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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204화 (204/236)

204화 깨지다

호북성 양양현.

넓은 방 안에 한 사내와 가면을 쓴 한 사람이 멀찍이 거리를 벌린 채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사내는 사마련의 지존인 사마련주였으며, 가면을 쓴 사람은 천마신교의 신녀 영령이었다. 사마련주가 먼저 말문을 뗀다.

“네 말처럼 공공 대사는 과거의 미련이 남아 있었구나. 그토록 오래된 일인데 말이다.”

- 인간은 과거를 돌아보며 사는 존재라 하죠. 과거를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면서도 후회하며 진저리 치기도 하죠. 공공 대사는 분명히 마교와 끝장을 보려 할 겁니다.

공공 대사는 확실한 패였다.

그를 이용한다면 목표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계획대로 될 것 같으냐?”

- 변수만 없다면 그렇게 되겠죠.

변수.

여러 가지를 상정하고 있었다. 공공 대사는 분명히 강하지만 온전한 정신을 가진 것은 아니다. 상단전을 열어 하늘의 지식과 맞닿는 것은 위험하다. 거기다 그는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예상하지 못한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컸다.

“미리 움직여야겠군. 그가 나서기 전에 말이야.”

- 예, 그러도록 하죠.

영령이 일어선다.

그녀가 향한 곳은 창문이 있는 곳이다. 마침 창문은 북서쪽으로 뚫려 있었다. 그곳엔 신강이 있다. 그리고 신강에는… 마교가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을 끝낼 때가 됐어.’

천마신교의 신녀는 미래를 본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미래를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신녀 중 최고의 재능을 가졌다고 알려진 천도신녀가 현재의 상태가 됐을 리가 없었다. 그것이 기회였다. 미래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파악하여 예측하고, 그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마신교의 신녀 영령은 미래를 예측했다고 할 수 있었다.

딱 하나만 빼고 말이다.

‘그 사람은…….’

문득 한 사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과거와 전혀 다른 외형. 심지어는 내부도 변화가 있는 듯했다. 그 사내가 걱정되느냐? 연모의 감정이 남아 있느냐? 그것을 묻는다면 영령은 대답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었다.

‘내가 해 줄 일은 더 이상 없어.’

삶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 단목장룡을 마주하더라도 중원에서 떠나라느니 설득하진 않을 것이다. 그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했으면 좋겠지만, 괜한 일에 휘말린다 하더라도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영령에겐 과거의 인연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죽진 않았으면 좋겠네.’

* * *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다니, 어리석구나.”

공공 대사는 단목장룡을 보며 그리 말했다.

꼭꼭 숨어 있어도 모자랄 판국에 이렇게 직접 모습을 드러낸다? 자기 힘을 과신하는 것일까? 아니면 공공 대사를 무시하는 것일까? 어떤 이유든 간에 단목장룡은 큰 실수를 했다. 공공 대사가 소중히 여기던 것을 훔쳐 갔다. 그 죄는 목숨으로도 다 속죄하지 못하리라.

그는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감히 선조의 말에 반기를 들어 단전이 파괴되어 면벽 참회를 하는 소림의 방장 대허 선사처럼 말이다.

“글쎄요.”

단목장룡은 공공 대사의 압도적인 기운에도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공공 대사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래도 한 가닥 재주는 있는 듯했다.

하지만 재주는 재주일 뿐이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결국 무릎을 꿇고 말 것이다.

“네놈에게 물어볼 것이 많군. 이야기는 조용한 곳에 가서 하도록 하지.”

공공 대사가 신형을 움직였다.

이미 공공 대사는 단목장룡이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들었다. 화경이 무엇이냐? 육체가 새로이 태어나 이제껏 익혀 왔던 무공에 최적화된 신체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화경에 올랐다고 하여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강호 무림에서 화경의 경지는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후의 경지라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화경에도 급의 차이가 있으며, 다음 단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화경의 고수들은 분명히 계속 발전하긴 한다. 다만, 이제부턴 초식을 익힌다거나 내공을 늘린다거나 하는 일차원적인 방법으론 급격한 발전을 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화경의 고수들은 저마다의 깨달음을 얻어 환골탈태를 경험했다. 일 년을 매일 수련해도 성과가 매우 미미하다면?

일 년이 아니라 십 년이라면?

십 년이 아닌 이십 년이라면?

대부분 화경의 고수는 거기서 정체된다. 그들이 노력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도를 하며 무공을 수련한다. 다만, 노력만큼의 대가를 얻지 못할 뿐이다. 극마에 오른 암천회주가 과거의 독기를 버린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제 갓 화경에 오른 단목장룡은 금방 제압할 수 있으리라.

공공 대사는 오백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왔다. 거기에 천도신녀와의 인연으로 상단전까지 개방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단목장룡이 현 무림 최고의 재능이라 불린다고?

그건 공공 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림에서 달마 이후 최고의 기재로 평가받으며 전폭적인 지원 아래서 성장했다.

거기에 단목장룡과 비교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업(業)을 쌓아 왔다.

강철 따위는 우습게 파괴하는 주먹이 단목장룡의 복부에 근접한다. 공공 대사의 움직임을 눈치챈 이들은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화산과 무당의 장문인뿐이다. 그들은 공공 대사와 대허 선사의 싸움을 지켜보았었다.

- 대청 진인! 더 지켜볼 셈이오?

화산의 장문인 적하 진인이 대청 진인에게 전음을 보낸다. 이대로 새롭게 피어나는 무림의 영웅을 내버려 둘 것인가? 무당과 화산의 자존심이 걸려 있어 나서지 못한 두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리 그래도 헛된 죽음을 만들 순 없다.

- 후배를 구합시다. 더는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닌 것 같소.

대청 진인의 결단에 적하 진인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배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쿵!

지축을 울리는 굉음.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소리에 모두가 귀를 틀어막았다. 당연히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단목장룡의 검과 공공 대사의 주먹이 부딪친 것일 뿐이다.

두 사람이 밟고 있는 대지는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무슨……?”

적하 진인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공공 대사의 주먹엔 소림사의 극의가 담겨 있었다. 현 무림의 최고라 언급되는 대허 선사도 공공 대사의 주먹엔 정면으로 대항하지 못했었다. 흘려 내고 피해 냈을 뿐.

그러나 단목장룡은 달랐다.

한 자루의 검으로 공공 대사의 주먹을 막아 낸 것이다.

“하?”

가장 놀란 것은 두 사람이 아니었다.

바로 단목장룡에게 주먹을 내지른 공공 대사였다. 그 또한 화경의 고수이니 이것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토록 쉽게 막아 낼 것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공공 대사는 대야반야금강공을 대성했다. 그 말인즉슨…….

“검강으로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 주먹이라……. 금강불괴에 가까워졌군요.”

단목장룡의 말에 공공 대사의 눈썹이 꿈틀한다.

“가까워졌다고?”

“예.”

두 사람은 힘과 힘으로 서로를 밀어내며 시선을 마주했다.

“이 몸은 이미 금강불괴의 경지에 올랐다.”

금강불괴라는 말에 무림맹에 모인 모두가 경악한다.

전설상의 경지.

어떤 것으로도 베어 낼 수 없다는 그 극한에 달한 육체는, 소림사의 전설이었으며 무림인들에게 환상과도 같았다. 공공 대사가 그러한 경지에 올랐다? 사실 예상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그 말을 들으니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금강불괴는 어떤 것에도 베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네 검으론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는 말이지.”

지금도 단목장룡의 뇌왕검과 공공 대사의 주먹에선 거대한 기운이 발산되고 있었다.

사실 기와 기가 충돌하고 있을 때,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기를 제어하는 것엔 막대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두 사람의 경지가 어느 정도 뛰어난지 방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대사님의 손에선 피가 흐릅니까?”

공공 대사의 등줄기에 오싹함이 스쳐 간다.

분명 허세일 것이 분명한 말이다. 예리한 뇌왕검과 마주한 그의 주먹은 굳건하게 쥐어 있었다. 어떠한 상처도 찾아볼 수…….

찌릿!

마치 바늘에 찔린 듯한 고통이 팔목과 목을 타고 뇌리로 전해진다. 대야반야금강공을 대성한 후엔 이제껏 어떤 고통도 느껴 보지 못했다. 이젠 어색해진 그 감각에 공공 대사가 저도 모르게 거리를 벌리고 말았다.

힘과 힘 싸움에서 먼저 물러난 것은 공공 대사였다.

당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무림맹의 군중들은 멍한 눈으로 단상 위를 올려다볼 뿐이다.

- 두 분께서는 맹원들을 물러나게 해 주십시오. 인명 피해가 나지 않도록 말입니다.

단목장룡의 전음이 대청 진인과 적하 진인의 귀에 닿는다.

부탁이었지만, 보통 명문 거파의 장문인에게 저리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평소였다면 호통을 쳤을 일이었지만…….

“…….”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때 남궁일몽과 설비연을 비롯한 흑룡단원들이 군중을 물러서게 한다. 단목장룡은 그들에게도 전음을 보냈다. 그들은 단목장룡의 명령에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는다. 맹원들을 물러서게 하는 이들 중에는 당옥정과 당용아도 있었다.

“모두 물러나십시오!”

“죽을 수도 있다! 물러서라!”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군중이 단상과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멍하니 단상을 바라보던 두 장문인도 두 주먹을 꽉 쥐더니 결국 단목장룡의 부탁을 따른다.

“단상과 떨어지시오-!”

그래도 이들은 평범한 군중이 아니었다. 무림맹이라는 집단에서 명을 수행하는 무인들이었다.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금세 단상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단목장룡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공공 대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허허……?”

공공 대사의 표정은 참으로 볼만했다.

어이없음과 황당함이 담겨 있는 그 표정. 그리고 그 깊숙한 내면에는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의 손등엔 길쭉하지만 얕은 상처가 있었다. 몇 방울 피가 새어 나왔지만 그리 크다곤 할 수 없는 상처였다. 그러나 공공 대사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건 당연했다.

자신의 육신이 금강불괴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떤 것으로도 자신을 해할 순 없다고 여겼었다.

단목장룡의 검에 상처가 난 시점에서 이미 금강불괴가 아니게 된 것이지만 말이다.

공공 대사가 묻는다.

“검강을 압축한 것인가? 아니면 검환(劍環)을 사용한 건가? 대체 뭐지?”

“그게 중요합니까?”

“…….”

공공 대사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단목장룡을 응시했다.

대답을 듣겠다는 듯이.

“대답을 해 드리자면 검강입니다.”

“검강이라……?”

공공 대사의 눈썹이 꿈틀한다.

물론, 검강이라는 것도 다 같은 검강이 아니다. 무공마다 경지마다 활용할 수 있는 검강의 수준이 달라지니까. 하나, 단목장룡의 수준이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올라와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단목장룡은 이제 삼십 년도 채 살지 않은 어린 애송이였으며,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무공도 아닌 단목세가의 무공을 익혔고, 심지어 상단전을 개방하지도 못했다. 심득의 차이나 깨달음의 차이 또한 월등하다는 말이 된다.

그렇기에.

지금 공공 대사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네놈, 천도신녀의 은혜라도 받은 것인가?”

삼십 년의 깨달음이 얼마나 미천한 것인지는 공공 대사 또한 알고 있다. 또한,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무공이라 할지라도 단목장룡의 저러한 실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공 대사를 이해시킬 단 하나의 방법.

바로 단목장룡 또한 상단전을 개방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물론, 천도신녀가 현재 병상에 누워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주도면밀한 여인이라면 어떤 방법으로든 훗날을 도모했으리라.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성장한 단목장룡을 설명하려면 그것밖에 없었다.

“상단전이라는 게 어떤 건지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역시 네놈은…….”

“우주의 진리를 엿본다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하긴 했지요.”

“본 것인가?”

“아뇨.”

공공 대사의 눈썹이 꿈틀한다.

“대사님을 보고 있으니 굳이 상단전을 열어 보게 된다는 우주의 진리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군요.”

명백한 도발.

공공 대사는 단목장룡을 보며 천도신녀의 은혜를 입은 것을 의심했다. 그런데 단목장룡은 자신을 보면서 그것이 꼭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것이 공공 대사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감히… 고작해야 내 몸에 상처를 낸 것으로 기고만장하구나.”

그의 피부가 잿빛으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오랜 세월 쌓아 온 거대한 내력이 피부에 깃든다. 마치 담금질된 강철과도 같은 빛깔은 내는 그의 피부는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해 보였다.

“격의 차이가 무언지 알려 주도록 하마.”

본격적인 실력 행사로 단번에 단목장룡을 짓이겨 버릴 생각이다. 그래야지만 상처가 났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잿빛으로 뒤덮이는 공공 대사를 바라보며, 단목장룡은 무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이제 좀 벨 맛이 날 것 같군요.”

단목장룡의 뇌왕검에 공공 대사의 잿빛 기운과 같은… 아니, 그것보다 더욱 진하고 위험해 보이는 잿빛 검강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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