듣는 귀가 좋고, 보는 눈이 선명해 악보를 금세 익혔다. 게다가 어떤 무대에서도 변함없는 담대한 태도를 보였다. 길고 커다란 손의 움직임은 과감하고 거침이 없었는데도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정교했다.

또한 그의 연주는 귀족적인 실내악적 기품이 있었다. 그는 특히 어려운 곡을 쉽게 연주하는 데 능했다. 무엇보다 독특한 점은 넘치는 초절 기교도 그의 손을 거치면 이상할 정도로 잘 정돈되어 담백하고 세련되게 들렸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협연했던 빈 필하모니의 콘서트마스터는 그를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파가니니가 환생해 피아니스트로 태어난다면, 그의 부모는 분명히 요한이라 이름을 짓지 않았을까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인 파가니니는 생전 너무나도 탁월한 기교 때문에 악마라고 불렸다. 요한의 연주 또한 사람을 홀리는 듯한 구석이 있었다. 언제 시작했는지 그 시작점조차 명확히 인지할 수 없게 정신없이 빠져들었다가, 연주가 끝나면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환호를 보내게 됐다. 백 마디 설명 대신 한 번의 완벽한 연주로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것이다. 일반 청중들은 물론이고 클래식계에서 잔뼈 굵은 애호가들마저 그에게 열광했다.

그의 본거지인 한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음악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의 음악을 대했다. 따분하다, 지루하다, 난해하다. 수많은 악평과 함께 비인기였던 클래식은 새로운 지평을 열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클래식 음반 가게 하나 없던 서울에 클래식 음반만을 취급하는 레코드 전문점이 들어섰다. 대중은 자국의 음악가를 폴란드의 쇼팽,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를 대하듯이 소비했다. 클래식 불모지이자 황무지였던 척박한 한국 클래식계의 드라마를 새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일약 전 역사를 통틀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대중 예술가가 되었다.

그가 정통 클래식계에 자신을 내던졌던 10년 전 바로 그 순간부터. 모두 예상된 일이었다.

* * *

클래식을 전공한 유학생들이라면 한 번쯤 독일로의 유학을 고려하고 또 꿈꾼다. 이렇듯 클래식의 본고장으로 우뚝 자리 잡은 독일에서 가장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라얀이 터를 단단히 잡아 놓고 최근 카를 하이네만이 지휘봉을 잡은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떠올릴 것이다. 요한이 데뷔 이후 가장 많이 협주곡을 연주하며 호흡을 맞춘 것도 바로 이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였다.

올해 1월, 피아니스트 승요한은 이 베를린 필과의 협연 무대를 마친 후 홀의 로비에서 소규모 기자 회견을 열었다. 오늘의 연주를 기점으로 당분간 무대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발표가 이어졌다. 이를테면 ‘휴식 선언’을 한 셈이었다. 당초 소수 정예로 예정되어 있던 기자 회견은 삽시간에 구경하는 사람이 몇 배로 불어났다. 한창 연주 활동을 해야 하는 젊은 피아니스트가 돌연 잠정적인 휴식 선언을 한 것이었으니 반발은 거셌다.

<당신은 지금이야말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시기 아닌가요? 이제 곧 데뷔 10년 차를 앞두고 있고요. 이렇게 갑작스러운 휴식이라니…… 어째서죠?>

한 클래식 잡지 기자가 아쉬움인지 불만인지 그 경계인지 알 수 없는 복합적인 표정으로 토로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의 입지는 이미 독보적이었다. 더는 또래에선 비교 대상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의 연주는 이미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진 세계의 소수 거장들이나, 작고한 유명 피아니스트들의 그것과 비견됐다. 그는 모든 연주자들의 꿈이라는 세계적인 명지휘자,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다수의 협연 기회를 가졌음은 물론이고 본인 독주회의 티켓도 이례적일 정도로 성황리에 매진 행렬을 거듭했다. 그 실황 음반은 클래식 애호가들의 필수 구매품이 되었고, 연주자로서의 그는 더 이상 아쉬울 게 없었다.

몇 년 사이 클래식계의 가장 유력한 기득권이 된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휴식을 선언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혹시 글렌 굴드의 전철을 따르겠다는 겁니까? 하지만 그도 최소한 10년은 연주 생활을 했어요.>

또 다른 잡지사 기자가 캐나다가 배출한 유명 피아니스트인 글렌 굴드의 예를 들었다. 사람을 가리고 음악회의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기 무척 힘들어하던 굴드는 데뷔한 지 십수 년 만에 모든 연주회에서 은퇴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일회성 공연보다 영구적으로 녹음된 레코드로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는 방식을 과감히 택하고자 했던 것이다. 다만 기자의 말대로 사회성이 다소 부족했던 그조차도 전쟁 같은 연주 활동을 꼬박 10여 년은 거친 뒤에 은퇴를 선언했다.

<이해할 수가 없네요. 대중이 당신의 연주를 더 많이 향유할 기회를 줘야 해요.>

그의 팬을 자처하던 한 여성 기자가 안타깝다는 듯 덧붙였다. 그러자 쏟아지는 질문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던 요한은 그들에게 되물었다.

<저야말로 이런 반응을 이해하기 어렵군요. 전 지금 은퇴 선언을 하는 게 아닌데요. 전 한국에 돌아가 잠시 쉬고 싶을 뿐이에요. 그래야 할 시기가 왔어요. 이건 ‘규칙’이죠.>

<그 규칙이란 게 뭡니까?>

<말 그대로 규칙이에요. 지켜야 할 수칙. 제정된 질서.>

‘규칙’이 무엇이냐 묻는 반복되는 질문에 요한은 원론적으로만 답변했다. 기자들도 그에게서 구체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것을 예감한 듯 노선을 변경했다.

<그럼 쉬면서 대체 뭘 하실 생각인가요?>

<좋은 질문이네요. 쉬는 동안엔 작곡을 공부해 볼까 합니다.>

<작곡요? 왜 갑자기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겁니까?>

<갑자기가 아니에요. 우리가 위대하다고 말하는 악성들은 전부 작곡을 했어요. 후대의 연주자는 작곡가가 지시하는 음표만 따라갑니다. 결국 우리 같은 연주자들은 창조주가 아니라 기술자에 불과하죠. 여러분들도 날 ‘테크니션’이라고 부르지 ‘음악가’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듯, 음악은 결국 작곡가의 예술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는 마치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양 클래식계가 기피하는 도발적인 의제를 던졌다. 예의 ‘기술자’로 본인을 예로 들고는 있지만 넓게는 모든 연주자가 해당되는 일이었다. 이런 발언은 자칫하면 악계의 미움을 단단히 살 수도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를 취재하기 위해 콩나물시루처럼 붙어 선 기자들도 잠시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질문 다 끝났나요?>

기자들을 둘러보며 공백을 두던 그가 묻자, 다시금 질문이 쏟아졌다. 요한의 매니저인 린이 자리에서 손을 들고 있던 기자들을 한 명씩 지목했다. 그들이 순서대로 질문하면, 요한은 모든 질문에 일일이 성실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최근 편곡이나 작곡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는 얘기는 하이네만이 본지와의 인터뷰 중에 한 적이 있습니다. 교향곡을 투 피아노로 편곡하거나 피아노 소나타를 만들고 있다고요.>

<네, 맞습니다. 아직은 아마추어의 취미에 가까워요.>

<이미 작곡을 하고 있는데 굳이 휴식기를 가지면서까지 공부하겠다는 이유가 궁금해요.>

<연주를 잠시 쉬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규칙이라고요. 그러니까…… 휴식이 좀 더 앞선 목적이에요. 작곡은 쉬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조금씩 공부해 보겠다는 의미였어요.>

<아직 당신이 치지 않은 수많은 위대한 기성곡들이 있어요. 아깝지 않나요?>

<은퇴 선언이 아니라는데도 자꾸 그러시네요.>

요한은 부드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이어 말했다.

<그것들은 언제든 다시 돌아와서 연주할 수 있겠죠.>

<당신의 흥미는 피아노곡에만 국한되어 있나요? 교향곡에는 취미가 없으신지요? 작곡에 있어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 건 뭔지도 궁금합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벌써부터 최종 목표란 말은 너무 거창하고요. 당분간 제가 만들 곡은 피아노곡 위주일 겁니다. 그게 제 전문 분야니까요.>

<왜 하필 한국인가요? 차라리 이쪽에서 쉬면서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나요?>

<여기 있으면 연주를 계속해야 해요. 피아노 앞에 앉으라고 절 괴롭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죠. 특히 하이네만이나, 하이네만이라든지, 하이네만 같은…….>

다소 긴장하고 있던 기자들은 그의 농담에 편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주변을 쭉 둘러본 요한은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였다.

<당분간 쉬고 싶어요. 사랑하는 가족의 곁에서요.>

그는 또 한 번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질문에 대한 대답에 쭉 상냥한 미소를 동반했지만 결국 요지는 ‘난 쉬고 싶으니까 내 결정에 간섭하지 마’ 정도이리라. 요한이 인터뷰를 마무리할 기미가 보이자 뒤편에 서 있던 한 기자가 다급히 손을 들고 질문했다.

<외람되지만 혹시 손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닙니까? 치료차 잠시 요양을 가시는 거라든지.>

모든 연주자들은 연주할 수 있는 인체의 도구를 자신의 심장과도 같이 여긴다. 이런 의혹만으로도 대단히 불쾌해하기 마련이었다. 일부러 기분 나쁘라고 내뱉은 말은 아니겠지만 민감한 주제를 무례하게 건드린 것은 사실이었다. 요한은 질문한 기자에게 정면으로 반박하며 똑바로 대답했다. 다만 여유로운 미소는 잃지 않았다.

<아까 제 연주에 그런 기색이 있었습니까?>

<아뇨. 훌륭했습니다.>

<대답이 됐겠군요.>

요한의 곁에 서 있던 린이 그를 대신해 덧붙였다.

<대답할 가치도 없네요. 쓰레기 같은 질문은 전부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추가 질문 있나요?>

<소속사 측과 협의는 된 건가요?>

노이즈 마케팅을 우려하는 듯 제일 앞줄에 있던 기자가 넌지시 물었으나 요한은 어불성설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물론입니다. 처음부터 계약서에 저의 안식년이 계약 시점에서 7년 뒤로 명시되어 있었어요. 그렇죠, 린?>

린은 끄덕였다.

<그럼 한국에 가서 제일 먼저 뭘 하실 생각인가요?>

다감한 미소를 곁들이며 능숙하게 대답하던 요한의 안면이 일순 서늘하게 식었다. 거침없이 대답하던 그는 무언가를 아주 골똘히 생각했다. 한참을 그러는 동안 인위적인 빛을 담은 카메라 플래시가 정적을 가르고 그에게 마구 내리꽂혔다.

수려한 미모의 그는 드물게 외모까지 상품화된 피아니스트였다. 그의 얼굴은 늘 야누스 같았다.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차가움과 따뜻함이 수시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졌다. 무표정한 요한의 얼굴은 더 이상 다정한 기운이라곤 없이 심해 속처럼 차가웠다. 한참 뒤에야 입가에 미소를 다시 내건 그는 이윽고 답변했다.

<우선 책을 읽어야겠네요.>

<어떤 책을 읽을 건가요? 당신에게 피아노 외의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어떨까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글입니다. 아, 할 일이 또 생각났어요. 꽃에 물도 줘야 해요.>

아리송해하는 기자들을 향해 그는 덧붙였다.

<어머니께서 꽃집을 하시거든요.>

그가 차이콥스키의 「꽃의 왈츠」를 흥얼거렸다. 찰칵찰칵, 실시간으로 약동하는 그의 우아한 손짓이 카메라 뷰파인더에 정면으로 박혔다.

다음 날 취재를 온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의 헤드라인에 너 나 할 것 없이 「꽃의 왈츠」가 포함되었음은 물론이었다.

* * *

한낮의 주인 없는 집에 침입자가 나타났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곧장 거실의 낡은 그랜드 피아노 앞으로 직진했다. 손톱이 깔끔하게 정리된 기다란 검지가 뚜껑 덮인 피아노 위를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다.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던 자리 위에는 마디가 긴 손가락이 스치고 지나간 자국이 한일자로 남았다.

“전혀 안 치고 있군.”

요한은 검지 끝에 묻은 연회색 먼지를 잠시 내려다봤다.

살림을 도맡고 있는 수현의 어머니는 이 피아노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이 오래된 그랜드 피아노는 수현의 것이기도 했지만, 이 집의 어려운 손님이자 영원한 이방인인 요한의 것이기도 했으니까. 이를테면 공동 명의자라고 해야 할까. 이 정도로 먼지가 쌓여 있다면 손도 대지 않은 게 족히 몇 주는 됐을 것이다.

빙 둘러본 거실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안주인의 두서없는 취향을 반영한 통일성 없는 가구들, 협탁 위에 장식된 싱싱한 생화들, 책장에 꽂힌 크기가 제각각인 피아노 교본과 악보집들. 7년 만에 처음 이 집에 발을 들인 것인데도 불구하고 기억 속의 모습과 한 치의 변화도 없는 그대로였다. 여전히 평범한 가정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집이었다.

이 집에서 가장 고요하고, 유일하게 깔끔히 정렬되어 있는 레코드 수납장과 고급 오디오 기기들이 요한의 시선을 끌었다. 바로 이것만이 유일한 변화였다. 수납장의 납작한 유리문을 열자 안에는 요한이 데뷔 이후 발매한 연주 실황 앨범들이 가지런하게 꽂혀 있었다. 그 옆을 수문장처럼 지키고 서 있는 피아노 위로 따사로운 햇빛이 비쳐 들었다.

잠시 그곳에 서 있던 요한은 건반을 천천히 눌렀다. 소리도 세월만큼 낡았다. 몇 개의 건반을 눌러 보던 그는 금세 흥미를 잃고 현관에서 가장 구석진 방의 문을 열었다.

주변 공간은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다. 거실보다도 더 정돈되어 있지 않은 번잡한 방이 드러났다. 집기들이 난잡하게 어지럽혀져 책상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고, 문이 반쯤 열려 있는 옷장 틈으로는 아슬아슬하게 행거에 매달려 있는 구겨진 옷가지들이 삐져나와 있었다.

혼란스러운 공간이지만 분명히 보이지 않는 어떤 질서가 있을 것이다. 요한은 시트가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푹신한 매트 위에 드러누웠다. 천장에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라이벌 관계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의 빛바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모차르트. 음악사를 통틀어 이 방의 주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였다. 요한은 그래서 언젠가부터 몇백 년 전의 저 천재 음악가가 몹시 싫었다. 그의 연주 레퍼토리에 모차르트가 거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로 7년간 요한은 단 한 번도 한국 땅을 밟지 않았다. 그건 그들 사이의 ‘규칙’이었다. 7년 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요한은 그날 새벽 수현과 처음 잤다. 섹스는 밤이 새도록 이어졌다. 얼마나 간절하게 원했던지 그는 수현의 안에 몇 번이고 사정하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달아올랐다. 아침이 밝아 오던 즈음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그날 오전, 수현의 위에 축 늘어져 있던 그는 앞으로 베를린에 쭉 함께 있어 달라 요구했다. 그리고 그때 수현은 여태 이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대답했다.

<우리 사이 규칙 잊지 않았지. 조건이 있어. 나한테 시간을 줘. 우리가 함께 산 지 올해로 꼬박 7년째니까…… 그걸 극복하는 시간도 최소한 7년은 필요해. 그때쯤이면 네가 날 포기하든 내가 날 포기하든 둘 중 하난 되어 있겠지.>

<…….>

<이 얘긴 그때 다시 하자.>

그날 오후, 소속사의 계약 담당자와 미팅을 끝내고 요한이 돌아왔을 때 수현은 이미 호텔에서 사라진 뒤였다.

요한은 떠난 그를 붙잡지도 쫓아가지도 않았다. 그저 애초에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굴었다. 처음부터 세상에 피아노와 자신만이 남겨져 있었던 양 연주에만 매달렸다. 그는 똑똑히 알려 주고 싶었다. 이 조악한 방의 주인이 한평생 짝사랑해 마지않는 피아노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꼬박 7년이 흘렀다. 그사이 수현을 궁금해하지도, 찾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이 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늘 ‘약속’을 지켰으니까. 그들 사이의 규칙은 서로가 책임감을 가지고 반드시 이행했기 때문에 한 번도 어긋났던 적이 없었다. 그래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은 수현이었다. 자신은 조건을 채웠으니 이번엔 수현이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요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찾는 책은 좀처럼 시야에 닿지 않는 제일 위의 칸에 있었다. 피아노 위처럼 먼지가 뽀얗게 쌓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는 그것을 반쯤 꺼냈다가 도로 탁, 집어넣었다.

* * *

최근의 교정은 무척 한산했다. 방학에는 계절 학기를 듣는 학생들이 고작이라, 강의실도 텅텅 비었다. 추운 날씨에 이불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은 심리 때문인지 그마저도 여름에 비해 겨울에 더 적었다.

그런 한겨울의 캠퍼스가 이례적일 정도로 떠들썩했다. 특히 가장 언덕배기에 위치한 음악 대학 강의동 건물 주변이 유독 그랬다. 마침 학교에 있던 학생들은 거의 전부 음대 근처에 모여 있었다. 근무하고 있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뛰쳐나온 교직원들도 종종 보였다. 입구에 세워진 고급스러운 세단이 심상찮은 유명 인사가 학내에 들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깨에 자기 몸보다 커다란 첼로 케이스를 멘 여학생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마침 아는 얼굴이 있었는지 그 옆으로 가서 서자 예의 아는 얼굴이 그녀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진짜 승요한이야? 봤어?”

“좀 전에 총장이랑 학장이랑 같이 여기로 들어가는 거 내가 직접 봤어.”

“안 그래도 연주 접고 한국 온다는 뉴스 보고 언제 오나 하긴 했는데! 분명히 지난주까지는 독일에 있었거든. 언제 귀국했대?”

“어제 했대. 몰래. 아까 기자들 따라 들어가면서 하는 얘기 들으니까 다음 학기부터 우리 학교 다닌다는 거 같더라?”

깜짝 놀란 여학생이 펄쩍 뛰자 커다란 첼로 케이스가 함께 덜컹거렸다.

“진짜? 작곡 공부 할 거라더니 그거 때문인가 봐. 근데 왜? 이동준 때문인가? 걔 가르쳤던 이동준이 우리 학교 나왔잖아.”

세계 클래식계를 뒤집어 놓은 걸출한 천재가 국내의 학교에 수학하러 온다는 사실은 입으로 말하면서도 현실감이 없었다. 예비 첼리스트가 내뱉는 질문은 많았으나 줄곧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도 명확한 답변을 해 주지는 못했다. 아직 요한 측에서 공식적인 언급이 없으니 추측할 뿐이었다.

한국 대학교는 한국이 배출한 유명 피아니스트 이동준을 길러 낸 모교였다. 그는 요한이 처음 음악계에 발을 들이도록 도왔던 첫 스승이기도 했다. 이미 완성형인 천재가 누군가에게 배운다는 사실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요한이 한국에서 공부할 장소를 굳이 마련해야 한다면 이곳이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는 했다.

“아, 맞다. 승요한 이름 걸어서 승요한 홀 만들 거래.”

“대공연장?”

“전용 연습실도 따로 만들어 주고. 공연장 피아노도 승요한이 고른 걸로 싹 갈 거라던데.”

“대박. 피아노과 애들만 웬 떡이야?”

천재라 일컬어지는 대다수의 음악가들은 절대 음감을 지녔다. 그도 같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으로도 건반 위에서 완벽하게 음정을 재현해 낼 수 있었다. 애초에 요한이 학교에서 배울 게 많지 않은 것이다. 그가 일반 학생들처럼 학교에 나와 수업을 듣고, 연주하고, 교정을 거니는 모습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요한을 위해서 왜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대우를 하느냐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요한의 영향력을 클래식계로 한정하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많았다. 분야마다 두각을 드러내는 인재는 늘 나타났지만 세계적으로 이름을 이만큼 널리 떨친 천재 예술가는 없었던 것이다.

음대 건물 외부가 점점 더 모여드는 빼곡한 인파 때문에 전쟁터가 되어 가고 있을 때, 내부의 학장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화기애애했다. 방학 때는 물론이고 학기 중에도 큰 이벤트가 없으면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든 총장과 이사장 내외까지 전부 직접 행차해 요한을 응접하고 있었다. 대화하는 장면은 학교 홍보팀으로부터 출입을 허가받은 수 명의 기자들이 면밀하게 관찰하고, 사진으로 박제하고, 기록했다.

학교 측은 요한이 요구하기도 전에 과감하고 파격적인 특혜를 제공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방음벽을 새로 설치하고 취향대로 리모델링한 개인 연습실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음악 대학 대강당 격인 대연주회장을 증축하여 승요한 홀로 이름을 지을 예정이며, 할당된 예산을 대폭 늘려 장비와 악기들도 전부 새것으로 들이겠다고 공언했다.

이탈리아의 전역에는 작곡가 이름으로 된 음악원들이 있었다. 피렌체의 케루비니 음악원, 밀라노의 베르디 음악원, 페사로의 로시니 음악원……. 이처럼 서울에도 승요한의 이름을 딴 음악원이 하나 있으면 어떻겠느냐며 미래에는 우리 한국 대학교도 미국의 줄리어드나 독일의 베를린 음악 대학처럼 세계적인 음악 대학의 전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원대한 소망도 내비쳤다. 요한은 그 터무니없는 말들을 웃는 낯으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상은 늘 높은 게 좋은 법이니까요.”

그는 가볍게 대답하며 장황해진 대화를 매조지했다.

“제 의사는 대충 설명된 건가요? 더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정리하면, 일정 수업을 꾸준히 듣기보다는 원하는 게 생기면 청강하시겠다는 말씀인 거네요. 혹시 학교에는 얼마나 자주 오실 계획이신지…….”

“꼭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1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오려고 해요. 마침 이 학교 음악 도서관이 국내에서 제일 크다고 하니까요.”

사실 학교에 적을 두기로 한 것은 린의 아이디어였다. 벌써 7년째 요한과 거의 동고동락하고 있는 그녀도 가끔은 그를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1분 뒤의 행보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요한은 때로 며칠 밤낮이 새는지도 모르고 열중해서 건반을 두드리는 습관이 있었다. 한국에는 그런 그를 지근거리에서 제어해 줄 사람이 없었다. 린은 요한의 안식년 동안 공연 기획 업무 파트와 다른 아티스트 관리 파트로 차출될 예정이어서 유럽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한국에서의 일정을 관리해 줄 보충 인력은 요한의 요청으로 간섭을 최소화할 예정이었다. 다행히 이 학교에 수현이 일하고 있으니 ‘그에게 네 스케줄을 관리하게 하면 어때?’라는 논리에 요한은 쉽게 설득됐다.

총장은 요한의 긍정적인 답변으로 안도한 듯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대학으로선 영광이죠. 어쨌든 학교에 나오시는 거니까 아무래도 학적부에 적이 있는 게 편할 텐데요. 어디에 두면 좋을까요. 작곡과? 피아노과?”

그를 둘러싼 후광 때문인지 요한은 나이가 지긋한 학교의 수뇌부들에게도 어려운 존재였다. 학장이 조심스럽게 질문하자, 요한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옆에 앉은 매니저 린에게 귓속말했다.

“둘 중 어디였더라?”

그러자 린이 가볍게 대답했다.

“피아노과.”

“피아노과로 하죠.”

요한은 돌림 노래처럼 동어 반복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혼잣말하듯 덧붙였다.

“거기 오랜 친구가 있거든요.”

총장이 손을 내밀자 요한은 물끄러미 그 손을 직시했다. 수더분한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예민한 피아니스트들은 손에 가하는 마찰을 최대한 피했다. 그는 후자인 모양이었다. 요한은 손을 맞잡는 대신 예의 바르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눈치껏 상황을 파악한 총장이 이해한다는 듯 무안해진 손을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거뒀다. 일련의 모든 장면은 동석한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모임이 파하자마자 가장 구석 자리에 있던 여성 기자가 밖으로 나가는 요한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잠깐만요! 승요한 씨!”

경호원들이 저지하려 했으나 요한이 말렸다. 대신 눈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죠?

“월간 「클래시즘」 계현주입니다.”

자신을 계현주라 칭한 여자가 그를 향해 명함을 내밀었으나 요한은 작은 종이의 날카로운 끄트머리를 눈으로만 힐끗 살폈다. 명함을 대신 받아 간 것은 매니저인 린이었다.

“그런데요?”

“최근 협연 영상을 몇 개 봤는데 어디까지 가게 될지, 무서울 정도로 진화하고 있더군요.”

“기자들 질문은 칭찬으로 시작하면 꼭 뒤엔 비난이 오더라. 요점만요. 일정 끝내고 집에 가는 길이라.”

“가장 활발하고 화려하게 활동해야 할 시점에 한국에 온 게 전 정말 이해가 안 되거든요.”

“이미 독일에서 대답했던 질문이군요.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으시네요. 지난주 독일판 「클래시컬」을 한번 읽어 보세요. 나에 대한 공부가 될 거예요.”

요한이 앞서 걷자 현주가 바로 옆에서 뒤쫓아 왔다. 그의 걸음걸이는 무대에 오를 때의 모습처럼 바르고 곧았다. 그녀는 이 모습을 실제로 보고 있자니 왠지 가슴이 뛰었다.

“그 인터뷰는 물론 봤어요. 당신이 기자들 상대하는 데 능숙한 걸 알아요. 난 요한 씨가 의도한 대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내 귀로 직접 듣고 판단하고 싶었다고요.”

“좋아요.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드리죠. 다만 좀 더 제대로 된 질문을 해 보세요.”

“요한 씨, 혹시 한국에 돌아온 뭐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닌가 해서요. 가령 생물학적 친아버지를 찾고 싶어서라든지요. 난 당신이 입양아라는 걸 알거든요.”

“그래요? 그런데 오늘 온 기자 중에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하지만 승국환 신부님의 존재는 저만 아는 것 같은데요?”

“…….”

“이번엔 질문이 좀 제대로 됐나 보네요?”

천천히 걸으면서 대답하던 요한은 흥미롭다는 듯 멈춰 섰다. 다시 앞을 가로막고 답변을 기다리는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웃는 것이었다.

“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요한, 이제 가야 돼. 끊어 주세요.”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린이 칼같이 중재했다. 어떤 답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매니저로서의 의사 표현이었다. 경호원들이 두 사람의 사이를 막아섰다.

“안 된다네요.”

혼잣말하듯 대답한 요한은 경호원의 어깨 너머로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박탈당한 현주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라 얼굴이 당황으로 조금 붉어진 듯했다.

정중하게 인사하고 가는 요한의 뒷모습을 한참 보던 그녀는 뒤늦게 손등으로 뺨을 훔쳤다.

* * *

한 남자가 조용한 교정을 걷고 있었다. 다만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땅만 보고 걸었다. 전임 교수인 정수경 교수의 부탁으로 우편물을 부치고 언덕을 오르는 중이었다. 그는 피아노과 조교 우수현이었다.

“선배, 어디 갔다 와요?”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우뚝 선 어떤 인영 때문에 잠시 멈춰 섰다. 옆면의 겨울 그림자가 비스듬하게 겹쳐졌다. 수문장처럼 눈앞을 가로막고 선 이는 피아노과 4학년인 재욱이었다.

“우체국. 학교엔 웬일이야?”

“저 근처에서 자취하잖아요. 오늘 학교에 승요한이 왔대서요.”

공기를 가르고 나온 이름을 듣자마자 수현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누가 왔다고?”

“승요한이요. 선배도 걔 엄청 좋아하지 않아요? 실황 레코드 듣는 거 몇 번 봤는데.”

수현은 무척 깜짝 놀랐다. 학교가 이렇게 떠들썩한데도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모양이었다. 하긴 원래 그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꺼렸다. 인터넷도 웬만해선 들여다보는 일이 없었고 심지어 흔한 모바일 메신저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놀라도 너무 크게 놀라는 통에 막상 말을 꺼낸 재욱이 더 당황했다.

“음대 앞에 사람들 바글바글해요. 학장, 총장, 이사장 전부 소집해서 같이 얘기하고 있대요. 단톡방에서 애들이 얘기하길래 얼굴이나 한번 볼까 하고 저도 왔죠.”

마주 서 있던 재욱은 수현의 오른편으로 위치를 옮겼다. 봉쇄당했던 앞길이 트이자, 수현은 다시 걸었다. 재욱은 잠자코 그의 곁에서 나란히 따랐다.

재욱의 눈에 수현은 생각할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보다 안색이 다소 어두워진 게 마음에 걸렸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듯한 이런 상황에서의 그는 무슨 질문을 해도 제대로 듣고 대답해 주지 않았다. 오래 그를 지켜봐 온 결과 그 정도 습관은 파악하고 터득할 정도가 됐다.

재욱이 설명했던 대로 음대 건물 쪽으로 다가갈수록 인파는 넘쳐났다. 개미 한 마리 안 지나다닐 것처럼 고요하던 교정은 온데간데없고 재래시장을 방불케 하는 소란이 가득했다. 요한이 건물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촬영하려는 모양인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손에 쥐고 강의동 입구를 향해 치켜들고 있었다.

“어, 선배. 승요한 지금 나오나 봐요.”

기자들이 빠르게 나와 요한이 건물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촬영했다.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이쪽을 봐 달라 손을 흔들었다. 멀찍이 뒤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현은 그대로 굳었다.

정말 그가 그곳에 있었다. 숨 쉬는 소리마저 서로에게 익숙했었던 바로 그, 요한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수현에게도 7년 만의 일이었다.

갑작스레 귀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낮고 차분한 어떤 남자의 목소리였다. 언제부턴가 그를 지겨울 정도로 괴롭혔던, 벗어날 수가 없었던 바로 그 음성이었다. 요한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 병은 더디지만 착실히 나아 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모두 허황된 꿈이었던 모양이다. 그 끔찍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걸로 결별이야.>

갑자기 쏟아지는 무력감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휘청한 수현이 본능적으로 옆의 기둥을 짚자 재욱이 걱정스레 물어 왔다.

“선배, 왜 그래요. 괜찮은 거예요?”

“……!”

그 순간, 요한과 눈이 마주쳤다.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재욱에게 요한의 시선이 아주 찰나간 향했다가 사라졌다. 린도 수현을 알아본 모양인지 잠시 요한에게 눈길을 던졌지만 그뿐이었다. 수현은 도둑질하다 걸리기라도 한 양 화들짝 놀라 돌아섰다.

타고 왔던 고급 세단을 타고, 요한은 순식간에 떠나가 버렸다. 구름 같던 인파는 피리 부는 소년을 쫓아가듯 차량의 뒤를 따라 조금씩 이동했다. 삽시간에 공터가 되어 버린 입구에서, 외롭게 남겨진 수현은 비틀거리다가 끝내 주저앉고 말았다.

“선배, 119에 전화할까요? 선배!”

“아냐. 나 진짜 괜찮으니까…… 미안한데 자리 좀 비켜 줄래.”

조각조각 난 이 순간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목소리가 띄엄띄엄 나왔다.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부축하던 손길이 조금씩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수현은 천천히 일어섰다.

지난 7년간 단 한 번의 소식도 전해 오지 않기에, 점점 자신을 잊어 가고 있노라 편히 생각했다. 그는 설마 그때의 약속을 기억하고 돌아온 걸까. 요한은 조건을 지켰고, 남은 것은 자신이 약속을 이행하는 일이었다. 다만 그때의 그는 함께 베를린에 있어 달라 말했다. 수현이 예의 규칙을 이행하길 원했다면 자신을 그곳으로 부르면 될 일이었다. 굳이 직접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를 떠올리려 해도 쉽게 찾기가 어려웠다. 혹시 또 자신에게서 뭔가를 빼앗으려고 돌아온 건 아닐까 덜컥 겁만 났다.

이번엔 또 뭘 빼앗으려고?

하지만 요한.

이제 난 더 가진 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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