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7화 〉 357화 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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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AVN 최고작품상이라는 트로피가 있었다. 물론 모조였다. 하지만 원래 진짜 트로피도 엄청 고급스럽게 만드는 건 아니었다. 그냥 있어보일뿐 재료는 모두 싸구려였다.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중요한 것이었다.
트로피에는 호사카 켄토의 이름까지 새겨져 있었다.
“이거 미래에 받을걸 미리 받은 느낌이군.”
제인 먼데일은 호사카의 품에서 사랑스럽게 속삭였다.
“감격했어요?”
“조금.”
진짜 트로피는 호사카가 미국의 상류층에도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가짜 트로피는 제인 먼데일이 호사카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를 의미했다. 한 여자에게 이런 사랑을 받고 있는다는 것도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니었다.
“어쩜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했지?”
“내가 호사카 사장님에게 해줄 수 있는건 이런 것 밖에 없으니까요.”
“아니. 이걸로 충분해.”
호사카와 제인 먼데일은 서로 꼭 안았다.
“저도 보고 싶어요. 사장님이 미국 포르노 업계에서 정정당당하게 인정을 받는 모습을요.”
제인 먼데일은 호사카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호사카는 참을 수 없어서 한번 더 그녀의 섹스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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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는 혼자서 빅3 중에 하나에 속하는 플레이걸로 향했다. 플레이걸은 여자들만 벗기는 곳으로 그곳에서 활동하는 모든 여자는 사장 휴스턴 헤프너의 섹스 파트너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은 드루 디아즈가 임대를 갔고 그녀를 대상으로 하는 포르노가 제작 중이었다.
‘이렇게 하나씩 쌓아가는거지.’
힘으로 꺾으려고 하면 오히려 부서질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럼 그 끝에는 부스러기가 된 포르노 업계를 얻을 뿐이었다.
호사카는 이제 포용력으로 온전히 포르노의 제왕이 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사카의 앞에 플레이걸의 기획 팀장은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호사카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기획 회의는 쉬웠다.
오래 함께 일한 휴스턴 헤프너의 취향을 맞춰주기만 하면 되었다. 동네에 하나쯤 있을만한 섹시한 웨이트리스, 남학생들의 딸감으로 사용되는 선생님, 바니걸. 이런 컨셉을 꼴리게 연출하면 되었다.
약간 촌스러운 감성을 추가하는 것도 좋았다. 휴스턴 헤프너는 무려 1953년부터 이 일을 하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그런걸 좋아했다. 그리고 나이가 든 남자들은 휴스턴 헤프너의 감각을 따라가며 충실한 팬층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눈 앞에 있는 호사카는 포르노 업계에 데뷔하자마자 성공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슈퍼 루키였다. 그리고 그는 젊은 감각에 미래를 보고 온 것 같은 아이디어로 중무장해 있었다.
“음. 저희 드루 디아즈를 가지고 애매한 포르노를 만들거면 안만드는게 차라리 나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네, 호사카 씨의 말대로죠.”
기획팀장은 자신의 머리를 너무 열심히 쓰다듬다보니 손가라에 갈색 머리카락이 한가득 끼어 있었다.
‘서양인은 탈모가 심하다던데. 저 아저씨도 조만간이군.’
탈모의 원인이 되고 있는 호사카는 그냥 계속 압박을 할 뿐이었다. 그는 이미 미스 허슬러를 거치면서 밥값 못하는 직원을 조지는 것에 물이 올라 있었다.
“포르노도 예술이죠. 그리고 예술에서 했던 것을 또 반복하는 것만큼 슬픈게 어디 있습니까. 뭐라도 새로운 것을 조금이라도 넣어야죠. 그래야 보는 남자들도 신기해서 꼴릴게 아닙니까.”
기획팀장은 벌써 휴스턴 헤프너가 그리웠다. 휴스턴 헤프너는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만큼 감이 있었다. 매니아층을 유지할 정도의 능력은 되었다.
기획팀장의 모든 능력은 휴스턴 헤프너를 기준으로 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호사카가 그걸 바꾼 것이다. 기획 팀장은 그게 힘들었다. 그는 플레이걸에서 수십년간 일을 했고 이제 무언가를 바꿀만한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호사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면 도태되어야지. 왜 한 자리 차지하고 높은 연봉을 받아가며 젊은 사람들 기회는 빼았냐 말이지.’
그게 호사카의 생각이었다. 기획팀장은 호사카가 지금까지 선보인 포르노들을 생각했다. 호사카의 커리아가 곧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어떨때는 도전적이었고.
어떨때는 드라마적었다.
스포츠 같을때도 있고 영화 같을때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는 절대 포르노를 보는 남자들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았다. 하나의 시리즈에 익숙해질때쯤이면 그는 늘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왔다.
‘그럼 나도 그래야 하나?’
기획팀장은 다시 자신의 머리를 북북 긁었다.
그리고 드루 디아즈는 확실히 좋은 소재였다. 포르노 배우로 쓰기 아까울 정도였다.
아역 스타로 화려한 성공. 마약까지 하는 사고뭉치. 포르노 스타로서 화려한 재기.
영화판에서 드루 디아즈에게 러브 콜이 계속 오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드루 디아즈는 그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포르노 판에 남았다.
이런 여자를 잘 쓰지 못한다면 호사카가 아니라 포르노 팬들의 분노에 기획팀장이 처형될지 몰랐다. 드루 디아즈는 최근 서큐버스 시리즈의 주연을 맡으면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었다.
기획팀장은 잠깐 회의 중단을 요청했다. 그도 짬밥이 있어서 무작정 끌려다니지는 않았다.
“저기 호사카 씨. 아무래도 아이디어가 너무 안나오는데 잠시 쉬는 시간을 가져도 될까요? 잠깐 쉬다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
“보통 마감이 있을때 성과는 더 잘나오더라구요. 그럼 쉬는 시간도 미리 정하시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합니까?”
“일단 호사카 씨의 작품을 분석할 시간은 있어야겠네요. 대표작들만 훑어도 3일은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기획팀장에게는 다행스럽게 호사카는 3일의 시간을 주었다.
기획 팀장은 당장 포르노 렌탈샵으로 가서 호사카의 대표작을 모두 빌려왔다.
‘이거 다른 회사의 작품을 보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기획 팀장은 회사의 작은 방에서 포르노를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분석을 위해서 시작한 일에 어느 순간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또한 처음부터 하던 일만 반복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도 처음에는 포르노 업계에서 잘나가고 싶었고 포르노 여배우들과 썸씽을 꿈꾸는 남자였다.
그리고 호사카의 포르노는 그에게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는 호사카 같은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반의 반이라도 따라하고 싶었다.
기획팀장은 오랜만에 정말 꼴리는 포르노를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물론 휴스터 헤프너의 철칙대로 남자 포르노 배우를 출연시키는 것은 안될 일이었다.
하지만 레즈비언 포르노도 제대로 한 번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3일이 지났다.
기획 팀장은 휴스턴 헤프너가 아니라 자신이 꼴릴만한 기획을 여러개 가지고 왔다. 호사카는 기획안을 읽어보고 너무 구닥다리거나 별로 같은 것은 바로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기획 팀장이 올린 수십개의 기획안 중에 살아남은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기획 팀장의 머리카락이 살아있는 것보다 없어진 것이 더 많아질 무렵 호사카는 말했다.
“그래도 확실히 휴식을 취하더니 좀 더 나아지기는 했네요. 기획팀장님.”
확실히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는 보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던대로 휴스턴 헤프너의 입맛이 아니라 스스로의 취향에 솔직해지려고 노력했다.
미래에 한 거장 영화 감독이 말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는 포르노 업계에서도 동일했다. 스스로의 성적 취향에 솔직하지 못하면 절대 새로운 것은 나올 수 없었다.
호사카는 살아남은 기획안을 토대로 각본 회의를 계속 진행시켰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하던 휴스턴 헤프너는 그 기획안을 보고 말했다.
“레즈비언 포르노 컨셉이군.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섹스를 한다라. 한 명은 원래 부인이고 한명은 바람을 핀 여자인가?”
“네, 그렇습니다.”
“마음에 드는군. 지금까지 플레이걸에서 내놓던 포르노와는 스타일이 좀 다르지만… 결혼 후에 벌어지는 섹스 스토리는 오히려 우리 팬층과 또 맞아떨어질 것 같군.”
“맞습니다. 저희 팬들은 대부분 플레이걸을 보고 자랐고 이제 유부남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죠. 결혼 후의 섹스 이야기를 반길겁니다.”
기획팀장은 호사카에 이어서 휴스턴 헤프너까지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휴스턴 헤프너는 호사카를 보며 말했다.
“미리 한가지 말을 해두고 싶군. 호사카 씨.”
“뭡니까?”
“비록 플레이걸에서 흥행을 위해 드루 디아즈를 빌리고는 있지만 정당한 대가는 지불하고 있지. 그렇지 않소?”
“네, 맞습니다.”
“그리고 드루 디아즈는 언제든지 우리 회사를 떠날 수 있는 존재고.”
“맞는 이야기죠.”
“그럼 이번 포르노에서도 드루 디아즈는 홍보에는 도움을 주고 우리 여배우를 빛나게 해주는 선에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군.”
호사카는 피식 웃었다. 레리 레이건처럼 뒤에서 개짓거리를 하는 것보다 앞에서 미리 당당하게 밝히는게 더 낫기는 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호사카의 행보를 가로막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호사카와 휴스턴 헤프너는 경쟁자이자 동업자였다.
“그렇다고 일부러 연기를 못할수는 없지 않습니까. 원하신다면 발연기를 해드릴수는 있지만.”
“그건 우리 촬영진이 알아서 할테니.”
“그럼 저희도 일단은 흥행을 위해서 연기는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휴스턴 헤프너는 호사카를 돕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업계 1위를 지키는 것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두 남자는 웃으면서 기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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