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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31화 (30/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31 화

8장 로드웰 아카데미의 천재 마법 사

자신을 금색 별 마탑에서 평범한 얼음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라고 소 개한 헤이지를 따라 나가자 열차를 포위하고 있던 경찰들의 틈에서 빠 져나올 수 있었다. 나가는 길에 자

신을 경찰청장이자 마르백이라고 소 개한 남자가 명함까지 건네주며 꼭 한 번 연락을 달라고 하는 통에 천 영은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들었다. 자신들이 싸우려고 했던 괴한 집단 을 제압했다는 인원이 고작 세 명인 데다가 심지어는 락밴더를 제압했다 는 사람이 어린 마법사라는 소식을 듣고서 경찰들은 천영을 힐끗거리기 에 바빴다.

“피곤하네.”

여태 이런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 었기에 천영의 눈 아래에는 다크 서 클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안시르엘 과 셀라임은 넥스트에서 거의 슈퍼

스타급으로 인기가 많던 인물들이었 기에 이런 시선은 익숙했는지 무덤 덤한 표정이었고 헤이지 역시 마찬 가지인 것으로 보였다.

이윽고 역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이 번에는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카 메라를 내밀며 셔터를 울려대는 통 에 천영은 그냥 전부 뒤집어 엎어버 리고 싶었다. 하지만 헤이지의 능숙 한 줄행랑 실력 덕분에 금방 빠져나 올 수 있었다.

“곧 신문에 대문짝하게 뜨겠어. 우 리 신참.”

“네? 왜요?”

“안 그래도 금색 별 마탑에서 새로 운 인원을 받았다고 해서 기자들 사 이에선 주목 대상이었는데 이번에 팔리 다리에르가 납치한 열차를 구 출해내면서 행동대장까지 완벽하게 제압하는 것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으 니 난리도 아니겠지.”

“으. 짜증나.”

천영은 이런 식으로 주목을 받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애초에 은둔형으로 생활하던 버릇이 남아있 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었 다.

“흠,그럼 어디 가볼까?”

도착한 곳은 역 앞에 있는 주차장 같은 공간이었다. 헤이지는 천천히 마차와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고선 ‘나 좀 태워 줄 사람!’이라고 외치니 정말 기적 처럼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마차 여러 대가 주변에 줄줄이 섰다. 몇 몇 마차에는 무슨 신문사 소속이라 는 글자가 적혀 있었고 몇몇 마차에 는 마탑 소속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 었다.

“메이지 헤이지 아니십니까? 저번 에 그 논문에 대해서 말인데……

“예끼 이 사람아. 이분을 세워놓고 이야기 할 생각인가? 자자 이번에

팔리 다리에르의 체포에 또 협조하 셨다고 하는데…… 저희 본부에 가 서 이야기를 하심이……

“워워,진정들 하시게. 메이지 헤이 지는 우리 마탑과 인연이 있다구!”

하지만 결국 헤이지가 선택한 곳은 붉은 태양 마탑이었다. 그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게도 이곳에서 가장 가깝다는 것 하나 때문이었다. 나름 넓은 마차의 뒷자리에 탑승한 천영 은의외로 푹신푹신하고 안정적인 좌석에 놀랐다.

“크으,되게 부드럽네. 이거.”

천영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꼬고 앉자 안시르엘이 그의 머리카 락을 만지면서 말했다.

“그러고 있으니까 아저씨 같잖아.”

“홈,확실히 내 나이면 아저씨라기 보단 오빠가 맞지.”

“그건 좀 양심이 없는 거고.”

셀라임이 슬쩍 끼어들자 천영이 눈 을 부라렸다. 안시르엘은 천영이 고 개를 내미는 것을 이마를 턱 붙잡아 다시 뒤쪽으로 기대어버렸다. 그 다 음 엉성하게 묶여있는 머리끈을 풀 어버리더니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깨 끗하게 정돈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머리가 이렇

게 산발이 되는 거야.”

“글쎄.”

머리카락에는 이제 별로 관심이 없 어졌기에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 다. 다만 조수석에 탑승해서 운전자 에게 뭔가를 물어보던 헤이지가 고 개를 돌리자 그녀에게 시선을 맞췄 다.

“우리 뉴비,혹시 어디로 가던 중 이었어?”

그 말에 안시르엘이 대신 대답했 다.

“‘로그마티아’로 가던 길이었는데 도중에 지나쳐버렸어요.”

“그래? 열차를 다시 타야겠네. 일 정은 바로 정할 예정이니?”

천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계획은 없어요. 일단 오늘은 여기에서 지내고 내일 다시 열차를 알아봐야죠.”

“그래그래,후후. 조금은 여유 있게 다녀. 나도 상큼한 뉴비가 들어와서 기분이 아주 좋으니까 좀 더 같이 있고 싶거든. 어후. 금색 별 마탑은 아주 고이다 못해 썩었어. 만날 보 던 놈들만 보이고 칙칙하고 냄새나 고 정신 나간 놈들만 수두룩하고. 망할 마탑주 할배는 인재가 없다면

서 만날 돌아다니기만 하고. 풋풋한 신입은 대체 언제 들어오나 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조잘조잘 떠드는 헤이지의 어투는 그냥 직장 상사를 욕하는 평 범한 회사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 다.

15분 정도를 달린 마차는 하늘 높 이 솟아있는 빌딩 같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주차장 비스무리 하지만 약간 다른 공간에 마차가 세워지자 운전자가 내려서 아직까지도 문을 열지 못하고 껑껑대는 천영 쪽에게 다가가 문을 열어줬다.

“……감사합니다.”

고작 문도 못 열고 있었다는 점이 굉장히 쪽팔렸던 천영은 머리카락으 로 얼굴을 가렸다. 반대쪽을 보니 셀라임과 안시르엘은 멀쩡하게 내린 상태였다. 이후 운전자의 안내를 따 라 마탑 안으로 들어가자 검회색의 로브를 입은 중년의 여인이 헐레벌 떡 뛰어와 헤이지를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메이지 헤이지.”

“아하하, 로주 아줌마도 오랜만!”

언뜻 보면 버릇없어 보일 수도 있 겠지만 서로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지 로주는 그냥 웃어넘겼

“이쪽으로 따라오세요,아. 혹시 이 쪽이 이번에 새로 금색 별 마탑에 들어가셨다던……

로주가 셀라임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녀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으며 한 숨을 푹 내쉬었다.

“저 마법의 기초조차 모르는데

요……

“예? 그럼 설마 이분이……

이번에는 안시르엘을 가리킨다. 하 지만 안시르엘 역시 고개를 젓는다. 헤이지는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 다.

천영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 지 않았다. 정말 금색 별 마탑만이 가지고 있는 심볼이 아니었으면 어 디 가서 마법사라고 말도 못했을 뻔 했다.

뒤늦게 천영의 팔목에 있는 금색의 시계를 눈치챔 로주가 당황하여 입 을 가렸다.

“아,아이구야. 죄송합니다. 너무 어리셔서 설마 마법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여자에 꼬맹이라는 오해도 만날 달 고 사는데 고작 이 정도쯤이야. 천

영은 하도 이런 상황을 겪다보니 이 제는 슬슬 이런 일에 일일이 스트레 스를 받고 있는 게 더 멍청한 짓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주는 헤이지 일행을 데리고 엘리 베이터를 탑승해서 마탑의 고층까지 데리고 갔다. 이윽고 나타난 곳은 마탑이라기엔 일종의 호텔 같은 조 용한 공간이었다. 헤이지가 말하길 마탑에서 아예 거주하면서 연구를 하는 인원들도 있어서 이렇게 머물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놓는다고 한 다. 그리고 그곳은 헤이지가 어디 놀러 다닐 때마다 아주 훌륭한 공짜 숙박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고.

“완전 양아치네.”

“후후. 금색 별 마탑의 특권이지."

헤이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금색 별 마탑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의 특 권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마탑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다던가 사건 이 벌어졌을 때 경찰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던가 등등 말로 일일이 나열 하는 것도 피곤할 정도로. 천영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혹시 템버거도 공짜로 사 먹을 수 있어요?”

“……그,글쎄? 행버거는 내가 별 로 안 좋아해서.”

로주를 따라서 잠시 걷자 그녀는 복도의 끝에 위치한 다른 곳보다 문 이 두 배나 더 큰 방에 도착했다. 그곳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도 굉장 히 크고 2대나 있었으며 이상한 레 이스로 천장이 장식되어있고 앤티크 풍의 가구가 늘어져 있는 그냥 척 봐도 꽤나 비싸 보이는 장소가 나타 났다.

“일단은 여성분들이시니 방 하나로 충분하겠지요?”

천영이 말을 잃어버리자 셀라임과 안시르엘이 서로를 쳐다보며 웃음을

참았다. 헤이지는 그런 천영을 뚫어 져라 쳐다보더니 그의 머리카락을 살짝 집어서 만지작댔다.

“흐음,하는 행동이 하도 남자애 같아서 그냥 성격인가 했더니 정말 남자였나 보네.”

그의 성별이 어떻든 상관은 없었는 지 헤이지는 어깨를 한 번 으쪽이고 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이가 몇이든,성별이 남자든 무 슨 상관이야. 지금은 꼬맹인데.”

“자,잠깐. 그런 게 어딨어!”

천영은 여기까지 와서도 여자들과 같은 방을 쓰기엔 조금 낯간지럽다

는 생각이 들어서 셀라임과 안시르 엘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 다 하지만 여태까지 같은 방에서 지 내왔던지라 이제 와서 별로 달라질 게 있냐는 표정으로 심드렁한 표정 을 지은 그녀들은 성큼성큼 방 안으 로 들어가 버렸다.

“뭐 어때.”

“괜히 방 하나 더 쓰면 민폐야,오 빠.”

결국 천영은 하는 수 없이 그녀들 을 쫓아서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 었다.

로주는 헤이지와 두런두런 이야기 를 나누더니 불편한 점이 있으면 전 화로 호출해달라고 말한 뒤 사라지 고 말았다.

“금색 별 마탑이 뭐기에 저렇게 깍 듯하게 모신대?”

“그러게 말이야.”

“오빠는 금색 별 마탑이면서 왜 그 런 것도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오빠는 아는 게 뭐야?”

“죽는다,진짜.”

셀라임과 안시르엘이 외투를 벗어

서 의자에 걸어놓고 침대에 가서 폭,누워버리자 천영도 옆쪽에 있는 침대에 가서 엉덩이를 걸쳤다. 굉장 히 좋은 느낌이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주장하던 21세기의 그 침 대조차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말랑말랑하고,마음이 편안해지는 감촉이 들었다.

부츠를 벗어버리고 블라우스를 매 만지던 천영은 문득 샤워가 하고 싶 어졌다. 옷을 갈아입을지 말지 고민 하는 천영에게 다가온 헤이지는 기 지개를 크게 펴더니 방긋방긋 웃었 다.

“왜,씻고 싶어? 이 누나랑 같이

씻지 않을래?”

“됐거든요.”

“근데 너 정말 남자애 맞아?”

“그야 당연히……

당연하다고 대답하려던 천영은 헤 이지의 질문이 그런 의도가 아니라 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눈빛은 순수한 학자의 호기심이 물들어 있 었다.

“뭔가 너,특별한 기운이 느껴져. 음,막 뭐라고 할까.”

헤이지는 손을 과장스럽게 펼쳐 원 을 그리거나 팔을 쫙 펴는 등 이상 한 보디랭귀지를 시전했다.

“막막,이런 느낌이랑 저런 느낌? 하여튼 그런 느낌이 막 들거든. 그 치?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녀는 셀라임과 안시르엘을 향해 물었지만 원하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셀라임과 안시르엘이 고개 를 젓자 헤이지는 답답하다는 둣 발 을 동동 굴렀다.

“아이 참,그런 게 있는데. 끄응.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네.”

내심 찔끔했던 천영은 금색 별 마 탑의 마탑주이자 대마법사인 레이븐 을 떠올렸다. 레이븐 역시 천영을 보는 즉시 특이한 기운이 느껴진다

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마법사들은 다 저를 보면 그런 기 운을 느끼는 건가요?”

“응? 그건 아닐 걸. 나는 조금…… 이런 쪽으로 많은 사람들을 접해봤 거든. 그래서 잘 느끼는 편이야. 하 지만 너는 정말 모르겠어. 이 정도 로 신비로운 기운은 여태 느껴본 적 이 없거든.”

“흠.”

그녀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렇 게 말하자 천영은 입을 다물었다. 드래곤이라고 확 밝혀버릴까 싶었지 만 아직은 참기로 했다. 드래곤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자,그는 문득 락밴더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참 불쌍하게 됐어.’

헤이지를 따라 경찰들의 품에서 빠 져나오기 전 락밴더가 기절 상태에 서 깨어났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상태로 쇠사슬에 묶여 발버둥을 치 는 바람에 소란이 일어났기에 천영 도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락밴더는 뜬금없이 어눌한 발음으 로 ‘드우퀘곤이 나롸낫어! 도뢰곤이 놔를 이럿캐,으워와아아아!’라며 정 신병자마냥 소리를 질러대기에 정신 병동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아무래 도 너무 강한 충격을 받아서 환각이

보이는 모양이라고. 아무래도 드래 곤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흔하지 않 으니 아무도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입술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천 영이 대충 둘러댔다.

“일단은 영물이라고 해두죠.”

“영물?”

끄덕끄덕.

천영은 마탑주에게 밝힌 정도만을 헤이지에게 알려줬다. 여기까지 데 려와준 사람인데 막 전부 비밀로 하 기도 그렇고 뭔가를 눈치챈 모양이 니 어느 정도 호기심을 해소시켜주 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

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까 질문의 답인데 원래 는 남자였지만 지금은 성별을 잃어 버려서 중성이에요.”

“중성? 그렇구나. 하긴 영물들은 대부분이 중성이라고 하긴 했어. 성 별이 딱히 필요 없는 존재라고 그랬 거든. 그나마 성별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건 드래곤 정도이려나.”

헤이지는 지나가듯 그렇게 말했지 만 천영은 조금 가슴이 찔렸다. 애 써 내색하지 않고 그냥 미소만 짓고 있자 헤이지는 뭐가 그리도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신참이 영물이라. 아주 괜찮 은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어린 영물…… 크으,정말 매력적인 캐릭 터잖아.”

“제가 좀 매력적이긴 하죠.”

그 외에도 헤이지는 천영에게 이것 저것 질문을 했다. 처음엔 그저 마 법의 지식에 대해서 접근을 했다. 신참이 어느 정도의 마법 수준을 가 지고 있는지 궁금했을 터,헤이지는 마법계에서도 상당히 위쪽에 위치한 학자였기에 천영이 대답할 수 없는 것들도 존재했지만 수많은 마법서를 읽어둔 데다가 드래곤 특유의 기억 력 덕분에 매끄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으흠,그러니까 지금은 27세이고 마법은 21세 때 배우기 시작했단 말이지? 그 넥스트라는 세계에서.”

“그런 셈이죠.”

헤이지는 천영이 이곳에 넘어오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물 어봤다. 그녀는 넥스터들의 ‘탈태’라 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 는데 아무래도 넥스터들에 대해 많 은 연구를 한 모양이었다.

“차원이동이라는 건 정말 흥미로운 사례란 말이지. 뭐 그렇게 힘든 것 도 아니긴 하지만.”

그 말대로 그리픈에서 차원이동이 란 것은 지구와 다르게 미지의 영역 이 아니었다. 악마들이 사는 마계 또한 타차원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정 령계는 물질의 존재가 개입할 수 없 는 자연이 존재하는 차원이었고 선 계에는 순수한 생명체가 모여드는 곳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차원이 존재했고 아직까지 그리픈에 서도 그 차원을 전부 밝혀낼 수는 없었다고 한다.

“몇 백 년에 거쳐서 새로운 차원이 열리곤 하거든. 만 년 전에 있었다 던가. 전설 속의 천사와 악마의 전 쟁도 실제로 있었다는 이야기도 많

고. 뭐 타차원에서 넘어온 어떤 사 람들은 대부분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나? 하여튼 그 인간들 덕분에 그리픈의 무술 수준이 아주 높아지기도 했거든. 막 해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받아들이는 편 이야.”

“흐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헤 이지는 또다시 천영의 신체에 대해 화제를 돌렸다.

“생물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이 성별 을 가지고 있거든. 근데 몬스터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고 성별을 마음 대로 바꿀 수 있거나 성별이 아예

없는 생물체들이 있어. 그런 생물들 은 진화의 과정에서 그렇게 됐다지 만,영물은 조금 달라. 영물에게 있 어서 중성이라는 말은 성별이 없다 는 말이 아니라 두 개의 성별을 전 부 다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하거든. 뜻풀이를 하면 성별이 없다 는 말이 다시 돼버리는 건가? 참 미묘하네.”

그녀의 말을 곱씹어보지만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물이 인간의 모습을 취하는 것 은 몇 번 목격된 사례가 있어. 근데 나는 만나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말인데……

헤이지의 표정이 약간 학자의,진 리를 탐구하는 그런 표정으로 변했 다.

“너,원래는 인간이었다가 영물이 된 케이스지?”

“……그렇죠.”

“네 몸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 어?”

“글쎄요,그냥 어려졌다는 사실밖 에는.”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았구나. 성 별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인 생식기는?”

천영은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하다 가 이내 대답했다.

“없다고 말하기는 애매한 정도?”

“흐음 역시 어린애 치고는 성장이 거의 완성되어 있어서 조금 특이하 다고 생각은 했거든. 너도 알다시피 남자든 여자든 호르몬이 분배되기 때문에 성장을 하면서 각 성별의 성 징이 나타나는 건 알겠지?”

천영은 문득 중학교 시절 ‘기술과 가정’ 교과목을 떠올렸다. 성을 다 루는 수업을 할 때마다 귀를 종긋 세우고 수업을 듣던 팔팔한 남자 천 영이기에 모를 리가 없었다.

“제가 그 분야에선 아주 박사죠.”

헤이지는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 다.

“근데 넌 그런 게 없어. 이미 전부 완성되어 있는 상태야. 아마 나이를 먹어도 특별하게 남자답다거나 여자 답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을 거야. 키만 크면서 그냥 네 모습 그대로 중성적인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단 얘기지. 뭐 뜬금없이 가슴이 커지거나 목소리가 굵어진다거나 하 는 일은 죽어도 없을 거고. 고작해 야 허벅지가 두꺼워지거나 허리가 조금 얇아지거나? 어깨가 넓어질 수 도 있고.”

“전부 별론데.”

“하여튼 그렇단 얘기지. 아마 제대 로 자라기도 전에 너한테 치근덕대 는 변태들이 있을지도 몰라. 키도 작고 어린애인 상태지만 웬만한 성 인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냄새를 풍 기고 있거든.”

그 말에 천영은 여태까지 만났던 변태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별로 생 각하고 싶지 않은 놈들이었다.

“네 정체를 제대로 모르니 확실하 게 말해줄 수는 없지만,앞으로도 ‘남자’라고 주장하려면 조금 더 힘 을 팍팍 주고 다녀. 정말 햇갈리게

생겼으니까.”

그 외에도 헤이지는 표적을 돌려 셀라임과 안시르엘에도 이것저것 질 문했다. 평범한 여자들의 대화처럼 혹시 화장품은 무엇을 사용하느냐, 립스틱은 어떤 게 더 낫지 않느냐, 그리픈에서 유명한 패션 브랜드를 소개시켜 주겠다느니같은 대화가 오 고가자 천영은 더 이상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여자들 의 수다. 그곳에 27세의 총각 천영 이 파고들 틈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철벽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똑똑.

“응? 누구지.”

헤이지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방 문이 끼익 하며 자동으로 열렸다. 그러자 바깥에 서있던 어떤 정복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안쪽에 있던 헤이지를 향해 말했다.

“메이지 헤이지,잠시 실례해도 되 겠습니까?”

헤이지는 기다렸던 것이 왔다는 표 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다음 문 앞에 서서 남자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예쁘게 포장된 봉투 하나 를 건네받았다. 남자를 돌려보낸 다

음 헤이지는 신난다는 표정으로 그 것을 팔랑팔랑 들고 와서 천영에게 보여주었다.

“짜잔,사실 내가 널 데리고 온 이 유 중 하나야. 세상물정 하나도 모 르는 우리 귀여운 뉴비한테 좋은 구 경이나 하나 시켜주고 싶었지!”

“네? 그게 뭔데요?”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마법 문양 이 반응을 하더니 인장이 스르륵 녹 아 사라지며 편지지가 자동으로 미 끄러져 나왔다. 척 봐도 고급 마법 이 가득 인챈트되어 있었기에 천영 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을 들고 편지지의 제목을 살펴

보니,‘로드웰 아카데미 발표회 초 대장’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 혀 있었다.

"로드웰 아카데미?"

“아,마법사라면 모를 리가 없는 아카데미인데 넌 넥스터라 잘 모르 나보네. 하여튼 엄청 유명한 마법사 양성 아카데미야. 매년 엄청난 천재 들을 배출하거든.”

“오……

마법을 가르치는 학교라. 천영도 조금 흥미가 생겼다.

“근데 거긴 왜요?”

“그게 이번에 발표회인지 뭔지 하

여튼 행사를 하는 모양이야. 거기에 현직 마법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모 양인데 이번에 빈자리가 조금 생겼 거든. 그래서 팔리 다리에르도 잡았 고 여기까지 온 김에 겸사겸사 가보 자는 거지.”

그래서 가볼 생각이 있냐고 묻는 헤이지의 말에 천영은 잠시 턱을 쓰 다듬으며 고민했다.

장비를 만들기 위해 셀라임의 지인 을 만나러 가는 중이긴 했지만 딱히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기에 조금쯤 은 여유를 둬도 상관없다 싶었다.

“너넨 어때?”

“가볼래!”

의견을 묻는 순간 셀라임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그렇다네요. 한 번 가보죠 뭐.”

천영의 긍정적인 대답에 헤이지가 신난다는 표정으로 그의 팔을 붙잡 고 방방 혼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듯 헤이지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고 보니 그 싸가지도 아직 아 카데미에 있을 텐데.”

“누구요?”

“‘예런’이라는 놈인데. 하여튼 마법

에 관해선 무지막지한 천재라는 모 양이야. 8살 때 처음 마법진을 구현 시켰다는 소문도 있어. 확실한 건 없지만 말이야.”

헤이지는 예런이라는 자를 생각하 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뉴비 너도 그 싸가지랑은 상종 안 하는 게 좋아.”

“왜요?”

“하여튼 그놈 자기 대단한 거 알고 성격이 개차반이거든. 지가 하늘 아 래 최고인 줄 아는 놈이라서 같이 대화하다보면 피곤할 거야.”

‘흐음. 그냥 대화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저번에 금색 별 마탑에 들어오겠다고 깝죽거리다가 마탑주 한테 퇴짜 맞았거든. 아마 널 보면 잡아먹으려고 들걸?”

그 말에 천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잡아먹으라죠.”

아카데미는 상당히 넓은 곳이다. 설마 마주칠 일이 있을까 싶어 천영 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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