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쿄 섹스킹 야동 만드는 남자-477화 (477/551)

〈 477화 〉 477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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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는 미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충분히 알았다.

하지만 그는 기껏 한국까지 와서 도망치듯이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듣지 않을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다.

호사카는 역경이 닥칠수록 더욱 흥미를 느끼고 달려드는 성격이었다. 일본에서 그는 AV 업계에 아무 인연이 없는 야쿠자였지만 결국 AV 업계를 지배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을 받는 옐로우 몽키일 뿐이었지만 결국 모든 백인과 흑인의 존중을 받는데 성공했다.

한국의 씹선비와 예수쟁이들의 공격은 오히려 호사카가 한국을 더 바꾸고 싶게 만들뿐이었다.

호사카는 대사관에 요청해서 보디가드 하나를 요청했다. 한국은 총기가 없기 때문에 미국보다는 안전했지만 역시 폭력 사태가 벌어졌을때 그 대신에 주먹을 휘둘러줄 사람이 필요했다.

대사관에서는 적당한 미군을 한명 주선해 주었다. 키는 190이 넘어보이고 떡대가 어마어마해 보이는 백인 남자가 왔다. 전직 특수부대 출신으로 외교관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호사카 씨. 만나서 영광입니다.”

그는 호사카의 포르노를 알고 있었고 그의 팬이기도 했다. 그는 섹스로 여자를 가버리게 만드는 남자를 존중할 줄 알았다.

세 남자는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와서 가이드가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보디가드는 사방을 주시하면서 혹시 불청객이 있을지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교복을 입은 소년이 호사카에게 다가왔다. 그는 고등학생 정도로 되어 보였다.

“호사카 씨?”

보디가드가 학생의 앞을 막아섰다.

“괜찮아요. 무기도 없어보이는 학생인데.”

보디가드는 물러났다. 학생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호사카가 봤을때 이 학생은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호의로 가득했다.

“팬입니까?”

“네, 팬이에요!”

호사카가 웃어주자 학생은 마치 스타를 만난 사람처럼 행복해 했다.

“학생이면 아직 포르노를 볼 나이는 아니지 않나요? 미국에서도 성인이 되어야 포르노를 볼 수 있는데.”

학생은 잠깐 얼었다.

“농담이야. 한창 혈기왕성할때. 여자랑 섹스를 못하면. 포르노라도 보면서 풀어야지. 한국은 학생끼리 섹스를 하는게 더 힘들거 아니야.”

그리고 호사카가 말을 편하게 놓으면서 학생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학생은 한번 긴장했다가 풀리니 더욱 호사카를 친근하게 느꼈다.

“그나저나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거야?”

“방송국에서 이미 다 말하더라구요. 호사카 씨가 미 대사관으로 갔다고. 그리고 그는 외교관 신분으로 미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구요. 그래서 택시를 타고 바로 달려왔죠.”

“그 이유는?”

학생이라면 돈이 얼마 없다. 용돈을 받아봐야 여기까지 오는데 모두 사용했을 것이다.

“그냥 호사카 씨가 보고 싶어서죠. 호사카 씨는 제 롤모델이거든요.”

“힘든 길을 선택했네. 하지만 힘내라. 평생 100번 정도 섹스를 한 남자보다 1억번 섹스를 한 남자가 더 행복한 것은 확실하니까.”

“네!”

호사카는 가이드에게 물었다. 그는 택시 하나를 잡고 가만히 서 있었다.

“혹시 돈 좀 있습니까? 조금만 빌립시다.”

“돈이요? 아, 손님에게 돈을 드리기는…”

가이드는 망설였다. 한국에서는 전국민의 적으로 목표가 된 호사카였다. 자신은 회사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가이드 일을 하는 것 뿐이었다. 호사카에게 호감을 가지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여행객이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주는 것도 이상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호사카는 바로 보디가드에게 영어로 물었다.

“한국 돈 있습니까? 나중에 갚을게요.”

보디가드는 호사카가 얼마나 부자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부자에게 빚을 지우는 것은 나중에 크게 돌아올 가능성이 컸다.

“있습니다.”

보디가드는 아예 자신의 지갑을 꺼내서 호사카에게 주었다. 호사카는 지갑에 있는 만원권만 모두 뽑아서 학생에게 주었다. 대충 10만원이 약간 넘는 금액이었다.

“용돈이니까 받아서 집까지 편하게 가고. 맛난 것도 사먹고. 잘 커서. 여자 많이 따먹고 살아라.”

“네! 감사합니다!”

학생은 허리를 깊이 숙였다.

호사카는 남자 셋과 택시를 탔다. 보디가드는 앞에 타고 가이드와 호사카는 뒤에 탔다. 호사카는 기사에게 말했다.

“여의도로 갑시다.”

여의도는 한국 금융의 중심지였다. 당연히 미국 은행의 한국 지점도 있었다. 호사카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현금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호사카는 은행에서 빳빳한 만원권을 100장씩 인출했다. 세 묶음이었다. 그는 하나는 보디가드에게 주었다.

“빌린 돈입니다.”

“감사히 받지요.”

가이드는 빌려준 돈이 수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눈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 자신의 선택에 깊이 후회했다.

그리고 호사카는 가이드에게도 100만원을 주었다.

“이건 여행할때. 경비를 쓸 돈입니다. 모자라면 말하고. 삥땅은 치지 마세요. 여행이 만족스러우면 이만큼 보너스로 드리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서 장지갑 하나만 사오시겠어요? 오랜만에 돈을 많이 들고 있으려니까 좀 귀찮네요.”

미국에 있을때는 제인 먼데일이 필요한 것은 모두 결재를 해줘서 지갑이나 돈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가이드는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적당한 명품샵에 가서 남자가 쓸만한 장지갑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호사카는 장지갑에 두툼한 100만원을 가득 넣어두었다.

가이드는 의욕이 넘쳐서 말했다.

“그럼 어디로 모실까요? 호텔? 아니면 레스토랑?”

“일단 카페를 좀 갑시다.”

여의도에는 적당한 카페도 많았다. 그곳에서 호사카는 자신이 한국에 와서 가이드를 고용한 이유를 말했다.

“나는 한국의 밤문화가 궁금합니다. 도대체 포르노 배우를 이렇게까지 반대하면서 자기들은 어떻게 사는지 말입니다.”

“아, 밤문화 말입니까? 이제야 왜 제가 호사카 씨를 모시게 되었는지 알 것 같네요. 그거라면 제 전문이죠.”

제인 먼데일은 역시 일을 잘했다. 그녀는 밤문화에 잘알고 있는 가이드를 어떻게 찾아내어서 호사카에게 붙여준 것이었다.

가이드는 시원한 아이스 커피로 목을 가다듬더니 한국의 밤문화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한국은 조선의 기생 문화가 변형이 된 것이죠. 기생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료테이라고 해서 고급 음식점에서 성을 접대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죠. 고급 요리를 먹고 술도 마시고 잠자리까지 같이 하고.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먼저 조선과 일제강점기 시절의 이야기부터 간략히 나왔다. 가이드는 원래 남자 여행객에게 이런 것을 전문으로 안내하는 것인지 전문가처럼 술술 말이 나왔다.

“그 다음으로는 50년대 말 쯤일까요. 북악산에 요정3각이라고 해서 요릿집이 들어섰죠. 거기서 대통령이니 국회의원이니. 다른 나라에서 귀한 손님을 오면 대접을 하니 난리도 아니었죠. 원래 나랏님이 콩밥을 먹으면 백성들도 다 콩밥을 따라 먹는다고. 높은 사람들이 그렇게 노니까 그런 가게가 점점 퍼져나갔구요.”

가이드는 눈을 감고 한국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 밤문화 또한 역사와 함께 이어져온 일부였다.

“그러다가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그놈들은 외화벌이에 눈이 멀었었죠. 그런데 그때만해도 공장이 있나 고속도로가 있나. 먹고 살 돈도 없으니 어디 투자할 돈도 없고. 투자를 안해도 외화를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았죠.”

세상에 투자를 적게 하고 돈을 많이 버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생관광이라도 들어보셨으려나?”

“언뜻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호사카는 회귀 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일본의 한 성인잡지 찌라시에서도 봤다. 한국에 가면 적은 돈으로 황제처럼 놀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일본돈 천엔이 한국에서는 만원이라는 것도 있었다.

“기생관광이 엄청났죠. 일본에서도 손님이 많이 왔었습니다. 그때 저도 돈을 좀 만지기도 했구요. 그러다가 한 여자 접대부가 총에 맞고 죽었죠. 나라가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 여자 이름이 뭐다라. 정인… 뭐였는데. 어쨌거나 손님이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보다 더 요란스러웠으니까.”

이게 1970년대까지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1980년쯤부터 강남이 개발되고 룸살롱이라는 것이 나왔죠. 원래 기생이 있는 요정은 온돌방에 가야금에 전통춤에 한복을 입은 기생을 만지고 노는 곳이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서양 문화가 막 들어오더니 소파에 드레스를 입은 여종업원에 기타 소리를 들으면서 여자를 만지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그쪽이 원래 미국물을 먹은 놈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 영향이 있었을겁니다.”

그 후의 이야기는 룸살롱의 전성기였다.

강남을 일대로 수많은 룸살롱이 생기고 조직폭력배들이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고 놀다가 4명이나 죽은 것이다. 이것은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고 남자들은 조폭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여자를 끼고 놀 수 있는 술집에 주목했다.

룸살롱이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은 또 난리도 아닙니다. 룸살롱이 워낙 많이 생기다보니 경쟁이 붙어서 매일 새로운 서비스가 생기고 있거든요.”

호사카는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지금 한국에서는 룸살롱이라는 곳이 최고겠네요. 거기로 갑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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