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49화 (48/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49화

“이렇게 탱커가 편한 던전은 진짜 처음인데.”

마지막 스테이지 그러니까 다른 던 전으로 치면 보스룸과도 비슷한 장 소의 입구에서 어떤 탱커가 내뱉은 소리였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 말 에 공감했다.

이 던전은 몬스터가 등장하기는 하 지만 지극히 두뇌적인 플레이를 지 향하는 장소였고 이곳에는 머리가

뛰어난 마법사가 아주 많았다.

처음에는 조금 버벅거리는 면이 많 았지만 가면 갈수록 마법사들이 서 서히 이 던전의 진행 방식에 적응을 해갔다. 덕분에 다른 직업군은 아주 편하게 던전을 버스를 타듯 직행으 로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마지막 스테이지도 아마 크게 다 르지 않겠지?”

“그렇지 않으려나. 아무래도 ‘퀴즈 의 달인 루블랑’이 만든 신전인데 말이야.”

퀴즈의 달인 루블랑,아주 오랜 과

거에 정말 기상천외한 퀴즈를 세상 에 뿌림으로써 수많은 신도까지 양 성해낸 무시무시한 퀴즈의 괴물. 마 법사이자 퀴즈를 좋아하던 루블랑은 자신의 마법에 퀴즈를 접목하여 수 많은 수수께끼를 만들어 냈는데 그 총집합체가 바로 이 루블랑의 신전 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 스테이지의 룸도 총 두 개 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스테이지 역시 마법의 힘으로 인해 가로막혀 서 서로의 룸에 간섭하는 것은 불가 능합니다. 결국 각 그룹으로 나뉜 파티는 도움을 바라지 않고 알아서 스테이지를 클리어 해야만 한다는

소리죠.”

네란이 미리 몇 가지의 사전 조사 를 한 뒤 원정 대원들에게 정보를 전파했다. 마지막 스테이지는 여타 의 던전처럼 보스가 존재한다고 한 다.

두 개의 룸에 두 마리의 보스. 하 지만 이 보스 또한 평범하게 때려잡 는 것이 아닌,사방에 퍼져있는 퀴 즈를 풀이해가며 잡아야만 한다는 모양이었다.

“뭐 그런 변태 같은 보스가 다 있 어?”

천영은 조용히 구시렁댔다. 그는

마법사 즉 학자이자 드래곤이었지만 머리 쓰기를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우선 파티를 나누겠다.”

케일런은 그룹을 마법사들 위주로 편성하여 나누었다. 탱커의 수와 힐 러의 배치를 가장 중요시했던 여타 의 던전들과는 다르게 마법사들이 얼마나 쾌적하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키워드를 찾느냐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천영은 파티가 나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두 개의 룸 중에서 B타 입 쪽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서는 그룹창을 확인했다.

“오예, 나 서천영이랑 같은 그룹이 야.”

“깍,나도.”

“부럽다……

왠지 주변에서 거슬리는 소리가 들 린 것 같지만 천영은 별로 신경 쓰 지 않았다.

“형,이거 드실래여?”

“응?”

같은 그룹이 된 렌디가 살갑게 다 가오더니 자기가 쥐어뜯고 있던 육 포를 건네줬다. 먹을 거라면 마다하 지 않았기 때문에 천영은 그것을 받

아들어 한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은 자세로 육포를 들고 질경질경 씹었 다. 귀찮다는 티가 팍팍 나는 표정 과 육포를 뜯는 그 자세에서 느껴지 는 연륜은 결코 어린애가 아니었지 만 오히려 신선한 향내음이 풍겨왔 다. 어린애가 그런 자세를 하고 있 으니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너도 우리 그룹이냐?”

“넹,근데 형 육포 뜯을 때 이는 안 아파요? 저 어릴 때 질긴 삼겹 살 먹다가 이 빠진 기억 있는데.”

“딱히 아프지는 않은데.”

천영의 이는 보통의 어린애와는 다

르게 성인처럼 아니,그 이상으로 튼튼했다. 근력은 물론이요 유연성 과 반응 속도까지 타고난 수준이니 여타의 인간과는 이미 차원이 다르 다고 할 수 있었으나 외형이 어리기 때문에 자주 그런 비교가 들어오곤 했다.

“흐음,어떤 종족으로 탈태했는지 정말 안 알려주실 거예요?”

“조만간 알려준다니까.”

천영 역시 케일런이나 렌디,이혜 림 등에게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사 실을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다. 다 만 특별한 종족으로 탈태에 성공해 서 외모가 어려졌다는 사실만을 일

단은 전해놓았다.

“그나저나 형이 커스터 마이징 시 스템을 발견한 게 아니라서 아쉽네

요.”

“왜?”

그러자 렌디는 두 눈을 반짝거리며 대답했다.

“왜냐뇨! 비록 지금은 그리픈으로 넘어와 버렸지만 저는 넥스트를 할 때 매번 든 생각이 있거든요.”

RPG를 하는데 왜 굳이 냄새나는 남자 캐릭터를 해야 하는가!

넥스트는 현실의 외모를 거의 99%나 가져와서 반영한다. 장애가

있거나 시력이 안 좋거나 화상 자국 이나 보기 싫은 흉터를 지워주는 서 포트가 존재하긴 했지만 기본 외모 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할 때 의 로망인 귀엽고 깜찍한 여자 캐릭 터를 플레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옛날 컴퓨터 RPG 보면 아저씨들 대부분이 작고 어린 여자 캐릭터 키 우던 거 아시죠? 그게 무슨 의미인 지 아세요?”

“알고 싶지 않은데.”

렌디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게 바로 진리예요. RPG의 진

“지랄한다.”

“크흑,저는 형이 온라인 게임의 그 진리를 깨닫고서 시스템을 완벽 하게 파헤쳐버린 줄 알았어요.”

“내가 너냐.”

RPG의 진리는 개뿔. 천영은 렌디 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다. 애초에 그는 컴퓨터 게임을 할 때에도 갑옷 을 입은 기사 클래스를 골라서 플레 이했다.

비록 넥스트를 시작했을 때에는 실 제로 마법을 쓰는 것이 멋있어 보여 서 마법사를 해버리긴 했지만 그럼

에도 갑옷의 로망을 버리지 못하고 입었을 정도이니 그 집착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작고 여리고 약해보이는 외모보다는 역시 남자는 든든하고 우직해 보이는 맛이 있어야지.’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천영으 로서는 렌디가 주장하는 것이 마음 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이 개미새 끼 한 마리도 못 죽일 것 같은 외 모에 너무 연약하고 가느다란 팔다 리를 가진 외모를 고평가해주는 렌 디를 이해할 수 없었다.

“껍쩝. 아쉽뱅.”

천영은 구시렁대는 렌디를 뒤로하 고 B타입 스테이지의 앞에 다가갔 다. 어쩌다 보니 천영은 B타입 그룹 의 리더가 되었는데 B타입의 그 누 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여태 껏 천영이 보여준 비상한 두뇌(야매 쪽으로 굴러가는 잔머리)를 믿고 있 는 모양이었다.

“출발합시다.”

케일런이 말을 델어뜨린 다음 A타 입으로 출발하는 것을 확인한 천영 역시 B타입의 문을 열어젖혔다. 내 부로 진입하자 형형색색의 알록달록 한 문양과 문자,도형이 사방에 잔 뜩 그려져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꽤나 넓은 정사각형 형태의 이 공간 의 중앙에는 8개의 관을 땅에다가 박아두고 자신의 하체와 연결해둔 채 눈을 감고 있는 ‘삐에로’ 하나가 서있었다.

“퀴즈라 이러니까 꼭 RPG를 하는 것 같잖아.”

유저가 접근하기 전까지 반응하지 않는 보스 몬스터. 하지만 게임 공 략이 시작되면 가차 없이 플레이어 들에게 기믹(속임수)를 홀리고 퀴즈 를 풀지 못하면 끔찍한 대가를 치르 게 만드는.

천영은 또다시 이 거지 같은 루블 랑이라는 놈의 퀴즈를 풀어야한다는

사실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 다.

“그럼…… 가볼까요.”

“네!”

“가죠.”

힘이 없는 천영에 비해 어째선지 힘이 펄펄 넘쳐나는 파티원들이 활 기찬 목소리로 대답하자 천영은 탱 커를 전방에 배치한 다음 보스전을 시작했다.

삐에로가 눈을 번쩍 뜨고 관에서 우옹 거리는 진동이 울려 퍼짐과 동 시에 사방에 새겨져 있던 문양과 문 자,도형의 색이 마구잡이로 뒤바뀌

기 시작했다. 삐에로의 눈 역시 도 형과 맞춰 변화하면서 특수 패턴을 사용하는 것을 확인한 천영은 아주 살짝 의욕이 돌아온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뭐야. 생각보다 쉽네.”

이혜림은 넥스트를 플레이하던 시 절부터 독특함과 더불어 상당히 특 이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 명했다. 여타의 마법사들은 기본적 인 공격 마법을 위한 기본적인 공식

과 주문,캐스팅 법을 외울 뿐이었 지만 이혜림은 특이하게도 그 마법 에 대한 모든 것을 파헤치고 들었 다. 공식이면 공식,주문이면 주문, 속성이면 속성.

왜 좋은 머리를 고작 게임 속 마 법을 공부하는데 쓰냐며 비웃는 사 람들도 꽤 있었다. 일부 게이머들은 그녀처럼 공부를 해가며 마법을 사 용하면 스킬 효율이 훨씬 좋기 때문 에 게이머로써 존경하기도 했다. 하 지만 실상 그녀가 마법에 대해 공부 를 한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그냥 재미있어서.

누군가에게 공부가 재미있다고 말

하면 재수 없는 놈이라며 돌팔매질 을 당하겠지만 이혜림은 정말로 순 수하게 마법의 공부가 재미있었다.

원래는 혜림 역시 마법이라는 스킬 자체가 귀찮고 번거로운 존재밖에 되지 않았지만 천영에게 처음으로 야매 마법을 배운 그 순간부터 이 학문의 무궁무진함을 깨달은 혜림은 정신없이 마법이라는 것을 파고들었 다.

그 결과 혜림은 그리픈으로 넘어와 서 그 어떤 마법사보다도 빠르게 마 법이라는 학문에 적응할 수가 있었 다. 넥스트 때보다도 훨씬 더 방대 한데다가 끝도 없이 공부를 해야만

했지만 이혜림은 그럼에도 아니,그 렇기에 즐거웠다.

“대단한데……

누군가가 멍하니 이혜림을 보고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6클래스의 마법사,그 이름이 가진 가치는 상상 그 이상의 것이었다. 마법의 위력이 강해서 그런 것은 아 니었다. 캐스팅 속도가 빨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마법진이 파훼되 는 속도가 다른 마법사들과는 차원 을 달리했다.

허공에 그려져 있는 수많은 마법진 의 집합체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안

쪽부터 차례차례 흩어지고 무너지 고. 원이 점점 커지더니 허공으로 분해되어 사라진다. 이혜림의 손바 닥이 향하는 곳이면 보스가 사용하 는 대부분의 마법이 무효화가 되었 다.

애초에 공략이랄 것도 필요 없을 정도였다.

5개의 머리를 가진 기계 형상의 보스는 머리를 마구 돌려가며 ‘죽 음!’ ‘공포!’ ‘절망!’ ‘무력!’ ‘혼돈!’ 이라는 대사를 외치며 그에 걸맞은 패턴을 발생시켰다. 사방에서 벽이 옥죄어 오거나 기둥이 마구 내리치 며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했고 뜬금

없이 보스의 입에서 레이저가 발사 되어 다섯 방향을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에 의해 파티원들이 피해를 입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 혜림과 케일런은 거의 완벽에 가까 운 대처로 그 모든 것들을 막아내거 나 마법 그 자체를 분쇄시켜버렸다.

뿐만 아니라 케일런은 그 특유의 판단력과 리더쉽을 발휘하여 마법사 들을 적재적소에 딱 알맞은 장소에 배치하여 패턴을 공략하도록 유도했 다. 자신의 그룹에 있는 파티원 40 명 전원이 흩어지면 중심으로 발사 되는 큐브가 생성되기도 했으며 그

들을 일렬로 배치하면 바닥에 돌림 판이 생성되어 마나의 전류를 유도 하도록 만드는 퍼즐이 나오기도 했 다.

패턴이 하나씩 공략될 때마다 보스 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큰 데미지를 입어갔다. 모든 패턴의 파훼가 순조 로웠고 마법사들의 체력 역시 안정 적으로 보존되고 있어서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으레 던전이 그렇듯 언제나 변수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법이었 다.

보스가 점점 망가져가고 있다 싶을 때,갑자기 5개의 얼굴이 위아래로

뒤집히더니 내뱉는 대사를 바꿔버렸 다. ‘행복!’ ‘축복!’ ‘환영!’ ‘기쁨!’ ‘사랑!’ 다섯 개의 대사를 내뱉으며 또다시 처음 보는 퍼즐을 만들어서 공략을 유도했다.

‘페이즈 전환인가. 골치 아프군.’

케일런은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불 평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더 빠르고 신속하게 흩어 져 있는 마법사들이 얻은 정보를 토 대로 공략법을 완성하고 마법의 해 석을 진행했다.

보스의 퍼즐이 아무리 바뀌어도 별 문제는 없어보였다. 하나씩 나오는 퀴즈는 마법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어떤 것이라도 금세 해결 되었고 마법진 역시 별 달리 꼬이지 만 않으면 금방 해결되는 것들이었 으니까.

그렇게 무난하게 진행이 되는 도 중,이변이 생겼다.

“뭐, 뭐야 저건?”

“얼굴 두 개가 한꺼번에 눈을 뜨는 데?”

원래 같았으면 한 개씩 발생하던 퍼즐이 두 개씩 발생하기 시작한 것!

케일런은 조금 굳은 표정을 지었지 만 그래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세 개,네 개 마침내 다섯 개의 얼굴이 모두 눈을 뜨기 직전까 지는.

“집중해! 최대한 흩어져서 몸을 사 리고 계산에만 집중해!”

다행스럽게도 보스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패턴이 붕괴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불길이 십자 형태로 왔다 갔다 하는가 하면 하늘에서 쇠구슬 의 비가 떨어져 내렸고 바닥이 마구 잡이로 미끄러워지기도 했다.

케일런은 여태까지 마법 하나를 공

략하는데 많은 마법사를 투입했지만 결국 그 인원을 더 효율적으로 나누 기 위해 마법 하나당 마법사 한 명 을 투입했다. 결국 그들의 역량에 모든 것을 떠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 던전 공략에 참여한 마법사 전 원이 뛰어난 인재라서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가.’

심지어 이혜림은 세 개의 퀴즈를 한꺼번에 공략하고 있었는데 정말 괴물로 보일 지경이었다.

케일런은 파티원들을 마치 체스말 처럼 다루면서 오더를 내리기 위해 많은 퍼즐을 담당할 수가 없었다. 현재 자신이 풀어야하는 퍼즐조차

벅찰 지경이었다.

보스는 갈수록 마지막 힘이라도 쥐 어짜내려는 것인지 머리를 위아래, 양옆으로 굴리면서 퀴즈를 마구 발 생시켰다. 결국 그것들을 해석하는 시간보다 생성되는 시간이 더 빨라 지기 시작했다.

기계처럼 생긴 보스의 몸에 서서히 금이 가는 것을 보면 체력이 거의 다 닮은 것 같기는 한데 당최 언제 죽을지 알 수가 없으니 케일런은 아 주 죽을 맛이었다.

‘조금만,더 버티면……

그리고 그 순간 마지막 퀴즈가 발

생했다. 작은 픽셀로 이루어진 거대 하고 투명한 결계가 맵의 정중앙에 생성된 것. 그리고 그것은 공동 여 기저기에 서있던 파티원들 스무 명 을 랜덤으로 집어서 끌어당겨 안에 다가 가둬버렸다.

“젠장!”

언제나 냉정함을 유지하던 케일런 조차 당황할 정도로 너무나도 갑작 스러운 등장이었다. 설마 여기서 새 로운 마법이 등장할 줄은 꿈에도 몰 랐다.

지금 자신은 아직 오더를 내리는 도중인데다가 풀고 있던 퀴즈조차 미완성이라 저것을 당장 공략할 수

는 없었다.

뭐든 만능으로 척척 해내는 이혜림 또한 퀴즈를 다섯 개나 풀고 있어서 저것을 맡을 수는 없었다. 케일런은 다급한 표정으로 마법사들을 둘러보 았다. 마법진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 지고 해석할 수 있는 고레벨의 마법 사를.

“제,제가 할 게요!”

“……세이지.”

방금 막 자신이 맡은 퀴즈를 풀어 내린 세이지가 케일런에게 다가왔 다. 케일런은 세이지의 표정을 천천 히 훌어보았다. 지나치게 자신감에

넘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레벨이 300을 넘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

케일런은 선뜻 그녀에게 저것을 맡 기려다가 천영의 경고가 생각났다.

‘천영은 세이지를 조심히 보살피라 고 했지만……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저 결계를 맡을 사람은 세이지 밖에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케일런은 결 국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에서 싹 트는 불안한 감정을 애써 지우고선.

케일런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이지

는 살짝 신난다는 표정으로 접싸게 결계에 다가갔다. 그녀는 손을 쥐락 펴락 하더니 결계에 손을 가져다 대 어 마법 코드를 추출하기 시작했다.

‘할 수 있어. 여기서 내 능력을 보 이는 거야.’

적어도 여태까지 무시당했던 치욕 만큼은 지울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세이지는 천천히 결계의 암호를 해석해나갔다. 본래부터 똑 똑했던 세이지가 눈을 감고 집중하 자 그것은 어렵지 않게 해석될 수 있었다. 천천히 조금씩 한 명 씩 구 출해내는 법을 향해서.

‘찾았다!’

세이지는 금방 결계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워낙에 복잡한 것이라 당장은 풀어낼 수 없 었지만 조금만 힘을 들이면 문제없 이 되리라. 케일런 역시 세이지가 결계의 해석을 진행하는 것을 보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저 정도면 문제 없…… 뭐 야?’

그렇게 안심하고 맡기려는데 뭔가 가 이상했다. 해석 과정을 보면 분 명히 한 번에 한 명씩 구출되어야 정상일 텐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구 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까이서 그것을 지켜볼 수 없으니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꿀꺽.

세이지는 침을 삼키며 마법 회로를 억지로 돌렸다. 조금은 무리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녀는 한 번에 한 명씩 구출할 수 있는 사실 을 깨달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결계가 최후의 퀴즈라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하나의 목표를 정했다.

‘이것을 가장 멋지고 화려하게 파 훼하는 거야!’

최종 스테이지의 최종 페이즈. 그 최후의 퀴즈를 자신이 완벽하고 멋

있게 해석해낸다! 이 얼마나 멋있는 울림이던가. 그녀는 한 번에 한 명 씩 구출하는 것을 포기하고 한 번에 스무 명을 전원 구출하는 쪽을 택했 다.

마법의 해석을 병행해가며 스무 개 의 암호를 전부 해석하기만 한다면 문제는 없으리라.

“세이지,뭐 하는 거냐!”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금방 해 석할 테니까.”

이미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결계 따위는 별 문제도 되지 않았기에 세 이지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하

지만 케일런은 떨리는 눈동자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의도를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설마 저거 한 번에 마법의 해석을 진행하겠다고?’

너무 위험하다. 마법의 해석이라는 것은 그것이 조금만 꼬이면 마법의 구조 자체가 크게 뒤틀려버린다. 평 범한 화염계 마법이 뒤틀리면 그저 폭발할 뿐이고 수류계 마법이 뒤틀 리면 증발할 뿐이지만 ‘결계 마법’ 이라면? 차원이 다른 리바운드 현상 이 발생한다.

“세이지,그만 뒈 내가 해석하겠 다.”

“아니에요. 거의 다 끝나가니

세이지는 자꾸만 말을 거는 케일런 에게 대충 대답한 다음 마지막 암호 를 풀어내려는데 뭔가 이상한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최종 암호가 마법 문자로 해석되어 나타나지 않는 것 이다! 이 경우에는 단 하나밖에 없 었다. 어디에선가 계산이 잘못된 것.

‘아냐,이 정도면 어떻게든 해볼 만해.’

계산이 잘못된 것이라면 거슬러 올 라가서 그 해답을 다시 도출해내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이지에

게 있어서 아주 익숙한 것이기도 했 다.

……문제가 있다면 20개의 암호 해석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뭐지? 여긴 맞는데? 아냐,애초에 여기도 틀려있던 건가? 그…… 럼 어디서 잘못된 거지?’

한 번 꼬이기 시작한 계산은 갈피 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꼬 여버렸다. 잘못된 계산 공식이 어디 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 해석이 진행되었다. 마법 회로가 비틀리고,마나의 흐름이 뒤 바뀌자 결계에도 이변이 생겼다. 그

것이 테두리부터 서서히 찌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안 돼.”

당황한 세이지는 허둥지둥 그것을 막기 위해 결계의 테두리를 관장하 는 공식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하지 만 이미 그것조차 공식이 꼬여버려 오히려 역으로 결계가 더욱 찌그러 지는 것에 힘을 일조하고 말았다.

안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살려달라 고 외치는 것조차 무시한 채 세이지 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계산식 을 훑어보았다.

“이,이럴 수가…….,,

그녀는 그제야 깨닫고 말았다. 해 석의 진행이 애초에 처음부터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한 명이라도 구출하려고 시도했다면 그것이 잘못 되었단 사실을 깨닫고 해석 방향을 바꾸어 이렇게까지 꼬이진 않았을 터인데. 그 잘못된 계산식으로 20개 나 되는 암호를 병행하여 해석하다 보니 단단히 꼬여버렸다.

뒤늦게 자신의 퀴즈를 모두 풀어버 린 이혜림과 케일런이 서둘러 결계 에 다가왔다.

이혜림은 식은땀을 뻘뻘 홀리며 결 계에 손을 가져다 대어 마법 구동의 근원 자체를 찾아 나섰지만 단단히

꼬여버린 마법 공식 속에서 그것을 찾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세이지,정신 차려! 이 마법진이 뒤틀린 원인은 너밖에 모른다! 네가 찾아야 해석할 수 있어!”

세이지만의 스타일대로 풀려있는 마법진이기에 뒤늦게 합류한 이혜림 이나 케일런이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것을 찾으려면 최소한 한 두 시간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결계가 찌그러 지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기에 그 만한 여유는 없었다.

“아니,그,저,그게,저도 잘.”

“정신 차려 세이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 보았 지만 이미 꼬일 대로 꼬여버린 마법 진은 세이지의 손을 떠난 지 오래였 다.

케일런은 하는 수 없이 자신이라도 마법진의 해석을 진행해보기 위해 결계의 마법 코드를 추출해냈지만 그 순간 절망하고 말았다.

‘이거…… 너무 엉터리로 꼬여 있 잖아.,

도저히 자신의 수준으로는 시간 안 에 이들을 구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초 고레벨의 넥스터 300명 이다. 같은 고향을,같은 시간을 공

유하고 있던 동료들을. 충분히 구출 해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한 명의 실수 때문에 이들이 죽을 위기 에 처하고 만 것이다.

“으아아! 당장 우리를 꺼내줘!”

“제발,제발 부탁이야!”

“할 수 있다며! 빨리!”

이혜림 역시 눈을 질끈 감고 꼬여 있는 계산의 근원을 찾아 헤맸지만 마나 회로가 마구 선회하면서 결국 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불완 전한 마법진이 되어버린 상태로 결 계의 형태가 억지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든 최대한 그 시간

이라도 늦추려고 했지만 결계의 테 두리를 구축하고 있는 마법 문자조 차 방금 세이지가 건드는 바람에 망 가지고 말았다.

‘젠장,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야!’

세이지가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 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결계의 해석을 진행해보기 위해 그것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이 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린 공식은 그것을 망쳐놓은 세이지조차 해석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떠나버렸다.

마침내 결계가 최소한의 최소한까 지 축소되었고 그 경계면이 내부에 있던 파티원에게 닿는 순간 누군가 가 그것의 겉 표면에 손바닥을 가져 다 대었다.

파앙!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찌그 러들던 결계가 움찔 멈췄다. 그것을 확인한 세이지는 아주 천천히,옆쪽 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그맣고 새하 얀 손을 결계에 가져다 댄 채로 마 법진을 구성하고 있는 천영이 싸늘 한 표정으로 세이지를 쳐다보고 있 었다.

“뭘 꼬라봐. 역겨우니까 꺼져.”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조차 순간 잊은 세이지는 천영에게 욕을 먹는 순간 발끈하려고 했지만 케일런이 그녀의 어깨를 꽉 붙잡았 다. 케일런 역시 표정이 차갑게 식 어있는 상태였다.

“일단 나가 있어라 세이지. 이야기 는 조금 있다가 하지.”

“……네.”

천영은 세이지가 사라지는 것을 확 인하지도 않은 채 양손바닥을 결계 에 가져다 대었다. 그것을 천천히 해석하려던 천영은 이내 뭔가 짜증

이 확 솟구쳤는지 발로 그것을 걷어 차 버렸다. 그러자 결계의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쩌적! 하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내며 안 쪽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결계에 틈 이 생기자마자 안쪽에 있던 파티원 들은 허겁지겁 그 속에서 빠져나왔 고 마침내 결계가 완전히 무너지자 보스 역시 퀴즈가 공략이 된 여파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케일런이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간신히 물었다.

“어떻게……?”

“응? 너,내가 가르쳐준 거 다 까 먹었지.”

천영은 박살난 결계의 파편을 툭툭 건드렸다.

“뭘 굳이 해석하겠다고 지랄이야? 그냥 방어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마 법 코드만 찾아서 풀어버린 다음 깨 버리면 되는 거잖아.”

그것은 말로는 쉬웠지만 상당히 어 려운 작업인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언제 어떤 발작을 일으킬지 모르는 결계를 상대로 그런 ‘야매’를 쓸 수 있는 사람 역시 천영밖에 없었다. 케일런은 살짝 어이가 없어졌지만 이내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혜림은 땀을 뻘뻘 홀리는 상태로 비틀거리며 천영에게 다가와 바로 옆쪽에 주저앉았다.

“……아저씨,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본래 ‘룸’은 한 번 누군가가 입장 한 순간 서로 간의 간섭이 불가능했 다. 다른 그룹이 입장한 상태라면 또 다른 그룹이 입장해서 도와줄 수 가 없다는 것.

하지만 천영은 무슨 소리냐는 식으 로 오히려 되물었다.

“뭔 소리야? 여기 출입문도 마법이 더만. 그냥 부수고 들어왔지.”

그 대답을 들은 이혜림은 왠지 기 쁜 표정을 지었다. 겉모습이 아무리 많이 바뀌었고 갑옷을 입던 취향조 차 사라졌다. 3년이 넘는 시간이 지 나버렸지만 그럼에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서천영은 처음 만난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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