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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27화 (27/65)

27화

3년간 센터에서 하던 훈련이 익숙해져서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하게 공장 주변을 조깅하고 근처 공원의 운동 기구로 체력 단련을 했다. 그 외에는 공장에서만 지내며 기계처럼 일만 했다.

나는 최대한 외출하지 않으려고 했다. 혹시라도 나갔다가 현태운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 비각성자가 된 내가 현태운을 만날 수 있을 때는 게이트가 열렸을 때뿐이었지만, 만일이라는 상황이 있었기에 조심해야 했다.

이대로 현태운을 잊고 살고 싶었지만, 뉴스든 공장에서든 현태운의 이야기가 자주 들려왔다.

그의 이야기가 듣기 싫어 일부러 사람이 적은 파트로 이동하고 새벽까지 공장에서 일했다.

이제 내 일상은 숙소, 공장, 숙소, 공장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다시 살아났으니 새로운 삶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며 감사히 살기로 했다.

하지만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공장에선 내가 제일 어려 친한 사람도 없었고,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가끔 연락하긴 했지만 모두 대학 생활 중이라 연락이 잘 안되었다. 그러다 보니 센터에서 지냈던 때가 자주 떠올랐다.

현태운이 아니라, 나와 함께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 떠오른 것이다.

가이드로 각성했을 때는 동료들과 지내면서 현태운과의 삶도 이겨 냈었지만, 과거로 돌아온 나와 그들의 인연은 더는 없었다. 그래서 쓸쓸하고 아쉬울 때가 많아, 현태운과 지낼 때보다도 우울함을 자주 느꼈다.

하루하루가 우울하고 동료들이 그리웠지만, 모든 걸 견뎌 내기로 했다.

새로 주어진 삶이니 공장에서 최대한 돈을 모으고 다른 나라로 건너가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갈 생각이다. 현태운이 언급되지 않는 나라에서.

어느덧 과거로 돌아오고 3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 역시 시간이 답이라는 듯, 현태운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조금씩 사라지고 과거로 돌아온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외출도 하게 되었고, 이전과 달리 약속을 잡아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더는 우울해하지 않고 내 일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확실히 친구를 만나니 우울함이 많이 사라졌다.

오늘은 쉬는 날이었기에 오랜만에 시내에서 옷을 샀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날씨엔 내일까지 맑다고 되어 있었는데…. 불쑥 게이트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붉은 하늘로 보아 A급 게이트일 확률이 높았다.

금세 시내가 어두워지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배리어가 장막을 치듯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며 게이트란 걸 확신했다.

나는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멀지 않은 곳에 게이트가 보였다.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워 낭패감이 들었다.

곧 현태운이 올 것이다. 그를 절대로 만나면 안 되었다.

이동식 가이딩 셸터가 게이트 아래에 정착하는 모습까지 보여 마음이 술렁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서 B급 에스퍼들이 사람들을 대피소로 인솔하고 있었다.

“대피소로 이동하세요!”

나는 황급히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틈에 끼어 에스퍼들의 안내에 따라 이동했다. 어느새 게이트 주변에 상위권 에스퍼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 검은 특수 전투복이 보였다. 현태운이었다.

현태운을 본 것만으로 호흡이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몸에 마비가 온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현태운의 모습을 뉴스나 사진으로 봤을 때 불쾌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호흡 곤란이 오거나 몸에 이상 반응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역시 사진과 실제로 보는 건 달랐다.

나는 그대로 상가 벽을 잡은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게이트가 열렸는지 마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대피소로 향하는 행렬에 다시 들어가 걸었다. 에스퍼들의 안내를 받으며 도로를 건너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리 쪽으로 조류형 마물 여러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표적이 우리라는 걸 알려 주듯 그들은 빠르게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B급 에스퍼들이 능력을 사용했지만, 마물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대로면 마물들의 공격에 떼죽임당할 것이다.

게이트가 열리면 마물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건 빈번한 일이었다. 이대로 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다리가 저절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뒤에서부터 강렬한 불꽃과 함께 거센 바람이 불어닥쳐 몸이 나뒹굴었다. 뒤를 보자 조류형 마물들이 불에 휩싸여 바닥에서 타고 있었다.

현재 국내에서 불 속성 능력자는 현태운이 유일했기에 그가 근처에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잘게 떨리며 사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눈치챘을 때는 몸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그만큼 몸이 현태운을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현태운에게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이대로 배리어에서 빠져나가면 그와 마주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배리어 안쪽은 온통 마물들이었기에 언제 마물을 만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홀로 남겨진 나는 마물들에게 쉬운 먹잇감이었다. 마물들이 앞다투어 내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마물의 능력에 결국 도로를 뒹굴었다. 그 순간 현태운의 파장이 빠르게 내게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

“괜찮아요?”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들어 보니, 현태운이 날 보고 있었다. 나는 몸을 덜덜 떨며 내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바닥을 향해 얼굴을 푹 수그렸다.

현태운은 바닥에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신기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기한 가이드네요.”

회귀 전 가이드로 각성했을 때와 똑같은 말이었다.

‘안 되는데. 현태운과 만나면 안 되는데.’

나는 안 된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반복하다, 회귀 전 현태운과 처음 접촉했을 때 같은 찌릿한 감각이 없단 걸 눈치챘다.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도와줄게요.”

현태운은 나를 그대로 안은 채 공중에 떴다. 기억대로라면 현태운은 이대로 나를 건물 1층에 데려다 놓고 기다리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 다시 도망쳐야 했다.

“무서워하지 마요.”

현태운이 안심하라는 듯 부드럽게 말하며 빠르게 이동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그는 나를 셸터로 데리고 갔다.

나는 그제야 현태운과의 첫 만남 장소가 다르단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누구예요?”

셸터 관리자가 현태운에게 안겨 있는 나를 보며 물었다.

“부상당한 가이드예요. 치료해 주세요.”

“가이드 아닌 거 같은데요? 처음 보는 사람이고 옷도 제복이 아니에요.”

셸터 관리자의 말에 현태운이 그제야 내 몸을 훑어봤다. 나는 그에게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다.

“가이드 아니에요?”

현태운이 내게 물었지만, 나는 얼굴을 더욱더 내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속이 메스꺼워 토하고 싶었다.

“가이드는 맞는 거 같아요. 지금 각성한 걸 수도 있으니까, 제가 올 때까지 이분 치료해 주세요.”

“네.”

셸터 관리자와 이야기하던 현태운이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리며 상냥하게 말했다.

“위험하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곧 올게요.”

나는 여전히 답하지 않았다. 이내 현태운이 밖으로 나갔다. 그가 돌아오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셸터 관리자가 재차 내게 가이드냐고 물었다. 나는 그제야 가이드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신원 조회해 볼게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대로 내 이름을 알려 준다면 다시 센터로 끌려가 현태운과 매칭 테스트를 할 것이고, 다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다시금 마지막 내 모습이 떠오르자, 결국 위가 요동쳤다. 참을 새도 없이 입 밖으로 점심때 먹었던 음식물들을 토해 냈다.

내 모습에 셸터 관리자가 놀라며 다른 관리자를 불렀다.

토사물이 묻은 재킷이 벗겨지고, 의료용 침대에 눕혀져 치유계 에스퍼에게 치료받았다. 다행히 울렁거림은 사라졌지만,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만은 여전히 강했다.

“여기서 쉬고 있어요.”

내가 지쳐 잠든 척을 하자, 치유계 에스퍼도 다른 사람을 치료해 주기 위해 떠났다.

셸터 관리자도 비각성자인 나보다 게이트 실시간 모니터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셸터 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자마자 뛰었다.

다행히 마물들이 많이 소멸한 상태라서 배리어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뛸 때마다 숨이 차오르고 멈추고 싶었지만, 현태운을 만나면 안 된다는 생각만 하며 택시가 보일 때까지 뛰었다.

그리고 무사히 택시를 타고 공장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핸드폰이 사라졌단 걸 깨달았다.

핸드폰은 셸터에 놓고 온 재킷 안에 있었다.

순간 낭패감과 함께 아둔한 나 자신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핸드폰에는 암호가 설정되어 있지만, 협회라면 핸드폰만으로도 내 정보를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더러운 재킷 같은 건 처분하기를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

현태운을 만나고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일주일간 한 발짝도 밖에 나가지 않고 공장에서 일만 했다.

공장 동료들이 그런 내게 실연당했냐며 농담을 건넸지만, 나는 답하지 않은 채 모두와 대화를 끊고 일만 했다. 오늘도 부디 아무 일 없이 퇴근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공장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일터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김 반장님이 맞은편 복도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내 모습을 보자마자 급하게 나를 불렀다.

“신의야, 기장님이 기장실로 오래.”

“기장님이요? 왜요?”

“모르겠어. 그냥 빨리 오라고 하던데?”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기장님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기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기장실에 가까워질수록 절대로 잊을 수 없는 현태운의 파장이 약하게 느껴졌다.

파장을 느끼는 내 모습에 역시 가이드로 각성했단 걸 알 수 있었다.

현태운과 처음 만났을 때 각성했을 때와 같은 감각이 없어 각성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결국 다시 가이드가 되고 말았다. 절망적이었다.

현태운은 파장을 숨긴 거 같은데, 이상하게도 내겐 느껴졌다. 아마 그와 내 매칭률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각성한 걸 눈치챈 현태운과 협회 사람들이 나를 찾으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태운은 첫 만남 때부터 나와 매칭률이 높을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협회에 갈 생각은 없었기에 기장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공장 정문 쪽으로 나왔다. 하지만 공장 정문 앞에 에스퍼·가이드 협회 마크가 찍힌 차들이 세워져 있었다. 역시 내 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후문을 통해 도망쳐야 할 거 같았다. 나는 빠르게 후문으로 뛰어갔다. 이대로 협회로 다시 돌아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현태운에게 일터를 들켰으니, 더는 공장은 다닐 수 없을 것이다. 기숙사에 아끼는 물건들이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모두 버리고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했다.

후문으로 나와, 혹시 이곳에도 협회 차가 있을 것을 우려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풍겼다. 냄새를 맡자마자 기침이 쏟아졌다. 입을 틀어막고 쿨럭거리는데, 더는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 이신의 씨?”

뒤를 돌아보니 현태운이 벽에 몸을 기댄 채 반갑다는 듯 나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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