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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110화 (109/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10화

다시 깨어나니 세 개의 달이 휘영 청 떠오른 저녁이었다.

천영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보다가 상체를 일으켰다. 가슴팍과 허리,허 벅지,양팔 등등에서 고통이 느껴지 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아까 전 흑기사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보 다는 상처가 훨씬 많이 치유되어있 는 상태였다.

-주인,괜찮나?

-우선 내 기운을 전부 주입했다. 나도 남은 마나가 너무 적어서…….

“괜찮아.”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홀리니 그 의 곁에 앉아있던 백화연이 다가왔 다.

“몸은 좀 어때?”

“……죽을 것 같아.”

천영이 깨어난 사실을 알아차린 다 른 일행들 역시 옹기종기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제 알았지만,가까운 곳 에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꽤나 화사한 붉은색으로.

“아직 무리해서 움직이면 안 돼. 자연 회복력이 좋은 건 신기하지만 기력이 너무 부족해.”

주황머리의 여자가 말한다. 천영은 그녀의 눈가에 드리워있는 어두운 표정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눈물 자국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한 다.

“구해줘서 고마워. 너랑 백화연 언 니가 아니었으면 우리도…… 위험했 을 거야.”

이제 보니 이 일행은 총 세 명이

었다. 덩치가 거대한 남자 하나와 검은 머리칼의 마법사 여인 한 명 그리고 주황색 단발머리의 사제 한 명. 덩치의 남자는 눈물 자국은 없 어보였지만 그럼에도 표정이 어두웠 다.

‘……하루아침에 동료들을 모두 잃 었으니 당연한 건가.’

처음 하늘에서 그들을 내려다 보았 을 때 사방에 퍼져있던 시체의 수는 못해도 20명은 넘어갔다. 친하게 지 내던 이들이 모두 죽었으니 얼마나 상실감이 크겠는가. 천영은 감히 위 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마음을 전부 추스른 듯한 그들에게 그런 말

을 함부로 건네는 것은 오히려 매너 가 아니었다.

천영이 씩 웃으며 고개를 젓자 그 녀가 귀엽게 웃는다.

“너,서천영이지?”

“어…… 응.”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인데. 흑발 에 은색 브릿지,금색 별 마탑의 손 목시계까지 있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더니 천영의 머리를 쓰 다듬는다.

“은하수의 요정을 모를 수는 없 지!”

그 순간 천영은 온몸에 소름이 확 끼쳤다. 흑기사에게 기력을 홉수당 할 때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웠다. 그 는 이를 달달 떨며 힘겹게 부탁했 다.

“……제발 부탁인데. 그 호칭은 부 르지 말아줘.”

“응? 왜. 엄청 귀엽잖아. 남들은 네 별호 엄청 부러워하는 걸.”

당연히도 별호는 세계에서 유명한 이들에게만 붙는데다가 천영처럼 예 쁜 호칭이 붙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물론 천영은 본인이 원해서 붙은 별호가 아닌데다가 마음에도

들지 않아서 굉장히 불만인 듯싶었 지만.

그녀는 엄살을 떠는 천영을 보며 씩 웃더니 뒤로 엉금엉금 기어가 덩 치의 남자를 가리켰다.

“저 덩치 바보의 이름은 ‘노클론’, 나는 ‘유랜’이고 이 언니는 ‘멜레인’ 이야.”

“참 나. 바보라니…… 어쨌든 잘 부탁한다.”

노클론이 씩 웃으며 천영에게 정말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천영의 얼굴만 한 손바닥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악 수를 해버린 천영 역시 잘 부탁한다

고 말했다.

“그나저나 소문대로 대단하네. 흑 기사의 추정 레벨이 400대 중반인 데,그런 괴물을 상대로 봉인을 성 공시킬 줄이야.”

“……400대 중반?”

“응,저런 괴물이 정말로 있을 줄 은 몰랐지……

그러면서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지 만 이내 활짝 웃는다.

“아,맞다. 너 장비 전부 부서져서 멜레인 언니가 가지고 있던 거 입혔 어.”

“으,응?”

그 말에 천영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게 뭐야.”

“어때? 마음에 들어?”

천영은 입을 꾹 다물고 황망한 눈 으로 자신의 복장을 쳐다보았다. 멜 레인의 옷 역시 한복에 가까운 생김 새였으나 이전에 입고 있던 것이 남 성용이라면 이 옷은 완벽하게 여성 용 복장이었다.

상체를 덮는 얇은 분홍빛 저고리에 가슴팍부터 시작되어 엉덩이를 간신 히 덮을 정도로 짧은 붉은색 치맛자

락까지. 거기에 종아리까지 올라오 는 흰색의 긴 양말은 또 뭐란 말인 가. 이건 개량 한복이었지만 완벽하 게 마법사용 아니,여성용 장비였다.

“저,저기 나 남잔데.”

“응? 여자던데.”

“아니,그러니까……

그러고 보면,천영의 옷을 갈아입 혔다면 그의 몸을 보았다는 말이 된 다. 이건 뭐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하지만 유렌은 뭔가가 생각났다는 둣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신문에서 봤어. 서천 영이 남자라고. 흠,근데 여자던

데……

유텐이 생각에 잠기자 멜레인이 속 삭였다.

“……종족 탈태가 잘못 돼서 그런 거 아냐? 소문으로 들었어. ‘렌티’라 는 마법사가 그랬는데 남자에서 여 자 종족으로 탈태해버리는……

저들 딴에는 몰래 속삭였겠지만 천 영에게는 다 들렸다.

‘렌티,이 망할 자식이…….,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머리통을 갈 겨주겠다고 다짐한 천영은 입고 있 는 한복의 소매를 살짝 걷어냈다. 워낙 팔의 소매가 길다보니 그의 손

등을 전부 가릴 지경이었다.

“사이즈가 살짝 크네. 원래는 멜레 인 언니 사촌동생의 생일 선물이었 는데…… 뭐. 줄 수가 없어서 1년 내내 간직하고 있던 모양이야.”

그 말을 듣고 보니 어깨가 계속 흘러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천영은 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 어떻 게 대처해야할지 막막했다.

‘그래도 나 생각해서 선물해준 건 데,막 벗어버리면 좀 그렇고……

파트라슈가 낄낄거리며 비웃었다.

-푸하하! 진짜 주인 되게 재미있 다. 난 드래곤의 수호정령으로 태어

나서,남성체 드래곤이 여장하는 건 진짜 난생 처음 봐.

“……닥치고 있어 좀.”

그래,이건 어찌 보면 여장이었다. 그리고 천영은 여장이라는 것을 끔 찍하게도 싫어한다. 세상에 개성은 많고 여장 좋아하는 남자도 많다지 만 천영은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았 다. 그는 ‘멋있고,강인한’을 중시하 는 상남자 중의 상남자였으니까.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아 덮고 있던 침낭으로 몸을 꽁꽁 감싼 천영은 슬 쩍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7시가 넘었네;

어찐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 다.

천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배가 고 팠던 것인지 그들은 품에서 주섬주 섬 딱딱하고 굵은 빵을 꺼내들었다. 왠지 이 상황 데자뷰 같았다.

그들에게 훌쩍 다가가 빵을 모조리 빼앗자 울상을 지으며 말한다.

“마,마지막 남은 건데……

“조금만 기다려.”

인벤토리에서 간이 요리도구를 꺼 낸 다음 바닥에 냄새 차단막을 설치 한다.

그 다음 뚝딱뚝딱 김치찌개와 고기 를 조금 굽고 소금까지 친 다음 밥 을 한 대접씩 퍼서 건네주자 유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이,이거 설마 김치찌개?”

“응. 알아?”

“당연히 알지! 한국인 친구 있었는 데 엄청 맛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러면서 자리에 옹기종기 앉더니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한다. 천영 또한 배가 고팠지만 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절로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주인은 마법사 말고 요리사 했어

도 됐겠는데.

맛있게 먹어주는 걸 보니 절로 흐 뭇하다.

순식간에 밥을 뚝딱 해치운 유렌이 눈을 초롱초롱 뜨며 말했다.

“나도 이거 만드는 법 알려줘!”

“……김치찌개?”

“응응!”

보통 의례적으로 예의상 가르쳐달 라고 하는 경우는 꽤 있었지만 유렌 은 정말 만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천영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그래. 금방 내 레시피 만들어 서 줄게.”

그러자 유텐이 만세를 하며 좋아한 다.

저녁까지 전부 해치운 다음 뒷정리 가 끝나자 천영이 물었다.

“여긴 어디야?”

“음,일단 절벽에서 반나절 정도 떨어진 숲이야. 봉인의 지속시간이 짧다고 해서 얼른 도망쳤지.”

멜레인이 말한다.

“오는 도중에 감지 마법 몇 개를 설치해놓았어. 만약 이곳으로 찾아

오면 그 전에 알아차릴 수 있을 거 야.”

“……뭐 여기까지 올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노클론의 그 말에 천영이 갸웃하자 멜레인이 설명했다.

“그 흑기사는 ‘악귀의 주둥이’라는 던전을 지키고 있어. 이유는 모르겠 지만.”

‘‘아.”

천영은 흑기사의 모습을 다시 떠올 린다.

‘온몸이 가시투성이에다가 갑옷처 럼 생긴 겉모습도 그렇고 마치 벌레

가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는 것 같 았지.’

그럼 흑기사 또한 ‘사충계’에서 나 온 존재이며 악귀의 주둥이를 지키 는 수호자 역할을 이행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던전에서 자꾸만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다기에 그것을 막아보려고 가던 도중이었거든. 근데 흑기사가 너무 강해서…… 아무래도 다시 돌아가야 될 것 같아. 최소 100명 이상의 대 규모 원정대를 꾸려야 흑기사를 상 대할 수 있을 것 같아.”

유텐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표정이 어두웠다. 한시라도 빨리 던전을 틀

어막아야만 하는데 그럴 수가 없으 니 답답하다는 얼굴이었다. 노클론 이 그런 유텐을 보며 한숨을 푹 내 쉰다.

“뭐,어쩔 도리가 있나. 흑기사는 드립게 강하고 던전에 들어가기는 힘들고. 몬스터가 빠져나오는 주기 가 따로 있는 모양이지만 그 타이밍 에 찾아간다 해도 혹기사를 이길 수 는 없어. ……방금처럼 발을 붙잡는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노클론은 그렇게 말하며 백화연을 슬쩍 쳐다보았다. 비록 그 당시에는 천영이 공격을 받아서 이성을 제대 로 차리지 못한 채로 싸음에 임했지

만,흑기사와 잠깐이지만 합을 겨룰 정도로 굉장히 빠르고 강했다. 만약 백화연이 만전의 상태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싸움을 한다면? 비록 이 기지는 못해도 꽤나 멋진 싸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아,흑기사의 발만 붙잡으면 몰 래 들어가서 어떻게든 해볼 텐데.”

“뭘 어떻게 할 건데? 오빠 혼자서 던전이라도 뚫어보게?”

“말이 그렇단 거지.”

“그 던전도 꽤 위험해. 사람 모아 서 가야될 거야.”

그들이 투덕거리기 시작하자 천영

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던전을 지키는 흑기사와 몬스터가 빠져나오는 주기…… 그리고 몰래 진입한다라……

한참이나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 던 천영은 뭔가가 떠올랐는지 눈을 떴다.

“혹시 그 던전 어떻게 생겼어?”

“으음,그게 절벽 끝에 매달려 있 거든? 근데 던전 입구가 진짜 기분 나쁜 악귀처럼 생겼단 말이야. 절벽 의 표면 그 자체가 마치 악귀처럼 생겼는데 입을 쩍 벌리고 있거든. 그리고 그 내부가 던전……

“자,잠깐. 그거 혹시 그려줄 수 있어?”

그러자 멜레인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마 법사는 기본적으로 ‘원’을 비롯해 선과 점,문양을 그릴 줄 알아야하 는 존재이기에 마법을 쓰다보면 그 림 실력도 꽤나 늘어난다. 덕분에 천영은 꽤 정확한 그림을 받을 수 있었다.

“……이거,‘돌출형 던전’이야.”

“그래? 근데 그게 왜?”

천영이 기묘한 눈빛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각인형 던전에 대해서는 알지?”

“응,음…… 각인형 던전이라면 이 세상이 무너져도 그 던전 입구는 절 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그거 말 하는 거 맞지?”

“맞아.”

각인형 던전이란 ‘공간’ 그 자체에 각인되어있는 던전을 말한다. 문에 던전의 입구가 새겨져 있다고 해서, 그 문이 던전의 입구인 것은 아니 다. 문이 파괴되더라도 던전의 입구 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한 다.

하지만 돌출형 던전은 다르다. 돌

출형 던전은 그 ‘장소’ 자체에 구속 되어있는 던전을 뜻한다. 그리고 내 부와 외부의 경계가 옅다.

“흑기사는 던전에서 힘을 보충하고 있어. 근처에서 사충계의 기운인 ‘혼란’을 계속해서 흡수했기 때문에 지치지 않았던 것이고. 하지만 괜찮 아. 오히려 ‘돌출형 던전’이라 다행 이야.”

돌출형 던전. 공간이 아닌 장소에 구속되어있는 던전. 그 말인 즉,‘공 간’ 그 자체를 지정하여 움직일 수 있는 수준급의 마법사가 있다면 어 떨까?

천영은 마법 스크롤 한 장을 꺼내

더니 복잡한 마법진과 문양,심지어 는 ‘용언’까지 한가득 새겨 넣기 시 작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마 법의 향연에 멜레인이 눈을 동그랗 게 떴다.

“너,이건……

“생각해봐. 동네 축구가 개최됐는 더L 뜬금없이 골키퍼가 ‘노이어’야. 근데 우린 조기 축구단이고. 골을 도저히 먹일 수가 없어. 그럼 어떻 게 해야 하지?”

그 질문에 유텐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그,글쎄.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아니. 그 재능맨을 어느 세월에 따라잡아? 그리고 우린 프로리그를 하는 게 아니야. 동네 축구란 말이 지.”

그러면서 천영이 음흉하게 웃는다.

“룰이 없어.”

그 말에 멜레인이 손을 홈칫 떨더 니 입을 쩍 벌렸다.

“자, 잠깐. 너 설마…… 아니야. 불 가능해. 그런 게 가능하려면 최소한 7클래스는 되어야……

멜레인이 말도 안 된다며,믿을 수 없다며 그렇게 말하던 도중 무언가 를 깨달았다. 이 작전을 이행하려는

사람은,다른 누구도 아닌 서천영이 었다. 금색 별 마탑의 그 서천영.

아직까지도 다른 일행들이 이해하 지 못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 지만 천영은 그들이 그러던 말던 상 관없다는 듯 마법 스크롤을 활짝 펼 쳤다.

그러면서 화사한 미소를 짓는다.

“골대를 뽑아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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