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질 사형입니다-58화 (58/141)

<58화>

나는 곧바로 사아의 앞을 가로막으며 남자의 팔을 단번에 낚아챘다. 그리고 곧장 그 팔을 뒤로 꺾으며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쿵!

굉음과 함께 쓰러진 남자의 등 위로 올라타 무릎으로 짓눌러 제압했다. 그다음에 당연한 수순대로 법진을 그리려다가 한 손에 닭꼬치를 쥐고 있었단 걸 그제야 알아챘다.

얼른 닭꼬치를 입에 문 뒤, 손으로 빠르게 법진을 맺었다.

허공에 그려진 법진에 내공이 실리며 법술이 완성되었다. 그대로 손바닥을 내려 남자의 뒷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남자의 머리를 누르고 있는 내 손등 위로 법진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빠르게 사그라졌다.

“…….”

법진이 사그라지는 걸 보며 두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뒤늦게 약간의 놀라움이 찾아들었다. 방금 있었던 내 일련의 행동들이 물 흐르듯 유려하게 이어졌다는 게 스스로도 조금 놀라웠다.

그간 쉬어서 몸이 많이 굳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그런 건 아니었나 보다. 뭐, 아까 우횡산에서 운기조식도 했었고.

남자의 머리에 댔던 손을 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남자는 미동도 없었다.

입에 물고 있던 닭꼬치를 도로 손에 쥐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일어나.]

방금 발동한 법술에 연동된 진을 통해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정신을 잃은 채 재빠르게 몸을 일으킨다. 그 모습이 마치 괴뢰(꼭두각시)같았다.

나는 일어난 남자를 대충 훑어봤다. 크게 다친 데는 없어 보인다. 남자의 옷자락에 묻어 있는 닭꼬치 흔적을 툭툭 털어 준 뒤 사아를 돌아봤다.

“내가 널 돌봐 주겠다고 했잖아.”

싱긋 웃으며 사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가자.”

“…네.”

수줍게 웃으며 뱀 인형을 옆구리에 낀 사아가 대답했다. 내 손을 맞잡은 사아와 함께 그 거구의 남자를 지나쳤다. 사아는 남자를 그냥 두고 가는 것에 아무 관심도 없어 보였다. 내가 이끄는 대로 걸을 뿐이었다.

잠시 기절하게만 만드는 법술이라, 곧 깨어나면 알아서 제 갈 길 갈 거라고 말해 주려 했는데… 굳이 말할 필요 없겠다.

“그건 먹지 마.”

내 몫의 닭꼬치를 얼른 먹어 치운 뒤 사아 몫의 닭꼬치를 뺏어 들었다. 그 바람에 사아의 한 손이 비었다. 사아는 나와 손을 맞잡느라 잠시 옆구리에 끼고 있던 뱀 인형을 그 손으로 조심조심 옮겨 쥐었다. 그러곤 시선을 들어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날 바라보는 그 낯이 무척 순해서,

“뺏어 먹으려는 거 아니야.”

나도 모르게 말을 덧붙였다.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내 말에 사아는 잠시 말이 없다가 곧 작게 웃었다. 깊게 호선을 그리는 입꼬리 아래로 살짝 볼우물이 패인다. 엷게 미소 짓는 것만 봤지, 이렇게 해사하게 웃는 건 처음이다.

“형님.”

사아가 나를 부르며 계속 껴안고 있던 뱀 인형을 내게 내밀었다.

“이것도 함께 맡아 주세요.”

“…이걸? 갑자기 왜?”

무심코 받아 들며 물었다.

“잠깐 다녀올 곳이 있어서요.”

“갑자기? 무슨 볼일인데? 나도 같이 가.”

“괜찮아요. 금방 돌아올게요.”

내가 말릴 새도 없었다. ‘잠깐만’이라고 붙잡기도 전에 사아는 내 손을 놓고 가 버렸다. 순식간에 인파 사이로 사라진 사아를 찾으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다.

뒤늦게 사아를 쫓아 거리를 배회했다. 아까 법술을 써서 남자를 세워 뒀던 곳도 가 봤지만 그곳엔 사아도, 남자도 없었다.

혹시 길이 엇갈렸나 싶어서 헤어졌던 곳으로 되돌아도 가 봤다. 하지만 그곳에도 사아는 없었다.

“사아!”

사아를 찾으며 사방을 둘러봤다. 기감도 활짝 열었다. 그러나 무엇도 잡히지 않는다.

“사아를 찾는 걸 도와줘!”

내 어깨에 앉아 있는 참새에게 부탁했다. 참새는 바로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비행하는 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다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축제가 열린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나가는 행인들과 여러 번 부딪치길 반복했다.

같이 갔던 닭꼬치 노점과 장난감 가판대, 그리고 가면을 샀던 곳까지 전부 둘러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애타게 찾는 사이, 사아가 맡긴 인형은 이미 내 손안에서 엉망으로 구겨졌다. 나도 모르게 인형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 탓이다.

망가진 인형을 내려다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대체 얘가 어딜 간 거지? 설마 계속 길이 엇갈리고 있는 건가? 이러다가 정말로 잃어버리는 건…….

마른침을 삼키며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내가 돌봐 주겠다고 했는데.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머리가 지끈거리며 또다시 귀에 이명이 들린다. 그 이명 사이사이로 언뜻 비치는 오연의 환청에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제발… 정신 차리자.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며 깊이 숨을 삼켰다가 느리게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거리를 배회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그러다 끝내 도달한 곳은 사아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장소였다.

사아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 한 그 장소.

그 장소에 나 혼자 우두커니 섰다.

“…….”

사아는 없었다.

“…….”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기다리면 알아서 돌아올 애를 내가…, 무작정 찾으러 가서 엇갈린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잘못이다. 내가 잘못 판단했다. 위해 주려고 한 행동이, 위해만 가져왔을지도 몰라.

길어지는 상념 속에서 불현듯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들개의 환영이 잔상처럼 시야에 번진다. 환영 속의 나는 우사를 밀치며 들개를 향해 겸을 겨눴다.

‘저리 비켜…!’

무거운 긴장감에 짓눌려 경직된, 내 어린 날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환청이다.

‘내 뒤에서 나오지 마!’

그날, 우사는 끝까지 내 뒤에 있지 않았다.

‘절대 나오지 마…!’

우사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나를 밀치며 앞으로 나섰다. 나는 자연스럽게 ‘사제의 등 뒤에 숨은 폐물’이 되었다.

죽음엔 많은 종류가 있고, ‘우사의 사형’은 그렇게 죽었다. ‘사제인 우사’에 의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날, 너는 내 등 뒤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모든 게 이보단 나았을 거다.

…차라리, 그래. 차라리 그날 네 대신 내가 다치거나 아예 죽게 내버려 뒀어야 했어.

우사, 왜 나를 구했어?

“…….”

지치는 기분에 한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런 내 어깨를 누군가가 치고 지나간다. 그 힘에 떠밀려 순간 휘청거렸다.

나를 쳤던 이가 내게 돌아와서 대치해 선다. 뭐라 욕설을 지껄이는 것 같은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퍽-!

뭔가가 내 얼굴을 후려쳤다. 그 힘에 떠밀려 뒤로 주저앉았다. 숙인 고개 아래로 피가 뚝뚝 방울져 떨어진다.

얼굴을 쓸어내렸던 손을 움직여 코를 매만졌다. 코에서 뜨뜻미지근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5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