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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51화 (51/65)

51화

진석에서 연락이 온 건 점심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은 오후였다. 묘한 불길함을 느끼며 전화를 받자 평소와 다른 진석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 가이드님.

“네, 담당자님. 무슨 일이세요?”

- 조금 전에 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협회에서 연락이 왔다는 말에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단 걸 느꼈다.

“협회에서 뭐라고 연락이 왔습니까?”

- 이번에 미국 쪽에 S급 게이트 열린 거 아시죠?

“네.”

상위 S급 게이트인 만큼 애를 먹고 있는 거 같았다. 여전히 닫혔다는 소식이 없었다.

- 미국 협회 쪽에서 지원 요청이 왔는데 그중에 가이드님도 계시더라고요. 지원 여부는 가이드님 의사라서 부담 가지지 마시고 결정해 주시면 될 거 같아요.

그 말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가지 않는 것이 내 신변에도 좋았지만, 지훤이 보여 줬던 미국 게이트 상황이 계속 떠올랐다.

“제가 가면 도움이 될까요?”

- 가이드가 많이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가이드님이 가시면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S급 게이트인 만큼 위험 요소도 많습니다.

생각해 보니 미국은 가이드보다 에스퍼의 숫자가 월등히 많았기에 가이드가 더욱더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진석의 말에 더욱더 고민되었다. S급 게이트에서 죽었던 만큼 다시 S급 게이트에서 죽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목숨이 달린 문제라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 위험한 상황이지만, 가이드님께서 가이딩 셸터에서만 지내신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되어요.

“조금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섣불리 결정할 수 없다. A급도 아니고 일주일 넘도록 닫히지 않는 상위급 S급 게이트였다.

- 네. 시간이 급한 만큼 빠르게 말씀 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지원자들은 오늘 밤 8시에 게이트 쪽으로 출발한다고 해요.

진석의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나는 소파에 앉아 한동안 핸드폰만 꽉 쥐고 있었다. 그러다 게이트 뉴스를 틀었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게이트를 실시간 생중계해서 보여 주는 채널이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뉴스는 미국 S급 게이트 상황만 송출하고 있었다.

게이트 뉴스 속 미국의 도심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어 있었다. 에스퍼들도 모두 지쳐 보이고 피투성이였다.

이 상태로라면 게이트에 의해 미국은 파멸할 것이다. 게이트가 닫히지 않으면 다른 나라들과 우리나라에까지 피해가 확대될 상황이었다. 나는 결국 진석에게 연락했다.

- 네, 가이드님.

“가겠습니다.”

- 정말 가실 겁니까?

“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요.”

- 알겠습니다. 그럼 협회에 전하겠습니다.

“네.”

미국 게이트에 가겠다는 의사를 전하자, S급 게이트 상황이 더욱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운이 좋지 않으면 게이트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 상황이 너무나도 좋지 않았고, 내 능력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돕고 싶었다.

도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상황에서 손 놓고 지켜보는 것이 더 괴로웠다. 나 또한 S급 게이트에서 죽었고, 누구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움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기에.

***

진석에게 다시 연락이 온 건 1시간 뒤였다. 이번에 한국에서 동원된 가이드와 에스퍼의 숫자는 20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게이트 현장에서 필요한 모든 물품은 미국 협회 쪽에서 준비해 주기 때문에 개인적인 물건이 아닌 이상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어머니의 사진이 있는 지갑만 챙겼다.

“다른 주의 사항은 없습니까.”

- 그게…. 현태운 에스퍼님과 성요한 에스퍼님도 가십니다.

성요한은 페어가 끊어지고 나서 본 적이 없었지만, 그는 해외 파견을 많이 나갔기에 지원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현태운은 내가 가면 따라올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 단말기에 게이트 상황 보고서 보내 드렸어요. 확인해 보세요.

“네.”

- 그럼 저녁 7시에 마중 가겠습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단말기를 확인했다. 진석의 말대로 보고서가 도착해 있었다. 살펴보자, 이번 보스 마물이 재생 능력이 있어서 애를 먹고 있는 거 같았다. 재생 능력이 있다면 재생하기 전에 빠르게 치명타를 입혀 소멸시켜야 할 것이다.

일주일간 보스 마물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었을 테니 이번에 타 나라의 지원을 받으면 보스 마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보고서를 보다 원재를 떠올렸다. 갑작스러운 일정이었기에 원재에게 연락할 생각을 못 했다. 지금 시간을 확인해 보니 한창 훈련하고 있을 때였다.

다행히 원재와 저녁은 함께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훈련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곧장 오라는 메시지를 보내 놓았다.

***

귀가한 원재에게 미국 게이트에 가게 된 연유를 설명했지만, 그는 내가 미국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에스퍼와 달리 가이드는 셸터에서만 지낼 것이라는 말에도 계속해서 고개를 젓다, 결국 마지못해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말했다. 몸이 위험하다 싶으면 곧장 다시 돌아오라는 말에 나 또한 그럴 생각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원재의 배웅을 받으며 진석의 차에 올랐다.

진석은 내가 차에 오르자마자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말해 주었다.

“비행 셸터를 타고선 게이트 근방 지역까지 갈 겁니다. 8시간 정도 소요되고요. 힘드시겠지만, 가자마자 지원을 나가셔야 할 거예요.”

“괜찮습니다.”

“쉬운 결정 아니셨을 텐데. 가이드님이 존경스러워요.”

“아닙니다. 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죠.”

협회 비행장에 도착하자, 이미 도착한 에스퍼들과 가이드들이 있었다. 모두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진석에게 인사를 하고 비행 셸터에 올랐다. 비행 셸터는 비행기와 비슷할 줄 알았는데, 타 보니 완전히 달랐다. 물리계 에스퍼의 공간 능력이 적용되어 있다고 하더니, 겉으로는 작아 보였는데 내부가 상당히 넓었다.

일반 가이딩 셸터의 2배 이상은 되어 보이는 공간에는 가이딩실을 비롯해 편의 시설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고, 각자 머물 방도 있었다.

“이신의 가이드님 방은 07실입니다.”

“네.”

로비를 지나 방들이 있는 복도로 이동한 나는 배정받은 방 번호를 듣자마자 바로 07실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1인용 침대와 테이블, 그리고 옷장이 있었다. 테이블에는 특수 전투복과 생활복, 이어셋 등 게이트 상황에 필요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침대에 앉아서 비행 셸터가 이동하기를 기다리는데 때마침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안내 멘트가 나왔다.

<미국 1224구역까지 가는 15호 비행 셸터, 곧 이륙합니다.>

나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천장에 부착된 모니터를 켰다. 모니터에는 현재 비행 상태와 위치에 관한 정보가 상단에 쓰여 있었고 메인으로는 미국 게이트 상황이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여전히 상황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미국 각성자들은 밤낮없이 마물들과 전투하고 있었다. 에스퍼들은 가이딩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걸 알려 주듯 얼굴이 핏줄들로 뒤덮여 울긋불긋하고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지원을 받으니, 게이트는 곧 무사히 닫힐 것이다.

한동안 게이트 영상을 보고 있을 때였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고 말하자, 문이 열리며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성요한이나 현태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민성이었다. 너무나도 반가워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안녕하세요, 이신의 가이드님. 01S팀 소속 A급 가이드 최민성이라고 합니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겼다.

“네, 알고 있습니다. 민성 선, 아니, 민성 가이드님은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

습관대로 선배라고 부를 뻔하다가 서둘러 가이드님으로 바꿔 말했다.

“같은 가이드로서 이번 게이트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러 왔는데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죠.”

나는 서둘러 민성이 앉을 수 있도록 테이블 의자를 빼 주었다. 고맙다고 말하며 의자에 앉은 민성이 말을 이었다.

“신의 가이드님과는 다른 팀이라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이번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쁘네요.”

“저도요.”

“1224구역에 도착하면 곧장 저희는 가이딩 셸터로 이동할 거예요.”

“네. 들었습니다.”

“셸터에서 저는 주로 A급을 담당하고 신의 가이드님은 S급을 담당할 것 같아요.”

지금의 말 또한 진석에게 미리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티내지 않으며 민성의 말을 경청했다.

“게이트가 긴 시간 열려 있어서 에스퍼들이 많이 예민해져 있을 거예요. 돌발 상황을 대비해서 신의 가이드님 것까지 준비했어요.”

민성이 내게 준 건 에스퍼 전용 마비 칩이었다. 부착형이라서 살에 붙이면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가이드 되신 지 반년밖에 안 되셨고 성요한 에스퍼님만 담당하셔서 돌발 상황은 모르실 거 같아서요.”

과거나 현재나 민성의 배려는 한결같았다. S급이 되고 사람들의 가식적인 모습들에 신물이 나 있었는데, 민성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이번에 저희 모두 다치지 말고 무사히 돌아가요.”

“네. 무사히 돌아갑시다.”

이내 민성은 도착할 때까지 쉬라고 말하며 방에서 나갔다.

한동안 그가 준 마비 칩을 봤다. 과거로 돌아오고 혼자라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지금 민성의 모습에 차가웠던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

8시간 비행이었기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벌써 1시간 뒤면 도착이었다. 나는 특수 전투복으로 미리 갈아입고 이어셋을 착용했다.

이어셋엔 자동 번역 기능이 있었고, 서버가 같은 다른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었다. 준비를 마칠 때쯤, 곧 도착하니 집합해 달라는 방송이 들려왔다. 로비로 나가니 이미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 있었다. 티 내지 않아도 다들 긴장한 듯했다.

비행장에 비행 셸터가 착륙하자마자 에스퍼들은 곧장 게이트 현장에 투입되었다. 나와 민성을 포함한 가이드들은 미리 지시받은 대로 미국 협회의 이동 수단을 이용해 가이딩 셸터로 향했다.

가이딩 셸터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멀리서부터 마물과 불길로 뒤덮인 붉은 도시가 보였다. 마치 지옥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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