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비 (1) (6/15)

2. 비 (1)

휴학계를 수리하고 오는 길에 근처 카페에 들렀다. 한참이나 주스를 고르다 그냥 익숙한 토마토 주스를 한 잔 시켜놓고 역시나 익숙한 자리에 앉았다. 주스를 빨아 마시며 어디로 여행을 갈까 고민했는데, 헛된 고민이긴 했다. 어느 곳을 고르던 잘 살아갈 자신은 똑같이 없었다. 나는 돈도 없고, 패기도 없고, 요령도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누군가의 품이 필요했다. 이세정을 만나고, 내가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될지 좀 의아한 구석이 있었다. 이세정을 쳐내고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내가 과연 행복할 수가 있을까?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서 앞으로의 일을 염려하는 와중에 불현듯 지문이 찍혀있는 창 너머로 익숙한 검은 세단이 보였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단지 검은 차가 어디서 많이 보던 종류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차 옆에 주차된 특이한 오토바이의 운전자가 가라앉아 있던 공포심을 자극할 만큼 낯이 익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온 이세정이 내 옆에 앉았다. 특유의 차가운 향이 주변을 돌았다. 이 땡볕과는 어울리지 않는, 겨울비 같은 향수 냄새였다.

“휴학 왜 했어요?”

이세정이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아르바이트 할 시간도 부족하고…….’라고 순순히 대답하면서, 이세정이 내 뒤를 캤음이 명백한 상황임에도 어째서 불쾌함을 갖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당혹스러운 고민에 빠졌다.

“돈 필요해요?”

“돈은 항상 필요합니다.”

그래서 형이 준 노트북을 팔까 생각 중에 있다고, 마음속으로 덧붙였다.

내 등을 감싼 이세정이 유리창 너머를 가리키며, 큰 풀장을 지어 그곳을 현금으로 가득 채워주겠노라고 말했다. 그 장난스러운 공약이 싫은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이세정이 신데렐라 드라마를 많이 보았나 보다, 라며 애써 무시하는 척을 했다. 눈을 피하고 있는 내 뺨 위로 이세정의 손등이 얹어졌다.

“밥은 먹는 거예요? 어떻게 볼 때마다 말라요.”

“잘 먹어요.”

“이제 아프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나는 조용히 답하며 이세정의 손을 잡아 내렸다. 잠깐 맞닿은 손가락이 휴대폰 진동처럼 부르르 떨렸다. 혹시 이세정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겁을 알아차릴까 봐 손을 얼른 떼어냈다. 그 순간 카페의 음악이 꺼지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시끄럽다며 중얼거린 이세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세정은 카페의 사장이라도 만나 뵐 생각인지 어디론가 걸어갔다. 이세정이 사라지고 조금 뒤, 나보다 몇 살 정도 많아 보이는 남자 몇몇이 눈치를 살피며 다가왔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남자가 선두로 나서서는 내 팔을 덥석 쥐었다.

“저기요. 방금 여기 있던 사람, 이세정 맞아요?”

남자는 유리창 밖에 세워진 바이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돌아오면 저 바이크요. 저 바이크 한 번만 구경시켜달라고 말 좀 전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걸 왜 저한테 말하십니까.”

“꽤 친해 보이길래요.”

남자의 뒤에서 그의 친구들이 바이크가 얼마고, 튜닝한 데가 어디고, 열심히 수다를 떨어댔다. 눈은 나를 보고 있으면서 제 친구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노란 머리의 남자가 흥분에 휩싸여선 손아귀에 힘을 실었다. 나는 어깨를 딱딱하게 굳힌 채 이 고통을 휘발할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안 친해요.”

“에이, 그러지 말고요.”

“진짜 안 친…….”

손목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근육이 없어 얕보았는데, 무슨 힘이 이렇게 센지 어깨가 주춤거리며 올라갔다. 그때, 그보다 더 센 힘이 남자를 막아 세웠다. 남자의 멱살 부근에 주름이 갈라졌다. 나는 남자의 목이 돌아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테이블 아래로 기어들어 갔다.

그 음습한 그림자 안에서, 나는 진심으로 도망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테이블을 울리는 천둥 같은 비명 때문이 아니다. 내 안도감의 근원이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는 자기 혐오가 불쑥 머리를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피가 터지고 있는 남자의 아픔보다 욱신거리는 내 손목의 아픔이 더 와닿았다. 나는 지금 누군가 죽어 나간다는 두려움보다, 언젠가 나도 저들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크게 작용했다. 어쩌면 내가 조심해야 할 것은 이세정이 아니라 내 이기심일지도 몰랐다.

비명이 그쳤다. 이세정이 내가 있는 테이블 아래로 허리를 숙이곤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내가 안심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자 이세정의 손을 쳐내고 기어코 혼자서 일어났다. 카페 밖으로 뛰어나갔다.

희뿌연 연기가 차내를 메웠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다 재떨이에 담배를 눌렀다. 아까부터 돌아가고 있던 공기청정기를 임의로 끈 뒤에 창문을 열었다. 그때까지도 차내에 있는 사람들 중 내 행동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아예 창틀에 팔을 기댄 채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제야 손 하나가 들어와 내 가슴을 안았다.

“이러면 머리 다친다고 누가 이야기 안 해줘요?”

이세정의 손에 이끌려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세정은 내가 잠시 풀어둔 안전벨트를 다시 착용시켜주고선 흐트러진 옷을 정돈해주었다. 나는 내 셔츠 주름을 펴주는 손길을 내려다보았다. 평생 제 옷 한 번 정리해본 적 없을 손이 차분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은 자잘한 상처 자국이 있지만, 본디 피아니스트의 것처럼 예뻤을 손이었다. 손만 보면 아까 전 카페에서의 일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우채민 씨, 에어컨 끌까요?”

“예? 왜, 왜요?”

이세정은 시선으로 힐끗 내 손을 가리켰다. 언제부터인지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쥐어 떨림을 삭였다.

“저 어떻게 찾았어요?”

이세정이 내 행보를 기가 막히게 꿰뚫고 있다는 것은 안다. 이러다 내가 잠수를 탔을 때 언제나 그랬듯 쉽게 찾아낼까 봐 무서웠다.

“우채민 씨 동선이 거기서 거기잖아요.”

“저 가는 곳 많은데…….”

“어디 가는데요?”

“저…….”

운을 띄워놓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가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이세정이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으며 물었다.

“인형 뽑기 매장?”

“아니요. 그때 배도빈 형이랑 처음 가보고는 별로…… 아.”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버렸다. 나는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말을 넘길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다행히 이세정은 그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고급 시트에 비스듬히 머리를 눕히며 평온한 목소리를 냈다.

“그때 재밌었어요? 그러고 보니 한땐 도빈이도 하루에 한 번씩 인형 뽑으러 갔었어요. 뽑은 인형 모아서 다 나 줬던 걸 보면 인형을 모으는 데에 의미를 둔 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재미예요?”

“저도 재미를 느끼진 못했는데…….”

나는 문득 말을 멈추고, 고개를 완전히 돌려 이세정을 쳐다보았다.

“도빈 형한테 받은 인형 다 어딨어요?”

“글쎄요.”

물어볼 걸 물어보라는 듯 이세정은 어이없어했다. 나는 이세정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도빈이 형이 왜 줬을까요? 주변에 줄 사람 많잖아요.”

“도빈이를 왜 궁금해하지…….”

배도빈이 궁금한 건 아닌데.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창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마도 이세정은 배도빈이 인형을 몇 개 던져줬다고 해서 딱히 큰 의미를 두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금방 버렸다고 하니 지금껏 간직하고 있는 인형은 내 것뿐일 것이다. 나는 안전벨트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곤 시트에 머리를 눕혔다.

도착한 곳은 고깃집이었다. 나는 얌전히 안내인의 뒤를 따라 룸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중간에 전화를 받으려고 옆길로 샌 이세정을 기다렸다.

처음엔 정자세로 기다렸다가 무릎 위에 올리고 있던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괜히 물 한 잔을 마시기도 하고,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려놓기도 했다. 그러다 집게를 들어서 먹지도 않을 고기를 불판 위에 올렸다. 고깃집치고 시원한 방안에 약간의 열기가 피어올랐다.

“뭐 해요?”

이세정은 내가 안 잘라도 되는 고기를 굳이 삼등분으로 나누어놓고 있을 때 들어왔다. 이세정이 내 옆자리에 앉아 집게를 강탈해갔다.

“조각을 내놨네.”

이세정은 집게를 왼손으로 바꾸어 들어, 잘린 고기들을 내 접시로 옮겼다.

“많이 먹고 놀란 거 가라앉혀요.”

“네.”

나는 대답을 해놓고도 미적거렸다. 젓가락을 처음 쥔 외국인처럼 손안에서 몇 번이고 젓가락을 고쳐 쥐었다. 소금에 찍어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빤히 보던 이세정이 왜 제 눈치를 보는 거냐며 웃었다.

“맛있어요?”

“……네.”

맛있다곤 했지만, 입맛이 돌진 못했다. 이세정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일지도 모르고, 단순히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세정은 불판에 새로운 고기를 올렸다. 오른쪽에 앉은 내게 부딪히지 않으려는 것인지 왼손으로 집게를 사용했는데, 그럼에도 썩 훌륭한 솜씨로 고기를 구워냈다.

이세정은 고기를 굽는 족족 내 접시 위에 올려두었다. 처음 한두 점은 곧잘 먹었으나 먹는 속도가 원체 느리다 보니 고기는 어느덧 산처럼 쌓여갔다. 어떻게 하면 이 고기를 이세정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안 먹을 수 있을까. 이세정의 빈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굽는 데에 신경이 팔려 미처 제 몫을 챙기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소금을 약간 찍어 그대로 이세정의 입 쪽으로 가져갔다. 제 입 앞에 도달한 고기를 바라본 이세정이 별말 없이 받아먹었다.

한동안 계속 이세정을 챙겼다. 이세정은 고기를 먹어서 좋고, 나는 안 먹어서 좋으니 역할 분담이 꽤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막 구워진 고기를 이세정에게 먹여주고 있는데, 별안간 그가 얼굴을 찡그렸다.

“우채민 씨 먹어요.”

“저 먹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씹는 시늉을 했다. 당연히 이세정은 믿지 않았다.

“배 안 고파요?”

“아니요. 진짜 먹고 있어요…….”

얼른 젓가락질을 해서 고기 세 점을 한꺼번에 입에 넣었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그러다 체하겠다며, 이세정이 내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손이 목을 더듬자, 불쑥 아까의 기억이 머릿속을 비집었다.

“그 사람들은 괜찮, 괜찮을까요.”

꼬인 혀 가장자리를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이세정은 내 빈 잔에 물을 채워주며 대꾸했다.

“누구요.”

“아까 카페에서…… 그분들이요. CCTV도 있고, 주변에 사람들도 많았고. 운 좋게 입막음시킨다고 해도 맞은 사람들이 나중에 깨어나서 막 인터넷에 올리거나 신고하거나…… 그럴 텐데.”

남자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세정의 안위를 걱정하는 거라는 듯 돌려 말했다. 내 은근한 책망에도 불구하고 이세정은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태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려하는 일은 안 일어나요. 먹어요, 어서. 살쪄야죠.”

나는 이세정이 떠먹여 주는 고기와 버섯을 차례로 삼키곤 물었다.

“살 안 찌고도 건강할 수도 있는데…… 왜 살찌라는 거예요?”

“잡아먹게.”

이세정이 장난스럽게 허공에서 무언가를 무는 시늉을 했다. 나는 정말로 잡아 먹힐 것처럼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래놓고선 뻔한 장난에 반응을 한 것이 어이없어 괜스레 웃었다. 이세정이 마주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훑었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세정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내가 걱정 하나 없이 웃고 있었다. 나는 얼굴이 당길 정도로 웃고 있던 입꼬리를 거두어냈다.

***

장대비가 쏟아지는 여름밤, 누나의 인터넷 쇼핑이 한창이었다. 나는 유리 티포트를 기울여 차를 따라서 누나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누나의 주변을 맴돌며 혹 얻을 콩고물이 있을까 기회를 엿보았다. 곁에서 서성거린 보람이 있는지 누나가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뭐 갖고 싶은데.”

“나 모자.”

“너 모자 많잖아.”

“누난 립스틱만 수백 개 있잖아.”

누나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마우스를 쥐었다.

“밖에 나가지도 않으면서 모자는.”

“나 외출 잦아졌는데.”

“잦긴 뭐가 잦어.”

누나가 검은색과 하얀색으로 각각 하나씩 골라 결제를 눌렀다. 딱 이것만 사줄 거라는 것처럼 곧장 카드 번호를 입력하며, 누나가 물었다.

“더 살 거 있냐?”

“어…… 아니. 근데 나도 조만간 어디 갈지도 몰라.”

“그래. 제발 어디 좀 가라.”

“지수 다리 다 나을 때까지 같이 놀 거야. 몇 달 동안.”

“어이구, 차라리 같이 살지 그래? 근데 휴학계 낸 것까진 이해하겠는데……. 아, 됐어. 나 간섭 안 해.”

누나의 침대에서 내려와 방으로 향하면서, 내 통장에 있는 돈을 확인해보았다. 마침 어제 알바비가 지급된 상태라서 꽤 풍족할 줄 알았더니, 오십 만원밖에 없었다. 국내 여행을 하기에는 충분한 금액이지만, 어딘가에 정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어째서 통장 잔고 숫자가 이토록 빈약한 것인지 지출 내역을 하나하나 꼽아보았다. 일단 교통비, 식비, 레슨비, 음악 스트리밍권, 유학 적금, 그리고 가끔 술 담뱃값.

실은 이 외에도 자잘하게 무언가를 많이 샀던 것 같다. 악기 전문점을 구경하다가 신기해 보이는 악기가 있으면 호기심에 하나 사고,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한정판이라는 소리에 낚여 악보집을 하나 사고, 간혹 누나가 좋아하는 작곡가의 몇 주기 앨범이 나오면 직수입해서 사고.

나는 돈을 아끼는 편이 아니었다. 아니, 모아두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출을 했고, 원하는 것을 다 사고 나면 언제나 잔고가 비었다. 다행히 내가 알바하는 곳마다 페이를 많이 줘서, 물건을 사다가 용돈이 부족했던 적은 없었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쇼핑몰 창을 열어 누나에게 요구할 수 없었던 검은 더플백과 화려한 긴 팔 남방을 하나씩 구입했다. 결제를 마치니 통장 잔액이 훨씬 빈 느낌이었다.

정말로 이세정이 준 노트북을 가져다 팔아야 할까. 실행에 옮길 생각이 없었던 만큼 고민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물론 다른 선물들은 돌려줄 생각이었다. 작곡실은 명의 이전이 되어있어 당장 못 돌려준다고 하더라도 차 키 같은 경우는 간단히 돌려줄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세정이 내게 준 것들 중에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물건이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지갑을 끌어온 나는 안에서 병원에서 탈출할 적 이세정이 내 입속에 쑤셔 넣었었던 카드를 꺼냈다. 집게와 중지 사이에 카드를 끼워 넣고, 앞뒤로 뒤집으며 훑어보았다. 블랙카드를 입에 넣어보긴 또 처음이었다. 이건 기회를 봐서 돌려줘야겠다. 나는 카드를 다시 지갑에 고이 넣어놓았다.

[자요?]

휴대폰 화면에 뜬 메시지를 확인하며 침대에 가 누웠다. 얇은 이불을 가슴께까지 올린 뒤에 이세정에게 답장을 보냈다.

[지금 자려고요]

[전화할래요?]

이어 온 문자에, 선뜻 그러자고 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저 졸려요…]라고 보내놓고선 휴대폰을 뒤집어놓았다. 미처 끄지 못한 형광등 불빛을 피해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썼다. 창문을 두드리던 빗소리가 내 심장까지 침투한 듯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어제 누군가의 눈동자 속에서 내 웃는 낯을 엿보았다. 나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구는 그 미소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소를 거두었더니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남아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역겨워졌다.

이쯤 되면 집착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나를 충만하게 돌봐주었던, 과거의 기억에 여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해서 되새기며 집착하는 거다. 마음 그 자체에 하는 집착만큼 비참한 것은 없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달랬다. 이세정 말고도 나를 좋아 해주는 사람은 있을 거다,하고.

아침까지 연락을 씹었더니, 이세정은 내가 일어날 즈음부터 연속적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잠결에 받았다가 얼결에 약속을 잡아버렸다. 눈을 비비며 꺼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문자가 연달아 다섯 통이 오기 시작했다. 이세정은 이렇게 경박하게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 의아하게 발신인을 확인했다. 분명 연락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던 지수였다.

[야.]

[당분간 보지 말자고 한 거 잊은 건 아닌데.]

[나 부탁 하나만 하자.]

[일어나긴 일어남?]

[?]

[뭘?] 이라고 답장을 보내곤 식탁으로 걸어가 누나가 구워놓고 간 치즈 빵을 찢어먹었다.

[오, 일어남? 잘됐다.]

[엄마가 우리 집 치워준다고 자꾸 키 내놓으라고 한다.]

[우리 집에 혹시 이상한 물건 있나 봐줘.]

치즈 빵을 입안에 구겨 넣으며 힘겹게 씹어 삼켰다.

[무슨 물건ㅋㅋ]

[몰라 나도 뭐 있는지ㅋㅋ 엄마가 보면 욕할만한 거 치워줘]

[저녁까지.]

알았다고 답신을 하고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텍스트로나마 대화를 하니까, 하나뿐인 친구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 나를 원망하는 기색 없이 평소처럼 말을 거는 모습이 어딘가 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방에서 언젠가 지수가 자기 집 여분의 열쇠라며 주었던 키를 찾아냈다. 부지런히 나갈 준비를 하며 오늘 스케줄을 꼽아보았다. 이세정과의 약속은 오후에 잡혀있으니까 지수의 부탁을 들어주고 나서 천천히 만나야겠다.

학교 근처에 위치한 지수의 자취방으로 향하면서 주스를 하나 샀다. 빨대를 입에 물고 쭉 빨았다. 신맛이 강하게 올라오며 오만상이 찌푸려졌다. 땡볕에 잠깐이라도 더위를 시키고자 산 거였는데, 음료를 잘못 고른 것 같다. 못 먹겠다고 버릴 수는 없으니 뚜껑을 열고 단숨에 모두 삼켜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뚜껑을 닫고 얼음의 색이 다 벗겨질 정도로 빨대를 빨았다. 인상을 쓴 채로 근처 쓰레기통 앞으로 걸어갔다. 막 쓰레기통 안으로 플라스틱 컵을 던져 넣었을 때, 누군가 내 등을 툭툭 쳤다.

“저기요.”

돌아보니 웬 젊은 여자가 내 뒤에 있는 쓰레기통을 기웃거리며 서 있었다. 쓰레기통에 무언가 버릴 것이 있나 하고 얼른 옆으로 비켜섰다. 여자는 쓰레기통이 아닌 나를 보며 머뭇거렸다. 뺨이 달아올라 있다. 의아하게 여자의 얼굴을 살펴보다가 시선을 내려 여자가 들고 있는 전단지를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종교 관련 전단지를 들고 있는 여자를 지나쳐 걸었다. 혹시 여자가 붙잡을까 봐 걸음을 빨리해 잽싸게 자리를 벗어났다. 전에 뭣 모르고 잡힌 적 있었는데, 성경 공부까지 시켜주려고 해서 빠져나오기 곤란했었다.

지수의 집은 낮은 언덕 위에 있었다. 워낙 볕이 세다 보니까 그리 힘든 운동을 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땀이 맺혔다. 고행길에 오른 듯 세찬 숨을 내뱉다가 드디어 정상에 도달해 문을 열었다.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구릿한 냄새가 끼쳐왔다. 여름날 열기까지 더해져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각하네, 진짜.”

나는 우선 환기부터 시킨 뒤, 발에 채는 옷가지들을 집어 내 팔에 걸쳐두었다. 이따가 지수의 어머니가 오신다고 했지만, 지금 이 상태 그대로 내보였다가는 아픈 지수의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매트리스 위에서 굴러다니는 속옷들까지도 모두 회수해서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날파리가 꼬인 채 썩어가고 있는 과일을 다 버리고, 고가의 SF 시리즈 영화 피규어와 콘돔을 내가 가지고 온 가방 안에 넣어놓았다. 혹시나 해서 성인용품이 있는지 구석구석 찾아보았는데, 딱히 눈에 띌만한 것은 없었다. 사실 성인용품 같은 것이 있었다면 지수는 나에게 부탁하는 대신 목발을 짚고서라도 자신이 직접 집에 들어왔을 테다.

천식 환자처럼 숨이 가빠 도중에 일을 멈췄다. 두 볼에 바람을 넣고 후 숨을 내쉬다가 화장실 문을 열었다. 깨진 타일들을 조심스럽게 밟고서 녹슨 세면대 앞으로 걸어갔다. 먼지가 낀 거울 속 내 얼굴이 유난히 지쳐 보였다. 조심스럽게 수도꼭지를 비틀고 허리를 숙였다. 그런데 콸콸 흘러나오는 물이 심상치 않았다.

흙탕물이었다. 수도 공사를 했다고 하던데, 공사가 잘못되기라도 한 듯하다. 마음이 착잡해져, 지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 병원에서 평생 살아라.]

지수는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준 이세정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나 하는 정신 나간 생각을 하며 답장을 기다렸다.

[저주를 해라, 개새꺄.]

[근데 다 챙겼냐?]

[응. 피규어랑 하나도 안 쓴 콘돔ㅋㅋ]

[니가 과연 농담을 할 처지일까?ㅎㅎ]

지수의 답장을 마지막으로, 나는 주고 받았던 모든 문자를 지웠다.

그나저나 세수를 해 더위를 식힐 수가 없으니 이제 어쩌면 좋을까. 이 집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었다. 아니, 선풍기는 하나 있었는데 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한여름에 이 자취방에 들른 적이 없어 지수가 이렇게까지 열악한 환경에서 여름을 보내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계속 더위를 직격으로 맞고 있자니 왠지 화가 치밀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찬기보다 먼저 역한 냄새가 끼쳐왔다. 안 되겠다. 나는 벌떡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키와 가방을 챙겨 들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학교 근처에 있는 브런치 카페 안으로 들어가, 샌드위치와 주스를 시켰다. 주문한 브런치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두 테이블 사이를 지나가는 중에 누군가 덥석 내 팔을 잡아 왔다. 들고 있던 쟁반이 기울어졌다.

“선배님, 죄송해요. 너무 반가워서.”

“아, 안녕.”

한 팔로 쟁반을 받치고, 나머지 한 팔을 들어 접시를 재정비했다. 그러면서 시원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함경윤을 힐끔거렸는데, 그녀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신의 반대쪽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실래요? 아니, 아니. 강요하는 건 아니고요. 약속 있으시면 그냥 가도 돼요.”

“왜 혼자 있어요?”

“친구 만나기로 했는데 파투났어요.”

“아.”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 눈치를 살폈다. 카페 안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가지고 온 노트북에 코를 박고 있었다. 이쪽에 관심을 두는 이가 아예 없었음에도 나는 연신 사람들을 경계하다, CCTV 쪽으로 눈을 돌렸다.

“선배님, 앉으실 거예요?”

“아, 네.”

떨떠름한 표정을 거두어내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쟁반을 본 함경윤이 중얼거렸다.

“샌드위치다.”

“먹을래요?”

“선배님 드시려고 시키신 걸 텐데…… 그래도 돼요?”

함경윤이 보조개가 쏙 팰 정도로 깊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샌드위치 접시를 들어 함경윤의 앞에 놓아주고서 습관적으로 CCTV를 확인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깨닫고 한숨을 꾹 삼켰다. 이상했다. 저 카메라는 내 모습을 실시간으로 이세정에게 전송하지 못한다. 게다가 만약 이세정이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거리낄 일이 전혀 없었다. 함경윤과 나는 단순한 선후배 사이로서, 건전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으니까.

“저 원래 오늘 물놀이 가려고 했었어요.”

함경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하루 종일 밥 굶고 있었는데 갑자기 친구 한 명이 아파가지고 그냥 흐지부지 돼버렸어요. 선배도 좀 드세요.”

함경윤이 작게 자른 빵을 포크에 꿰매, 내 입가에 가져다 댔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뒤로 뺐다.

“괜찮은데.”

“저 혼자 먹기 미안해서 그래요.”

“먹여주는 건 좀.”

있지도 않은 감시자를 신경 쓰느라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주 잠시 무안한 표정을 지었던 함경윤이 곧 화제를 돌렸다.

“저 작사했는데 봐주실래요?”

“작사요? 작곡이 아니고 작사?”

함경윤이 내가 오기 전에 쓴 거라며, 휴대폰 메모장에 쓴 글을 하나 보여주었다. 작업물을 본다고 해도 평가를 해주기 어려운 처지였지만, 일단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화면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잘생겼다, 잘생겼다, 잘생겼다. 가사라고 하기엔 뭐했고, 그냥 특정 단어만 반복되고 있었다.

“뮤즈라도 있어요?”

“그 가사는 선배님 보고 쓴 거예요.”

눈웃음을 치며 말하는 함경윤의 모습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선배는 누가 말 걸었을 때 노려보지만 않는다면 인기 진짜 많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잘생겼다는 말은 꽤 꾸준히 듣는 말이었다. 지수나 누나 같은 주변 사람들이 내 외모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기에, 지금껏 나와 사이가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칭찬들은 예의상이겠거니 하며 죄다 흘려버렸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런데 누가 말 시켰을 때 일부러 째려보시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다들 무서워서 선배한테 못 다가오던데.”

“아, 다들 눈높이가 차이 나서.”

“……우리 과 사람들이 유난히 키가 작긴 하지만, 키 커서 그렇게 본다기엔 좀.”

“버릇인가 봐요. 조심할게요.”

“아니, 조심할 필요까지야…….”

씩 웃는 함경윤의 입술 아래로 두 개의 점이 쏙 패였다. 나는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마주 웃다가 마침 진동이 온 휴대폰으로 눈길을 돌렸다.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이세정에게서 온 문자였다.

[만나자고 했는데 왜 여태 연락이 없어요]

[u-u]

아직 밤이 되기엔 먼 시간이었다. 제시간이 되면 이세정이 집 앞으로 데리러 오겠거니, 생각했던 나는 몹시 당황해서 급하게 답장을 보냈다.

[잠결에 들어서 정신이 없었는데… 열 시에 만나자고 하지 않았어요?]

짧은 답신이 도착했다.

[오전]

아, 오전 열 시를 말하는 거였구나. 주중에 약속을 잡기에, 당연히 회사를 다녀온 후의 열 시를 말하는 줄 알았다.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함경윤에게 양해를 구했다.

“가야 될 것 같아요.”

“같이 나가요. 저도 이제 집 가려고.”

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함경윤이 가방과 쟁반을 차례로 챙겨 들고 1층으로 먼저 내려갔다. 태평하게 흔들리는 머리카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착잡하게 뒤따라갔다.

나란히 카페를 나서며 함경윤에게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어느 곳을 가리키던 나는 그와 반대되는 곳으로 간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 수고를 끼칠 새 없이 함경윤이 먼저 작별을 고했다.

“저 혼자 갈게요, 선배. 오늘 잠깐 이야기한 거지만 재밌었어요. 어, 초록 불이다. 안녕.”

함경윤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머리를 숙여 인사하려던 나는 뻣뻣하게 손을 마주 흔들어주었다. 고개를 까딱이는 모습이 바보같아 보였는지, 소리 내어 웃던 함경윤이 등을 돌렸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 함에 들어갔다. 오전, 이라는 답신을 마지막으로 끊긴 대화방을 바라보았다. 현재 시각은 열 시 반. 약속 시간을 삼십 분이나 어겼음에도 왜 여태 전화 한 통이 없었던 것인지 의아해졌다. 먼저 연락을 했다면 진작 만났을 텐데.

통화 버튼을 누르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기울어지는 시야 속으로 별안간 어떤 이의 잔상이 잡혔다. 나는 혹 잘못 보았나 하고 카페 앞에 정차되어있는 검은 차와 바이크를 자세히 살폈다. 검은 차는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바이크 위에 앉아있는 사람은 확실히 보였다.

바이크 위에 걸터앉은 이세정은 담배를 태우며 검은 차 안에 있는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는데, 화면을 보자마자 휙 고개를 올려 내 쪽을 쳐다보았다. 카페 안에서 함경윤과 대화를 나누며 줄곧 우려했던 일이었다. 카페를 같이 나서면서도 이어졌던 걱정이었다. 분명 이세정은 나와 함경윤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까지 모조리 다 봤을 것이다. 자기와의 약속을 깨고 함경윤을 만났다고 오해했을까 봐 두려웠다. 내 뒤를 캐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아도 될 오해일 텐데. 공연한 원망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전화한 상대는 보지 못했다는 듯 이세정을 지나쳐 버스 정류장을 향해 내달렸다.

“어, 어디세요?”

연결된 전화에 대고 뻔뻔하게 그렇게 물으며 막 정차한 버스에 올랐다. 황당한 물음이 되돌아왔다.

-우채민 씨, 뭐 해요?

“저, 몸이 안 좋아서 집에 갈게요.”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하곤 전화를 끊었다. 빈자리에 앉아 몸을 웅크린 채 제발 버스가 중간에 멈추어 서지 않기를 바랐다. 이세정이 차와 오토바이를 둘 다 가지고 온 것 같던데, 그 두 가지 어느 것으로든 버스를 따라잡기엔 충분했다. 아니, 잠깐만. 나 말고 함경윤을 잡으러 갔으면 어쩌지. 그게 더 가능성이 있는데.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그때였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버스가 조금 흔들렸다. 허리가 부르르 떨리며 몸의 균형이 앞으로 쏠렸다. 앞 좌석 등받이에 이마를 부딪칠 정도는 아니었으나, 대신 손에 힘이 풀려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지진이라도 난 건 아닐 테고. 상황도 정확히 모르면서 입술이 마구 떨린다. 힐끗 창 밖을 확인했다가 바이크 앞바퀴와 마주하곤 눈을 꾹 감았다. 저걸로 버스를 들이박은 건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욕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아득해진다

승객들이 앞다투어 나간 빈 버스 안으로, 이세정이 들어왔다. 이세정은 바닥을 굴러다니는 휴대폰을 주워들었다. 그것이 내 것임을 눈치챘는지 곧장 내게 다가와선 내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메고 있던 가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이 가방 속으로 툭 떨어졌다. 이세정은 지퍼를 대충 잠가주곤 내 바로 앞 좌석에 앉았다. 등받이를 마주 보는 형태로 앉아있어서 나와 대면하기가 쉬웠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잘못한 점이 없었던 나는 그럼에도 죄지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의자 등받이에 왼팔을 올린 이세정이 오른팔을 쭉 뻗어 내 뺨에 댔다.

“어디가 아픈데?”

이세정은 바이크로 지랄을 떠느라 다친 팔을 들어 보였다.

“팔이라도 갈렸어요?”

금이 간 손목시계 밑으로 핏물이 고여 있었다. 핏물은 시곗줄 아래에 특히나 더 고여서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나는 넋을 잃고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여, 여기 타고 있던 사람들 하, 하마터면 다칠 뻔했어요.”

“다치게 할 생각이었다면 더 세게 쳤겠죠.”

이세정이 느릿느릿 시곗줄을 풀었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러게 왜 눈앞에서 도망을 가요.”

시계를 주머니에 넣은 이세정이 피가 흐르고 있는 손을 내밀었다.

“내려갈래요?”

이세정은 나를 데리고 버스 밖으로 나왔다. 어수선한 도로였다. 구경꾼들이 버스의 문이 있는 쪽과 반대되는 곳에 모두 몰려있어, 나와 이세정은 쉽게 검은 차로 옮겨 탈 수 있었다. 문을 열어준 건 장 비서님이었는데, 장 비서님은 내가 뒷좌석으로 들어가기 위해 허리를 굽히자마자 이세정에게 말했다.

“향 피울 준비 하겠습니다.”

“무슨 향이요.”

“제 장례식장에서 피울 향 말입니다. 대체 왜 하루가 멀다 하고 일을 만드십니까?”

내 옆에 앉은 이세정이 뒷좌석 차 문을 사정없이 닫아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려서 내게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안전벨트를 습관처럼 부여잡으며 이세정의 손을 힐끔 살폈다. 여전히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는 피가 하얀 셔츠 자락을 점점이 적셔갔다. 나는 옆에 두었던 가방을 뒤적거렸다.

“병원으로 가도 되겠습니까?”

서 기사님의 물음에, 이세정이 내 몸을 꼼꼼히 살펴보곤 대꾸했다.

“괜찮은 것 같으니까 우채민 씨 집으로 가죠.”

“…….”

나는 가방을 뒤지던 손을 멈칫했다. 룸미러를 통해서 서 기사님의 당혹스러운 눈과 마주쳤다. 나는 이세정의 손목을 아주 조심스럽게 쥐고 말했다.

“저 말고 형 손이요. 치료해야 할 것 같은데…….”

이세정이 입을 열기 전에 조수석의 차 문이 열렸다. 장 비서님은 조수석에 앉아놓고선 문을 닫지 않은 채 뒤를 돌았다.

“기사는 막겠지만, 요즘엔 SNS가 있습니다. 큰 사곱니다. 기업 이미지도 무시할 수가 없고, 더군다나 사원님은 대중과 안면이 있으시니 여론의 몰매를 맞기에 쉽습니다. 기업 외부로는 재판이 있고, 내부로는 전무님 결혼식이 있으십니다. 몇 년, 아니 몇 달 동안만이라도 조용히 지내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아, 형 결혼하지.”

“꼭 가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채민 씨도 가실 거죠?”

나를 빤히 바라보던 이세정이 고개를 저었다. 장 비서님은 정말 안 가십니까? 하며 머뭇거리더니 이내 뒤로 물러섰다.

차가 달리는 동안, 이세정은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로 버스에 눈길이 자주 머물렀는데,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심상치 않은 시선이었다. 나는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가방을 조심조심 뒤졌다. 어디에 두었는지 휴지가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뭐 하려고요?”

어느새 이세정이 눈을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치료하려면 일단 지혈을…….”

“그냥 둬요.”

“그냥 두면 이거, 흉터가 남습니다. 치료받는 게 좋을 거예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요.”

나는 이세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방을 뒤졌다. 차내에 감도는 침묵이 아까의 버스 사고를 계속 생각나게 했다. 무엇으로든 신경을 돌리고 싶었고, 또 이세정의 손이 걱정되기도 했다.

“안 아프다니까.”

이세정이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가방을 뒤적이던 손이 흠칫 멈추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세정의 눈치를 살폈다. 치료를 안 받으면 염증에 걸릴 수도 있다. 아무리 제 잘못으로 다쳤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자신에게 가혹하게 구는 것은 좋지 못했다. 나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심조심 움직였다. 가방에서 막 발견한 티슈를 꺼내 이세정의 손을 감쌌다. 그러자 이세정이 내 손을 뿌리치더니, 어딘가에서 접이식 나이프를 꺼내왔다. 날카로운 칼날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 손목으로 향했다. 신경질적으로 두 번, 세 번, 아니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그었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온전히 본인임에도 사정없는 행동이었다. 이세정이 나이프를 바닥에 던져버리곤 너덜너덜해진 손목으로 제 이마를 쓸어 넘겼다.

“왜 도망갔어요? 자꾸 생각나서, 지금 성질나는데.”

“아…… 그, 그게…….”

나는 안전벨트를 부여잡고 입술을 깨물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도자기의 기억이 떠올라 겁도 나고, 단지 지혈해주려던 것뿐이었는데 다짜고짜 화를 내니 서러움도 밀려와서, 눈물이 났다. 눈물은 참을성 없이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내가 도망쳤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후배랑 카페에서, 만났는데, 이야기 좀 하다가요. 같이 나왔는데 형이 있어서……. 혹시 후배랑 제 사이 오해하고, 저 때리려는 줄 알고…….”

“무슨 오해요. 그냥 우채민 씨 데리러 온 거예요.”

이세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나를 쏘아보았다. 시선을 피하며, 이세정의 손목을 힐끔 쳐다보았다. 잠깐의 시간 동안 대체 얼마나 그어댄 건지 핏물이 살점과 한데 뒤섞여있었다. 저렇게 그어댔는데, 피가 당장에 멈출 리가 없었다.

나는 저 핏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을 닦아내고,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무엇을 바라고서 지혈해주겠다고 나섰던 건지 어이가 없었다. 내가 상처를 치료해주었을 때 얌전히 있었던 그날의 이세정을 바랐었던가?

“몇 살까지 울려고 그래요.”

결코 수그러들지 않은 화가 한숨처럼 내뱉어졌다. 이세정은 다치지 않은 손으로 내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며 다정함을 흉내 냈다.

“내가 오늘 무례했어요. 반성하고 있으니까 그만 울어요.”

그러면서도 강요하듯 덧붙였다.

“얌전히만 있으면 나도 이렇게는 안 할 텐데. 안 그래요?”

나는 이세정의 손을 잡아 내리곤 눈물 자국을 재차 닦아냈다. 눈물은 점차 말라가는데,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가슴을 움켜쥐고 심호흡을 했다. 가슴에 댄 손바닥이 진동했다. 속이 고장이 난 것같이 아팠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이세정을 쳐다보니, 이세정은 나를 빤히 관찰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일어있었다.

***

차례차례 도착하는 택배 상자를 모두 개봉해서 여행 가방 안에 집어넣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날 이세정의 호기심을 보고서 나는 마침내 마음을 굳혔다. 벗어날 순 없지만,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내 양심이었고, 예의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양심적인 사람‘처럼’ 보이길 원했다.

“여보세요.”

짐 싸는 동안 도착한 [전화 되냐?]라는 문자에 전화를 걸었더니, 약간의 침묵을 두고 지수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옆에 누군가 계신다면 전화 잘못 걸으셨습니다, 라고 하고 끊어주세요.

“나 혼자야. 웬일이야? 전화, 문자 다 하지 말자고 그랬잖아.”

-피규어 때문에. 언제 가져다줄 거야. 빨리 가져와.

병원 금고에 넣어둘 거란 지수의 말에 나는 침대 아래에 있는 가방을 끌어오며 호텔이냐고 웃었다. 그러나 뻑뻑한 지퍼를 쭉 끌어내리자마자 웃음기는 싹 가셨다.

-우리 형들 무사하냐?

“…….”

-왜 대답이 없어. 꿈자리 존나 사나웠다고. 뭐였지. 뭐 이 빠지는 꿈이었어. 불길하게.

피규어 가운데 레진도 하나 있다고 했다. 하나당 공이 몇 개 붙어있는지보다도, 또 내가 지수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생각에 괴로워졌다. 가책을 얼마나 받는데도 할 말이 없었다.

-야…… 채민아.

계속되는 내 침묵에 지수는 불행을 예감한 듯 지독히도 낮은 목소리를 냈다.

-침착하고, 일단 갖고 와. 내가 직접 보고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

“…….”

-화, 확인해 보…… 내 몸은 이세정한테 찢기고, 내 형들 몸은 우채민한테 찢겼네. 인생 씨발. 씨발!

예고도 없이 터트린 화에 나는 깜짝 놀라 귀에 붙이고 있던 휴대폰을 떼어냈다. 어떻게든 로봇을 복구해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내 악력을 견뎌내기엔 로봇의 재질이 그다지 좋지 못했는지 도리어 망가질 뿐이었다. 나는 다 물어주겠다고 몇 번이고 말을 되풀이하다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서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안전장치 없이 그저 500원짜리 장난감을 쓸어 담듯 가방 안에 넣은 것도 모자라서, 버스 사고를 겪으며 무의식중에 가방을 등으로 짓이기까지 했는데 온전할 리가 없었다. 당장 내 음반을 누군가 망가트린다면 분노로 팔팔 뛸 거면서 지수의 것은 너무 안일하게 대했다. 나는 쓰레기다. 나는 바닥에 이마를 박아대다가 벌떡 일어나 이세정에게 선물 받은 노트북을 꺼내왔다. 중고로 팔기에 생활 기스가 심하지 않은지 막 확인하려던 찰나 갑자기 누나가 방 안에 들이닥쳤다.

“야, 야. 너 친구 왔다.”

“무슨 친구? 나 친구 없는데.”

“자랑이다.”

누나는 혀를 쯧 차곤 문 사이를 비집고 있던 목을 빼냈다. 그러다 다시 목을 쑥 집어넣어서 내게 물었다.

“소개해달라고 하면 염치없나? 아 됐어, 됐어. 어린애…….”

갑작스레 방문한 객의 정체를 확인하고서야 나는 누나가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세정은 방문 앞에서 얼어붙어 있는 내 뺨을 손가락으로 툭 치며 ‘안녕, 우채민 씨.’ 하고 장난스럽게 인사했다. 방금 전까지 어떤 자학을 했는지 모두 잊어버렸다. 내 시선은 미끄러지듯 이세정의 손목으로 향했다. 셔츠의 소매가 손목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확인하며 왜 왔을까, 손목은 괜찮은 건가, 짐을 싸놓은 캐리어를 들키지 않아야 할 텐데……오만가지 생각에 휩싸였다. 덕분에 이세정의 말을 몇 번이나 씹어버렸다.

“우채민 씨, 내 말 들었어요?”

“예? 뭐, 뭐라고 하셨어요?”

“운동하러 가자고 했어요.”

운동과 가까운 것은 이세정뿐이다. 나는 운동이란 말에 악몽처럼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레이싱 카 타시게요?”

“그때처럼 못 놀아줘요.”

나는 전혀 아쉽지 않은 목소리로 ‘재밌었는데 아쉽네요.’라고 대꾸하곤 다시 이세정의 손목을 보았다. 팔을 살짝 움직이니 그제야 손목이 훤히 드러났다. 손목에는 선명한 선이 몇 개 그어져 있었다.

“어제 집에 가서 뭐했어요?”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는 것을 못 알아챈 것처럼 이세정이 내 뒤통수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손길만큼 다정한 목소리였다. 일상을 묻는 목소리가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었다. 치열하고, 살벌하게 화를 낸 자국을 고스란히 가지고서 어떻게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집에 들어와서 밥 먹고, 택배 온 게 있는데 그거 풀고, 샤워하고, 그리고 잤습니다.”

“오늘은?”

“그냥 특별히 한 건 없고…… 형은요?”

손목 안 아파요? 호구처럼 물으려다 말았다. 그러나 간혹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목소리보다도 눈빛이 더 쓸모가 있을 때가 있었다. 한동안 손목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더니, 이세정이 뭐가 궁금한지 알겠다는 듯 내 목덜미를 매만졌다. 손길이 간지러워 턱을 아래로 내렸다. 턱으로 손등을 꾹 누르자, 이세정이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 내 턱을 붙잡곤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쪽, 짧은 입맞춤이 스쳐 갔다. 나는 입술을 안으로 말았다. 그래서 괜찮냐고, 안 괜찮냐고……. 궁금한 건 풀리지도 않았는데 엄한 심장만 뛰어댔다.

“운동하러 갈래요?”

이세정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생각 없이 같이 몸을 일으킨 나는 옷차림이 눈에 밟혀 걸음을 멈추었다.

“저 옷 좀 갈아입고.”

반팔 티와 트레이닝 바지를 여러 벌 꺼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옷이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키는 탓에 마구 주름이 졌다. 나는 일단 옷걸이에서 빼낸 옷들을 침대 위에 늘어놓은 뒤에 차분히 매치해보았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서둘러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원체 행동이 느린 터라 갑자기 서두르는 것은 좀 어려웠다. 다행히 이세정은 무어라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내가 준비를 마치기를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런데 옷을 고르고 나서가 문제였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이세정이 나가지 않고 있어 입고 있던 티를 벗을 수가 없던 것이다. 등을 돌리고 있으니 그냥 갈아입을까. 머뭇거리다 문득 이세정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눈을 돌렸다. 이세정은 책상 아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의아하게 고개를 빼 들고서 이세정의 뒤로 다가갔다.

“우채민 씨.”

발소리가 그렇게 컸나. 나는 이세정의 등 뒤에 서서 예, 하고 대답했다.

“여행이라도 가요?”

“……예?”

나를 돌아본 이세정이 책상 아래에 있는 캐리어를 턱으로 가리켰다. 놀라지 않은 척 나는 캐리어를 더 안쪽으로 밀어두었다. 내 수작을 알아차린 듯 이세정이 캐리어를 다시 끌어와 그대로 열었다. 잠금 되어있지 않은 캐리어가 내 계획을 다 드러냈다.

“누나랑 여행가기로 했습니다.”

“…….”

“……며칠 안 남았어요.”

빠르게 늘어놓은 차선의 변명이 정말 변명처럼 들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사실 문장으로 보나 말로 보나 아주 완벽하게 거짓말임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속을 거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손가락을 매만지며 초조하게 반응을 기다리기를 한참, 이세정은 약간 어이없는 표정으로,

“며칠 안 남았는데 난 몰랐네요.”

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뿐 더는 캐묻지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속은 것 같은데, 그래서 다행인데, 뭔가 좀 찜찜한 반응이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여행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나는 의아해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도착한 곳은 육상 트랙이 있는 종합운동장이었다. 주말임이 의심스러울 만큼 한산한 입구 아래에서, 나는 더위를 피해 얼마간 손부채 질을 했다. 통화를 하러 간 이세정은 도무지 올 생각을 안 했다. 무슨 중요한 통화를 하기에 나를 혼자 두고 가버린 건지 여간 불만이 아니었다. 나는 도무지 견디지 못하고 근처에 있는 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그림자 안에 주저앉아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을 덮은 나무 그림자가 잔잔하게 부는 바람에 따라 해안가의 물살처럼 멀어지고 좁혀지길 반복했다.

“얼굴이 빨개요. 더워요?”

넋을 놓고 있었는지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도 못 들었다. 막 일어선 내 두 뺨에 손을 댄 이세정이 나를 관찰했다.

“예, 조금요.”

“실내엔 트랙이 없고, 대신 수영장이 있어요. 수영하고 싶으면 미리 말해줘요.”

“예…….”

나는 수영복을 안 가져왔다는 근본적인 문제보다도, 긴 운동복에 가려진 이세정의 손목이 마음에 걸려 입을 열었다.

“물에 닿으면 안 될 텐데.”

“알아서 할게요.”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어쩐지 차가운 말투였다.

<3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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