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인터넷 방송> (5/7)

<인터넷 방송>

목매달려 흔들거리는 아버지의 시신 옆에는 방구석에 굴러다니던 갱지 하나만 반듯이 놓여 있었다.

「유진아 미안하다」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은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빚까지 내게 떠넘기고 세상을 떴다. 결국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도 도움이 되긴커녕 날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건 빚밖에 없었으니 당연히도 나는 상속 포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것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지, 빚쟁이들은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법은 멀리 있었지만 그들은 가까웠다. 폭력으로 겁박하고 폭언으로 협박했다.

남아 있는 가족도 친척도 없는 나는 혼자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지방으로 달아났지만 새 삶을 채 시작해 보기도 전에 잡혀 어디론가 끌려갔다. 이제 꼼짝없이 장기가 털려 죽게 되겠구나 싶었다. 참 죽을 때까지도 비참한 운명이다.

길게 뻗은 어둑한 복도 사이사이엔 방이 위치해 있었다. 저기서 장기를 적출당하게 되는 걸까.

“후, 이 쥐새끼 같은 걸 겨우 잡았네.”

“사, 살려 주세요….”

두려움에 질려 달달 떠는 나를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그래, 살아야지. 살아서 떼먹은 돈 다 갚으셔야죠, 고객님? 어? 우리가 일자리도 주선해 주고 얼마나 좋아?”

너무 착하다니까, 남자가 너스레를 떨고 복도를 걸어 도착한 방 안에 나를 밀어 넣었다.

“돈 열심히 법시다? 어?”

얼떨결에 밀어 넣어진 방을 둘러보았다. 방 안은 의외로 깔끔했다. 그냥 평범한 방처럼 생겼다. 방 가운데엔 컴퓨터가 있고 침대와 서랍, 그리고… 저건 뭐지? 쓰임새를 알 수 없는 기구 같은 게 한쪽에 위치해 있었다.

“아, 얘구나.”

등 뒤에서 철컥 소리가 나더니 한 남자가 나타났다. 특이하게도 입만 드러나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움찔거리며 주춤 뒤로 물러났다.

“음, 얼굴은 꽤 반반하네. 짭짤하겠는데.”

“누… 누구세요?”

“누구긴. 같이 돈 벌, 음, 파트너?”

“같이 돈을 벌어요?”

“응. 빚 갚아야 되잖아.”

“어… 어떻게 돈을?”

“저기 저 컴퓨터 보이지?”

커다란 모니터가 딸린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네….”

“너랑 내가 인터넷 방송을 할 거야. 너는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무슨… 방송이라뇨. 전 그런 건….”

“넌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고.”

남자가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뒷머리를 몇 번 털더니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냥 느끼는 대로 느끼고 좀 꼴리는 신음에만 신경 쓰고 그러면 돼.”

이게 무슨 소리야. 빚쟁이들에게 끌려온 곳에서 합법적이고 건전한 일을 할 거라는 생각은 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저런…. 저 남자의 말은 분명 성적인 의미를 함유하고 있었다. 이를 테면 성인 방송이라거나 포르노 등의. 여기서 싸구려 포르노라도 찍을 작정인가. 날 배우로 써서?

불길한 예감에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반항도 할 수 없는 이 좁은 방 안에서 그딴 식으로 굴려질 것을 상상하자 대번에 속이 울렁거렸다.

“저… 저는 전… 상속을 포기했어요. 빚은 아버지께서 진….”

“아, 그래그래. 재미없는 얘긴 좀 닥치고 옷이나 벗어. 아 그런데 너 이 새끼 존나 나쁜 새끼네. 어? 아버지 빚이니까 넌 상관없다고? 와, 이런 천하의 불효자식을 봤나?”

입술을 짓씹었다. 집구석에서 술이나 처마시고 매일 도박판이나 전전하다 어마어마한 빚더미만 남긴 채 편하게 뒤져 버린 인간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증오스러웠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 듬직한 아버지. 그런 것들은 내게 미디어의 허상일 뿐이었다.

효라고? 그 사람이 날 제대로 키우기나 했던가. 어렸을 때는 그나마 어머니가 계셨다. 그러나 열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날 방치했다. 집구석에 쓰레기처럼 굴러다니는 빵 조각이나 먹으면서 자랐다. 키와 몸무게는 당연히 또래보다 왜소했고 늘 기가 죽어 다녔다. 젊음도 청춘도 철없던 시절의 어린 날들도 내겐 살고자 연명했던 시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진 않았다.

그런데 내 앞에서 저딴 말을 지껄여 댄다. 불효자식이라고. 그래, 난 천하의 둘도 없는 불효자식이라서 아버지 무덤을 파헤쳐 멱살 잡고 묻고 싶다. 책임도 못 질 거면 낳지나 말지 씨발, 왜 괜히 씨나 뿌려 대서 이딴 좆같은 인생을 나에게 준 거냐고.

눈빛엔 자연스레 경멸이 깃들었다. 남자는 그 기색을 바로 읽곤 뺨을 후려쳐 왔다. 익숙한 취급이었고 고통은 낯설지 않았지만 아픔은 늘 싫었다.

“옷 벗으라고.”

학습된 순응은 무기력하게 남자의 말에 따르게 했다. 무거운 철갑이라도 두른 듯 느릿느릿 옷 한 겹 한 겹을 벗어 갔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 남자에 의해 팔이 잡혀 침대로 끌려갔다. 손목이 위로 치켜 올라가 동아줄 같은 굵은 끈에 묶이고 침대 헤드와 연결되어 내리지 못하게 고정되었다. 남자는 담배 연기를 후 뱉으며 내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쑥 훑어 내렸다. 번들거리는 눈엔 진득한 욕망과 상품에 값을 매기는 듯한 계산이 빠르게 오갔다.

잠시 시선을 던지다 날 뒤로하고 컴퓨터 앞으로 간 남자가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고 마우스를 달칵거렸다.

“괜히 힘 빼지 말고 얌전히 굴어. 예쁘게 굴어야 귀여움 실컷 받지.”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버튼을 누르고 일어났다.

“자, 방송 시작이야.”

재앙 같은 말이 여상하게 떨어졌다.

「omrg990: 새로운 애네?」

「gagty1: 와꾸 ㅅㅌㅊ」

「수수밭46: 딱 봐도 ㅈㄴ 잘 벌릴 거같이 생김」

남자가 방송을 켜자 여러 채팅들이 물밀듯 몰려왔다. 하나하나 확인도 채 못 했는데 금방 지나가고 새로운 말들이 그새 또 쏟아졌다. 상단에 ON이라는 글자가 파랗게 박혀 있는 화면에는 침대 헤드에 손목이 묶여 고정된 채 어리숙하게 발발 떨고 있는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지금껏 빚쟁이들에게 욕설은 신물이 날 정도로 처먹은 터라 험한 말들은 익숙했는데 저런 류의 음담패설은 처음이라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저절로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하하, 아 저번에 걔 어디 갔냐고? 방송국 게시 글 보시면 주소 있거든요? 거기로 가면 됩니다~. 참, 그 정도 얼굴이면 많이 받을 수 있었는데 구멍이 헐렁해져서 헐값에 넘겼지 뭡니까. 어찌나 억울하던지.”

남자는 과장스레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연기 톤으로 꾸며진 억울함을 드러냈다.

“아무튼 그거한테 박고 싶었던 사람은 그리로 가시면 되고. 가격이요? 정확한 가격이야 나야 모르지. 싼값에 하고 싶으면 좀 기다렸다 찾아가세요. 물론 구멍이야 더 헐거워지겠지만.”

남자는 빠르게 지나가는 채팅들을 어떻게 캐치하는 건지 답변을 해 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한동안 이 얼굴이 나올 겁니다. 나름 괜찮죠?”

남자가 내 턱을 쥐어 잡고 캠 쪽으로 얼굴을 향하게 했다. 불안한 눈빛이 갈 곳 없이 이리저리 방황했다. 그러더니 한쪽 다리를 훅 들어 드러난 엉덩이를 촥 때려 왔다.

“읏!”

한 번 맞은 것뿐인데 금세 붉은 손자국이 새겨졌다.

“살도 탱탱합니다. 구멍도 딱 봐도 야들거리게 생겼잖아요. 구멍은 시청자 참여 특집에서 맛보시고. 새로 유입된 뉴비들을 위해 저희 방에 대해 설명 좀 드리자면! 쉽게 말해 얘 구멍 씹창 내는 과정이 진행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여러분의 후원에 따라 이 구멍 새끼 자지러지게 만들 수도 있는 거고,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는 거죠. 참고로 시청자 참여 특집에선 후원 순위로 신청자를 받으니 많이 하면 할수록 이 구멍에 박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겠죠?”

가벼운 말투로 키득거리며 말을 마친 남자가 분홍색의 기다랗게 휘어진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다가왔다. 불길한 예감이 오소소 밀려들어 와 도망치고 싶었지만 손목이 묶인 상태라 기껏해야 침대 위로 살짝 올라간 게 최선이었다.

“일단 첫날이니까 가볍게 가죠.”

남자가 침대에 털썩 앉더니 들고 온 막대기 같은 것에 젤을 주르륵 묻혔다. 손바닥에 한가득 젤을 쭈욱 짜곤 치덕치덕 바르기 시작했다. 젤이 한 움큼 묻어 반들거리는 게 내 구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으, 하, 하지 마세요!”

젤이 묻은 질척한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꽉 잡고 구멍에 이상한 걸 넣으려는 남자를 향해 본능적으로 발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는 발목을 잡아 발버둥을 가볍게 제압하곤 기다란 막대기를 푸욱 쑤셔 넣었다.

한 번도 뭘 넣은 적 없었던 구멍에서 이상한 이물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통증이 등골을 타고 오르며 생소한 감각에 진저리 쳤다. 진짜 끔찍했다.

“싱싱하게 팔딱거리는 것도 재밌죠? 그럼 지금부터 후원받도록 하겠습니다. 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부터 드리면 거기 방송 옆에 후원 창 보이실 거예요. 거기에 제가 ‘구멍1’이라고 등록할 건데 그쪽에 후원 금액을 넣어 주시면~ 저기 박혀 있는 저 기구가 진동할 겁니다. 우선 한 개부터 시작할 건데 반응 좋으면 하나 더 넣고. 제일 많이 넣었던 애가 다섯 개까지 넣었었나? 아주 발악을 하고 난리 났었어요. 어떤 시청자 분이 그거 보고 퇴마 의식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니까? 하하, 그때 진짜 웃겼지.”

남자가 킥킥거리며 설명을 이어 갔다.

“여러분 후원 액에 따라 진동이 단계별로 올라갈 거고요. 귀여워하고 싶은 만큼 후원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등록합니다.”

남자가 휴대폰으로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난 직후, 갑자기 아래에 박힌 이상한 막대기가 움찔 진동하기 시작했다.

“헉!”

딸랑, 딸랑.

“이 딸랑 소리는 코인 소리예요. 이 소리는 좀 낮출까요? 신음 소리가 가려진다고 싫어하는 분들이 계셔서.”

미약하게 시작했던 진동이 갑자기 펑 터져 나가듯 거세지기 시작했다.

“악! 아아악!”

허리가 저절로 뒤로 꺾여 들었다. 곡선을 한껏 그리며 허리가 굽어지고 발이 시트를 밀어 댔다. 위로 올려 묶인 손목은 처절한 움직임에도 미동 없이 몸을 억죌 뿐이었다.

난생처음 맞는 감각에 미칠 것 같았다. 복잡한 생각들이 이리저리 얽혀 드는 머릿속엔 귓가를 파고드는 딸랑거리는 소리가 연신 무섭게 맺혔다.

“아! 으아!”

몸 전체를 떨리게 하는 격한 진동에 허리가 저절로 붕 떴다. 요가라도 하듯 허리를 든 아래로 흔들거리는 꼬리 같은 게 다리 사이에서 휘적거렸다. 구멍에 푹 박힌 채 찔끔 빠져나온 그 꼬랑지 같은 것은 진동이 얼마나 격렬한지 알려 주는 것마냥 휙휙 빠르게 흔들렸다.

「gagty1: 하나 더 ㄱㄱ」

「멍구8282: ㅋㅋㅋㅋ직접 쑤셔지는 거 보여 주는 거 아님?ㅋㅋㅋㅋㅋㅋ」

「69한69: 씨발 얼굴 보솤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허리는 또 존나 들었넼ㅋㅋㅋ」

「수수밭46: 하나 더!!」

덜덜 떨리는 어지러운 시야에도 더러운 말들이 휙휙 지나가는 게 보였다. 저들의 노리갯감으로 전락하고 싶지 않아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참았지만 더 격렬하게 배 속을 두드리는 진동에 결국 어쩔 수 없는 신음이 튀어 나갔다.

“악! 아아! 으, 아악!”

허리가 공처럼 말리듯 훅 꺾여 든다. 자의 아닌 움직임이 저절로 몸을 조종해 갔다. 후원이라니. 겨우 돈 몇 푼에, 손가락질 한 번에 날 이딴 식으로.

“아으으윽!”

저 네모난 화면에 나를 팔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조그만 기구에 꿰뚫린 나체의 몸은 수치도 모르는 창부처럼 다리를 더욱 벌려 갔다.

「69한69: 씨발ㅋㅋㅋㅋ 서비스 정신 봐랔ㅋㅋㅋ 존나 벌려서 보여 주넼ㅋㅋㅋㅋㅋ」

「수수밭46: 저것만 넣고 구멍 다물어진 거 봐라 ㅈㄴ 박고 싶다」

“자, 그럼 이제 슬슬 하나 더 넣어 볼까요? ‘구멍1’은 MAX 찍었네요. 두 번째는 ‘구멍2’로 등록되니 이쪽 후원도 잘 부탁드려요~. 두 개는 독립적이라 각 진동 세기는 다릅니다.”

덜덜덜 떨어 대는 몸뚱이에 다가선 남자가 자신의 구멍에 박힌 것과 똑같이 생긴 기구를 하나 더 들고 왔다. 수치심과 생리적인 눈물이 매달린 눈으로 그렁그렁 쳐다봤지만 남자는 크게 벌어진 허벅지 안쪽의 연한 살을 쫙쫙 때려 손바닥 자국을 남기곤 이미 격렬히 진동 중인 구멍에 푹 꽂아 넣었다.

두 개의 소리가 섞여 딸랑 소리가 어지러이 울렸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코인 소리가 연신 귓가를 두드려 댔다. 집에 없는 척을 해도 집요하게 초인종을 눌렀던 그 두려운 소리. 딸랑거리는 코인 소리에 그 두려움이 중첩되어 공포로 다가왔다.

딸랑 딸랑 딸랑.

“으아아! 아!”

어느새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불청객처럼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온 나쁜 기억에 패닉에 빠져 몸을 허우적거렸다. 아래에선 쉴 새 없이 기구가 구멍을 휘저어 댔다. 아까보다 상황이 더 나빠져 이젠 기구들이 진동하며 서로 맞부딪혀 살들을 이리저리 파고들었다.

쯔걱거리는 액에 슬쩍 나오려는 조짐을 보이는 기구 하나를 보고 남자가 손을 뻗었다. 아주 미세한 이탈조차 용서하지 않고 바로 응징해 푹 쑤셔 넣었다. 진동하는 막대기가 푸우욱 깊은 곳으로 쑤셔 들며 내벽의 다른 살들보다 살짝 부어오른 살점을 쿡 찔렀다. 그 순간.

“으아앙! 흐, 아아!”

팔딱 몸 전체가 튀어 오르며 묶인 손목이 꽉 뒤틀려졌다. 축 늘어진 채 까딱까딱거렸던 성기도 힘을 얻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그런 반응은 채팅방에 불을 붙였고 그 화력은 후원으로 직결됐다.

「omrg990: ?? 존나 잘 느끼네???」

「69한69: 뭐여 ㅅㅂㅋㅋㅋㅋㅋㅋ 배우 섭외해 온 거 아님?ㅋㅋㅋㅋㅋ」

「분수원투7444: 나중에 퍼킹 머신 할 때 ㅈㄴ 기대된다 겨우 저 정도에 저 지랄이면 머신 올라타면 아주 난리 날 듯ㅋㅋ」

「pprytty006: 퍼킹 머신 존버한다ㅠㅠㅜ 레전드 나올 각임ㅋㅋㅋ」

“아으어, 아아!”

채팅 창을 보는 눈이 절망으로 물들어 갔다. 외면하고 싶어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아도 입에서 터져 나오는 교성과 아래에서 느껴지는 진동, 몸에 파고드는 이상한 감각마저 무시할 순 없었다.

“흐어, 허윽….”

하나가 빠져나가고 또 하나가, 그리고 결국 마지막 남은 하나까지 다 빠져나갔다. 연속적인 자극에 잔뜩 풀린 구멍은 끈적한 액을 뱉어 내며 바들거렸다. 판판한 배와 그보단 조금 볼록한 가슴 위는 그가 싸 놓은 정액이 허옇게 묻어 있었다. 바르작거리며 느끼다 진작 풀린 눈은 힘없이 시트에 머물다 턱이 잡혀 캠을 바라봤다.

“아주 흐물흐물하게 풀렸네.”

손가락 두 개가 잔 떨림이 남아 있는 구멍 안을 찔걱거리며 드나들었다.

“허으으….”

“아, 씨발. 이거 표정 봐 봐요. 존나 꼴리네. 이거 보여요? 구멍 벌름거리는 거. 지금 안이 축축하게 젖어서 아주 살살 떨리는데 씹, 이번 애 잘 데려왔네.”

끔찍한 말들도 귓가에서만 부딪히고 사라질 뿐 머리에 들어오진 않았다. 멍해진 정신으로 아래를 헤집는 손가락만 쥐어 물며 점점 무겁게 가라앉아 가는 의식에 몸을 맡겼다.

***

“야, 야.”

“헉.”

“웍! 씨벌, 깜짝아.”

눈이 번쩍 뜨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침대에 누운 날 쳐다봤다.

“빨리 밥 처먹고 방송 준비해야지. 어? 싸게 싸게 일어나라.”

방송… 그 끔찍한 걸 얼마나 더 해야 되는 거지?

“그, 그건 앞으로 얼마나 더….”

“허? 이 건방진 새끼 봐라? 야, 네가 지금 그런 걸 물어볼 수 있는 처지야? 눈알 안 뽑고 장기 안 빼고 제대로 몸 보전하니까 무서울 게 없냐? 넌 그냥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야.”

남자는 일어나 개 밥그릇 같은 걸 구두로 툭 밀었다.

“얼른 내려와서 밥이나 처먹어라?”

“…네.”

사람 취급은커녕 개보다도 못한 취급에 얌전히 순응해야 하는 처지가 서글펐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조금, 흔적 같은 건 남아 있었나 보다. 이런 취급이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걸 보니.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앞에 버티고 선 남자의 눈치를 보다 밥그릇을 들었다. 그릇 안에는 볶음밥 같은 게 아무렇게나 담겨 있었다. 손으로 퍼 먹어야 되나 싶었는데 갑자기 남자가 아래로 향한 턱을 구두코로 쓱 들어 올렸다.

“아, 이거 진짜 꼴리게 생기긴 했네.”

불안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고기도 없는데 먹기 전에 단백질 보충부터 할까?”

그가 벨트에 손을 가져다 대며 바지춤을 풀어 헤쳤다. 속옷 위로 성기가 쑥 삐져나왔다.

“열심히 빨아 봐라.”

입 안 여린 살을 즈려 물었다.

들고 있던 그릇을 바닥에 내려 두곤 남자의 허벅지를 잡고 입을 벌려 물었다.

기둥을 빨아들이는 압력에 볼우물이 음푹 파이며 쪽쪽 소리가 났다. 펠라티오는 처음이 아니었다. 무식하게 세간살이를 쳐부수다 나에게 다가온 남자들이 몇 번 시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폭력적인 모습에 잔뜩 겁을 먹어 덜덜 떨며 목구멍에 푹푹 처박히는 성기를 견뎌 내야 했다. 정액이라도 싸 주면 꿀꺽 소리를 내어 삼킨 뒤 혓바닥을 길게 빼 내보였고, 그 혀로 방금 입 안에 싸지르고 나간 성기를 깨끗하게 핥아 놓아야 했다. 익숙한 일이었다.

“아주 맛있게도 빨아 먹네.”

머리 위로 간결한 품평이 떨어졌다. 남자는 허리를 몇 번 움직이며 꿀쩍꿀쩍 밀어붙이다가 성기를 훅 빼내며 밥그릇 위에 쭈욱 정액을 쌌다. 기름 범벅의 볶음밥 위에 하얀 정액이 투두둑 묻었다. 망연하게 그릇을 바라보는데 내 얼굴을 들어 올린 남자가 뺨에 성기를 비볐다. 휴지로 쓱쓱 닦는 것처럼 대충 문질러 댔다.

“남기지 말고 싹싹 긁어 먹어라. 저 옆에 흘린 정액도 핥아 먹고.”

남자는 그 역겨운 말을 남기고 나갔다. 홀로 남은 방 안에서 정액이 묻은 밥그릇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입술까지 들어 올린 밥그릇에 입을 처박아 먹었다. 밥그릇 옆에 흘린 정액도 엎드려 핥았다. 눈물의 짠맛이 벌린 입새로 스며들었다.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던 중, 어제의 그 남자가 들어왔다.

“누워도 아주 청승맞게 누워 있네.”

힐끗 날 본 남자는 컴퓨터 앞으로 갔다.

“야, 너 구멍 뭐로 뚫릴래? 네가 정해 봐. 내 좆이랑 적당한 기구 몇 개 있는데.”

귀를 막고 싶었다. 정상적인 선택지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곧 방송 시작이니까 빨리 말해.”

“기구요….”

아주 작게 나온 목소리였지만 조용한 방 안이라 잘도 들렸다.

“그래, 그럼.”

남자가 침대 쪽으로 다가와 거칠게 서랍을 열었다. 두 번째 칸의 서랍엔 흉측하게 생긴 기구들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남자의 눈치를 보다 몸을 일으켰다.

“뭐 할래. 너무 큰 건 안 되고 적당한 거로 골라.”

남자는 나에게 선택권을 주듯 말해 놓고선 직접 서랍을 뒤적거리다 하나를 꺼냈다.

“이거 어떠냐?”

모조 성기처럼 생긴 보라색 기구의 겉면엔 돌기들이 도도독 박혀 있었다.

“이걸로 해야지.”

어떠냐고 물어본 주제에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기구를 들어 내 옆에 내려놓았다.

마지막 칸의 서랍에서 어제 본 동아줄을 꺼낸 남자가 날 엎드리게 한 뒤 손목을 휘어 감아 침대 헤드에 묶었다.

“다리 벌리고 엉덩이 더 쳐들어 봐.”

침대 헤드 위에 카메라 하나를 고정하며 조정하던 그가 내 표정을 보더니 풋 웃었다.

“너무 그렇게 죽을상 하진 마. 일주일만 지나도 좆물 먹여 달라고 울며불며 매달리게 될 테니까.”

이를 으득 갈았지만 그는 애완동물을 대하듯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곤 컴퓨터 쪽으로 돌아갔다. 뒤돌고 있으면 채팅은 보이지 않을 테니 좀 나은 건가. 아니, 이런 상황에서 나은 게 있을 리가.

“안녕하세요. 오늘은 구멍 개통식입니다! 음? 어제 그건 뭐였냐고요? 그건 개통이 아니지~ 그 가느다란 거 가지고 무슨… 저기 보이죠? 예쁘게 대기하고 있는 거. 내가 뚫냐고? 아니? 처음은 이거로 딸 거예요.”

성훈이 손에 든 딜도를 흔들어 보였다.

“좀 작은 거 아니냐고? 이제 겨우 이틀 됐는데 애가 적응할 시간은 좀 줘야지. 하하, 이 사람들 진짜 급한 사람들이네. 조금씩 늘려 줘야 애가 좋다고 앙앙거리지. 이래야 나중에 제발 박아 달라고 애원할 거 아니에요.”

여상하게 말을 지껄여 대며 성훈이 유진의 엉덩이 골에 젤을 쭈욱 짜 내렸다. 주우욱 흘러내린 젤이 엉덩이 골을 타고 내려와 뚝뚝 시트에 스며들었다.

“와, 젤만 짰는데도 야하네. 피부가 하얘서 더 야해 보이나?”

성훈이 딜도를 구멍에 스윽스윽 비벼 댔다. 흘러내린 젤을 묻히며 비비적거리는 딜도에 유진이 다리를 움찔 떨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아, 맞아. 다음 주에 머신 태울 건데 그때 얘 입 사용할 사람 신청자 받아요. 뒤로만 박고 앞은 휑하니까 영 흥이 떨어지더라고요. 한… 열두 명 정도만 받을 건데 신청은 내일모레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번 건 구멍에 박는 것도 아니라 후원 금액 상관없이 뽑기로 뽑으려고요.”

보라색 딜도가 구멍에 치대다가 슬슬 앞부분을 꾸욱 누르며 들어가기 시작했다. 벌어진 다리와 허리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살을 가르며 돌기가 박힌 앞부분이 젤에 비벼져 치덕대며 들어가고, 머리채를 잡아 숙여진 고개가 훅 들렸다. 정확히 캠 방향으로 얼굴이 드러났다. 얼굴을 가리고 싶었지만 손목에 묶인 끈만 더 조여 올 뿐이었다.

“좀 풀어 줄 걸 그랬나? 어제 워낙 달달거리길래 아래로 느끼는 게 타고난 줄 알았지.”

“흐… 아, 아파요….”

“어, 아파? 조금만 기다려. 어제랑 비교도 안 되게 훨씬 기분 좋을 거야.”

눈썹이 찌푸려지며 깨문 입술이 무색하게 신음이 새어 나갔다. 천천히 들어오던 딜도가 중간까지도 못 가고 몸체를 돌리며 쑤욱 빠져나왔다. 기껏 들어온 앞부분이 내벽 살을 짓누르며 나가는 감각에 유진이 허으으, 신음하며 다리를 오므렸다.

그러자 머리채의 손이 다리로 옮겨 가 힘이 잔뜩 들어간 안쪽 허벅지를 달래듯 쓰다듬고 다시 벌렸다. 마찬가지로 힘을 준 엉덩이에 손바닥이 따갑게 내려앉으며 억지로 힘을 풀게 만들었다. 꾹 힘을 준 구멍이 살짝 느슨하게 풀리며.

“아아악!”

보라색 딜도가 안쪽 살까지 꽝 때리듯 박아 왔다. 발가락이 저절로 오그라들며 허리가 저릿하게 울렸다. 몸이 갑자기 확 뒤집힌 것 같았다. 주먹으로 배를 맞은 듯 내장이 아팠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몸과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 보이지 않는 시선들이 꽂혀 드는 것 같았다.

와락 구겨진 얼굴이 캠 쪽으로 휙 들이밀어졌다. 반짝거리는 빨간빛과 까만 렌즈가 얼굴을 담았다. 몸이 덜덜 떨렸다. 이딴, 이딴 게 뭐가 좋다고….

안쪽까지 박힌 딜도가 다시 쑤욱 회전하듯 나가며 경련을 일으키는 살들을 헤집었다. 뭔가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흐, 찌, 찢어졌, 흑, 피… 피가….”

“하하, 뭔 개소리야. 피?”

남자가 비웃으며 내게 화면을 내밀었다. 모니터보다 작은 휴대폰 화면엔 내가 꽉 차 있었다. 보라색 딜도가 꽂혀 있는 뒷모습이 큰 화면에 담겨 있었고, 얼빠진 얼굴은 그보단 작은 화면에 들이차 있었다. 화면 옆에는 수많은 채팅들이 훅훅 내려가고 있었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래로 딜도가 움직이는 구멍이 보였다. 흐르는 건 피가 아닌 투명한 액체였다. 걸쭉한 젤과 섞인 묽은 액체가 딜도가 쑥 빠져나올 때 같이 딸려 나와 투둑 떨어지고 있었다.

저럴 리가 없는데. 너무 아파서 분명 피가…. 분명 찢어졌는데….

멍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는데 저절로 옆의 채팅 창에도 시선이 갔다. 채팅 창 맨 위에 있는 후원 액에는 살면서 만져 본 적 없는 액수가 찍혀 있었고 초마다 더욱 올라가고 있었다.

「clzlsajrrhvk0: 다리 존나 떤다 허리도 움찔거림ㅋㅋㅋ 곧 박히면서 좋다고 자지러질 듯ㅋㅋㅋㅋㅋ」

「수수밭46: 오물오물 잘 물어 놓고 찢어졌어요ㅠㅠ ㅇㅈㄹㅋㅋㅋㅋㅋㅋ」

「69한69: 모르는 척하는 얼굴도 ㅅㅂ 존꼴」

멍하니 바라보는데 다시 퍽 박히는 딜도에 몸이 무너져 내렸다.

“아으윽! 헉….”

“똑바로 팔 안 짚어? 얼굴은 들어야지.”

“아! 흐, 안 돼요… 아….”

애원에도 자비는 없었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액과 맞물려 질척거리는 마찰 음을 내며 부드러운 살들이 온통 짓물러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이 몇 번이고 무너졌지만 남자의 손이 머리채를 꽉 쥐어 잡고 있었기에 억지로 힘을 주며 상체를 지탱해야 했다.

너무 아팠다. 계속해서 꽝꽝 치고 나가는 모조 성기에 속이 울렁거리고 내장마저 다 헤집어진 게 아닐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제각기 우뚝 솟아오른 자그마한 돌기들이 부어오른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스치자 찌릿 이상한 감각이 아래에서부터 배를 타고 오르며 퍼졌다. 저릿한 허리가 다른 결로 울리고 고통에 소리 지르던 신음에 비음이 섞였다.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였다.

“아, 흐, 아읏!”

“아, 여기로 느꼈었지?”

쿡 부어오른 부분을 정확히 짚은 딜도가 쑥 빠져나가더니 무서울 기세로 쾅 물렁한 살을 찧었다.

“아악!”

온 성감이 밀집되어 있는 듯한 살이 꽝 짓이겨지자 배 안에 둥글게 뭉쳐 있던 무언가가 펑 터지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붙잡힌 성기에서 열감이 화르륵 번졌다.

“흑, 아으으윽!”

“와, 씨발, 오늘 처음 박히고 세운 거야?”

“하, 안… 안 드, 앗!”

“좋다고 질질 싸면서 뭐가 안 된대.”

손안의 온기가 뜨거운 건지 잡힌 성기가 뜨거운 건지 분간이 안 간다. 그저 너무 버겁게 뜨거웠고 편해지고 싶었다. 해소되지 못하고 몰려드는 쾌감이 몸을 아프게 찔러 대는 것 같았다. 푹푹 박아 넣는 딜도에 허리를 맞춰 움직이자 손안의 성기가 스윽 비벼지며 찌르르 울리는 황홀한 감각이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처럼 몸을 타고 올라왔다.

“허윽, 아으으….”

쾌감을 음미하듯 절로 눈이 감기고 고개가 위로 젖혀졌다. 허리도 같이 휘며 구멍을 스스로 조이듯 힘이 들어갔다.

“아, 어떡, 아… 하윽, 으…!”

“와, 이거 봐라. 아주….”

“흣, 아, 아흐으… 허으… 읏!”

“씨발, 이번엔 웬 요물이 들어왔어.”

성훈이 즐겁게 웃으며 딜도를 박아 넣던 손을 멈추었다. 성기만 연신 쓸어 주며 가만히 있자 안달을 낸 구멍이 절로 뒤로 와 푸우욱 박아 넣었다. 남자가 스스로 허리를 움직여 대는 유진의 성기를 흔들며 비웃어 대도 유진은 계속해서 몸을 앞뒤로 움직여 댔다. 그러다 멈칫거리며 허리를 부르르 떨고 다시 뒤로 몸을 물리며 박아 넣었다.

구멍이 들락거리는 딜도의 기둥은 허여멀건 액들이 잔뜩 엉겨 붙어 본래의 색마저 덮을 정도였다. 언뜻언뜻 보이는 보라색이 야살스러웠다.

“아, 제발, 해 주, 흐으으! 아, 좋아요, 해 주, 해 주세요… 흐.”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며 멈춰 있는 딜도에 꾹꾹 박아 넣는 뒤도 장관이었지만 성훈은 그보단 잔뜩 흐느끼고 있는 얼굴이 더 야하게 느껴졌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침울한 얼굴로 세상 다 산 듯 체념을 담고 있더니, 지금 저 얼굴은 아주 눈물 뚝뚝 떨구며 좋다고 한껏 풀린 채 쾌감에 절어 있었다.

“아으읏!”

쓱쓱 비벼지던 성기가 왈칵 정액을 뱉었다. 말랑거리는 귀두가 남자의 손안에서 뭉그러지며 남아 있던 정액까지 줄줄 쏟았다.

허리가 바르르 떨리며 막혀 있던 숨이 조금이나마 트였으나 뒤에 고여 있는 쾌락은 여전했다. 구멍에 꾹 박아 넣을 때마다 계속해서 뭔가가 터져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해소되지 않았다. 답답하게 속에 얹혀 있었다. 이걸 뒤집어엎어서 꺼내고 싶은데. 이걸 들어내야 속이 풀릴 것 같은데.

답답한 마음에 신음 소리만 커져 갔다. 내가 직접 움직이는 건 한계가 있었다. 기묘한 감각이 잡힐락 말락 하는 순간, 몸이 저절로 멈추고 말았다. 이대로는 안 돼. 제발. 남자가 아까처럼 무자비하게 박아 줬으면 했다.

울부짖는 얼굴이 그대로 찍히는 카메라도, 혼자 허리를 움직여 대는 날 보고 쏟아져 내릴 질 낮은 음담들도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이 미칠 듯한 감각을 풀어내야만 했다. 그것만이 중요했다.

“아, 좋아요, 아, 제발! 흣!”

그래서 좋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그래, 이거 안 되겠다.”

딜도가 내벽을 잔뜩 긁으며 확 빠져나갔다. 구멍이 비고 허탈함이 몰려들었다. 좋다고 물어 대던 딜도가 나가자 텅 빈 구멍이 다시 안을 채워 줄 걸 찾아 뻐끔거렸다.

“아, 아….”

갑자기 뚝 끊긴 쾌감에 유진이 몸부림쳤다. 만약 손이 묶여 있지 않았다면 자신이 직접 손가락을 박아 넣고 자위했을지도 몰랐다. 이건 고문이었다. 딜도가 빠져나간 구멍에선 안에 들어가 녹은 젤과 묽은 액들만이 찔끔찔끔 새어 나올 뿐이었다. 유진이 다리를 더 벌리며 울었다.

“아, 제발요… 흐, 제발….”

살랑살랑 엉덩이도 흔들고 허리도 열심히 돌렸다. 유진은 자신이 무슨 꼴인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 건지 인식이 안 됐다. 그냥 지금 너무 괴로운데 이 괴로움을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어서 그렇게 행할 뿐이었다.

채팅 창엔 온갖 성희롱들이 밀려들었다. 닳고 닳은 싸구려 창부 취급은 온건한 편이었다.

정신 못 차리게 흐트러트리고 싶은 저 단정한 얼굴은 밑바닥에 깔린 음침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아래에 깔아서 헐 때까지 안을 헤집어 주고 싶고, 정액을 잔뜩 싸서 몸이든 얼굴이든 정액으로 샤워라도 시키고 싶게 만들었다.

몇 년간 몸을 굴린 듯 음탕해 보이면서도 순진해 빠진 얼굴이 완전히 쾌락에 물들자 빠끔거리며 넣어 달라고 아우성치는 구멍에 온갖 걸 다 쑤셔 박아 주고 싶은 가학심을 일게 했다.

성훈도 꽤 당황했다. 몸이 얼마만큼 음란해 빠져야 고작 이틀 만에 허리를 흔들며 박아 달라고 애원을 하지? 얼마나 쾌락에 약한 몸이길래.

조급해하며 싼 티를 내는 구멍을 몇 대 때려 주자 울컥거리며 액을 흥건히 뱉어 냈다. 급하게 바지춤을 풀고 뜨끈히 열을 내는 구멍에 성기를 푹 박아 넣자 찔극거리며 물이 잔뜩 묻어나는 부드러운 점막으로 성기를 감쌌다. 도톰하게 부어오른 내벽의 살이 뭉근히 엉겨 붙으며 뜨겁게 감겨 왔다.

“허으, 하으윽…!”

“하, 씨발….”

박은 지 얼마 안 된 구멍이라서인지 물을 그렇게 흘려 댔으면서도 빠듯하게도 조여 왔다. 스윽 조금이라도 뒤로 움직이면 성기를 감싼 살들이 촉촉하게 달라붙으며 나가지 말라고 끌어당겼다.

접합부에 엄지를 쿡 쑤셔 넣자 성기를 씹어 먹을 듯 내벽이 꿈틀거렸다. 한 번의 삽입에도 액이 잔뜩 묻어나는 엄지를 쑥 꺼내고 허리를 뒤로 빼어 쾅 박아 들었다.

“아악! 아! 아! 흐극, 윽!”

그걸 시작으로 정신없이 흔들리는 몸을 마음대로 휘저으며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휴대폰을 옆에 두고 화면에서 잔뜩 흐느끼는 남자의 표정을 안주 삼아 쾅쾅 박아 넣었다. 방 안을 꽉 채우며 퍼지는 울음소리가 제법 애처로웠다.

아까 딜도로 쿡쿡 쑤셔 줬던 그 부분, 살짝 도드라진 살점에 꽝! 박아 넣자 몸이 꼬챙이에 꽂힌 듯 파득 떨리며 눈이 뒤집어졌다. 크게 휘청거리는 허리를 꽉 잡아 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짓이기자 흐물거리는 안쪽 살이 진흙처럼 질척하게 뭉개지더니 깊은 안쪽에서 왈칵 액이 쏟아졌다.

“흐읏…! 흐어엉, 아으어, 흐으….”

격한 몸에 뭉그러지는 신음은 어느 순간부턴 울음소리로 변해 있었다. 깊은 안쪽에 들어가 정액을 싸 주자 이조차 좋다고 구멍이 바르르 떨며 꾹 수축해 왔다. 물기 짜내듯 꾹꾹 누르며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모조리 싸지르고 나가자 무릎이 툭 꺾이며 몸이 사시나무 떨듯 달달 떨렸다. 정신을 차리고 채팅 창과 후원 액을 확인하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아주 물건이야.”

기껏 싸 준 정액을 울컥울컥 뱉어 내는 구멍을 괘씸하다는 듯 몇 대 때리자 꾹 다물리나 싶더니 다시 열리며 주르륵 액들을 흘려 댔다. 한껏 벌린 다리 사이의 헤벌레 벌어진 구멍에서 하얀 액체들이 꿀렁거리며 나왔다. 그 꼴을 보자 가쁘게 숨을 들이쉬는 호흡 소리마저 지독히도 몸을 동하게 만들었다.

“흑, 흐….”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물들이 툭툭 떨어졌다. 질척하게 젖어 찝찝한 얼굴을 닦고 싶었지만 묶인 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색색 힘겹게 나오는 숨만 뱉어 냈다. 떨림이 멈추지 않는 몸 때문에 계속해서 내쉬는 숨 사이사이 신음이 고였다.

***

파도처럼 몰아 덮친 쾌감은 온 정신을 쏙 빼 놓았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버거움에 짓눌려 바둥거리는 사이 생전 처음 느끼는 희락이 다 끝나 있었다. 아직 나른하게 남은 여운만 살짝살짝 몸을 떨게 했다.

술을 진탕 부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다. 아래가 저절로 열리며 끈적거리는 액체들이 빠져나오는 감각은 생소하고 이상했다. 다시 이 쾌락을 알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함이 문득 한기를 담아 몸을 쓸고 지나갔다. 아니, 애초에 내게 돌아갈 기회 같은 게 있었던가. 자조 섞인 웃음이 얕게 입매를 스치자 한없이 서러워지며 자괴감이 덮쳤다.

차라리 기억이 몽땅 지워졌으면 좋으련만 너무도 생생하게 되감겼다. 혼자 허리를 흔들며 울었던 것도, 연신 좋다고 치대며 했던 애원도, 절정의 순간 몸을 찌르르 울리던 감각도. 내 몸을 쓸었던 희락이 정신마저 쓸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손목에 파고들던 동아줄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툭 떨어진 동아줄을 능숙하게 감는 손이 보였다. 빤히 시선을 두자 살갗이 까진 손목이 부드럽게 감싸졌다.

“이따 치료해 줄 테니 기다려.”

“아, 저… 그….”

“왜? 방송 끝났어. 편하게 말해.”

“죄, 죄송하지만 물… 한 모금만….”

이 와중에도 살겠다고 목이 말랐다. 건조한 목 때문에 침이 넘어갈 때마다 까끌거렸다. 물을 생각하자 걷잡을 수 없이 드는 갈증에 결국 소심하게 부탁했다. 자괴감이 더욱 깊어졌다.

“그래. 기다려. 너 몸 씻고 시트 갈아야 되니까 욕실부터 가 있어야겠네.”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몸을 번쩍 안아 든 남자가 걸음을 옮겼다. 방 안에도 변기와 세면대가 있는 작은 화장실이 있었지만 씻을 수 있는 샤워기는 없었다. 남자가 날 들어 올린 채로 문을 끼익 열자 여기 끌려올 때 봤던 길게 늘어진 복도가 나왔다.

저 문 하나하나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 나처럼 방송을 하고, 그런 사람들이….

나체의 몸이 들려 가는데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미건조한 표정을 하고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괜히 혼자 흠칫거리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조금 걷자 다른 색의 문이 나왔다. 복도를 따라 줄줄이 있던 모든 문은 검은색이었는데 저기만 하얀색이다.

반들거리는 흰 문을 연 남자가 날 욕조에 앉혀 두고 물을 받았다. 따듯한 물이 철철 나오고 물에 잠겨 가는 몸이 노곤하게 풀리는 게 느껴졌다. 남자는 날 그대로 두고 나갔다.

얌전히 앉아 있는데 욕조의 물이 차올라 넘치려 했다. 조금 망설이다 수도꼭지를 잠갔다. 여긴 욕조와 샤워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캐비닛처럼 생긴 기다란 진열장이 있긴 했지만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겉은 거울로 덮여 있어서 진열장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잠시 생각 없이 물을 참방거리고 있자 어떤 남자가 들어왔다. 처음엔 낯선 얼굴이 들어왔길래 흠칫 몸을 떨었지만 곧바로 가면을 벗은 남자라는 걸 깨달았다. 유리잔에 담긴 물을 건네주기에 감사합니다, 작게 말하고 얼른 받아 마셨다.

시원한 물을 꿀꺽꿀꺽 넘기자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남자는 진열장이라고 추정했던 것의 문을 열어 바디 워시와 샤워 볼을 꺼냈다. 역시 진열장이었네. 멍하니 생각하며 샤워 볼에 바디 워시를 짜 거품을 내는 남자의 모습을 빤히 보았다.

“일어나서 여기로 나와.”

나직하게 명령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순순히 몸을 일으켜 욕조 밖으로 나갔다. 몸이 휘청거렸지만 넘어지진 않았다. 슥슥 팔과 다리를 닦는 남자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있었다. 이렇게 있자 진짜 가축이 된 것 같았다.

몸에 거품이 칠해지자 얌전히 다물린 구멍에 손가락이 쑥 들어왔다. 몸을 움찔 떨며 갈 곳 잃은 손을 들어 잠시 허우적거리자 어깨를 잡아도 된다고 내주었다. 난 덥석 남자의 어깨에 기대며 몸을 가눴다. 내 몸이 닿은 셔츠에 거품이 묻어났지만 남자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구멍을 지분거리며 걸쭉하게 묻어 나오는 액체들을 빼내는 작업에 열중했다.

쏴아아. 샤워기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물에 거품이 씻겨 갔다. 이리저리 돌리며 꼼꼼하게 몸을 확인한 남자는 커다란 수건으로 몸 구석구석을 닦고 젖은 머리를 탈탈 털었다. 남자는 개를 씻기는 것 같았고 나는 개가 된 것 같았다. 묘한 기분이 어물쩍 가슴께에 걸렸다. 괜한 손톱만 틱틱거리며 얌전하게 서 있었다.

남자는 아까처럼 나를 안아 들어 원래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잔뜩 젖은 시트는 누가 다녀간 듯 뽀송한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남자가 눕히는 대로 누워 눈을 깜박였다.

“이따 밥 들어올 거니까 먹고 내일 봐.”

“네….”

내일 또 보기 싫었지만 순순히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또 남자의 성기를 빨다가 정액이 뿌려진 개 밥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밥을 먹어야 할까. 그러기 싫은데…. 온갖 모욕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사가 익숙하다고 해서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늘 싫긴 했다. 반항할 수 없으니 입 다물고 순응할 뿐이지.

조용한 방이 어색했다. 어제 남자의 말을 들어 보니 여기 사람들은 이곳에서 잔뜩 굴려지다가 사창가 같은 곳에 팔려 가는 것 같았다. 나도 곧 그렇게 되겠지. 희망이라곤 한 줄기도 없는 깜깜한 미래에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그 와중에도 맞진 않아서 다행이라는 조그마한 안도감이 날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

방송은 금, 토, 일 3일 동안만 진행을 한다고 했다. 다음 방송은 다음 주 금요일에 있었다. 하지만 방송을 안 하는 평일에도 쉴 순 없었다. 불쑥불쑥 쳐들어오는 모르는 남자들의 성기를 빨아 주어야 했고 몸 곳곳을 희롱하는 손길을 견뎌 내야 했다.

가끔 거칠한 손가락이 슬그머니 들어와 구멍을 휘젓기도 했지만 손가락을 무는 내벽을 꾹꾹 누르다 아쉽게 입맛을 다시며 빼내었다. 그러곤 바로 꼿꼿이 서 있는 성기를 입 안에 처박아 오곤 했다. 잘 빨면 머리를 쓰다듬거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 주고, 좀 별로다 싶으면 상처가 남진 않을 정도의 가벼운 손찌검이 날아왔다.

남자들이 없을 땐 부업을 해야 했다. 쿠키나 사탕을 포장하고 목걸이나 귀걸이 같은 걸 상자에 담아 봉지에 밀봉하는 등의 소일거리들이었다. 멍하니 손을 움직이며 참 알뜰하게 부려 먹는다는 생각을 이따금 했다.

난 그나마 간식거리를 포장하는 일을 좋아했다. 일을 마친 뒤 건네면 포장한 봉지 하나를 먹으라고 주곤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식사는 하루 세끼 나왔지만 내 입맛을 배려해 주는 음식은 아니었다. 아무리 못 먹고 살았어도 취향이란 게 있긴 했다. 뭘 주든 싹싹 긁어 먹기야 했지만 이왕이면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가끔 성기를 빨아 주면 작은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걸 던져 주고 가는 남자들도 있었다. 개중에 날 좀 귀여워하는 것 같다 싶은 남자는 그 우락부락한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기자기한 타르트를 주기도 했다. 난 그게 타르트라는 건 줄도 몰랐었는데 처음 맛보는 디저트의 달콤함에 허겁지겁 먹었었다.

남자들에게 있어 내 취급은 보통은 섹스 토이, 좋으면 애완동물 정도였다. 그래도 난 후자가 더 나았다. 뭐라도 얻어먹을 순 있었고 어차피 똑같이 비참한 거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부드러운 쪽이 더 편하니까. 목이 너무 아파서 캑캑거려도 기다려 주고 숨 돌릴 시간은 주니 당연히 후자가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나체로 이런 생활을 이어 가니 내가 정말 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은 모두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나 혼자만 나체로 돌아다녔다. 그런데도 그런 내 알몸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날 대했다.

정말 개나 짐승이나 가축 같은 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가끔 침대에 누워 난 사람이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여기서 나가고 싶다.

방송 날이 되었다. 방 안에 누워 있는데 남자가 들어왔다. 여긴 시계도 창문도 없어서 시간의 흐름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저 불이 켜져 있으면 낮이구나 싶었고 불이 꺼지면 밤이구나 싶었다.

남자는 들어온 직후 안녕, 하고 일상적인 인사말을 건네더니 바로 이상한 기구 쪽으로 갔다. 육중한 몸체를 질질 끌고 모니터 앞에서 각도를 맞추더니 나에게 이리 오라 손짓했다. 유순하게 걸어가니 착하다고 엉덩이를 토닥였다. 기분 나쁜 손길이었지만 뭐라 할 순 없었다. 그저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가만히 서 있을 뿐.

남자가 작은 리모컨을 들어 버튼을 누르자 우웅- 작은 소리가 나며 기구가 로봇처럼 움직여 접혀 있던 부분이 펴지고 닫혀 있던 부분이 열렸다. 신기해하며 쳐다보는데 얼굴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 갔다.

기구는 괴상망측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안장같이 생긴 부분엔 흉측한 모조 성기 같은 게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고 다리와 허리가 위치할 법한 자리엔 용도가 빤히 보이는 구속 끈 같은 게 헐렁하게 매달려 있었다. 오늘 방송으로 뭘 할 생각인지 짐작이 가자 이 방에서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왜, 벌써 기대가 돼서 뒤가 벌렁거려?”

남자가 조롱하듯 말하며 은근한 손길로 허벅지를 더듬었다. 더러운 욕망이 묻어나는 질척한 손길에 혀를 깨물 뻔했다.

“안 그래도 오늘 실컷 박아 주려고. 이제 슬슬 돌려야 하거든. 그때부턴 진짜 하드하게 굴려질 텐데 미리 준비한다 생각하면 돼. 이왕 하는 거 너도 즐기는 편이 훨씬 낫잖아. 근데 너라면 뭐, 엄청 좋아하겠다 싶네.”

끔찍한 말이었다.

“자, 얌전히 앉자. 곧 기분 좋아질 거야.”

“시, 싫어요. 찢어져요….”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딴 거에 앉고 싶진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아닌 것 같다. 웬만해선 다 고분고분 따랐지만 정말 저건 아니다 싶었다.

“젤 듬뿍 발라 줄게. 어서. 지금 밖에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서 실랑이할 시간 없어. 착하지? 넣는 거 도와줄 테니까 이리 와.”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요. 제발….”

달달거리며 말을 잇는데 머리채가 휙 잡혀 끌려갔다. 꽤 거친 반항에도 무색하게 남자는 우악스러운 손길로 허리를 잡아 날 앉히려 들었다.

빡빡한 구멍은 꾹 닫혀 침입을 거부했다. 꽉 누르는 손길에 조금씩 모조 성기의 앞부분이 들어왔다. 뻑뻑하게 밀려드는 기둥에 소리를 질렀다. 고통이 퍼지며 이번에야말로 정말 찢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허으, 잘못했어요. 흐으윽, 죄송해요. 말 잘 들, 윽, 잘 들을게요.”

내 머리채를 휘어잡은 남자의 손에 매달리며 잘못을 빌었다. 젤을 발라 준다고 했을 때 얌전히 따라야 했다. 내가 뭐라고 되지도 않은 반항을 해서 괜히 상황만 더 나빠졌다. 죄송하다고 연신 빌자 남자는 앞부분만 겨우 집어넣은 날 바닥에 내려 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게 좋게 말할 때 들어.”

“네네. 흐, 죄송해요….”

“뚝 그치고.”

“네네네.”

고개를 계속 끄덕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남자가 젤을 들어 모조 성기에 치덕치덕 바르곤 손에 남은 젤을 구멍에 푹 쑤셔 넣었다. 손가락 두 개가 쑥 들어가 안쪽을 지분거리다 나갔다. 남자가 허리를 들어 올려 살살 모조 성기 위에 앉혔다.

여전히 버거웠지만 뻑뻑해서 안 들어갔던 아까와는 달리 구멍은 아물아물 기둥을 먹어 갔다. 기다란 기둥이 점점 사라지며 마침내 안장 위에 완전히 앉자 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밭은 숨을 몰아쉬며 몸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가득 들이찬 기둥의 압박감이 배를 짓누르고 있었다. 아파. 너무 아프다.

성훈은 색색거리는 유진의 허벅지를 기구에 딱 붙이며 끈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발목도 고정시켜 두고 기둥에서 조금이라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허리 역시 꾹 눌러 고정했다. 손목까지 모아 잡아 기구 아래쪽의 끈에 묶어 두자 준비가 끝났다. 성훈은 모니터로 가 타닥타닥 뭔가를 두드리곤 방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가면을 쓴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은 기구 위에 옴짝달싹할 수 없게 고정된 날 보더니 저마다 감탄사 같은 욕을 내뱉었다. 성기를 바지에서 꺼내 쓰다듬으며 날 바라보는 여러 눈들을 보자 걱정이 밀려들었다.

“자, 오늘은 머신을 꺼내 왔습니다~ 이거에 자지러진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죠. 이번 후원은 딱 1분간 진행됩니다. 준비 땅, 하면 등록된 항목에 후원을 해 주시면 되고 1분간의 후원 금액을 시간으로 산정하여 이 기구가 얼마나 오래 돌아갈지 결정을 합니다. 후원이 많을수록 지쳐 헥헥거릴 때까지 질질 싸 대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겠죠?”

제발 귀를 막고 싶었다.

“그런데 뒤가 계속 처박히는 거에 비해 앞이 너무 한가하더라고요. 뭐라 하지, 좀 조화가 안 맞는다고 하나? 하하, 그래서 이번엔 특별히 우리 시청자분들을 모셔 봤습니다! 시청자 참여 특집이라고 하기엔 입만 사용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참여 콘텐츠가 됐네요.”

씨발. 씨발. 씨발.

“그럼 지금부터 1분. 후원 시작합니다.”

남자는 그 말을 마치고 휴대폰 화면을 한 번 가볍게 터치했다.

“기다리는 동안 먼저 입에 박고 계실래요? 정액은 몸이든, 얼굴이든, 입이든 상관없이 원하는 곳에 싸 주시면 됩니다~.”

그 말에 비대한 몸을 가진 남자 하나가 다가왔다. 덜렁거리는 성기를 얼굴 앞으로 들이대며 성기를 잡고 툭툭 기분 나쁘게 얼굴을 쳐 댔다. 물기 어린 눈을 깜빡이면서도 유진은 자연스럽게 입을 열어 성기를 합 물었다. 볼이 파이도록 빨아들이자 조용한 방 안에 쭈압거리는 소리가 났다. 귀두를 혀로 핥고 쭈욱 타액을 묻힌 후 음낭을 입에 물어 굴리자 욕을 뱉으며 남자가 금방 사정했다. 볼에 정액이 투둑 튀었다.

“와, 이번에 얘 고생 좀 시키겠는데요?”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저절로 귀가 쫑긋 세워졌다.

“정산한 결과, 4시간 12분 나왔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신난 남자의 목소리가 끝나자 구멍에 박힌 모조 성기가 쑤우욱 달라붙은 점막을 딸려 데려가며 아래를 향해 빠져나갔다. 주르륵 내벽을 긁으며 빠져나가는 기둥에 허윽, 신음이 터졌다.

“리모컨은 시청자분께 넘기겠습니다. 돌아가면서 사용해 주세요.”

“초반이니까 좀 느리게 할까요? 일단 다 한 번씩 싸고 속도 올리는 거로?”

리모컨을 건네받은 남자가 주위를 빙 둘러보며 물었다. 그럽시다, 그러죠 하는 소리들이 동의를 표했다.

빠져나간 성기가 다시 연한 살들을 가르며 느릿하게 차오르는 느낌에 신음할 새도 없이 입에 다른 성기가 퍽 처박혔다. 거칠게 푹푹 드나드는 허리 짓에 뭘 할 틈도 없이 목이 열리며 성기가 목구멍까지 쳐들어왔다. 컥컥거리며 고통스러워했지만 남자는 자비 없이 얼굴을 잡아 성기를 쳐올렸다. 타액이 넘어가 침을 삼키는 목구멍이 확 조여들자 남자가 그 틈에 퍽 성기를 한계까지 밀어 넣었다.

“컥! 극, 끄극….”

잠시 그 상태 그대로 꾹 누르던 성기에서 정액이 쏟아졌다. 주르륵 좁은 입 안을 긁으며 성기가 빠져나갔다. 목구멍에 처넣은 터라 저절로 삼켜진 정액에 쿨럭거리며 밭은기침을 연신 콜록거렸다.

“윽, 아….”

목구멍이 부어오른 것같이 따갑게 아파 왔다.

으으, 앓는 소리가 새어 나갔다. 유진이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고통스러워하는데도 남자들에게서 연민의 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주도하는 남자도 흥미 어린 눈으로 관조할 뿐이었고, 상황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남자들도 가면 아래 눈은 성욕으로만 번들거릴 뿐 약간의 동정심도 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유진의 고통 어린 표정은 그들의 가학심만 더 자극한 꼴이었다.

호흡이 괴롭다. 아래에서 천천히 빠져나오다 들어오는 모조 성기가 작은 열감을 불러들였다. 도톰하게 부어오른 부위가 쿡 찔러지며 자극될 때마다 허리가 저절로 뒤틀려졌다. 구속 끈에 묶인 허리가 움찔거리자 남자들의 눈엔 음욕이 일었다.

아직 숨도 채 못 골랐는데 다른 성기가 또 박혀 들었다. 하나가 나가면 또 다른 하나가. 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 입은 계속해서 성기를 받아야 했고 구멍 역시 쉴 새 없이 벌어지며 모조 성기가 내벽을 긁어내리고 긁어 올리는 감각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마침내 열두 명의 남자가 모두 한 번씩 사정을 마치자 모조 성기가 구멍에 박아 대는 속도가 아까보다 빨라졌다. 숨이 더욱 가빠졌다. 얼굴에 치덕치덕 묻은 정액 때문에 눈을 깜빡일 때마다 속눈썹에 고여 있는 정액이 툭 떨어졌다. 끈적하게 얼굴을 타고 내리는 정액이 유진과 잘 어울린다고 방 안의 모두가 생각했다.

“읏, 아!”

고통만 내뱉던 신음에 열기가 스며들었다.

“와, 이거 신음 소리 봐. 진짜 존나 꼴리게 하네.”

“으으읏…!”

허리를 꼬며 기구에 딱 붙어 있는 허벅지를 달달거리자 한 번 빼낸 남자들의 성기가 다시 힘을 얻었다. 유진의 축 처진 성기도 슬슬 일어날 조짐을 보였다. 허리에 묶인 끈 때문에 안장에 앉은 채 앞쪽으로 누워 뭉개졌던 성기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흐으으….”

“푸하학! 몸 존나 배배 꼬네. 좋아 죽겠어, 걸레야?”

허리를 비비자 아래 성기도 같이 비벼졌다. 매끈거리는 가죽에 마찰되는 성기가 쿠퍼액을 찔끔 뱉어 냈다. 입 안엔 다시 남자들의 성기가 푹 박혀 들었다. 연달아 성기를 빨고 핥고 삼키니 계속 벌어진 턱이 뻐근해졌다. 목구멍에 처박아 오는 남자들도 있었기에 부어오른 목도 따가웠다.

아득하게 멀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숨을 골랐지만 남자들은 내 사정 따윈 생각해 주지 않았다. 질펀하게 싸질러진 정액이 얼굴을 덮으며 후드득 떨어졌다. 입 안에 가득한 비린 맛이 없어지지 않았다. 머리칼에서도 뚝뚝 정액이 떨어졌고 눈도 제대로 못 뜰 만큼 온 얼굴이 정액으로 뒤범벅되었다.

계속 정액을 넘기는 배도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아니, 이건 저 기구 탓인가.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정액에 고개를 숙이며 헥헥거리자 억센 손길이 머리채를 잡아 위로 들었다.

“읏!”

남자들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어 댔다. 찰칵찰칵 소리가 여러 번 들렸다. 아까도 입에 정액을 머금게 한 채 여러 번 사진을 찍었었는데.

“하으윽!”

묶인 몸이 크게 들썩였다. 기계가 돌아가는 우우웅 소리가 커지며 아래의 기둥이 더 빠르게 구멍에 박히기 시작했다.

“아! 아!”

벌린 입가로 얼굴에 묻은 정액이 흘러 들어왔다. 퍽퍽! 찧어 올릴 때마다 절로 엉덩이가 들썩였지만 허리가 단단히 묶여 움직일 수 없었다.

“걍 끝까지 올리면 안 되나?”

“벌써 올리면 재미없지. 천천히 올립시다.”

“아니, 저번엔 처음부터 확 올리고 시작했었거든요. 그런데 아주 뒤집어지고 난리 난 게 존나 꼴렸어서. 나중엔 30분 남기고 기절까지 했는데 BJ 형님이 애 상태 보더니 계속해도 괜찮다고 해서. 손가락도 넣어서 쑤셔 주니까 다시 깨더라고요? 그래서 뭐, 재밌게 했죠.”

“아, 그거 걔 맞죠? 머리 금발로 염색한 애. 피어싱 달고.”

“네, 걔 맞아요. 그거 존나 레전드였는데.”

“흐흐흣, 저 그거 아직도 돌려 보잖아요. 진짜 애가 느끼긴 또 존나 느껴서. 크흐흐.”

“어쩔까요, 그냥 확 올릴까요?”

남자들이 저들끼리 모여 찬반 투표를 했다. 반대가 넷, 찬성이 여덟로 결정이 나자마자 큰 기계 소리가 한 번 우우웅 울리더니 퍽! 구멍이 격하게 쳐올려졌다.

“학!”

정신이 잠깐 끊긴 듯 아득해졌다. 주먹이라도 들어와 배를 때리고 간 듯한 느낌에 푸드득 경련이 일었다. 허리는 물론 허벅지도 파득파득 떨리며 컥컥거리는 신음만 간신히 튀어나왔다.

“큭, 흑! 억!”

짧은 단말마적 비명 정도밖에 내뱉을 수 없었다. 깊숙한 내벽까지 꽝 때려 박은 기둥이 훅 흐물흐물한 살을 몽땅 끌며 빠져나갔다가 다시 퍽! 깊게 박아 왔다. 꽝꽝 세게 때리듯 박으면서 속도조차 아까와 비교할 수 없이 빨랐다. 네 시간… 네 시간이라고? 어떻게 네 시간을…. 정말, 엄살이 아니라 사 분도 못 버틸 것 같다.

“욱! 윽!”

풀린 살들이 딸려 나가는 바람에, 쑤욱 기둥이 빠질 때마다 꿀쩍거리며 기둥을 따라 쭉 눌어붙은 점막이 따라가는 소리가 났다. 찹쌀떡처럼 길게 늘어지다 완전히 빠져서야 툭 기둥을 놓아주는 그 쫄깃해 보이는 살을 찍지 않을 리 없었다.

유진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눈이 까뒤집어지며 죽을 것 같은 신음을 내뱉었다. 박힐 때마다 엉덩이가 저절로 들렸다가 묶인 허리 때문에 바들거리며 내려오고 허벅지 안쪽이 강하게 수축하며 덜덜 떨렸다.

속이 진탕 뭉개진 것 같다. 커다란 팔뚝이라도 박고 있는 것 같았다. 구멍 안의 온 살이 다 짓뭉개지며 허물어졌다. 말랑거리던 살이 걸쭉하게 녹아내려 기둥을 빠짐없이 감쌌다. 기둥의 피스톤질에 맞춰 저절로 조여들기도 하고 혼자 움직이듯 열리기도 했다.

“아, 아! 아!”

꽝꽝 치고 들어오는 기둥이 안쪽의 도드라진 부분까지 전부 짓누를 때마다 눈앞이 흐려지며 거대한 파도가 덮치는 것 같았다. 숨을 간신히 내쉴 때마저 꽝 박히자 입에서 욱, 하며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웩! 컥, 커흑! 윽! 악! 아아악!”

입에서 지금까지 받아먹었던 남자들의 정액이 웩 쏟아졌다. 컥컥거리는 와중에도 쿵쿵 박아 대는 속도는 줄지 않았다. 남자들은 웩웩거리는 모습마저 재밌다고 찍으며 킬킬거렸다. 특히 그 남자. 방송을 진행하는 그 빌어먹을 새끼가 가장 즐거워했다.

남자들이 날 손가락질하며 뭐라고 떠들어 대고, 남자가 캠에 뭐라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내용이 뭔지는 들리지 않았다. 시야도 희미하고, 귀도 먹먹하고, 몸을 떨리게 하는 감각만 뇌에 꽂혀 들어와 몸이 망가져 가는 것 같았다.

두려움에 몸을 뒤틀며 악을 질러 대도 남자들은 좋아했다. 오히려 더 몸부림치라고 부추기듯 강하게 박히는 기둥 틈새로 손가락을 쑥 밀어 넣었다.

“아아! 흐아! 아, 아으어!”

질펀한 액체와 빠듯하게 구멍을 채운 기둥 사이로 기다란 손가락이 꾸우욱 내벽을 누르며 둥글게 구멍을 쓰으윽 쓸었다. 죽을 것 같은 쾌감이 목을 조른다. 크게 벌린 입으론 다시 성기가 콱 들이박혀 숨도 막혔다. 배가 너무 아프다. 아니, 너무 좋은가. 아냐. 너무 아픈데. 그런데.

“아, 흐앙! 아! 어흐으…! 응!”

달뜬 교성이 한발 늦게 귀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물던 성기를 놓고 교성을 토해 내자 뺨에 둔탁한 고통이 일며 머리채가 잡혀 입 안에 다시 성기가 들이찼다.

“웁! 으븝!”

목구멍까지 꾹 박히는 성기를 밀어내고 싶었지만 손은 움직일 수 없었다. 온몸이 들썩이는데 움직임이 제한당하니 미쳐 버릴 것 같다. 정말 미칠 것 같아. 어쩌지. 죽을 것 같아.

기둥이 드나드는 구멍은 이제 따가웠다. 빠른 마찰에 불이 이는 것처럼 뜨거웠다. 화끈거리는 고통 속에서 내벽을 쓰다듬던 기다란 게 쑥 빠져나왔다. 그러나 커다랗게 찬 기둥은 여전했다.

“음, 안 되겠다. 애 죽겠네. 조금 줄여 줄까요?”

유진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성기를 목에 처박고 있는 남자가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럴까요? 뭐,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까.”

우웅 소리가 살짝 작아졌다.

“허으, 하윽! 흐….”

그래 봤자 보통 속도로 박히는 기구이기에 달달 떠는 몸이 가라앉진 않았다.

“아이고, 아주 줄줄 싸네. 뭐야? 푸하학! 앞도 알아서 비비고 있었잖아. 허리 열심히 흔들더니만.”

“아주 윗구멍도 아랫구멍도 꽉꽉 차니까 좋았어?”

“씨발… 얼굴 진짜….”

정액에 파묻힌 얼굴이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정신이 혼미한 듯 몽롱히 잠겨 있는 표정에 남자들의 목울대가 느리게 넘어갔다.

“그냥 올려 두죠.”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진탕 젖은 구멍에서 모조 성기가 완전히 빠져나갔다. 허리가 들려 바닥에 엎어진 유진의 구멍은 달싹거리며 액체들을 줄줄 뱉어 냈다. 뒷구멍은 정액을 먹여 준 것도 아닌데 혼자 싸지른 액들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정액이 흠뻑 젖은 얼굴이 바닥에 닿자 쯜극, 거리는 소리와 함께 정액이 묻었다. 유진이 앉았던 안장은 아주 엉망이었다. 뒷구멍에서 나온 액과 성기에서 나온 정액들로 매끈한 가죽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마지막까지 기념사진을 찍은 열두 명의 남자들은 반들반들한 얼굴을 한 채 욕구를 잔뜩 풀어 후련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성훈은 진탕 젖은 몸을 구석구석 캠에 담아 막대한 후원을 얻은 후 방송을 종료했다. 만족스럽게 머리를 쓸어 올린 뒤 아직도 진정이 안 된 몸에 다가갔다.

“응?”

정액이 덕지덕지 묻어 있어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눈을 찌푸리며 처연하게 울고 있었다.

“아파? 좋았잖아. 아주 자지러지더니만.”

그 말에 유진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가녀리게 흘러나왔다.

“네 시간이 그리 긴 건 아닌데.”

“흐으윽….”

씨발. 개씨발. 네가 박혀 봐, 개새끼야.

정제되지 않은 욕들이 입 안에 굴러다녔지만 이것들을 실제로 입 밖으로 끄집어낼 만큼 정신이 빠지진 않았다.

“그래, 그래. 씻고 밥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자기 일 아니라고 대충 말하는 뻔뻔한 낯을 보고 있자니 정신을 놓고 욕을 지껄일 것만 같아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음? 울어도 되는데. 울음 참지는 마. 우는 얼굴도 꼴리거든. 느낄 때처럼 눈도 빨개져서 아주….”

남자가 말을 잇다 침을 삼켰다. 느릿하게 움직인 목울대를 보자 기분이 더 더러워졌다. 더 버틸 수 없이 가물거리는 의식에 눈을 감았다. 어두운 시야 속에서 시궁창 같은 인생을 한탄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방송용 기본 멘트가 들릴 때마다 몸서리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오늘은 털이 복슬복슬 달려 있는 수갑으로 손목이 고정된 채 뒤로 묶였다. 또 침대 헤드에 고정된 건 아니었기에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남자가 묶은 대로 멍하니 앉아 있자 어깨에 손을 얹어 옆으로 안는 손길이 느껴졌다.

“얘 구멍이 생각보다 잘 느끼더라고요. 어제 보신 것처럼. 그래서 오늘은 가슴을 개발해 볼까 합니다.”

남자 특유의 싱글벙글한 표정과 저 입에서 나온 미친 말이 잘 매치되지 않았다.

…뭘 하겠다고? 내가 방금 들은 게 맞나? 가슴? 이 사람은 내가 남자란 걸 모르는 건가? 내가… 가슴으로 뭘 느낄 수 있을 리 없는데. 미친 새끼….

여러 의문들이 욕과 뒤섞여 떠올랐다. 날이 갈수록 더욱 괴상망측해져 간다.

“짠. 그래서 제가 오늘은 장난감도 이렇게 준비를 해 왔습니다.”

남자가 방에 들어올 때 가지고 왔던 종이봉투 안을 뒤적거리자 그의 손에 기다란 사슬 같은 것이 걸렸다. 남자는 은색 가느다란 사슬의 양 끝에 달린 집게를 자랑스럽게 들어 올려 보였다.

“우선 가벼운 거부터 해야죠. 저희 방은 우리 귀여운 구멍들의 상태를 중요시하는 터라 늘 약한 단계부터 시작을 해서~.”

이젠 아예 구멍이라 칭하네. 정말 사람 취급도 안 해 준다는 걸 새삼 또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이름이 불린 적이 한 번도 없었지. 그건 그렇고 약한 단계부터 시작을 했다니. 저절로 코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이것도 있고, 이건… 좀 고민을 해 봐야겠네요.”

남자가 이어 들어 올린 건 타원형의 작은 바이브레이터 두 개와 동그란 분홍 장식이 달린 피어싱이었다.

피어싱을 들어 보일 땐 기겁을 하며 저것만은 절대 안 되겠다고, 설령 남자한테 맞는다 해도 어떻게든 저것만은 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혹시… 혹시라도 달면 곧장 뜯어 버릴 것이다.

“음… 괜찮긴 한데 이건 아무래도 호불호가 뚜렷해서. 디자인도 좀 더 다양한 걸 보며 생각해 봐야 될 것 같네요. 일단 이건 패스하는 걸로.”

유진은 속으로 내심 안도하며 겨우 이딴 거에 안도하는 자신이 당황스러웠다. 인생이 전개되는 데 내 의견이 반영된 적 자체가 적긴 했지만 저 남자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몸 상태가 결정된다는 게 정신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자, 일단 이거부터.”

본능적인 거부감에 몸을 뒤로 물렸지만 어차피 침대 위에서 도망가 봐야 헤드에 부딪혀 멈추고 말았다. 남자가 뒤로 쭉 뺀 등을 안듯 당겨 끌어왔다. 몸에 무슨 짓을 하든 아무것도 제지하지 못한 채 남자가 하는 양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집게가 입을 쫙 벌리며 연한 피부 살점을 꼬집어 고정되었다.

“아!”

바로 퍼져 나가는 고통에 신음했지만 다른 쪽 유두에도 집게가 물려졌다.

“그러고 보니 얘 유두에 너무 관심이 없었네. 지금부터라도 많이 귀여워해 줘야겠죠? 서운했겠다.”

남자가 사슬을 가볍게 쥐고 앞으로 당기니 양 유두가 떨어져 나갈 듯한 고통에 몸이 저절로 딸려 갔다. 살짝 위로 들어 올리는 손길에는 가슴을 위로 향하며 무릎을 살짝 들어 따라갔다. 남자가 경박한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omrg990: 핑두 실화냐? 지금까지 저걸 그냥 놔둔 게 ㄹㅈㄷ」

「goaqjrj: ㅅㅂ 피 몰린 거 ㅈㄲㅜㅠㅠㅠㅜ 」

「qorhvk36936: 시참 언제 해요? 진짜 이번 건 꼭 간다」 (*시참: 시청자 참여 방송)

「fkausajrrhtlv: 입술 깨문 거 존나 귀엽다 벌써 느끼나?ㅋㅋㅌㅋㅋㅋㅋㅋㅋㅋ」

“얘 젖꼭지 색도 진짜… 피부색 때문에 더 도드라지네. 구멍도 그렇고 애초에 이렇게 타고난 것 같아요.”

성훈이 유두를 집고 있는 집게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유진이 읏, 소리를 하며 민감하게 몸을 움츠렸다.

“근데 가슴 개발한다고 가슴에만 뭘 할 순 없잖아요. 뒤도 영~ 허전하고. 가슴 개발도 어느 정도 쾌락이 있어야 나중에 만져 줬을 때 젖꼭지만 툭 쳐 줘도 발발 떨면서 가지.”

남자가 늘어지는 말투로 느릿느릿 말꼬리를 늘이며 서랍을 뒤적거렸다. 저기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아는 나로서는 절망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이 정돈 그냥 들어가지?”

“아뇨….”

남자는 처웃는 낯으로 울퉁불퉁하게 휘어져 있는 모양의 성기 모형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표정이 역겨웠다.

“내숭 떨지 말고. 너 존나 잘 느끼는 거 다 알아. 어제 녹화분 틀어 줘?”

“…….”

개새끼.

“이제 젤 안 써도 될 것 같은데. 뭐 넣어 주기만 해도 질질 싸더니만.”

“…….”

개씨발 새끼.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자는 젤을 치덕치덕 묻혀 주긴 했다.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자 남자의 손에 다리가 활짝 벌어졌다. 중앙에 축 처진 성기를 드러낸 채 다리를 M자로 연 모습이 커다란 모니터 화면에 쓸데없이 잘 비쳤다.

새하얗게 질린 낯이 서로를 마주 봤다. 고개를 홱 돌리며 외면했지만 시선이 절로 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질 낮은 음담패설만 가득한 쓰레기통 같은 채팅 창도,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도 고개만 들면 시야에 가득 찼기에 안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안 보이면 몰라도.

“아으!”

고개를 돌린 새 남자는 구멍에 울퉁불퉁한 성기 모형을 꾸욱 밀어 넣었다. 미끄러운 젤이 내벽에 묻으며 찔꺽찔꺽 서서히 들이찼다.

“어제 머신 때문인가 완전 야들야들하게 잘 들어가네요? 손가락 넣어서 휘저으면 물렁물렁 다 엉겨 붙겠다.”

어제의 그 감각. 가슴께가 답답해지며 해소하고 싶어 미치겠는 그 감각이 손안에 잡힐 듯 말 듯 아른거렸다. 고개가 휙 뒤로 젖혀지며 긴 한숨이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다.

“흐으….”

“와, 이젠 여유롭게 음미까지 하네? 진짜 어떻게 된 몸이야.”

찔꺽거리며 몸체를 돌린 딜도가 쑤우욱 깊이 들어온다. 압박감에 숨을 가쁘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입새론 앓는 듯한 약한 신음이 연신 새어 나갔다. 배에 가득 차는 딜도에 엉덩이가 절로 들썩였다. 자세가 불편해서 차라리 엎드리거나 눕고 싶었다.

“아으으….”

저 빌어먹을 딜도는 모양이 울퉁불퉁 중간이 휘어져 있었기에 달라붙는 점막도 굴곡지게 휘어지는 듯했다. 구멍이 딜도의 모양을 맞춰 알아서 조물거리는 느낌에 발가락이 안쪽으로 굽어졌다. 손끝과 발끝이 모두 경직되듯 뻣뻣해졌다가 확 풀리듯 폐에 숨이 가득 찼다. 가슴이 부풀어 오르도록 숨을 후욱 들이쉬었다가 드문드문 내쉬고 그러다 다시 목이 조이듯 숨이 막혔다. 진짜 돌아 버리겠다.

“학, 흐, 흑.”

신음하며 아래로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가늘게 뜨자 양 유두를 야무지게 물고 있는 집게 아래로 볼록 나와 있는 배가 보였다. 남자가 볼록한 배 위로 구멍에 박힌 모형의 모양을 덧그렸다. 꾹 누르며 위로 쓰는 손길에 뒤로 묶인 손목이 줄을 끊어 내고 싶은 듯 팽팽하게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느낀 남자가 살풋 웃고 더 아래로 내려가 성기를 쓰다듬은 후 구멍으로 갔다. 성기 모형을 먹어 동그랗게 벌어진 구멍 주위를 슬슬 매만지며 모형 손잡이를 잡아 조금 더 밀어 넣었다.

“읏!”

“이건 재미없다.”

남자가 양 집게를 연결한 사슬을 팍 당겨 떼어 냈다.

“악!”

집게가 유두를 떼어 내듯 강하게 당기다 툭 떨어져 나갔다. 쓰라린 감각에 생리적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성훈이 약하게 부어오른 채 빨갛게 물든 유두를 달래듯 엄지로 쓰다듬고 손가락 사이에 끼워 비벼 주었다. 모형의 굴곡이 드러난 허리가 살짝살짝 흔들리며 앙탈 부리는 듯한 신음이 흘렀다. 이거 정말 전에 어디서 구르다 온 거 아닌가.

“시참 전까지는 아래도 위도 둘 다 개발돼야 하는데. 아래야 잘 느낀다 해도 위는….”

남자가 손을 뻗어 아까 꺼내 놓았던 작은 타원형의 바이브레이터를 투명한 스카치테이프로 유두에 붙이고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일단 약하게 가 볼까요?”

“……!”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찌릿거리는 충격이 몸에 파직 꽂혀 들었다. 비명조차 나오지 못할 만큼 갑작스러운 자극에 몸이 감전이라도 된 양 파드득 떨렸다.

유진은 순간적으로 모든 힘을 잃고 기절이라도 하듯 옆으로 픽 쓰러졌다. 그 잠깐의 충격이 지나고 갑자기 꺼진 컴퓨터에 다시 전원이 들어오듯 자신의 현재 상태가 서서히 인지됐다. 입에선 연신 거친 숨을 들이쉬며 아, 으… 거리는 이지 잃은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잔 떨림이 몸을 휩쓸고 유두가 타는 듯이 뜨거워졌다. 작은 타원형 바이브레이터를 내려다봤다. 단순한 진동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건 설마….

“오. 약하게 했는데도 반응이 세네.”

남자가 리모컨 위의 손가락을 떼며 흔들었다.

“학, 흐… 으….”

뒤로 묶인 손목도 작은 떨림을 품고 있는 게 느껴졌다. 설마 무슨 전기 충격기 같은 거라도 단 건가? 이… 이 미친 새끼….

성훈은 쓰러진 몸을 일으켜 자신의 무릎에 앉히곤 다시 아까처럼 M자 모양으로 다리를 활짝 열어 젖혔다.

“기분 좋은 거 해 줄까?”

남자가 구멍에 박힌 딜도의 손잡이를 잡아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계속해서 위로, 더 위로 부유하는 도취감은 아래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게 만들었다. 제 안에 줄곧 품고 있으려는 것처럼 꽉 죄여지는 구멍을 남자도 느꼈는지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점차 힘을 얻어 가는 성기에선 조금씩 배뇨감이 일었다. 뭔가가 나올 것 같은 감각에 다리가 자꾸 오므려지는데 남자는 이를 제지하듯 살짝이라도 다리를 모으려 하면 바로 쑥 박아 와 힘 때문에라도 저절로 다리가 벌어지게 했다.

갑자기 깊은 곳까지 콱 박히는 감각은 그 이상한 배뇨감을 더욱 촉진시켰기에 애써 다리에 신경 썼다. 절로 다리가 모아지면 바로 흠칫해 벌리고, 허벅지 안쪽을 움찔 떨면서도 오므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모두 무용하게 시간이 지나자 남자는 다리를 활짝 열어도 콱콱 깊이 쑤셔 왔다.

“아, 아… 저, 저 쌀 것 같… 흣!”

수치심을 애써 감추며 덜덜 떨리는 말로 애원해도 남자는 시원하게 싸지르라며 웃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싼다는 걸 다른 의미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큰일이었다. 부푼 부분이 강하게 쳐올려질 때마다 쾌락에 자지러지고 뒤로 젖혀져 남자의 가슴에 기대면서도 앞에서 부풀어 가는 배뇨감에 안절부절못했다.

지금도 온갖 조롱과 성희롱이 쏟아지는데 여기서 정말 오줌이라도 쌌다간…. 게다가 남자에게 맞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럽게 싸질러서 방송을 망쳤다거나 뭐 그런 이유로.

“저, 저 윽! 정말로, 그, 으읏! 흐, 소, 소변이….”

얼굴을 붉히면서도 작게 말했다. 수치심과 자괴감에 괴로웠지만 지금 말 안 하고 싸면 더한 치욕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차라리 지금 말하는 게 낫다.

“응. 괜찮아. 그냥 싸. 그런 취향인 사람도 많아.”

하지만 남자는 나름 숙고하다 뱉은 작은 말을 여상하게 넘기며 리모컨을 들었다. 아무래도 남자는 일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진짜 나올 것 같은데.

남자를 설득하고 화장실로 가기 위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데 갑자기.

“……! 허, 흐…!”

눈앞에서 정체 모를 불빛이 번쩍 튀며 작살에 꽂힌 물고기처럼 몸이 파득 강하게 떨렸다. 목구멍이 막힌 듯 숨도 신음도 트이지 않은 채 찬란하게 터지는 불꽃을 망연히 보았다. 뭔가가 팍 터진 것 같았는데 곧바로 아득한 감각이 닥쳐오며 몸은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어디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면서도 너무 먼 소리 같았다. 옆방에 틀어 놓은 TV 소리처럼 작은 웅얼거림이 귓가에 닿기도 전에 부서지고, 지금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의식되지 않았다. 모든 감각이 한순간 다른 차원으로 옮겨진 것처럼 불분명하다.

유진은 정신을 놓은 것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중간중간 파드득 몸을 떨었다. 까뒤집어진 눈이 돌아왔는데도 초점을 잡지 못하고 환상이라도 보는 것처럼 몽롱했다.

뒷구멍엔 딜도가 박혀 있는데도 액이 팍 터져 기둥을 타고 흘러내려 손을 적셨다. 혼자 세우고 혼자 가 버린 앞의 성기는 침대보를 푹 적셨다. 남자의 성기임에도 묽은 정액이 아니라 맑은 물이 터졌다는 게 재미있었다. 쪼르르 맑은 물소리가 들리고 점차 성기가 가라앉았다.

겨우 딜도를 좀 박아 주며 유두에 부착한 기구의 전기 충격 강도를 살짝 올린 것뿐인데 이런 반응이다. 두 번 했다간 기절이라도 할 것 같네. 아니, 지금도 반 정돈 기절한 거 아닌가? 영 정신을 못 차리는데.

갑작스러운 충격에 혹사당한 유두는 퉁퉁 부어올라 무르녹은 듯싶었다. 이왕 장난감을 가져온 거, 여러 번 가게 하며 더 길게 놀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약했다. 아쉽지만 손으로 만져 주며 구멍이나 더 박아 줘야지. 힐끗 채팅방을 보고 열렬한 반응에 미소 지은 성훈은 아쉬움을 삼키며 축 늘어진 유진의 뺨을 툭툭 쳤다.

“허으으… 흐….”

유진은 바르르 떠는 몸을 뒤척이며 눈을 깜박였다.

“아, 으아… 으응….”

언어를 모르는 아이처럼 신음만 웅얼거리며 칭얼대듯 품속에 파고들었다. 꽤나 귀여운 작태였지만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쾌감 속을 흐느적거리는 얼굴은 야해 빠져서 빨리 박아 주고 싶어졌다.

딜도를 빼내자 구멍 속에 고여 있었던 액이 주르륵 뻥 뚫린 입구를 타고 흘러내렸다. 빼 줬는데도 유진의 신음은 더욱 가빠졌다. 열심히 호흡하며 힘이 탁 풀려 아무렇게나 늘어진 다리를 오므리려 들었다.

그 느리고 미약한 힘을 구경하다 다시 확 벌렸더니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는 게 어쩐지 사랑스러운 동시에 가학심을 충동질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한 감정은 역시 성욕이었다. 흐물거리는 구멍이 뻐끔뻐끔 움직이는 게 화면에 적나라하게 비치는데 그 재촉을 거절할 수 없었다. 빨리 박아 달라고 오물거리는 거겠지.

유진의 허리를 들어 자신의 발기한 성기에 앉혔다. 유진이 거부하듯 몸을 버둥거렸지만 손목이 뒤로 묶인 탓에 아무런 제지도 가할 수 없었다. 설령 두 손이 자유로웠어도 어차피 힘에 짓눌려 반항할 수 없었겠지만.

가볍게 유진을 들어앉힌 성훈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 유진의 묶인 손목과 머리채를 잡았다. 자신이 일어남에 따라 유진 역시 무릎을 꿇게 되었다. 등 뒤의 힘에 허리가 꺾인 채 다시 꽉 찬 구멍으로 헉헉거렸다.

힘겨운 듯 발발거리면서도 다디단 음료라도 들이킨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명백한 희락이 엿보이는 표정이 모니터에 잘 담기도록 머리채를 당기며 그 모든 반응들을 적나라하게 내보냈다. 방 안은 또다시 신음으로 가득 찼다.

***

습한 숨소리가 좁은 방 곳곳에 끈적거리게 스며들었다. 어둠에 잠긴 방 안에선 책상 위의 네모난 모니터 화면만이 빛을 냈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남자의 간드러지는 교성이 탁탁 무언가를 흔드는 소리와 섞여 들었다.

“하… 씨발 존, 나 느끼네.”

화면 안의 남자는 뒤로 꺾인 허리로 볼록한 배를 보란 듯이 내밀며 연신 신음을 내지르고 있다. 뻑! 살을 때리는 마찰 음이 들릴 때마다 남자의 허리는 더욱 꺾여 들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잔뜩 벌어져 있는 다리 사이를 보면 허벅지에 가느다란 한 줄기 액체가 주르륵 흐르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남자의 앞 침대보는 이미 몇 번의 분수로 흥건히 젖어 있는 상태였다.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은 시트에 또다시 물이 투둑 떨어졌다.

남자는 아주 죽으려 하며 허리를 뒤틀었다. 마른 뼈대를 가진 새하얀 몸의 가슴팍엔 홀로 붉게 부어올라 있는 유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 씨발. 저걸 당기고 빨아 더 자지러지게 만들어 주고 싶다.

이미 혹사당해 퉁퉁 터질 듯 부풀어 있는 돌기였지만 저 상태에서 한 번 쭉 당겨 주면 또 질질 싸면서 갈 것 같은데. 뒷구멍으로도 줄줄줄 싸며 약에 전 것처럼 느낄 것이다.

남자는 성기를 붙잡은 손을 움직이며 한 손으로 타자를 쳤다. 크림 파이 만들자, 벽 치기도 보고 싶다, 시참 언제 하냐, 유두 피어싱은 안 하는 거냐 등 여러 음습한 요구들이 빗발치는 채팅 창엔 박으면서 유두도 괴롭히자는 자신의 요구도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남자는 후원을 하고 다시 글을 남겼다.

[학, 아아악! 흐, 아! 안, 아니, 아흐응, 읏!]

“와, 씨발. 진짜… 윽!”

뒤에서 허리를 격하게 움직이는 남자가 통통한 살점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비볐다. 앞으로 쭉 잡아당기자 남자는 숨이 막힌 듯 끅끅거리다가 고개를 젖히며 더욱 큰 교성을 내질렀다.

뒤로 확 젖혀진 고개에 흰 목선이 길게 드러났다.

턱에서부터 흘러내린 타액이 가는 목에도 주르륵 느릿하게 흘렀다. 흔들리는 몸을 따라 목 언저리의 머리칼도 살랑거리고, 땀에 젖은 몸 곳곳의 반들거리는 피부가 머금은 물기로 더욱 야해 빠져 보였다.

당장이라도 저 크게 벌린 입에 좆을 쑤셔 넣고 싶고 살랑살랑 조르는 뒷구멍에 성기를 처박아 정액을 토할 때까지 싸지르고 싶다. 그러고 보니 저번 방송이 정말 좋았었지. 구멍으론 머신에 계속 박히면서 입으론 남자들의 좆을 물고.

타액이 고인 질척한 입 안에 좆을 처박는 기분은 어떨까. 촉촉한 점막이 기둥을 감싸고 쪽쪽 빨아 당기는 힘에 좆이 반들반들하게 젖어 가고. 전에 보니까 볼이 오목해질 정도로 빨아들이던데, 그 축축한 압력을 그대로 느끼면서 자기의 좆을 열심히 애무하는 저 붉은 얼굴을 보면….

처음엔 좀 맹하게 생겨서 그리 꼴리지도 않더만 저건 아주 타고난 걸레였다. 순둥한 얼굴로 울상을 짓고 있다가 구멍에 뭐라도 박아 주면 좋다고 표정이 확 바뀌었다. 희멀겋던 피부가 불그스레 물들어 가고, 단정한 눈꼬리가 오묘하게 곡선을 그리며, 굳게 닫힌 입매에서 창부 뺨치는 교성이 터져 나갈 때 그 괴리감이 하반신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딱 꼴리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박아 보진 못했지만 딱 봐도 구멍이 아주 야들야들하게 성기를 물었다. 다리를 쫙 벌리고 박히는 모습을 보면 구멍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수축하는 꼴이 훤히 보였다.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박힌 물건의 모양대로 오물거리며 꾹 닫혀 있다가도 뭐가 더 들어오면 방금의 모습이 내숭이었다는 듯 말랑한 살점으로 삼키려 드는 게 아주 희대의 요부 같은 구멍이었다.

저 구멍에 꼭 박고 싶다. 반드시 박을 것이다. 시참 때 박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사창가로 팔려 가면 꼭 찾아가 박고야 말 것이다. 저 구멍에 좆을 박으면 아주 기분이 째지겠지.

유두도 잘근잘근 씹으며 괴롭혀 주고, 요도에 막대기를 박아 뒤로만 가게 한 채 배가 터져 부풀 때까지 정액을 싸 준 다음 마개를 꽂고 구경할 것이다. 잔뜩 머금은 정액으로 배가 부글거리면 자연히 빼 달라고 애원을 해 오겠지.

난 느긋하게 펠라를 받다가 크게 부푼 배를 발로 꾹 누를 거다. 그럼 압력에 눌려 아래로 퍼진 정액 때문에 마개가 뽕 뽑혀 나가고 분수처럼 철철 쏟아져 나오고. 그렇게 배 속의 정액이 다 빠져나가면 흐물거리는 구멍에 또 존나 처박고.

아, 씨발. 또 쌌다.

***

“헉, 으, 흑….”

드디어 끝났다. 사실 끝난 지 꽤 됐지만 정신 못 차리고 계속 울며 몸을 떨다 이제야 좀 제정신이 든 참이다.

이제 구멍은 휑했지만 아직도 남자의 좆이 깊이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액을 빼낸답시고 이미 풀릴 대로 풀린 구멍 안을 손가락으로 헤집는 바람에 엉엉 울며 팔뚝에 매달린 걸 마지막으로 방송은 꺼졌다.

박힌 것도 없고 남아 있는 정액도 빠져나갔다. 그런데도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남자가 컴퓨터 앞에서 뭘 하는지 달칵거리다가 널브러진 내게 다가왔다.

구멍만이 아니라 가슴팍에도 정액을 싼 남자 때문에 퉁퉁 부어오른 유두는 젖이라도 나온 양 정액이 묻어 있었다. 하필이면 또 절묘한 위치여서 더욱 그렇게 보였다. 유진은 그 기분 나쁜 우연에 눈을 찡그렸다. 남자는 통통한 유두를 검지로 툭 장난스럽게 치며 죽은 생선 같은 몸을 들어 올렸다. 팔다리가 축 아래로 처지며 액체처럼 꿀럭였다.

한 번의 장난스러운 손길이었지만 유두에 손가락이 닿은 순간 몸이 소스라치게 움찔거렸다. 전기가 통했던 그 도구도 아니고 겨우 손가락 하나의 가벼운 접촉이었는데도 민감하게 솟아오른 유두라 그런지 약간의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순간적으로 구멍이 움찔거릴 정도로 예민하게.

방송을 하지 않을 때 종종 들어오던 남자들은 이제 어떠한 제약이 풀렸는지 하루에 한 번 구멍에 박고 갈 수 있게 되었다. 단, 하루에 한 번뿐이었다. 어떤 이가 이미 한 번 박았으면 다른 이는 박을 수 없었다. 그럴 경우 그들은 내 입을 구멍인 양 사용하여 처박고 미련이 남은 손길로 정액을 머금은 구멍을 만지작거리다 가곤 했다.

점차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방송이 아니면 구멍에 박힐 일은 없었는데 이젠 그것도 아니었으니. 그리고 말이 한 번이지 그 한 번은 나에겐 한 번 같지도 않았다. 근육질의 몸이 장난감처럼 몸을 구겨 지칠 때까지 허리를 붙잡고 실컷 박아 넣다가 구멍이 꽉 차도록 싸지른 후에야 나갔다.

그 한 번의 섹스를 매일 하니 몸이 축나는 듯했다. 하나같이 체력이 좋고 덩치가 커서 더욱 힘들었다. 심지어 그 모든 강압적인 관계 속에서도 쾌락을 여실히 느낀다는 게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

갑작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거구의 남자에게 몸이 반으로 접히다시피 한 상태에서 박힌다는 건 결코 기꺼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싫었고 힘들었다. 그런데도 그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몸은 멋대로 반응했다. 싫다고 몸부림치는 뇌를 쾌감에 진탕 절여 놓으며 억지로 세뇌하듯 좋은 기분을 때려 박는 것 같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풀리는 구멍과 표정을 보며 박아 주니까 좋아 죽는다고, 이젠 자지를 보기만 해도 구멍이 젖는다고 수준 낮은 음담들을 해도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내 몸은 이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젠 유두를 한 번 튕겨 주기만 해도 허리가 부르르 떨리며 구멍이 젖어 들었다. 손가락이든, 딜도든, 성기든 구멍에 뭐라도 넣어 주면 쑤셔 달라고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그리고 실제로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부어오른 살점이 스치기라도 하면 살면서 겪어 보지 못한 다채로운 황홀함이 뇌리에 꽂혀 들었고 벅찰 정도의 희락이 등골을 타고 올라갔다. 허리를 뭉근히 압박하는 저릿함은 사지로 뻗어 나가 손끝과 발끝까지 아릿하게 울리게 했고, 살점이 뭉개질 때마다 튀기는 전류 같은 게 온몸으로 뻗어 나가 딜도라도 된 양 격렬히 몸을 진동시켰다.

눈앞이 하얗게 탈색되는 와중 허리를 격하게 흔들다 펑 터지는 느낌에 나가떨어지는 감각은 하얀 시야를 아득히 까맣게 물들였다. 여운처럼 조용하게 퍼지는 잔여의 쾌감마저 미칠 듯이 좋았다. 너무 싫은데 너무 좋았다.

“아, 여러분! 드디어 시참 신청 일이 정해졌습니다. 참여 신청은 이틀 동안 진행되며, 미리 말씀드렸던 대로 후원 액수를 우선순위로 신청 받을 예정이에요.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럼 나중에 봐요!”

유쾌한 어조의 말이 끝나고 남자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아무 결박도 없었지만 힘들어서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벽에 손을 짚고 뒤로 박혔는데 다리가 풀려 자세가 흐트러질 때마다 두터운 패들이 무섭게 날아들었다. 엉덩이가 부풀어 터질 만큼 빨개졌는데 남자는 부어올라 따끈해진 엉덩이 두 쪽에 성기를 끼워 비비면서 손가락으로 유두를 짓뭉개 돌렸다. 가끔 성기로도 내려와 기둥을 잡아 거칠게 몇 번 흔들고, 유두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기거나 손바닥 전체로 가볍게 때리는 등 일부러 흐트러질 만한 자극을 줄곧 주었다.

자극이 쌓여 갈 때마다 더욱 민감해지는 몸 때문에 결국 엉덩이가 시퍼렇게 멍들 정도로 맞고 나서야 방송이 끝났다. 성기가 빠져나가자마자 몸은 옆으로 픽 쓰러져 흥건한 액체가 가득한 바닥에 몸을 뉘였다.

남자는 손으로 자신이 때린 엉덩이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아기 볼처럼 뜨끈하다.”

저 더러운 입에서 나온 비유는 너무나도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아팠어?”

“…….”

그렇게 처맞았는데 안 아팠겠냐. 놀리는 듯한 물음에 안 그래도 바닥을 기던 기분이 처참히 구겨졌다.

“아이고. 아팠구나? 괜찮아. 약 발라 줄게. 당분간은 혼자 푹 쉬게 해 줄 테니까 겁먹지 말고.”

나도 남자를 몇 대 때리고 약 발라 줄 거니까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잠시 그런 망상을 좀 하다가 기분이 나아지긴커녕 더 불쾌해져서 그만두었다. 그리 통쾌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아픈 만큼 좋았잖아. 아주 질질 싸던데. 나중엔 때릴 때마다 싸고. 안이 얼마나 움찔거리던지. 무슨 구멍이 다리 안마기처럼 좆을 주무르던데.”

남자의 목소리는 배경 음처럼 무의식의 한쪽으로 넘겨졌다.

난 그냥 이곳만 나가면 만족할 것 같은데. 뭘 하든 이런 게 아닌 합법적인 일을 하면, 돈을 적게 받아도 어느 정도 굶지 않고 살 수 있을 정도면, 그래도 훨씬 행복할 텐데. 그럼 내가 정말 살아 있다는 생생함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물에 푹 담가졌다가 수건에 감싸져 나온 나한테 남자는 연고를 가져와 살살 발라 주었다. 그 조심스러운 손길마저 쓰라렸지만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남자의 말처럼 평소 벌컥 문을 열며 들어오곤 했던 우락부락한 남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도 갑자기 들어오지 않을까, 의심하는 마음도 있긴 했다. 그런데 진짜 쭉 조용했다. 여기 와선 처음 맞는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평소 손에 쥐여 주곤 했던 소일거리들도 없었다.

다음 방송 날은 며칠 후였고 지금은 온전히 쉴 수 있는 평일이었다. 심한 멍이 든 엉덩이 때문에 앉지도 못하고 내내 엎드려 있어야 하는 처지였으나 이렇게라도 쉴 수 있다면 조금 심하게 맞아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런 짧은 휴식마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우르르 남자들이 들어오자 작긴 해도 여유가 있던 방 안이 꽉 찼다. 무력하게 침대 위에 엎어져 있는 나와 우뚝 선 채 나를 바라보는 남자들을 보자 위압감에 몸이 짓눌러지는 것 같았다. 사냥개들한테 둘러싸인 사냥감이 된 기분이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걱정과 불안, 여러 두려움이 부풀어 갔다.

종종 말하곤 했던 시참일. 그것이 오늘이었다. 그간 나를 가만히 두었던 것은 이 방송을 위해서였던 거지. 불친절한 설명과 협박에 가까운 교육을 받은 어제도 분해서 잠을 못 잘 정도였다. 빌어먹을 인생에 다시금 절망감이 가득 찼다.

떨리는 시선을 겨우 들어 날 빙 둘러싼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안 돼. 안 돼. 이건 아니야. 한 사람한테 한 번씩만 박힌다 해도 열두 번이다. 이건 아니다. 나는 남자를 바라봤다. 이 상황을 시작한 사람, 그래서 끝낼 수도 있는 사람. 하지만 그는 생긋 웃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라는 되도 않는 말이나 남겼다.

여러 손들이 뻗어졌다. 눈앞에서 재앙이 닥쳐온 듯 절망스러운 아득함이 시야를 멀게 했다. 나체의 몸이 조심성 없는 손길에 휘어 잡히고 이리저리 돌려지며 정신없이 다수의 손길에 농락당했다. 귓바퀴를, 성기를, 뒷목을, 유두를, 허리를. 신체의 여러 부위들이 마구잡이로 만져졌는데 가장 많은 손길이 몰린 곳은 역시나 구멍이었다.

“아윽, 흐, 안, 안 들어, 앗!”

“이렇게 잘 들어가면서 뭔 개소리야.”

“와 진짜 존나 오물거리네. 힘주고 있는 거 아니냐?”

제각기 다른 길이와 모양의 손가락들이 구멍에 박혀 왔다. 누구는 검지를, 누구는 검지와 중지를, 누구는 엄지를. 서너 개, 네댓 개의 손가락들이 한 구멍에 쑤셔 들자 미칠 것 같았다. 허리가 계속 튀어 올라갔다.

달뜬 숨을 내쉬는 입엔 성기가 우악스럽게 박혀 들었다. 유두에도 누구의 것인지 모를 여러 손들이 달라붙어 오고 몸 구석구석에 주인 모를 성기들이 비벼졌다. 아직 시작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진이 빠졌다. 성기는 박히지도 않았는데 지쳤다.

두 다리가 귀 옆으로까지 올라가 고정되었다. 그 와중에도 구멍을 쑤셔 대는 여러 손가락들이 배 속을 간지럽혔다. 찔걱거리는 작은 소리가 점차 찰박거리는 물소리로 바뀌어 갔다. 아직도 남아 있기는 한 일말의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물들자 남자들은 저들끼리 음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다.

“와~ 손가락에 속살 감기는 거 봐라.”

“이야, 진짜 걍 박을 때마다 물이 나오네?”

“내가 구멍을 휘젓는 건지, 개울을 휘젓는 건지… 와, 진짜 존나 줄줄 흐른다.”

“웁! 우급, 읍!”

남자가 잔뜩 젖은 손가락 두 개를 내 눈 앞에 갖다 대고 흔들었다. 묻어 있는 물이 이리저리 튀고 한바탕 웃음이 와르르 퍼져 갔다.

입 안을 막고 있던 목구멍에 정액을 먹인 뒤 성기가 빠져나가고 젖은 손가락이 입 안을 쑤셨다. 시큼하고 비릿한 맛이 목으로 넘어가고 몰캉한 혀를 손가락이 가지고 놀았다. 나는 울면서 손가락을 합 물고 쪽쪽 빨았다. 사탕이라도 빨듯 쫍쫍거리는 소리에 비웃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간간이 터졌다.

난 반항할 수 없었다. 이미 어제 여러 협박들을 듣고 난 뒤였다. 조금이라도 반항하거나 대들면 한 달 동안 온 직원들에게 돌리며 정액만 먹일 거라고 했다. 끔찍한 말이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이 나를 더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모든 남자들을 뿌리치고 문까지 달려 도망치는 상상을 했지만 오래지 않아 구멍에 귀두를 들이민 성기에 끊겨졌다. 턱 막히는 압박감이 배를 채워 간다. 끝까지 밀어 넣은 성기가 천천히 뒤로 빠졌다. 내벽이 안달을 내듯 성기에 달라붙었다.

“와, 씨발. 저 살 딸려 올라오는 거 봐라. 존나 빨개. 미친 개꼴린다, 진짜.”

빠질 듯이 입구까지 나온 성기가 조르는 살에 빨려 가듯 다시 퍽 박아 들어왔다.

“웁!”

허리가 튀어 올라가며 울리는 신음은 입 안에 틀어박힌 성기에 의해 뭉개졌다. 웅얼거리듯 막히는 신음만 살짝살짝 울렸지만 성기가 구멍에 박혀 축축한 속살에 비벼지는 찰박거림, 음낭과 치켜 올라간 엉덩이가 부딪혀 살을 때리는 마찰 음 소리가 적막 위를 덮어 갔다.

입 안에서 피스톤질을 하는 성기가 박힐 때 나는 끅끅 소리와 쭙쭙거리며 빠는 소리 역시 난잡한 소리에 자연스레 섞여 들었다. 그 위에 남자들의 조롱과 음담까지 곁들어지자 그야말로 방탕한 장의 완성이었다.

언제부턴지 모르게 시야는 희게 물들어 있었다. 이게 구멍에 박히는 성기에 의한 것인지, 목구멍에 처넣는 성기에 의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손들이 자세를 잡게 했고 그에 따를 뿐이었다. 제 의지는 아니었으나 자연스럽게 그리되었다. 우악스러운 손들은 강제성을 부여하였고, 벌써 몸을 지배한 쾌락은 자의성을 부여하였다.

“이야, 이거 두 개도 들어가겠는데?”

“오. 할까요?”

“지금도 아주 헤벌레 한데 하나 더 박히면 기절하는 거 아니에요? 그것도 재밌긴 하겠다. 수면간도 해 보고 싶었는데.”

“아, 씹. 상상하니 꼴리네. 기절한 와중에도 박을 때마다 구멍으로 느끼긴 다 느낄 거 아냐. 씨발. 구멍으론 싸고 조이고 할 거 다 하는데 눈은 가만히 감고 지 몸에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면. 아, 젠장. 이거 진짜 하고 싶은데 뭐, 수면제 없어요?”

“에이, 재미없게 수면제를 쓰나. 안 쉬고 계속 박히면 언젠간 회까닥 하겠지. 그럼 그때 합시다.”

박고 있던 남자가 반색하며 뒤로 누웠다. 그로 인해 내 몸은 저절로 남자의 성기 위에 앉아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쾌감에 녹진해진 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인지 못 하며 그저 좀 더 박아 달라고 허리를 배배 꼬며 애달파할 뿐, 이미 박힌 구멍을 더욱 벌리는 손길엔 그리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구멍이 찢어질 듯한 고통이 피부를 찌르며 퍼지자 그제서야 풀린 눈으로나마 뒤를 돌아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였다.

“아, 아윽! 아!”

이미 성기가 박혀 있는 구멍으로 다른 남자가 성기를 들이밀고 있었다. 기겁한 유진은 격렬히 거부하고자 남자의 가슴팍에 손을 짚어 일어나려 했으나, 이미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에는 다른 귀두가 반쯤 들어온 뒤였다. 배에 붙을 정도로 일어서 있던 유진의 성기는 갑작스런 침입에 자극받아 정액을 사방으로 토해 냈다.

사정으로 더욱 예민해진 구멍 때문에 팔의 힘이 탁 풀리며 몸이 힘없이 남자의 가슴팍으로 쏟아졌다. 성기를 더 받으며 달달 떨리는 몸이 무서웠다. 계속해서 열리는 중인 구멍은 입구도, 속살도 불이 붙은 양 너무 뜨거웠다. 탄력을 잃고 녹아내리는 점막이 빈틈없이 성기를 감쌌다.

기둥의 중간쯤이 들어서자 유진은 제대로 된 신음도 못 뱉으며 꺽꺽 입만 크게 벌렸다. 그 와중에 커다랗게 벌어진 입을 보고 몸이 동한 남자는 제대로 숨도 못 쉬는 유진의 머리채를 잡아 올려 입에 그대로 발기한 성기를 박아 넣었다.

턱이 빠질 듯 벌어져 있던 입은 성기를 넣자마자 합 다물렸다. 남자의 입장에선 자신의 좆 모양대로 닫히는 입술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기둥 전체가 습한 입 안에 들어간 충족감으로 탄성이 나왔지만, 유진은 생존 본능으로 깨물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느라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여기서 남자의 성기를 깨물기라도 한다면 그 후 자신의 처분은 분명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유진은 다시 입을 벌렸다. 도저히 입 안의 성기를 빨 수는 없었다.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다. 산소 부족으로 기절할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온 감각이 구멍으로 몰려 있는 와중에 입으로는 성기까지 무니 정신이 조각조각 부서지는 것 같았다. 뺨으론 눈물이 하염없이 길을 내었다. 죽을 것 같다. 죽을지도 몰라. 죽으면 어쩌지. 공포가 목을 죄이는 와중에도 남자의 성기는 계속해 구멍을 벌려 갔다. 흐무러진 점막은 기둥이 들어오는 대로 달라붙고 뜨끈하게 감쌌다.

“와, 이거 씨발. 뭐라 하지. 존나, 윽. 따듯한 푸딩에 좆질 하는 것 같아요. 무슨 속살이 그냥 박는 대로 달라붙어. 하, 씹. 존나 조이고, 엄청 흐물흐물해요. 미친.”

“아, 그다음 저죠? 지금 좆 존나 터질 것 같은데. 아, 미치겠다.”

“후… 저거 표정 봐. 저거. 저 얼굴 보고도 좆이 안 서면 그게 고자 새끼지. 저건 진짜 그냥 사주부터가 걸레 될 운명이었겠죠.”

“아하학! 그러네! 저 정도면 운명이지. 구멍이고 유두고 조금만 비벼 줘도 아주 자지러지는데 생김새도 저러니. 안 홀리고 배기나.”

입 속의 성기는 어느새 정액을 방출하고 빠져나왔다. 유진은 정신없이 입 속 가득 찬 정액을 삼키며 숨을 가쁘게 들이쉬었다. 눈이 핑 돌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침내 성기가 뿌리까지 들이박혔다. 깊게 박힌 성기 하나와 빠져나가는 성기 하나가 동시에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토악질을 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구멍 전체가 꽉 막힌 듯 조금의 움직임조차 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남자는 성기를 중간까지 쑥 빼내다 갑자기 콱 꽂아 왔다.

“욱!”

속이 뒤집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며 깊은 곳에서 뜨끈한 물이 팍 터져 나왔다.

“와, 씨. 싸지도 않았는데 물 존나 출렁대네.”

“학, 허으윽… 하….”

유진의 손이 자연스레 배를 감싸 안았다. 성기가 배를 뚫고 튀어 나갈 것 같았다. 손바닥에 볼록한 배의 표면이 느껴져 불쾌했지만 여전히 배를 감싼 채 남자의 가슴팍에 쓰러져 있었다.

“뭐야. 임신하고 싶어?”

아래의 남자가 등을 쓸며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안… 저, 저 죽을… 흑, 제발….”

유진은 웅얼웅얼 옹알이하듯 애원을 뱉어 냈다. 연신 안 돼요, 안 돼요, 하며 울음으로 호소했으나 남자들에겐 그런 모습마저 외설이었고 천박한 유혹 정도로 비쳐졌다.

한 구멍 안의 두 성기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헉, 안 돼, 안, 돼. 흐, 안, 허윽…!”

하나의 성기가 빠져나올 때 다른 성기는 내장을 때리듯 깊숙이 속살을 찌르고, 그 성기가 빠져나가나 싶으면 뒤로 물렸던 성기가 부어오른 살을 박아 뭉개듯 쾅! 찧어 왔다.

“악! 헉, 허으, 악! 으응, 윽! 흑!”

허리가 부서지는 것 같다. 온몸이 만져지고 있는데 모든 감각은 아래로 향했다. 눈을 감으면 성기의 모양이 선명히 그려질 만큼 무른 속살은 성기를 모양에 맞춰 감싸고 움직임에 따라 밖으로 딸려 갔다가 안으로 말려들었다. 자의를 가진 생물체처럼 성기를 쫓다가도 끈에서 떨어진 꼭두각시처럼 축 늘어졌다.

“와, 이건 걍 읏, 야들, 거리다 못, 해 녹았, 는데요?”

“아, 그쵸? 흡, 존나 꿀렁거려. 걍, 액체 같아.”

“빨리 박고 싶다. 진짜… 세 개는 안 되나?”

“하하, 나중엔 가능할지 몰라도 지금은 안 됩니다~. 그러다 너덜거리면 안 되잖아요?”

정신을 놓고 본능에 따라 울부짖는 유진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촬영 중이던 남자가 가볍게 웃으며 운을 띄우듯 툭 말을 던졌다.

“그렇겠죠? 아~ 빨리빨리 합시다~. 이러다 넣기도 전에 싸겠어요.”

“아! 흐아, 흣! 허윽! 끅, 윽!”

두 개의 성기는 엇박자로 살을 찧어 왔다. 절척한 내벽을 빠르게 마찰하며 퉁퉁 부은 속살을 방아 찧듯 쾅쾅 찧어 박았다. 여러 번 찧은 떡처럼 진탕 물렁해진 살은 닿을 때마다 정체 모를 액체를 주룩주룩 흘렸다. 음식물을 먹다가 입새로 질질 흘리는 칠칠맞은 습관처럼 구멍은 주르륵 액체를 흘려보내 성기가 들이찬 구멍 사이의 아주 작은 틈새로도 물이 찔끔찔끔 새어 나왔다.

“흐! 아…! 아!!”

동시에 아주 깊은 곳까지 푹 박아 넣은 두 개의 성기가 꿀럭거리는 정액을 뱉어 냈다. 유진은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듯한 백치의 표정으로 멍하니 헐떡이며 눈물 젖은 눈을 가늘게 떴다. 타액과 정액으로 반들반들한 입가로 말이 되지 못한 소리가 흐느끼듯 샜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갔다. 성기가 차례로 빠져나가자 활짝 벌어진 구멍이 닫히지 않고 뻐끔거리며 정액을 꿀렁꿀렁 흘렀다.

“이게 건방지게 어디서 정액을 흘려?”

짐짓 엄하게 혼내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연신 빠끔거리는 구멍에 억센 손이 촥! 내리 앉았다. 모든 기력이 빠져나간 몸 어디에 그런 힘이 남아 있었는지 허리가 튀어 올라가며 크게 꺾였다. 안 그래도 파들파들 떨리는 몸이었는데 커다란 손바닥이 가장 민감한 부위를 조심성 없이 내려치자 벌어진 구멍에서 정액이 더욱 쏟아질 듯 나왔다.

유진이 서럽다는 듯 엉엉 울며 허리를 꼬았다. 이 와중에도 다리를 잡고 있는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어 다리를 활짝 벌린 상태였다.

눈물을 쏟고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처참하게 우는데도 남자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낄낄거렸다. 유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두 미친 사이코 새끼들 같았다.

방송을 주도하는 남자는 손에 든 카메라로 벌름거리는 구멍을 공들여 찍었다. 누가 꽉 쥐어짜기라도 하듯 정액은 크림처럼 물컹거리며 흘러내렸다. 잠깐 끊기나 싶을 때 배를 한 번 꾹 눌러 주면 연이어 흘렀다.

유진은 너무도 비참했다. 정액의 흐름에 움찔움찔 떨리는 몸도, 아직 쾌락의 여운이 남아 절로 간질거리는 아래도, 더러운 남자들의 시선들도.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러나 고단한 하루는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한 번에 두 개의 성기를 받아 내는 그 끔찍한 경험은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이었다. 그 후 남자들은 정상적으로 박아 오지 않았다. 죽을 것 같아 허덕이며 겨우 내뱉는 애원조차 그들에게는 유흥이었고 오히려 세 개를 박지 못해서 아쉽다며 낄낄거렸다.

배 속에 가득 고여 출렁거리는 정액을 미처 뱉어 낼 틈도 없이 하나가 나가면 다른 하나가, 어쩔 땐 두 개가 동시에 곧장 바로바로 박아 왔다.

한계까지 찬 정액은 성기의 피스톤질에 저절로 흘러 나갈 때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배 안에 그대로 남아 삽입된 성기의 크기와 더해 배 아래로 볼록 모습을 드러냈다. 정액이 넘쳐흐를 만큼 받아 낸 구멍에 두 개의 성기까지 끼워져 있으니 뼈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말라 판판했던 배는 도드라지게 부풀어 올랐다.

“흐학! 하하학! 저거 봐! 임신했다!”

“어? 뭐야. 언제 저렇게 부풀었어? 씹, 저거 가슴 빨면 모유 나오는 거 아니에요?”

“와, 이쯤 되니 어느 정도까지 부푸는지도 궁금해지네. 끝날 쯤 되면 남산처럼 개크게 부푸는 거 아닐까요? 아, 그 상태로 박으면 씨발 존나 좋겠다.”

거친 손길에 유린되어 도톰하게 부어오른 유두를 누군가가 한 움큼 깨물었다. 그래 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애초에 그럴 리 없는데도 남자는 쪽쪽 게걸스럽게 빨아 대며 반들거리는 타액만 질척하게 묻혔다.

아픔에 신음하며 고개를 숙였으나 바로 머리채가 잡혀 흐느끼는 얼굴이 남자들의 시야에 숨김없이 드러났다. 울음이 잔뜩 묻어 있는 얼굴은 짐짓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으나 붉어진 눈가와 뜨끈히 달아오른 발그스레한 뺨으로 더욱 묘하게 처연해 보여 짓밟고 정복하는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 남자의 성기 위에 올라타 허리를 흔드는 모습과 달뜬 교성 때문에 어떤 표정이든 모두 외설로만 보일 법했다.

“흐으, 아, 제발, 흑. 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지친 몸에서 약하게 끊기는 신음이 드문드문 들렸지만 그 숨소리마저 입에 처박히는 성기로 인해 곧 막히곤 했다. 너무 많이 드나들어 부어오른 목구멍이었지만 그조차 오동통한 살처럼 조인다고 남자들은 좋아했다. 유진으로선 죽을 맛이었다.

가끔 이성이 돌아올 때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도대체 언제쯤에야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날지 생각했지만 몰려드는 쾌감은 다시금 이지를 앗아 갔다.

구멍에 꽉 찬 성기를 더 선명하게 느끼기 위해 허리를 흔들고 다리를 허리에 감아 꽉 조였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성기들이 제멋대로 드나들어도 뭐든 박아만 주면 좋다는 듯 허리를 휘었고 허벅지를 떨었다. 목 끝까지 벅차게 차오른 쾌락이 목을 조르는 것 같다. 아무리 숨을 쉬어도 호흡이 진정되질 않았고 시야는 연신 깜빡깜빡 암전되다 계속 뿌예졌다.

어느 순간부턴 성기를 박고 있는 앞 사람에게 몸을 맡겨 기대고, 뒤로 손을 삽입하는 두꺼운 팔뚝을 끌어안듯 매달렸다. 남자가 손을 빼자 왈칵 고였던 정액이 쏟아졌다. 유진은 곧바로 입에 들어온 남자의 손을 빨아 진득하게 묻은 정액들을 깨끗이 핥아 놓았다.

남자들이 잠시 구멍을 쓰지 않고 입만을 사용하면 오히려 텅 빈 구멍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그토록 셀 수 없이 박혔음에도 부족하다는 듯이 벌렁거리며 정액을 뱉어 냈고 남자들의 성기를 빨며 뻐끔거리는 구멍이 간지러워 허리를 배배 꼬았다.

남자들은 웃으며 저들끼리 말을 주고받다 딜도를 박아 넣었고 배 속을 이리저리 휘젓는 진동에 허리를 부르르 떨며 성기를 빨았다. 온몸이 정액투성이가 된 건 겨우 30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흣! 아!”

유진은 개처럼 엎드린 채 딱딱한 성기를 받았다. 물렁한 살점이 죄다 녹아 있었다. 흐물흐물 풀린 속은 간신히 기둥을 물어 깊게 찔러 넣을 때마다 움찔움찔 조였다. 유진은 정신이 나가자 더욱 착실히 쾌감을 느껴 정액 범벅의 몸으로 이리저리 굴렀다. 부어오른 살을 꽝 때리듯 박고 정액을 진탕 싸 주자 눈웃음을 휘며 흐으으 녹아내리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그 특유의 야해 빠진 얼굴로 눈꼬리를 그딴 식으로 휘니 방금 싼 성기가 다시 딱딱해졌다. 말랐지만 낭창한 몸이 허리를 마구 휘니 뼈가 도드라지며 흰 피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침샘을 자극했다. 속눈썹 끝에서 뭉친 정액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안을 푹 찔러 싸 주니 좋다고 눈웃음을 치는 꼴이란 남자를 홀리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잘록한 허리 아래 발딱 서 있는 성기는 박아 주는 족족 사정을 해 이젠 아예 막아 둔 참이었지만 뒤로만 가도 실신할 듯이 자지러졌다.

가끔 대충이나마 성기를 쓸어 주기라도 하면 바로 허리를 움직여 손바닥에 성기를 비벼 오는 것이 귀엽기도 했다. 그 아양에 정신 못 차리고 앞 사정을 풀어 준 것도 벌써 세 번을 넘었다. 직후 곧바로 묶이긴 했지만.

뒤로 거칠게 박히는 와중에도 달달 떨리는 손으로 팔뚝을 잡고, 손바닥에 성기를 마찰시키며 다디단 숨을 섞어 내쉬었다. 그런 상태를 여실히 내보이며 싸게 해 달라 애원하니 누가 무시할 수 있을까.

그 모습 자체를 즐겨 연신 기둥을 비비면서도 뒤로만 가게 하는 몇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그 가녀린 애원에 성기를 단단히 묶은 천을 풀고 기둥을 비벼 결국 사정까지 하게 해 주었다. 사정을 많이 하면 할수록 한계를 넘어선 쾌감에 더욱 괴로울 텐데 유진은 황홀감에 취해 바르작댔다. 스스로 다리를 한껏 벌린 채 남자들 앞에서 입술을 깨물고 분수처럼 토정액을 뿜는 그 모습은 참 볼만했다.

본인이 싼 정액을 유리잔에 담아 마시게 하는 것도 꽤 재밌었다. 정작 당사자는 정신을 빼 놓아 자신의 사정액인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마셨지만 그게 더 꼴렸던 것 같기도 하다.

“아, 제발! 흐, 아!”

녹진한 구멍에 또 다른 성기가 잠겨 들었다. 촉촉하게 젖은 살이 기둥을 감싸며 달라붙자 남자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렀다.

“와, 씨. 진짜… 존나 축축한데 물긴 잘 무네.”

“그니까요. 이 정도 박혔으면 헐렁거릴 만도 한데 아주 힘도 콱콱 잘 주고. 계속 박아 달라고 조르는 건가?”

걸걸한 목소리가 불쾌하게 울리고 녹녹한 구멍 안을 크게 휘저어 갔다. 다시 정신이 아득해진다.

“하으윽! 허으, 흐!”

어떻게든 숨을 쉬겠다고 입을 벌려도 목구멍까지 쿡 쑤셔 오는 성기 때문에 계속 숨이 부족했다. 안 그래도 쾌감에 절어 흐린 정신이 산소 부족으로 기절할 듯 멍해져 간다. 찰팍찰팍 물장구 소리가 나는 구멍은 박히는 와중에도 흥건한 액을 연신 쏟아 내고 있었다.

“씨, 발 진짜, 읏! 박을, 때마다 질질 싸네. 씹, 존나 줄줄 흘러.”

“학! 흐… 커흡, 훕, 아흐읏! 흐엉!”

유진은 찢어질 듯 넓게 벌어진 입에 성기 두 개를 물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박아 오는 감각이 더 선연했다. 허리가 붙잡혔는데도 뒤에서 박는 힘 때문에 연신 몸이 앞으로 쏠렸다.

뻑! 마찰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앞으로 크게 기우는 상체 때문에 입은 더욱 깊숙이 성기를 담았다. 두 개의 성기가 쭈압 소리를 내며 안쪽 깊숙이 들어간다. 허리를 잡아끄는 손짓에 다시 엉덩이가 강하게 부딪히며 내장까지 닿을 듯 성기가 치닫고 다시 뻑! 이번엔 사정을 한 성기 때문에 입 안 가득 찬 정액이 턱 끝으로도 투둑 떨어졌다.

엎드려 박히던 유진이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툭 쓰러졌다. 벌어진 다리 사이론 거품이 이는 난잡한 구멍을 그대로 내놓고 색색 더운 숨을 들이쉬었다. 얼굴을 시트에 푹 묻자 겨우 입이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구멍은 아니었다.

“흣! 아, 제발, 으! 안, 살… 살, 려 주세, 학! 아!”

울퉁불퉁 핏줄이 도드라진 성기가 무리 없이 구멍에 박혔다. 기둥이 삽입된 엉덩이만 쏙 들려 올라왔다. 허리가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며 엉덩이만 드러난 자세에 저 흰 피부가 더욱 탐스러워 보였다. 남자의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볼록 올라온 둔덕을 내리쳤다.

“윽! 아, 이거다. 씹.”

아무리 좆을 잘 문다 해도 벌써 몇십 번을 박혔으니 강하게 조이는 맛은 없었다. 진득하게 흐물거리는 구멍에 푹푹 박아 넣는 것도 뻐근하게 좋긴 했지만 구멍이란 역시 찌를 때마다 콱콱 조이는 맛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유진의 엉덩이를 내리치니 구멍이 놀란 듯 꽉 수축하며 좆을 쥐어짜듯 꾹 물어 왔다. 이거였다.

“하읏! 윽…!”

부드러운 살이 손에 감겨 오는 감촉도 마음에 들고 흰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도 또 하나의 묘미였다. 얼굴과 쇄골만 벌겋게 물들인 흰 몸이 그렇게 꼴리더니만 엉덩이가 붉게 달아오르는 걸 보는 것도 아주 돌아 버리게 꼴렸다. 심지어 직접 그렇게 만들고 있으니 정복감까지 더해진 쾌감이 머리를 때렸다.

“핫! 으윽… 아파, 아파요, 흐, 살려… 흣…!”

화끈한 엉덩이에 다시 철썩 소리가 나며 큰 손이 강타했다. 아주 독한 약에 뇌가 절여지는 것 같다. 통증이 뜨겁게 번쩍이는데 그와 동시에 콱 조여드는 구멍이 다른 결의 감각으로 번뜩였다. 얇은 점막이 감싸고 있는 울퉁불퉁한 핏줄이 하나하나 고스란히 느껴지며 팍! 머릿속의 전구가 꺼져 나간다.

“흐억, 흣! 허으응, 아으… 아!”

엉망이 된 얼굴이 시트에 빠르게 비벼졌다. 안 그래도 붉었던 얼굴이 마찰열로 더 새빨개지자 한 남자는 그런 유진을 들어 올려 뜨듯한 열을 내뿜는 얼굴에 정액을 싸질렀다. 흐물거리게 풀린 입꼬리가 미소를 그렸다.

“하, 뭐야? 정액 싸 주니까 좋아? 어? 아주 실실 웃네, 이게?”

“어 진짜, 헤벌레 쪼개고 있네. 지 구멍처럼.”

남자들이 유진의 표정을 보기 위해 얼굴로 몰려들었다. 유진은 그저 벅차게 오르는 감각에 부유하는 느낌이 들어 절로 미소가 그려진 것뿐이었다. 허리가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허리 아래로 감각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빠듯하게 조여드는 구멍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녹진하게 흘러내리는 듯한 황홀함이 허리에 뭉쳐 있다. 성기가 주르륵 빠져나가자 나른하게 늘어뜨린 입매가 한숨 같은 신음을 내보냈다.

“하으, 아, 으응… 흐으….”

조금의 쉴 틈도 없이 곧장 박아 오는 다른 성기가 다시 유진의 안으로 슬슬 들어섰다. 술에 취한 듯 몽롱한 표정이 작게 입을 열어 시트를 물었다.

“웁!”

“이 걸레가, 누구 보라고 윽, 엉덩이를 살랑거려.”

“……!”

유진이 천천히 자지러지도록 느릿하게 들어오던 기둥이 쾅! 속살이 다 떨리게 박아 넣었다. 아물아물 기둥을 물어 가던 내벽이 경련했다. 입에 물린 시트가 툭 떨어지며 충격으로 입이 턱 열렸지만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채 눈만이 까뒤집혀 바르르 진동했다.

“…허, 으……! 허으, 흐….”

“진동 오나, 홀이 따로 없네. 이건 축축하게 물도 나오니까 더 좋은 건가?”

“하, 흐아… 우으….”

퍽! 퍽! 규칙적으로 속살을 찧을 때마다 내벽이 잘게 경련했다. 질척하게 좆을 문 구멍이 진동까지 하자 평소보다 빨리 사정을 맞았다. 한번 치켜올려 박아 주고 아쉽게 성기를 빼냈다.

오래 지분거리지 못한 게 아쉽긴 해도 어차피 다시 차례를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두 개씩 박아 넣을 때가 많았기에 인원이 많아도 순서는 금방 돌아왔다. 남자는 기분 좋게 유진의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그의 위쪽으로 이동했다.

윗구멍도 쓸 만하지. 유진은 아직도 덜덜 떨리는 몸으로 지난 감각을 더듬고 있었지만 구멍의 사정 따윈 제 알 바 아니었다. 그저 귀여운 만큼 실컷 귀여워 해 주고 조르는 만큼 진탕 싸 주며 예뻐하면 될 뿐. 남자가 꾹 다문 입을 억지로 벌려 제 성기를 목구멍까지 푹 쑤셨다. 부어올랐는지 도톰한 살점마냥 기둥을 감싸는 게 만족스러웠다.

남자들은 아주 뽕을 뽑겠다고 작정을 하고 온 듯, 여러 가지 체위로 다양하게도 유진을 농락했다.

아래에 깔아 박아 넣은 걸 시작으로 엎드린 채 박고, 벽에 밀어붙여 뒤로 박고, 한 사람씩 다리 하나를 잡아 벌려 공중에서 박아 넣고, 침대 아래로 밀어 머리를 바닥에 닿게 한 후 침대 위에서 아래로 박아 넣기도 했다.

다리만 브이 자로 들어 박기도, 두 다리를 모아 한쪽 어깨에 올려놓고 박기도, 샌드위치처럼 두 남자 사이에 끼어 박기도, 올라타게 해서 박기도 하는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했고 남자들 본인의 만족은 물론 시참을 방송으로 구경하는 시청자들 또한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이에 유진의 의지는 없었으나 유진 역시 오직 신체적으로 가해지는 쾌락으로만 따지면 만족스러워했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 줄마저 끊길 정도의 쾌감이 쉴 새 없이 몰아치니 끝없는 고조감에 벅차 죽으려 했다. 그러나 쾌락을 넘어선 고통마저 결국엔 희락으로 퍼지니 만족으로 표현하기에 부족할 만큼 커다란 충족감이 허리께에서 둥둥 울렸다.

근 반나절을 쉼 없이 박혔다. 구멍이든 입이든 헐 정도로 진탕 헤집어졌다. 마지막 성기가 빠져나가고 붉은 살점이 살짝 드러난 채로 벌름거리는 속살은 눈으로만 봐도 질척하게 녹아 있는 게 보였다. 뭐라도 쑤셔 넣으면 진흙탕을 밟은 듯 찰박거리며 물렁하게 박힐 것이다.

지금까지 버틴 게 용했던 유진은 마침내 눈을 감았다. 미동 없는 몸에선 색색거리는 숨소리만 약하게 흘러 나왔고 끝없이 정액을 뱉어 내는 구멍이 오므라들고 벌어지며 착실히 움직였다.

길었던 방송이 종료되고 떠들썩했던 소음이 빠져나갔다. 작은 방 안엔 다시 돌아온 잔잔한 고요만이 남아 남자 둘을 에워쌌다. 정액으로 허옇게 뒤덮인 남자의 몸을 미묘한 이채 어린 시선이 주시했다. 고개를 옆으로 툭 떨구는 유진에게선 짤막한 신음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그제서야 그 끈질긴 시선이 떨어지고 남자의 몸이 가볍게 들렸다. 고단했던 하루가 저물었다.

***

죽겠다. 씨발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부은 목이 찢어진 것처럼 아파 왔고, 뻐근한 턱 근육 때문에 입을 살짝 벌리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아직도 벌어져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아래는 말할 것도 없고. 연신 살이 마찰한 엉덩이도 멍이 든 듯 둔한 통증이 뭉근히 퍼져 갔다. 몇 번을 싼 건지 기억도 안 나는 성기는 쓰렸고 손가락 하나 까닥 못 할 만큼 몸에 힘이 없었다. 온몸이 걸레짝이나 다름없다.

어제의 기억은 술에 취한 것처럼 토막토막 끊겨 있었다. 실제로 중간중간 제정신을 잃었기 때문인지, 정신을 보호하고자 방어 기제라도 작동한 것인지. 그나마 생각나는 장면이라곤 눈을 감으며 교성을 내지른 기억이나 뒤로 세게 박혀 내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까 봐 손으로 입을 꾹 막다가 남자들의 성기를 강제로 애무하게 된 기억이나 하도 다리를 활짝 벌려 다리가 오므려지지 않아 걱정했던 기억들뿐이었다.

이보다 더 좆같은 기억들도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 건 오히려 다행인 걸까. 차라리 하루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갔어도 좋았을 텐데.

아직도 맨정신은 아닌 듯 어쩐지 생각이 흐렸다. 뇌 사이사이 안개가 낀 듯 몽롱하고 잠을 꽤 많이 잔 것 같은데도 졸렸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고 굳이 버텨야 할 이유는 없으니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일어났을 땐 이곳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무거운 잠에 들었다.

오후엔 웬일로 남자가 방문했다.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도 저를 향하는 카메라 불빛은 드문드문한 기억 속에 존재했다. 반사적으로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남자는 신경 쓰지 않고 간단히 몸 상태를 확인한 후 방을 나섰다. 남자가 와서 한 일이라곤 함부로 이불을 들추고 이리저리 몸을 돌려보다 머리를 쓰다듬은 것뿐이라 어쩐지 불쾌하기만 했다.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언젠가 여길 나가 봤자 자유의 몸은 아니겠지. 얼핏 듣기론 사창가에 팔려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더 나을까, 이게 더 나을까.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차선이 없다면 차악을 선택하는 거라지만 둘 다 최악이라 뭘 선택하고 말 것도 없었다.

어떻게 사람의 일생이 이렇게까지 끔찍할 수 있는지. 애초에 내가 행복했던 적이 있기는 했던가. 초등학생 땐가, 사람은 모두 소중하다는 공익 광고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딴 쓰레기 같은 삶도 가치가 있을까. 그들이 말하는 소중한 사람에 나는 쏙 빠져 있는 것 같다. 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경멸 어린 눈으로 쳐다보거나 더러워하거나.

너무 울적하다. 우울하고 무기력하다.

유진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혼자 남은 방에서 작은 흐느낌만이 간간이 새어 나왔다.

그 후 방송은 끔찍했다. 주마다 처음 보는 이상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장소도 매번 바뀌었다.

차에 태워져 이제 방송이 끝나고 팔려 가는 건가 했는데 어느 외딴 공중 화장실에 버려진 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돌려졌다. 그다음 주엔 정신없이 시끄러운 클럽에서, 그 후엔 고급스러워 보이는 아파트 테라스에서. 벌써 네 번씩이나 남자들에게 돌려졌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금, 토, 일 3일 연속으로 진행됐던 방송이 주에 한 번씩만 진행되었단 것이다. 물론 3일 연속으로 돌려졌다면 방송이고 뭐고 몸 어딘가가 분명 망가졌을 것이다. 남자도 그걸 아니 주에 한 번으로 줄인 걸 테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또한 정액이 뿌려진 밥을 먹지 않아도 됐다. 그래 봤자 방송을 하는 날에 배가 터지도록 빨아 먹어야 됐기에 신물이 날 지경이지만 평소에라도 평범한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드디어 식사라는 걸 하는 것 같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이긴 했다.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건 사람들의 밥이라기보단 가축의 먹이에 가까웠으니까.

수저도 없이 고개를 처박아 비릿한 정액에 뒤덮인 맛대가리 없는 음식을 먹는 걸 식사라 할 수 있을까.

나야 그조차 못 먹고 굶었던 적이 많았던지라 음식 비스무리한 거라면 허겁지겁 먹긴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걸 먹을 때마다 내가 정말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의 욕구에 정신 팔려 존엄성이고 인권이고 다 내팽개치는.

어쨌든 여전히 식탁에서 먹진 못하지만 수저라도 주는 게 어디야.

우락부락한 남자들도 안 본 지 오래되었다. 여전히 소일거리를 주긴 했지만 설렁설렁 할 만한 양이었다. 그러나 자유 시간이 있더라도 이 좁은 방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생각 없이 멍 때리거나 잠을 청하는 것뿐. 가끔은 먼지처럼 방 안을 돌아다녔다.

***

오늘은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다시 이상한 곳에 가서 돌려지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남자는 여상하게 네모난 박스를 안고 들어왔다. 꽤나 묵직해 보이는 박스 안엔 괴상한 성인 용품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괴상망측한 것들을 내가 앉은 침대 위에 하나하나 늘어놓아 갔다.

“어때, 재밌을 것 같지? 시청자 분들이 너를 위해 보내 준 선물이야. 이거 외에도 더 있긴 한데 오늘만 날은 아니잖아. 앞으로 천천히 써 보자.”

정말 듣기 싫은 개소리를 잘도 내뱉는 남자의 얼굴엔 시름 한 점 없었다. 미친 새끼들.

“난 이게 제일 기대되던데.”

남자가 봉처럼 생긴 막대기 하나를 들어 올렸다. 시트 위에 늘어져 있는 것들 중에선 그나마 온전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이상한 돌기 같은 것도 박혀 있지 않고 경찰들의 순찰 봉처럼 생긴 모양이다. 가장 얇기도 하고. 하지만 남자가 기대된다고 말을 했으니 평범한 것은 아닐 텐데. 유진은 꺼림칙한 눈으로 남자의 손에 들린 봉을 보았다.

“이건 마지막으로 남겨 둬야겠다. 일단 이거부터 물고 있자.”

“아, 흐!”

남자가 한쪽 발목을 잡아 확 들어 올린 뒤 벌어진 다리 사이 구멍에 흉측한 딜도를 밀어 넣었다. 아직 풀지도 않았고 젤조차 발라 주지 않아 빡빡한 구멍이었으나 그 큰 기둥은 말랑한 구멍에 쑤욱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갑작스럽게 배 속에 들이찬 압박감에 유진이 남자의 손목을 두 손으로 잡았지만 남자의 행동을 제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힘이었다.

“아, 아프….”

한 번 쑥 들어간 딜도가 들어올 때처럼 조심성 없게 살을 모조리 긁으며 쑥 나왔다. 바깥까지 나온 딜도가 다시 퍽! 구멍 안을 쑤셨다.

“아! 으, 아파요… 흐….”

“아프다고?”

남자가 푹 쑤셔진 딜도 손잡이를 살살 돌렸다. 구멍을 들쑤시며 돌아가는 몸체에 유진이 허리를 꼬았다.

“아으!”

살짝 들린 허리가 딜도가 돌아가는 방향대로 배배 꼬이며 발가락이 굽어들다 시트를 밀어냈다. 남자의 손목을 꾹 잡은 손은 힘을 잃어 갔고 메마른 구멍은 작은 물소리로 젖어 들기 시작했다. 가만히 늘어져 있던 성기도 힘을 얻어 배에 닿을 듯 세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 액이 나와서 찌걱거리는데? 허, 이건 또 언제 이렇게 섰어?”

남자가 비웃듯 말했다. 이제 구멍에 꽂힌 딜도가 돌아갈 때마다 찌극, 찔꺽 쯕, 질척한 물소리가 들렸다.

“아… 흐…!”

한쪽 발목이 더욱 위로 들리며 다리가 더 벌어졌다. 남자는 다시 한번 쑥 딜도를 빼내고 꿈틀거리며 움찔거리는 구멍을 구경하다 카메라에 잘 보이도록 발목을 고쳐 잡았다.

“이거 보이세요? 구멍 엄청 움찔움찔 떠는 거. 박아 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액이 질질 나오고. 앞은 곧 가겠네요.”

빼낸 딜도로 꼿꼿한 성기를 툭 건드리자 유진이 안 그래도 찌푸린 얼굴을 와락 구기며 흐느꼈다. 남자의 손목에서 떨어져 나간 손은 이불을 꾹 휘어잡으며 남자의 손놀림에 따라 시트를 마구 헤집었다.

“그래도 몇 번 굴려졌다고 살짝 벌어진 거 봐.”

바르르 떨리다 다시 수축하려는 구멍에 남자가 손을 푹 집어넣었다.

“흣…! 학, 흐!”

쯜끅 물소리와 함께 세 손가락이 축축한 살에 따듯하게 감겼다. 여전히 기분 좋은 감촉이었다. 손을 푹 찔러 주자 바로 조여드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처음처럼 잘라 먹을 듯 조이진 않았지만 질척하게 젖은 구멍이 달라붙어 오자 이것도 이거대로 좋았다. 박는 족족 느끼며 구멍을 경련시키는 것도 아주 타고났고. 잔뜩 찌푸린 채 덜덜 떠는 저 몸을 보는 것만으로도 갈 지경이니.

남자가 손가락을 굽히자 반응은 즉각적으로 터져 나왔다.

“아으! 하지, 읏! 으! 흐아, 응!”

어쩜 신음도 이렇게 꼴리게 내는지. 가끔 보면 일부러 이렇게 내는 건가 싶을 정도로 몸을 동하게 했다.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로 바르르 떨며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얼마나 좆을 세우게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건지.

살짝 쉰 허스키한 목소리로 교성을 내지르며 정신없이 애원하는 것 또한 아주 만족스러웠다. 힘없이 늘어져서 낮게 대답하던 단정한 목소리가 한없이 높게 터져 나가는 게 참….

남자가 손을 확 빼고 딜도로 퍽 쑤셨다.

“아으! 아! 흐! 으!”

손에 잡혀 들린 발가락이 잔뜩 굽어지다 퍽퍽 박을 때마다 움찔 떨리며 조금씩 펴져 갔다. 규칙적인 피스톤질에 맞춰 엉덩이가 움칫 떨리며 들리고 허리 역시 뒤로 꺾이며 침대에 마구 비벼졌다. 밀가루 반죽을 찧듯 쾅쾅 박아 줄 때마다 구멍 역시 반죽처럼 물렁물렁 기둥을 물었다.

“읏! 흐! 허, 아응, 으! 아으으… 허으….”

꼿꼿한 성기가 팍 정액을 싸지르자 딜도를 한계까지 깊이 쑤시고 살살 돌려 주었다. 정신없이 울부짖던 유진은 뻑! 소리가 날 만큼 깊이 박히자 숨도 못 쉬고 전신을 굳히며 한 차례 부르르 떨다가 풀린 눈으로 허공을 헤맸다. 격하게 부풀다 가라앉는 가슴엔 유진 자신이 싼 정액이 묻어 있었다.

그 후 박힌 딜도를 살살 돌려 주니 유진은 침대에 널브러진 다리로 연신 시트를 밀어내면서 손으론 시트를 한 움큼 끌어안으며 울었다. 한 아름 안고 있는 이불을 치워 내자 유진은 서럽다는 듯 눈썹을 축 내리며 아이가 떼쓰는 것같이 울며 허리를 돌렸다. 씨발, 저절로 욕이 나오는 모습이었다.

뽁 작은 소리가 나며 잔뜩 젖은 딜도가 뽑혀 나오자 구멍이 아쉽다는 듯이 벌름거렸다. 남자가 눈을 휘며 구멍을 찰싹 때려 주었다.

“조르지 마. 안 그래도 오늘 잔뜩 박아 줄 거니까.”

유진은 제 말을 이해한 건지, 쾌락에 떨고 있는 건지 고개를 도리질하며 흐느꼈다. 옆에 두었던 새로운 딜도로 박아 주니 도리질 치던 고개가 위로 턱 꺾였다. 드러난 흰 목선의 목울대가 움직이다 다시 울음 섞인 신음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유진의 구멍에서 젖어 반들거리는 구슬이 끝없이 빠져나왔다.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힘을 줘 잡아당기면 뽕 경쾌한 소리를 내며 구슬이 나왔다. 구슬이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유진은 마른 절정을 몇 번이나 겪으며 이미 한참 들린 허리를 떨었다.

구슬들이 들어갈 때도 목을 조르는 쾌락에 덜덜 떨며 이제 제발 그만해 달라고 빌었지만 남자는 앙탈 부리지 말라며 엉덩이를 한 대 때리곤 다시 넣었다.

구슬이 더 들어갈 때마다 빛이 팍팍 꺼져 가며 정신이 어둑어둑 까맣게 잠겨 드는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넣을 공간이 없을 것 같은데도 구슬은 계속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구슬이 들어가고 압박감에 조심조심 숨 쉬던 그 순간, 남자는 갑작스레 구슬과 연결된 줄을 당겨 다시 빼내기 시작했고 잠깐의 쉴 틈도 없이 다시 밀려드는 쾌락에 휩쓸려 갔다.

“와, 진짜 끝도 없이 나오네. 어쩐지 욕심부린다 했어. 계속 먹더니.”

남자는 유진의 애원도 거절하며 구슬을 밀어 넣은 주제에 유진이 직접 구슬을 넣은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유진은 그 말에 기가 찰 틈도 없이 연신 몰려들며 쌓이는 쾌감에 몸을 떨었다.

벌써 몇 번이나 느꼈던 감각이다. 구멍이 저절로 조여들고 안에 든 것이 선명히 느껴지는. 허리께가 간지럽게 뭉치고 뭉근한 나른함이 퍼져 나가 발작한 것처럼 몸이 떨리는 감각. 수십, 수백 번은 느꼈던 감각이다. 그러나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같은 황홀감이 새로운 결로 울렸다.

어쩔 땐 허리가 빳빳하게 굳어지며 쾌락이 퍼져 나가고, 어쩔 때는 허리가 물렁하게 풀리며 성감이 몰려들었다. 눈앞에서 팍팍 다채로운 빛들이 터져 나가기도 하고, 온갖 빛이 사라져 끝없는 어둠으로 잠겨 들 때도 있었다. 어쩔 땐 허리가 시트에 푹 쑤셔지고, 어쩔 땐 허리가 잔뜩 휘며 허공으로 뜬다. 늘 다른 쾌감이 몸에 감겼다. 그 점이 더욱 유진을 미치게 했다.

“흐하… 헉, 허, 흐, 후으….”

마침내 구슬들이 다 빠져나가고 몸이 축 늘어졌다. 지금까지 온갖 흉측한 것들로 박히며 사정을 했던 성기도 말간 물만 찍 뱉어 내며 처졌다. 모든 기력을 다 소진한 것 같다. 다행히도 남자가 침대에 늘어놓았던 것들은 이제 다 사용한 것 같았다. 이제 드디어 쉴 수 있을 것이다. 유진이 안심을 하며 눈을 감을 때였다.

“자, 그럼 이제 아껴 두었던 걸로 마무리하죠.”

남자가 협탁에 따로 빼내 놓았던 그 봉 같은 걸 집어 들었다. 이제 좀 쉬나 했더니… 유진의 인상이 반사적으로 찌풀 구겨졌다.

“이게 참 물건이라더라고요.”

남자가 기분 나쁘게 웃었다. 온갖 도구들로 흐물흐물 풀린 구멍에 자신의 좆을 박아 넣었던 남자가 나른한 투로 말하며 몇 번 맞아 붉게 부어오른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지쳐서 가지도 못하는 거 아니냐고? 하하, 열두 명한테 돌려져도 끝까지 착실히 느끼던데 겨우 이걸로 가지도 못할까. 뭐, 나중엔 사정도 잘 못 했지만 뒤로는 계속 잘 갔잖아요. 얘 구멍은 욕심이 많아서. 봐요. 지금도 더 달라고 조르잖아.”

남자가 구멍을 손으로 벌리며 카메라에 가져다 댔다. 유진이 시트에 얼굴을 묻으며 수치심에 떨었다. 수치심 역시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었다. 차라리 쾌락에 취해 있으면 모를까. 지금처럼 조금이나마 정신이 돌아왔을 땐 미칠 듯한 자괴감과 수치심으로 손발이 차가워졌다.

남자가 엎드린 유진의 뒤로 가 힘이 없어 흐물거리는 자세를 고쳐 주었다. 무릎을 제대로 벌려 세우고 벌건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물컹할 정도로 풀린 다리 사이에 다시 무언가가 박혀 들었다.

쿨쩍.

수월하게 들어간 막대기 같은 것이 부어오른 살점을 가르고 끝까지 쑤셔 들었지만, 지금까지 박히던 온갖 흉측한 것들에 비하면 작고 가는 편이라 유진은 안심하고 숨을 쉬었다. 적당히 흔들다가 나가겠지.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

돌연 아래에서부터 시작한 저릿한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순식간에 팔다리로 찌르르 퍼졌다. 구멍이 불에 덴 듯이 화끈거리며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끔찍한 고통이 쾌락으로 환원되는 것 또한 순식간이었다.

엉덩이를 든 채 무릎을 꿇은 자세는 금방 허물어졌다. 아래로 툭 떨어진 몸이 다리를 더욱 벌리며 덜덜 떨었다. 뇌가 불에 타 녹아내리는 것 같다. 크게 벌린 입가에선 침이 줄줄 새 시트를 흥건히 적셨다. 시트에 잔뜩 몸을 밀착한 채 비비듯 움찔움찔 떨리는 몸은 가련해 보일 정도였다.

“학, 하… 읏, 끄읍, 윽….”

목이 멘 듯한 소리가 간신히 새어 나오며 유진은 발작하듯 연신 몸을 떨었다. 중간중간 움칫거리며 허리가 살짝 들리기도 하고 엉덩이가 꾹 조여들며 박혀 있는 봉을 더욱 조이기도 했다.

“흐, 이… 이게, 이게….”

“좋았지? 아주 자지러지네.”

“학, 헉, 허읍, 으….”

유진은 아직도 추슬러지지 않는 몸으로 계속 밭은 숨을 뱉어 냈다. 남자는 봉을 잡아 유진의 구멍을 휘저어 주더니 찰박찰박 물이 가득한 구멍에 꽂힌 기둥의 버튼을 다시 눌렀다.

“허, 흣…! 흐억… 윽, 끅… 흐읍….”

유진의 몸이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펄떡 뛰며 경련했다. 구멍도 연신 조여졌다 풀어졌다 하며 떨리고 있었다. 유진이 달달 떨리는 손으로 시트를 겨우 그러쥐었다.

“아, 즈, 제… 제바, 제발, 흑, 저, 주… 죽으, 주거으, 흐, 죽, 어요. 그….”

그새 식은땀이 배어난 이마를 시트에 비비며 유진이 애원했다.

“저, 정말 죽을, 죽을 것, 윽, 흐… 아, 아악! 흑….”

아, 죽을 것 같아. 미칠 것 같아. 씨발, 죽을 것 같아. 진짜. 정말로. 몸이, 몸이 이상해. 너무 이상해.

감당할 수 없는 희락에 몸이 통제를 벗어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 뭔가가 이상했다.

온갖 구멍이란 구멍에선 물이 나오고 몸이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지길 반복한다. 허리에 감각이 없고, 아니, 온몸에 감각이 없다가 갑자기 따가울 정도로 선명하게 느껴지고. 그 이상한 전기 같은 게 통할 땐 정말… 죽는 것처럼 정신이 한순간 팍 꺼졌다가 갑작스럽게 어디론가 끌어 올려졌다.

마냥 부유하다가 희뿌연 연기가 끼어들고. 죽을 것처럼 벅찬 성감에 숨도 안 쉬어지고. 몰라. 모르겠어. 이상해. 너무 이상해.

“제발요… 저, 흐, 저 진짜… 자, 잘할게요. 제발….”

그 소름 끼치는 감각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몸을 맴돌고 있다. 여기서 더 하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차라리 남자들에게 돌려지는 게 더 나을 정도로 이건 너무 이상했다. 쾌락이라기보단 고통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감당하지 못하는 쾌감은 쾌감이 아니었다. 그저 고통일 뿐이다.

유진이 엉금엉금 기어 남자에게로 가 손을 핥았다. 검지 손가락을 입에 넣고 쪽쪽 빨며 간절한 눈으로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표정에 금이 간 듯 눈썹이 움찔 올라갔다.

“…이게 애교를 부리네?”

손가락을 혀로 감싸며 입술이 쭙쭙거리며 오므라졌다. 정성 들여 빨면서도 눈동자를 올리며 손으로 남자의 허벅지를 짚었다. 망설임 담긴 손이 주춤주춤 바지춤을 풀고 손가락을 뱉어 낸 입이 꼿꼿하게 선 성기로 향했다.

아 벌린 입이 성기를 문 채 합 다물렸다. 간절한 몸짓으로 자신의 성기를 빨아들이는 조그만 머리통을 보다 그의 구멍에 박힌 막대에 시선이 갔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손짓으로 몇 번 구멍을 휘젓고 들어 올려 푹푹 쑤셔 박다 드디어 그것을 빼냈다.

유진은 구멍을 쑤시는 막대기가 언제 다시 그 끔찍한 전류를 보낼지 잔뜩 긴장한 채 더욱 간절히 남자의 성기를 빨아들였다. 혀를 빼 핥고, 볼을 최대한 오므리며 힘주어 쭙쭙 빨았다. 그리고 결국 남자의 사정과 동시에 그것이 쑥 빠져나갔다. 유진은 그제서야 안심하며 입 안에 가득 찬 정액을 꿀꺽 삼켰다.

***

또 품에 가득 차는 상자를 한 아름 들고 온 남자에 의한 좆같은 방송을 한 뒤, 늘어져 있는 날 뒤로한 채 여상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다음 주가 무슨 날인지 알아요? 크리스마스잖아요. 그래서 다음 주엔 특별 방송을 할 예정이에요~ 많은 기대 바랍니다!”

또 좆같은 소리 하네….

특별 방송이라니. 도대체 뭘 하려고… 불길한 상상들이 밀려들었다.

가물거리는 정신으로 어렴풋이 한숨을 쉬며 어둑어둑 수마에 잠겨 들었다.

***

“자, 나갈 거야.”

이젠 익숙해진 까만 차가 보였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시커먼 밴은 연예인이 타고 다닐 법한 이미지라기보단 지나가는 사람을 낚아채 납치할 법한 이미지에 더 가까웠다. 내가 여기서 도망친다면 실제로도 그렇게 되겠지.

짙게 선팅 된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이번엔 어디로 가는 건지 생각해 봤다.

특별 방송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좋을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특별 방송이라는 건 평소 방송과는 다르다는 말이니까 혹시, 혹시 의외로 괜찮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설마 이번엔 야외에서 하는 건 아니겠지? 불안감이 훅 끼쳐 들었지만 동시에 작은 희망도 반짝반짝 빛을 냈다. 시궁창보다 더러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은 새롭게 피어났다. 어쩌면 정말 오늘은 이상한 거 안 하고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내 인생은 좆같았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전에 말씀드렸죠. 오늘 잘 부탁합니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어떤 폐공장 안이었다. 지금 당장 무너져 내려도 놀랍지 않을 만큼 낡아 빠진 커다란 공간 안엔 탁한 백열등이 매달려 뿌연 빛을 뿜었다. 벽지에 곰팡이가 덕지덕지 붙은 쿰쿰한 집 안에서 살던 나조차 불쾌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탁 트인 앞에는 얼룩이 덕지덕지 묻은 매트리스와 그 옆에 위치한 난방 기구 하나, 그리고 나와 남자를 주시하고 있는 조금 남루한 차림의 남자들이… 열둘? 열세 명 정도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어느새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한 남자가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무리 지어 서 있는 남자들의 음흉한 눈빛이 내 몸을 위아래로 쓸었다.

“오늘은 특별 방송을 한다고 했죠. 크리스마스이기도 해서 제가 노숙자분들께 선물을 드리려고 특별히! 구멍을 데려왔습니다.”

몸이 그대로 굳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지금 설마… 설마 저 사람들한테….

“각도는 제가 이거로 잘 맞춰 찍어 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요~ 벌써 잔뜩 기대하고들 계신데 하하,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성큼 다가온 남자에게 뒷목이 콱 잡혀 너절한 매트리스로 질질 끌려갔다.

가까이서 보니 매트리스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중간중간 스프링도 튀어나와 있었고 이상한 찌꺼기 같은 것도 달라붙어 있었다. 그런 더러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나를 눕혔다. 남자들이 다가오자 악취가 확 풍겼다.

나는 어떻게든 도망치려 발버둥 쳤지만 커다란 손들이 뻗어 와 사지를 구속하고 옷을 벗겨 나갔다. 입에선 입김이 나오고 바득바득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 시끄럽다며 커다란 손바닥으로 입이 틀어막혔다. 순식간에 나체가 된 몸으로 매트리스에 눕혀졌다. 눈에선 눈물이 줄줄 나왔다.

“아랫구멍 닳고 닳은 것도 박아 준다는데 어? 씨발 그 눈 뭐야.”

“씨불 지 해진 구멍은 생각 못 하고. 박아 준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엎드려서 다리나 벌릴 것이지.”

눈물이 꺽꺽 넘어갔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숨을 참았지만 입도 막혀 숨을 쉬기 위해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비참한 처지가 더 뼈저리게 느껴졌다. 거칠거칠한 손바닥이 피부를 더듬었다. 사포 같은 느낌의 손들이 유두를 건드리고 겨드랑이, 성기, 발가락 이곳저곳을 더듬거리며 쓸었다. 손들이 닿을 때마다 살갗이 쓸린 듯 아릿한 통증이 퍼져 나갔다.

나는 카메라로 이곳을 찍는 남자를 도와 달라는 듯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남자는 웃으며 입을 벌렸다. 곧 좋아질 거야. 입을 벙긋거리며 소리 없이 하는 말을 해석하자 아주 깊고 깊은 구덩이까지 추락하는 것 같은 하강감이 들었다.

“응? 성병? 하하, 내가 우리 귀한 구멍한테 그 정도 신경도 못 써 줬을까? 걱정 마세요. 나름 선별해서 데려온 분들이신데. 아무리 걸레라고 해도 병든 걸 어떻게 먹으라고 줘. 그 정도 양심도 없을까 봐? 하하.”

지문이 문드러진 손가락이 구멍에 쏙 들어갔다.

“허허헉, 이 걸레짝 같은 게 진짜… 손가락이 이렇게 쑥 들어가?”

“거, 영감 빨리빨리 좀 합시더. 급해 죽겠구만.”

“그냥 넣어두 되지 않어? 활짝 벌어져서 더 달라고 아주 보채고 있구먼.”

웅성거리는 말들이 멀게 들렸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저마다의 손가락이 구멍에 쑥쑥 들어왔다. 경쟁하듯 서로를 장난스레 밀치며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여러 개의 손가락이 구멍을 거칠게 헤집었다.

“하, 하지 마세요, 흑, 제발….”

“씹, 걸레면 걸레답게 다리나 활짝 벌릴 것이지. 지금 얻다 대고 하지 말라야!”

“아니, 거 사람 참. 지금 흥 돋우는 거잖어. 밑은 아주 푹 젖었는데 저게 말은 저래두 넣어 달라고 조르는 소리지. 원, 사람이 눈치가 없어.”

“크으, 여 봐라. 요거. 아주 손가락을 뭉개려고 허네. 클클.”

“아, 아니, 흣!”

박힌 손가락 수가 더 늘어났다. 잡혀 벌어진 다리를 버둥거리며 허리를 뒤챘다. 오그라드는 발가락을 다시 펴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연신 손을 움직였다. 미칠 듯이 싫은데, 정말 역겹고 싫은데도 쾌감에 길들여진 몸은 저절로 젖어 들어 손가락을 환영하듯 꾹꾹 조이며 더 안쪽으로 끌어들였다.

“와따, 이 미끄러지는 거 보소. 씨부럴, 진짜 여기에 박아도 되는 건가?”

“이야~ 요 살결! 이 살결이 어? 아주 뽀~얘 가지고 손에 촥촥 감기네!”

뭉툭한 손이 연신 찰싹 소리를 내며 내려앉고 허벅지 안쪽 여린 살이 따갑게 부어올랐다. 선명한 손자국이 새겨지며 흰 피부가 선정적으로 붉게 물들었다.

“머리칼도 곱고, 요 성기도! 이 귀여운 것도 아주 말랑거려 가지고. 거참 아저씨들이 따먹기 미안해질 정도네. 클클.”

“아! 안 돼요… 안 돼요….”

고개를 저으며 하지 말라고, 그만해 달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남자들은 저마다의 음담을 쏟아 내며 품평하듯 살이 어쩌고, 구멍이 어쩌고, 성기가 어쩌고 하는 말들만 주고받았다. 말 못 하는 인형이 된 것 같다. 아무리 애원을 해도 대답은커녕 모두 듣고 흘려버리는 것 같다. 절망감과 무력감이 몸에 파고들었다.

허탈하게 입을 다물었지만 이 와중에도 이성과 상관없이 좋다고 느끼는 몸은 본능대로 아래부터 차오른 신음을 올려 보냈다.

뭉근히 허리가 돌아가며 고개가 꺾였다.

“으으응, 으으…!”

“허이고오, 그려. 이렇게 벌렁거리는데 빨리 박아 줘야지!”

조급한 손길이 바지춤을 더듬더듬 풀었다.

“아니, 이 사람! 성 씨부터 한다구 하지 않었어?”

“먼저 넣으면 넣는 거지. 뭘 그런 걸 따져?”

“허! 그럼 나도 먼저 박을란다.”

“아윽!”

단단한 기둥이 젖은 입구를 타고 푸욱 들어왔다. 미끈거리는 액들이 기둥에 붙어 젖어 들고 단숨에 박아 넣은 성기가 손가락으로 풀린 속살을 추삽질로 퍽퍽! 뭉개 갔다. 온 살점이 뭉그러지는 감각에 높게 들린 종아리 근육이 움찔 수축하다 꼿꼿이 펴지기를 반복했다.

“아! 으! 읏!”

“허어… 씨벌 저게 씹질 소리 맞어? 아주 참방참방 물장구치는 것두 아니고.”

역시나 벌어진 입을 가만두는 사람은 없었다. 퀴퀴한 냄새의 성기가 입 속으로 쿡 들어와 한 번의 추삽질에 단번에 목구멍까지 콱 들이박혔다. 눈이 돌아가는 고통에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버둥 쳐 봐도 그 움직임에 구멍에 박고 있던 남자가 더욱 흥분하는 바람에 애꿎은 살만 뻑뻑! 쳐 대 물컹거리며 잔뜩 허물어질 뿐이었다.

이가 세워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역겨운 성기를 빨아들였다. 차라리 빨리 싸게 하고 내보내는 게 나을 듯싶었다. 가뜩이나 아래부터 쾅쾅 속을 때리는 감각에 미칠 것 같은데 목구멍까지 제멋대로 유린당하니 저절로 눈이 까뒤집어진다.

이러다 기절한 몸뚱이로 잔뜩 돌려질지도 모른다. 사실 몇 번의 경험도 있었다. 가물거리는 의식을 바로잡자 아래에서부터 느껴지는 질척한 느낌과 속이 꾸물거리는 그 이상한 감각. 눈을 뜨자마자 잠긴 목소리로 신음부터 내뱉으며 몽롱한 정신에 쾌감이 들이부어지는 그 무서운 느낌.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아예 다 끝난 후에 일어나면 몰라. 도중에 깨면… 그건 너무 싫었다. 지금도 싫어서 돌아 버릴 것 같지만.

“크으… 요 귀여운 게, 쭙쭙 잘도, 빠네? 그렇게, 맛있어? 어?”

마디마디 끊어 말할 때마다 허리가 퉁퉁 튀어 더욱 깊숙이 성기가 박혀 온다. 달랑거리는 음낭을 코에 문대고 까슬한 털들이 구불거리며 피부를 할퀸다. 빨리 끝내고 싶다. 제발.

눈을 질끈 감으며 밑의 버거움과 위의 역겨움을 참으려 애썼다. 그렇게 몇 분, 다행히도 끝은 있었다. 묽은 정액이 목으로 꿀떡꿀떡 넘어가니 속이 매스꺼워졌지만 그 역겹던 성기는 입 밖으로 나갔다.

만족감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눈의 남자가 방금 싼 성기의 기둥을 잡고 유진의 얼굴에 마구 비볐다. 타액이 채 마르지도 않은 성기가 피부를 문대 금세 반들거려졌다. 제 타액이 제 얼굴 위에 말라붙어 가는 감각에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그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흐읏!”

정액이 배 속으로 퍼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뜨듯한 액체가 꿀렁거리며 차오르고 흐물흐물해진 살들을 죄다 긁어놓으며 주르륵 빠져나가는 성기의 움직임은 늘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소름 끼치는 감각이었다. 막아 주는 게 없으면 그새 밖으로 새어 나가는 정액의 흐름 또한.

“아-따. 이거 아주 명기네! 명기!”

“사람 참, 과장은….”

“아니, 진짜. 함 박어 보라니까! 넣자마자 아주 살이 쫀득하게 붙는데 씹, 찌를 때마다 속살이 막 자지러져! 그 달달 떨리는 살을 콕 찌르면 아주 야들야들허게 풀려 가지고 물이 줄줄 나오는데… 씨벌, 씹물이 비아그아라도 되나. 또 서네.”

남자가 다시 일어나려는 조짐을 보이는 기둥을 손으로 훑으며 잔뜩 찌푸린 유진의 얼굴로 다가갔다.

“아랫구멍처럼 윗구멍도 명기인지 볼까나?”

“훕!”

정액이 찔끔 흘러나오려는 구멍에 콱! 다른 성기가 처박혔다.

“후웁!”

“힉! 흐, 읏! 흡! 흣!”

너무 빨라. 너무 빠르다.

눈을 꼬옥 감은 채 앞의 남자를 절박하게 안아 매달리는 유진은 신음조차 제대로 내질 못했다. 너무 빨라 신음이 나올 새도 없었다. 돌풍 속 잎새처럼 흔드는 대로 흔들리며 힉힉, 거리는 바람 새는 소리만이 간간이 나올 뿐이었다.

“흑! 히, 흣! 힉!”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박히는 것도 버거운데 하나로도 모자라 뒤에서도 박아 오는 성기의 추삽질에 속이 붕 뜨다가 까맣게 타들어 가고 난리도 아니었다.

허리를 쳐올려 엉덩이가 공중으로 붕 뜨면 안에 꼿꼿이 박혀 속살을 헤집던 성기가 살짝 빠져나간다. 그러나 막혀 있던 숨이 터져 나오는 직후, 제 무게까지 더해 아래 대기 중인 두개의 성기에 푹 꽂히면 물이 잘게 튀기며 배 깊숙이 굵은 꼬챙이로 꿰뚫린 듯 파드득 떨렸다.

허리를 안은 다리도 바르작거리며 힘없이 풀려 나갔다. 갈 곳 잃은 다리가 연신 박힐 때마다 퉁퉁 흔들리다가 다시 남자의 허리에 감기고 쳐올리면 다시 별이 터지고 다리가 풀리고. 희락과 괴로움의 반복이었다. 아니, 구분할 수도 없게 뒤섞인 지 오래다.

정액이 방출되는 느낌이 들고 나서야 몸이 다시 매트리스로 내려졌다.

안이 온통 짓물러 버린 것 같다. 잔뜩 녹은 채 흘러내리는 듯 흐물거리는 안이 여실히 느껴졌다.

이곳에 온 후 한 번도 오므리지 못한 허벅지 안쪽은 붉게 달아올라선 바를 정 자 수 개가 두꺼운 펜으로 휘갈긴 채 번져 있었다. 일자로 그어진 검은 자국 아래로 다시 선 하나가 곧게 그어졌다. 둥글지만 까슬한 보드 마커 펜촉의 느낌에 허벅지가 다시 덜덜 떨렸다.

“허이, 정액 때문에 계속 번져 뿌네?”

“고만 좀 뱉어 내라! 정액을 싸 줬으면 감사합니다~ 허구 조신하게 머금고 있어야지. 아주 헬렐레 풀어져 가지고 싸는 족족 꿀렁꿀렁 내보내고 말이여.”

침을 튀기며 고래고래 말하는 남자가 크림처럼 뭉텅이져 흘러내리는 정액을 손으로 긁어모아 구멍에 다시 푹 넣었다. 깊게 손을 넣어 진탕 녹은 점막에 질척질척 바른 뒤 빠져나갔지만 그 손엔 오히려 안쪽 깊게 싸 놓았던 정액까지 딸려 왔다.

“어이구, 아주 온통 정액 범벅이네. 범벅이야.”

남자가 정액이 잔뜩 묻은 손을 유진의 볼에 대고 비비며 정액을 덜어 내다 허연 점액이 묻은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으로 입술을 툭 치자 자동적으로 다물린 입술이 벌어지며 말랑한 혀가 나와 손을 핥았다. 그 선홍빛 혀로 옮겨 간 묽은 액들이 입 안으로 꿀꺽 사라진 후 다시 빼꼼 나온 혀가 거친 손 구석구석을 꼼꼼히 핥았다.

“아, 으!”

얼굴 위에 정액이 덧발라졌다. 언어 능력을 상실한 듯 입에선 옹알이 같은 신음만 간간이 새어 나오다 다물려 색색 힘겨운 숨을 뱉어 냈다. 그러다 버겁다는 듯 입을 크게 벌린 채 꺽꺽거리다 퍽! 세게 박는 소리가 들리면 숨이 트인 듯 높은 교성이 터져 나오곤 했다.

“학! 앗! 허으, 흡… 으! 아! 아으!”

앞사람에게 꼭 몸을 붙여 흔들림을 최대한 줄이려는 유진의 무의식적인 행동은 그를 매트리스에 눕힌 채 다리를 훌렁 들고 서서 박는 남자에 의해 무산되었다. 짓궂게 선 남자에 의해 허리까지 달랑 허공에 들려 매트리스에 댄 고개가 크게 꺾였다. 유진이 울먹이며 흐느꼈다. 양 발목이 잡혀 높이 들리자 다리 사이 정액이 배 쪽으로 흘러 유진의 가슴으로 향했다. 성기 역시 뚝뚝 흐르는 정액을 제 얼굴 쪽에 뱉어 냈다.

다시금 성기가 푹 박혀 왔다.

“흑! 아아! 흣, 아으으응!”

“어쭈, 요게 좋다고 아주 빨아들이네.”

힘겨운 자세에 유진이 앙탈 부리듯 신음해도 남자들은 낄낄 웃으며 성기를 잡아 그의 얼굴에 대고 탁탁 흔들어 털 뿐이었다. 희멀건 액체가 여기저기 튀고 대부분이 유진의 얼굴에 질퍽 내리 앉아 옆으로 흘러내렸다.

이미 정액이 얼굴을 뒤덮은 지 오랜데도 계속 떨어지는 정액에 유진은 눈을 뜨지 못했다. 입을 벌릴 때마다 정액이 흘러들어 왔지만 신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려 교성을 내지르다가도 정액을 잘못 삼켜 컥컥대기 일쑤였다.

“저거 저거 또 싸려고 달랑거리네! 말랑말랑거리는 게 꼴에 남자라고 싸기는 또 엄청 싸질러 대.”

“이젠 뭐 멀건 물 같은 것만 찍찍 뱉더만.”

“학! 하응!”

“그래두 계속 싸니까 좋지~ 쌀 때마다 구멍이 확 조여들잖어!”

“아, 그건 고래. 고 구멍이 축 늘어져 갖고 축축~허게 빨아 대다가 콱! 좆을 물어 싸면 아주 씨벌 힘이 불끈 솟아! 저 구멍이 아주 몸보신이야.”

“힉! 흐읏! 항! 으앙!”

애처롭게 꺼덕거리는 성기에서 말간 물이 픽 터져 나와 가슴팍을 흠뻑 적셨다. 자신이 싼 액인데도 가슴을 푹 적시자 화들짝 놀란 유진이 이미 들린 허리를 크게 틀며 온몸을 뒤틀어 대다 축 늘어졌다. 그러다 또 허공에 들린 몸을 튕기고 다시 힘없이 처지는 걸 반복했다.

“어유, 좋~다고 아주 자지러지네.”

“크… 저 저 다리 떠는 거 봐라. 저때 박는 게 진짜지. 요망하게 달달 떠니까 구멍도 같이 달달거려서 오나홀 그 자첸데. 엉덩이에도 힘 꽉 줘서 꾹꾹 쪼이고. 쯧… 언제 끝난다냐.”

“허허, 이 사람들 아주 날 잡았네. 날 잡았어.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얼마나 맛있는데! 김 씨 이 사람은 누가 들으면 지 혼자 안 한 줄 알겄어. 음침하게 매직 들고 와서 허벅지에 선 쫙쫙 그은 사람이!”

“하으으….”

정액을 머금은 다리가 툭 아래로 떨어졌다. 끈 떨어진 인형처럼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다리를 추스르지도 못하고 밀린 숨만 열심히 쉬어 댔다.

“허이, 저게 다 몇 개여. 어디 보자,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오징어~ 육개장… 허이구… 하나에 다섯 개니까 어유… 아주 많이도 쌌어.”

“아니지~ 열둘이니께 하나로 따지면 아직 뽕은 못 뽑았어.”

“거참, 사람들 인정이 없어~.”

“허! 홍 씨, 여거 봐. 여거. 아주 헤벌레~ 해 갖꼬 좋아요, 더 박아 주세요, 하구 온몸으로 졸라 대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가 봉사해 주는 거지.”

“그래, 요 구멍 보라고. 어? 빨리 박아 달라고 아주 오무락~ 꼬무락~.”

“긍까. 뭐 더 먹을 거 없나, 아주 오물오물거리네. 크, 안 되겠다. 내가 먹여 줘야지!”

거칠한 손이 빨간 내벽을 훤히 드러내며 꿈틀거리듯 수축했다 벌어지는 구멍을 양손으로 잡아 벌렸다. 차가운 공기가 닿자 움칫 확 수축하더니 다시 활짝 열리는 구멍이 한 번 우물거릴 때마다 흰 정액이 뚝뚝 떨어졌다. 구멍 밖으로 나온 허연 점액이 치즈처럼 쭈욱 늘어나다 뚝 끊기는 걸 보며 입맛을 다신 남자가 허겁지겁 성기를 밀어 넣었다. 끈적한 액들과 뒤섞여 부드럽게 감기는 속살이 마음에 든다.

“흐아… 흑! 윽! 흐앙!”

“큽, 씨부럴. 이거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정사에 지쳐 축 녹은 내벽이 살을 가르며 들어오는 기둥을 따라 훑고, 들이차는 성기에 흠뻑 젖은 점막이 축 달라붙어 치댔다. 구멍이 맞춤형으로 조여드는 것 같은 기분에 남자가 이를 드러내 좋아했다.

숨도 삼키며 조급하게 허리 짓에 박차를 가했다. 뻑! 뻑! 강하게 올려칠 때마다 몸이 들썩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만족스럽다. 제 구멍처럼 흐물흐물 풀어진 표정엔 미치겠다는 희락이 가득 차 있다. 꾹 감은 눈꺼풀을 보다 그 위를 두텁게 덮은 정액을 한 손으로 대충 쓸어 넘겼다.

“흑, 흥! 윽!”

“아야, 눈 읏, 좀 떠 봐라. 얼굴, 좀 보자!”

허리 짓을 하며 끊어 말하자 감긴 눈이 움찔거리다 살며시 눈동자가 드러났다. 정액이 엉킨 속눈썹 아래로 까만 눈동자가 시선을 올렸다. 그러나 저 혼자 신기루라도 보고 있는 양 반쯤 뜨인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이 멀거니 허공을 더듬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더욱 지나치게 선정적이었다. 또렷이 바라보지도 못하고 쾌감에 취해 있는 게 명백한 모습이 묘한 정복감을 고취시켰다.

“응! 읏! 흐!”

유진이 정신없이 흔들리다 제 성기를 손으로 감싸 쥐었다. 엄지를 귀두 끝에 대 꽉 잡은 모양은 어떻게든 사정을 막으려는 듯이 절박함을 띠었다.

여기서 더 싸면 죽을지도 모른다. 연신 쾌감이 들이부어져 모든 생각과 이성이 토막토막 끊겨 있는 와중에도 위기감이 들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쏟아지는 황홀감에 눈이 멀 것 같았다.

아, 나 지금 눈 뜨고 있는 건 맞나? 아니, 감고 있나? 몰라. 너무 좋아. 아, 좋아. 제발… 아, 안 돼. 아니지. 싸면 안 돼. 막아야지. 막아야 돼. 더 싸면 죽을 거야. 몸이 마른 수건처럼 비틀어져 바스러질 거야. 근데 너무 좋아. 아, 너무… 너무 좋아.

“윽! 으! 흐으윽, 하! 앙!”

“뭐여, 왜 막고 있다냐. 흔들어 줘? 엉? 가고 싶어?”

“아으, 아느, 앙! 안! 흐엉!”

“아, 그려. 흔들어 줄게.”

“안, 아! 흑, 아닌, 악! 주, 주글, 으앙!”

“그려, 흔들어 준다니까. 거, 참.”

나름 절박한 힘이었으나 남자가 손을 잡아 떼어 내자 허무할 정도로 쉽게 손이 떨어져 나갔다. 안 된다고, 더 싸면 죽을 것 같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까지 녹아 버린 건지 교성에 막히는 건지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배에 붙어 끄덕거리는 성기를 쓸어 올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굳은살이 박여 까쓸한 감촉이 더욱 자극적이다. 죽을 것 같은 느낌에도 불구하고 확 퍼지는 더한 희락에 너무 서러워 울음이 터졌다.

거의 통곡을 하며 우는 유진의 성기를 강한 압박감이 쑤욱 쓸어 올렸다. 까슬한 엄지가 귀두를 꾹 누르며 비볐다. 온몸의 장기가 쑥 아래로 빠져나가는 기이한 느낌과 동시에 눈앞에 빛이 터졌다. 파득거린 손끝의 떨림을 끝으로 세상이 온통 새하얗게 부서졌다.

“…것도 좋지 않어?”

“……덜하니깐 그러지.”

“어, 깼네?”

“아… 어, 응! 으어! 하으어….”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정신이 든 것도 잠시 배 속에 잔뜩 고인 열기가 다시 정신을 흐려 놓았다. 흔들리는 시야, 울렁거리는 배 속, 말라붙은 정액의 느낌, 다시 고조되는 성감. 아, 아직 안 끝났구나.

“자아~ 푹 쉬고 눈 떴으니까 꽉꽉 잘 쪼이자~ 아주 잘라 먹어도 됭께 걍 무는 것마다 콱콱 쪼여 부러!”

“흑! 아, 그, 흐으으….”

“아니, 김 씨는 왜 아한테 눈치를 주고 그르냐. 어유, 괜찮어. 지금처럼 질퍽하고 쿨쩍하게 풀려서 늘어져 있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 아주 자지에 찰싹 달라붙어 가지고. 이건 조이는 걸 넘어서 아주 엉켜 있는 수준인데. 크으….”

“아유, 이놈두 지 구멍에 지 좆을 박아 봐야 이걸 알 텐데. 참 불쌍허다. 이 맛을 모르구.”

“그러게, 어떻게 안 될랑가?”

조심성 없는 손이 서서히 서는 유진의 성기를 콱 잡아끌어 한창 추삽질 중인 구멍에 가져다 댔다.

“악! 아프, 힉!”

잡아끄는 거친 힘에 성기가 살짝 늘어났지만 그게 끝이었다. 귀두는 조금 뒤쪽으로 휘어지는 게 한계였다. 추삽질 중인 구멍에서 튄 작은 물방울이 유진의 성기에 묻었다. 남자는 좀 더 시도해 보다 성기를 놓고 아쉽게 물러났다.

“그래도 뭐 어뗘, 뒷구멍으로 온갖 황홀경은 다 느낄 텐데. 지금도 저 봐.”

“흐, 힉…! 아으응!”

“클끌! 그러네, 그려!”

갈증이 심하다. 질척하게 덮인 액들로 미끌거리는 몸과 달리 목 안은 쩌억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을 정도로 건조했다. 바짝 마른 입 안에 혀를 굴리자 비린 향 사이로 기분 나쁜 단맛이 났다.

정액만 받아 마시며 몇 시간을 버텼다. 아니, 버텼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진이 빠져 정신을 놓은 적이 여러 번이니. 몽중몽의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 못 할 몽롱한 경계에서 의식이 있을 땐 항상 남자들의 좆을 물고 있었다.

힘들어 죽겠는데도 몸 구석구석은 모두 예민하게 달아올라 무심한 건드림에도 신음이 터졌다. 나중엔 젖꼭지를 만지는 것으로 사정을 할 정도였다. 가슴에 집중되는 집요한 농락에 바동거리는 게 엄청 괴로웠는데. 아니, 그게 꿈이었나. 현실이었을까.

중간중간 쓰러져서인지 마침내 그 길었던 정사가 끝난 후엔 희미하지만 정신 줄을 잡고 있었다. 남자들은 정액으로 흥건히 젖은 매트리스 위의, 마찬가지로 정액으로 덮인 몸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훤히 벌어진 허벅지에 새겨진 바를 정 자의 개수를 소리 내 세기도 했고, 잔뜩 열려 벌름거리는 구멍의 움직임을 훑어 내리기도 했다. 어쨌든 끝이었다. 매트리스에 누워 있던 나는 드디어 끝이구나, 그 생각만 멍하니 했던 것 같다.

***

“아, 얘야?”

이렇게 옷을 다 갖춰 입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얘는 어디로 간다고?”

몸을 감싸는 천의 감촉이 새삼스럽다. 늘 나체로 있었던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정상적인 옷을 입어 보진 못했었다. 그 이상한 클럽으로 갈 때 입었던 딱 달라붙는 가죽 재질의 빳빳한 옷과 아파트로 갈 때 입었던 품이 넓은 셔츠, 셔츠에 가려 보이지도 않던 짧은 반바지 등.

그리고 어떤 날엔 원피스까지 입혀진 적이 있었고 스타킹을 신길 때도 있었다. 가발을 씌운다거나 화장을 하는 등 여장을 시킨 건 아니었지만 입기 싫은 옷을 억지로 입으면서도 뭐라 불평 한마디 못 하는 내 처치가 뼈저리게 억울하고 서러웠었다.

“아, 얜 그… H 쪽 아니야?”

“아니지. 거기는 어제 갔고요.”

“그럼 L 쪽인가? 야, 알아보고 와.”

“네에~.”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 드디어 이곳을 나갈 수 있게 됐지만 기쁘진 않았다. 여기에 있으나 다른 곳으로 가나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박히며 섹스 토이처럼 다뤄지는 것은 똑같을 터이다. 다른 곳으로 가는 걸 보니 이제 영상은 찍을 대로 다 찍었나 보지.

일주일 전 남자는 그 더러운 폐공장에서 늘어진 나를 안아 데려가며 밑을 잘 조이고 예쁘게 애교 떨면 험한 취급은 당하지 않을 거라는 씨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였었다.

갑자기 뭔 헛소리를 해 대는 건지. 이상한 거라도 처먹었나 했는데 팔려 나가는 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나 보다. 그럴 거면 괜한 개소리나 늘어놓기보단 미리 언질이라도 해 주든가. 난 내가 팔려 간다는 걸 어제저녁에야 알았다. 어디로 팔려 가는 건진 지금도 모르고.

“이렇게 입혀 놓고 보니까 또 다르네.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 같어?”

“밤엔 하인들 몸 달래 주는 착한 도련님이요?”

“좆도 좀 빨아 주고 구멍도 대 주는 자비로운 도련님이지.”

저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조롱하는 말투가 퍽이나 익숙했다. 아무리 많이 해도 몸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더니, 말은 계속 들으니 꽤나 적응이 됐다. 어차피 이 정도는 그저 흘려들을 수 있으니까. 말은 내게 닿을 수도, 날 만질 수도 없다. 그러니 상관없다. 날 두고 걸레라 하든 닳고 닳은 구멍이라 하든. 정말 상관없다.

“알아 왔어요! 걔 Y 쪽이요!”

“아, 그래? 야야. 넌 그래도 좋은 줄 알어? 어? SM 클럽은 아니잖어. 거긴 애들이 아주 죽어난다더만. 일주일 만에 씹창 돼서 너덜거린다고. 너는 그에 비하면 아주 천국이지. 천국.”

“아, 진짜 얘 맨날 천국 가잖아요. 한 번 찔러 주기만 해도 하늘까지 날아갈 기세더만.”

“하하학, 그래, 하긴 어딜 가든 좆만 있으면 좋다고 헤벌쭉 하겄네.”

홧홧해지려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술렁이려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익숙하잖아. 상관없어. 그냥 무시하면 되잖아.

“그럼 어여 타고. 가서 예쁨 많이 받어라~.”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달라붙은 말을 가볍게 던진 남자가 올라탄 차 문을 닫았다. 저 문이 꼭 감옥 창살처럼 느껴졌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 팔려 온 곳은 내 생각과 달리 매끈해 보이는 클럽 같은 곳이었다. 음침한 구석에 위치한 허름한 모텔 같은 곳을 상상하고 있던 것과 달리 이곳은 시끌벅적한 밤거리 속에서 당당하게 빛을 뿜고 있었다. 대로변에 하나쯤 있을 법한 클럽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내부도 마찬가지로 시끄럽고 정신없는 클럽 안이었다. 번쩍거리는 조명이 화려하게 빛을 바꾸고 쿵쿵 크게 울리는 음악을 뚫은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솟아 정신을 사납게 만드는.

난 중앙에 모여 몸을 흐느적거리는 사람들 무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와 동떨어진 계단을 올랐다. 날 끌고 가는 검은 양복에게 손목을 잡힌 채 순순히 발걸음을 옮겼다.

미로처럼 이리저리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괜스레 신발 밑창이 신경 쓰일 만큼 유리처럼 매끈한 바닥 위로 뚜벅거리는 구두 소리가 울렸다. 통로를 밝히는 쨍한 조명이 어지럽지도 않은지 남자는 묵묵히 길을 찾아 날 데리고 갔다.

그 시끄러웠던 공간은 지난 지 오래다.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나니 희미하게 울리던 음악 소리도 그치고 고요함만이 내려앉았다. 문 옆의 파란 네모에 카드 키를 대자 들리는 삐- 맑은 음이 유일한 소리였다.

양옆으로 갈라지는 문과 그 안에서 펼쳐진 장면을 보자 확 풍기는 싸한 향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해보다 밝을 것 같은 조명이 아래를 비추는 이곳에선 난잡한 난교가 한창이었다.

아, 역시.

요분질, 추삽질에서 나는 추잡한 소리와 높고 낮은 신음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알몸을 내놓고 잡히는 대로 박고, 박히는 모습이 눈에 담겼다. 익숙한 무력감이 몸을 덮친다.

“신고식부터 해야지?”

유진은 멍하니 웃음을 터뜨렸다. 텅 빈 웃음소리가 의미 없이 허공에 퍼졌으나 습한 숨소리들에 금세 덮여 버리고 만다. 툭 유진의 등을 밀친 남자는 그대로 뒤돌아 방을 나섰다. 단단한 문이 남자를 삼키듯 아가리를 닫으며 굳게 닫혔다.

유진은 문을 바라만 본 채 다가가지도 굳이 열어 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멍하니 저 문이 잠겨 있을까 생각했을 뿐이다. 한 발짝. 딱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게 된 것뿐인데 가는 팔이 우악스럽게 휘어 잡혔다.

‘아, 진짜 웃기다.’

피식피식 실없는 웃음이 꾹 닫힌 입술 사이를 비집고 새어 나왔다.

‘정말… 너무 웃기다.’

옷이 찢어발겨지고 주변에 있던 남자의 작은 환호가 들렸다.

“어라? 웃네에? 자지 먹을 생각하니까아 좋아? 으응?”

눈이 풀린 남자는 약에 취했는지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을 걸며 하나 남은 속옷에 손가락을 걸었다. 참 쉽게도 내려갔다.

젖은 소리와 밀려드는 감각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고개를 젖히고 역겹지만 익숙히 맡아 본 비린 냄새를 들이쉬며 생각했다.

진짜 그런 팔자가 있나 봐. 웃기다. 이런 인생도 있나 보지.

그러나 이내 밀려드는 희락에 다시 끊기고 방을 가득 채운 끈적한 소리에 유진의 교성이 자연스레 섞여 들었다.

‘씨발, 다 좆 깠으면.’

유진이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

이곳에서의 일상은 내 예상대로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처음부터 다짜고짜 난교의 장에 뛰어들게 된 터라 이곳에서도 더럽게 굴려지겠구나 싶었지만 그건 가끔 있는 이벤트였다고 한다. 매일 그런 건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언젠가 한 번씩 한다는 뜻이지.

하지만 언제 또 그런 날이 올지 불안해하진 않았다. 걱정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러나 그저 덮어 두기로 했다. 안 그래도 하루하루가 버거운데 생각조차 무겁다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저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 쾌락에 길들여진 몸이 고통 없이 쾌감만을 느낀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지 않나 애써 자위하듯 생각하며 그렇게 지냈다. 무의미하고 똑같은, 고통 없이 익사하는 듯한 일상이었다.

멍하니 침대 위에 걸터앉아 손님을 기다렸다. 침대 아래로 늘어진 발을 살짝 까닥거리며 가사 모르는 노래의 멜로디를 입 속으로 흥얼거렸다. 몸이 축 처지려 해 일부러 더욱 유쾌한 척 발을 번갈아 움직였다. 입 안의 음정은 콧노래로 새어 나왔다.

또 우울해지려 한다. 또 나쁜 생각이 든다. 이럴 때면 차라리 빨리 박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아무 생각도 없이 휘둘러지는 게 나을 때도 있다.

벌컥 대차게 열린 문과 달리 술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는 남자가 찬찬히 다가왔다. 다가올수록 독한 술 냄새가 알싸한 향수 냄새와 섞여 살짝 역했다.

아, 결국 왔구나.

입술 안의 여린 살을 슬며시 깨문 유진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일어났다. 굳은 입매가 어색한 호선을 그렸다. 정처 없는 손을 모아 잡고 공손하게 남자를 올려다봤다.

취한 것 같은데… 바로 엎드려서 박히려나? 너무 세게 잡진 않았으면 좋겠다. 저번에 방문한 남자는 허리를 쥐어짜듯 잡고 박아서 멍과 손자국이 며칠 남아 있었다. 술에 취한 남자든, 약에 취한 남자든 취한 사람들은 다 싫다. 그런 사람들은 늘 거칠고 폭력적이었다. 가끔 뺨을 맞거나 목이 졸린 적도 있었다.

취객이라니 오늘은 운이 나쁘다. 늘 그랬지만. 그래도 생각은 지울 수 있겠지. 그건 다행이네.

느린 걸음으로 내 바로 앞까지 도달한 남자가 그 커다란 몸을 숙였다.

“염색한 건가?”

가는 머리칼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사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딱 봐도 술에 잔뜩 절어 있는 양 보였지만 흘러나오는 목소리엔 취기가 없었다. 약간 갈라진 건조한 목소리가 귓가에 버석거렸다.

“아… 그, 그냥 원래 머리, 머리 색이 좀….”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당황해서 더듬더듬 답했다. 보통은 별다른 말 없이 바로 바지춤부터 풀곤 했다. 대화라곤 관계를 맺는 중에 하는 음담패설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난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거니 엄밀히 말해 대화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남자는 살짝 맛이 간 듯한 눈에 힘을 주며 머리칼을 노려보더니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래? 밝다. 연해.”

겨우 볼에 한 가벼운 입맞춤인데도 불에 덴 양 화들짝 어깨가 덜컹거렸다. 그토록 많은 사람과 몸을 섞었는데도 이런 접촉은 처음이었다.

“놀란 거야? 음, 예쁘다. 그래, 예쁘네. 예뻐.”

이르게 손님을 받아 샤워한 후 입은 배스 가운이 긴 손가락에 걸려 스르륵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피부 하얗다. 난 여름에 좀 탔는데.”

그의 손이 어깨뼈를 훑으며 등 뒤로 뱀처럼 내려갔다. 손길이 닿는 곳에 오싹 소름이 퍼져 나갔다. 등 뒤를 살살 쓰다듬듯 어루만지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엉덩이 골을 스쳐 허벅지를 타고 안쪽으로 들어온다. 하얗고 여린 안쪽 살의 빨간 자국에서 손이 멈췄다.

“아.”

그의 손가락이 허벅지 안쪽의 상처를 더듬거렸다.

“이거 창놈이었지.”

눈을 깜박였다. 무심한 말이 가슴에 꽂혔다. 창놈. 맞아. 난 팔려 왔다. 별다를 거 없는 말이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온갖 음담패설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말이다. 어깨를 부드럽게 미는 힘에 침대 시트로 푹 몸이 파묻혔다. 다리 사이에 남자의 허벅지가 들어오고 날 가두듯 머리 양쪽으로 남자의 팔이 버티고 서 침대를 눌렀다.

“이름이 뭐야?”

“…유진이요.”

“유진?”

“아, 그, 이현. 이현이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실제 이름을 말하고 말았다. 정말 오랜만에 이름을 소리 내어 발음해 보았다. 물론 여기선 가명을 사용했다. 내 가명은 이현이다. 전에 일하던 사람의 이름을 딴 아무 의미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런 아무 의미 없는 말조차 부르는 사람이 없었지. 여기선 이름을 부르지 않으니까. 가명이 불릴 땐 라운지에서 특정 사람을 지명할 때 정도일 테니.

“아아. 유진이 아니라 이현이라고?”

그 메마른 목소리에 작은 웃음기가 곁들었다.

“네, 이현이에요.”

“그래, 유진아. 성은 뭐야?”

“…유가 성이에요.”

“그래? 그럼 진이라고 불러야겠네. 이름 특이하다.”

“…네.”

커다란 손바닥이 볼을 감싸고 반대쪽 귀에 혀가 와 닿았다. 귓불을 잘근잘근 아프지 않게 씹다가 목으로 내려가 목울대 부분을 살짝 머금듯 물었다. 움칫 끼치는 소름에 고개를 젖혔다. 길게 드러난 목선을 혀가 따라 올라와 턱 끝에 쪽 작게 입술을 찍고 잠시 얼굴을 떼 바라봐 왔다.

역시 취한 게 맞는 듯 표정이 멍하니 풀려 있다. 그러나 이채를 띤 눈만은 꽤나 선명했다. 그래 봤자 주정뱅이의 맛 간 눈이겠지만.

“원래 이런 싸구려 매음굴은 들어오지도 않는데.”

다시 그 손이 머리칼을 쥐었다.

“네가 사람 하나 구한 거야. 원랜 기분이 너무 더러워서 족칠 생각이었는데.”

들어 올리는 손에 짧은 머리칼이 사르르 시트로 흩어지고.

“날 여기로 밀어 넣은 그 씨발 새끼….”

이마를 덮은 앞머리를 걷어 올렸다.

“진짜 왜 이리 마음에 들지? 응? 오랜만에 취해서 그런가….”

남자는 과묵할 것 같은 인상과는 다르게 말이 많았다. 그의 말처럼 취해서 그런 건지.

얼굴가에서 배회하던 손이 아래로 내려가 성기를 살짝 쥐었다. 기둥을 쓸며 요도를 지분거리는 엄지에 허리가 휘청거리듯 퉁 튕겨 올라갔다.

“흣!”

“아, 진짜 마음에 들어.”

살짝 벌어진 입가로 혀가 들어와 입 천장을 살살 쓸어 올렸다. 위아래로 쓱쓱 움직이는 손에 다리가 더욱 벌어지고 막힌 입새로 신음이 웅얼웅얼 사그라졌다. 혀를 휘어 감고 치열을 훑고 아랫입술을 깨물고. 이상한 행위에 몸이 계속 움찔움찔 떨렸다. 아니, 이건 아래 때문인가.

“하, 읏!”

입이 떨어져서 숨을 크게 들이쉬는 순간, 남자의 손에 쥐인 성기가 절정을 맞았다. 지금껏 뒤를 박히며 혼자 절정에 오른 경우가 많았기에 남자의 손에 간 성기가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사정을 했는데도 몸이 많이 버겁지 않은 것도, 아직도 박히지 않은 것도 모두 어색했다.

“진짜 하기 싫은데 엄청 하고 싶어.”

남자가 사정의 여운이 남은 성기를 제 것처럼 주무르며 손가락에 묻힌 사정액을 구멍에 지분거렸다.

“응? 박고 싶은데 여기서 하긴 싫다고. 나랑 우리 집 갈래, 진아?”

“아, 그… 아마 안 될… 것 같은, 데요….”

“왜애?”

“흣! 그, 규, 규칙상… 으, 아마….”

“규칙… 음, 규칙… 이딴 데에도 규칙이 있다니 웃긴다. 으음… 그럼 내가 물어보고 올까?”

“아니, 흑!”

느릿하고 부드러운 자극에 몸이 배배 꼬였다. 차라리 바로 박아 주길 바랄만큼 몸이 이상하게 꼬여 갔다. 기다란 손가락이 하나씩 천천히 들어갔다 나오며 입구를 느리게 넓혀 갔다. 거칠지도 않은데 호흡이 불안정해져 간다. 괜스레 조바심이 일며 엉덩이가 연신 움찔움찔 절로 떨린다. 남자도 그런 진동을 느낀 건지 새어 나온 웃음소리가 볼에 닿았다.

“참을성이 없네. 빠르게 해 주는 게 좋아서 그래?”

“아, 으응… 조금, 지금, 은 흣! 너무….”

쯜푹!

“흐앙! 항!”

“혹시 거친 걸 좋아해?”

“학! 아, 아니! 흐응!”

“보니까 그냥 다 좋아하는 것 같네. 착해라.”

가위질하듯 손가락 사이를 넓히며 더욱 안으로 박혀 오는 감각에 절로 아래에 힘이 들어갔다.

“잘 조이네. 지금 말고 좆 물 때만 조여도 되는데.”

“흐읏!”

아. 너무 느리다. 엉덩이가 스스로 움직이고 싶어 하듯 움칫움칫 떨렸다. 이러다 정말 허리라도 돌리며 빨리 박아 달라고 애원할 것 같아 애써 다리에 힘을 주며 조금 오므리려 했다. 그러나 살짝 오므리자 구멍 안의 손이 더욱 선명히 느껴져서 멈칫했다. 다시 벌릴 수밖에 없었다.

시선이 몸을 훑는 게 느껴진다. 노골적인 시선엔 익숙한 빛이 담겼다. 욕망. 그 음습한 이채. 남자의 눈은 더욱 격정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하는 짓은 누구보다 느리고 부드럽다. 그 모순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겨우 사창가에 팔려 왔다고 가련한 창부인 척, 세상을 다 깨달은 척, 모든 인간 군상에 통달한 척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눈과 행동은 아귀가 맞지 않았다.

“하응! 흥!”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해? 앞에 손님을 두고 봉사만 받을 거야?”

누가 손님인지 모르겠네,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구멍 속에 박힌 손가락이 가만히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빠져나갔다. 남자는 물에 젖은 손가락을 비비며 끈적한 점성을 관찰하듯 눈여겨보았다. 손가락에 닿았던 시선이 구멍으로 내려갔다. 액을 촉촉이 머금어 오물거리는 구멍이 노골적인 시선에 확연히 드러났다.

봉사… 뭘 해야 되지. 지금까진 입에 물려 주면 빠는 게 내 봉사의 전부였다. 넣어 주면 구멍을 조이고, 교성을 내뱉고… 그 외에 뭐가 있지? 누구도 이 이외의 것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그들은 박았고 난 박혔을 뿐. 그 외의 상황은 없었기에 꽤나 당황스러웠다.

애무 같은 거라도 해야 되나? 그런 건 배운 적이 없는데. 뭘 해야 되지. 젖꼭지라도 빨아 줘야 되는 건가? 좆도 물리는 대로 빠는 마당에 못 할 것도 없지만….

유진이 힘겹게 허리를 들어 남자의 몸 위로 올라탔다. 망설임은 잠시, 고개를 천천히 내려 가슴에 입을 맞췄다. 점점 아래로 내려 젖꼭지를 물려는데 남자의 손에 고개가 홱 들렸다.

“뭐 하는 거야?”

헛웃음이 밴 황당한 물음에 내가 더 당황해 남자를 봤다. 그 기가 차다는 표정에 실수를 한 건가 싶어 얼른 몸 위에서 내려왔다. 허락 없이 몸을 깔고 앉아서 기분이 나빴나.

“죄… 죄송….”

“아니, 내려가라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여전히 기막힌 기색을 지우지 못한 남자의 말투에 몸이 굳어 갔다. 전에 징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도망치다 걸리거나 손님의 불만이 접수되면 지하 창고에서 일주일 동안 굴려진다고. 밤낮없이 계속, 정액만 받아 배를 채우면서….

“왜 그래? 놀랐어?”

창백히 질려 가는 얼굴을 잡아 올린 손이 몸을 더듬었다. 차분히 등을 쓸다 손을 한 번 쥐어 주고 허리로 내려가 엉덩이 골을 따라 젖은 골을 쓰다듬었다.

“놀랐구나. 실수한 거 아니야. 갑자기 젖꼭지를 빨려 해서 놀랐지. 하긴, 그것도 애무구나.”

“아…….”

다른 애무를 바랐던 모양이다.

“으! 흣…!”

남자의 고개가 아래로 깊이 숙여져 젖꼭지를 물었다. 살짝 씹듯 물었다가 금세 달래듯 혀를 내어 핥아 입 안에 굴렸다.

“진이는 여기가 기분 좋았었구나. 나한테도 기분 좋은 거 해 주고 싶었어?”

“흐응! 아!”

“엄청 예민하다. 몸 파는 새끼들은 다 이러나?”

움찔 몸이 굳었다. 다정한 어조와 달리 그 내용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온갖 심한 말을 다 들었던 주제에 겨우 이런 말에 상처받는 것도 웃긴데. 그래도 순간적으로 눈가가 뜨거워졌다.

억울했다. 내가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닌데. 따지고 보면 나도 피해자였는데. 만약 내가 조금 다르게 태어났다면 한평생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갔을 텐데.

남자가 입술로 돌기를 더듬거리다 물어 빠는 고개를 들고 얼굴을 살폈다.

“왜? 왜 상처받은 척해? 난 그런 취향은 아닌데. 동정인 척하는 거 좋아하는 새끼들이 많나.”

눈물을 훑듯 화끈거리는 눈가를 한 번 쓸어 본 남자가 멍하니 자신의 마른 손가락을 바라봤다. 허벅지에, 허리에, 얼굴에. 몸을 쓸어 올리듯 시선을 던진 남자가 휘적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다 불쾌한 듯 인상을 쓰며 가늠하듯 날 내려다봐 왔다.

“여기서 하는 건 진짜 싫어.”

아이가 떼쓰듯 말하는 그가 황당했다. 뭐 어쩌라는 거야, 나보고. 방이 마음에 안 들면 관리자한테 가서 따지든가.

“가만히 있어. 갔다 올게.”

남자가 머리를 한 번 쓸더니 한숨을 쉬곤 툭 말을 던졌다. 여상한 어조였으나 꺼림칙한 당황이 서린 목소리였다.

“그동안… 아, 이거라도 가지고 놀고 있어.”

남자가 서랍을 열어 딜도 하나를 꺼냈다. 그 모양을 보자 씨발, 욕이 절로 나왔다. 손잡이를 손에 쥐자 꺼덕거리며 한 번 앞뒤로 움직인 그 고무 모양의 딜도를 다리 사이로 가져왔다. 나가자마자 바로 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살을 가르며 쑤욱 들어오는 딜도를 견뎠다. 아까의 손장난 때문에 물기가 고여 있던 구멍이 거리낌 없이 굵고 기다란 딜도를 받아들였다.

“흐읏.”

엉거주춤 누운 자세로 다리를 벌리고 숨 쉬는데 침대 시트를 더듬거리던 손이 커다란 손에 붙잡혀 위로 올라갔다.

“어?”

순식간에 두 손목이 하나로 포개져 침대 위로 끌려갔다. 겨우 한 손으로 날 쑥 침대 헤드까지 올린 남자가 서랍에서 꺼낸 건지 기다랗고 까만 띠 같은 걸 손목에 돌렸다. 이거, 젠장. 불길한 예상처럼 남자는 손목을 묶고 남은 띠를 침대 헤드에도 엮어 단단히 고정시켜 두었다. 그가 다리 사이에 박힌 딜도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아아, 내가 실수를 했네.”

남자가 퍽 밝게 웃더니 손잡이만 빼꼼 나와 있는 딜도를 잡아 꺼냈다.

“흐으읏!”

오싹 등허리로 소름이 내달리는 감각에 다리를 움찔 떨었다. 구멍을 모조리 긁으며 빠져나온 고무 딜도를 한 손으로 들고 달랑거리며 남자가 서랍 안을 뒤적거렸다.

“이건 진동도 안 하잖아. 재미없게. 내가 굳이 이런 거 박아 주는 이유가 뭐겠어. 우리 진이가 혼자 남으면 심심하니까 그런 건데 재미없으면 뭔 소용이야.”

마침내 마음에 드는 걸 찾았는지 남자는 흡족한 미소를 입가에 걸고 달랑거리는 딜도를 저만치 침대 아래 어디론가 휙 던져 버렸다.

“움직이는 게 있어야 재밌겠지? 그치, 진아?”

친근한 척 이름을 부른 남자는 손안에 색색의 기다란 끈들을 아울러 잡고 있었다. 그 아래론 조그마한 달걀 모양의 동그란 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설마… 설마 저걸 다….

“근데 이건 너무 작잖아. 그래서 좀 많이 가져왔어.”

뿌듯한 말투에 열이 올랐다. 이… 이 미친 새끼. 이 미친 술 취한 새끼….

바이브레이터가 하나둘씩 밀어 넣어졌다. 매끈한 타원형의 물체가 미끌거리며 들어갔다. 윤활제라도 바른 양 넣는 족족 쑥쑥 들어가는 구멍을 보며 남자가 기특하다는 미소를 짓곤 유진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마침내 손에 쥐고 있던 바이브레이터가 모두 구멍에 들어가고 오므려 다문 구멍 아래로 색색의 줄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다 넣은 남자가 유진의 엉덩이를 손에 가득 차도록 꽉 쥔 후 아쉽게 떨어졌다.

“그럼 장난감들이랑 기다리고 있어.”

남자의 말이 끝난 후 아래에서 진동이 들이닥쳤다.

“……!”

구멍 안에 들어간 그 모든 바이브레이터의 진동들이 동시에 켜졌다. 눈앞이 아찔했다. 웅웅거리는 커다란 진동 소리마저 몸을 압박하는 것 같았다.

“힉…! 흐억, 학….”

다급한 숨소리만 목을 긁으며 나오고 신음조차 터지지 않았다. 무언가 입 안을 막고 있는 듯 명치께가 거북하며 턱 얹혀 있는 것 같다.

무섭게 진동하는 바이브레이터들이 서로 부딪히고 밀쳐 내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여린 내벽을 치대고 살을 눌러 달달달 진동하며 깊숙한 곳의 도톰한 살점에도 기어이 닿았다. 꾹 누르며 비비듯 잘은 진동이 계속되었다.

“하윽! 하, 안, 으! 흣!”

도드라진 부분이 꾹 눌린 채로 진동하자 정신이 먹먹하게 잠기는 것 같았다. 막막한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데 번개라도 치듯 시야가 번쩍번쩍 눈부셨다. 어떻게든 눌린 부분을 피해 보려 허리를 뒤척거렸더니 바이브레이터들이 저들끼리 다시 맞부딪히며 밀려나고 말려 들어가며 섞여 갔다. 속에 박혀 눌린 진동은 그대로였다.

“아흐, 아흐응!”

발가락이 아프도록 곱아들고 허리가 들렸다. 다리가 들린 허리를 지탱하며 덜덜 떨었다. 함께 꺼덕거리는 성기가 허리를 따라 몇 번 흔들리더니 왈칵 허연 액을 뱉어 냈다.

“아…! 흐, 흣, 흐앙! 응!”

시야 바로 앞에서 무언가 펑 터지는 감각에 힘 잃은 다리가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높이 들린 허리 역시 순식간에 시트로 퉁 떨어졌다.

꺼덕, 살짝 들렸다 떨어진 성기는 배에 바짝 붙은 채로 줄줄 탁한 정액을 허리께에 쏟아 냈다. 그 움직임에 더 자극을 받은 구멍이 액을 질질 흘리고, 그 액에 잠겨 가면서도 진동들은 멈추지 않았다.

속에 박힌 것들은 이리저리 구멍을 몽땅 헤집듯 돌아다니며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내벽 이곳저곳을 죄다 눌러 보며 진동시켰다. 점막을 그대로 파고들 듯 거칠게 진동하는 바이브레이터에 숨이 계속 막혔다.

버거운 감각에 한없이 서러워진다. 유진이 통곡하듯 눈물을 쏟아 내며 헐떡였다. 고개를 도리도리 젓다가 옆으로 돌려 시트를 한 움큼 깨물었다. 이를 악물며 시트를 짓씹다가도 감전된 듯 부르르 몸이 한 차례 전율하면 입에 물린 시트를 놓고 앙앙대기 일쑤였다.

물에 젖은 종이처럼 정신이 금방이라도 찢길 듯 위태롭게 흐물거렸다. 높이 들린 채 고정된 손을 아무리 흔들어 봐도 단단히 꽉 조여진 손목만 괜히 시큰거릴 뿐이었다. 쓸 수 있는 건 허리와 다리뿐. 그러나 유진의 허리와 다리는 폭력적으로 닥쳐오는 버거운 괘락에 흐느적거리며 시트에 파묻히듯 파고드는 게 고작이었다.

본능에 따라 허리를 위로 퉁퉁 튕길 때마다 시끄러운 진동 사이로 달그락달그락 구멍 아래 줄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날 방치한 채 나간 그 미친놈이 원망스럽다. 생각해 보니 그냥 집에 가 버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리가 없지. 씨발, 개새끼. 씨발 새끼. 그럼 나는 관리자가 방문을 두드릴 때까지, 혹은 다음 손님이 올 때까지 계속 이 상태로 있어야 하는 건가.

절망감이 아득히 몸을 덮쳤다. 그 와중에도 숨 막힐 듯 파고드는 쾌감에 다리를 오므렸다가 벌리며 가만히 두지를 못했다. 배 속을 휘젓듯 활개를 치는 쾌락이 잔뜩 고이며 크기를 부풀려 갔다.

잠시나마 늘어져 있던 성기는 또다시 사정을 할 듯 꼿꼿이 선 몸체를 배에 비비적거렸다. 찌르르 퍼져 나가는 황홀경을 참을 수 없어 활짝 열린 다리를 급하게 오므렸다가 눈앞에서 터지는 화려한 폭죽에 부끄럼 없이 쫘악 벌리며 꺼덕거리는 성기와 오물거리는 구멍을 여실히 드러냈다.

헐떡거림과 진동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신음 소리가 연신 터지는 후끈한 열기가 차 있던 방에 시원한 바람이 한 점 들어왔다. 습기가 잔뜩 낀 뿌연 시선을 들어 올렸다. 남자였다.

“아, 흑, 흐윽… 흣! 아, 젭, 흐, 젭알으, 윽….”

목 끝까지 치고 올라오는 서러움에 저절로 애원이 튀어 나갔다.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눈물을 줄줄 쏟아 내며 절절히 빌었다.

“제발, 제, 으앙! 흐, 아읏! 저, 저 더… 학! 하으응…!”

입으론 절박하게 애원하면서도 허리 아래론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잔뜩 즐기듯 허리를 탈탈 털고 있었다. 뭘 씹기라도 하듯 작게 오물거리는 구멍 아래 줄들이 요란스레 덜렁거리며 저들끼리 부딪혔다.

아, 저 얼굴에 정액 한 번 싸면 예쁘겠는데.

신음 섞인 울음에 아래가 뻐근했으나 서럽게 찌푸린 표정이 꽤나 안쓰럽기도 했다. 얼마나 마른 건지 뼈가 그대로 드러나는 굴곡이 하얗기까지 하니 더욱 신경 쓰인다. 솔직히 금방 붉게 부어오르고 가는 선이 낭창거리는 게 야해 빠진 몸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나 역시 안타까움도 있긴 했다.

“미안. 대표가 너무 멍청한 거 있지.”

예의상 짓는 표정처럼 눈썹을 까닥거린 남자가 줄들을 한 손에 그러쥐었다. 그 모습을 담은 눈이 불안하게 떨렸다. 방황하는 시선을 들어 남자를 보았다. 안 돼. 설마.

“그 좆같은 새끼 때문에 괜히 얘기만 길어졌어. 어차피 결과는 변함없는데 뭐 그리 쓸데없는 말이 많은지.”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은 남자가 한 손으로 가볍게 배를 눌렀다. 묵직한 무게가 허리께에 있는 정액을 넓게 펴 바르다 볼로 이동했다. 뺨을 조심조심 쓰다듬으니 손바닥에 묻은 정액이 얼굴에 치덕치덕 발렸다. 정액으로 반들거리는 얼굴을 본 남자가 기쁜 듯 미소 지었다. 그 직후.

“……!! 힉…!”

크게 뜨인 눈동자 속 동공이 작은 점으로 줄어들었다. 곧바로 반응하는 허리가 공중으로 홱 치솟고 목이 길게 젖혀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얗게 탈색된 공간 속에서 맑은 웃음소리가 잔잔히 울렸다. 서서히 시야가 뿌예지며 흐리게 남자를 비쳤다.

“헉… 하으, 흐….”

여운이 길게 남은 몸이 반사적으로 들썩거렸다. 남자가 한 번에 뽑은 줄들을 유진의 배 위에 올려 살결을 쓸며 위로 올라갔다. 구멍에서 흥건히 젖어 나온 바이브레이터들이 살을 부드럽게 스치며 점액질 길을 주르륵 남겼다. 가슴께까지 올라온 그것들은 젖꼭지를 중심으로 둥글게 그리다 중심부에 닿을 듯 말 듯 느릿하게 간을 보았다.

“어으으….”

바이브레이터가 작은 돌기를 스치며 액을 묻혔다. 딱딱하게 선 젖꼭지가 물기에 반짝였다. 남자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그 눈빛에 장난기가 스치고 그 이채를 본 유진이 다급히 말했다.

“자, 잠깐만요! 안 돼요, 안…!”

다시 우우웅- 저마다의 진동에 부딪쳐 달그락거리는 바이브레이터들이 가슴으로 쏟아지듯 내렸다.

“하으윽! 안 돼, 안…! 아!”

“뭐야. 젖꼭지만 건드는 건데 왜 이리 느껴.”

말로는 타박을 하며 남자가 실실 웃음을 흘렸다. 나른한 웃음이 바닥에 뚝뚝 떨어져 갔다.

“어? 우와. 우리 진이, 젖꼭지로도 갈 수 있는 거야?”

시선을 내린 남자가 단단히 선 성기를 보며 눈을 빛냈다.

“좀 더 힘내 봐. 곧 가겠다.”

남자가 유진의 사정을 격려하듯 바이브레이터들을 더 아래로 밀어붙이며 돌기 위를 둥글게 돌았다. 하지만 쿠퍼액을 질질 흘리면서도 막상 가지는 않으니 끈질기게 밀어붙이던 남자가 결국 한숨을 쉬곤 진동을 껐다. 유진이 내심 안심하며 안도의 숨을 작게 쉰 순간, 남자의 커다란 손이 유진의 젖꼭지를 꼬집듯 잡아당겼다.

“하으윽…!”

고통에 절로 허리가 들리고 잔뜩 뭉친 아래가 탁 풀어지며 정액이 솟구쳐 나왔다. 뻐근하게 고여 있던 쾌감이 분출되자 기분 좋은 소름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찌르르 퍼져 갔다. 유진이 온몸을 비틀며 발정 난 것처럼 시트에 몸을 부비작댔다.

그 귀여운 꼴에 남자가 손목의 끈을 풀어 내리곤 유진을 품에 안았다. 그새 붉은 자국이 새겨진 손목을 조심히 쓸다 제 품에서 늘어진 유진을 고쳐 안았다. 유진을 제 가슴에 잠시 기대게 한 남자가 손을 뻗어 협탁에 걸쳐 둔 제 외투를 집었다.

외투를 넓게 편 남자가 유진 위에 덮었다. 남자의 체구에 딱 맞게 제작된 코트는 유진의 몸을 한 바퀴 돌려 감고도 넉넉하게 남았다. 유진은 보드랍고 따듯한 안감이 피부를 감싸자 기분이 좋아졌다.

색색거리는 숨이 잦아들자 유진을 안고 일어선 남자가 뚜벅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문이 열리자 살짝 시린 공기가 닿아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러자 남자가 몸을 덮은 외투를 희게 드러난 하체까지 내렸다. 종아리는 여전히 드러나 있었지만 외투가 감싼 부분은 포근했다. 심지어 긴 복도를 통과해 완연한 겨울이 한창인 밖으로 나왔는데도 추위가 파고들지 못했다.

늘 싸구려 옷감만 걸쳤던 몸은 이 생소한 감각이 어색하면서도 신기했다. 어렸을 적, 의류 수거함을 기웃거리다 잽싸게 가져와 입었던 빵빵하기만 한 패딩은 무겁기만 하고 그리 따듯하지 않았다. 그래서 추위에 떨며 늘 발을 동동 구르며 다녔었는데. 그런데 그 얇아 보이던 코트가 이렇게 따듯하게 몸을 데우다니. 역시 비싼 옷은 다른 건가. 이 옷도 많이 비싸겠지. …부자들은 부럽다.

남자의 구두 소리가 텅 빈 지하 주차장에 홀로 울렸다. 하나같이 매끈하게 빠진 차들 사이를 건너 마찬가지로 먼지 하나 내려앉지 않은 채 광택을 뽐내는 차 앞에 섰다.

앞문을 열지 않고 뒷문을 열어 그대로 올라타는 남자의 행동에 의아했는데 운전석에 가만히 앉아 있던 사람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크게 떨린 몸을 감지한 손이 옷감 위로 유진을 쓸어내렸다. 한순간 내려앉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유진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무 말도 없었는데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난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늘 자연스럽게 데리고 가는 대로 움직였던 터라 이 상황을 부자연스럽게 느낄 새가 없었다. 이번엔 다른 데로 팔려 가는 건가? 사실 포주였던 건가?

그러나 어차피 어디로 가든 다리를 벌리며 구멍을 조여야 되는 신물 나는 일상이 반복되는 건 변함이 없을 터이다. 시작부터 추락이었던 삶. 그게 내 인생이었는데 어디로 가든 무슨 상관일까. 가기 싫다고 안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유진이 무력하게 몸을 기댄 채 남자의 품에 나른히 늘어졌다. 남자의 손길이 옷감 위로 뭉근히 느껴졌다. 그 규칙적인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잠겨 가는 의식 사이로 얼굴에 내려앉는 집요한 시선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흑, 흑!”

아래에서 이상한 열기가 훅 끼쳐 들었다. 저도 모르게 내뱉고 있던 짧은 신음에 화들짝 놀란 유진이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아!”

“아, 깼어? 피곤했나 봐. 안 일어나길래 슬슬 깨우려던 참이었는데.”

자각하니 곧바로 희락에 휩쓸리는 몸에 손바닥으로도 막지 못한 신음이 터져 나갔다.

‘뭐지. 뭐야. 누구지.’

정신을 흠뻑 녹이는 쾌락에 취하며 흔들리는 시야 속의 남자를 눈에 담았다.

아, 손님인가? 맞아. 어제 손님이 왔었어. 그 따뜻한 코트랑 주차장이랑….

“아! 흑!”

“진아, 무슨 생각해?”

빨라서 버거워도 부드럽게 추삽질을 하던 남자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골반을 잡아 내려찍듯이 쾅! 박아 왔다.

“아!!”

머리가 잠시 찡 울릴 만큼 세게 박히는 충격에 두 다리가 훌렁 들렸다. 위로 솟구치듯 들린 다리를 잡아 어깨에 하나씩 걸쳐 놓은 남자가 놀란 유진의 몸을 즐기며 다시 빠른 추삽질을 시작했다.

유진보다 훨씬 큰 남자의 어깨 위로 두 다리가 올라가자 체격차로 인해 엉덩이가 들린 것은 물론이요, 허리까지 올려져서 거의 대롱대롱 매달렸다고 봐도 무방할 자세였다.

하체가 들린 채로 커다란 성기에 꽂히니 흐물거리는 허리 아래 연신 박혀 오는 감각이 더 선명히 느껴졌다. 저절로 숨이 삼켜졌다. 신음을 내려고 벌린 입에서 꺽꺽 숨넘어가는 소리가 흘렀다.

“하, 끄, 흐으, 흣! 흡, 으, 읏!”

남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다시 꽝! 박아 넣곤 허리를 돌리며 잠시 뭉그적거렸다. 남자의 허리 돌림과 구멍에 가득 찬 성기로 인해 기둥을 감싼 내벽이 모조리 눌리며 비벼졌다. 촉촉하게 젖은 점막이 예민하게 꾹 눌러지는 걸로도 모자라 짓눌린 채로 비벼지기까지 하니 온 정신이 휘발되었다. 좋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원시적인 감각만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터져 갔다.

“흐응, 허으으으….”

축축하게 젖은 점막이 남자의 성기에 달라붙어 간신히 기둥을 물었다. 그러나 접 붙은 성기가 내벽에 흥건히 배어 있는 액들을 모조리 쓸어 가고, 온통 마찰시켜 자극하니 그 조금 남은 힘마저도 잃곤 녹아내렸다. 그에 따라 점막은 성기에 고스란히 달라붙어 좌우됐다. 나가면 나가는 대로 쪼르르,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또 쪼르르. 얇은 막처럼 붙어 이따금 경련할 뿐이었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모습에 다시 집중시킬 겸 일부러 유진이 가장 잘 느끼는 도톰한 부분을 빗겨 박았다. 그럼에도 내벽을 빈틈없이 채우는 성기로 인해 통통하게 부어오른 속살이 몽땅 허물어졌다. 구멍 안에선 살이 몽땅 짓물러진 충격에 액이 터지듯 나왔고 성기가 다시 뒤로 물러나는 와중에도 연신 액이 새어 나와 끈적한 점액질이 기둥을 흠뻑 적셨다.

일정한 피스톤질로 인해 안 그래도 물렁물렁 풀어진 살이 완전히 녹았다. 야들야들해진 점막만이 힘없이 기둥에 달라붙어 딸려 가고, 들어오면 또 그대로 말려들어 살 속 제자리를 찾아 파고들었다.

“뭐야.”

비웃음 섞인 음성이 기분 좋은 투로 울렸다.

“난 진이가 이곳을 가장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작은 웃음을 머금은 남자가 허리를 꾸욱 밀어 넣었다. 성기가 살 속을 파고들어 깊게 묻혀 있는 도톰한 살점을 꾸우욱 도장 찍듯이 깊게 눌러 왔다.

“아흐으응!”

“아무 곳이나 박아 넣어도 그냥 다 좋다고 느끼는 거였네. 가리지도 않고. 참 착하기도 하지.”

어깨에서 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유진의 걸쳐진 다리가 발발 떨리고 있었다. 허리께를 보니 허리도 애처로울 만큼 가늘게 전율하며 바르르 떨고 있는 중이었다. 남자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하긴 뭘 넣어 주든 다 좋다고 허리 돌려 대긴 했지. 그런데 어딜 박아 주든 이것도 다 좋다고 곧장 느껴 대니 원. 이건 천부적인 건가. 매일 박아 길들여도 이렇게 민감할 순 없을 것 같은데.”

“후으, 윽, 하으… 허으으….”

온통 벌겋게 물든 가슴팍을 지나, 고른 뼈가 도드라진 쇄골을 지나, 살짝 핏대가 선 가는 목을 지나 마침내 얼굴로 시선을 올렸을 때 하마터면 그대로 쌀 뻔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린 유진은 혀를 살짝 뺀 채로 개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자신의 입이 지금 무슨 상태로 벌어져 있는지도 모른다는 듯 무고한 표정으로 잘도 헐떡댔다. 벌린 입가론 침이 새어 나오고 말캉해 보이는 선홍빛 혀는 타액을 얇게 머금은 채 삐져나왔다.

눈가는 허물어진 구멍 안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눈물을 흘려보내고 있었고, 자그마한 코로부터는 콧소리 섞인 신음이 교성과 섞여 나왔다. 잔뜩 느껴 정신 못 차리는 얼굴의 정석과도 같았다.

“흡, 하으, 하, 하아….”

“아. 환장한다, 아주.”

만족감이 가득 찬 목소리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달큼하게 흘러나왔다.

문득 유진을 처음 만났을 때의 단정한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어색하게 손을 마주 잡은 채 뻘쭘한 표정으로 제 시선을 살폈던 그 말간 얼굴이. 이름을 묻자 화들짝 놀라 본명을 말하고선 곧장 낭패한 기색을 드러내던 그 투명한 표정이.

마냥 곱기만 하던 그 외양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흐트러져 흐드러질 수 있는지. 그 단정함이 떠오르자 손이 저릴 만큼의 만족감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찌르르 퍼져 나갔다. 지나칠 정도의 쾌락에 이를 악물었다. 유진의 얼굴을 가두듯 시트에 올린 두 팔뚝에 핏줄이 곤두섰다.

아. 이걸 진짜 어쩌지.

“아, 하윽! 흐아!”

유진은 박는 대로 힘없이 흔들리며 들린 허리를 구기듯 꺾으며 신음했다. 퍽! 박을 때마다 아! 하며 즉각적인 신음이 터졌다.

남자는 눈을 까뒤집다 다시 깜박거려 돌아온 눈동자에도 시선을 두었다. 그래, 이 눈도 좋았다. 고요히 가라앉은 눈동자에 파동이 생기고, 격동이 일고, 탁하게 흐려져 완전히 흐물흐물 풀려 버리는 그 과정이 몸을 달아올라 미치게 했다. 종국엔 뒤집기까지 하는 그 정직한 반응에 제멋대로 날뛰는 흥분이 자제가 안 될 지경이었다.

성기가 찔러 올 땐 허리가 흐물텅 녹아내리는 것 같더니 뒤로 빠져나가면 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처럼 엉덩이 근육이 빠듯하게 수축했다. 동시에 허리 역시 움찔 굳어졌다. 뜨거운 불에 타오르다 돌연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이도 저도 아니게 팔딱거리는 욕구에 정신이 없었다.

몽롱한 와중에도 쾌감은 따가울 정도로 선명해서 미칠 것 같았다. 시야는 어지럽다 못해 핑핑 돌았다. 이따금 흐릿한 잔상만이 남자의 형체를 비출 뿐이었다.

“아, 맞아. 우리 진이는 여기도 엄청 좋아하지.”

“흐으읏…!”

엄지손가락이 작게 곤두선 유두를 눌러 뭉개며 동그랗게 비볐다. 녹진하게 풀려 마음껏 휘젓는 맛이 있는 구멍과 다르게 만지면 만질수록 성감이 뭉쳐 굳듯 빳빳해지는 돌기는 손안에서 굴리는 맛이 있었다. 또 성기는.

“하악! 흐! 아, 그, 그러, 흐으윽! 너무, 아!”

손에 부드럽게 감겨 말랑거리는 맛이 있고. 아무렇게나 대충 만져도 곧이곧대로 느껴 바르작대고, 귀두라도 한 번 비벼 주면 금방 온몸을 달달 떨며 가 버린다. 귀엽게 떨고 있을 때 허리를 한 번 쳐올려 주기라도 하면.

“……!! 흐…! 흐앙!”

놀란 듯 굳은 몸에서 액이 팍 터지듯 흐르고 숨을 삼킨 다음에서야 죽을 듯한 교성이 터져 나간다.

쉬지 않고 박아 주면 살을 푹 찌를 때마다 질질 싸면서 귀엽게 몸을 꼬며 붙어 오는 게 참 예쁘다. 허리를 두어 번만 쳐올려도 무력하게 떨어져 나가는 주제에 절박하게 붙잡고. 한 번은 유진이 제게 매달리려 하다가 나가떨어져 널브러졌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서러워 보이기도 하고 안쓰러워 그 후론 몸을 치댈 때마다 곧장 안아 주었다. 제 품 안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움직임이 머리를 헤집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뻑! 끌쭉! 푹! 쯜푹!

“학, 하, 흑! 아! 아!”

다리 사이를 내려찍은 성기가 구멍 속에 고인 액에 푹 적셔지는 소리, 기둥을 감싼 젖은 내벽에 마찰하는 소리, 살과 살이 강하게 맞부딪혀 나는 마찰 음. 그 난잡한 소리들이 끈적하게 방 안을 채워 갔다. 낮게 헐떡대고 거칠게 숨을 내뱉다 이따금 높은 교성으로 울리기도 하는 신음 역시 습한 소리들에 자연스레 섞여 차올랐다.

찰흙을 주먹으로 때린 것처럼 이미 한창 물러진 살이 움푹 성기를 파묻으며 경련했다. 한참을 추삽질만 반복하던 남자가 드디어 유진의 안에 깊숙이 몸을 묻곤 정액을 싸질렀다.

“아, 아… 흐응….”

유진이 두 팔로 눈을 가리며 머리를 시트에 문질러 댔다.

“으으응, 으… 흐….”

앙탈 부리듯 고개를 도리질 치며 낑낑거리는 유진의 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정액을 싸 주는 것만으로도 잔뜩 느껴 어쩔 줄 몰라 흐느끼는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하으, 흐, 흣…!”

유진은 어떻게 좀 해 달라는 듯이 허리를 치대며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작은 움직임에 사정을 통해 간신히 되돌아오던 이성이 다시 뚝 끊겨 버렸다.

“아, 이건 진이가 잘못했다.”

위로 올려붙인 팔을 놔주고 유진의 골반을 잡았다.

아직 정액을 채 방출하지 못한 성기로 다시 추삽질을 시작했다. 배 속에 잔뜩 고인 정액으로 유진이 욱, 헛구역질을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이미 한 차례 함락된 몸이 다시 한없이 무너져 갔다.

“저, 저 안, 읏! 저 아니, 흑! 훕, 안 돼! 아!”

무릎 꿇고 엎드린 자세였던 유진은 고작 두 번 박혔을 뿐인데 벌써 다리가 허물어져 시트에 푹 묻힌 채로 다리만 활짝 벌리고 있었다.

한 번의 박음에 휘청, 두 번째엔 아예 털썩 쓰러진 유진을 본 남자가 작게 웃음을 머금었다. 남자는 쓰러진 자세를 굳이 고쳐 세우지 않았다. 그대로 말랑한 엉덩이를 손으로 잡아 가른 채 성기를 내리찍듯이 푹푹 박아 넣었다.

“아! 응! 흥! 흣! 으!”

가는 몸은 남자가 한 번 허리 짓을 할 때마다 시트와 함께 침대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러다 침대 헤드에 유진의 머리가 부딪힐 때가 되면 허리를 붙잡아 한순간에 확 아래로 끄집어 내리곤 했다. 그럴 때면 유진은 돌연 깊게 푹 꽂혀 드는 성기에 신음도 못 하고 시트를 한 움큼 그러모아 얼굴을 묻었다. 시트를 절박하게 모아 잡고선 한껏 풀려 침을 질질 흘려 대는 표정을 가렸다. 꽉 잡은 손에 뭉쳐진 시트가 유진의 침에 젖어 갔다.

“죽, 아, 정말 흐, 아니야, 윽, 이, 이건 흡, 아닌데.”

“응? 뭐가 아니야, 진아.”

쉬어 맛이 간 목소리가 연신 아니야, 아니야 소리를 반복하며 남자의 가슴팍에 대고 도리질 쳤다. 그에 답하는 목소리 역시 조금 쉬어 한껏 낮아진 채로 끝이 약간 갈라져 있었다.

벽과 남자의 틈에 끼여 연신 위로 올랐다 남자의 성기 위로 떨어지는 유진이 목에 매달려 애원했다.

“아니야, 안, 흐읏…! 아, 으앙!”

흐무러진 구멍에 계속 들락거리는 성기로 인해 구멍 안은 헐 정도로 성히 짓물러 있었다.

“진아. 아직도 이렇게 오물오물 잘 물고 있으면서 왜 엄살을 부려.”

“아니야아… 흑, 안 돼, 흐윽, 아니야, 흐어, 흣! 허으응….”

남자의 손이 접합부를 매만졌다. 크게 벌어진 구멍이 성기를 잘 물고 있었다.

“응? 아니야? 이렇게 오물거리면서 아니야?”

사실 구멍이 성기를 물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었던 때는 한참 지나 있었다. 유진의 구멍은 성기를 간신히 걸치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다만 계속된 추삽질로 한없이 녹은 점막이 부드럽게 풀려 꿀렁거리는 액체처럼 성기를 빠짐없이 감쌌을 뿐이다.

또한 구멍도 자의로 오물거리는 게 아니라 찌를 때마다 심하게 느끼는 바람에 경련이 일어났을 뿐이다. 그러나 속사정이 어떻든 남자의 입장에선 유진의 구멍이 자신의 성기를 오밀조밀 잘 물고 오물오물 잘 먹고 있으니 싸도 싸도 계속해서 성기가 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으, 이제, 흑, 아으응….”

더 이상 정액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정액 대신 뿜어져 나오던 말간 물조차 뜸해져 심하게 박을 때만 이따금 픽, 픽 끊기듯 나오곤 했다. 배 속은 정액과 액으로 가득 차 더 들어올 자리가 없어 헛구역질만을 반복했다. 성기를 뒤로 물릴 때면, 배 속에 고인 정액들이 그나마 밖으로 쏟아지는데 그럼에도 배는 늘 꽉 찬 상태로 부풀어 판판해지지 않았다.

유진이 싼 정액과 액들이 난잡하게 얽혀 있는 배 위에 남자의 손이 얹혔다. 삽입된 성기 모양대로 도드라진 채, 정액까지 배부르게 머금은 부푼 배가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이미 한참 전부터 그만하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진은 많이 지친 상태고 저도 슬슬 자제할 때였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달아오르는 몸을 주체 못 하던 사춘기 시절처럼 흥분이 멈추지 않았다. 한창 혈기 왕성할 때는 이미 지났는데도 신음 한 번에, 몸짓 하나에 다시 발딱발딱 일어나는 걸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미안, 조금만 더 하자. 한 번만 더.”

“흐, 아까도, 아! 흐아!”

“그래도 좋긴 좋잖아.”

유진의 허리가 다시 남자의 손에 붙잡히고 또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의 정사는 하루를 통째로 날린 후에야 끝이 보였다.

부스럭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사부작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움직임이 눈을 감은 채로도 희미하게 느껴졌다. 눈을 떠 상황을 확인하고 싶은데 피곤한 눈꺼풀은 무거워 들리지 않았다. 팅팅 부은 것 같기도 하고, 뻑뻑한 느낌도 좀 든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온 근육이 혹사당한 듯 둔중한 통증이 인다. 특히 다리가 욱신거리고 엉덩이엔 멍이 든 듯 닿아 있는 시트의 감촉으로도 뭉근히 아파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죽을 것 같다. 뺨이 줄곧 화끈거리고 뇌가 끓는 물속에 풍덩 담가진 것 같다. 죽을 것 같아. 한동안은 심하게 굴려진 적이 없어서 더 버겁게 느껴지는 건가.

“아, 일어났어? 너무 무리했나 봐. 열이 오르네.”

희미한 신음 소리를 어찌 들었는지 옆에서 물수건을 짜고 있던 남자가 곧장 유진에게로 허리를 숙여 왔다.

“진아, 아파?”

굳게 감겨 있는 유진의 눈두덩이를 손으로 가만가만 쓸다 남자가 물었다.

이번엔 여기로 팔려 온 건가. 또 매일 그렇게 굴려지는 걸까. 또 그렇게. 계속 이딴 식으로.

“슬퍼하는 건가?”

남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시트 안으로 파고들어 유진의 손을 잡아 왔다. 창백한 손등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듯 매만지며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진아, 여기 봐 봐. 응? 나 좀 봐. 힘들어? 힘들어서 그래?”

귓가를 간지럽히는 말이 귀찮다. 무기력하고 질린다. 괜찮다, 괜찮다 해도 사실 미칠 것 같았다. 질려서, 싫어서 미칠 지경이다.

“진아, 어떻게 해 줄까? 아픈 거야, 아니면 기분이 안 좋아? 응? 말해 봐, 진아.”

이 와중에 남자에게서 들리는 말은 너무 당황스럽다. 구걸하는 것처럼 말을 거는 그 간곡한 어조에 힘겹게 시선을 올렸다.

“아, 진아….”

희게 질려 굳어 있던 남자의 얼굴 위로 안도의 기색이 역력했다. 남자가 잡은 손을 붙들고 시선을 맞추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했다.

“미안해.”

생전 처음 듣는 사과였다.

“너무 무리했지. 앞으론 이 정도까진 안 할 거야. …아마.”

남자는 뻔뻔하게 말을 덧붙이면서도 걱정하며 수선 떨다 얼굴을 덧그리듯 매만졌다.

“아, 어쩌지. 어제는 정말 미안. 많이 아픈가?”

차가운 인상과 어울리지 않도록 크게 뜬 눈이 걱정을 담았다. 정사 때와는 확연히 다른 그 태도에 아픈 것도, 힘든 것도 순간 잊을 만큼 그저 너무 당황스러웠다.

***

근 한 달 동안 귓가에 앵앵대는 모기처럼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개새끼들을 드디어 끝냈다. 꽤나 깔끔하게 마무리된 작업에 세헌이 휘파람을 불며 리듬에 맞춰 발을 까닥거렸다.

저것들이 눈떠서 생을 함께한 배 속 장기들이 어디 어디로 팔려 가나 구경했으면 좋겠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러면 나름 재밌을 텐데.

실없는 생각에 픽 웃은 세헌이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말 기분 째지네.

이렇게 좋은 날에는 역시 술을 진탕 퍼마시는 게 진리이지 않겠습니까. 부하 새끼의 당돌한 말에 향한 곳은 복작거리는 클럽이었다.

혼자 알딸딸할 정도로 취해 잠이나 퍼 잘까 했는데. 오랜만에 함께 어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따라나섰다. 간만에 기분이 좋아 마음이 붕 떠 꽤 관대해지기도 했고. 그러나 이게 실수였다.

어느 정도 술에 취하자 저것들의 흐려진 눈에 성욕이 깃들기 시작했다. 하여간 인생에 즐길 거라곤 섹스밖에 없는 더러운 새끼들. 세헌이 픽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슬슬 취기가 올랐다.

술을 들이켜며 미적거리곤 바지춤을 쓸다 조용히 룸 밖으로 나간 새끼들이 벌써 대여섯 명이었다. 이 아래에 매음굴이 있댔나? 누구랑 얼마나 굴렀는지도 모르는 연놈들이랑 하는 게 꺼려지지도 않는 모양이지. 고작 몇 푼 벌겠다고 몸을 파는 새끼나 그걸 좋다고 사는 새끼나 둘 다 한심하다.

똑… 똑.

마지막 잔을 따랐다. 영롱한 호박 빛 위로 물방울 하나가 뚝 떨어져 작은 파동을 그리더니 금방 잔잔해졌다.

술잔을 기울이니 반쯤 찬 액체가 찰랑이다 얼음이 달그락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 잔을 끝으로 가야지.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은 중간쯤에 매춘부들이 득실거리는 지하로 빠져나간 것 같다. 남아 있는 것들은 정신을 놓고 해롱거리거나 오늘 죽겠다는 듯이 술을 퍼붓고 있었다. 한심한 것들.

쯧, 작게 혀를 찬 세헌이 술을 입가에 대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싸한 것 같은 맛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눈을 뜬 것은 웬 구불거리는 복도에서였다.

“…씨발?”

갈라진 목소리가 홀로 울렸다.

더럽게 비싼 주제에 싸구려 술이 기분 나쁜 숙취를 남긴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욱신거리는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곤 앞을 보았다. 쨍한 파랑 빛이 길을 안내하듯 찍 직선으로 그어진 통로 위에 혼자 취객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자다가 칼 맞아 죽기 딱 좋았던 상황에 차가워진 머리가 끊긴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술을 마셨지. 술을 마셨는데. 아, 씹. 설마 약 탄 술을 마셨던가. 이따금 약을 즐기는 것들이 술에 약을 타서 마시곤 했다. 테이블 위엔 술병들이 별 구분 없이 어지러이 위치해 있었고, 앉아 있던 새끼들은 잔뜩 취해 사리 구분도 못 하고 흐느적대고 있었다.

아, 이것들이 진짜.

멍청하게 약 탄 것도 구분 못 하고 처마시던 자신이나 감히 약 탄 술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둔 배짱 있는 자식이나, 뭐가 됐든 짜증이 일었다. 오랜만에 붕 떠 있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 좋았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지금은 그저 신경질만 났다.

코트 안주머니를 더듬거려 휴대폰을 찾는데 휴대폰 위에 자그마한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하트 모양의 연분홍색 포스트잇엔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듯한 글자가 정성스레 들이차 있었다.

「평생 대표님만을 따르고 죽을 저 용두환, 오늘도 고생하신 대표님께 선물 하나 준비했습니다! 지하 구멍들이 진짜 별미인데 마음에 드는 아로 골라잡고 들어가서 즐기시면 됩니다! 용두환이는 죽을 때까지 대표님만을 사랑합니다♡」

…미친 새끼인가? 용두환은 또 누구야, 씨발….

세헌이 인상을 찌푸리며 쪽지를 구겨 라이터로 태웠다. 반들거리는 바닥에 나풀나풀 떨어져 가는 재가 내려앉았다.

웬 또라이 새끼가 들어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어차피 이 바닥에 또라이 아닌 새끼가 있기는 한가, 하는 생각에 별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런데 이런 미친 새끼를 봤나.

이 새끼를 어떻게 족칠까 계획을 세우며 걸었다. 혹시 약이 든 술도 이 새끼의 큰 그림이었다면 그냥 족치는 것만으론 성에 안 찰 텐데 어떻게 해서 이 더러운 기분을 풀까. 아직 약 기운이 안 가신 건지, 취기가 남은 건지 걸음이 어째 바른 것 같지가 않다. 아, 좆같네. 진짜.

평소에도 길을 그리 잘 찾는 편은 아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점점 더 이상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에 잠시 멈췄다가 오른쪽 통로로 돌았다. 이따금 문이 몇몇 개 보이기도 했지만 희미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와 결국 들어가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남들이 붙어먹는 역겨운 장면까지 보게 된다면 이 좆같은 건물에 불이라도 지를 것 같았다.

막 가면 뭐가 나오긴 하겠지. 안일하게 생각하며 길을 걷는 와중에도 자신을 이런 더러운 매음굴에 밀어 넣은 그 새끼를 반드시 족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점점 더 좆같아지는 기분 때문인지 맛이 가는 머릿속엔 온갖 헛소리들이 부유했다. 그러다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는 문을 하나 발견했다. 벌컥 문을 열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인영에 다가가니 어떤 예쁘장한 애가 찬찬히 일어서 저를 바라봤다. 울적해 보이는 얼굴에 절로 시선이 갔다. 연한 갈색의 머리칼이 부드러워 보인다.

술과 약에 취해 드문드문 이성이 끊겼다. 그 사이사이로 눈앞의 이 남자가 참 예쁘게 생겼다는 감상이 들어갔다.

누구지? 뭔데 이렇게 곱상할까.

우울이 스며 있는 단정한 눈매가 시름없이 접히면 참 고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깜빡이니 어느새 손이 남자가 걸친 가운을 풀고 있었다. 부드러운 살결이 마음에 든다. 눈으로 남자의 반응을 살피며 서서히 손을 내렸다. 거절의 말은 없었다. 거부의 반응도 없이 그저 인형처럼 가만히 있었다.

해도 되는 게 맞나? 허락한 건가. 내가 동의를 구한 적이 있던가. 아니, 애초에 어디서 만났더라?

열심히 돌아가던 머리는 한곳에서 멈췄다. 허벅지 안쪽에 새겨진 붉은 자국. 시선을 들어 몸을 훑으니 허리께엔 손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곳곳에 연한 멍이 눈에 띄지 않게 새겨져 있었다. 정사의 흔적이었다.

“아, 이거 창놈이었지.”

그 깨달음과 동시에 멍했던 기억이 돌아왔다. 맞아. 지하의 매음굴. 내가 족쳐야 되는 개새끼.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머리가 차가워졌다.

나가야지. 이런 더러운 곳에서 몇 명이랑 굴렀는지도 모를 놈이랑 밤을 보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아직 취한 머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건지 나가긴커녕 남자의 이름을 물었다. 창놈의 이름 따위 알아서 뭐 할 건데. 정상적인 생각도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성은 무시당했다.

게다가 보면 볼수록 어이없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이상형이 현신한 것 같은 얼굴이다. 몸이 초라하게 마르긴 했지만 선이 고왔다. 도드라진 뼈마저 예쁘게 보였을 정도라면 말 다 한 거지. 아래가 뻐근하게 답답했다. 그냥 할까. 씨발, 이건 느끼는 모습마저 정신 나갈 만큼 예뻤다. 왜 하필 이렇게 생겨서.

그래도 여기서 하는 건 진짜 싫었다. 물론 내가 도덕적인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다. 어차피 하는 일부터가 합법적인 것도 아니었다. 겉으론 다 합법인 양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었으나 그 속은 치졸한 것들이 많았다. 파헤쳐 보면 온갖 더러운 짓거리를 일삼은 범법자였다.

그러나 왜인지 성매매는 내가 보기에도 너무 역겨웠다. 팔 게 없어서 성을 파나 기가 막혔다. 파는 놈이나 사는 놈이나 거기서 거기로 멍청해 보였다. 차라리 합의된 원 나잇을 하든가. 돈을 주고받는 관계라니 더럽잖아.

하지만 그게 신념 같은 건 아니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단편적인 생각일 뿐. 결정은 빨랐다. 타협하기로 했다. 여전히 더러운 건 더러운 거였지만 사기로 했다.

취한 와중에도 이런 결정을 내리고 만 나에게 자괴감이 들었지만 더럽다, 한심하다 생각하면서도 이미 결정은 내렸다. 번복하지 않을 거란 건 내가 잘 알지.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결정이었으나 유진이라는 창놈에게도 조금 짜증이 났다. 참 한심한 책임 전가였으나 짓궂은 행동이 나갔다. 벌린 구멍에 장난감들을 밀어 넣었다.

멍청한 대표 새끼와 이야기를 끝내고 유진은 거금을 들여 샀다. 역시나 자괴감이 몸을 지배했으나 뻔뻔한 낯짝으로 계산을 마쳤다. 그 새끼는 돈 냄새를 맡았는지 안 판다고 괜히 뻐팅기며 유진의 몸값을 올렸다. 그래 봤자 푼돈 몇 푼 더 올라갈 거, 같잖은 신경전은 때려치우고 빨리 원하는 만큼 불렀으면 했다. 지루한 시간이 끝났을 땐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

혼자 앙앙거리고 있을 유진이 생각났다. 걸음을 빨리해 들어가니 역시나였다. 야해 빠진 몸이 잔뜩 흐트러진 채 교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미 몇 번 쌌는지 배 위로 정액이 싸질러져 있었고, 엉덩이 아래 시트는 흥건히 젖어 있었다. 천박하고 난잡한 꼴이었으나 이 와중에 예쁘기도 하지. 땀에 젖은 몸이 바르작거리는 걸 보니 참아 두었던 성욕이 들끓었다.

우선 애피타이저 겸, 유진부터 좀 놀아 줬다. 지금껏 고수해 왔던 생각은 이미 저버렸으나 여기서 좆을 꺼내기는 진짜 싫었다. 무엇보다 불결해 보여서 영 꺼림칙했다. 집에 가서 실컷 하는 걸 기대하며 늘어진 유진을 안아 들었다.

색색거리던 유진은 지쳤는지 차에 타자 금방 잠들었다. 차가 도로를 따라 달리는 내내 유진의 얼굴을 구경했다. 바닥을 쳤던 기분이 다시 달싹거리며 설렘을 품었다.

집에 도착한 후엔 유진을 조심조심 씻기고 침대에 눕혀 놨다. 왜 그리 정성을 들여 씻겼는진 모르겠다. 아마 아직 오락가락하는 정신 때문에 예쁜 생김새와 마른 몸만 보고 손이 조심스럽게 나갔던 것 같다.

찬물에 샤워를 하니 정신이 좀 돌아오는 듯도 싶었다. 내리는 물을 맞으며 가만히 서 상황을 정리했다. 술에 취했고, 약을 먹었고, 창놈을 샀고, 그 창놈이 지금 내 침대에 누워 있다.

씨발….

또다시 자괴감이 들었다. 고작 성욕 때문에 사람을 사? 고작 섹스 한다고 예정에 없던 지출에, 그토록 한심하게 여겼던 새끼들과 동급이 됐다. 미친 새끼. 돌은 새끼….

그러나 이미 산 걸 어찌하겠는가. 질펀하게 즐기기라도 해야지. 유진에게 다가갔다. 그 부드러운 몸을 안고 군데군데 입을 맞추며 구멍을 벌렸다.

세헌은 유진을 씻기며 지난날의 회상을 끝냈다. 내가 남에게 한심하다 어쩐다 할 처지가 아니었네. 지금 생각하니 더 기가 막히고 멍청했다.

유진의 몸은 온통 엉망이었다. 겉도 그러했지만 속이 심각했다. 배 속에 품고 있을 정액을 빼 주기 위해 손을 넣었는데 크림이 엉기는 것 같은 구멍의 상태는 둘째 치고, 욕실 바닥이 허옇게 덮여 찰박거릴 정도로 정액과 끈적한 점성의 액이 끝없이 나왔다. 그제서야 제가 무슨 미친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적당한 수준을 넘어도 한참 넘었던 자신의 모습을 신기하게 여기며 미간을 찌푸리는 유진을 다독였다.

그런데 어차피 내가 산 창놈인데 이럴 필요가 있나? 이 정도 일이야 숱하게 겪었을 거 아냐. 좋다고 자지러지던데.

세헌이 유진의 얼굴을 다시 흘끗 바라보았다. 곱던 미간은 여전히 살짝 구겨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눌러 살살 쓰다듬자 다시 펴졌다. 겨우 그 정도 변화에도 유진의 얼굴은 한결 편안하게 풀렸다.

아, 진짜 미치겠네.

이 새끼는 고작 돈 좀 벌자고 몸을 판 창놈이라고 되뇌었다. 그런데 나도 똑같은 새끼인데 욕할 자격이 있나 싶다. 무엇보다 물에 담긴 유진은 말갛고 청초하고 투명하기까지 해서 감히 험한 생각을 하는 게 죄악처럼 느껴졌다.

…미친.

세헌이 제가 떠올린 단어에 소름이 돋은 팔을 쓸었다.

씨발, 무슨 미친 생각이야….

반사적으로 입을 막았다.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허, 돌았네.”

세헌은 자신에 대한 욕설을 연신 중얼거리면서도 유진을 조심히 씻긴 후 수건으로 살며시 몸을 감싸 물기까지 닦아 주었다. 여전히 깨지 않는 유진을 멍하니 바라보며 살포시 쓰다듬기도 하고 무릎에 앉혀 머리까지 말려 준 후에야 침대에 눕혔다.

그 후로도 침대맡에서 한참 유진의 얼굴을 보았다. 새근새근 잠에 빠진 모습이 뭐가 그리 재밌다고 세헌은 가만히 고개를 내려 관찰하듯 유진을 눈에 담았다. 그러다 화들짝 시계를 보고 어느새 훅 지나가 버린 시간을 못 믿겠다는 듯 허망하게 응시했다.

“아, 씨발.”

불현듯 세헌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아주 어렸을 때 음식물 찌꺼기가 나뒹구는 뒷골목에서나 느꼈던 더러운 기분이 발목을 휘어잡곤 오소소 몸 위로 솟구쳤다.

“이거….”

이 관계가 단지 며칠 밤의 유희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좆 된 것 같은데.”

세헌은 착잡한 심정으로 유진을 바라봤다. 잠든 유진의 안색을 살피고 그의 머리칼을 조심히 쓰다듬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유진이 제 인생에 깊이 관여될 것 같다는 불길함을 느낀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유진에 대한 조사였다.

별 자료랄 것도 없었고 뻔한 이야기 몇 줄 정도가 전부였다. 무책임한 부모. 방관. 빚더미. 지금껏 적어도 수십 번은 봤을 법한 그 흔하디흔한 불행이 유진이 지나온 삶이었다. 솔직히 특별한 동정심이 생기진 않았다. 유진은 운이 없었고 좆같은 새끼들을 만나 좆같은 인생을 보냈던 것뿐. 그냥 그랬던 거지.

그러나 영상을 보고 난 후의 감상은 조금 달랐다. 막연한 몇 줄의 글보다 화면 안에서 울고 애원하는 유진을 실제로 보자 당혹스러울 만치 더러운 감정들이 몰아닥쳤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기분이 나쁘면 원인을 치워야지. 세헌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

남자는 허술한 듯 보이면서도 세심했고, 나에게 꽤 신경을 쓰는 것 같으면서도 생각 없이 말을 던졌으며, 친절하게 굴면서도 가벼웠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곳에서의 태도와 밤을 지낸 후의 태도가 다른 건 술에 취해서라고 해도 이건 너무….

“진아, 버섯은 안 좋아해?”

호화롭게 차려진 식탁이 비현실적인 건 둘째 치고 시중이라도 들 듯 옆에 딱 붙어 앉은 남자가 묵직한 목소리와 안 어울리게 연신 말을 붙여 왔다. 저 목소리에 진중함이 더해지면 제법 무서울 것 같은데 손수건이 휘날리듯 팔랑거리는 터라 묘한 괴리감만이 느껴졌다. 꼭 호랑이가 고양이 흉내라도 내는 것처럼 기괴하기만 할 뿐, 무섭지도 귀엽지도, 이도 저도 아닌 미묘함 같은 게 지금 남자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였다.

체할 것 같아….

푸짐한 고봉밥과 다채롭게 쌓여 있는 반찬들을 곤혹스럽게 바라보았다.

“진아, 혹시 한식 안 좋아하는 건 아니지?”

남자가 눈을 가늘게 접으며 물었다.

“아니, 그… 다 잘 먹어요.”

“그래?”

남자는 잠시 입을 다물고 날 빤히 쳐다보다 쑥스럽게 말했다.

“아, 너무 야하다. 왜 식탁에서 그런 소릴 해.”

…미친 새끼…….

감추지 못하고 드러난 표정을 보면서도 남자는 여상하게 말을 이으며 버섯볶음 하나를 밥 위에 올렸다.

“우리 진이, 몸 괜찮아지면 어디까지 먹을 수 있나 차근차근 알아보자.”

저주와 다름없는 말이었다.

“그 전에 살부터 좀 찌고. 의사가 골고루 많이 먹어야 된다고 했잖아. 오늘부터 운동도 시작하자. 가볍게라도 해야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온화한 공기가 어색하다. 진짜 이 남자한테 팔려 온 걸까. 아니면 대여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상관없지만.

남자의 태도는 너무 간지러웠다. 왜 저렇게 대하지. 아직도 기억나는데. 창놈이라는 말을 내뱉는 음성과 눈에 스친 역겨움 같은 게. 그런데 저렇게 손바닥 뒤집듯 한순간에 태도가 바뀌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중인격이란 게 저런 사람을 말하는 건가 싶고.

게다가 나에게 무언가를 챙겨 주는 것도 너무 어색했다. 건강 검진이야 어디서든 필수적으로 받긴 했지만 직접 식단을 짜고 식사를 챙기는 식의 돌봄 같은 건 처음이었다. 부드러운 촉감의 옷도 입고, 밥도 식탁에 앉아서 먹고, 생활 자체가 전보다 훨씬 나아졌는데 좋다기보단 얼떨떨하고 늘 불안했다.

남자는 이상한 것들을 권유했다. 강제적인 명령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할 것도 없었기에 시키는 대로 따랐다. 책을 읽었고 아침에 일어났으며 수영도 배웠다. 모두 군말 없이 했지만 선생님을 만났을 땐 꽤 당황스러웠다.

남자는 내년 4월에 검정고시를 볼 것이라고 했다. 손에 펜을 잡고, 설명을 듣고, 문제를 푸는 건 정말 어색한 것들이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때야 공부만 열심히 하면 그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날 것이란 희망이 있었기에 열정적으로 배웠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론 종일 알바를 하지 않으면 정말 굶어 죽을 지경이었기에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공부를 놓지 않아 성공했다고 하지만 글쎄, 집에 도착하면 쓰러지듯 잠을 자고, 제발 잠 좀 더 자고 싶다고 빌며 일을 나가는 나에겐 너무 이상적인 소리였다.

물론 강한 의지력과 노력으로 그럴 수 있었던 사람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게 나는 아니었다. 그마저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도망가기 바빴고. 그래서인지 중학생 때 이후론 책도 읽어 보지 않았고 당연히 공부 역시 해 보지 않았다.

한참 전에 놓았던 공부를 다시 하면서도 이미 머리가 굳은 게 아닐까 싶어 걱정이 많았다. 남자의 좆이 아닌 샤프를 잡고, 바지 버클이 아닌 문제를 푸는 건 미묘한 꿈 같은 날들이었다. 그러나 밤에는 이 모든 정상적인 하루들에 대한 화대를 지불하듯 시달리곤 했다.

그럼에도 또다시 희망이 움트고 있었다. 어쩌면 남자가 질려 나를 놓아준다면 그땐 사회에 나가 정상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희망이.

날이 갈수록 불안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가끔 불쑥 불안이 튀어나올 때도 있었지만 모든 게 혼란스럽던 날들은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남자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우선 그의 이름이 강세헌이라는 것. 웃을 때 눈은 잘 휘면서도 입가는 굳어 있을 때가 많다는 것, 목소리가 상냥하다 싶을 때에도 내용은 험할 때가 많다는 것, 한가할 땐 졸졸 따라다니며 늘어지다가도 바쁠 땐 새벽잠에서 깼을 때나 잠깐 마주칠 정도의 생활이 반복된다는 것. 그런 사소하고 별 쓸데없는 것들이 전부였지만 어쨌든 이 정돈 알게 되었다.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수능 공부를 시작할 때쯤 남자는 지나가는 투로 상담을 권했었다. 당혹스러웠던 탓에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려 대답을 하니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보라고만 하며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 후, 남자와 관계를 맺고 짙은 탈력감을 느끼며 늘어져 있을 때 문득 생각이 났다. 상담. 남자는 이미 오래전에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 조사해 봤겠지. 그의 성격상 아마 첫날부터 알아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갑자기 권유한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이제 내가 적응이 된 것 같아서 권했던 걸까. 확실히 그렇긴 했다. 요즘의 나는 여유가 무엇인지 알아 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 모든 편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항상 짧게 머물다 사라졌던 안정감이 꽤 길게 유지될 때도 있었다. 그 남자를 만난 후론 새로운 것투성이였다.

예전엔 작은 방 안에서 다리만 벌리다 죽어 가겠지 싶었다. 그것 외의 내 모습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상상 속의 내 결말은 늘 같았다. 이제 다물어지지도 않는 구멍을 다 드러내 놓은 채 더러운 거리에서 나뒹구는 창놈. 그게 내 상상력의 한계였고 그나마 희망적인 결말이었다. 어쨌든 살아는 있으니까.

그런데 점점 감히 꿈도 못 꿨던 모습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대학에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회사에서 일하고.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 나도 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술렁거렸다. 물론 나 같은 게 그런 기대를 했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늘 미래를 말했고 그 미래는 항상 이루어졌다.

그 모든 것들이 남자로 인한 것이란 걸 알고 있다.

남자가 나를 버리는 때가 왔을 때 내가 매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남자가 날 버린다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그는 처음으로 맛본 구원 같은 것이었다. 그에 기대 절대 가지지 못할 거라 확신했던 것들을 얻었다. 난 절대 그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에게 나는 창놈일 뿐이었다. 조금 높게 쳐준다면 마음에 들어 계속 갖고 있는 창놈. 내게 꿈같던 것들은 그에겐 기껏해야 동정심으로 던져 준 동전 정도였겠지.

그러나 시궁창 속에서도 죽지 못했던 나는 쉬이 버려져도 또다시 살길 원할 것이다. 본능처럼 늘 살아갈 것이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해도 악착같이 버티겠지.

그러니 상담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 상담이 어쩌면 조금 덜 아프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지도 모르니까. 남자는 여상한 목소리로 요일과 시간을 알려 주었고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게 전부였다.

***

유진은 처음 며칠간은 경계심 많은 동물처럼 이리저리 숨어 다녔고 벌벌 떨었다. 겉으론 나름 의연한 척하는 것 같지만 몹시 불안해한다는 게 훤히 보였다.

그에게 검정고시를 권유한 건 순간의 충동이었다. 집에서 할 것도 없는데 공부라도 해 보는 게 낫지 않나.

내 인생에서 가장 쉬웠고 편했던 때가 공부를 했을 때였다. 딱 정해진 목표가 있고, 하면 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고, 계획대로만 하면 예상이 빗나가지도 않는, 열심히 해 볼 맛이 나는 게 공부였다.

유진은 기본적으로 일상이 무기력하니 일단 뭐라도 시작해 보고 조금씩 결과를 내 보는 활동을 하는 게 좋아 보였다. 그래서 가정 교사를 불러들였다.

유진의 영상을 본 날, 상담사라도 붙여 보는 게 나을까 고민했었지만 과거는 내가 어찌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고, 그 일이 무슨 영향을 끼쳤든 그건 오롯이 유진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그 짐을 대신 들어 줄 순 없더라도 어떻게 들어야 덜 무겁게 들 수 있는지 알려 주는 정도는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나 유진에게 있어 똑같이 더러운 가해자인 내가 알려 주는 건 오히려 상처를 헤집는 꼴이겠지.

그에겐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그가 솔직해질 수 있는 무해하고 상냥한 사람이. 하지만 아직 유진은 많이 웅크리고 있어서 섣불리 말을 꺼내는 게 망설여졌다. 단순한 하나의 제안이 그에게 어떤 의미로 울릴지 알 수 없기에 우선 그의 안정과 적응이 먼저였다.

창백하게 마른 몸과 어딘가 겁먹은 듯한 얼굴, 체념한 듯한 태도, 무기력한 반응, 길게 학대를 당해 온 사람처럼 구는 유진. 마른 어깨뼈가 도드라진 유진. 그가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랐다.

시간이 약이라고 유진은 점차 건강해졌다. 비쩍 마른 몸에 살이 붙고 표정이 생겼다. 궁금한 게 생기면 말도 걸었고 호불호를 명확히 가르기 시작했다.

검정고시를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상담도 시작했다. 괜히 묻어 둔 기억을 건드리게 되는 게 아닌가, 부담스러워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최대한 덤덤히 말하느라 화장실에서 연습까지 했었다. 그건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멍청하게 느껴졌던 날 중 하나였다. 그래도 그 노력들이 무색하지 않게 유진은 더욱 더 나아졌고 자그마한 변화들이 커다란 만족감을 안겨 주었다.

그랬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될 거라곤 예상 못 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네. 그, 조금만요. 오전 타임만 잠깐 하려고 해요. 선생님은 오후에 오시고 상담도 일주일에 한 번이고 게다가… 그, 어….”

유진이 우물거리며 세헌의 눈치를 살폈다.

“강세헌.”

“아, 네. 그, 강세헌, 님께서도 밤에 오시니까….”

“진아.”

“네….”

유진은 벌써 거절당한 것같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르바이트라니. 이런 귀여운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라. 이게 유진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목표하는 건 유진이 괜찮아지는 것이었지, 유진의 자립심을 키우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자립해서 홀랑 떠나 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나 그렇다고 그를 가둬 두고 싶진 않았다. 좁은 방 안에서 남자나 받으며 갇혀 있었을 유진을 어떻게 다시 가둘 수 있을까. 그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 주고 싶었고, 마땅히 그래야 했다.

“진아. 무슨 아르바이트를 할 건지는 정했어?”

“아, 그게. 조금 보긴 했는데 여기 주변 카페에서 사람을 구하더라고요.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로요. 그래서 이게 좋을 것 같은데….”

살짝 밝아진 얼굴이 얼른 고개를 들어 말했다. 작은 입으로 재잘재잘 말하며 눈을 맞추는 유진이 새삼 뿌듯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말도 못 하고 우물쭈물거리더니 이젠 시선도 잘 마주해 온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래?”

이걸 보내 줘야 되나. 다른 생각 다 버리고 내 욕심만으론 그냥 계속 품 안에서만 빨빨거렸으면 좋겠는데.

“아르바이트는 갑자기 왜 하고 싶은 건데?”

“어, 제가 많이 신세 지기도 했으니까 조금이라도, 그, 진짜 조금이긴 한데 그래도 그 정도라도 갚고 싶어서요.”

아, 진아.

세헌이 입 안 살을 깨물었다.

“그래? 우리 진이 기특하네.”

널 처음 봤을 때 내 인생이 좆 될 것 같다고 예감했어.

“그래. 해. 갔다 와. 조금이라도 힘들면 바로 말하고. 이상한 새끼들 있어도 바로 전화해. 안 좋은 일 있으면 집으로 곧장 오고. 차는 보내 주는 거로 타.”

그리고 지금 또 예감하건대.

“진상 새끼 있으면 뜨거운 커피라도 부어. 내가 수습해 줄 테니까 성질 마음껏 부려도 돼.”

“…네.”

난 너한테 이기지도 못할 거야.

***

“진아.”

“어?”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평소와 다름없이 대기 중인 차 문을 열었더니 오전엔 늘 보지 못했던 남자가 운전석에 있었다.

“우와. 오늘은 엄청 일찍 오셨네요?”

“응. 오늘 날씨가 좋잖아. 맑고 쾌적하고 시원하고. 딱 낙엽 구경 가기 좋은 날이지.”

“아, 그럼 드라이브 할 거예요?”

“나는 그러고 싶은데. 어때, 진아? 하룻밤 자고 오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저도 좋아요.”

갑작스러운 외출로 마음에 설렘이 젖어 들었다.

요새 유진은 한창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여전히도 가끔 예상치 못하게 불안이 파고들었지만 이젠 나름 그러한 불안들에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은지 조금씩 배워 가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수학 문제도 아니고 방법을 안다고 해서 적용하여 바로 풀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아니었으나, 아무것도 모른 채 조금씩 잠식되기만 할 때보다야 훨씬 나았다.

무엇보다 이제는 기분이 바닥을 치고, 우울함과 불안이 떨쳐지지 않을 때에도 언젠가 다시 괜찮아지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유진은 변해 가고 있었고 성숙해져 가는 중이었다. 그는 가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 때도 있었다. 그런 자신의 생각에 깜짝 놀라고 민망해해도 죄악감은 느끼지 않았다. 세헌이 알면 일주일 내내 잔치라도 열어 기념할 만한 변화였다.

유진이 운전대를 잡은 남자의 옆모습을 슬쩍 보았다. 남자는 늘 차를 조심히 몰곤 했다. 운전에 능숙해 보였고 신호가 걸려 차를 세울 때마다 눈썹을 살짝 까닥였다. 남자 본인도 모르는 작은 버릇인 듯했다.

시선을 느낀 세헌이 고개를 돌렸다.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유진의 모습이 새삼 울렁여서 멋쩍게 창가에 시선을 뒀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돌려 유진의 눈을 마주하곤 유진의 머리칼을 쓸었다. 부드럽게 감기는 촉감이 좋았다.

이번엔 유진이 고개를 돌려 무릎 위에 놓인 가방에 시선을 두었다. 유진이 움직이는 건 가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가 크게 작은 편은 아닌데도 어쩐지 모든 행동들이 다 조그마해 보였고, 그를 볼 때면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를 지켜보듯 평화로워졌다. 별거 아닌 일로 빨빨 움직이며 무언가 열심히 할 때면 참 사랑스러웠고 그런 소소한 일상이 소중해졌다. 밤에는 침대에서….

아, 잠깐만. 미치겠네.

제어 없이 갑자기 떠오른 장면들에 하체가 뻐근해졌다.

씨발, 왜 갑자기 여기서… 개새끼가 발정 났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세헌이 낯을 굳히고 운전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러나 앞을 보고 있음에도 옆에 어른거리는 유진의 움직임에 온 신경이 쏠렸다. 유진을 신경 쓰는 거야 늘 그랬지만 지금은 그 움직임을 귀여워하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유진의 몸짓에 초점이 맞춰져서 지금 당장이라도….

아. 그러고 보니 유진과 카섹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지.

갑자기 든 생각에 찬물이라도 맞고 싶어졌다. 진이는 지금 풍경 구경이라도 하고 있나. 옆을 돌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 보면 뭐라도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아마 뭘 하든 종국엔 몹쓸 짓으로 귀결될 것이다.

“저, 혹시 단 거 좋아하세요?”

언제 꺼낸 건지 유진이 손에 든 조그마한 포장 봉지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환장하지.”

세헌이 여전히 앞을 보며 가늘게 눈을 휘었다.

“아, 그러면 이거 드실래요?”

단번에 밝아진 표정을 한 유진이 손에 든 봉지를 세헌에게 내밀었다. 손을 내어 받으니 투명한 비닐 안에 작은 초코 칩들이 박힌 아기자기한 쿠키들이 들어 있었다.

“오늘 포장했는데 카페 사장님께서 하나 챙겨 주셨어요. 제가 포장한 거예요.”

마음이 술렁인다. 유진은 늘 이렇게 사소한 행동으로 울렁이게 만들곤 했다. 그래도 아직은 어색한 감각에 세현이 입 안 혀를 약하게 물다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괜한 헛기침 후 나온 목소리는 형체가 있다면 물렁거릴 만큼 풀려 있었다.

“고마워. 저녁 먹고 같이 먹자, 진아.”

“네.”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유진이 그 작은 얼굴에 그보다 작은 웃음을 머금었다. 겨우 한순간의 미소가 햇살이 잘게 부서지듯 반짝였다. 그 조그마한 빛에 시선을 빼앗긴 세현이 유진의 얼굴을 멍하니 보았다.

그러다 자신의 묵직한 아랫도리를 느끼고 자괴감에 빠졌다. 씨발… 난 도대체 뭐길래 이런 상황에서….

미치겠다.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하는데도 발정제라도 처먹은 양 열기가 식지 않았다.

쿠키를 건네준 이후 유진은 풍경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간간이 진이의 말에 맞장구친 것 외엔 주고받는 대화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랫도리는 묵직한 존재감을 계속해서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진이가 창을 바라보고 있어서 다행이지.

머릿속에선 한 번 허리를 쳐올릴 때 금세 절정을 맞아 온몸을 바르르 떠는 유진, 젖꼭지를 빨면 허리를 들썩이며 신음하다 종국엔 흐물거리는 몸으로 흐느끼는 유진, 앞을 묶어 두어도 뒤로 마른 절정이 끊이지 않아 엉엉 울며 허리를 따라 돌리는 유진 등 자극적인 장면만 모여 자동 재생 됐다.

심지어 평소엔 상상력이 그리 좋은 편도 아닌데 지금은 차 안에서 하는 유진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기라도 할까 애써 신음을 참는 유진이나 구멍에서 나온 액으로 가죽 시트를 흠뻑 젖게 만드는 유진이나 사정으로 창에 정액을 묻혀 부끄러워하는 유진 같은.

씨발. 시간이 지날수록 상상이 더욱 구체적으로 변했다. 이젠 식은땀이 맺힐 정도였다. 부풀어 오른 바지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우와, 와아, 하며 알록달록 물든 단풍나무들을 보면서 순수하게 좋아하는 유진의 감탄사를 들으니 이 와중에 유진의 교성을 생각하는 저가 조금 쓰레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본래 오늘의 계획은 이랬다. 우선 단풍 축제가 예정되어 있는 산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그 후 유진의 체력이 얼마나 늘었나 점검할 겸 산행을 하고 그 과정에서 유진과 예쁜 풍경들을 실컷 본 뒤 예약해 둔 펜션에 간다. 펜션에 가는 길에 있는 대형 마트에서 함께 장을 보고 고기와 버섯을 구워 유진을 배불리 먹인다. 소화도 시킬 겸 펜션 근처의 산책로를 걷고 함께 거품 목욕을 한 후 좋은 밤을 보낸다.

이 계획을 위해 시간을 내느라 얼마나 개처럼 일했는지 모른다. 사업 초기에도 그렇게 워커홀릭처럼 일하진 않았는데 그간 일거리를 집에 가지고 들어오는 건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유진과의 밤을 포기할 순 없어 유진이 정사 후 잠에 들었을 때 혼자 서재에 가 가져온 일거리를 해치우곤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피곤해 뒤질 것 같았으나 바쁜 시기에도 여유로운 휴가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한가로운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굳이 바쁜 시기에 여행 계획을 세운 건 조금 멍청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야 되는 이유가 너무 타당해서 어쩔 수 없었다. 요 근래 진이와 한 게 섹스밖에 없었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혹시나 진이 혼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또한 당장 진이와 함께 다양한 걸 하고 싶은 욕심이 크기도 했고.

그래서 오늘을 위해 유진이 좋아할 만한 테마의 펜션을 구석구석 찾아 예약했고 유진이 좋아하는 향의 입욕제를 준비해 두었다. 미리 동선을 체크했고 주변 맛집의 예약도 마쳤다. 그런데 왜 갑자기 시발 발정이 나서.

차마 이 꼴로 차에서 내릴 순 없었다. 이제 곧 목적지였으나 세헌은 고민하다 빙 돌아 근처의 골목에 들어가 차를 세웠다. 전형적인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가던 차가 난데없이 이상한 골목으로 들어가니 유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저를 돌아봤다. 계획은 전면 수정하기로 했다.

“진아.”

“…네?”

“우리 카섹은 한 번도 안 해 봤지.”

세헌이 뻔뻔한 낯으로 여상히 말했다.

“…그, 여기서 하면 잡혀가지 않을까요?”

“설마. 안 들키면 되지.”

“그, 자, 잠깐만요. 여기선, 흣!”

급한 대로 유진의 바지춤을 잡았다. 커다란 손에 중심이 구겨지듯 잡힌 유진이 허리를 뒤척였다. 도망치려 뒤로 물러났지만 그래 봤자 조수석이었다.

“아! 만지지…! 흐읏!”

남자의 손을 떼어 내기 위해 손목을 잡았지만 유진은 남자의 움직임을 조금도 제지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제가 잡은 손목에 끌려 남자와 더 가까워지기만 했다.

“아으읏!”

유진의 성기가 남자의 손안에서 크기를 불려 갔다. 세헌이 유진의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속옷 위를 주물럭거렸다. 명백한 희롱의 손길에 속옷이 점점 젖어 들었다. 젖은 속옷을 살짝 내리자 빳빳한 성기가 위로 달랑 튀어나왔다.

옷감 위로만 주물러지다 맨손에 직접 닿으니 차가운 감촉에 허벅지가 움찔 떨렸다. 더욱 고조되는 성감에 자꾸 신음이 흘렀다. 다리는 계속해서 벌어지려 하는데 아직 내리지 않은 바지 때문에 잘 벌어지지 않았다. 불편하게 앉아 사정을 종용당했다.

“저, 흐, 저 바지, 바지 좀….”

“응. 불편하지? 벗어.”

“흣! 손을 떼야….”

“아.”

남자가 유진의 성기에서 잠시 떨어지고 유진의 바지춤을 잡고 유진의 몸을 제게로 돌렸다. 바지춤을 내리며 홱 손을 들어 올리니 바지에 딸려 온 유진의 다리가 제 쪽으로 달랑 올라갔다. 내려가는 바지 위로 맨다리가 드러났다. 하얗고 가는 선 아래 발목에 잠시 바지를 걸어 두고 허벅지에서부터 발목까지 손을 주욱 미끄러트렸다.

“흐으으….”

“우리 진이는 이제 다리만 만져도 느끼네? 나중엔 손만 잡아도 질질 싸면 어쩌지.”

그건 곤란한데. 남자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바지를 마저 벗겼다.

“세상에. 진아, 너무 좋은 생각이 났어.”

불길해진 유진은 세헌의 입을 막고 싶었다.

세헌은 굳이 방금 떠올린 기발한 생각을 말로 하지 않고 곧장 실천에 옮겼다.

유진의 한쪽 다리를 달랑 집어 올린 뒤 바지로 무릎 쪽과 등받이를 한데 묶었다. 한쪽 다리가 그렇게 묶이자 나머지 다리는 저절로 좌석 시트 위에서 무릎이 꿇려졌다. 다리가 활짝 벌어져 꺼덕꺼덕 쿠퍼액이 진득하게 나온 성기를 훤히 드러냈다.

세헌의 손은 성기 아래의 구멍으로 다가갔다. 손가락을 넣기 전 찔끔찔끔 새어 나온 쿠퍼액을 묻힌 후 그대로 푸욱 세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흐앙!”

찌극, 조그만 물소리와 함께 들어간 손가락이 내벽을 둥글게 쓸며 꾹꾹 눌렀다.

“하으으! 흐, 으아!”

물렁한 살이 꾸욱 눌러지자 스펀지를 누른 듯 액이 스며 나와 손가락이 금세 젖어 들었다.

곧바로 손가락을 빼낸 세헌이 이미 풀어 두었던 바지 위로 성기를 꺼냈다. 퉁 튕기듯 나온 성기가 유진의 눈엔 흉흉해 보였다. 울퉁불퉁 핏줄이 선 성기가 어쩐지 오늘따라 더 커 보였다.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차 안이고 골목이긴 하나 환한 대낮의 거리에서 받을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찔했다.

두 팔은 묶이지 않아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묶인 매듭을 풀며 낑낑댔다. 그러나 곧 한쪽 다리도 잡혀 들렸다. 잡힌 다리가 남자의 어깨로 올라가고 환영하듯 활짝 벌어진 다리 사이로 남자가 자리 잡았다.

차 내부의 특성상 남자는 조금 불편해 보였으나 한쪽 다리는 운전석 쪽에 한쪽 다리는 조수석으로 넘어와 꽤나 안정적인 자세를 잡곤 성기를 밀어 넣었다. 느릿하게 삽입하나 싶었더니 중간쯤 들어가자 그대로 퍽! 쑤셔 왔다.

“아! 흐앙! 아!”

조급한 듯 곧장 속도를 올리는 남자의 추삽질에 몸이 너무 흔들려 남자에게 밀착해 목을 끌어안았다.

“하! 아! 아! 앙!”

불쑥 튀어나온 교성에 저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안쪽 살을 그대로 때려 박자 도톰한 살점이 짓눌려 이상한 교성이 튀어나왔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폭죽이 터진 듯 확 밝아졌다가 새까매졌다. 유진의 교성을 들은 남자가 방금 친 부분에 다시 꽝 박아 넣었다. 한 번 짓눌린 살점이 다시 파헤치듯 움푹 들어가고 물컹 풀린 살에선 액이 픽 나왔다.

“앙! 아! 흐, 아! 아!”

세헌이 기분 좋게 웃었다. 유진은 유독 한 부분을 찔러 올릴 때 앙앙거리며 소리를 높였다. 세헌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꽝! 꽝! 때리듯 박아 넣자 숨넘어갈 듯 앙앙 우는 유진의 교성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중간중간 들리는 뭉개진 발음도 너무 귀여웠다.

그런데 돌연 골목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이 힉, 숨을 삼키며 목을 끌어안곤 가슴팍에 얼굴을 숨기듯 묻었다.

잠시 귀를 기울이니 한 무리의 일행들이 시답잖은 주제를 가지고 떠드는 소리였다. 골목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골목 입구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세헌이 슬쩍 허리를 쳐올리자 유진이 순간 굳어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 어쩌지.

유진이 당황해서 울먹거리는 모습에 세헌은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를 곤란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잔뜩 달아오르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신음을 애써 삼키려는 노력이 참 가상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귀엽고 야해 빠져서.

세헌이 이번엔 크게 허리를 쳐올렸다.

“흣!”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으나 목으로부터 울리는 작은 신음이 새었다.

세헌이 허리를 잡은 손을 내려 유진의 골반을 잡았다. 유진이 불안한 눈으로 세헌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안 돼요, 밖에 사람이…! 흐…!”

세헌은 유진의 걱정을 눈웃음으로 일축하곤 골반을 잡아 내리듯 끌어 접합부에 더욱 깊숙이 성기를 묻었다. 그 상태로 골반을 앞뒤로, 동그랗게 움직여 댔다.

“흐으읏…! 흐으, 흡…!”

접합부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비벼지고 쿨쩍, 쯔극, 쿨찌럭 민망한 물소리가 노골적으로 울려 퍼졌다. 퍽퍽 강하게 처박는 건 아니었으나 성기 위에 앉히듯 한 채로 골반이 잡혀 이리저리 비벼지는 건 다른 의미로 참기 힘들었다.

신음을 최대한 참으니 조용한 차 안에 물소리가 너무 크게 울렸다. 찍, 찔그극, 쿨쯕, 구멍 안에서 이는 마찰 음이 민망해 훅 열이 올랐다. 그동안은 젖은 소리가 울려도 교성에 묻혔고, 신음하느라 정신없어서 그리 신경 쓴 적이 없었으나 조용한 와중에 울리니 미치도록 민망했다. 차마 참지 못해 흐느껴 나가는 신음 또한.

“진아. 사람들은 이제 갔나 본데? 애초에 그냥 지나치는 것뿐이었어. 골목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그, 그래도 혹시 누가 오면 어, 흐읍! 어, 어떡…! 응!”

“그럼 빨리 끝낼까?”

“네네, 빠, 빨리….”

“그러려면 우리 진이가 도와줘야 되는데. 빨리 가게 허리라도 돌려 볼까?”

“흑….”

“응? 빨리. 누가 오면 어떡해.”

“흐으….”

유진은 너무 억울했으나 울며 겨자 먹기로 허리를 슬쩍 앞으로 쓱 움직였다 뒤로 빠졌다. 겨우 한 번 앞뒤로 비벼진 것뿐인데 느릿한 자극에 미칠 것 같아 멈춰서 숨을 골랐다.

“와, 진아. 귀엽긴 한데 너무 느리다. 이렇게 해서 언제 보내려고.”

“너… 너무, 흐, 너무….”

“너무 뭐? 너무 좋아서 못 하겠어?”

“흐으으….”

짓궂은 말에 유진이 힘없이 흐느꼈다. 진심으로 걱정되는데 남자는 혼자 태평해서 답답하고 억울했다.

“아. 알았어. 미안. 그럼 이렇게 하자, 진아.”

세헌이 등받이에 묶인 유진의 다리를 풀어 주었다. 그토록 안 풀리던 매듭이 세헌의 손에선 쉬이 풀렸다. 그 꼴을 보자 유진이 더욱 억울해졌다. 유진의 처진 눈썹이 더 내려갔다.

“다리 감고 몸 꼭 붙이고 있으면 빨리 끝낼게. 대신 허리에 다리 꽉 감고 있어야 돼. 알았지?”

묶여 있었던 탓에 저릿한 다리를 겨우 추스르며 남자의 허리에 둘렀다. 입을 막던 손도 떼어 남자의 목에 두르자 곧장 빠른 피스톤질이 이어졌다. 유진이 입술을 꾹 다물며 남자의 가슴팍에 기댔지만 신음이 계속 새어 나갔다.

“흐, 흡, 으! 아! 안! 흑, 아!”

신음이 점점 커져 교성으로 변해 가자 유진이 남자의 어깨를 꽉 깨물었다. 남자의 어깨가 움찔 굳어져 단단해졌다가 곧바로 힘을 풀었다.

유진이 어깨에 이를 박자 퍼져 가는 더 지나친 쾌락으로 유진을 꽉 안았다. 너무 좋았다.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지? 가끔 유진이 살아 숨 쉰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때가 있다.

세헌은 제 터무니없는 생각과 그럼에도 좋아서 미치겠는 감정, 이미 진작에 맛이 가 버린 이성, 그렇게 만든 유진. 이 모든 게 너무 신기했다.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저 너무 좋았다. 그래, 그뿐이다. 너무 좋다. 너무 좋아, 진아.

세헌이 유진의 안에 깊이 묻으며 토정했다. 나른한 한숨이 흐르고 세상을 가진 것 같은 어이없는 충족감이 몸을 감쌌다. 그래. 너무 좋다.

결국 산행은 가지 못했다. 아쉬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제가 일을 벌인 마당에 뻔뻔하게 저런 몸 상태의 유진을 산행에 끌고 갈 순 없었다.

우선 점심도 못 먹고 녹초가 된 유진을 예약해 둔 식당으로 데려갔다. 시간을 넉넉히 잡아 두어서 다행이었다. 유진은 과격한 정사 후의 나른함 때문인지 먹는 둥 마는 둥 깨작거렸다. 세헌은 내심 속상했다. 씨발. 겨우 그거 못 참고 일을 쳐서 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도 못 봤다.

단풍잎을 구경하며 웃음 짓는 유진도 보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결국 산행은 주변 드라이브 코스를 도는 것으로 대체했다. 유진은 피곤했는지 도중 잠에 들었다. 화려한 가을 풍경을 홀로 스치며 세헌은 더욱 속상해졌다.

좋아. 계획이 살짝 틀어졌지만 장도 같이 봤고 식 재료도 넉넉히 샀다. 유진이 먹고 싶다는 샌드위치와 아이스크림도 샀고 입욕제는 차 안에서 슬쩍 빼 두어 숙소에 두고 왔다. 고기도 알맞게 익혀 먹였고, 진이는 점심을 많이 먹지 못해서인지 다행히 잘 먹었다.

볼 안에 한가득 고기를 넣고 우물거리는 유진은 과하게 귀여웠다. 먹는 것도 어떻게 저렇게 먹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이 이런 느낌인가. 실없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진이는 고기를 먹은 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저렇게 잘 먹으니 괜히 뿌듯하기도 하고 매우 만족스러웠다.

산책도 좋았다. 펜션 전체를 통으로 예약해 뒀기에 사람도 없어 조용했다. 산책로는 정갈한 길을 따라 잘 가꾸어 조성되어 있었고 바람도 딱 시원하며 적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이의 표정이 평온했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무엇 하나 빠짐없이 완벽한 산책이었다.

그리고 고대하던 거품 목욕 시간이었다. 따듯한 물속에 입욕제를 풀어 넣고 유진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허벅지에 앉은 유진은 편안히 몸을 기대어 물을 참방거리고 거품을 손 위에 쌓아 후 불기도, 내 얼굴에 슬쩍 묻히기도 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처음 데려왔을 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표정과 행동이었다. 이젠 처음의 의기소침한 유진의 모습보단 혼자 방그레 웃기도 하고 새로운 것에 놀라워하는 유진의 모습이 더 익숙해졌다. 세헌은 그게 너무 감사했다. 솔직히 좆같을 때가 더 많은 세상이나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감사한 건 아니고 그저 유진에게 고마웠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감히 짐작할 수 없어서 더더욱.

세헌은 유진의 몸을 쓰다듬고 주무르며 근육을 이완시켜 주었다. 그러다 분위기가 점점 다른 결로 변해 갔고 세헌의 손은 다리나 팔이 아닌 유진의 가슴과 다리 사이로 가 있었다. 딱 세헌이 원했던 분위기였다. 조용했던 유진의 숨이 점점 가빠져 갔다.

끝내 유진은 거품이 이는 접합부를 활짝 벌리며 팔 안에 축 늘어졌다. 시달린 다리 사이를 살살 쓸어 준 후 다시 흐르는 물에 유진을 씻겼다. 물속에서 하는 정사도 꽤 색달랐다.

너무 느껴 경련을 하는 안에 박아 넣는 건 늘 좋았다. 유진은 눈도 제대로 못 뜨며 팔을 흐느적거려 몸을 붙잡아 왔고, 그런 유진을 품에 안아 박으면 지금껏 느껴 보지 못했던 안정감과 충족감이 몸을 깊숙이 채워 갔다. 그저 그 순간 속에서만 살고 싶을 정도로 황홀했다.

그러나 그 기분은 오롯이 나만의 것 같아서 약간의 불안도 감돌았다. 그래서 유진이 품속에 늘어질 때마다 묻고 싶었다. 너는 지금이 좋은지, 지금 행복한지.

이 질문이 혹시 무언의 강요가 되진 않을까. 무언가 다른 의미로 해석되진 않을까. 설령 불행하다고 답하면 내가 그를 보내 줄 수는 있을까. 유진이 원하면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럼 나는 어쩌지.

유진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제 이기심과 욕심도 너무 컸다. 그래서 늘 물음에 대한 망설임은 불길한 망상으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은 모든 불안을 다 덮을 수 있을 만큼 평온했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단둘뿐이었다.

품에 느껴지는 가벼운 무게감과 옅은 갈색의 머리칼, 여전히 말랐으나 살이 오르고 있는 몸, 희지만 창백하지 않은 몸, 눈을 느리게 깜빡이는 유진.

유진을 이루는 모든 부분은 하나하나가 정갈하나 한데 어우러지니 어지럽게 울렁였다. 그 울렁임에 취해 무심코 말을 뱉은 적이 종종 있었다. 인생이 좆 된 것 같다는 고백도, 너에게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도, 기어코 말로 꺼낸 사랑도. 모두 유진은 듣지 못해 다행이었으나 지금 그는 깨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이 그랬듯이 세헌은 충동에 약한 편이었다. 심지어 유진이 더해진 지금은 말해 뭐 할까.

몸을 감싸는 탈력감을 느끼며 눈이 나른하게 접혔다. 가물거리는 눈꺼풀을 몇 번 들어 올리다 세헌이 눈 위에 손바닥을 덮어 주자 그대로 감았다.

유진은 이 시간이 꽤 마음에 들었다. 마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 같았다. 남자가 잔 떨림이 남은 몸을 진정시켜 주는 것도 좋았고 몸 곳곳에 가볍게 입 맞춰 주는 것도 좋았다.

그럴 때면 흔하지 않은 무언가가 된 것 같았다. 단지 박고 싸면 끝나는 게 아닌 다른 종류의 끈이 계속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안도감. 유일하고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남자의 손길에서 느껴졌다.

많이 겪어 왔던 커다란 손인데도 그 결이 달랐다. 이 남자의 손엔 조심스러움과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망설임이 서려 있었다.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담가 몸이 씻길 때에도 다음에 또 쓰기 위해 정비하는 게 아닌 투박함에 아파할 수 있는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아서.

“진아.”

“…네.”

곧 잠에 취할 듯 말 듯 나른함에 잠긴 목소리가 느릿하게 나왔다.

“진아, 너는 행복해?”

세헌의 목소리도 나직하게 잠겨 있었다. 너무 낮은 목소리였던 탓에 문장 끝에 맺힌 가는 떨림은 알아채지 못했다.

몽롱함에 잠긴 유진이 잠에 취해 배시시 웃었다. 그 잔잔한 미소에 일순 가슴께가 저릿하게 일렁였다. 유진은 대답도 없이 잠에 들었지만 세헌은 안도감에 눈물이라도 날 것 같았다.

“…고마워.”

듣는 이 없는 감사 인사가 욕실에 홀로 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