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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50화 (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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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이 한숨을 쉰 나는 손을 저었다. 너희들 알아서 하라는 표시였다.

“……그래.”

“죄송합니다.”

“검을 주도록 해.”

내 말에 카사, 월, 폴 모두 검을 제출했다. 황후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를 발견했다. 말에 물러난다고 꼭 지는 건 아니지. 난 그들이 검을 가져가려고 할 때 말했다.

“그런데 내 안전은 어떡해? 저들은 검을 차고 있잖아.”

“네?”

문지기는 내 말이 아리송한 건지 목소리를 높였다. 난 또박또박 말했다.

“검은 모두 수거한다며?”

“……그렇습니다.”

“그럼 저 기사들은?”

난 정확히 황후의 호위 기사를 가리켰다. 문지기는 설마 꼬투리를 잡을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은 황후마마의 기사입니다. 당연히 검을 착용하고 있어야 합니다. 혹시 모를 위험이 있다면 어찌하실 겁니까?”

“그럼 내 안전은?”

난 태연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저들도 내 호위 기사인데.”

“그, 그러니까 혹시 모를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저 기사들이 위험을 가하면 어떡해?”

그러자 뒤에서 기사들이 자신들은 그런 자들이 아니라며 모욕을 당했다는 듯이 화를 내었다. 문지기 또한 그들과 똑같은 말을 했다. 난 시시한 말장난을 계속할 생각도 없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맞아.”

“네?”

내가 긍정의 답을 표하자 문지기는 얼빵한 표정으로 날 보았다. 난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한 이치를 왜 모른다는 듯이 머리카락 끝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내 애들도 그럴 리가 없다고 했는데 너희들은 안 믿었잖아. 그런데 난 너희들을 믿어야 해? 너희들이 믿음을 주지 않았는데 내가 믿어 주기를 바라는 건 사치 아닌가?”

나는 비소를 흘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보고 있던 뒤에서 웃고만 있었던 황후가 나섰다.

“사자님, 제 문지기가 실수한 듯합니다. 워낙 맡은 바를 열심히 하는 자라 의욕이 과했나 봅니다. 얼른 사죄드려라!”

“죄, 죄송합니다.”

그녀의 손짓에 검들 또한 다시 돌아왔다. 허, 참. 코웃음만 쳤다. 되돌려주기 식으로 받는 건 질색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끝을 봐야 직성에 풀렸다.

“아니야. 괜찮아. 위험하면 어떡해? 그래서 아무 말 없었던 거잖아.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서로 위험하지 않게 가자.”

지켜만 보고 있던 그녀의 행동을 비꼬면서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먼저 시작한 것은 네리아였고, 이제 와서 반박하는 꼴도 웃겼다. 네리아의 입매 끝이 삐끗했다. 그에 기사들이 자신의 검을 하나둘 제출하기 시작했다. 난 보란 듯이 키르를 카사에게 내밀며 말했다.

“키르도 위험하지? 착한 아이인데…… 뱀을 무서워하면 어쩔 수 없지. 카사, 키르를 데려다줘. 어딘지는 알지?”

“네, 알겠습니다.”

카사에게 전달해 주면서 턱짓으로 가라고 말했다. 유일하게 카사만 검을 받고 길을 떠났다. 네리아의 미소가 살짝 희미해졌다.

“……가시지요.”

얼추 상황이 정리되자 황후가 발걸음을 옮겼다.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지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러게 왜 먼저 시비를 걸어? 난 충분히 예의를 지키면서 말했다고. 누가 뭐라 할 거야? 사뿐사뿐 조용하게 걸었던 그녀의 발걸음이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궁 안으로 들어오자 시녀는 우리를 응접실로 안내를 했다. 차가 나오기 전까지는 고요한 정적이 지속되었다. 곧 앞에 고운 빛깔을 자랑하는 차가 놓였다.

“방금의 사과도 겸해서 좋은 차를 준비했습니다.”

아까는 시비를 걸더니 이제는 비위를 맞추어 주고 있는 건가? 차라고는 안하무인인 내가 좋은 차라고 말해도 얼마나 알겠는가. 그녀는 태연스럽게 손으로 차를 마시라며 권했지만 내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짓을 했을지 알고? 황후와 나는 서로 웃고만 있었다.

내가 천연덕스럽게 차는 마시지 않고 웃고만 있자 먼저 시선을 내리깔고 차를 마신 것은 네리아였다. 난 그녀를 유심히 주시하고 차를 들어 향기를 맡아 보았다. 딱히…… 문제는 없어 보이지? 그리고 혀만 죽일 정도로 살짝 한 모금을 마셨다.

우선 독은 없는데…….

평을 하자면…… 우선 나랑 취향이 안 맞는 건 확실하다. 쓴 건 딱 질색인데. 이 차는 쓴 것을 넘어 약간 떫기까지 했다. 이게 좋은 차라고? 눈을 감고 음미하려고 했던 게 우스워졌다.

나라면 절대 쳐다도 보지 않는다. 내 미간이 찡그려졌다.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하다는 생각에 입에 바른말을 했다.

“……괜찮네.”

“황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차입니다.”

로열티 같은 건가. 뭐, 난 다시는 안 마신다. 나는 슬쩍 차를 밀어냈다. 대신 다과에 손을 뻗어 먹고 있었다. 다과도 뭐…… 황후는 단 맛을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한 입만 베어 먹은 다과도 내려놓았다. 앞에 앉은 사람이 차만 주야장천 마시니 나도 눈살을 찌푸린 채 차를 마셨다. 쓴맛에 중간에 혀를 내밀었다.

“사자님.”

네리아가 드디어 이야기를 꺼냈다.

“황궁에서의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제가 몸이 약한 바람에 미처 만나 뵙지 못했군요. 몸이 약해 궁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어려운 몸이라…… 이제야 사자님과 티타임을 갖게 되다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가벼운 안부 인사였다. 난 콧방귀를 뀌었다.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이미 이번 암살자 소동과 관련이 있다는 사람이 황후 아니면 교황이라는 건은 제르펠에게 언질을 들은 후였다. 그리고 방금까지 기 싸움도 있었다.

그녀의 태도가 곱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웃는 얼굴에는 웃는 얼굴로 맞받아치는 게 싸움의 기본이지.

“괜찮아. 주인이 잘 대해 주기도 하고…….”

그녀의 눈이 살짝 치켜세웠다. 제르펠에 대한 칭찬은 한마디도 듣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것참…… 다행입니다.”

“…….”

“혹시 에이든의 병에 대해 아시나요?”

그 뒤의 말이 예상이 갔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꼬리가 슬프게 밑으로 쳐졌다.

“아시는군요……. 에이든은 제 하나뿐인 아이입니다. 항상 신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부디 아이가 건강하게 해 달라고 단 하루도 기도를 빼먹은 적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아이를 기도한 끝에 겨우겨우 생긴 아이였습니다.”

네리아는 눈앞에 신이 있는 것처럼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말이 끝나자 두 손을 모은 손을 풀고 눈앞의 차를 응시했다. 그녀는 찻잔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쭉 따라 그렸다. 그녀는 추억을 회상하듯 눈을 내리깔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당시 나이도 있었고, 무엇보다 제 체질만큼은 닮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태어나 보니 저보다 더 심하더군요. 에이든은 작은 감기조차 목숨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약한 아이였습니다.”

네리아는 속상하다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좋은 약, 비싼 약을 먹어도 낫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체 무엇이 부족하다는 건지…….”

네리아는 눈앞에 있는 차를 들고는 한 모금 마셨다. 난 그녀의 긴 말을 입을 꾹 다물고 듣고 있었다. 적이지만 네리아가 얼마나 절실히 아이를 원했는지 다가왔다. 하지만 진정으로 에이든을 걱정하는지는 의문이었다.

아이와 에이든은 별개인 것 같았다. 에이든에 대해 말하는 네리아의 얼굴은 아이가 사랑스럽다는 표정이 아닌 불만스러운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에이든의 몸에 대해 말할 때.

에이든의 몸이 약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 내가 너무 과잉 반응인가 싶어서 생각을 지웠다. 하지만 약간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자님. 제발 제 아이를 좀 구해 주십시오. 몸이 약해 누릴 수 있는 것을 그저 빼앗기는 에이든이 너무 가여워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사자님의 신성력은 누구보다 뛰어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에이든과 같이 있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마님…….”

과도한 의미 부여일 수도 있지만 누릴 권리에 포함되는 것이 ‘황제의 자리’가 존재하지 않을까? 눈물까지 글썽이는 네리아에게 옆에 있던 시녀가 손수건을 건넸다. 지금의 모습만 본다면 아이를 위해 온몸을 바칠 수 있는 자상한 어머니의 상이었다.

동정표를 사고 싶은 거는 알겠다. 나도 에이든을 좋아한다. 그런데 병의 치유가 아닌. 에이든과 같이 있어 달라는 말은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보통 에이든을 낫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나?

완벽한 어머니의 얼굴이었지만 내 눈에는 일그러져 보였다. 이상하게 그녀의 말이 삐딱하게 들린다. 난 꿍꿍이속을 들춰내기 위해 그녀에게 속을 떠보는 말을 했다.

“나도 에이든을 싫어하지는 않아. 몸이 약한 건 에이든 본인이 말해서 알고 있었고, 내 신성력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시험을 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오늘 에이든의 볼이 누군가에게 맞은 듯해서 치유도 해 주었고, 건강해진다면 나야 좋지.”

그녀의 미소가 살짝 흐려지더니 시녀가 준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기 시작했다. 속으로 혀를 찼다. 에이든이 안타까워 속이 상했다. 그녀는 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처를 낸 장본인이 할 말이 아니었다. 우스워 보였다.

“전, 못난 어미입니다. 아이에게 그리해서는 안 되었었는데…….”

“나도 에이든이 아픈 걸 바라지는 않아. 도와줄게.”

“정, 정말입니까? 송구한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

“난 에이든의 꿈을 응원하거든.”

“……꿈?”

그녀의 손이 흠칫 멈추었다. 눈물을 흘리며 내리깔고 있던 눈이 꿈틀거리며 위로 치켜세워졌다. 네리아는 정말로 처음 들어 본 말인 것 같았다. 평소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지만 에이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았다. 방금 해맑은 얼굴로 밖의 세상에 대해 꿈꾸듯이 말했던 에이든이 떠올랐다.

“……한번 물어봐.”

“하…….”

그 한숨은 울다 지쳐서 낸 한숨도 아니었고 안타까운 한숨도 아니었다. 마치 가소롭다는 식의 한숨이었다. 내 말에서 사나워진 네이라의 심기를 읽었다. 손수건에 가려져 있어 입 모양은 보이지 않았지만 빠드득하는 소리가 들렸다.

난 탁자를 두드렸다. 제르펠의 고민하던 습관이 나에게 옮겨온 결과였다. 꿈은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녀는 에이든의 꿈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빛이 살벌해졌다. 그 시선의 끝은 내가 아니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그녀는 에이든의 꿈이 황제가 되는 것이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설마……. 뺨을 맞은 이유가 황제가 되기 싫다고 말했다고 한다면……. 저번에도, 이번에도 에이든은 황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오늘 나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지 않았는가? 제르펠을 황제로 정한 거냐고…….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나는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내 행동에 마뜩잖은 표정을 짓더니 네리아가 한마디를 톡 쏘아붙이려는 찰나였다. 한 시녀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종종걸음으로 네리아 옆으로 갔다. 그녀는 작게 말했지만 청각을 곤두세웠던 나에게 귓속말이 들렸다.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이제 왔나……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에너지를 쓸데없는 기 싸움에 소비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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