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교묘하게 감춰진 손잡이는 맨홀 뚜껑과 비슷했다. 별다른 장치 없이 힘을 줘서 들어 올리기만 하면 될 듯한데 어지간히도 무거웠다. 보통의 어린애들이라면 절대 들지 못할 성싶다.
새틴은 간신히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잘 보이지 않지만 그리 큰 공간이 아님은 금방 알았다.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뻗으니 금세 바닥에 손이 닿았다.
뭔가를 숨겨 놓으려 만든 공간일까. 이를테면 보물이나 중요한 문서 같은…….
‘……이게 뭐지?’
바닥을 더듬던 새틴의 손가락에 무언가 닿았다. 단단한데 힘을 주니 표면이 바스러졌다. 흙도 돌멩이도 아니고 이게 무얼까.
기묘한 직감이 내리꽂혔다. 삽시간에 목덜미가 뻣뻣해지고 가슴이 쿵쿵 뛰어 댔다.
새틴은 아버지와 살던 집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시시때때로 사람을 데려왔다. 그때마다 ㅇㅇ는 자는 척을 했다. 아버지와 함께 지하로 내려간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이명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속이 뒤집혔다. 메스껍다.
“우웁…….”
더러워진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쓴물을 억지로 삼켰다.
새틴은 바닥의 문을 닫고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3
새틴이 이상하다. 원래도 이상한 놈이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했다.
케인은 영 멍청해 보이는 얼굴로 입을 뻐끔거리는 새틴을 보며 소리 없이 혀를 찼다. 어제 역사 시간엔 제법 집중해 수업을 듣더니 오늘은 딴판이었다.
미친 늙은이 역시 새틴이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졸았느냐?”
“죄송합니다…….”
새틴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이들 몇이 키득거렸다. 저 늙은이는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해도 크게 혼나지 않을 걸 아니 다들 별 걱정 없이 웃었다.
“가서 세수라도 하고 오려무나.”
예상대로 늙은이는 화내지 않고 새틴의 어깨만 툭툭 두드렸다. 새틴은 “네…….” 하더니 정말로 졸린 사람처럼 하품을 하며 교실을 나섰다.
‘잠을 안 잤으니 당연히 졸리겠지.’
지난밤 케인은 늦게까지 바깥의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언제 팀이 늙은이의 연구실에 갈지 모르니 선뜻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그때 새틴도 깨어 있었다. 케인은 밤눈이 밝아 어둑한 데서도 사물을 식별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창으로 들어온 희미한 달빛이 간혹 새틴의 눈에 반사돼 반짝였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여태 깨어 있는 거지. 그리 생각하다 어느 순간 케인은 잠이 들었다. 며칠이나 제대로 자지 않은 탓에 몰려오는 수마를 이겨 내지 못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눈을 떴는데 새틴은 그때까지도 깨어 있었다. 침대 아래에 주저앉아 있기에 왜 그러고 있냐고 물으려다 멈칫했다. 새틴의 뺨과 손에 검댕이 묻어 있었다.
「어딜 다녀왔는데 아침부터 그 꼴이야?」
「응?」
새틴은 케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기색이었다.
「눈 있으면 네 손 좀 봐.」
그 말을 듣고서야 제 손을 확인한 새틴의 눈이 커졌다. 벌어진 입술이 신음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흘렸다. 뱀보다는 온기가 있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새틴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케인은 세수를 하러 갔다.
케인이 돌아올 때까지도 새틴은 여전히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제 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고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새틴이 불쑥 물었다.
「선생님이 무슨 마법을 쓰는지, 알아?」
「대충은.」
완전히 새로운 마법의 공식을 발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그러나 이미 아는 공식이 있다면 유사한 공식을 유추하기는 그나마 쉽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마법사가 한 가지 계통의 마법을 연구하는 데 주력했다. 거기에 더해 서로 아는 공식을 공유하지 않다 보니 다들 외골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마법으로 산은 태울 수 있어도 목은 축이지 못하는 마법사가 허다했다. 물론 절대적인 수가 적으니 허다하다 해도 몇 되지 않지만.
「혹시 불 마법이야? 내 말은 작은 불씨가 아니라 더 큰.」
「뭐야,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
케인이 알기로 늙은이는 불 마법을 쓰는 마법사였다. 아이들은 그저 마법사라면 대단하다 생각하는 눈치지만 케인은 대수롭잖게 여겼다.
늙은이는 같은 계통의 마법사 중엔 변변찮은 축에 들 거다. 그러니 어디 가서 마법사랍시고 떵떵대는 대신 맘 좋은 자선가 흉내나 내고 있겠지.
속으로 빈정거리는데 새틴이 고개를 들었다. 검댕 묻은 손으로 눈을 비비기라도 했는지 눈가가 시커멨다.
그 꼴은 우습기보다는 좀 묘했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인상이 변했다. 엄숙하고 우울했다.
「사람을 태울 수도 있을까?」
「무슨 소리야?」
「화장장 온도는 900도에서 1,000도 정도인데, 그렇게 뜨거워도 사람은 다 타지 않아. 뼈가 남아서, 그걸 부숴야…….」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사람 정도는 태우겠지. 괜히 군대에서 마법사를 우대하는 게 아니야.」
우두커니 앉아 있던 새틴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매로 얼굴을 꼼꼼히 닦아 내더니 셔츠를 갈아입었다. 그리고 세수를 하겠다며 나갔다.
어차피 세수할 거면 뭐 하러 옷을 더럽혔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하며 새틴은 여느 때와 그리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 아이들이 말을 붙이면 친절한 체 웃으며 대답하고(여전히 눈은 차갑지만), 털북숭이 루퍼스와도 몇 마디인가 나눴다.
오전 수업을 하는 동안 케인은 서고에 있었기에 새틴이 어디에 갔는지 알지 못한다.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 시간이 되어서야 케인은 다시 새틴을 보았다. 아무렇지 않게 교실에 들어온 새틴은 수업에 도통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다 늙은이가 지적을 하니 그대로 굳어 버렸다.
‘뭔가 있는 모양인데.’
세수를 하고 돌아온 새틴은 이제 잠이 깼는지 또렷한 눈으로 수업을 경청했다. 다른 날의 새틴과 같았다. 그러나 케인은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분명 뭔가 있어.’
∞ ∞ ∞
카렌은 헤더와 한방을 쓰는 단발머리 여자애로 다소 숫기가 없었다. 꾸미는 말을 잘 하지 못해 말실수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누구에게 들었느냐 하면 이제는 없는 팀에게.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어…….”
카렌이 생각에 잠긴 동안 새틴은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까 루퍼스에게 받은 과자를 먹는 시늉을 했다. 별로 달지도 않고 딱딱하기만 한데 아이들이 모두 좋아하는 과자였다.
‘옛날에 설탕은 아주 비쌌다지. 버터는 뭐 요즘도 비싸고.’
행여 설탕과 버터가 비싸지 않더라도 학교의 위치상 과자 구하기가 쉬울 리 없으니 이 정도면 최선일 테다.
새틴이 속으로 과자를 품평하는 동안 카렌은 회상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매기라는 애가 있었어. 나보다 한 살 많았는데, 어느 날 아침에 없어졌어.”
매기. 얼핏 들은 적 있는 이름이다. 카렌이 고개를 푸르르 흔들더니 방금 한 말을 정정했다.
“아니, 아침이 아니라 밤에 없어졌을 거야. 우리는 아침에 알았지만.”
팀과 같다. 그 애도 선생님의 연구실에 갔었을까.
“선생님이 매기를 찾으려고 수소문을 했는데 못 찾았어.”
“어디로 갔을지 짚이는 데는 없어?”
“몰라. 루퍼스는 도망친 거라고 했어. 원래 고아원 같은 데서도 그렇게 도망치는 애들이 있대. 그러니까, 아무리 잘해 줘도 말이야.”
“잘해 주는데 왜 도망을 쳐?”
“난 잘 모르지만…….”
카렌은 눈을 굴리며 과자 모서리를 빨았다. 하도 딱딱해 과자인지 사탕인지 모를 지경이니 저편이 현명해 보이긴 했다.
침에 녹아 부드러워진 부분을 우물거리다 카렌이 말을 이었다.
“의심이 많아서 그런 거래.”
“의심?”
“길바닥에서 자란 애들은 원래 잘해 줘도 믿질 않아서, 괜히 겁먹고 도망치는 거라고…… 루퍼스가 그랬어.”
“나쁜 일을 당할까 봐 지레 겁을 먹는단 말이지?”
“으응.”
고개를 끄덕이며 카렌이 새틴의 눈치를 보았다. 새틴은 들고 있던 과자를 카렌에게 내밀었다.
“너 먹어.”
“내가 먹어도 돼?”
“난 과자 별로 안 좋아해.”
“기억을 잃어서 그런가?”
의아해하면서도 카렌은 재빨리 과자를 가져갔다. 주머니에 넣는 모습을 보며 새틴은 혹시 부서지지 않을까 잠깐 걱정했지만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벽돌처럼 단단하니까.
새틴은 카렌의 풀어진 표정을 보며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너도 나쁜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 있어?”
“나는, 잘 모르겠어.”
“선생님을 믿어?”
“선생님은 좋은 분이잖아. 글자도 가르쳐 주고, 옷도 선생님이 준 거고, 과자도…….”
어물어물 선생님의 좋은 점을 헤아리던 카렌이 슬그머니 새틴을 보았다. 새틴이 무슨 의도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제 와 걱정이 되었을까. 아니면 의심스러웠거나.
“새틴은 선생님을 안 믿어?”
“나는 기억이 없잖아. 그냥 처음 있는 일이라 좀 놀랐어.”
“하긴…….”
묘한 반응이다. 새틴이 쳐다보자 카렌이 멋쩍게 웃었다.
“매기가 사라졌을 땐 새틴도 화를 냈거든. 어떻게 선생님을 의심할 수 있냐고…….”
“내가 그랬어?”
“응, 선생님한테 매기를 찾을 필요도 없다고 했어. 도망친 아이를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찾으시냐고.”
“나는 원래 선생님을 아주 믿었나 보구나.”
“으응, 새틴은 선생님의 진짜 제자잖아.”
진짜 제자. 로저스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팀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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