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정백강 님, 당신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뭐야? 무슨 소리야?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팠다.
가까스로 눈을 떠 보니 난생처음 보는 낯선 공간이었다.
“누구세요? 여긴 또 어디예요?”
힘을 짜내 소리치자 나를 깨운 그 목소리가 화답했다.
[이곳은 ‘환생의 방’입니다. 현생의 당신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사망? 교통사고?
무슨 개소리야… 가 아니라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한두혁 코치한테 은퇴 권유 들은 다음에 혼자서 소주 5병 깠었지.
진탕 마시고 들어가는 길에 어떤 애송이랑 부딪쳤는데 그놈이 소매치기였고.
비틀대며 쫓아가다가 갑자기 달려온 트럭에….
으악! 나 정말 죽은 거야? 그렇게 허무하게?
[당신은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여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얘긴가.
돌아가다니.
혹시 소설에서나 보던?
“회귀… 말인가요?”
[흔히 그렇게 부르곤 하더군요.]
대박 사건!
그렇다면 죽은 보람이 있다.
돌아갈 곳이라, 역시 그때 아니겠는가?
“2007년, 잉글랜드로 가겠습니다!”
크, 기분 찢어진다.
2007년이 어떤 해던가.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한꺼번에 데뷔한 축복받은 해이자, 도하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인 정백강이가 잉글랜드 무대를 밟은 해였다.
[이동하기 전에 5가지 능력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획득하시겠습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
역시 죽고 볼 일이야.
“네!”
우렁차게 대답하자 눈앞에 기계가 하나 소환되었다.
이건….
“뽑기네요?”
초등학생 시절 문방구 앞에 있던 추억의 물건.
[당신에게는 5개의 코인이 주어집니다. 넣고 돌리시면 됩니다.]
죽은 목숨 살려 주고, 원하는 때로 보내 주고, 능력도 주다니.
트럭에 치이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남자였는데, 삽시간에 지상 최대의 행운아가 됐다.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는 법.
두근대는 마음으로 첫 번째 코인을 넣었다.
덜커덕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플라스틱 공.
어렸을 때는 과격하게 발로 밟아서 열었지만, 어쩐지 그렇게 막 다루면 부정 탈 것 같다.
조심스럽게 돌려서 열어 보니….
<언어 천재가 된 정선수: 계약 중인 팀의 소재 국가 언어를 마스터합니다. 습득한 언어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첫 능력부터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다.
잉글랜드 처음 갔을 때 영어가 짧아서 얼마나 고생했던가.
게다가 이적 후에도 안 잊어버린다니.
선수 은퇴해도 학원 강사나 통역사로 일하면 개꿀.
첫 번째 능력을 보고 나니 기대감이 한층 커졌다.
두 번째는?
<탄력이란 무엇인가: 서전트 점프(스탠딩 버티컬) 130cm, 러닝 점프(맥스 버티컬) 140cm를 뛸 수 있게 됩니다.>
크으, 미쳤다.
내 포지션은 센터백.
센터백에게 높이만큼 중요한 능력이 또 없지.
전성기 때 내 서전트가 75cm 정도 나왔으니까 50cm 넘게 높아지는 셈이다.
그때도 크게 낮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130cm이면….
어우, 떨어지는 데도 한참 걸리겠다.
타깃맨들 다 뒈졌다, 목 닦고 대기해라.
세 번째 능력은 뭘까?
<섬세한 이마: 헤더의 정확도가 500% 상승합니다.>
좋다 좋아.
헤더는 높이가 다가 아니지.
아무리 1m 넘게 뛰어도 맞춘 공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면 허무한 실점을 할 수도 있다.
네 번째!
<머리여 발이여: 발과 동일한 파워로 헤더를 할 수 있습니다.>
음….
좋은데… 좋긴 한데….
너무 헤더 관련된 것만 나오는 거 아닌가?
태클이라든가, 위치 선정이라든가, 패스라든가, 리더십이라든가.
좀 골고루 나왔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이제 남은 코인은 하나.
강렬한 염원을 담아서 투입!
어라?
“아무것도 안 쓰여 있는데요?”
소설에서 봤다.
이건 히든 능력치겠지.
어마어마한 무언가를 쟁취해 내고야 만 것이다.
[꽝입니다.]
“네?”
[2007년, 잉글랜드로 이동합니다.]
“잠시만요!”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