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27화
덜컹덜컹 거리며 열차의 바퀴가 선 로와 마찰하여 일어나는 공명음 따 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여태 이 소 음을 듣기 싫다며 열차를 선호하지 않던 루한스조차도 이런 자리가 되 니 웃는 얼굴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직업은 비서이다. 물론 보통의 비서가 아닌 루벤 대상단 회 장 ‘알루벤’의 비서로써 그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직업이기도
했다.
알루벤은 평소에 열차를 선호하지 않았다. 그 점이 루한스에게 있어서 상당히 다행인 부분이었지만 이번에 호송할 ‘물건’은 비밀리에 음직여야 만 하는 것이기에 열차를 이용하기 로 했다.
알루벤은 열차라는 대중교통의 허 점을 잘 알고 있는 사내였다. 어떻 게 하면 검문을 회피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 을 수 있는지,어떻게 하면 상층부 와 연락을 해서 통과를 할 수 있는 지.
‘하여튼,돈 되는 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신다니까.’
백야의 광석이라는 물질로 만든 신 전의 석상 ‘여신의 눈물’을 운반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알루벤은 밤낮 을 고민하더니 기어이 이 의뢰를 승 낙하고 말았다. 감히 가격을 매기는 것조차 불가능 할 정도로 진귀한 물 건인데다가 ‘눈에 띄지 않도록’운반 을 해야만 했기에 알루벤은 상인으 로 살면서 발달한 머리를 기가 막히 게 굴려서 기어이 이 열차를 이용해 운반을 시작한 것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은폐된
정보만으로 움직이며 최소한의 인원 들로 구성된 그룹을 알루벤이 직접 이끌고 있는 상태였다. 현재 알루벤 이 이 열차에 타고 있고 있는 이유 또한 그저 타지에 있는 거래처에 방 문하기 위함이라고 밝혀져 있을 뿐 이고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10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자네,괜찮은가?”
“아,네…… 열차가 어색하군요.”
열차 멀미를 하는 사람은 정말 드 물다는데 하필이면 루한스는 열차 멀미를 하는 체질이었다. 그는 창문
가로 조금씩 몸을 기댔다. 그러는 와중에도 알루벤을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로 미소 짓는 것을 잊지 않았 다. 괜히 기분이 찝찜한 것을 티내 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건 회장의 비서로 살면서 얻은 경험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였으니.
‘조금만 더 참자.’
열차는 막힘없이 나아갔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는 철로를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허공에 떠있는 철로를 지나가기도 하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기에 그 누구도 별 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호위로 고용된 일반인으로 위장한 용병들도
저들기리 잡담을 하고 있었다.
사건은 그때 터졌다.
쿵!
“응?”
“뭐지?”
루한스가 머물고 있는 열차 칸의 바로 바깥쪽에서 뭔가가 무너지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암전히 앉아있던 중년의 사내가 양 복을 입고 뒤에 얌전히 서있던 자신 의 호위에게 나가서 살펴보라고 지 시했다. 짧고 절도 있게 고개를 끄 덕인 호위는 그대로 척척 걸어서 문 을 열었는데 그 순간 바깥쪽에서 폭
발음이 진동하더니 호위병이 반동으 로 인해 날아가서 반대쪽 벽에 처박 혔다.
“무,무슨 일이야!”
“이봐,상황을 살펴보고 오게!”
알루벤은 자신을 호위하는 무사나 기사,마법사들에게 지시하여 바깥 으로 내보냈지만 전부 싸늘한 시체 가 되어 안쪽으로 날아와 쓰러지거 나 비명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루 한스는 덜덜 떨면서 테이블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척. 척.
누군가가 내부로 들어왔다. 그 사
내를 본 다른 호위가 용기를 내서 소리를 쳤다.
“너는 누구냐! 지금 이게 무슨 짓 이지?”
“무슨 짓이긴. 다 알고 있으면서 뻔한 대사를 주고받지는 말자고. 어 이 거슬리는 놈들은 전부 죽이 고…… 흠. 중요 인물은 전부 묶어 놔.”
“엠!”
덩치가 2m는 넘어갈 것 같은 거구 의 사내였다. 어깨와 허벅지의 근육 이 사람의 머리통이 몇 개는 들어갈 정도로 불끈 솟아있었으며 한 겨울
인데도 불구하고 소매가 찢어진 티 를 입고 있는 그의 양 팔에는 척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루한스는 저 문신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대상인의 비서로써 정 보하나만큼은 귀에 잘 들어왔으므 로.
‘크흑! 팔리 다리에르가 왜 여기 에!’
팔리 다리에르. 국가의 경계선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거대 규모의 범 죄자 집단. 마약,납치,살인,용병, 테러 등 어마어마한 범죄를 대놓고 저지르는 데에도 불구하고 팔리 다 리에르의 우두머리가 10년이 넘도
록 잡히지 않아서 상당히 골머리를 썩이던 집단이었다.
‘얼마 전에 우두머리가 잡혔다면서 아직까지도 건재했던 거야? 젠장 할.’
얼마 전 금색 별 마탑의 협조 덕 분에 팔리 다리에르의 우두머리인 ‘강철권’이 잡혀 들어가 사형장의 이슬로 변해 사라졌다는 정보가 전 세계에 일파만파 퍼진 상태였다. 그 덕분에 팔리 다리에르가 곧 와해될 것이라는 희망찬 신문이 떠돌던 것 이 불과 일주일 전인데 지금 봐라. 팔리 다리에르가 멀쩡히 남아서 열 차 납치를 하고 있지 않은가!
‘여,여기서 죽을 순 없어! 그래! 비상 SOS호출기가 있었지.’
열차의 맨 앞 칸은 귀한 사람들을 자주 태우는지라 만일의 사태에 대 비해 무슨 사건이 터질 경우 록 제 국의 수도에 있는 경찰청에 연락이 가게 된다.
루한스는 테이블 아래를 엉금엉금 기어서 벽에 붙어있는 호출기를 향 해 다가갔다. 하얀색의 거대한 버튼 이었다. 이것을 누르기만 하면 즉시 경보음이 울리게 된다.
‘좋았어,이걸 누르고 바로 숨는 거야!’
루한스가 손을 뻗었다. 하얀색의 버튼을 누르기 위해선 상체를 일으 켜야만 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잽 싸게 버튼을 누르기 위해 하얀색 버 튼에 손을 얹는 순간 누군가가 그의 손을 턱 붙잡았다.
“거 참,안 그래도 누르려고 했는 데. 성질 참 급하기도 하시군. 원래 상인이라는 놈들은 다 이런 건가?”
“히,히익!”
루한스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뇌가,신경이,감각이, 본능이 그것을 거부했다. 다리를 덜 덜 떨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느덧
거구의 사내는 루한스의 곁에 다가 와 있는 상태였다.
‘기,기억났어. 머리에 X자 흉터가 나있는 대머리의 전사…… 틀림없이 락밴더야.’
락밴더. 팔리 다리에르에 속해 있 는 거물급 범죄자 중 하나. 난폭하 고 잔인하고 비겁한 격투술을 구사 하기 때문에 많은 기사들이 그의 공 격에 속수무책으로 뻗어나갔다고 한 다. 소문으로 듣기로는 자신이 죽인 시체의 배를 갈라서 심장을 꺼내서 먹을 정도로 무지비한 싸이코라는 말이 있었는데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런 소문이 퍼질 정도면 상당히 미
친놈이라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 다.
루한스가 겁에 질려서 오줌을 지리 는 것을 본 락밴더는 얼굴을 와락 구기고선 잡고 있던 팔을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그에 루한스는 그대로 벽에 틀어박혀 기절하고 말았다.
“죽이지는 말고. 조심히 다뤄라.”
“예.”
락밴더의 부하가 기절한 루한스에 게 다가가 밧줄로 몸을 묶었다. 그 것을 확인하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 락밴더는 흰색의 SOS버튼을 쾅! 부 숴버리듯 눌렀다.
“골치 아프군.”
경찰청장, 마르벡 더글라인이 이마 를 짚었다. 팔리 다리에르의 우두머 리를 잡아내는 것에 성공하여 그 기 세를 얻어 전 세계에 ‘록 제국에서 팔리 다리에르를 제압했다!’라는 이 름으로 신문을 뿌린 것이 바로 일주 일 전인데 이렇게 대놓고 제국 내부 에서 또다시 팔리 다리에르의 납치 극이 벌어지다니. 상당히 창피한 일 이 아닐 수 없다.
마르백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접대실에 있는 테이블은 관리가 잘 되어있어 깔끔하기 그지없었지만 마 르벡은 예전부터 이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 서있던 경찰복을 입은 남자는 긴장된 표정으로 마르 백의 눈치를 살폈다.
벌컥!
문이 열리며 기다렸던 사람이 들어 오자 마르백의 표정이 조금 환해졌 다. 자신을 안내해주던 여자를 쳐다 봤다. 그 여인은 붉은색의 로브를 정말로 대충 차려 입고 이곳까지 급 하게 온 참이었다.
“참 나 아저씨,날 부를 정도로 급 한 일이야?”
“……그렇소. 일단 앉으시게.”
붉은색의 옷차림과는 다르게 얼음 계열 마법의 천재로 유명한 여인 ‘해이지’는 거칠게 붉은색이 도는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자리 에 앉았다. 상당히 무례한 행동임에 도 불구하고 마르백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와 오래 알고 지 내면서 이런 행동을 할 때야 말로 제대로 일을 할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에
게 도옴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 군.’
금색 별 마탑. 천재,괴짜,또라이 등등 하여튼 마법에 미친놈들이 모 인 집단. 대개 금색 별 마탑에 속한 마법사들은 성격이 특이하고 개성적 인 것으로 유명해 정상인의 범주에 드는 마르백으로서는 상대하기 참 힘든 사람들이었는데 그래도 마법 실력 하나만큼은 혀를 내두를 정도 로 굉장한 자들이었다. 이번에 팔리 다리에르의 우두머리를 잡는 데에 지대한 공을 세운 마법사도 금색 별 마탑의 소속이었으니.
원하던 손님까지 찾아오자 마르벡
이 아직까지 서있던 사내를 향해 고 갯짓을 했다.
“보고해.”
“넵! 범죄 집단 ‘팔리 다리에르’의 행동파로 알려진 ‘락밴더’와 그의 부하 20명가량이 ‘네오르네아 급행 열차 470편’을 납치. 현재 다른 철 로를 타는 바람에 경로를 이탈한 상 태입니다.”
“하아,경로를 바꿨다고? 어디로 향하는 중이지?”
“예상 목적지로는 남부의 폐허 ‘더 치클라인 오아시스’입니다. 몇 년 전 더치클라인이 폐쇄된 이후로도
철로가 아직 남아있던 것을 이용한 모양입니다.”
“벌써 경로를 바꿨단 말인가…… 하지만 더치클라인으로 향하는 도중 철로를 바꿀 기회는 한 번 더 있지 않나?”
“맞습니다. 더치클라인으로 진입하 기 바로 직전에 두 갈래 철로가 있 긴 하지만…… 그곳까지 병사들을 파견하기도 전에 지나칠 것으로 추 정됩니다.”
“후우……
마르백은 거칠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팔리 다리에르
21명이 몰래 열차에 탑승할 동안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냐?”
“그,그것이. 현재 ‘넥스터’라 불리 는 외지인들이 대거 등장하는 바람 에 신원이 조회되지 않는 인원이라 도 일단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 게 하라는 말이 떨어져서 그 점을 이용한 모양입니다.”
“젠장. 망할 넥스터인지 뭔지 하는 놈들은 신분증도 안 만들고 뭘 하난 말이다.”
애꿎은 곳에다가 화를 내봐야 소용 없단 사실을 알면서도 마르백은 이 분풀이를 어디로든 하고 싶었다.
“그들의 목적은? 우두머리의 시체 라도 돌려 달라 뭐 이런 황당한 것 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본인들의 우두머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싶습니다. 목적 은 알 수 없습니다만…… 열차 자체 의 행선지를 바꿔서까지 더치클라인 으로 향하는 것을 보면 인질극에 의 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열차 안에 실려 있는 어떠한 물건을 탐내는 것 같습니다.”
“어떤 물건?”
“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 열차에 루벤 대상단의 회장 ‘알루
벤’이 탑승한 상태라고 합니다.”
“거물이로군. 만약 그 자가 무슨 일이라도 당한다면…… 어떻게 욕을 먹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될 정도인 데.”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헤이지 가 입을 열었다.
“열차에 탑승한 인원 목록은 있을 거 아냐. 빨리 내놔봐.”
“예,옙! 여기 있습니다.”
사내가 내미는 보고서를 받은 헤이 지는 테이블에 그 서류를 놓고 천천 히 훑어보았다. 그것을 같이 보고 있던 마르백의 표정에 의문이 생겼
“응? 이거 좀 이상한데.”
락밴더를 포함,총 21명의 인원이 열차를 장악한 상태라고 한다. 하지 만 서류를 보면 신원 조회가 되지 않은 인원은 23명이나 되었다. 임시 신분증을 발급받은 상태였는데 둘 다 젊은 여성이었다.
“이 자들은 누구지?”
“그 둘은 저희도 파악할 수가 없었 습니다. 아마도 넥스터가 아닐까 합 니다만 이 상황에서 크게 도움이 될 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넥스터라.”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이방인들. 그들은 대부분이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가 진 자들이었다. 그러한 넥스터들 중 에서도 마법사나 전사 계열의 직업 을 가진 이들은 4〜5클래스 수준의 마법을 구사하거나 준 나이트 급의 실력을 가진 이들이 꽤나 많았다고 한다.
“락밴더의 실력이 어느 정도라고 했지?”
헤이지의 물음에 마르백이 대신 대 답했다.
“준 나이트 급이라는 소문이 있지
만 만약 정식 나이트 시험을 치루 게 될 경우 통과할 것이라는 말이 많더군.”
나이트라는 존재는 간단한 표현으 로 ‘인간을 초월한 괴물’이라고 보 면 좋다. 기(氣)를 자유자재로 다루 고 쓴살같은 스피드로 움직이며 말 도 안 되는 괴력을 보유한 자들. 그 런 나이트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수준이라면 분명히 락밴더도 상당히 강하다는 뜻이 된다.
물론 락밴더 자체의 무력이 나이트 급으로 강하다는 의미보다는 락밴더 가 상당히 비열하고 싸우는 것에 있 어서 더러운 잔머리가 잘 굴러가기
때문에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 것이 라는 추측이었지만 마르백은 거기까 지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락밴더의 무력이 아니었으니.
“정말 골치 아프군. 인질극을 벌이 면 정말 답도 없겠는데.”
마르백이 이마를 부여잡고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을 때,헤이지는 말 없이 열차에 탑승한 명단을 보고 있 었다. 그녀는 붉게 물든 입술을 천 천히 쓰다듬으며 ‘서천명’이라는 이 름을 주목했다.
‘흐응. 그러고 보면 얼마 전에 망 할 마탑주 자식이 신참을 가입시켰 다고 했는데. 이 녀석이로군.’
103번 승객 : 금색 별 마탑 ‘서천 영’
그 이름을 읽어 내린 헤이지는 고 민할 필요도 없다는 둣 의자에 등을 기댔다.
“신참 실력 좀 볼 수 있겠는걸?”
헤이지에게 있어서 이딴 열차 납치 극은 별로 위기감이 되지 못했다. 단지 흥미도 없던 일에 억지로 참여 했다는 점이 내내 불만이었지만 그 런 그녀에게 이 사건에 조금의 흥미 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