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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43)화 (43/74)

043.

“……침대가 두 개인 방은 없습니까?”

“없어.”

“네, 그렇군요.”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빨리 잠자리에 드는 수밖에.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덮었더니 백은후가 가운을 입은 채로 침대 위로 올라왔다. 잠옷이라도 입어줬으면 했지만 괜히 말을 잘못 꺼냈다가 분위기가 더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등을 돌리며 눈을 감았다.

얼른 잠들어라. 잠들어라. 주문을 외우듯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었지만 조명이 밝아서 잠이 오지 않았다.

“……불 좀 끄면 안 됩니까? 혹시 귀찮아서 그런 거라면 제가 끄고 올까요?”

“불 끄면 못 자.”

이건 또 무슨 소리래? 백은후 캐릭터 설정에 그런 내용이 있었나?

“항상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밤을 새우다 보니 밝은 게 익숙해서 말이야.”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백은후 성격에 목표한 게 있으면 잠을 줄여서라도 반드시 해냈을 거다. 백은후의 푸른 눈에 왜 그렇게 자주 핏발이 서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일 중독도 병이지. 괜히 짠하네.

“왜? 밝아서 잠이 안 와?”

“아닙니다. 괜찮아요.”

백은후가 숨을 쉴 때마다 목덜미에 뜨거운 기운이 닿았다. 몸을 돌리고 누우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뒤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더 불안했다. 다시 몸을 반대로 돌려 백은후를 마주 보았다.

백은후가 아무렇지도 않게 팔을 뻗어왔다. 몸을 돌린 게 그러라는 뜻은 아닌데……. 바짝 몸을 움츠리자 그의 팔이 목 뒤를 파고드는 것과 동시에 나머지 손이 어깨를 끌어안았다. 얼굴에 맨가슴이 닿고 그 위로 이불을 덮었는지 사방이 어두워졌다.

“이러면 되겠지.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나른한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짙게 배 있었다. 뺨에 맞닿은 가슴에선 심장 소리가 들렸다. 쿵쿵, 백은후를 닮아 크고 강한 소리였다.

이거 이상한데?

성주안은 백은후의 품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조금 불편해도 그냥 참고 자. 이상한 생각 같은 거 하지 말고.”

놔달라는 말을 하려던 주안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어둡고 조용하고 냄새도 좋고 따뜻하고 심장 소리는 규칙적이고……. 나름 나쁘지 않네.

백은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사람일지도. 어쩌면 그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캐릭터는 개발자를 닮을 수밖에 없으니까.

성주안이 애정을 기울여 만든 만큼 백은후도 나쁜 인간은 아니다. 어쨌든 주안은 빌런에 가장 가까운 캐릭이 나름 따뜻한 인간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성주안은 잠을 청했다.

* * *

우울해. 우울해. 우울해.

공세윤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성주안은 분명 희생의 창조자였다. 성좌에서 어떻게 버퍼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했다. 만약 이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우울한 상태인 것도 들키지 말고 더 잘해줬을 거다.

한눈에 알아보지 못해서 그동안 헛짓거리만 했다고 생각하니 성주안이 벌써 저를 미워할까 봐 겁이 났다. 마음이 불안하니까 그동안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당했던 일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내가 저런 걸 낳았다니 믿을 수 없어요.’

‘아이는 또 가지면 돼. 그러니 없다고 생각해.’

‘넌 괴물이잖아. 엄마가 너랑 놀면 다칠 수도 있다고 조심하랬어.’

‘생긴 건 내 타입인데 아무래도 각성자는 좀 부담스러워서……. 나는 그냥 평범한 남자가 좋아.’

저런 거, 없는 사람, 괴물, 위험한 각성자…….

이름보다 다른 호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공세윤은 제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던 성주안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다. 빛과 바람과 그림자를 친구 삼으라던 말도.

“보고 싶다. 주안이 형.”

주르륵,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공세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성주안이 부탁한 일을 해내서 잘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일대일로 마음을 얻기도 힘든데 지금 다른 파티원들도 호시탐탐 성주안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그 사이에서 잘 보이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성좌에게서 던전 정보를 빼내는 것.

만약 성좌들이 저번처럼 일을 꾸민다면 그것도 빼내는 게 좋겠지. 제게 호의적인 전차를 타는 전사는 바보 같은 구석이 있으니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공세윤은 차분히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대에 누워 전차를 타는 전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각성자 공세윤이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에게 접속을 요청합니다.>

언제나 그랬듯 접속을 요청하자마자 바로 창이 떴다.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반갑다고 인사합니다.>

“전사 씨, 나 뭐 부탁할 게 있어요.”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뭐냐고 묻습니다.>

“들어준다고 약속하면 말할게요.”

공세윤은 입매를 비틀었다. 이 성좌는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다. 살살 무시하며 약을 올리면 안 해도 될 말도 술술 불 게 뻔했다.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씩씩 콧김을 내뿜습니다.>

“화나셨어요? 성좌님은 유일하게 저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봐요. 하긴 저 같은 걸 누가 좋아하겠어요.”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당황합니다.>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좋아한다며 얼른 말해보라고 합니다.>

참 쉽다. 어쩜 이리도 예상한 그대로일까? 벌써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성주안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성공해야 했으니까. 처음부터 목적을 드러내면 안 되겠지.

“아아, 아무래도 말하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 전차 씨가 생각보다 약할 수도 있고…….”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발을 쿵쿵 구르며 흥분합니다.>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무시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화를 냅니다.>

“전차 씨, 흥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저는 심각하단 말이에요. 전차 씨가 자꾸 그러니까 제가 계약을 안 해주는 겁니다.”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행동을 멈춥니다.>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숨을 깊이 들이마십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게 하려고 잠시 시간을 주었다. 한 5분쯤 지났을까? 전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화내지 않을 테니 말해보라고 합니다.>

공세윤은 침을 꼴깍 삼키고 침착하게 말했다.

“너무 불안하고 무서워요. 전처럼 또 게릴라 던전이 터져서 죽을까 봐요. 죽는 건 싫거든요.”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절대 죽게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사 씨가 어떻게 알아요? 다른 성좌들이 일을 꾸밀 수도 있는 거잖아요.”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별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진짜요? 그럼 우리의 원래 계획대로 스테이지 1번부터 차근차근 공략할 수 있겠네요? 만약에 그게 아니면 전차 씨가 성좌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는 거고요.”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네게 별일이 없다는 말이지 다른 각성자의 안전은 보장 못 한다고 말합니다.>

공세윤은 여기서 바로 눈치를 챘다. 저번 게릴라 던전이 갑자기 나타났던 것처럼 이번에도 성좌들이 일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 전사 씨는 힘이 약해서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모르는 거군요. 뭐, 됐어요. 일 터지면 그냥 죽으면 되겠죠. 뭘 어쩌겠어요.”

전사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화가 난다는 메시지를 여러 번 보내고 머리를 쥐어뜯고 흥분한 듯 숨을 몰아쉬었다. 전차를 타는 전사가 성좌 중 가장 화가 많고 흥분을 잘한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하지만 그런 만큼 가장 단순하다고 했다.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오, 생각보다 강한가 봐요. 저는 찌질한 거 싫어해서요. 전사 씨, 조금 달라 보인다.”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빙그레 웃으며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합니다.>

“던전이 언제 터지는지 궁금하죠. 저 지금 우울해서 제일 약하단 말이에요.”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계약하면…….>

“됐어요! 이렇게 믿음을 안 주는 성좌와는 계약해서 뭘 하겠어요. 접속 끌게요.”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내일이라고 말합니다.>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시스템상 이상이 없으면 내일 오전 9시에 한백 길드 앞에 나타날 거라고 합니다.>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자기 찌질하지 않다고 합니다.>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전사의 끝도 없는 자기과시가 이어졌다. 자기는 성좌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고 회의를 이끌고 있으며 힘도 특출나게 강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중요한 정보를 다 얻었으니 그 외의 말은 듣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날짜까지 알았으니 이제 난이도만 알면 되는 셈이었다.

공세윤은 속으로는 좋아 죽을 것 같았지만 티 내지 않고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던전 난이도까지 아는 건 힘들겠죠?”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발끈합니다.>

“난이도까지 안다고요? 와, 전사 씨 생각보다 엄청나네요. 그래서 몇 스테이지예요?”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작은 목소리로 5 스테이지라고 합니다.>

됐다! 공세윤은 하마터면 만세를 부를 뻔했다. 필요한 정보를 다 얻어냈으니 이제 볼일은 끝났다. 성주안이 얼마나 좋아할지 생각하니 벌써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급하게 접속을 종료하려고 하는 순간 전사가 말했다.

<성좌, 전차를 타는 전사가 절대 비밀이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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