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센터 정문에 차가 멈춰 서자, 나는 현태운보다 먼저 밖으로 나왔다. 내가 도망갈 것을 우려했는지 센터 경비원들이 미리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도망칠 의사가 없다는 걸 알려 주듯 현태운이 내 곁에 올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신의 씨, 가요.”
현태운의 말에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그와 나란히 걷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금세 현태운이 내 옆에 따라와 걷고 있었다.
센터는 세 달 만이었다.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는 안 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윤 박사 대기하고 있지?”
현태운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센터 직원에게 물었다.
“네.”
처음 각성했을 때는 윤 박사님이 출장 중이셔서 보름 뒤에 등급 테스트를 했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시간이 달라서인지 윤 박사님이 센터에 계시는 거 같았다.
“신의 씨, 긴장하지 말아요.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
현태운은 말 없는 내가 긴장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나는 여전히 그의 말에 답하지 않은 채 등급 테스트실로 향했다.
빨리 등급 테스트가 끝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등급 테스트실에 도착하자, 윤 박사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 박사님의 얼굴은 기억 속 그대로 인자했기에 조금은 안심되었다.
“현태운 에스퍼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이쪽이 전화로 말했던 각성한 가이드예요.”
현태운이 나를 윤 박사님께 보이며 말했다.
“이분이시군요. 센터 연구원장 윤정호예요.”
“이신의입니다.”
윤 박사님은 나와 악수하면서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나 또한 미소로 답하고 윤 박사님의 안내를 받으며 테스트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3년간 테스트를 받았던 곳이었다.
“우선 각성 테스트를 먼저 하고 등급 테스트를 진행할 겁니다.”
현태운은 돌발 상황을 우려해 모니터링실 안에서 대기했고, 나는 맞은편에 있는 유리 돔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현태운을 내보내고 싶었지만, 내가 C급 판정을 받았을 때의 표정이 보고 싶었기에 내버려 두었다.
“두 테스트 합쳐서 1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윤 박사님도 모니터링실로 이동했고, 나는 유리 돔 안에서 윤 박사님의 지시대로 행동했다.
어차피 C급이었기에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었지만, 오직 현태운의 당황한 얼굴을 보기 위해 참아 냈다.
몇 분 정도 지났을까, 윤 박사님께서 내게 가이드로 각성된 상태라고 말하며 승급 테스트 단계로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현태운을 바라봤다.
현태운은 나를 보며 미소 지었지만, 나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파장력, 파장 전달력, 파장 전파력 세 가지를 측정하는 테스트는 내가 알던 그대로였다.
테스트를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다른 연구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를 보던 현태운 또한 연구원들 사이로 들어가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회귀 전과는 모두 표정이 달랐다.
연구원들이 모니터 화면을 치며 쉴 새 없이 무언가 말하고 있었지만, 내게는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답답했지만, 곧 윤 박사님이 의문을 풀어 주었다.
- 신의 가이드님, 등급 결과가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결과가 일찍 나와 살짝 의아했다. 이미 등급을 알고 있었지만,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어떻게 나왔나요?”
- 축하드립니다. S급이에요. 10년 만의 S급 가이드입니다.
윤 박사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연구원들이 손뼉을 치며 나를 축하해 줬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현태운이 유리 돔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S급…?”
내가 S급일 리 없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회귀 전의 나라면 C급이 나왔어야 했다.
“잘못된 거 같아요. 다시 검사해 주세요!”
-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파장이 방대한데요?
나는 윤 박사님의 말에도 고개를 저으며 재테스트를 해 달라고 재차 말했다. 여러 기억이 뒤얽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신의 씨, S급이래요.”
내 마음도 모른 채 현태운이 내 손을 잡아 왔다. 갑작스러운 그의 접촉에 손을 사납게 쳐 내며 날카롭게 말했다.
“내 몸에 손대지 마세요!”
“미안해요. 너무 기뻐서 그랬어요.”
현태운은 상기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가증스러웠다. 내가 C급 판정 받았을 때 그가 어떤 표정을 지었고 내게 어떻게 행동했는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과는 너무나도 상반된 모습에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윤 박사님, 지금 매칭 테스트도 가능한가요?”
현태운이 모니터링실 쪽을 보며 물었다. 매칭 테스트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거부했다.
“매칭 테스트는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우선 등급 테스트부터 다시 해 주세요.”
- 저희도 정확한 측정이 불가해서 국제 연합 쪽에서 다시 재테스트를 받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재테스트를 한다는 윤 박사님의 말에 안심했다. 하지만 또 S급이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왜 S급이 나왔는지 여전히 의문이었다.
혹시 3년간 받은 가이딩 프로젝트 훈련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확실한 게 아니니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했다.
“신의 씨, 정말 축하해요. S급은 축복받은 거예요.”
나는 여전히 현태운의 축하에 답하지 않은 채 그의 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였다. 모니터링실 안으로 사람이 들어왔다.
“박사님, 벌써 기자가 왔는데요?”
“벌써 말이 새어 나갔나 보군요.”
윤 박사님이 방 안을 가득 채운 연구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밤도 늦었으니 여기까지 하고, 내일 다시 재테스트하는 것으로 합시다. 재테스트 결과 나올 때까지는 이신의 가이드님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함구하세요.”
윤 박사님의 말을 끝으로 연구원들이 모두 나갔다. 이제 방 안엔 나와 현태운, 윤 박사님과 그의 조수뿐이었다.
“신의 가이드님, 오늘은 협회에서 운영하는 호텔에서 지내시고 내일 오전에 재테스트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아니요. 신의 씨는 저희 집에서 자면 될 거 같아요. 뭘 번거롭게 호텔까지 가요.”
윤 박사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태운이 나를 보며 말했다.
“신의 씨, 저희 집으로 오세요. 호텔보다 편할 거예요.”
“싫습니다. 그리고 박사님과 단둘이 나누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내 말에 현태운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얼굴을 했지만, 평소답지 않게 알겠다며 순순히 나갔다. 그 모습에서 석연치 않은 무언가를 느꼈지만, 유리 돔에서 나와 윤 박사님께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향해 완고하게 말했다.
“박사님, 저는 가이드로 각성해도 협회에서 일할 생각 없어요.”
“왜죠?”
윤 박사님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당연했다. S등급을 마다할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저는 지금처럼 평범한 삶이 좋아요. 가이드는 너무 위험하잖아요. 언제 죽을지 모르고요.”
“현장에 나가지 않는 가이드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풍족한 삶을 살게 될 거예요.”
“그래도 싫습니다.”
싫다는 내 말에 윤 박사님은 난처한 얼굴이 되었지만, 다시 원래의 얼굴로 돌아가며 말했다.
“유감스럽지만, 가이드로 각성한 순간부터 신의 가이드님은 더 이상 일반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센터에서 테스트받았으니 협회 소속으로 분류되고요.”
“제가 거부해도요?”
“네.”
“여기 올 때도 느꼈지만, 참 일방적인 곳이네요.”
“그렇게 생각이 드셨다면 죄송하네요.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나는 더는 답하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보던 윤 박사님이 말을 이었다.
“그럼 오늘은 호텔에서 지내시고 내일 재테스트해 봅시다. S급만 아니면 언론에 언급될 일이나 억압도 적어서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역시 끝까지 센터에 가지 않겠다고 반항했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하기엔 늦었기에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협회의 도움으로 호텔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현태운이 끝까지 쫓아와 자기 집에서 머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답하지 않은 채 협회의 경호를 받고 호텔 룸까지 안내받았다.
다행히 호텔에 도착했을 땐 현태운도 지쳤는지 내게 잘 자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니 조금은 숨통이 틔었다.
내가 안내받은 객실은 최상층의 가장 넓은 방이라고 했다. 호텔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기에 이렇게 비싼 곳에 오니 신기했다. 내가 C급 판정을 받았을 때는 다 무너져 가는 기숙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현태운의 말대로 S급은 축복인지도 몰랐다.
나는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자동 센서 등이 켜지며 주변을 밝혔다. 곧이어 한쪽 벽면이 모두 유리로 된 거실이 나왔다.
유리 쪽으로 다가가자, 도시가 보였다. 밤의 도시는 너무나도 빛나서 나와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밖을 바라보다, 침실로 들어와 침대맡에 앉았다.
자정이 훌쩍 넘었지만,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어 쉽게 잠이 오진 않을 거 같았다.
S급이 되어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과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 환멸과 함께 헛웃음이 나왔다. 회귀 전과는 다른 현태운의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내가 S급이라는 말을 들은 현태운은 그곳에 있던 누구보다도 좋아했다. 회귀 전에 그가 내 등급을 듣고도 저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지워 버렸다.
솔직히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분명 협회에서 내 행동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우선 내일 재테스트를 하고, 지금처럼 협회가 강압적이라면 그때는 철저한 계획을 짜고 도망쳐야 했다.
***
언제 잠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이미 주변은 밝아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머리맡에 놓은 핸드폰을 확인하자, 10시에 협회 사람이 데리러 온다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2시간 뒤였기에 협회 사람들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씻지도 않고 잠들었더니 온몸이 찝찝했다. 우선 욕실로 이동해 샤워를 하고 나오자, 때맞춰 지금 조식을 가져다드려도 되냐는 내선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아침을 먹으며 협회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딱 10시가 되었을 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나갈 준비를 끝냈기에 빠른 걸음으로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있어야 하는 협회 직원은 없고 화려한 꽃다발을 든 현태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