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7화 〉 387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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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선거는 곧 돈의 역사였다.
돈을 많이 투자한 쪽이 자신의 정치가를 더 화려하게 뽐낼 수 있었다. 대중들은 돈이 많이 들어간 홍보에 더 환호했다.
미국은 정치권이 자본가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가지 제도적인 노력을 했다.
그리고 최근이라 할 수 있는 1979년에 미국은 지역 선거 캠페인을 위한 소프트 머니를 무제한으로 모금할 수 있게 했다. 소프트 머니는 선거 관련법이 정해 놓은 한도 외에서 모금한 자금을 뜻했다.
과거에는 선거 관련법으로 모금한 하드 머니만 모든 선거에서 사용될 수 있었는데 그게 바뀐 것이다.
이 법이 개정된 이후에 각 정당은 정치를 이기기 위한 목적으로 수백만 달러의 소프트 머니를 부자와 기업, 노조로부터 모금을 했다.
그리고 소프트 머니는 하드 머니로 유입이 되어 정치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대다수의 국민이 아무리 돈을 모아서 정치를 후원한다고 해도 부자들이 던지는 거금은 이기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빌리 클린턴은 호사카의 돈을 받게 되면 고민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었다.
“물론 포르노 산업이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그 돈을 받고 공화당으로부터 공격을 받는게 더 걱정이 되는게 현실이죠.”
그리고 호사카는 빌리 클린턴의 말과 전혀 다른 대답을 꺼냈다.
“빌리 주지사님. 왜 민주당이 매일 지는 줄 아십니까?”
“네? 무슨 말입니까? 포르노 업계의 이권과 관련된 이야기입니까?”
“지금은 관련이 되지 않았죠.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빌리 클린턴은 일단 경계했다. 주지사는 꽤나 높은 자리였다. 그리고 빌리 클린턴을 현혹시켜서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호사카는 빌리 클린턴의 의심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대범하게 웃었다.
지금 분위기가 그를 설득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민주당이 공화당에게 지는 이유는 선거를 이기는 것보다 자신의 정치 철학을 말하는걸 더 중히 여겨서 그렇습니다.”
호사카의 말은 빌리 클린턴에게 한 사람을 떠올렸다.
마이크 두카키스.
민주당에서 고결한 정치를 하고자 했던 남자. 그는 이전에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고 공화당의 비열한 선거 전략에 희생되었었다.
“민주주의는 누가 더 뛰어난 정치가인지 판별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대중의 선택을 받는 자리고 대중은 뛰어난 정치가를 매번 선택할 능력이 없습니다.”
“지금 미국의 국민을 모욕하는겁니까?”
“사실을 말하는겁니다. 일단은 이겨야 합니다. 이긴 이후에 자신의 더러운 면은 숨기고 깨끗한 정치를 해야 합니다.”
빌리 클린턴은 호사카의 말에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원래도 그는 선배들의 과오를 선생 삼아 자신의 정치 전략을 바꾸는 남자였다.
호사카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말했다.
“빌리 주지사님은 방금 포르노 산업에서 돈을 받는다는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공화당 모르게 돈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했어야 합니다.”
빌리 클린턴은 등에 전율이 돋았다. 20대 중반을 향하고 있는 이 젊은 포르노 스타에게 정치적인 가르침을 받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빌리 클린턴은 말했다.
“그럼 후원은 얼마나 하려고 합니까?”
“600만 달러.”
“쿨럭!!”
빌리 클린턴은 담배의 연기를 헛기침으로 뱉어내었다. 민주당에는 다양한 산업에서 어마어마한 정치 자금이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600만 달러라면 그 중에서도 많은 돈이었다.
“호사카 씨. 정치 자금은… 속된 말로 하자면 베팅입니다. 제가 앞으로 더 크게 된다면 더 큰 배당으로 돌아오겠죠. 하지만 제가 무슨 스캔들이라도 터져서 망하게 된다면 그 거금은 순식간에 휴지쪼가리가 되는겁니다. 정치에 후원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빌리 클린턴은 호사카가 정치에 대해 가르침을 준 이후 그를 포르노 스타 이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빌리 클린턴이 말한 이유 때문에 부자들은 하나에만 거금을 투자하지 않았다. 큰 부자들은 공화당, 민주당, 신진과 기성 정치인 모두에게 골고루 투자했다. 작은 부자들은 잃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금액만 한 정치인에게 투자했다.
부자들에게 정치판은 하나의 거대한 도박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600만 달러는 한 20대 청년에게 너무 큰 돈이었다. 그리고 호사카는 빌리 클린턴에게 단독으로 몰빵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빌리 주지사님. 저도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보는 눈입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 뒷통수를 안칠만한 사람을 알아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죠.”
“그럼 호사카 씨가 보기에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큰 일을 할 사람으로 보이는군요. 무슨 짓을 해도 옆에 있어야 할.”
빌리 클린턴은 호탕하게 웃었다.
모든 것이 호사카의 말대로였다. 포르노 업계에서 돈을 몰래 받고 그 정치 자금으로 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약속하죠. 이번 대선이 아니라 다음 대선에는 승부수를 띄워보겠습니다. 6년만 기다려주시죠.”
“빌리 주지사님. 사람의 일이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저야 1년이든 10년이든 잘 기다리겠습니다.”
두 남자는 강하게 악수를 했다. 처음에 그들이 나누었던 포르노 스타와 정치인의 악수가 아니었다. 동료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신뢰의 악수였다.
그리고 힐다 클린턴은 이 두 남자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미국의 역사를 바꿀만한 만남을 보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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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항상 포르노 업계를 적대시해왔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다른 업계에서 받을 돈도 많으니 포르노 업계의 돈이 아쉽지 않았다. 그리고 포르노 업계를 도와주는 것보다 적대시하는게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데 더 좋았다.
그리고 호사카는 포르노 업계 전체를 위해서 일하는데 그걸 개인의 사비로만 해결할 생각은 없었다.
‘좋은 일은 모두 같이 해야하지 않겠어?’
호사카는 제인 먼데일을 통해서 빅 3의 사장들을 모두 모았다. 이 사장들은 이제 좋으나 싫으나 호사카의 말에 순순히 나왔다. 호사카가 빅 3 회사 안에서 심어둔 여배우들의 영향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휴스턴 헤프너가 먼저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이오?”
호사카가 빅 3 사장들을 부를때는 항상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휴스턴 헤프너는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2년 뒤가 대선이죠.”
그리고 호사카는 이번에도 빅 3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미리 정치 후원금을 좀 넣죠.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레리 레이건은 머리를 북북 긁으면서 말했다. 그는 미래에 대통령 선거까지 출마할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많은 자였다.
“우리가 그걸 몰라서 안한건 아니오. 일단 정치인들은 우리 돈을 받는 것을 꺼려하고.”
“돈을 받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돈을 넣어봐야 대통령에서 떨어지면 말짱 꽝이지. 그리고 푼돈은 넣어봐야 티나 안나지.”
“그러니까 확실한 후보에게 미리 돈을 넣어놔야죠.”
레리 레이건은 반론을 펼치려고 했으나 호사카는 그의 말이 끝나는 족족 막아내었다.
프레드릭 파인더가 말했다.
“그래서 누굽니까? 우리 돈을 받고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만약 호사카의 말대로만 된다면 포르노 업계에서는 바랄게 없었다. 이미 메이건 정부에서 포르노 업계는 두들겨 맞을대로 맞은 상태였다.
무슨 성범죄만 일어났다고 하면 정치인들은 포르노 탓을 했다.
“당연히 민주당이구요.”
공화당은 보수적인 색이 강해서 차라리 민주당이 포르노 업계와 잘 어울렸다.
“현재 아칸소의 주지사를 맡고 있는 빌리 클린턴입니다.”
호사카의 말이 끝나자 세 명의 사장들은 각자 머리를 굴렸다.
“빌리. 빌리.”
“확실히 민주당에서 다음 대선 후보로 거론이 되고 있기는하지.”
“하지만 요즘 공화당이 워낙 강세여서.”
휴스턴 헤프너가 물었다.
“후원금은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있소?”
“각자 200만 달러는 냅시다. 그래야 정치가들도 우리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을테니까.”
사장들은 눈을 크게 떴다. 그들에게도 200만 달러를 갑자기 일시불로 지불하라는건 작은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정치 후원금은 성공하면 잭팟, 실패하면 휴지쪼가리가 되는 큰 도박이었다.
호사카는 빅 3의 사장들이 몸을 사릴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한 방책도 생각해 놓은 것이 있었다.
“역시 다들 사업 하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손해는 안보려고 하네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정치권과 변변한 연줄도 없죠. 그럼 이렇게 합시다. 빌리 클린턴이 2년 후에 대통령이 안된다면 제가 600만 달러를 고스란히 돌려드리겠습니다.”
빅 3의 사장들은 모두 놀랐다. 그들은 호사카가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알고 있고 600만 달러는 무리를 하면 충분히 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그 어떤 사업가도 600만 달러를 0 달러가 될 수 있는 도박에 베팅을 하지는 않는 법이었다.
레리 레이건이 입술을 손으로 훑으며 말했다.
“쓰읍. 우리에게는 너무 좋은 조건이야. 그리고 말도 안되는 계약이기도 하고. 하지만 구미가 당기는건 어쩔 수 없군.”
다른 사장들의 마음도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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