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지진이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지고 있다. 지대가 전체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어서 이대로 있다간 매장되기 십상이다.
“바깥으로 튕겨져 나갔다고 했지? …혹시 남소위가 어디를 건드렸는지 알아?”
거의 무너진 시점에서 기관 장치가 아직 작동할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물어봤다.
[장풍으로 겨냥한 부분은 한 곳이었고, 서 있던 위치에 따라 튕겨져 나가는 방향이 달랐어요. 그때 저와 남여연은 ‘바깥’으로 튕겨졌고, 남소위는 ‘위’로 올라갔으니까요, 사형.]
“그 부분이 어디인데?”
[……남소위가 박혀 있었던 벽 바로 아래, 바닥이에요.]
“…….”
방금 내가 주먹으로 부순 벽에서 부스러기 하나를 떼어 냈다. 그리고 그걸 우사가 일러 준 곳으로 가볍게 튕겨 날렸다.
따악-!
내가 날린 부스러기가 바닥을 때린 순간, 딛고 서 있는 지면이 크게 흔들렸다. 이윽고 아래에서부터 가공할 만한 힘이 터지며 나를 그대로 위로 날려 보냈다.
빠르게 허공을 가로지르는데 저 멀리 튀어나온 턱이 보인다. 벽에 튀어나온 저 턱은 맨 처음 우사가 나를 내려놓았던 자리였다.
턱에 도달하기엔 나를 밀어 올린 힘이 아슬아슬하게 부족하다. 그곳에 닿기 위해 남소위처럼 나도 허공에서 바동거렸다. 그러자 품에 있던 우사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우사는 내 품에서 나와, 순식간에 인간으로 변해선 턱에 한쪽 발끝을 걸쳤다. 그러곤 아래로 손을 내밀어 내 손을 단단히 잡았다.
나는 그 손 하나에 의지한 채 우사를 올려다봤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그는 나를 위로 끌어 올려 줬다.
우사에 의해 턱 위에 올라선 순간, 불현듯 무언가가 떠올랐다.
땅에 주저앉은 나와 그런 나를 내려다보는 우사.
‘앞으로는 곁에 두고 내가 직접 교화시키겠다.’
회귀 직전의 일인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목에 겨눠진 건 검이 아닌 빗자루였다.
회상 속의 우사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선…, 여기를 전부 비질해. ……진연 형.’
…이 기억은 뭐지? 그때 바로 검으로 날 죽인 게…… 아니었나? 나는 그 죽음의 찰나에 회귀한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런데 이건 대체 무슨……. 게다가 진연 ‘형’이라니.
내 머리가 돌아 버린 게 분명하다.
고개를 저어 방금의 환영인지 망상인지 모를 기억을 털어 내려 애썼다.
“사형?”
우사가 그런 날 의아하단 듯 쳐다보았다.
“……아니야, 아무것도. 상처는 괜찮아? 나 때문에 괜히 또 무리하는 건,”
“괜찮아요?”
괜찮냐는 물음이 괜찮으냐는 물음으로 돌아왔다. 나는 잠시간 우사를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쓰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러곤 한 손으로 옷깃을 열어젖혔다.
“자, 들어와. 부상도 있는데 여기서부턴 나한테 맡겨. 이 사형이 단번에 널 데리고 빠져나가 줄게.”
“…….”
“백아?”
“사제가 사형을 모시는 게 도의에 맞아요.”
우사가 단숨에 나를 안아 들었다. 하필 공주님 안기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우사가 허공을 박차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윽!”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두 팔로 우사의 목을 끌어안았다. 놀란 눈으로 멍하니 우사를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우사가 나를 힐끔 내려 본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우리 위로 떨어지는 모든 것들이 알아서 양옆으로 비껴간다. 우사가 선력으로 조종하는 거였다.
가만, 그러면 나도 굳이 안아 들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 소매치기한테 한 것처럼 그냥 허공에 띄워도…….
날 내려다보는 우사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지며 눈빛이 부드러워진다. 굉장히 수려한 얼굴은 아래에서 올려다봐도 절경이구나.
“이제 곧 바깥이에요.”
“……어. 응.”
속에서 맴도는 의문을 그냥 삼키며 대답했다.
우사가 다시 고개를 들고, 그 입매가 살짝 호선을 그리는 순간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바위와 흙, 그 모든 잔해가 갈라졌다.
억지로 밀리고 부서지고 벌어지며 생겨난 틈새로 빛이 내비쳤다. 동시에 익숙한 얼굴 두 개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남여연과 그 소매치기였다.
남여연은 그렇다 쳐도 소매치기의 등장은 의외였다.
남해검문에서 나와 우사가 빙옥으로 이송될 때, 소매치기는 다른 곳으로 실려 가길래 그게 마지막이 될 거라고 내심 생각했는데. 설마하니 이렇게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예기치 않게 다시 마주하게 된 남여연과 소매치기를 번갈아 쳐다봤다. 둘 다 꼴이 엉망이었다.
소매치기는 누구한테 쥐어뜯겼는지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 있고, 그 옆의 남여연은 양 뺨의 실핏줄이 터져선 빨갛게 부어 있었다.
남소위의 목걸이를 통해 잠깐 들었던 남여연의 목소리가 새삼 떠올랐다.
그때 들었던 그 둔탁한 타격음은 남여연이 뺨 맞는 소리였나.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무자비하게 팼군.
대체 누가 남여연을 저렇게 때렸을지 생각하며 곁눈으로 소매치기를 힐끔 보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역시.”
남여연이었다.
남여연이 으스대며 소매치기를 향해 한쪽 눈썹을 까닥였다.
“내가 여기일 거라고 했잖아.”
“…….”
소매치기는 미묘하게 굳은 낯으로 남여연을 보지도 않았다. 눈매와 입가에 띠고 있는 미소가 어딘가 좀 뻣뻣하다.
“음. 과연 능력이 대단하네요.”
소매치기가 다감한 어투로 대답했다. 그에 남여연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우사는 나를 안아 든 채 그 둘 사이로 착지했다. 동시에 우리의 뒤로 빙옥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삽시간에 무너진 빙옥은 그 자체로 무덤이 되었다.
그 무덤 위에서 남여연이 물었다.
“형님은?”
나는 우사의 품에서 내려오며 소매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그게 내가 가진 남소위의 유일한 유품이었다.
“……자신은 사해필성 아래에 묻힌 거와 진배없다는 말을 문주에게 전해 달라고 한 뒤에… 죽었어.”
내가 말했다.
“……뭐?”
“죽었어. 남소위는.”
남여연의 반문에 한 번 더 말했다.
내가 듣기에도 무심하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속에서 이는 작은 동요를 애써 무시했다.
“형님이…… 죽었다고? 형님이? 그 형님이?”
남여연은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왜 죽었는……!”
나는 아직 주저앉아 있는 남여연에게 가, 그 곁에 웅크려 앉으며 한 손으로 남여연의 입을 틀어막았다.
열어 놓은 기감에 느껴지는 기운들이 이 산을 둘러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빙옥이 무너졌으니 그 여파 때문인 듯했다. 왜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진만 치고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상황에서 저들의 눈에 띄어 봐야 좋을 거 없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주변을 향해 기감을 곤두세우며 작게 말했다.
내 손에 입이 막힌 남여연의 두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남여연이 제 입을 틀어막은 내 손을 거칠게 뗐다.
“형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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