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2/236)

* * *

갈유화가 침상에 웅크린 상태로 누워 있었다.

거칠어진 숨소리, 그녀의 어깨는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하아아··· 짜릿했어.”

상상만으로 흥분이 몸을 지배한다.

“적어도 일 년. 그 시간이라면 분명히 우리 낭군님도 날 안아주시겠지···.”

발칙한 꿈을 꾸는 갈유화.

천향옥로단의 기운은 사내가 버티기 힘들었다. 아무리 단목장룡이라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리라. 그녀는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멋진 몸이었어···.”

갈유화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 * *

보름이 지났다.

갈유화는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다시 그 짜릿한 만남을 가질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데, 폐관실에서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얼마나 집중하셨길래···.’

답답한 마음이 있긴 했지만, 기다리는 자에겐 복이 온다고 했던가?

그녀는 끈기를 가지고 기다렸다.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취하면 취할수록 욕구는 점점 커진다. 이성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갈유화는 그것을 모두 품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곧 부르시겠지? 보름이나 식사하지 않으셨으니···.’

그렇게 갈유화는 기다렸다.

보름에서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간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단목장룡이 폐관실로 들어간 지 한 달이 되었다.

이쯤 되자 갈유화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사람이 한 달 동안 밥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가? 사실 갈유화가 기다리는 것은 천향옥로단의 기운에 욕구가 가득 찬 단목장룡이었다. 그런 것도 싫지 않았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지만, 절대 그가 잘못되는 걸 원하지는 않았다.

갈유화는 참지 못하고 폐관실 앞을 서성이다가 암천회주를 찾아간다.

“아버지, 이상해요.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요?”

“으음, 소식이 없긴 하군. 나도 폐관실 안에선 최대 보름 이상을 버티지 못했는데 말이야.”

“어쩌죠? 단목 공자님께서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그럼···.”

갈천능은 너무도 무심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아버지!”

“난 단목장룡을 높게 평가한다. 그렇기에 너와의 관계를 허락해준 것이며, 이렇게 밀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천향옥로단의 유혹에 패배한 정도의 수준이라면 거기서 끝인 게지. 거기다가 폐관실은 밖에선 열 수 없다는 걸 너도 알고 있지 않으냐?”

갈유화가 아랫입술을 깨문다.

그의 말은 맞았다. 바깥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별관의 문을 열 순 있지만, 폐관실의 문은 내부에서 잠글 수 있었다.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여 설계한 것이기 때문이다.

“클클, 네가 그리 안달 난 것을 보니 정말 단목장룡을 연모하나 보구나. 몸이 아닌 마음을 원하는 게야.”

갈유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온갖 나쁜 가정이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정 걱정되면 별관에서 기다려보는 게 어떠냐? 그럼 단목장룡도 네게 마음을 열지 아느냐?”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갈유화가 벌떡 일어선다.

“그래야겠어요.”

갈유화가 헐레벌떡 뛰어나갔고, 갈천능은 가라앉은 눈으로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정말 천향옥로단의 기운에 먹힌 건가···.”

그래도 갈유화가 처음으로 마음에 품은 사내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비로서 마음이 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또한 암천회주이기 전에 인간이었으니까.

* * *

갈유화는 하염없이 별관에서 기다렸다.

폐관실에 귀를 대보았지만,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두꺼운 석벽은 내부의 소리마저 차단한다. 폐관실의 문을 부수지 않고서는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께 부탁해서 문을 깔끔하게 자르면 위험하지 않게 들어갈 수도 있어.’

분명히 무언가 일이 생겼다고 판단했다.

만약 그렇다면 치료를 해야 한다. 영약을 먹이든, 세맥에 내력을 흘려주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갈유화가 아버지에게 가려는 순간.

끼이이이익···!

석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자님?”

벌떡 일어서서 입구에 선 갈유화.

그녀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시간조차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

그렇게 반쯤 열린 문.

갈유화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단목 공자님···?”

“···.”

갈유화의 목소리에 문이 열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동시에 폐관실 내부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전해졌다.

하지만 그런 냄새에도 갈유화는 단목장룡의 안위가 먼저였다. 그녀는 문이 열리는 방향으로 가서 안을 들여다본다. 그곳엔 검은 인영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단목장룡이다. 애초에 폐관실 안에는 그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스윽···!

내부에서 뻗어 나온 손. 그것이 갈유화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크읏···? 고, 공자님?”

갈유화는 빛을 보았다.

짐승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난다고 한다. 포식자의 눈이 몸을 위아래로 훑자 갈유화의 몸이 흠칫 떨린다.

동시에···.

“하아아···.”

묘한 쾌감이 그녀의 몸에 전해진다.

저도 모르게 신음을 터트린 갈유화.

은밀한 손길이 그녀의 몸을 자극하고 있었다.

폐관실 내부에서 전해지는 악취에도 갈유화는 몽롱한 정신으로 그것에 몸을 맡기게 된다.

그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그의 움직임이 우뚝 멈춘다.

“···미안하군.”

“다, 단목 공자님···? 저, 정신이···.”

“아직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완전히 갈무리하지 못해서 말이야. 그래도 이제 좀 낫군.”

그의 손이 떨어진다.

갈유화는 아쉬움의 탄식을 흘렸다.

“아···.”

그러다 문득 그녀의 시선이 돌아간다.

천향옥로단은 본래 남색의 빛을 발한다. 내부의 기운이 외부로 흘러나오며 발광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상 위에는 어떠한 빛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설마···?”

단목장룡이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모두 취한 건가?

‘말도 안 돼···!’

변화

“그러니까···.”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모두 취했다?

갈천능은 그 소리를 당연히 믿지 못했다. 일단 천향옥로단의 기운은 영약을 취하는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인간의 몸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운. 제대로 그 기운을 취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적은 양을 천천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주화입마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컸다.

암천회주도 과거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한계까지 받아들이는데 1년이라는 기간이 걸린 것을 고려해보면 단목장룡이 고작 한 달 만에 기운을 모두 취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가장 놀라운 점은.

‘정말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모두···!’

남색의 빛을 발하던 천향옥로단.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환단이 단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어이가 없군.”

암천회주가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천향옥로단을 바라본다.

물론, 암천회의 능력이라면 다시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다시 채울 수 있긴 하겠지만··· 전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선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괴물이 되어 있을지···.’

단목장룡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유화야.”

“네, 아버지.”

갈유화는 마치 자신이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다 취한 것처럼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단목장룡을 알아보았다. 그가 실력 행사를 하기 전부터. 그런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장룡과의 관계는 진전이 있느냐?”

“조금요?”

“꽉 붙잡아라. 적이 된다면 지금 필히 죽여야 할 정도로 무서운 재능이다. 천향옥로단의 힘을 모두 흡수하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어머, 무서운 소리 하지 마세요. 단목 공자님을 죽인다니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장룡의 몸 상태는 어떤가? 아직 천향옥로단의 향을 모두 갈무리하지 못했다고 알고 있는데?”

“네, 요즘 개인 연무장에서 나오지 않으시더라고요.”

갈천능이 단상 위의 천향옥로단을 슬쩍 바라본다.

솔직히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단목장룡에게 기운 모두를 취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리 말했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유화가 단목장룡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

갈천능의 표정만 보고도 갈유화는 그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요즘 단목 공자께서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더라고요. 계획과는 달라지긴 했지만··· 의도했던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답니다.”

전통적인 방식이다.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기 전에 육체의 사랑부터 나누는 것이다. 단목장룡은 정파 출신이다 보니 이 방법이 잘 통하리라 생각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구나. 그래도 너무 조급하게 다가가지 마라. 그릇이 큰 사내들은 여인의 외모만 보고 혹하지 않는다. 너도 그건 잘 알고 있겠지?”

“네, 당연히 잘 알고 있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갈천능이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 설비연의 시술도 잘 끝났다고 하니 네가 그 소식을 직접 전해주거라.”

갈유화는 단목장룡을 찾아갈 이유가 생겨 기뻤다.

“어머, 단목 공자님께서 정말 좋아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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