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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54화 (54/141)

<54화>

“그럼 그렇게 해. 내가 널 돌봐 줄게. 내 이름은 진연이야. 선배님 말고 그냥 형이라고 불러.”

“…네, 형님. 저는 ‘사아’예요.”

“사아?”

“네.”

“…사아. 부르기 좋은 어감이네. 그럼 사아야, 그 가면은 안 벗을 거야?”

내 옷자락을 잡고 있는 사아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곤란해하고 있다. 괜히 더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 내가 먼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안 벗어도 괜찮아. 음, 그 가면 멋있다.”

아무 무늬도 없는 반가면을 두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그제야 사아의 손에서 힘이 빠진다.

“…멋있어요?”

“응. 나는 귀여운 게 더 좋지만.”

“…….”

내 말에 사아는 잠시 침묵했다가 손을 들어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을 한 번 두드렸다. 그러자 아무 무늬 없던 반가면이 토끼 가면으로 변했다.

법술이 걸린 가면이었나? 신기한 물건을 가지고 있네.

“다른 모양으로도 변할 수 있어?”

“제가 아는 모양이라면요.”

“그럼…, 코가 삐뚤어지게 취한 노인 가면은?”

정말 보여 달라는 것보단 그냥 장난에 가까웠다. 내 장난스런 물음에도 사아는 건실하게 반응했다. 아까처럼 가면을 툭 두드리니, 가면이 코가 삐뚤어지게 취한 노인 가면으로 바뀌었다.

“어때요?”

코가 삐뚤어지게 취한 노인 가면을 쓴 사아가 물었다. 그런 사아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우사 때문에 응어리졌던 기분도 덩달아 조금 풀리는 것 같다.

“응. 제대로야. 특히 여기 코끝이 빨간 부분이.”

가면의 코 부분을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가면 너머로 보이는 사아의 두 눈이 커졌다가 이내 갸름하게 접히며 엷게 웃음을 띤다.

“그럼 이 가면으로 할게요.”

“응? 왜?”

“이게 마음에 들어서요.”

“그래? 나랑 보는 눈이 비슷하네.”

유쾌하게 말하며 손바닥이 보이게 손을 내밀었다. 사아는 내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내가 손을 내민 이유를 모르는 눈치다.

결국 내가 직접 사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러곤 내 손바닥에 사아의 손바닥을 가볍게 맞부딪쳤다. 눈썹을 까닥거리며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였다.

“이렇게 하는 거야.”

사아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방금 나와 맞부딪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거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머리를 투박하게 쓰다듬어 주자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사아의 귀 끝이 붉어진다.

“…한 번 더,”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사아가 말했다.

“한 번 더 하고 싶어요.”

조금 상기된 목소리였다.

나는 엷게 웃으며 손바닥을 내밀어 줬다. 그러자 이번엔 사아가 먼저 제 손바닥을 내 손바닥에 맞부딪쳐 왔다.

짝-.

작은 소리가 우리 사이에 울려 퍼졌다.

사아에겐 선검이 없었다.

선검도 없이 어떻게 외행을 나왔느냐고 물으니 외행 중에 잃어버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별수 없이 내 선검을 같이 타기로 했다.

사아는 어검을 많이 해 본 적 없다고 해서, 내 앞에 태운 뒤 한 팔로 사아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혹시라도 떨어지면 큰일이니까.

비교적 느리게 허공을 가르며 날았다. 사아는 내 품에 등을 기댄 채 정면만 응시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귀 끝과 목덜미가 새빨갛다. 이 자세가 많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래도 놓아줄 생각은 없다.

얼음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는 사아의 어깨를 일부러 토닥여 줬다. 긴장 좀 풀라는 뜻이었다. 이러고 있으니 소사제(막내 사제)가 생긴 기분이다.

“우횡산에는 왜 있었던 거야?”

긴장감도 풀어 줄 겸 해서 말을 걸었다.

“예전부터 많은 선사들이 우횡산에 경험을 쌓으러 간다고 들어서요.”

사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귀랑 목덜미가 새빨갛고 몸은 잔뜩 경직되어 있어서, 목소리도 떨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들려온 사아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하니 단정하기만 했다.

나중에 좀 더 자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까지 잘 숨기게 되면…, 속내 파악하기가 엄청 힘들어지겠네.

먼 훗날 사아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봤다. 냉랭한 분위기의 아정한 군자가 그려진다. 마음속에 동요가 일어도 그걸 겉으로 쉬이 드러내지 않는 이.

……‘우사’랑은 정반대네.

내게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던 우사가 생각났다.

‘형.’

나를 ‘형’이라고 부르길 고집하는 그 아이가.

솔직한 심정으론, 걔를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무작정 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좀처럼 그게 잘 안 된다. 곁에 있기조차 싫으면서도, 막상 오래 보이지 않으면 내가 먼저 찾게 된다.

온전히 좋아할 수도, 온전히 미워지지도 않는다.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이 마음은, 내 안에서 생겨난 거다. 내가 멋대로 품은 감정이다.

그러니 따져 보면 내 자신이 문제이지, 우사에겐 문제가 없다. 처음부터 그랬다. 내가 그 애를 구한 처음 순간에도 그 애는 그냥 거기에 있었을 뿐이고, 다가간 건 나였으니까.

내가 먼저 다가가 구했고, 내가 먼저 좋아했고, 내가 먼저 괴롭혔고, 내가 먼저… 그 애가 떠날 만한 빌미를 만들었다.

…그래, 전부 시작은 나였다. 그래서 끝도 내가 내려고 했는데,

‘형이 자꾸 스스로를 놓으려고 해서 데려온 거야. 내가 교화시키고 싶은 건 그 빌어먹을 짓들이라고!’

아무래도 끝을 내는 건 우사의 몫인 것 같다.

처음은 내 의지에서 비롯되었고, 마지막은 우사의 의지에서 비롯될 거다.

“…그렇다고 우횡산을 고르다니. 뭐, 그래도 우횡산에서 날 만난 걸 보니 아주 운이 없진 않네.”

내가 말했다.

“네. 형님을 만났으니 전 운이 좋아요.”

사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에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우리가 도달할 끝은 정해져 있지만 방향과 가는 길은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우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사가 있는 곳이 우리의 목적지가 될 거다.

이 동행이 길지, 짧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나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아가 마음에 들고, 사아도 나를 잘 따르니까.

그러니 별 탈 없이 잘 마무리될 거다.

“나중에… 이 외행이 끝나고 헤어지게 되면 그땐 좀 아쉬울지도 모르겠네.”

“다시 만나면 되잖아요.”

고개를 위로 젖혀 나를 보려 애쓰며 사아가 말했다.

“그때도 제가 형님을 찾아갈게요.”

“…그래.”

웃음기를 띤 목소리로 대답했다.

“꼭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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