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폐관실에 들어간다.
잘 깎여진 석벽. 상당히 넓었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침구류가 하나도 없군.’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온전히 취하기 위해서는 폐관실 내에 어떤 이물질도 없어야 했다. 그것은 내가 입은 옷도 마찬가지다. 난 지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암천회주가 이 기운을 모두 취하는 데 일 년이 걸렸다고 했나?’
사실 일 년 내내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퍼져나오는 기묘한 향은 인간의 정신을 뒤흔든다. 틈틈이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향을 몸에 담는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환골탈태에 한 차원 더 다가갈 수 있겠어.’
난 해우심법을 만들 때부터 계획해놓은 길이 있었다.
그리고 천향옥로단은 그곳으로 가는 최적의 길동무라 할 수 있었다.
‘재밌겠군.’
단목장룡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천향옥로단에 손을 얹는다.
* * *
“그래, 단목장룡이 들어갔다고?”
“네, 아버지.”
“적어도 일 년은 걸린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요.”
갈유화는 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폐관실에서 종소리가 들리면 갈유화가 들어가서 그에게 음식을 전해준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여러 상황이 일어날 수 있겠지.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아버지에게 고마웠다.
“정말 감사해요.”
“그래, 잘 해보아라.”
상황은 갈천능의 의도대로 잘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취하다
암천회의 보물 천향옥로단.
일단 그것을 취하기 전 명상을 한다. 암천회주가 말했던 것을 떠올리고 어찌해야 그것을 잘 취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가 이 기운을 모두 취하는 데 일 년이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난 그 시간을 최대한 단축할 생각이었다.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취하지 못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단상 위에 올려놓은 천향옥로단에서 기묘한 냄새가 퍼져 나온다. 단지 냄새만 맡는데도,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마치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사천당문에서 만독대법을 통해 내성이 있음에도 말이다.
‘영약처럼 내공을 바로 흡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받아들이기에 부적절한 기운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구잡이로 저 기운을 받아들이면, 주화입마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커지리라.
‘으음, 여기서 독공을 활용하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보통의 내공심법을 익힌다면 그러한 독기는 호흡을 통해 배출된다. 단전에는 정순한 기운만 쌓는 것이다. 하지만 독공은 다르다. 그것은 보통 단전에 독기(毒氣)를 쌓는다. 인간의 신체엔 전혀 맞지 않는, 위험할 수도 있는 기운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독공은 단순히 검기(劍氣)를 발현하더라도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히 약점은 존재한다.
독이란 결국 인간의 몸에 해로운 물질을 일컫는 말이다. 내공심법으로 그것을 제어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몸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독공을 익힌 이들 대부분은 1갑자 이상의 내력을 쌓을 수 없다.
그 이상 쌓게 되면 보통 주화입마에 빠지거나 단전에 쌓은 독에 중독되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천당문의 내공심법이라면···.’
사천당문.
정파 무림에서 독을 가장 잘 다루는 가문. 그곳에선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독을 다루는 법을 발전시켰다. 그들의 독공을 활용한다면 천향옥로단의 부정적인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에 큰 도움이 되리라.
난 사천당문의 내공심법을 꽤 알고 있었다.
사실 예전엔 독공이 내가 가야 할 길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여 해우심법을 개조할 때 고려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다르게 판단했다.
‘해우심법을 더 발전시킨다.’
해우심법은 완벽한 무공은 아니다. 그렇기에 주저하지 않고 해우심법을 개조한다. 사실 이미 거의 완성된 무공을 개조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우면서 귀찮은 작업이었지만··· 확고한 목표가 있으니 오히려 즐거웠다.
그렇게 해우심법을 계속 연구해나간다.
해가 들어오지 않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진 알 수 없었지만, 꽤 시간이 흐른 듯했다.
‘이제 슬슬···.’
꼬르륵···.
음식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일단 배부터 채우자.’
폐관실에 연결된 별도의 방으로 나간다. 작은 등불이 벽에 매달려 있다. 어둠에 적응되었기에 눈이 부시다. 그곳에는 밖에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종이 있었다.
폐관실 내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올 수 없었다. 천향옥로단의 독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인데, 별도로 마련된 방에서 빠르게 식사하면 그 문제가 해결된다.
벽에 달린 종을 흔들었다.
바닥에 앉아 일 각 정도 기다리고 있으니,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들어오시오.”
밖에선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문을 열어달란 말인가? 식사를 담은 상을 들고 왔으니 문을 열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
그런데 문 앞엔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상을 들고 서 있었다.
“호호···.”
쑥스럽다는 듯이 웃는 갈유화.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양손에 들고 있는 상 때문에 모두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단목 공자님? 조금만 비켜주시겠어요?”
“상만 주고 가면 되지 않나?”
“어머, 그럴 수야 있나요? 며칠 만에 식사하시는 건데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녀가 내 말을 가로챈다.
“저도 천향옥로단을 취해 본 경험이 있답니다. 단목 공자님께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식사하면서 제 경험담을 들으시면 더 도움이 될 것이랍니다. 공자님?”
길을 터주었다.
갈유화는 보법까지 펼쳐 별관으로 들어와 상을 바닥에 놓는다. 그리고 쏜살같이 달려가 문을 닫았다.
“자아, 얼른 식사하세요.”
갈유화가 다소곳이 앉고는 나를 불렀다.
어깨를 으쓱하곤 그녀의 앞에 앉는다.
“모두 몸보신에 좋은 음식들이에요.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자꾸 받아들이다 보면 원기가 상하기에 음식을 잘 챙겨 드셔야 해요.”
“···.”
갈유화를 빤히 바라본다.
그러자 그녀가 부끄럽다는 듯이 몸을 배배 꼬았다.
“그렇게 보시면 부끄럽답니다.”
그녀의 몸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눈동자를 바라보아도 어쩔 수 없이 몸이 보인다. 뭐 그것을 보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것도 웃긴 듯하다.
“그렇게 부끄러우면 옷이라도 걸치고 오지?”
“단목 공자님께서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으셨는데, 제가 어찌 그럴 수 있겠어요? 불쾌하신 것은 아니시죠?”
“불쾌할 게 뭐 있나.”
젓가락을 놀려 식사를 시작한다.
무언가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듯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천향옥로단을 취하는 것은 어떻게 되고 계신 가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이제 곧 시작하려고.”
“아···! 정말요?”
갈유화는 내 말에 즐거운 듯이 웃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흔들림에 시선이 갔다.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취하면 욕구가 생겨난답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구를 자극하는 물건이에요. 제가 익힌 탕백환희소는 그 기운과 가장 잘 맞는 무공이라 할 수 있죠.”
“탕백환희소라···.”
“단전이 아닌 다른 곳에 천향옥로단의 ‘향’을 쌓아두는 방식이에요. 감정이 격해지면 그 기운이 외부로 흐르기도 하지만 가끔 그렇게 배출해 주는 것이 좋아요. 쌓아만 두면 안에서 곪아버리니까요. 후후···!”
그녀의 말을 듣다 보니 뭔가 떠오른다.
내가 생각했던 방향에, 탕백환희소의 방식을 이용한다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을 듯하다.
‘괜찮군.’
식사하며 생각을 정리한다.
갈유화는 식사 내내 옆에서 조언을 해주었는데, 은근히 도움이 되었다.
“고맙다. 도움이 될 것 같군.”
“호호,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하지만 주의하셔야 해요. 천향옥로단을 취하다 보면 분명히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이 올 거예요. 그때 참고만 있으시다면 참으로 위험하답니다.”
“넌 그걸 어떻게 극복했지?”
“어머머, 그건 제 입으로 말씀드리긴 어려운데··· 단목 공자님께서 정말 원하신다면 제 비결을 말씀해드릴 수도 있어요. 아니면 제가 직접 도와드릴···.”
“대충 알 것 같군.”
내 말에 갈유화의 입술이 살짝 튀어나왔지만, 이내 다시 미소를 머금는다.
“그러니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종을 쳐주세요.”
“알겠다. 그러도록 하지.”
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갈유화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난 먼저 들어가도록 하겠다.”
“네에···.”
붕 뜬 듯한 갈유화의 목소리.
솔직히 처음엔 조금 흥분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엔 천향옥로단을 어찌하면 더 빨리 취할 수 있을지만 가득했다. 탕백환희소의 구결을 알지 못하지만, 원리만 알면 꽤 비슷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아니, 천마신공과 결합한다면···.’
어쩌면 더 뛰어날 수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