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화려한 샹들리에가 활활 타오르는 나무토막처럼 빛이 났다. 고급의 크리스털과 황금으로 이루어진 물건임에도 마치 장작과 같이 느껴졌다. 녹스 라이네리오는 불안해 보이는 샹들리에를 바라보다 시선을 내렸다.
높게 솟은 여자들의 구두, 광으로 번들거리는 남자들의 신발. 머리 장식만큼 꼿꼿하게 세운 허리와 만면에 가득한 미소들은 그들이 가진 기대감의 크기를 나타내는 지표였다.
“황제 폐하께서 그리 급하게 가실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러게나, 그래도 장성한 황태자 전하께서 있으시니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저런, 이젠 황태자 전하가 아니라 황제 폐하이시지요.”
“아, 제가 큰 실례를!”
아하하, 탐욕스러운 웃음소리들이 들린다. 본래도 몸이 좋지는 않았으나 요 근래 건강이 회복세에 들어섰다던 황제가 돌연 서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티 홀에 모인 인간들은 그 누구 하나 슬퍼 보이지 않았다. 황후의 소생인 황태자가 이미 서른을 넘었으니 그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하지만 그들이 가진 감정은 안도가 아닌 기대였고 탐욕이었다.
“드디어 황태자 전하께서 황제 폐하가 되시는 날이 왔군요.”
“그 다이아몬드 광산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으셨다고 들었는데….”
“그럼요. 그 광산 지분을 이번 일의 공헌에 따라 나누어 주신다는 말씀을 하셨답니다.”
그들은 사자가 먹고 남긴 고기를 노리는 하이에나 떼들이었다. 이제 서른을 넘긴 황태자는 굳건한 뒷배와 완벽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인성과 성품이 지옥의 악마와도 같았다.
색을 탐하고 더러운 방식으로 재물을 끌어 모았다. 조언을 아끼지 않는 충신의 목은 자르고 세 치 혀로 달콤하게 알랑이는 간신배들에겐 포상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 모인 자들은 그런 자들이었다. 귀족으로서의 기품을 보이는 작자들이 아닌, 탐욕으로 일그러진 짐승들. 그리고 그 사이에 서서 덤덤히 그들을 경멸하는 눈초리로 보는 남자가 있었다.
“녹스.”
녹스 라이네리오. 라이네리오 공작가의 외동아들.
“누가 볼까 무서우니 그 더러운 미간 좀 펴.”
녹스는 옆에 선 자신의 아버지, 돌란 라이네리오를 내려다보았다. 돌란은 제게 조금의 존중도 보이지 않는 아들, 녹스에게 혀를 한 번 차곤 이내 달래듯 말을 이었다.
“자, 내 말이 다 맞지 않느냐. 이제 황태자께서는 흔들릴 일이 없어.”
녹스는 코웃음도 치지 않고 아버지를 무시했다. 옆에서 그가 씨근덕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이곳은 제 아버지와 같은 더러운 작자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저도 모르게 설핏 웃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여기 서 있는 자신은 어떠한가.
“곧 황태자 전하께서 오실 거다. 그분 앞에서 그따위 표정은 짓지 마.”
돌란은 녹스를 나무라는 걸 포기하고 가벼운 경고를 날렸다. 물론 녹스 역시 이제 곧 정점에 설 황태자의 앞에서 얼굴을 구기는 짓거리를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활짝 웃어 보일 자신도 없었다. 녹스는 그제야 아버지의 얼굴로 시선을 주고선 조용히 속삭였다.
“황제 폐하께서 정말 병사하셨겠습니까.”
그 속삭임을 듣자마자 돌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주변의 시선도 신경 쓰지 못한 채 그의 팔을 틀어쥐고는 강하게 끌어당겼다. 녹스는 못 이기는 척 그에게 끌려가 사람이 없는 테라스로 들어섰다. 돌란은 주변을 둘러본 후 신경질적으로 커튼을 쳤다.
“목이 잘릴 소리를 하는구나.”
“어차피 여기 있는 자들은 다 알 텐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입 밖에 낼 것과 내지 못할 것은 구분해야지! 네 나이가 몇이더냐!”
“스물여덟이지요.”
“정말 그걸 물은 게 아니잖느냐!”
녹스는 처음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빛이 적은 테라스에서 어둠이 드리워진 얼굴로 뱀처럼 웃는 그는 이 뱀 소굴에서 가장 크고 앞선 자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뱀의 무리에도 백로의 무리에도 섞이지 못한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황제가 죽고 아직 즉위식도 치러지지 않은 상황에서 파티부터 먼저 벌이다니. 속이 너무 빤하지 않습니까.”
“그 입 닥쳐라.”
“사라진 제2황자가 정말 죽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살아 있다 한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그가 황제가 되고 나서 제국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홀로 나가 둘러보시지요. 뱀의 머리는커녕 꼬리와 같은 자들이 널렸습니다. 뱀의 꼬리라도 되면 다행이지. 썩은 고기에 모여드는 벌레 같은 인간들만을 데리고 무엇을 이루려 하십니까. 벌레들의 정점?”
그는 웃음기 하나 없이 차갑게 비아냥거렸다. 녹스가 내는 목소리의 온도가 내려갈수록 돌란의 얼굴은 붉게 일그러졌다. 녹스는 그가 경멸스럽고 또 증오스러웠다. 어리석고 멍청한 아버지. 차라리 어머니가 병석에 눕지 않으셨다면 이 지경까지 떨어지진 않았을 텐데.
“이놈!”
녹스는 제 멱살을 잡으려 달려드는 아버지를 가볍게 밀쳤다. 검술과 훈련으로 단련된 몸은 저 각다귀 같은 아버지의 몸과 비교할 것이 못 되었다. 형편없이 고꾸라지는 걸 겨우 면한 돌란은 화를 숨기지 않으며 그를 향해 삿대질했다.
“네 놈은 언제나 그랬지. 혼자 깨끗한 척, 고고한 척!”
씨근덕거리는 그의 숨이 뜨겁다. 녹스는 그 숨이 제게 닿는 게 불쾌했다. 소리 없이 그의 말을 비웃으며 속으로 반박했다. 글쎄, 고고한 척하는 태도는 어렸을 적 그 아이를 버리면서 함께 버렸는데.
“내 선택이 옳았음을 너도 곧 알게 될 것이야! 나는 곧 황제 폐하가 되실 황태자 전하의 곁에 서서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한 영광을 함께할 것이다!”
“찬란한 영광? 쓰레기같이 어린아이를 마음껏 취할 수 있는 영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녹스가 더러운 것을 본 양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돌란은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다시 한번 그에게 달려들려 하였다.
“네 이놈!”
그때였다. 그의 고함과 함께 홀 안에서 비명이 터진 건. 돌란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홀 안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곧 황태자 전하께서 오실 파티 홀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서는 안 됐다. 어서 나가 무슨 일인지 파악한 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비명이 터졌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셀 수도 없게 겹치고 겹쳐 끊임없는 소음을 만들어 냈다.
“영광이라. 글쎄, 그럴 것 같지 않은데.”
돌란은 녹스가 무언가 말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 다급히 테라스에서 뛰쳐나갔다. 펄럭이며 걷어진 커튼 뒤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공작새처럼 한껏 치장한 귀족들이 검을 든 기사들에게 몰려 구석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기사들은 사냥을 시작한 사냥꾼처럼 혹은 먹이를 구석에 충분히 몰아넣은 맹수처럼 어슬렁거리며 걸었다.
기사들이 몸에 걸치고 있는 건 황궁 기사단의 황금 갑옷이 아닌 낡고 바랜 갑옷이었다. 피가 지워진 자국 위로 다시 피가 묻고 흐른 자국이 선명한 회색 갑옷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위협이 되었다.
“화, 황궁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이건 반역일세!”
늙은 까마귀 같은 남자가 겨우 용기를 쥐어짜 항의하자 회색 갑옷들 사이에서 비소가 터졌다. 비 오기 전의 먹구름 같은 자들이 갈라서고 그 사이에서 회백색 갑옷을 입은 자가 걸어 나왔다. 낡았지만 개중에선 가장 깨끗하고 희었다. 회백색 갑옷의 남자는 망설이지 않고 투구를 벗었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혼란의 비명이 터졌다.
“2황자….”
적갈색의 고수머리에 둥그런 눈매를 가진 제2황자는 상냥한 모양으로 눈매를 접었다.
“반역이라, 누굴 향한 반역을 말하는 걸까.”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상냥한 빛의 얼굴이 미소 지었다. 황제가 죽은 날 밤에 사라진 제2황자가 어째서 이 자리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은 혼란을 내비치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황태자 아래 모였지만 자신의 목숨이 가장 중요한 자들. 녹스는 아버지를 따라 테라스에서 나와 가장 뒤편에 섰다.
남들보다 한 뼘 정도 더 큰 키 덕분에 상황이 잘 보였다. 황태자에게 온 충성을 바치는 제 아버지, 돌란은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더니 호기롭게 제2황자 앞에 섰다.
“이게 무슨 짓인가! 곧 황태자 전하께서 오실 걸세. 대체 무엇을 믿고 이리 방만하게 구는지 모르겠군. 2황자!”
“아.”
제2황자, 펠티온 안드라스 다이달론츠는 부드러운 얼굴에 더욱 진한 미소를 올렸다. 둥그런 눈매 때문에 평소 다정해 보였던 그 얼굴엔 짙은 얼룩이 져 있었다.
그는 돌란에게 대답하는 대신 옆으로 몇 발자국 물러나 누군가를 소개하듯 팔을 올렸다.
“지금까지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는데, 그래.”
펠티온이 비켜서자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똑같은 회색 갑옷을 입었으나 남들보다 두 뼘은 큰 키에 짙은 색 망토는 무언가로 잔뜩 적셔져 붉은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지척으로 다가오자마자 훅, 피 냄새가 풍겼으니까. 아주 분노한 것처럼.
돌란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황태자, 황태자 전하께서 오셨나. 그를 높은 자리에 올려 주실 황제. 하지만 그와 다르게 사람들의 시선은 갑자기 나타난 피투성이의 회색 갑옷의 사내에게 닿아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손에 잡힌 것. 홀 안이 적막한 경악과 공포로 휘몰아쳤다.
“당신들의 황태자는 여기 있네.”
툭, 철퍽. 진흙 덩어리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돌란은 잠시 귀가 먹먹해짐을 느꼈다. 나이가 들어 커다란 소리에 귀가 잠시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마, 말도…….”
안 돼. 그저 자신이 본 것을 부정하기 위해 머리가 현실을 외면하기 시작한 걸지도 몰랐다. 붉게 물든 황금색 머리칼. 반쯤 뜨인 녹색 눈동자는 분명 그가 지금까지 목숨 걸고 모시던 그, 황태자 베오란츠의 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