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신발을 벗으며 마루 위로 올라가 장지문을 열었다. 횡으로 길게 이어진 복도 맞은편에는 두 개의 겹문이 있었다. 오른쪽은 스승님의 사실[私室]이고 왼쪽은 수업하는 데 쓰이는 한실[閑室]이다.
우사는 뱀의 모습에서 제 몸집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 사학당 안에서는 늘 손바닥만 한 크기를 유지했다. 인간으로 변용하는 데 정신력이 많이 소모되니 그 차선책으로 크기를 줄인 거다.
스승님은 몸집의 크기를 바꾸는 데도 많은 영력이 소모된다며 걱정했지만, 몸집 크기를 줄이는 게 그나마 가장 최선이었다.
한실의 겹문 앞에 서서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주 조용한 기척만 느껴질 뿐 스승님의 훈화가 들리지 않는다.
오늘도 지각이니 이때쯤이면 한창 안에서 수업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왜 아직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거지?
진작 수업이 시작됐을 시간인데 이상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스승님의 훈화 소리가 희미하게나마 새어 들렸을 것이다.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겹문을 열었다.
드르륵-
조심성 없이 연 탓에 문 여는 소리가 제법 컸다.
한실 안은 적막했다. 스승님은 없었다. 낮은 교단 아래 깔려 있는 두 개의 방석으로 무심코 시선을 옮겼다. 저 방석은 나와 우사가 수업을 들을 때마다 앉는 자리다.
내 방석은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우사의 방석은 약간 꼬질꼬질한 회색이다. 방석 빨기도 내 담당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 꼬질꼬질한 회색 방석에 우사가 둥글게 똬리를 튼 채 잠들어 있다.
겨울의 초입이라 그런지 부쩍 잠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여타의 뱀들처럼 동면에 들어가는 건 아니었다. 예지몽에서도 우사가 동면에 드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게 늘 의문이었다.
저렇게 졸면서 왜 동면에는 안 드는 거지? 분명 추위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도 졸고 있고.
의문을 품은 채 일단 내 자리로 가 방석을 깔고 앉았다. 가부좌를 틀고 한쪽 다리에 팔꿈치를 대고선 삐딱하게 턱을 괬다.
한쪽으로 쏠린 머리가 옆으로 흘러내린다. 상체만 비스듬히 돌려 바로 옆자리의 우사를 봤다.
몸집이 작아진 우사는 가늘고 여려 보여서 마치 새끼 뱀 같았다. 저렇게 세상모르고 색색 자고 있으니 괜히 건드려 보고 싶어진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양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곤 바닥을 짚은 두 손을 느리게 움직여 엉금엉금 기었다. 기척까지 죽이며 바짝 다가가 꼬질한 방석 옆에 쭈그려 앉았다.
깊이 잠들었는지 이렇게 쳐다봐도 모른다.
혀끝을 살짝 내민 채 자고 있는 우사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몸체를 빈틈없이 덮고 있는 청록색 비늘에서 광택이 흐른다.
원래는 진흙이 묻어서 꾀죄죄했었다. 그런데 언젠가 내게 더럽다 욕을 먹은 뒤론 차츰 깨끗해지더니 이제는 반질반질 윤이 흐르는 지경이 되었다.
‘늪지대를 기어 다니는 더러운 뱀’이란 욕이 트라우마가 된 게 틀림없다.
스승님이 말하길, 우사는 이제 겨우 2백 년을 산 영물이며, 사람으로 치면 아직 어린애라고 했다. 그에 내가 2백 년이나 살았는데 어느 부분이 애냐고 물으니, ‘감정’의 문제라고 했다. 인간보다 오래 사는 만큼 사춘기도 한참 뒤에 온다는 거다.
아직 사춘기도 안 온 애한테 그 욕은 좀 심했을지 모르겠다.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 확실히 심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늪지대를 기는 게 일상인 뱀이 이렇게까지 깨끗할 수가 없다.
꿈에서 본 우사에게 저질렀던 만행들이 새삼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 안에 생겨난 감정들이 네게 퍼부어져 너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난 대체 너한테 얼마나 많은 트라우마를 심어 준 걸까. 나로 인해 우사는 얼마나 많이 변한 걸까.
단애약수. 역시 단애약수가 답이다. 그것만 마시면 나도, 우사도 자유로워질 거다.
천천히 손을 들어 손끝으로 우사의 머리를 툭 쳤다. 손끝으로 살짝 건드린 것뿐인데 흠칫 놀라며 두 눈을 크게 뜬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여서 짜증 난다. 이 짜증을 어떻게든 풀고 싶은데 풀 길이 없어서 손끝이 근질거린다.
그래도 이제 곧이다. 곧 단애약수만 찾으면 이 짜증도 사라지겠지. 우사를 보며 느끼는 이 감정도 지금이 마지막이 될 거다.
…단애약수만 찾으면.
내가 눈썹을 찡그리며 인상을 쓰자 우사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 거리를 벌린다. 확실히 이맘때의 우사는… 대개 이런 모습이었다.
날 겁내 하는 게 아니라 피하고 꺼려 하는 거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처럼, 나는 우사한테 있어서 똥 같은 거다.
[……아.]
우사가 몸을 바로 하며 침음했다. 뱀의 모습일 때의 우사는 전음만 사용한다.
“스승님은?”
나는 일부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물었다. 괴롭히지 않을 거란 뜻을 내 나름 우회적으로 표한 거다.
[잠시 외유 나가셨습니다.]
“수업은 어쩌고?”
늦은 주제에 뻔뻔히 물었다. 우사는 잠시 날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시선을 내리깔았다.
[금방 돌아온다고 하셨습니다.]
나와 한 공간에 있는 게 불편한지 똬리를 튼 몸 안쪽으로 머리를 묻는다. 나는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선 팔짱을 꼈다. 그러곤 날 보지도 않는 우사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스승님도 없이 우사와 단둘이라. 흔치 않은 일이다. 어쩌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단애약수에 관해 아는 것이 있는지 우사를 떠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우사는 정사봉에서 2백 년이나 머문 토박이 영물이다. 그러니 단애약수에 대해 알 확률도 높다.
문제는 우사가 스승님 말만 듣는 껌딱지라는 거다. 스승님은 선인이라 분명 그런 유의 약수 자체를 멀리할 테니, 내가 단애약수를 구한다는 걸 알기라도 하면 버선발로 나서서 방해할 게 뻔하다.
그렇게 되면 껌딱지 우사는 당연히 스승님 편을 들 테고. 그러니 스승님이 없는 지금이 기회다.
진지한 눈으로 우사를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뗐다.
“야. …아니, 그러니까…, 너.”
너무 시비조 같아서 바로 호칭을 바꿨는데도 여전히 퉁명스럽다.
우사는 완전히 정지 상태로 미동도 없다. 무거운 적막이 깔린다. 이 분위기는… 내가 갈구기 직전의 분위기잖아. 왜 또 이런 흐름을 탄 거야?
에이씨-. 습관적으로 손을 들어 내 뒷머리를 헤집었다. 묶은 머리가 손가락에 걸리고 쓸리며 헝클어진다. 보나 마나 산발이 됐을 거다.
손을 내려 그대로 반대쪽 어깨를 꾹꾹 지압하듯 눌렀다.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려니까 주체를 못 하겠네.
침묵이 길어질수록 괜히 긴장된다. 마른침을 삼키며 미간을 한껏 구겼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툭 말했다.
“…너한테는 아무 문제 없어.”
꿈을 통해서 깨달은 바였다.
날 보는 우사의 눈이 커진다. 나는 가는 숨을 내쉬며 어깨를 주무르던 손을 내렸다.
“내가 문제인 거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이해가 안 되는지 우사가 느리게 되묻는다. 그마저도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말끝을 흐린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잠깐…, 저기…, 스승님이 여기서 기다리라고…….]
내가 가까이 다가오자 우사가 말을 하다 만다.
나는 허리를 굽혀 우사를 향해 한 손을 내밀었다.
“나랑 보물찾기하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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