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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98화 (97/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98화

“서 어어어어 처어어어 언여어어어 영!!”

하성의 목소리가 들려온 즉시 천영 은 커피를 내려놓고 충격에 대비했 다. 이윽고 가슴팍에 은색의 무언가 가 날아와 충돌한다.

“커헉!”

순간 숨이 턱,막혔지만 천영은 얼 굴을 살짝 찌푸릴 뿐 참았다. 그 다

음 자신의 가슴에 돌진한 물체를 떼 어내기 위해 은색의 머리카락을 자 그마한 양손으로 잡고 떼어내려고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천영은 한 숨을 내쉬고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 뒀다.

“에효……

남자끼리의 이런 스킨쉽은 질색이 다. 하지만 하성은 천영 단 하나만 을 바라보고 금색 별 마탑까지 따라 와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 아주 훌륭 한 인력이었다.

금전도 필요 없다는 걸 레이븐이 억지로 쥐어주고 있기는 하지만 하 성이 원하는 보상은 단 하나. 서천

영의 스킨십이었다.

결국 키스 같은 위험한(?) 행위를 제외하고선 하성이 달려드는 것을 어느 정도는 봐주고 있었다. 이마저 도 안 해주면 하성이 정말 삐질 수 도 있으니까.

‘부려먹으려면 뭔들 못하겠어.’

하성은 비유하자면 A급 군대 후임 과도 비슷했다.

레이븐이 서천영에게 무언가 할 일 을 지시한다. 그럼 서천영은 그것을 다시 하성에게 돌려버린다. 천영의 말이라면 설령 불지옥 속으로 뛰어 들라 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을 하

성이기에 그는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하기 귀찮은 임무나 잡일을 도 맡아서 했다. 덕분에 천영의 금색 별 마탑 라이프는 굉장히 쾌적해졌 다.

그런 훌륭한 일꾼을 부려먹는 대가 가 가끔 머리카락 만지게 해주거나 이런 스킨십을 해주는 정도라면 꽤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끄흐흑,제이나 그 여자는 악마 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성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당장 쓸 만한 인력이

부족했던 제이나는 그에게 수많은 임무를 투척했다. 정말 듣는 순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가 빠질만한 것들을 도맡아서 처리하는 하성의 근성도 대단했지만 그런 임무를 표 정 하나 안 바꾸고 지시하는 제이나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니 글쎄,내 얘기 좀 들어봐.”

“듣고 있어.”

하성의 입에서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천영은 그것을 묵묵히 들어 주었다. 이런 식으로 투정을 들어주 면 하성은 언제 그랬냐는듯 말끔하 게 변한 표정으로 다시 일을 하러 돌아간다. 슬슬 조금 진정됐다 싶을

땐 커피를 마셔도 된다.

유니콘 부려먹기 참 쉽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요하엔과 맥골라스 머 치팽이 들어왔다. 그들은 파티에 관 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느라 계 약서를 들고 어딘가를 다녀온 참이 었다. 요하엔은 천영의 품에 쏙 안 겨있는 하성의 은발머리를 보더니 썩은 표정을 지었다.

“너 남자끼리 뭐 하냐?”

“……묻지 말아줘.”

하지만 이내 요하엔의 표정이 점점 풀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보기엔 좋네.”

낯선 목소리가 들리자 하성이 고개 를 돌렸다. 그러다가 요하엔과 눈을 마주치더니 뭔가 두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슬쩍 몸을 뒤로 내됐다.

“저 여자한테서…… 제이나 그 여 자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져……

한 마디로 무보수로 일을 부려먹는 악덕 사장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의 미였다.

“일어나. 나도 할 일 있으니까.”

머리를 강제로 치운 천영이 바로

옆자리로 옮겨가자 못내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쩝쩝 다시던 하성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손님이 있을 줄은 몰랐네. 하 여튼 나도 가볼게. 안녕!”

그렇게 빛의 속도로 슝 하고 사라 져버린 하성을 보며 요하엔이 물었 다.

“저 이상한 놈은 누구야?”

그 질문에 맥골라스도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맥골라 스 머치팽은 굉장히 하성을 경계하 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냥 유니콘이야.”

“아…… 그 순결한 소녀를 좋아한 다는 이상한 변태 종족?”

“변태 종족이라니. 저래 보여도 나 름 신수야.”

“그러냐. 근데 순결한 소녀를 좋아 한다는 놈들이 왜 너한테 저러냐?”

“……나한테서 풍기는 기운이 재네 가 좋아하는 냄새라고 그러더라.”

“푸하하하! 되게 웃기네. 천하의 서천영이 말이야.”

요하엔이 비웃자 서천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전의 서천영을 아는 사람으로서 이 시추에이션은 굉장히 웃길 법 했다. 자존심이 팍팍 상한

서천영은 뭔가 반박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 다.

“그래서 파티는 어떻게 됐어?”

“응,같이 하기로 했어. 5클래스의 마법사에 실적을 보면 넥스터로 따 져도 300레벨은 가뿐히 넘을 텐데 별 다른 보수를 바라지 않아서 우리 야 뭐,대환영이지.”

실제로 맥골라스 머치팽은 이 파티 에 참여하면서 보수를 크게 바라지 는 않았다. 다만 파티 자체에 더욱 가치를 둔 듯하다.

“그리고…… 방금 알았는데. 나는

참여 못할 것 같다.”

“왜?”

“그게 말이지……

요하엔은 부끄럽다는 둣 볼을 긁적 였다. 맥골라스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젓더니 입을 열었다.

“요하엔 님의 수준은 이미 나이트 급을 넘어섰습니다. 자격증만 없을 뿐,이대로 레이스 첼린지에 참여했 다가는 그대로 자격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그걸 본인이 모르면 어떻게 해?”

“아니,나는 뭐,흠. 그럴 수 있지,

자식아!”

자신이 나이트와도 비견될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을 몰랐는지 요하엔은 변명을 하려다가 말고 손바닥을 치 켜들고 서천영에게 훌쩍 다가갔다. 겁을 지레 집어먹은 천영은 소파에 앉은 상태로 뒤로 엉금엉금 물러나 등을 보호했다.

“지,진정해.”

“후우,뭐. 내가 참여 못해도 내 동생들이 참여하면 되니까 상관은 없다만. 아쉽게 됐어.”

천영은 요하엔을 새삼스러운 눈으 로 바라보았다.

나이트. 그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 그것은 일종 의 자격증이라고 보면 된다. 이 그 리픈이라는 세계에서 ‘초인超人’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격증.

굳이 말로 설명할 것도 없다. 그들 이 마음을 먹고 질주하면 음속을 돌 파할 수도 있으며 총알 따위는 눈으 로 보고 피하는데다가 화살이 날아 오더라도 그것에 적혀있는 글자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동체 시력이 뛰어났다.

그들이 가진 괴력은 집채를 들어 올릴 정도로 어마어마했고 육감 또

한 눈을 감고 생활해도 아무런 문제 가 없을 정도로 매우 뛰어났다.

말하자면 나이트는 ‘전투의 천재’ 들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초월 적인 괴물. 힘이 단순히 세다고 해 서 나이트가 될 수 있을까? 넥스터 라고 해서 히든 클래스를 가졌다고 나이트가 될 수 있을까? 스피드가 무지하게 빠르다고 해서 나이트가 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다 갖춘 자들이다. 힘이면 힘,스피 드면 스피드, 육감이면 육감,전투 센스면 전투 센스,전략이면 전략, 무기술이면 무기술.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천재들을 나이트라 칭한다.

넥스터들 중에서도 나이트가 된 자 들은 아직까지도 그 수가 적다. 단 순히 레벨을 강함으로 따지기엔 이 세계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찰나 를 결정짓는 판단력,상대방을 꿰뚫 는 직관력,한 수 앞을 내다보는 전 락까지 갖춘 자들은 요하엔처럼 부 족한 레벨에도 나이트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반대로 그녀 보다 레벨이 높으면서도 나이트가 되지 못한 자들 역시 수두룩하다.

그녀와 함께 몇 번이나 전투를 치 렸던 경험이 있는 천영은 납득할 수 있었다. 넥스트를 플레이하던 시절

부터 게임을 마치 실전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이를 악물고 애쓰던 요하 엔은 그야말로 전장의 화신이라 부 를 만 했다.

“흐음,누님이 참여를 안 하더라도 다른 형님들도 있으니까 뭐 괜찮겠 지.”

나이아가라 헬스장의 다른 인원들 역시 나이트급은 아니더라도 꽤 강 한 편이다. 또한 넥스트에서 상위권 을 달리던 이들인 만큼 던전 공략이 나 몬스터 상대법 등등은 프로라고 봐도 될 정도로 뛰어났다.

“그리고 나도 도움을 막 줄 수는 없겠지만 방법이 하나 생기긴 했

어.”

“그래?”

요하엔은 고개를 갸웃했다. 서천영 이 도와준다는 말이 뭔가 퍽 어색하 다.

“너 우리한테 뭐 바라는 거 있냐?”

그에 천영은 식은땀을 살짝 홀렸 다.

“뭐…… 내가 누님한테 빚진 게 있 기도 하고.”

“응? 뭐야,아직도 예전 일 신경 쓰고 있냐? 에휴,꼬맹이가 되더니 쿨하지 못 해졌어,서천영.”

서천영은 드래곤의 탈태 퀘스트 중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봐도 될 정도 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던전 을 나이아가라 헬스장의 도움을 받 아 클리어한 적이 있었다. 그 던전 을 돌파하느라 요하엔을 포함한 나 이아가라 헬스장 인원의 대부분이 목숨을 한 번씩 잃어야만 했고 심지 어는 그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조차 없었다.

천영은 어떻게 해서든 그 은혜 즉 ‘빚’을 갚기 위해 돌아가려고 했지 만 하필이면 연계 퀘스트 발동으로 인해 강제로 어딘가로 소환되는 바

람에 그러지도 못했다.

그 이후로는 드래곤의 탈태에 성공 하고 그대로 그리픈으로 넘어와 버 렸다. 그것은 꽤나 최근의 일이다.

어찌 보면 ‘먹튀’라고 봐도 무방하 다. 하지만 어째선지 나이아가라 헬 스장의 인원들은 천영을 다시 보고 도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전부 잊어버렸다는 둣.

“그거 신경 쓰는 찌질한 놈은 너밖 에 없을 거다.”

“근데 나 때문에 손해 본 게 이만 저만이 아닐 텐데……

“푸하핫!”

요하엔이 웃으며 손바닥을 치켜들 자 천영이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 이 마치 아기 고양이 같아서 요하엔 은 순간 심장이 철렁였다.

“뭐? 너 때문에 손해를 봐? 참 나, 겨우 한 번 죽는 게 손해야? 그 던 전 한 번 무보수로 돌아준 게 손해 야? 아니지. 우리가 너 덕분에 얻은 이득을 생각하면 오히려 우리가 너 한테 갚아야할 빚이 아직도 산더미 만큼이나 남아있어.”

“그건……

그건 어디까지나 천영 본인에게도 이득이 되기 때문에 그들을 도운 것

이다. 요하엔 또한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저 웃었다. 비록 처음엔 서로의 이득 때문에 동업자 가 되었지만 나중에 가서 서천영이 어떠했던가. 당장 본인의 사정도 좋 지 못하면서 나이아가라 헬스장의 인원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것이 바 로 요하엔이었다.

그랬기에 나이아가라 헬스장은 무 보수로 서천영을 도왔던 것이고 비 록 돌아오는 것이 없더라도 아무렇 지도 않은 것이다.

“후우. 그래, 뭐. 근데 도와준다니 반갑네. 너 레이스 첼린지에 참여도

못한다면서. 어떻게 도우려고?”

“그게……

천영은 우물쭈물 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 친구가 레이스 챌린지에 참여 하는 멤버입니까?”

“하하하,그 파티의 리더입니다. 꽤 듬직하지 않습니까?”

로서진이 살포시 웃으며 말하자 접 대실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중년의

사내,‘로나스’가 웃으며 자신의 옆 자리에 앉아있는 청년에게 인사를 시켰다.

“‘렉톰’이라고 합니다.”

렉톰의 인상은 잘 벼려진 칼처럼 날카롭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로서 진은 그 렉톰의 눈빛 속에서 꿈틀거 리는 야욕을 캐치해냈다. 너무 강렬 했기 때문에 도저히 모른 체 하기가 힘들 정도로 욕심이 많은 사내였다.

‘욕심이 많은 장정은 좋다지만

그 방법이 글러먹었다. 로서진은 여전히 가슴 한편에서 자라나는 죄

책감을 꾹꾹 눌러 담으며 로나스의 손을 마주잡았다. 로나스가 사람 좋 은 듯한 웃음으로 로서진을 대한다 지만 저 표정 속에 감춰진 더러운 욕망을 전부 읽은 그녀로서는 역겨 울 뿐이었다.

‘로스틱 클랜의 클랜장…….,

로나스는 로스틱 클랜의 클랜장이 다. 하지만 고작 대규모 클랜의 클 랜장이라면 이렇게 레이스 첼린지의 ‘심사 위원장’씩이나 되는 로서진이 그와 손을 잡을 리는 없었다.

로나스는 등에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대기업을 업고 있었다. 그 들이 로서진을 유혹하기 위해 내던

진 미끼가 얼마나 달콤하고 사랑스 럽던가. 그녀도 인간이었기에 차마 그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이렇 게 손을 잡고 말았지만 여전히 후회 를 하고 있었다.

“아,혹시…… 공략집은 준비 되셨 습니까?”

“곧…… 될 겁니다.”

로나스는 조금 돌려서 말했지만 말 하는 바는 뻔했다.

레이스 첼린지는 기본적으로 관중 들에게 ‘자신들의 유능함’을 증명하 는 스포츠이다. 평화로운 시대, 이제 는 고작 접시 던지고 공 굴리는 스

포츠는 인기가 사그라졌으며 관중들 은 실제의 초인들이 던전을 돌파하 고 몬스터 사냥하는 것을 보기를 원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레이스 챌린지 의 종목은 마법을 이용해 인공적으 로 만들어진 ‘던전 돌파’,‘대형 몬 스터 공략’,‘다대다 전투’였다. 던전 돌파와 대형 몬스터 공략의 경우에 는 단순히 빠르게 잡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처리했는 지,얼마나 기발한 방법을 사용했는 지,얼마나 덜 피해를 입었는지 또 한 얼마나 더 화려했는지 등등을 심 사 위원들이 점수를 매기게 된다.

그리고 로나스는 이번 레이스 철린 지에서 나올 던전과 대형 몬스터의 정보를 떡하니 원하고 있었다. 레이 스 챌린지 역사상 이런 부조리를 본 적이 있던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흠,빨리 됐으면 좋겠군요.”

뻔뻔하게 그렇게 말한 로나스는 자 리에서 일어났다. 렉톰 역시 따라서 일어나자 로서진은 그들을 배웅해주 었다.

“심사위원들에게는 잘 전달된 것으 로 압니다."

“예,……물론입니다.”

“다행이군요.”

로나스는 뒤돌아서며 아직까지도 망설이는 듯한 그녀에게 말했다.

"로서진,이 경기는 이미 승리자가 정해진 경기입니다. 명심하십시오."

그렇게 로나스와 렉톰이 나가는 것 을 본 로서진은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심사 위원,그들 역시 이제는 로스 틱 클랜과 한패나 마찬가지였다. 심 사위원들은 레이스 첼린지가 진행되 는 내내 로스틱 클랜의 파티에게 손 을 들어줄 것이다. 미묘하게 점수를 벌여놔 다른 파티가 치고 올라오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것이다. 시작하 기도 전에 우승자가 정해져 있는 짜 고 치는 판.

“후우……

돈이 뭐라고 그 ‘지팡이’가 대체 뭐라고. 결국 이렇게 됐단 말인가.

로서진은 그들이 사라지자 복도를 서서히 거닐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달이 휘영청 떠올라 있었다. 멍하니 복도의 기둥에 몸을 기대고 하늘을 바라본다. 요즘 들어 생각이 참 많 아진다.

‘그냥 이대로 배신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

조용히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비 록 심사 위원이라지만 로서진 또한 원래의 직업은 마법사였다.

로스틱 클랜의 뒤를 봐주고 있는 대기업에서 로서진에게 얼마나 많은 후원을 해줬던가. 요 몇 년 동안 로 서진에게 큰돈을 투자했던 이유를 떠올려본다. 그 덕분에 로서진은 얼 마나 풍족한 생활을 누려왔던가.

하지만 그 이유가 이번의 레이스 챌린지를 위해서였다고 하니 심신이 편치 않았다. 지금 당장 숨 쉬고 있 는 이 공간도 그들이 내준 돈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만약 배신을 하게 되면.

‘더 이상의 지원은 없겠지.’

그것은 사실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다. 로서진은 원래부터 가난한 마법 사였고 그저 능력 하나만으로 심사 위원장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뛰어 난 자였으니까. 그들의 지원이 없다 고 해도 얼마든지 돈을 벌 마음만 먹으면 벌 수 있을 것이다.

대신 그 지팡이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로스틱 클랜에서 로서진이 가장 원 하는 것을 낱낱이 조사하여 그가 가 장 원하는 선물을 준비했기 때문에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딸칵.

자신의 침소로 돌아온 로서진은 조 용히 문을 닫았다. 그 다음 벽에 쳐 져있는 커튼을 확 펼친다. 커튼에 가려져 있는 벽에는 한 점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피렌체’라고 하는 유명 한 흡혈귀 화가가 그린 그림 중 하 나라고 하는 혼이 쏙 빠지게 만드는 누군가가 그려져 있는 그림이었다.

로서진은 홀린 둣이 그림을 바라보 았다. 그림 속에는 흑색의 머리칼에 은색의 브릿지가 나있는 소녀가 물 방울을 만지작대며 세상 순수하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그림을

살짝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로드웰 마법전 때부터였을까. 처음 그를 바라본 그 순간부터 로서진은 어째서인지 그에게 푹 빠지고 말았 다.

마법사 서천영. 왠지 모를 이끌림. 그가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로서진은 그것 에 홀려버렸고 손짓 하나하나에 로 서진은 자신의 뇌가 어질어질해진다 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느낌일까. 그녀는 태 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각 에 당황했지만 금세 잊힐 줄 알았 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고 잊으 려 애를 써도 도저히 머릿속에서 사 라지지 않았다. 결국 로서진은 잊는 것을 포기하고 차라리 가슴속에 묻 어두고 사는 것을 택했다.

서천영이 그려진 이 그림을 구입하 는 데에 얼마나 애를 썼던가. 사실 이 그림 역시 로스틱 클랜의 도움을 받아 화가 피렌체를 간신히 설득하 여 구매해온 것이다. 원래는 피렌체 의 인생 역작이라고도 불리는 ‘그 그림’을 사오고 싶었지만 그것은 백 성들을 위해 전시해야 한다며 피렌 체가 한사코 거절해서 구매할 수 없 었다.

결국 어떻게든 로스틱 클랜의 도움 을 받아 피렌체의 수많은 서천영의 그림 중 하나를 간신히 구매할 수 있었다. 모든 사생활에 있어서 이제 는 로스틱 클랜의 도움을 받지 않으 면 안 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서천영의 지팡이…… 꼭 갖고 싶 어.’

로스틱 클랜이 이번에 그녀에게 내 건 제안. 그것은 바로 서천영이 과 거 ‘넥스트’에서 사용했던 지팡이를 그녀에게 건네주기로 했다.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

서천영이 사용했던 지팡이라는 것이 로서진의 마음을 크게 흔들게 만들 었다.

“하아……

로서진은 서둘러 커튼으로 그림을 가렸다. 이렇게 한 번 보고 있으면 정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 종일 서 있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반나절을 멍하니 서있기도 하지 않 았던가.

그녀는 머리를 획획 저었다. 이미 벌어진 일. 되돌리기엔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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