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82화
보라색으로 진하게 물든 숲. 마치 치명적인 독에 오염이라도 되어있 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어 상당히 불안한 느낌을 줄 수도 있 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혼란’ 이라는 순수한 기운을 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범한 다른 존재 에게는 그다지 많은 영향을 끼치 진 않는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순수한 생물
이라면 모를까. 평범하게 자란 성 인이라면 그저 몽롱한 기운이 들 뿐 별 영향이 없다는 의미.
그렇기에 릴베르산은 온몸을 위 생복으로 무장하고 있는 카이펠을 한심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왕년에는 나이트 견습생으 로서 꽤나 이름 날리던 쟁쟁한 실 력파였던 주제에 이런 미지의 마 법같은 것은 극도로 무서워한다. 릴베르산은 지팡이로 카이펠의 머 리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이게 치명적인 독이었으면 그딴 싸구려 위생복은 아무 의미도 없 다니까?”
“건들지 말라고! 나는 이런 거 죽 어도 싫으니까……
카이펠이 엄살을 피우며 소리를 버럭 지르자 근처에 앉아서 쉬고 있던 귀성이 어처구니 없다는 둣 웃음을 홀렸다.
“내가 저딴 병신같은 새끼랑 같은 팀을 해야 한다니……
귀성의 팔뚝에는 척추 모양의 문 신이 길게 새겨져 있었다. 귀성 뿐 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앉아있는 7명의 인원 중 4명의 팔뚝에는 척 추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는 데 이것은 ‘팔리 다리에르’의 일원
임을 증명하는 상징이기도 했다.
이들 중 팔리 다리에르의 소속이 아닌 릴베르산은 자신과 같은 클 랜에서 파견 나온 카이펠을 어떻 게든 창피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 의 결벽증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양이다.
“하아…… 개 같네 진짜. 돌아가면 담당자한테 따져야겠어.”
릴베르산은 슬쩍 나무에 기대 우 중충한 분위기로 책을 읽고 있는 안경 쓴 미남자를 쳐다보았다. 처 음에는 자신의 클랜에 저런 남자 가 있었나 하며 꽃이 만개하는 상
상을 펼친 적도 있었지만 그녀의 싸가지 측정기에 저 남자의 전투 력이 완벽하게 파악되었다.
‘싸가지 측정 중……
‘측정 결과,제로.’
‘결론 싸가지 없음.’
말을 걸면 깔끔하게 무시하질 않 나 뭐 부탁하면 들은 체도 안 하 고 거의 다른 동료들을 동물 보듯 이 쳐다본다.
그 기분 나쁜 행동에 저 남자, ‘난페르’는 이 파티에서 거의 아웃 사이더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지 만 그는 이런 상황조차 즐기는 듯
했다.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릴베 르산조차 한 수 접어줄 정도로 저 난페르라는 남자의 성격은 거대한 장벽이 하나 쳐져있는 것만 같았 다.
애초에 ‘만추의 기둥’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을 보낼 때 왜 저런 카 이펠 같은 결벽증 환자와 철저하 게 혼자 행동하는 난페르 같은 마 법사를 동행시켰는지 릴베르산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 의 클랜 ‘붉은 룰’에서 시키는 대 로 따랐을 뿐이지만 그녀는 이 임 무가 끝나고 나면 절대 이딴 임무 를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했
다. 보는 눈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 다도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릴베르 산이었다. 다음부터는 조금 더 엘 리트들과 함께하고 싶은 욕망이 일렁였다.
‘후후,그래. 내가 이딴 파티에 있 을 만한 인재는 아니잖아?’
이런 머저리들이랑은 빨리 해산 하고 다음 임무 때 고정 파티를 짜면 그걸로 족하다. 이런 모자란 놈들은 어디 가서 채여 죽든 말든 그녀의 알 바는 아니었다.
릴베르산의 바로 근처에서 다 죽 어가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카메 라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는 사진만 찍으면 되오?”
그의 말에 릴베르산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대충 찍으세요. 어차피 우리 가 볼 것도 아닌데.”
“……알겠소.”
그녀가 클랜에서 받은 임무는 간 단했다. ‘만추의 기둥’에서 나오는 생명체의 전투력 및 기본 성격과 습성 등을 파악하는 것. 그리고 증 거물로 사진을 찍어서 돌아올 것. 마지막으로 가능하다면 유니콘의 시체를 최대한 구해올 것.
당연히도 릴베르산은 자신이 힘 이 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소한 의 힘만 사용하여 임무를 완수할 생각이었다.
만추의 기둥에서 어떤 괴물이 나 오든 말든 대충 ‘레벨’만 보고 돌 아갈 생각이었다. 사진도 대충 한 두 장 찍고 유니콘의 시체는 생각 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유 니콘의 시체를 구하려면 바람의 숲 깊숙한 곳까지 ‘만추의 기둥’에 서 나온 무언가가 진입하는 것을 기다리라는 소리 아닌가?
절대로 죽어도 그녀는 스스로 위 험한 일에 몸을 담글 생각이 없었
다. 오로지 본인의 안전이 우선이 다. 애초에 이기적인 마인드를 가 진 릴베르산에게 ‘레벨’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넥스터라고 해 서 이런 정보 파악 임무에 파견을 보낸 클랜이 잘못했다. 릴베르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기둥에서 이렇게 동 떨어진 곳에 있어도 되는 거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암살자 복장 의 남자 옆에 앉아있던 중년의 마 법사 쿠펜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빙글거리며 지루하다는 둣 말하자 릴베르산이 무슨 질문이 그러냐며 코웃음을 쳤다.
“당연한 거 아녜요? 근처에 갔다 가 괜히 위험한 몬스터라도 나와 서 휘말리면 어떻게 해요?”
“거참,하는 일에 열정이 없는 레 이디구먼.”
“흥,아저씨가 할 소린 아니죠.”
“나 참……
쿠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나름,팔리 다리에르에서 이름을 날리는 마법사였는데,요새 입지가 별로 안 좋아서 이런 꼴이 다.
“낄낄,형님. 요새 그 예…… 뭐시 기 하는 마법사 때문에 체면이 말
이 아니구려.”
“그러게 말이야.”
쿠펜은 국가에서 추방당한 이단 마법사다. 비록 마탑에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불법적인 마법을 연구하다가 추방당했다고는 하지 만 그에게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 었다.
쿠펜은 릴베르산을 한심스런 얼 굴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팔리 다리에르에서 이 임 무에 그들을 보낸 이유도 어디까 지나 붉은 룰 클랜과의 교류를 위 해서일 뿐이다. 만추의 기둥이 붉 은 룰 클랜에서는 꽤나 중요한 모
양이지만 팔리 다리에르의 입장에 서는 어디까지나 이웃집 사정일 뿐. 그냥 시키는 대로 적당히 하다 가 돌아가면 그들로서는 더 좋을 뿐이다.
“어머 저기 누가 있는 것 같은 데?”
보랏빛으로 물든 나무 위쪽에서 다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에 검은색의 복장을 두르고 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여인 센은 눈을 세로로 길게 찢은 채 어딘가 를 주시하고 있었다.
릴베르산은 누군가 있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있다는 거죠? 여기에 유니 콘들이 들어올 수 있을 리는 없잖 아요.”
“몰라. 있다니까,그러네. 기다려 봐.”
센은 고개를 쏙 내밀어 눈에 마 나를 집중시켰다. 그러자 안광이 살짝 뿜어져 나오며 시야가 순식 간에,망원경이라도 쓴 것처럼 길 에 쭉 뻗어나갔다.
‘흐음,저건……
온통 보라색으로 가득 찬 공간에 유유히 서있는 흰색의 점 하나. 그 것을 발견한 센은 미간을 찌푸리
며 더더욱 시야를 확보했다.
“흐응…… 유니콘이 들어온 모양 인데?”
“그럴 리가……
셴은 턱을 쓰다듬으며 그곳을 주 시했다. 유니콘은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니며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 었다. 그저 유니콘 한 마리가 잘못 들어왔겠거니 싶었던 센은 저것이 오염되면 시체라도 회수해가면 좋 겠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이 ‘혼란’의 기운에 고통스러워하 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
유롭게 허공을 내딛고 있었다.
‘뭐지?’
셴은 유니콘을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 마나를 집중시켰다. 그제야 유니콘의 등에 타고 있던 자그마 한 체구의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 었다. 검은색 머리칼에 검은색 복 장을 하고 있는 누군가.
‘가만 저 아이는……?’
이전에 바람의 숲에 누군가가 들 어오기에 한번 주시한 적이 있었 다. 그 때는 워낙에 거리가 멀어서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뚜 렷하게 볼 수 있었다. 셴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으흥,아무래도 유니콘의 등 위 에 누군가가 타고 있는 모양이야.”
“오호라,유니콘의 등 위에 탈 정 도라고?”
쿠펜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카메 라를 만지작대던 남자가 말했다.
“유니콘의 등 위에 아무나 탈 수 있던가……?”
“불가능하지. 남자를 아예 모르는 순결하고 아름다운 처녀가 아닌 이상에야.”
“어때요? 유니콘의 등 위에 타고 있는 사람은? 누구죠?”
센은 얼굴을 찡그렸다. 더 이상 자세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은 모르겠는데…… 머리카락이 긴 편인가? 복장이랑 머리색이 똑 같아서 잘 안 보여. 하여튼 가만히 서서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 은데……
릴베르산은 턱을 괴인 채 고민했 다.
‘흐음,저 위치면 만추의 기둥과 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참이 고…… 유니콘 한 마리쯤이라면 잡 을 수 있겠지? 귀찮게 바람의 숲 에 들어갈 필요도 없어졌고……
유니콘의 등에 타고 있는 사람이 궁금하긴 했지만 그것까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방해가 된다면 일 단 죽인다.
“잡으러 가죠.”
“좋은 생각일세. 우리는 임무를 모두 수행하면 추가 수당을 받으 니까.”
이곳에 딱히 리더는 없다. 그저 팔리 다리에르 4인조와 붉은 룰 클랜 3인조가 내키는 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 두 개의 그룹이 찢어지 지만 않는다면 임무를 수행한다는 목표만 비껴가지 않는다면 그저
서로의 동의하에 움직인다.
그렇기에 이런 결정이 내려지면 그들은 망설임 없이 움직인다.
“우선 센이 나무 위에서 포지션을 잡거라. 귀성은 유니콘의 둥 위에 타고 있는 누군가를 제압하고 너 는 마법을 미리……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쿠펜 이 간단하게 지시하자 팔리 다리 에르의 인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릴베르산은 딱히 자신의 그룹원들 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카이펠은 애초에 전투를 할 생각 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가 없었
고 난페르는 지금도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짜증나네.’
조금 더 파티다운 파티였으면 좋 겠다는 생각을 하며 센이 말했던 곳까지 천천히 이동을 한다.
“정말 죽어버린 숲 같군.”
생명력과 활기의 상징이었던 바 람의 숲에서 그 모든 활력이 사라 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들은 한참을 걸었다. 도중 셴에 게 유니콘의 위치를 물어보긴 했 지만 ‘그 위치에서 조금씩 이동하 고 있어.’라고 한다. 아무래도 정말
뭔가를 하느라 이곳에서 크게 움 직이지 않는 모양. 그 이유는 얼마 뒤에 릴베르산이 제일 먼저 발견 했다.
“어라, 이게 뭐지?”
바닥에 기묘한 흰색의 선이 곡선 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부 분을 중심으로 보라색의 ‘혼란’이 조금씩 ‘순수함’으로 변화되고 있 었다. 어떤 식으로 해석하자면 ‘정 화’라고 볼 수 있겠지만,누군가의 표현을 따르자면 ‘물감 칠하기’에 가까운 방식으로.
“맙소사. 만추의 기둥에서 흘러나 오는 기운인데 이게 정화가 되고
있다고?”
쿠펜은 심각한 얼굴로 그것을 살 펴보더니 식은땀을 흘렸다.
“이거…… 가만 두면 안 되겠는데. 이보게 곧 만추의 기둥에서 뭔가 가 도착한다지 않았나?”
“그랬지.”
“그 전에 이 주변의 기운이 모두 정화될 거야. 그 정도로 이 마법 은…… 강력해.”
“그렇게 되면……
릴베르산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 다. 이 일대의 혼란이 모두 정화되 면 여태까지 기다린 이유가 없어
진다. 만추의 기둥에서 나온 무언 가가 활동하기 위해선 이 주변의 모든 순수함이 혼란으로 물들어 있을 필요가 있으니까.
“대체 누가?”
“설마 아까 유니콘을 타고 있던?”
센이 고개를 젓는다.
“아냐. 유니콘의 등 위에 타고 있 는 사람의 정체는…… 음,하여튼 엄청 어렸어. 대단한 수준의 마법 을 구사할 수는 없어.”
“그럼……
유니콘이 마법을 사용했다는 말 인가?
“말도 안 돼. 유니콘이 이 안으로 들어와서 직접 정화 마법을 사용 할 수 있다고?”
“……두고 보면 알겠죠.”
릴베르산은 살짝 다급해졌다. 상 황이 좋지 않게 흘러간다는 사실 을 깨달았으니까.
“아직 이 마법은 완성되지 않았다 네. 지금 가서 저지하면 충분히 막 을 수 있어.”
쿠펜의 말에 그들은 더욱 빠른 속도로 유니콘의 뒤를 쫓았다. 거 의 30분 정도를 숲을 헤매며 전전 하다가 마법진의 기운이 더욱 강
해지는 장소까지 도달했다.
센은 바로 근처에 유니콘이 있다 는 수신호를 보내더니 나무의 사 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암살자 역 시 카메라를 감춘 채 숲속으로 몸 을 숨겼고 귀성과 카이펠이 각자 대검과 장검을 꺼내들었다.
이윽고 유니콘이 모습을 드러낸 다.
“……뭐야?”
유니콘의 등 위에 탑승해있던 자 그마한 꼬마가 그들을 발견하자마 자 그렇게 물었다. 그야말로 천진 난만하고 순진무구한 느낌의 생김
새를 가진 아이였다. 꿀끽.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귀성과 카 이펠을 포함해 그들은 그 아이를 보자마자 순간 넋을 잃을 뻔했다. 애초에 유니콘이 자신의 등에 소 녀를 태운 경우는 하나밖에 없다. 홀딱 빠져있다는 것.
릴베르샨은 멍하니 그 아이의 얼 굴을 쳐다보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마나를 퍼뜨려 상대방의 기운에 집중했다.
‘확실히 유니콘은…… 뭔가 엄청 나게 강해. 피부 주변에 알 수 없
는 기운이 둘러져 있어. 그에 비 해……
저 꼬마는 아무것도 아닌 약골로 보였다. 아무런 마나의 흔적도 느 낄 수가 없을 정도로.
“흐음,유니콘의 사랑을 받는 여 자아이인가? 이것 참,안타깝게 됐 어. 저런 축복을 받은 존재는 정말 흔치 않은데 말이야……
“뭐가 됐든 좋다. 지금 깔끔하게 죽일까?”
귀성이 그렇게 말하자 유니콘의 위쪽에 있던 나무에서 모습을 드 러낸 셴이 활과 채찍을 손에 쥔
채로 입맛을 다셨다.
“아냐,기다려봐. 저 아이는 생포 하는 게 낫겠어.”
셴의 눈이 반짝였다. 저토록 귀엽 고 아름다운 아이는 난생 처음 본 다. 분명 살려서 본진으로 데려가 면 재미있는 장난감이 될 수도 있 을 것이다. 유니콘의 등 위에 타고 있던 아이가 센의 그런 눈빛을 눈 치 챘는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후,겁먹어도 봐주지 않을 거란다,꼬마야.”
그 아이는 말없이 뭔가를 찾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더니 센을 또렷하게 쳐다보았다. 그 눈에 어 린 갈망을 읽은 센은 혀를 삐죽 내밀었다.
“왜 그러니?”
그러자 아이가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이 주변에 화장실 있나요?”
상황파악조차 하지 못한 꼬마의 뜬금없는 말에 순간적으로 적막이
돌았다. 카이펠은 장검을 들어 유 니콘에게 겨눴다.
“빠,빨리 죽이고 돌아가자……
“그게 낫겠군.”
왠지,무기가 자신을 겨누고 있자 천영은 어색한 웃음을 홀렸다.
“하하…… 저 여기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나쁜 사람 아니에요. 가볼 데가 있어서 그런데,먼저 실례할 게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싸우는 것 은 귀찮다. 천영이 그렇게 말하며, 유니콘이 서서히 날아오르기 시작 하자 센은 즉시 채찍을 날렸다. 그
것은 아주 부드럽게 천영의 양팔 을 휘감더니 단단히 묶어버렸다.
“어딜 가려고 그러니?”
자신의 몸을 둘러싼 채찍을 멍하 니 바라본 천영이 고개를 들어서 말했다.
“음…… 저쪽에 기둥이 하나 있거 든요. 처리를 좀 해야겠는데.”
“하하하!”
쿠팬이 웃음을 터뜨렸다.
“꼬마야,그건 ‘만추의 기둥’이란 다. 너 같은 꼬마가 이해 할 수 없 는 차원계를 연결시켜주는 고차원 의 마법이란 말이지.”
“우와,그래요?”
정말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천영이 말하자 릴베르산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둣 웃었다.
‘아무래도 저 꼬마는 정말 아무것 도 모르는 것 같군. 유니콘이 문제 인데…….,
하지만 이 와중에도 천영은 입을 나불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저 것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사람들 을 만났으니,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다.
“기둥에서 뭐가 나오는데요?”
“그것까지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
“에이,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고. 이렇게 채찍도 스쳤는데 괜찮 잖아요?”
그 어이가 없는 말에 쿠팬이 피 식 웃었다.
“그래,알려주지. 아주 무서운 괴 물이 찾아온단다. 너 같은 꼬마는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기절해 버릴 정도로.”
“오.”
놀랐다며 천영이 입을 벌렸다. 그 모습에 쿠펜과 릴베르산이 피식 비웃음을 홀리려는 순간 천영은
마치 역배당에 승리한 사람의 표 정마냥 활기찬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그 괴물은 천 년 묵은 이 무기보다 강해요?”
보라색을 띄고 있던 기둥의 문양 이 기묘한 빛을 뿜어내더니 요동 치기 시작했다.
쿠구,쿠구궁!
기둥의 꼭대기에서 보라색의 빛 기둥이 뿜어져 나오고 문자는 더
욱 더 기운을 흡수하여 마치 온 세상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버리 겠다는 둣 파도처럼 몰아치기 시 작했다.
그 불길하고 혼란스러운 보라색 의 세상 속에서 공간이 갈라지더 니 허공을 찢고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칼날이었다. 아니,그것 은 어떤 생명체의 팔이었다. 기이 하고 기괴하고 괴이하게 이 세상 으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로 뒤틀린 관절이었다.
그것은 거대했다. 그것은 날카로 웠다. 그것은 뭉툭했다. 그것은 사
나웠다. 그것은 배가 고팠다.
6m가 넘는 덩치,7개의 붉은 눈 동자,3개의 날카로운 다리,6개의 팔을 가진 마치 사마귀와 거미와 벌을 합친 것만 같은 형태의 그것 은 바람의 숲을 저벅 밟으며 숨을 들이켰다. 조금씩 혼란으로 물든 이곳의 공기를 만끽하던 그 괴생 명체는 마름모 형태의 입을 열어 마치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것만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향기롭구나.
이곳은 온통 먹잇감으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그것은 굉장히 흥분한 듯 배에서 푸쉬익 하고 가스를 뿜
어냈다. 고개를 빳빳이 든다. 온몸 에 힘을 머금는다. 이제부터 사냥 에 나서기 위해. 이제부터 이 순수 하기 그지없는 바람의 숲을 혼란 으로 물들이기 위해.
네청은 그 앞에 가만히 앉아,천 영이 잔뜩 맡기고 간 야채 없는 야채 호빵을 먹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이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