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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28화 (28/65)

28화

“핸드폰 잃어버리셨죠?”

현태운이 주머니에서 내 핸드폰을 꺼내 건넸다. 그 모습에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현태운을 피해 인적이 드문 후문으로 도망간 것인데 이렇게 만나니 낭패감이 들었다.

“받아요.”

현태운이 멀어지는 내 모습을 보며 다가왔다. 다행히 저번처럼 호흡 곤란이 오거나 몸이 떨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몸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요?”

그깟 핸드폰 하나 찾아주려고 현태운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핸드폰 찾아드리고 싶어서 살짝 조사했어요.”

역시 핸드폰에 암호가 설정되어 있어도 소용없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날 그렇게 사라져서 걱정했어요. 서운하기도 했고요.”

“핸드폰 주세요. 이제 용건 없으신 거 맞죠?”

나는 현태운의 말을 끊으며 핸드폰을 가로채 갔다.

“사실 핸드폰은 핑계고, 신의 씨가 가이드로 각성한 거 같아서 왔어요. 마지막으로 언제 각성 테스트 받았어요?”

“오해하신 거 같은데, 저 가이드 각성 안 했어요.”

나는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단 걸 알리기 위해 차갑고 빠르게 답했다. 몸이 굳어서 그런지 목소리 또한 딱딱하게 나온 게 지금으로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태운은 내 말을 듣고도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보니 더욱더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성한 거 정말 아니에요. 그리고 이제 용건 없으신 거 같은데 돌아가 주시겠어요?”

현태운을 향해 표정을 지운 채 정색하자, 그의 눈썹이 살짝 구겨졌다.

“그건 안 될 거 같네요. 오늘 신의 씨랑 협회에 가서 꼭 각성 테스트를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전 싫어요. 이만 돌아가세요.”

“안 받으려고 하니까 더 의심 가잖아요.”

역시 현태운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내가 나온 사무동 문을 바라봤다.

“단순한 검사예요. 시간 많이 안 걸리고요.”

“저는 싫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왜 싫은 건데요?”

“그냥 싫어요.”

내 말에 현태운이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이런 웃음도 지을 줄 알다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비소가 지어졌다.

“그럼 신의 씨 자의로는 안 가겠다는 말이죠?”

“네.”

“알겠습니다.”

알겠다고 말한 현태운이 귀에 차고 있던 이어셋에 대고 말했다.

“후문으로 와.”

후문으로 오라는 말이 마치 나를 잡으러 오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아마 그럴 것이고 말이다. 이대로 잡혀서 센터로 끌려가는 것만큼은 싫었다.

나는 현태운이 말하는 틈을 타 다시 사무동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현태운과 대치하는 건 위험했다. 공간 이동 능력도 있었기에 바로 잡힐 것이다. 하지만 공장 안이라면 도망칠 수 있었다.

현태운은 공장 내부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 나는 공장에서 몇 년을 일했기에 숨을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현태운은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치 도망쳐도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고 내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사무동 중문을 통해 공장동으로 이동해서 도망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중문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대로 공장동으로 들어갔다.

공장 주변은 모두 밭이었기에 어중간하게 도망치면 들킬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공장 지하에서 현태운과 협회 사람들이 지쳐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밤에 도망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현태운이 이렇게 찾아올 줄 몰랐다. 솔직히 나 같은 일반인은 금방 잊을 줄 알았다. 하지만 회귀 전 첫 만남 때부터 내게 S급일 것이라고 말하던 현태운과 지금의 그가 같다면 아마 나를 끝까지 찾아서 가이드 등급 테스트를 받게 할 것이다.

현태운은 S급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지하실 쪽 계단은 사람들이 잘 오지 않았기에 쉽게 지하실로 내려갈 수가 있었다.

지하실엔 전기실과 기계실, 그리고 재고들이 쌓여 있는 창고가 있었다. 나는 현태운이 사라질 때까지 창고에 숨어 있을 생각이었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한 채 창고로 숨어들었다. 모서리 쪽에 쌓인 큼직한 상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공간을 만들어 숨었다. 아마 이대로 있으면 들킬 위험은 없을 것이다.

나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부디 현태운이 포기하고 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30분쯤 지났을까 내 바람과는 달리 창고 불이 팍하고 켜졌다.

지하실까지 올 것은 미리 예상하고 있었기에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들킬 위험이 있으니 조마조마했다.

머지않아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 미약하지만 현태운의 파장도 느껴졌다. 아무래도 현태운도 함께 지하에 온 듯했다.

“이제 지하만 찾으면 됩니다.”

현태운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마 협회 사람들이 현태운의 명령으로 나를 찾고 있는 거 같았다.

“없습니다.”

“이곳에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에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나는 양손을 깍지를 끼고 제발 들키지 않기를 빌었다.

“CCTV에서는 지하로 이동한 게 분명한데 안 보이네요.”

“공장 봉쇄하세요. 배고프면 기어 나오겠죠.”

마지막 말은 현태운이었다. 그의 싸늘한 말에 역시 내 앞에서만 친절한 척 연기하고 있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니면 지하에 있는 물건들 다 빼 버릴까요? 물리계 에스퍼를 부르겠습니다.”

“아니에요. 곧 찾을 텐데요.”

이대로 공장이 봉쇄된다면 결국 들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릎 꿇고 앉아 있던 다리에 감각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배고픔과 초조함으로 지칠 것이 뻔했다.

지금 잡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절대로 잡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기에 참아 낼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혼자 탈출하기는 무리였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분명 공장 사람들도 모두 협회에 협조할 것이다.

문득, 차라리 경찰에 신고하면 어떨까 싶었다. 에스퍼·가이드 협회가 일반인을 납치하려는 것이니 말이다.

다시 불이 꺼지며 사람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걸 느꼈다. 나는 현태운의 파장과 사람의 기척이 더는 느껴지지 않을 때, 112에 전화를 걸었다.

- 긴급 신고 112입니다.

“여기 한강 철강 공장동 지하실인데요. 모르는 사람들이 저를 납치하려고 해요.”

- 신고자분 많이 위험한 상황인가요?

“네. 지금 숨어 있는데 언제 들킬지 모르겠어요.”

-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경찰의 출동하겠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나는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벽에 몸을 기댔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을까.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경찰입니다. 어디 계십니까.”

다행히 두 사람의 발소리뿐이었다. 현태운의 파장이 느껴지지는 않는 걸 재차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재고 창고 안에 경찰복을 입은 두 사람이 있었다.

“신고자분입니까?”

“네, 저예요.”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혹시 밖에 사람들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안심이 되었다. 바람대로 현태운과 협회 사람들은 돌아간 거 같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우선 서에 가셔서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으로 합시다.”

“네.”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킨 순간, 다리에 쥐가 나며 그대로 넘어졌다. 그런 나를 경찰들이 부축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분명 밖에 아무도 없다고 했는데, 에스퍼·가이드 협회의 대형차들이 공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내 말에 나를 부축하고 있던 경찰이 미안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성인 남자 두 명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내가 경찰들과 대치하는 동안, 협회 차에서 안경 쓴 남자가 내리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경찰은 남자에게 나를 보이며 물었다.

“이 사람 맞나요?”

“네. 협조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안경 쓴 남자를 봤다. 그러자 그가 의문을 풀어 주었다.

“협회는 경찰 쪽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아, 안 돼. 안 돼요. 도와주세요.”

안경 쓴 남자의 말에 나는 경찰들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만, 경찰들은 외면할 뿐이었다.

그 모습에 더욱더 크게 반항했지만,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안경 쓴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이 A급 에스퍼 제복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에스퍼의 능력에 당한 나는 반항도 못 한 채 그대로 차 뒷좌석에 태워졌다. 차 안에는 현태운의 파장이 가득했다.

“신의 씨,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한테 왜 그래요. 싫다고 했잖아요!”

“나쁜 짓 하려는 거 아니에요. 저희 각성 테스트만 해요.”

“왜 테스트에 집착하는 거예요? 제가 싫다고요.”

“S급일 테니까요.”

현태운은 내 말에 딱 잘라 말했다. 회귀 전과 같은 말에 경기가 일며 온몸이 떨렸다. 현태운은 역시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았다.

그가 S급을 바라는 것을 알기에 이대로 내가 C급 판정을 받고 실망하는 모습을 봐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협회로 돌아가더라도 절대로 현태운의 전속 가이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전속을 하라고 하면 혀를 깨물어 죽는시늉까지 할 생각이다. 이미 한번 죽은 몸,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신의 씨를 억지로 데려가고 싶지 않아요.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고요. 스스로 간다고 해 줄래요? 그럼 능력 풀어 줄게요.”

어차피 센터로 끌려갈 것이기에 나는 조건을 달았다.

“갈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뭔데요?”

“C급이 나오면 더는 저한테 신경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물론이죠. 약속할게요.”

내 말에도 현태운은 여전히 S급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지만, 어차피 C급이었다.

현태운이 출발하라는 말을 하자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현태운과 뒷자리에 앉아 협회로 향했다.

과거로 돌아와도 그와 매칭률이 높은 건 여전한지, 그의 파장이 내 파장에 들러붙었다. 그 감각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빨리 C급 판정을 받고 현태운과 멀어지고 싶었다.

지금의 현태운을 보고 확실히 알았다. 그에 대한 내 감정들이 사라졌단 걸.

정말 이상했다. 그토록 좋아하고 사랑을 갈망했는데, 지금은 배신감과 증오밖에 남아 있지 않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보는 현태운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눈길에도 더는 눈치 보지 않고 웃었다.

그리고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웃음을 거뒀다. 이제 현태운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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