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괴이한
마교와 무림맹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전면전은 펼쳐지지 않았다. 감숙성이나 섬서성 그리고 사천성에선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긴 했지만,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또한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명문 거파들은 추이를 지켜볼 뿐이었다.
마교에서도 본대를 이용하여 공격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무림맹 차원의 대응을 하고 있진 않았다. 언제 또 마음을 바꿔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도 있었다. 이미 마교는 난주에 진출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구파일방 중에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호들갑을 떠는 이들도 존재했다.
“대체 공공 대사께선 무슨 생각이신 게요?”
무릇 공동의 도사라 함은 평정심과 인내심을 겸비하여 세인의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불안과 초조 그리고 분노가 섞여 있었다.
당연했다.
지금 마교의 본대와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진짜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볼 이들이 공동파였으니까. 그들은 도사였지만 소속감은 가지고 있었다. 뿌리를 잃는다는 것은, 평생을 부정당하는 것이다. 이제는 멸문한 곤륜의 도사들이 어찌 됐나?
당연히 공동파의 장로 을목 진인은 곤륜파의 멸문을 두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말을 듣고 글을 읽으며 자랐다. 과거 공동파는 마교를 막기 위한 두 번째 방패였다. 곤륜이 사라졌으니 공동파는 이제 첫 번째가 되었다.
은영전주는 을목 진인의 분노에 동감했다.
애초에 전대 맹주는 공동파의 출신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동파는 무림맹에서 입김이 센 문파였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뒤집혔다. 현재 가장 멸문에 가까운 문파를 꼽으라면 단연 공동파가 언급되리라.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계신 듯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기다리라는 말에 을목 진인이 분통을 터트린다.
공공 대사라는 대영웅의 등장에 희열을 느낀 것도 잠시.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뭘 기다리라는 것이오! 복마 진인께서 기어코 막던 마교의 진출을 대허 선사께서 허락해 주시더니 뜬금없이 공공 대사께서 나타나셔서 전쟁을 선언하셨소!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것이오?”
은영전주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공공 대사는 배분으로 따지면 거의 하늘과 같은 수준이었다. 전대 고수만 해도 넙죽 허리를 숙여야 할 판에 오백 년 전 고수라니? 배분으로는 정파 무림의 어떤 명숙이라도 닿지 못한다. 거기다가 배분뿐이랴?
‘그때 보여 준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지.’
공공 대사는 무림맹에 도착하자마자 대허 선사와 비무를 했다.
화산과 무당의 장문인 그리고 은영전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말이다. 그리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들의 비무는 일각이 채 지나지도 않아 끝이 났다. 대허 선사는 땀을 뻘뻘 흘렸지만, 공공 대사는 전혀 지치지도 않은 모습이다.
물론, 두 사람 다 살수는 쓰지 않았기에 비무가 아닌 실전이라면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화경의 고수를 그토록 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한 단계 위의 경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비무 이후 대허 선사는 수련을 핑계로 맹주전에 있는 폐관실에 틀어박혔으며, 충격을 받은 화산과 무당의 장문인 또한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분명히 절대 고수들에게 자극을 주었던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공공 대사에게 함부로 반발하지 못하게 됐다.
공공 대사라는 이름이 주는 위압감은 무림맹의 장로들을 문파에 갓 들어온 제자로 만든다.
오래전 마교와의 전쟁을 종식시킨 인물이 아닌가? 현 무림인 중 마교와 전쟁을 치러 본 이는 공공 대사가 유일했다.
“맹주님께 항의를 해야겠소이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소!”
을목 진인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침, 점심, 저녁으로 공동파의 서신을 기다린다.
혹시 마교가 공동파를 공격했을 수도 있으니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무림맹에선 전투단을 감숙성에 파견하긴커녕 제대로 된 방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공동파가 당하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아무리 그가 오백 년 전의 대영웅이자 고금제일인으로 평가받던 공공 대사라도 참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사문인 공동파의 안위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제가 공공 대사께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각 지역의 대문파에 서신을 보내 놓았으니 난주에 제자들을 보낼 겁니다.”
“무림맹이 그걸 주도해야 하는 것 아니오? 서신 하나를 보내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오? 그리고 그건 맹주님의 전언이 아니지 않소?”
“그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소!”
“후우우……. 가시지요.”
은영전주도 이 부분이 문제라 생각했다. 현재 가장 위험에 맞닿은 공동파의 장로가 공공 대사에게 항의하면 맹주 또한 마음을 바꿀 수도 있으리라. 그가 무엇을 원하는진 모르겠지만, 공동의 멸문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맹주에게 찾아갔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썩어 빠졌군.”
“지금 뭐라고 하신…….”
“정신이 썩어 빠졌다는 말이다.”
을목 진인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진다.
도를 닦는 도사라도 참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공동파가 당장 마교에게 습격을 받아 멸문할 수도 있는데, 뭐? 정신이 썩어 빠졌다고? 그게 맹주에 입에서 나올 말인가?
“맹주!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오! 공동의 안위가 달려 있음에도 정신이 썩었다니! 지금……!”
당연히 험한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공공 대사는 그걸 참아 줄 위인이 아니었다.
퍼억!
“흡!”
쿠당탕!
공공 대사의 가벼운 손짓에 을목 진인이 벽에 처박힌다. 내장에 전해지는 묵직한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을목 진인이 숨을 쉬지 못하고 꺽꺽대고 있었다. 은영전주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전쟁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기대어선 승리할 수 없다. 난 나약한 병사는 원치 않는다.”
이질적인 단어.
소림사의 고승이자 명숙 중의 명숙이 입에 올릴 말은 아니었다.
병사라니?
“을목이라 했던가? 네놈이 매일 세 번 찾아와 칠 주야 동안 내 일격을 버틴다면 그땐 내가 직접 나서 공동파를 구원해 주마. 어떤가?”
“끄륵…….”
을목 진인은 고통에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했다.
내장을 찢는 고통에 신음하던 을목 진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했다. 멍하니 그걸 바라보던 은영전주가 입술을 깨문다.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그런 은영전주에게 시선을 돌리는 공공 대사.
그의 눈빛은 정파 무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맹수의 눈빛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은영전주는 무림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인간은 맹수의 식삿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은영전주는 말했다.
“맹주님, 대체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마교에게 승리하려면 감숙성에서부터 그들을 틀어막아야…….”
그의 용기에 감탄이라도 한 것일까?
“내가 뭘 원하는지 듣고 싶으냐?”
“…예, 듣고 싶습니다.”
“내일 맹의 수뇌들을 모두 불러 모아라. 그리고 육왕이라 불리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아니다. 그냥 가용할 수 있는 맹원을 모두 맹주전의 앞으로 집합시키도록 하라.”
뭘 하려는 걸까?
이제는 그가 정파인처럼 보이진 않았다. 정말 이 사람은 과거 무림을 구원했던 그 공공 대사가 맞을까?
그건 내일이면 알게 될 것이다.
* * *
웅성웅성!
마교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감숙성으로 떠난 이들을 제외하곤 무림맹의 정예들이 모두 집결했다. 다름 아닌 그 공공 대사의 명이다. 이제껏 그는 마교와의 전쟁을 천명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마치 마교가 먼저 공격해 주길 바라는 듯이.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공공 대사의 이름 앞에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은영전주를 비롯한 단주급 이상의 무인들은 표정이 그리 좋진 않았다.
어제 을목 진인의 일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맹주의 집합 명령이 떨어지기 전, 은영전주에게 그 사실을 들었다.
‘공공 대사가 너무 오래 살아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오?’
청룡단주의 적나라한 질문에 은영전주는 답을 하지 못했다.
모두가 단상을 올려다본다. 공공 대사의 명으로 임시로 높은 단상을 만들었다. 자연스레 맹주는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들어라.”
우우우웅-!
“컥!”
“무슨……!”
가까이에 있던 이들이 가장 격한 반응을 보였다.
내력이 담긴 목소리. 그것은 분명히 하나의 무공이 될 수도 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사자후(獅子吼) 또한 음공의 일종이다. 음에 내력을 담아 상대를 타격할 수 있는 무공. 막대한 내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내력이 부족한 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몸을 휘청일 정도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다음부터 공공 대사는 내력을 어느 정도 조절했다.
“난 공공 대사다.”
모두가 숨을 죽인다.
“오래전 마교와 전쟁을 치렀었다. 그들은 포악하고 무자비했으며 억세고 강인했다. 당시의 정파는 약했다. 마교도들의 공세에 속절없이 무너졌었지. 여인들은 노리개 취급을 받았으며 사내들은 노예가 되거나 목이 잘려 길바닥에 뒹굴었다. 길에선 피비린내가 진동했으며, 소위 강호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마교의 기세에 도망치기 바빴다.”
“…….”
그의 목소리엔 은은한 분노가 어려 있었다.
현재 무림맹은 전쟁을 치러 보지 못한 이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들은 강호인이다. 중원 무림에선 그러한 싸움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을 뿐.
“웃긴 것이 뭔지 아나?”
그가 말을 이어 갔다.
“청해성의 패자였던 곤륜이 멸망할 때가 되어서야 공동파는 행동했다. 공동파의 제자들이 무공 비급만 가지고 섬서성에 도착했을 때야 화산이 움직였다. 섬서성이 밀리니 하남과 호북 그리고 사천의 문파들이 움직였다. 자신들의 차례가 되어서야 진짜 위기라고 알게 된 것이지.”
“…….”
침묵이 감돈다.
여기 있는 모든 무인은 당연히 당시의 사정을 자세히 모른다.
단지 막강한 마교의 공세에 밀려났다고만 알고 있었다.
“더 웃긴 것은 그때가 되어서야 무림이 날 찾았다. 내가 무림의 마지막 희망이라나? 뭐, 그런 헛소리를 했던 것 같군.”
“……!”
덕이 높은 고승의 모습으로 공공 대사를 상상하던 이들이 멍한 얼굴을 한다.
대부분 무인은 공공 대사의 이런 면을 모르고 있었다. 그의 말에 생각에 잠긴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공공 대사께선 무림맹을 조직하신 것이 아니오-!”
거대한 목청.
청룡단주 팽달. 그의 목소리에 웅성이는 소리가 좌중을 뒤덮는다.
은영전주는 기겁을 하며 그를 말리려 했지만, 왠지 공공 대사의 표정이 밝았다.
“호오, 하북팽가인가?”
“그렇소이다! 선배 대접을 해 드리려고 해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군!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요? 전쟁을 선포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건 대체 뭔 생각이오? 무림맹의 존재 목적은…….”
“정주까지 오며 많은 것을 들었다. 현재의 무림맹은 피의 복수를 꿈꾸던 그러한 집단이 아니더군. 결국 과거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와 같은 수준으로 전락했지. 의와 협을 모르며 정치에 물든… 탐관오리와 같은 모습이었다. 너희는 무림인이 아니다. 그렇기에 충격이 필요하지, 인간의 탐욕을 없앨 강렬한 충격이.”
하지만 팽달은 콧방귀를 뀐다.
“흥! 그래서 뭐 어쩌라고? 우리보고 그때처럼 피를 보라는 말이오? 헛소리 집어치우시오! 맹주의 직위를 차지하고 그딴 식으로 할 거면 자리에서 물러나시오! 차라리 내가 맹주를 하겠소!”
모두가 침을 삼키며 공공 대사를 바라본다.
당연히 그가 불같이 화를 내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너무도 온화했다.
“좋다.”
“흥! 자리가 그리도… 뭐요?”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던 팽달이다.
뒤늦게 그가 긍정했다는 걸 알아챘다.
‘저 할배가 진짜 노망이 났나? 내공이 머리까지 뻗친 건가?’
그런 생각도 잠시.
“단, 조건이 있다.”
“무슨 조건!”
“나를 이긴다면 맹주직을 물려주지. 하지만 친선 비무가 아닌 생사결로 할 것이다.”
공공 대사의 시선이 굳은 표정의 무당파와 화산파의 장문인에게로 향한다. 그들은 모두의 앞에서 나서 자신과 싸울 용기가 있을까? 패배할 용기가 말이다.
당연히.
두 장문인은 은근슬쩍 공공 대사의 시선을 피했다. 수많은 무인이 모인 자리에서 보기 좋게 패배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명성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화산과 무당의 장문인이 보기 좋게 꺾이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그들은 지킬 것이 너무도 많았다.
정파의 잠재력은 분명히 대단히 강하다.
하지만 그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는 것은 절체절명의 위기뿐이다. 공공 대사는 그것을 원했다. 자신이 돌아왔으니 썩어 빠진 정파의 정신머리를 고쳐 줘야 한다. 그렇게 과거의 정파로 돌아가서 마교에게 승리해야 했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모두의 머릿속에 그러한 의문이 떠올랐다.
팽달은 그런 것은 고민하지 않았다. 패배하더라도 저 미친 영감에겐 한 방 먹이고 싶을 뿐이다. 그가 인파를 헤치고 달려왔다.
“청룡단주 팽달! 공공 대사께 생사결을 신청……!”
그렇게 비무가 시작…….
“커어억!”
되기도 전에 팽달이 뒤로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팽달이 포권지례를 하는 틈에 그의 복부를 발로 걷어찬 것이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네놈은 가능성이 있군. 그래서 살려 준 것이다.”
“비겁…….”
누군가의 입에서 비겁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공공 대사가 웃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승리의 방법이다. 마교에게 진정으로 승리하기 위해선 썩어 빠진 정신머리를 고쳐먹어야 한다. 그러니 도전해 보아라. 다만, 다음번에 자비는 없다.”
“…….”
잠시 기다렸지만, 수많은 무인 중에서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없나? 정말 없는 건가? 죽음이 두려운가? 그러하여 도전하지 않는 건가? 그래서 어떻게 마교와 전쟁을 하려고 하는가? 공동파를 도와야 한다고? 네놈들이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나?”
그는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좋다. 한 명이 아니라도 좋다. 여럿이서… 아니, 여기 있는 모두가 합공해도 좋으니 도전할 텐가?”
없었다.
청룡단주에게 기습을 했더라도, 초절정에 오른 고수를 발길질 한 번에 제압했다. 솔직히 공공 대사가 이 많은 무인 전부를 이길 수 있진 않겠지만, 공공 대사와 가까이에 있는 이들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
공공 대사가 한심하게 그들을 바라본다.
“전쟁이란 죽음을 불사해야 하는 것. 네놈들은 아직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군.”
굴욕감이 모두의 가슴을 짓누른다.
대체 왜 같은 정파끼리 싸워야 하는가?
그리고 왜 아무도 나서지 않는가?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나선다면 용기를 낼 수 있을 텐데…….
“쯧.”
그렇게 공공 대사가 혀를 차고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쉬잇!
공간을 가르는 파공음.
“너는……?”
이제까지의 공공 대사와 어울리지 않게 그의 목소리엔 당혹감이 묻어났다.
“대사님 덕에 무림맹에 다시 복귀할 명분을 얻게 되었군요.”
“넌 누구…….”
“장룡!”
“조장님!”
“룡아!”
여러 사람의 목소리. 먼 거리였지만, 공공 대사는 그것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네가 단목장룡인가?”
“예.”
단목장룡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본다.
왠지 모르게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단목장룡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공공 대사.
그의 눈동자가 어느 한 곳에서 멈춰 선다.
“네놈이로구나……!”
지독한 분노가 서린 목소리. 공공 대사가 바라보는 건 단목장룡의 오른팔이다. 그곳엔 영령이 이별 선물로 주었던 옥팔찌가 있었다.
‘저건?’
스으으으…….
어떤 누구의 시야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공공 대사의 눈에는 명확하게 보였다.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모으고 모은 그 신비로운 잿빛의 기운이…….
단목장룡의 피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