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32화
대도시 팔라타시아의 중앙에는 과 거 전쟁 통에 대현자가 이곳에 잠깐 머물렀다가 떠나가는 구름과 태양을 보며 ‘아,세상은 그래도 흘러가는 구나.’라는 명언을 남긴 장소 팔라 타 광장에 있었다.
팔라타 광장에는 거대한 시계탑이 하나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것의 시 침에는 현자 ‘샘 프론트’의 이니셜 이 적혀있다. 그것을 누가 새겼는지
언제 어떻게 새겼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라고 한다.
시계탑의 시간은 정확히 706년하 고도 7개월 14일 전에 멈췄다. 하지 만 사람들은 이 시계탑의 시간이 다 시 움직이길 원치 않았다.
현자 샘 프론트가 죽음을 맞이함과 동시에 시계탑 또한 멈춰버렸기 때 문이다. 그렇기에 이 시계탑은 시간 을 보는 용도보다는 그저 관광 명소 에 어울리는 곳이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외국인들과 이 종족이 이곳을 드나든다. 귀가 정수 리에 달린 종족,피부가 푸른색인 인간,바다 건너에서 넘어온 동양인
들,팔다리가 6쌍 씩 달려있는 종족 등등. 팔라타시아에 온다면 꼭 봐야 만 하는 시계탑에는 언제나 사람들 이 몰려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다 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꼭 눈에 띄는 존재는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계탑 바로 옆에 늘어서 있는 벤치 중 하나를 골라 앉아서 가만히 책을 읽고 있는 저 소년은 눈에 띄는 존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소년 혹은 미소녀라도 불러도 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는 키가 작고 앳되어 보이는 얼굴을 가 지고 있었지만 웬만한 성인들도 비
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갈색 계통의 머리를 타고나는 그리 픈의 특성상 저 소년의 밤하늘처럼 새까만 흑발은 조금 보기 드물었는 데 심지어 거기에 별빛처럼 반짝거 리는 금색 눈동자까지 합쳐지니 그 매력이 배가 되었다.
그 소년에게는 뭔가 이끌리는 마력 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말을 걸어 보고 싶다든가 눈을 마주쳐보고 싶 다든가 계속 쳐다보고 싶다든가 하 는 둥. 하지만 신비로운 분위기로 다리를 꼰 채 책장을 넘기고 있는 그 소년에게는 어째서인지 쉽사리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어머,저 소설은?’
몇몇 여인들은 소년이 읽고 있는 책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요새 10〜20대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한다 는 ‘왕자님,어디 가시나요.’라는 제 목의 로맨스 소설이었다. 자신과 취 향이 딱 맞는다는 뜻은 곧 공감대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 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가 생성된다 는 말이기도 했다.
용기를 낸 4명의 소녀가 소년에게 다가가 대화를 걸었다.
“어머,너도 그 소설 보는 거니?”
낯선 여자가 말을 걸자 천영은 고 개를 들었다. 그녀들을 잠시 쳐다본 천영은 이내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의 장르가 로맨스라는 사실을 깨달았 다.
‘그냥 글자를 머리에 집어넣고 있 어서 로맨스 소설인 줄도 몰랐네.’
천영은 로맨스에 별 관심이 없었 다. 아니,정확히 말하자면 질렸다. 천영의 고향은 한국이다. 그리고 한 국이라는 나라에서 드라마를 만들 때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요소가 있 었다.
사랑 그리고 전쟁.
그는 월화수목금토일,매일 아침 방송하는 막장 드라마를 대부분 챙 겨보는 편이었다. 왜 그것을 챙겨보 느냐 하고 묻는다면 아침에 기상해 서 아침밥을 허겁지겁 차리고 알바 나갈 준비를 할 때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의 막장 드라마 스토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위대했다. 그 것들에 의해 숙달된 천영은 이제 평 범한 로맨스로는 감흥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모든 드라마에는 반드시 로맨스가 존재한다. 의사가 나와서 사람 살리는 드라마를 틀면 의사가
연애하고 퇴마사가 귀신 퇴치하는 영화에서는 퇴마사랑 귀신이 연애한 다. 심지어는 외계인이 하늘에서 내 려와 연애 하고 옛날 사람이 시간여 행으로 미래에 와서 연애를 한다.
매일,일주일,한 달,일 년 내내 방송되는 막장 드라마를 통해 면역 을 키운 천영에게 있어서 이 조잡한 로맨스 소설은 너무나도 뻔했다. 척 봐도
‘아, 이 여자는 남자a랑 썹만 타고 남자b와 이어지겠군.’ 혹은 ‘이 여자 는 결국 배신 때리겠는데? 너무 착 한 척을 하면 나쁜 년일 가능성이 높지.’둥의 추리를 가뿐하게 할 수
있었다.
천영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 소설 혹시 몇 권까지 나와 있 나요?”
“현재 4권까지 나와 있어. 신문에 서 봤는데 총 …권으로 완결을 내 겠다고 작가님이 그러셨어.”
…권이라. 현재까지 등장한 등장인 물을 토대로 기둥을 형성하고 씨앗 을 뿌린 다음 나무를 만들고 그곳에 등장인물을 개입시킨다. 평범한 시 골 처녀와 왕국의 왕자님이 연애하 던 소설에 불과한 그것에 대해 짧게 추리를 마친 천영은 다시금 입을 열
“롤렌스는 왕자님과 결국 이어지지 못해요. 왜냐하면 왕자가 마지막에 어떤 이유에서든 미쳐버리거나 롤렌 스를 배신할 거거든요. 그리고 지금 은 엑스트라로 등장한 보디가드 락 프론스랑 연애를 할 거에요.”
“옹? 그,그게 무슨 소리니?”
“들어보세요. 근데 락 프론스는 죽 어요. 아마 왕자가 직접 죽이거나 부하를 시켜서 죽이겠죠. 그에 분노 한 롤렌스는 흑마법을 익혀요. 그리 고 왕국을 아예 뒤집어 엎어버리
죠
“자,잠깐 꼬마야. 그게 무슨 소리 니? 롤렌스는 평범한 과일가게 처녀 야. 마법을 전혀 모른다구.”
“사실 롤렌스에겐 비밀이 있을 거 예요. 엄마가 마녀였다거나 아빠가 흑마법사일 가능성이 높아요. 혹은 둘 다 일 수 있고요. 그들의 피를 물려받은 롤렌스는 아주 익숙하게 마법을 사용해서 마침내 왕자까지 살해하고 한 7권쯤에는 저승으로 떠 나겠네요. 그곳에서 마침내 락 프론 스를 구해낸 롤렌스는 저승을 지배 하면서 행복하게 살 거예요. 아! 그 리고 이 단어는 무조건 등장할 걸 요. ‘영원히’ 우리 영원히 함께하자
혹은 영원히 우리 둘을 떼어놓을 수 없어. 등등.”
“……꼬마야,다른 소설과 햇갈린 거 아니니? 그냥 로맨스 소설인데.”
천영은 책을 탁 덮었다. 그러고선 싱그러운 미소를 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 시간이 다 됐네요. 저는 이 만 가볼게요.”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던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바로 옆쪽에 있 던 도로에 기다란 마차가 한 대 정 차했다. 검은색 외형에 반짝거리는 광이 칠해져 있었으며 맨 앞에 로드
웰을 상징하는 심벌이 박혀있는 그 마차에서 정장을 입은 사내가 내리 더니 천영을 향해 묵례를 했다.
그의 에스코트를 받은 소년은 그렇 게 꿈처럼 사라져버렸다. 정확히 2 년 뒤. ‘왕자님,어디 가시나요.’의 소설이 완결이 나자 천영과 마주쳤 던 소녀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 다.
“우리 미래에서 온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당연한 말이지만 마차에도 여러 가 지의 디자인이 있다. 편리한 이동 수단을 위해 마차를 발명했다. 하지 만 부유한 사람들은 더욱 자신을 과 시하기를 원했다. 결국 가성비가 나 락으로 떨어지는 ‘겉모습만 번지르 르한’ 마차가 완성되기에 이른다.
천영은 그에 대해 별 다른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예전에는 고급 외제차 타고 다니는 부자를 보며 부 러워해야만 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 은 그것을 타는 입장이 되었으니까.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생각은 비슷하다 이건가.’
로드웰 아카데미에서 손수 보내준 마차의 그 생김새가 마치 리무진을 연상케 해서 적잖이 놀랐다. 심지어 는 운전자가 선글라스를 낀 정장의 남자였기에 아예 향수가 느껴질 정 도였다.
“그나저나,오빠가 로브를 입으니 까 좀 놀라운데.”
안시르엘과 셀라임의 대화 주제는 천영의 복장이었다.
천영은 허리 아래를 살짝 덮는 새 하얀 숏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옷을 조금이라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그 것을 보자마자 ‘구입한지 하루도 안
된 신상품이군.’이라며 평가를 내릴 정도로 깨끗하고 옷가게 특유의 냄 새가 아직까지도 배어있는 것이었 다.
하지만 천영은 그 냄새를 꽤나 마 음에 들어 했다. 신상품이라,그런 옷을 입어본지 얼마나 됐던가. 특히 이런 유명 브랜드에서 나오는 장비 를.
[셀리샤사 화이트 링벨트 원갤라 숏로브]
등급 : 레어 내구도 : 100/100
제한 : 지력 700
방어력 : 370
효과 : MP회복력 증가 +3%
자체적으로 뜨거운 기운이 나와 추 위를 막아줍니다.
마나 코팅이 되어 있어 일정 충격 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설명 : 마법장비 전문 브랜드 ‘셀 리샤사’의 장인 루블렉터가 직접 제 작한 숏로브. 장인의 손길이 들어가 있어서 쉽게 찢어지지 않고 헤지지 않는다. 마법이 인챈트 되어있다.
이전에 자벤이 선물해준 코트에도 추위를 막아주는 마법이 걸려있긴 했지만 이 로브에는 조금 더 많은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로브로써 성능이 그 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로브는 헤이지가 루블렉터라는 남자에게 급히 부탁해서 하루 만에 얼렁뚱땅 만들어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옷을 어떻게 하루 만에 만들지? 라는 의문은 둘째 치고 헤이지가 어 떻게 본인의 신체 사이즈를 파악한 것인지가 더 궁금했다. 그래서 천영 은 그녀에게 물어봤지만 ‘그냥 감으
로 알았는데?’라는 어처구니없는 대 답이 돌아왔다.
천영이 이런 로브를 입은 이유는 간단하다. 나름 금색 별 마탑의 마 법사로서 로드웰 아카데미에 참여하 는데 마법사에게 있어서 로브는 신 사의 정장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이 기 때문이다.
기사는 갑옷,신사는 정장,마법사 는 로브를. 이것은 이 그리픈에서 아주 당연한 예의라고 한다. 넥스트 를 플레이할 때에도 로브와는 생전 인연이 없었던 천영조차 어쩔 수 없 이 로브를 입게 만들기엔 충분한 이 유가 되었다.
“내가 아는 서천영은 절대 로브를 입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신기하네.”
“사람이 살다보면 바뀌고 그러는 거지.”
“그러게. 키가 작아지기도 하고.”
“너 진짜 내가 언젠간 없애버릴 거 야.”
샐라임의 아메리칸 조크 어택은 서 천영의 허접한 민첩 스텟으로는 회 피하기가 힘들었다. 매번 반응해주 는 덕분에 셀라임이 더욱 힘을 얻는 단 사실을 알면서도 그만둘 수가 없 었다.
“이번 경우는 많이 다르니까. 헤이
지 누나가 선물해준 것이기도 하 고.”
로브를 입는 것은 꽤나 오랜만이기 도 했다. 초보자 시절을 제외하고선 언제나 기사들이 입는 갑옷을 억지 로 걸치고 혼자서 몬스터를 상대했 기 때문이었다. 많은 마법사들이 천 영을 볼 때마다 지적을 하곤 했다.
“나는 솔로 플레이 유저라 마나 회 복력보단 방어력이 중요해.”
“로브를 입는 게 어떠니?”
“캐스팅 속도가 향상되는 로브는 너무 비싸.”
‘로브를 입는 게 어떠니?”
“나는 갑옷이 더 좋은데.”
“로브를 입는 게 어떠니?”
“하늘이 참 맑다.”
“로브를 입는 게 어떠니?”
“그거 들었어? 이번에 길드 차원에 서 대규모 레이드를 한다던데.”
“로브를 입는 게 어떠니?”
“이 새끼야 진짜 뒤질래?”
“로브를 입는 게 어떠니?”
하도 로브를 입으라던 마법사들의 집착,그것을 넘어선 광기까지 보이 기 시작하자 천영은 아예 돌아버릴 지경까지 가기도 했다.
“간만에 입으니 편하고 좋네.”
그렇게 말하며 천영은 의자 등받이 에 몸을 기대었다.
한참을 달리던 마차는 거대한 아치 형 건물을 지나고 새하얀 다리를 건 너 마침내 ‘혹시 왕이라도 사는 걸 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거대한 건물 에 도착했다.
총 7개로 이루어진 그 건물들은 하나하나가 엄청난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높거나 넓은 형태를 자랑했다. 3개의 건물은 40층을 가 뿐히 넘어갈 정도로 높이 솟아있었 다. 또한 4개의 건물은 각각 지구에
서 나름 큰 규모를 자랑한다던 대학 건물의 수준을 가뿐히 뛰어넘는 크 기였다.
중앙에는 화려한 분수대가 솟아오 르고 있었으며 하늘에는 원반 형태 의 마법 도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새인지 익롱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제일 높은 빌딩의 꼭대기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 고 있었다.
상당히 아름다운 장관이었다. 형형 색색의 아름다운 불빛덩어리가 허공 에 ‘로드웰 아카데미’라고 수놓아져 있었는데 척 봐도 이 아카데미의 마 법 수준을 자랑하기 위함으로 보였
“와,예쁘다.”
이것이 평범한 여자 안시르엘의 반 응이 다.
“저번보다 구려졌는데.”
이것이 평범한 마법사 헤이지의 반 응이고,
“난 이런 학교 안 다닐래.”
이것이 평범한 대학생이던 셀라임 의 반응이었으며,
“돈지랄 미쳤네. 진짜.”
이것이 가난한 알바생 서천영의 반 응이 었다.
헤이지와 천영은 로드웰 아카데미 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 하기 위해 금색의 손목시계를 꺼내 서 보여줬다. 그 즉시 마법사들이 웅성거리더니 높은 사람을 불러오겠 다며 부산을 떨면서 어디론가 사라 졌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 구경 이나 좀 할까?’라며 천영이 입을 열 었지만 정말 몇 초도 되지 않아 새 하얀 로브를 입은 할아버지가 헐레 벌떡 뛰어왔다.
그 할아버지는 천영와 헤이지 앞에 뛰어와서는 달려온 시간보다도 더 길에 숨을 고르더니 마침내 입을 열 었다.
“메이지 헤이지와 메이지 서천영 님을 환영합니다. 자,이쪽으로 오시 겠습니까?”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으며 아카데 미를 이동하는 내내 천영은 좋은 구 경을 할 수 있었다. 원래는 정원이 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에는 수 많은 마법 도구들이 즐비해 있었는 데 전부 학생들의 작품이라고 한다.
“엘리트들만 모이는 학교라 좋은 발명품이 자주 나와서 ‘길드’에서 자주 오거든. 아마 저거 만든 애들 은 아주 죽어라 힘썼을 걸?”
“길드요?’
“응,같은 마탑에 소속된다고 해서 같은 편은 아니거든. 꼭대기에 마탑 주가 있는 것은 똑같지만 그 아래에 는 길드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파벌 이 나뉘어. 당연하게도 그 중에서도 명문 길드가 있기 마련이고. 학생들 은 좋은 길드에 들어가기 위해 발버 둥을 치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헤이지는 추억을 회 상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둘 러보았다.
“옛날 생각나네. 나도 여기서 공부 했거든.”
그러더니 뜬금없이 이를 갈았다.
“망할 마탑주 할배를 만난 것도 이 때쯤이었을 걸. 개 같은…… 금색 별 마탑이라고 혹한 내가 잘못이긴 한데. 후,젠장.”
천영은 헤이지의 불만에 대해서는 딱히 캐묻지 않았다. 다만 레이븐에 게 뭔가 불만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 각할 뿐이다.
“로드웰 아카데미의 발표회는 볼게 많기로 유명해. 일반인도 이때는 자 유롭게 출입할 수 있거든. 말이 발 표회지 사실상 축제야. 저기 노점이 늘어서 있는 것만 봐도 뻔하지만.”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축제 분위
기를 느끼며 할아버지를 따라가자 제일 뒤쪽에 있던 건물의 입구에 도 착했다. 할아버지가 말하길 이곳은 현재 논문 발표를 진행 중인 곳이라 고 한다.
“이곳입니다.”
건물 내부에 들어선 다음 엘리베이 터를 타고 복도 몇 개를 지나서야 거대한 강당 같은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의 중앙에는 현재 어떤 마법사가 논문을 발표하고 있었는데 교수진들과 로브를 입은 나이 많은 마법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 게 경청하고 있는 폼이 꽤나 굉장한 발표인 모양이었다.
헤이지는 강당의 정중앙에서 발표 를 하고 있던 남자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논문 발표회는 개인적으로 좋 아해서 나가긴 싫은데…… 이렇게 운이 없을 줄이야.”
“왜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남자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러고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느끼하게 생긴 놈이 ‘예런’이 야.”
천영은 예런이라고 불린 남자를 천 천히 살펴보았다. 백금발의 머리카
락을 위로 치켜세운 모습에는 자신 감이 넘쳤다. 또한 명품 브랜드에서 주문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로브에 는 귀티가 좔좔 흘렀다. 무엇보다도 저 눈빛,저 당당한 말투,저 손짓 하나하나까지! 완벽한 리더의 재능 을 타고난 것으로 보이는데다 논문 의 내용이 고작 학생이라기엔 굉장 한 것이었다.
‘심지어 잘생겼네. 기분 나쁜 새 끼.’
같은 남자가 봐도 ‘와,멋있게 생 겼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는 외 모가 있다지만 예런의 경우에는 ‘기 생오라비처럼 생겼네. 재수 없는
놈.’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외모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호리호리하고 예쁘 장하게 생겨서 여자들한테 인기 많 을 것 같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한참이나 강당의 중앙에서 떠들던 예런은 화려하고 절도 있게 논문 발 표를 마쳤다. 몇몇 교수진은 기립 박수까지 칠 정도로 반응이 아주 뜨 거웠다. 신사처럼 우아하게 인사를 받아주던 예런은 자신을 보러와 준 사람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했다. 그 나름대로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얻는 방법이리라.
그는 사방을 돌면서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았고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천영과 예런의 눈 이 마주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