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그 마을의 경사
오가는 이 드문 산골 마을에 간만의 경사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글공부를 가르치던 마을의 선생과 외지에서 온 아가씨 사이의 혼례였다.
마을에서 가장 좋은 촌장의 집 뜰에 사람이 넘쳐났다. 길목마다 붉은 홍등이 주렁주렁 달리고 신부의 가문이 가져온 술에 거나하게 취한 이들의 목소리가 벌써 흥겨웠다.
“선생이 잘사는 집 아가씨를 만나 참으로 다행이야.”
“이런 외진 마을에서 돈도 안 받고 애들 가르쳐 주는 사람이라 하늘이 복을 내린 게지.”
“그러게나 말이야.”
“유 선생이 길 잃은 귀한 아가씨를 구한 게 이렇게 좋은 인연으로 풀릴 줄 누가 알았겠나? 망할 산적 놈은 이 외진 마을까지 와서 일을 치르려다가 유 선생에게 얻어맞고 내뺐으니, 꼴 좋다.”
다들 선생이 기절한 여인을 업고 달려오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의원도 없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라 약초꾼의 집으로 데려갔더랬다.
깨어난 여인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 은혜를 꼭 갚겠다며 선생의 집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온갖 선물이며 몸에 좋은 음식을 지극정성으로 바치더니 급기야 먼저 청혼까지 해버렸다.
다들 선생이 팔자가 피는 거라며 좋아했다. 유운처럼 잘난 사내가 관직을 얻지 못하고 이런 초야에 묻히게 된 이유가 집안이 한미하기 때문이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선생에게 정이 든 몇몇은 눈물을 콕콕 찍어 말렸다.
“그나저나, 신랑은 언제 나온담?”
“으이구 이 양반아, 신부 준비가 끝나야 나오지.”
마을 아낙이 혀를 찼다.
“이거 기대되는구먼.”
산길이 궂어 물건을 실어 나르는 수레가 늦어지는 바람에 혼례가 어스름한 해 질 녘으로 미뤄진 것만 빼고는 참으로 경사스러운 날이다.
“아이고, 이 좋은 날 신랑이 아파서 어째?”
신부의 치장을 도와주던 촌장의 부인이 혀를 찼다. 혼례에 앞서 가장 분주해야 할 신랑이 꼼짝없이 앓아누워 뒷방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혼례를 미룰 순 없었다. 신부가 멀리에서 온 귀한 댁 아가씨인지라 시일에 맞춰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본식이 치러질 때 신부가 데려온 호위무사가 신랑을 부축하기로 결론이 났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뭘요. 상공과 천지신명 앞에 맺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요.”
혼례를 위해 붉은 옷을 차려입은 신부가 수줍게 속삭였다. 그녀의 낯은 한 치의 홍조도 머금고 있지 않았으나 새붉은 비단이 드리운 그림자가 표정을 화사하게 꾸며주었다.
“잘 살겠네. 잘 살겠어. 우리 선생은 복도 많지. 어쩜 이렇게 지고지순하고 어여쁜 소저를 만났나 몰라.”
신부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새색시의 부끄러움이겠거니 한 아낙은 잠시 주방의 진척 사항을 보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쉼 없이 초를 밝히러 돌아다니던 시비 중 한 명이 신부에게 다가왔다.
“금화 아가씨, 신랑을 슬슬 깨울까요?”
“……무진에게 약을 가져다주라고 전해라.”
“예.”
신부는 자세를 바로 한 채 정면을 노려보다시피 앉았다.
곱게 분칠한 낯과 달리 새신부의 손은 창백했다. 이를 흘깃 내려본 여인은 긴 혼례복의 소매 속으로 제 손을 감췄다.
이제 혼례가 곧이다. 단 한 점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된다.
한편 모두가 목을 빼고 기다리는 신랑은 뒷방에 누워 있었다.
유운은 가슴팍만 쥐어뜯은 채 헐떡거렸다. 흐트러진 옷깃 사이로 드러난 그의 몸은 책상물림만 한 서생이라 이라고 보기엔 어려울 정도로 단단하고 잘 다듬어져 있었다.
‘대체 왜 이런 꼴이…….’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등골이 으슬으슬한데 아랫배는 후끈한 화로라도 품은 양 뜨거웠다. 사위가 흐릿하여 분간이 잘 가지 않고 먼 데서 들리는 소리 가까이에서 들리는 소리 가릴 것 없이 윙윙거리기만 한다.
빛무리처럼 부옇게 느껴지는 촛불이 어른어른 춤을 췄다.
그는 도통 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혼례라니?’
신랑은 이 경사에 동의한 적이 없었다. 유운이 신부를 만난 것은 고작 달포 전의 일이다.
이 한적하고 지루해 미칠 것 같은 마을 뒷산을 거니는 것은 유운의 유일한 취미였다. 쫓기듯 여기에 오기 전까지 그가 즐기던 일 중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 산적을 처치하고 구한 여자가 바로 금화 소저였다.
충격에 기절한 여인을 유운이 돌보는 사이 마을 사람들이 제압한 산적을 관아로 데려가려 우르르 몰려갔으나 그들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진 후였다. 다들 산적이 줄행랑을 놓은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선생이 유약해 보여도 제법 사내답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운은 그때부터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이런 마을에서 서생 노릇이나 하고 있으나 유운은 과거 의심 많은 삶을 살았다. 그는 습관처럼 금화 소저의 정체를 캐내려 했다.
보은을 핑계로 찾아오는 여인을 떠보며 그 배후의 인물을 캐려던 유운의 시도는 좋았으나 결국 자충수가 되었다.
어느새 마을 사람들 사이에 그들은 정표를 나누어 가진 정인이 되어 있었다. 유운은 듣지도 못한 혼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금화 소저에게 몇 번이고 이 혼례를 그만둬 달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은혜를 갚아야 한다며 유운을 평생 지아비로 섬기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혼례가 준비되기 전에 마을을 떠나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운은 동구 밖으로 채 세 걸음을 옮기기 전에 붙잡혔다.
마치 감시라도 당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 직후, 유운은 방에 갇혔다. 반항하니 이상한 단약을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얼마나 독한 약인지는 몰라도 사지를 가누기조차 어려웠다.
이건 미혼약이다. 그것도 무척 고급의.
금화 소저는 매일같이 방을 드나들며 자신이 자리보전시킨 사내의 수발을 드는 동안 혼례 준비의 진척 상황을 고했다.
설레하는 기색조차 없이, 상사에게 보고를 올리듯 담백한 투였다. 그렇게 오늘이 되었다.
이른 새벽부터 옷을 갈아입히는 시비에게조차 저항할 수 없었다.
치가 떨리는 무력감에 유운은 이를 바득 갈았다. 이토록 옴짝달싹도 못 하는 꼴이라니!
고작 구명지은 한 번 입은 것만으로 신부가 이토록 자신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유운은 시퍼렇게 날이 선 눈으로 문을 노려봤다. 바닥을 짚고 기어가 보려고 했으나 사지가 벌벌 떨려서 쉽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또 모를까, 진기 한 줌 끌어 올릴 수 없는 이런 몸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서슬을 느끼기라도 한 양,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사내가 들어왔다.
근자 들어 유운의 감시 겸 호위를 도맡고 있는 금화 소저의 수하, 무진이었다.
유운의 몸을 일으킨 그는 기름종이를 펼치더니 안에서 검은 환약을 꺼냈다. 환약이 입술을 누르는 감각에 유운은 애써 반항했으나 숨구멍을 틀어막혔다.
“곧 식이 시작합니다.”
약을 뱉어내지 못하게 턱을 움켜쥐는 손길이 상당히 우악스러웠다. 남자의 눈은 인간이 아니라 사물을 대하듯 무기질적이었다.
바르작거리는 유운을 토끼 다루듯 뒷머리를 틀어쥐어 제압한 뒤 약을 삼키는 것까지 확인한 사내가 덧붙였다.
“환을 드셨으니 순순히 몸을 맡기셔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해독제도 없을 테니까요.”
해독제?
사레가 들린 유운이 몸을 들썩였지만 약을 제대로 먹은 것을 확인한 사내는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비틀거리면서도 두 다리로 선 유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안내해라.”
그의 목소리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대체 누구지?’
짚이는 이가 없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살아가고 싶었기에 마을 사람들에게 일개 서생으로 소개했을 뿐, 본디 유운은 적이 많은 사람이었다.
금화 소저가 그중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다.
단지, 사부님을 배신한 죄로 영원히 추방당한 자신에게서는 얻어갈 것도 없을 텐데 왜 혼례를 올리고자 하는지 알 수 없어 의아할 따름이다.
몸이 휘청거렸으나 이를 악물고 버티는 유운은 제법 번듯한 신랑으로 보였다. 안색만은 속일 도리 없이 창백하였으나 경사를 위해 주렁주렁 매단 홍등이 그의 낯에 고운 색을 더했다.
“축하하네. 축하허이!”
“내 잔도 받게나.”
유운은 설핏 웃으며 그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내공이 묶여 있으니 중독 여부를 확신할 순 없다. 맹독은 아닐 거다. 저들에겐 자신을 살려둬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저를 살려 놓는 번거로운 짓을 하는 거다.
그 이유를 알아내야 했다.
완전히 당했다는 생각에 속이 뒤집혔으나 순응하는 척 사내의 협박을 따르는 유일한 이유였다.
“상공.”
합환주를 마주 든 금화 소저가 달콤하게 웃었다.
“……소저.”
부인이라 부르지 않은 것은 이 혼례를 인정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채근하는 듯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을 무시한 채 합환주를 비웠다.
손에 든 잔이 기울었다. 얼마 남지 않은 술이 발등을 적셨다.
합환주라 받은 것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저 깊은 곳에서부터 열기가 훅 끼쳐 올랐다. 맛을 느낀 것은 그다음이었다.
‘술이…… 아니야?’
쌉쌀한 맛은 독주라기보다는 약에 가깝다.
신랑이 비틀거릴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았다는 듯, 금화의 호위무사가 유운의 몸을 지탱했다. 건너편의 신부는 태연하게 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기 오기 전 호위무사가 먹인 환과 반응하는 액체인가?’
약 기운에 둔해진 머리가 필사적으로 돌아갔다.
주변의 목소리가 윙윙거렸다. 어떤 이는 저렇게나 술이 약해서 큰일이라며 혀를 쯧쯧 차고 누군가는 신부가 고생하겠다며 웃음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다들 신이 난 기색이 역력하다. 무지렁이 아들을 가르쳐 주어 고맙다며 물고기를 잡아 오던 황 노야, 이번에 손주가 태어나면 꼭 유운을 선생 삼을 거라 말하던 아낙, 젊은이가 사연이 많아 이렇게 외딴 마을까지 흘러 들어왔을 거라며 배려해 주던 촌장, 언제나 약주에 취한 얼굴이지만 꿩이며 노루 고기 따위를 챙겨 주던 사냥꾼 진 씨…….
모두가 기뻐하고 있었다.
오로지 유운 그 자신만 빼고.
유운은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젠 까마득할 정도로 옛날부터 혼자였는데, 합환주에 탄 약 때문인지 아니면 상황에 압도당한 탓인지 통제력이 제 손아귀에서 흐물흐물 빠져나가고 말았다.
“신랑부터 신방으로 옮겨두겠습니다.”
마치 구름에 끌려가듯, 몸이 둥둥 뜬 채로 움직였다. 유운은 눈을 느릿하게 떴다 감으며 제 위로 난 붉은 길을 응시했다. 홍등의 빛이 부옇게 번진 이 거짓 신행길을.
제가 탄 것은 상여도 아닐진대 어쩐지 이 길이 죽을 자리로 가는 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온몸이 뜨거웠다. 여기가 지옥 불 사이로 난 샛길인 것처럼.
‘사부님…….’
미련 가득한 중얼거림을 차마 내뱉지도 못한 채, 무진의 어깨에 매달려 가던 유운의 손이 툭, 하고 떨어졌다.
***
너울너울 붉은 빛을 뿌리는 홍등 위로 부유하는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흥미롭다는 듯 유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렇게 웃을 사람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