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20화
뭔가 이상하단 점을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백화연이었다. 초감각 을 가진 그녀에게 있어서 누군가 의 시선을 느끼는 것은 두 눈 뜨 고 촛불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나이트에게 ‘기분 탓’이란 존재하 지 않는다. 누군가가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실제로 누군 가가 쳐다보는 것이고 인기척이
느껴진 것 같으면 실제로 누군가 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백화연은 마치 아주 작 은 벌레가 쳐다보는 것만 같은 이 미묘한 감각을 쉽사리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이 시선이 계속 느껴진다면 확실 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 텐데 아주 잠깐 정말 찰나의 시간 동안만 느 껴지는 것이 전부라서 확실하게 규정지을 수도 없었다.
본인만 느낀 것이 아니라 천영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 는 천영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는 그저 이 순간을 아무 생각 없이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옷가게의 거울 앞에서 여러 종류 의 모자를 머리에 대보며 진지하 게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수 상한 시선을 느낀 낌새는 전혀 없 었다.
‘……확실하게 알아봐야겠어.’
유람선에 탑승한지 4일째. 처음 엔 그저 잘못 느꼈거니 싶었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 미묘한 시선은 천영과 함께 있을 때만 느껴진다. 즉 시선이 향 하는 목표는 백화연이 아닌 천영 이다. 직접적으로 시선이 백화연에
게 향하질 않으니 그녀가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암살자들 역시 백화연을 눈엣가 시로 여기고 있었다.
-……저 여자,초중급 나이트 정 도의 힘을 가진 모양이다.
-나,나이트라고? 젠장……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에 나이트가 붙 어있다니…….
나이트는 암살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최악의 암살 대상이다. 그들 의 초감각을 속이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해야만 했던가. 아무리 은
신술의 귀재에 모습을 감추는 것 에 능통하다 해도 나이트들은 그 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선 을 눈치채버리는 괴물들이다. 마법 이라는 신비로운 힘을 다루는 이 들과는 다른 차원의 존재들.
그렇기에 나이트를 암살하기 위 해서는 그들이 완전히 방심했을 때를 노리는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약도 통하지 않는 철인 의 신체를 자랑하는데다가 자고 있을 때에도 귀신같은 반응 속도 로 공격을 하는 순간 깨어나 버리 니, 여간 까다로운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나이트가 자리를 비웠을 때를 노려야한다.
-그래,아직 저 나이트도 우릴 완전히 눈치 채지는 못했어.
사실상 서천영은 이미 암살에 실 패한 대상이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같은 대상을 공격하는 것은 암살자에게 있어서 자살행위나 마 찬가지다. 대상이 대비하고 있을 때 공격해봐야 의미가 없을 테니 까.
하지만 그들은 여태까지와는 다 른 방법을 시도하고 있었다. 장소 에 관계없이 눈에 조금 띄더라도
과감하게 서천영을 공격하려고 했 다.
-젠장. 마법사 암살은 이래서 싫 다니까.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 가 너무 적어.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쯤 되면 아주 적은 마나의 파동이라도 쉽 사리 눈치챌 것이다. 그러므로 그 들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 역시 줄어든다. 대부분의 암살 도구에는 마나가 사용되니까.
-그래도 여태 일하면서 얻은 고 대의 기술들이 있어서 다행이군.
아주 먼 과거에는 마나를 사용하
지 않는 기계 과학이 발달했다고 한다. 지나지게 발달한 그 문명은 전쟁으로 인해 멸망했지만 몇몇 기술은 아직까지도 남아있었다.
-공간 분쇄기를 설치한다.
-레드 신호,스탠바이.
-그쪽은 어때?
-끝났다.
-가림 막은?
-문제없어. 아무리 서천영이라도 여기에 닿는 순간 팔다리가 모두 잘려나간다.
대상의 사지를 박살내버리는 잔
인한 장치였지만 그들에게는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숨을 죽 이며 서천영이 다가오는 것을 기 다린다. 발가락 하나라도 걸치는 순간 그대로 끝장이다. 아무리 금 색 별 마탑의 마법사라도 이 고대 의 아티팩트,공간 분쇄 장치를 막 아낼 재량은 없다.
-3,2, 1..
-다가온다.
-지금…… 어?
하지만 그것에 닿으려는 순간 갑 작스레 서천영이 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뒤돌아 다른
곳으로 향한다.
-뭐,뭐야!
-어떻게 눈치챈 거지?
천영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파 트라슈에게 물었다.
“내 지갑 어디다가 뒀다고?”
-아니,글쎄. 내가 어디다가 둔 게 아니라 그냥 사라졌다니까.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파트라슈 가 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이실직 고한 바람에 암살자들의 계획은 깔끔하게 실패했다.
그 뒤로도 수많은 함정을 설치했
다.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암살자들 은 자신들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 지 않는 한에서 꽤나 과감하게 서 천영을 쓰러뜨리려고 했지만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접근하는 순간 눈치 챌 새도 없 이 그대로 온몸을 속박하는 덫을 설치하기도 했으며 마비 가스를 뿜어보기도 했다.
밟는 순간 사방에서 칼날이 날아 와 난도질을 하는 진을 그려놓기 도 했고 닿는 순간 폭발하는 얇은 실을 설치해 놓기도 했다. 하지만 서천영은 그 모든 것들을 아슬아
슬하게 마치 암살자들을 약 을리 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갔다.
마치 모든 함정을 알고 있는 것 처럼.
-이번 임무는 실패다. 서천영은 모든 걸 다 알고 있어.
하지만 암살자 에이스는 이번 임 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 은 어찌 보면 자존심의 문제.
-서천영은 지금 우리를 도발하고 있다.
진작 암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으면서 전혀 자신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마치 무심한 둣,관심조차 주지 않고,간단하 게.
뭔가가 이상했다. 분명 뭔가 이상 한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 지만 에이스는 그 일말의 가능성 을 모두 배제하고 이를 뿌득 갈았 다.
-……조금 과감하게 진행해야겠 어. 이건,도박이다. 정면 승부를 펼친다.
-에이스,너 설마……?
당연하지만 암살자들이 정면 승
부를 펼쳐서 이길 수 있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기회를 잡는다면 그들에게도 승산이 있었 다. 특정 공간 내의 마나를 모두 굳혀버리거나 대상의 마나를 영구 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특수 저주 도구,‘마나 고형화 (Solidify The Mana)’를 사용하면 그 어떤 마법 사라도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
이렇듯 만능으로 보이는 마나 고 형화 장치에도 큰 단점이 있었으 니 바로 이것이 미완성 저주 도구 라는 사실. 만약 이것을 사용할 경 우 암살자들 사이에서는 ‘손해배 상’이라고 불리는 저주가 사용자에
게 가해지게 된다. 시력을 아예 잃 게 될 수도 있었으며 사지를 움직 이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영원히 가려움에 시달릴 수도 있으며 죽 을 때까지 잠을 청할 때마다 악몽 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함 부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다 좋은데 그걸 누가 사 용하지?
그런 이유로 아무도 사용하지 않 으려 하는 도구의 이야기를 에이 스가 괜히 꺼냈을 리는 없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 것은 내가 가지고 있다가…….
에이스가 눈을 번뜩였다.
-협박 카드로 사용해야겠지.
그들이 어떤 모략을 꾸미고 있는 지 알지도 못한 채 서천영은 중절 모를 머리에 써보는 중이었다. 옷 가게 점원은 혀를 튀기며 말했다.
“손님,제가 진짜 일주일 동안 옷 가게 대타로 일 하는 거라 절대 손님 칭찬은 안 하거든요.”
“네?”
“근데 손님은 진짜,뭘 입어도 잘 어울리세요.”
“아,네,
“빈말이 아니구요,정말로. 손님 은 신문지를 머리에 씌워놓아도 그게 유행이 될 거예요.”
점원의 말을 들으며 서천영은 거 울을 쳐다보았다. 머리에 맞지도 않는 중절모가 어설프게 흘러내리 는 중이었지만 분명 ‘신사다운 품 격’을 강조해야만 하는 중절모는 어느새 귀여움을 상징하는 모자가 되어버렸다.
얼굴을 작게 보이는 모자를 쓰더 라도 섹시해 보이는 외투를 걸치 더라도 점잖아 보이는 모자를 쓰
더라도 모조리 소화해낸다. 그것까 진 좋았으나 귀엽게 보인다는 사 실이 영 꺼림칙했다.
‘……전부 별로야.’
천영은 언짢은 표정으로 모자를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다. 별로 사 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머 리를 위로 모아서 묶어놓으니 개 구쟁이 소년티가 팍팍 나긴 했다. 레벨이 오르면서 키도 조금은 자 라 150이 간신히 안 될 정도가 되 었다.
-주인은 드래곤이 된지 1년밖에 안 됐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
-그 정도면 엄청 빠르게 성장한 거다.
“그건 그렇지만.”
넥스트를 플레이하던 시절에는 300레벨을 달성하기까지 6년이 걸 렸다. 하지만 지금,천영은 경험치 를 더 올리기 힘든 패널티를 받고 도 1년 만에 레벨 250가까이 달성 했으니 얼마나 장족의 발전인가. 물론 거기에는 드래곤의 재능 덕 분에 마법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 었고 거기에 각종 기연이 겹치긴 했다. 사실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
에 부정할 수는 없었다. 외모 또한 10살짜리 꼬맹이에서 1년 만에 14살이 되었으니 비약적인 속도라 고 봐도 좋았다.
“근데 정말 이런 얼굴에서 막 신 사적인 얼굴로 성장할 수는 있을 까……
천영이 걱정된다는 듯 그렇게 말 하자 파트라슈가 그게 무슨 소리 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히 불가능하지.
“……뭐? 언제는 가능하다며.”
-그건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 고 있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 이미
주인은 그 외모로 너무 많은 이들 에게 사랑 받고 있어서 안 돼.
“그게 뭔 개풀딱지 씹는 소리야?”
-드래곤의 외모는 영웅 및 군중 들이 자석처럼 이끌리기 위해 화 려하게 태어난다. 하지만 그 외모 가 빛을 발하지 못하고 누구도 이 끌리지 않으면 성장하면서 분위기 가 바뀌지. 현재 주인의 이미지가 순한 인상인데 그 누구도 이끌리 지 않았다면 아마 성장하면서 분 위기가 여러 번 바뀌었을 거다. 조 금 단단한 이미지로 바뀌기도 했 을 거고 쿨하게 바뀌었을지도 모 르지.
“……그럼.”
파트라슈가 고개를 끄덕인다.
-주인은 이미 늦었어. 그 이미지 로 외모가 굳혀졌다.
“말도 안 돼……”
-그래도 걱정마. 나중에 자라서 키가 크고 남성체를 선택하면 어 느 정도 분위기가 바뀌기는 하니 까. 음,우선 키가 크긴 하려나 모 르겠군. 화이팅. 우유를 많이 마셔 라.
물론 소용은 없겠지만 말이야. 파 트라슈가 그렇게 말하며 낄낄대자 천영은 절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
다.
“이 얼굴로 평생을 살라고?”
이런 순딩이에 약해빠진 얼굴은 절대 취향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의 여자 취향도 강하고 굳센 여자 였다.
‘그래도 머리를 묶어놓으면 남자 티가 나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 야 되나……
머리를 올려놓으면 소년의 느낌 이 나고 머리를 풀어서 내려놓으 면 소녀의 느낌이 난다. 정말 선이 팍 그어진 말 그대로의 ‘중성’이었 다. 천영이 울상을 지으며 묶어놓
은 머리를 보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백화연이 훌쩍 다가왔다. 그러 고선 그의 머리끈을 손가락으로 간단히 풀어버렸다. 물결치는 파도 처럼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허 리까지 스르륵 흘러내리자 천영은 말없이 백화연을 올려다보았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녀 는 천영이 간신히 머리를 묶을 때 면 어김없이 나타나 그것을 풀어 버렸다. 원망을 가득 담아서 올려 다보았지만 백화연은 싱긋 웃으며 그의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었다.
“에휴…… 내 인생(人生)……
- 용생 (龍生)이겠지.
이제 백화연은 마음속으로 뭔가 를 정했는지 천영의 나이와 성별 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마치 동생처럼 대하는 저 태도에 천영도 처음에만 어색했지 이제는 거의 체념한 상태였다.
“천영,혹시 이상한 시선 같은 거 못 느껴?”
“……? 별로.”
“그래,알았어.”
이상한 시선이라고 하면 사실 꽤 느껴지긴 한다. 지금 당장만 해도 여기저기서 찌르듯이 쳐다보는 사
람들이 눈에 훤했으니까. 하지만 백화연의 표정을 보았을 때 그녀 는 그들을 이야기한 것이 아닌 모 양이었다.
“뭐지……
파트라슈는 그녀의 말에 입을 다 물었다. 파트라슈는 여태 자신의 주인,천영에게 닥친 일을 전부 눈 치 채고 있었다.
천영이 암살자들의 함정을 모두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을 사전에 알아낸 파트라슈가 천영을 교묘하게 이동
시켜 모두 빗나가게 한 것. 그는 자신의 주인을 지키는 일에 굉장 히 충실했다.
파트라슈는 생각한다.
‘이런 일 따위로 주인이 휴식하는 데 귀찮게 할 수는 없어.’
드래곤은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생명체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런 드래곤에게도 위협이 없을 수는 없다. 파트라슈,즉 드래곤의 수호 정령은 드래곤을 위협하는 무언가 를 주인이 모르게 조용히 처리하 는 쪽을 택한다.
한 때는 데스로드가 직접 드래곤
을 암살하기 위해 찾아온 적도 있 었다. 죽음의 기사가 직접 드래곤 의 목을 거두기 위해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드래곤에게 닿기도 전에 모두 죽음을 맞이했 다. 드래곤의 수호 정령,파트라슈 가 소리 소문 없이 처리했기 때문.
물론 서천영에게 얘기해봐야 데 스로드가 뭐냐고 물을 것이고 설 명해주면 거짓말 말라고 말하겠지 만 실제로 파트라슈의 능력은 약 해졌지만 굉장히 강한 편이었다. 고작 인간 암살 집단 따위는 일도 아니었다. 저 정도의 위협은 위협 이라고 부르기에도 창피하다.
‘내 선에서 조용히 물려야겠어.’
저 암살자들이 마음먹고 덤빌 경 우 서천영이 알아차리지 못할 리 가 없다. 하지만 암살자들은 서천 영에게 겁을 먹었는지 아직까지 지나치게 소극적이었고 그들의 소 극적인 공격 정도는 파트라슈가 걷어내면 끝날 정도로 간단했다.
서천영이 직접 나선다면 손쉽게 해결 되겠지만 파트라슈는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
드래곤은 언제나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쓰는 존재들이 었고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신경
을 쓰기에는 너무나도 바쁜 존재 들이었으니까.
“닭꼬치 맛있다.”
비록 이번 대의 주인은 별로 그 런 것 같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