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71화
47장 드래곤 슬레이어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 며 살아갈 수는 없다.
장래 희망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이 대통령을 적어 넣는다지만 국가의 대통령은 단 한명만이 될 수 있다. 정말로 원해서 적었든,그저 멋있어
보여서 적어 넣었든,대통령이 되지 못한 이들은 결국 ‘자신이 하고 싶 었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다.
지구에서 뿐만이 아니다. 그리픈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네 빵집 소녀 에서 시작해,위대한 마법사에 이르 기까지.
서천영의 비서,로서진. 동네 작은 빵집 제빵사의 딸로 태어난 여인. 그녀의 원래 꿈은 마법사였으나 재 능의 부족에 더불어 부족한 자금, 주변에서 몰아치는 환경 탓에 결국 사무직으로의 전향을 택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모시는 마법사,
서천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천영은 절대로 ‘금색 별 마탑’을 목표로 살아오지 않았다. 모든 마법 사가 가고 싶어 하든 말든 전혀 관 심이 없었다. 아니,애초에 천영은 지구에서 온 존재이기 때문에 몰랐 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그런 서천영이 모든 마법사들의 꿈 인 ‘금색 별 마탑의 차기 마탑주’로 지목을 받았다는 사실은 본인에게 있어서 그다지 탐탁지 않은 일일 것 이다.
“재미있군. 드래곤의 제자가 세운 마탑의 후대 마탑주가,드래곤이 되 다니.”
길르텐 펄 리쉬. 그녀는 허공에 둥 실 떠있는 홀로그램을 보며 피식 웃 었다. 불만에 가득 찬 듯한 얼굴의 서천영과 레이븐이 함께 찍은 사진 은 벌써부터 모든 신문의 1페이지를 당당하게 장식했다.
‘그런데 어째서?’
레이븐 생텀.
제자를 거의 두지 않고 오랜 세월 을 살아오던 에니안이,불현듯 레이 븐이라는 제자를 거두었다. 레이븐 은 에니안의 밑에서 수년간 숲속에 서 조용히 수련을 끝마쳤다. 그리고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금색 별 마
탑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정석적 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던 모든 자들을 오로지 재능 하나로 짓밟고 올라선 레이븐 생텀은 50대라는 나 이에는 대현자의 영역이라는 8서클 에 도달할 수 있었다.
8서클에 도달하면 신체가 젊어진 다. 모든 세포에 생기가 불어넣어지 고 심장의 유효기한이 대폭 늘어나 며 늙는 것이 매우 지체된다. 8서클 의 경지에 이르면 죽는 것이 거의 힘들다고 볼 정도로.
‘예로부터 7서클이 인간의 한계였 지. 하지만 8서클에 이른 대현자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을 사는 나머지
결국 자신의 한계를 깨고 대다수가 9서클의 경지에 오르곤 했어.’
7서클을 넘어섰다는 것은,이미 인 간을 초월한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되 었다는 의미. 인간이 당연하게 지니 고 있어야할 ‘리미트’가 무너진 상 태라는 뜻이다.
레이븐은 8서클을 달성함으로써 이 미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보고 있을 터이다.
즉,한창 때라는 의미이다.
그런 레이븐이 돌연 은퇴를 선언했 다.
뭔가 수상쩍은 냄새가 났다.
‘……어떤 정치적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랑은 관련이 없는 이야기지.’
길르텐은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 대었다. 팔걸이에 손을 얹어놓은 채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 있자, 음성이 들려왔다.
-길르텐 님,‘영접(迎接)’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후후후,그래. 영접이라. 꼭 알맞 은 단어이구나.”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선 눈 을 꼭 감았다. 그러자 돌연 다른 세 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엔 붉은
눈을 가진 검은 형체의 무언가가 둥 실 허공에 떠있었다. 그것은 흡사 안개를 닮아있었다. 안개에 눈동자 가 달랑 달려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몸.
-내 몸,내 몸을 돌려줘!!!
끼이이이익!!
순간 엄청난 정신파가 터져 나왔 다.
길르텐은 자신의 정신력이 아찔하
게 무너질 뻔한 것을 간신히 붙잡았 다. 고작 1초,강렬한 정신력의 파 도에 휩쓸렸을 뿐인데도 그녀는 버 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두렵 지 않았다. 오히려 저자가 아직까지 도 저 정도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하아,하아……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두 려워할 필요는 없다. 저것은 이제 정신밖에 남지 않은 ‘드래곤의 파 편’일 뿐이었다. 육체를 모두 잃어, 차원의 틈새에 갇혀버린 그저 드래 곤의 흔적일 뿐인 존재. 길르텐에게 직접적인 물리적 피해를 가할 수는
없었다.
또다시 눈을 감은 그녀는 이를 악 물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육체를 잃고 차원의 틈새를 방황 하는 드래곤, 크라수스여.”
그러나 길르텐의 말을 알아듣지 못 한 것인지 ‘크라수스’라 불린 정신 체를 또다시 강력한 정신파 공격을 강행했다. 비명과 괴성을 지르며 수 천 가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야말로 원한의 집합체. 길르텐이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 싸자 황급히 연결을 끊어버렸다.
-괜찮으십니까?
“그래……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구 나.”
쿨럭,길르텐의 입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아찔할 정도의 한계에 다다 른 정신력이 버티질 못한 것이다.
‘과연 썩어도 드래곤이란 건가.’
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압도적인 존재란 말인가. 에니안은 피식 웃은 다음 숨을 고르며 등을 기대었다.
“솔렝 오르앙, 있느냐.”
-부르셨습니까.
“드래곤 슬레이어의 소환 계획은 어찌되었지?”
-준비가 끝났습니다. “빠르군.”
물론 빠를 수밖에. 무려 ‘용의 큐 브’ 하나를 통째로 사용해서 펼친 소환 의식이다. 제대로 소환하지 못 하면 부끄러운 뿐이다.
-소환 장소를 정해주십시오.
“그래,그렇지…… 소환 장소라.”
길르텐은 서천영의 얼굴을 떠올렸 다. 금색 별 마탑의 새로운 마탑주 가 되시겠다는데 선물 하나쯤 줘도 괜찮지 않겠는가?
“록 제국의 수도,‘블렝시움’의 하
늘에 게이트를 열어라.”
슬슬 일곱 다리의 연결자가 가진 공포를,이 대륙의 사람들에게 제대 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드래곤 슬레이어는 그 전초전이었다. 만약 자신들의 기둥이자 희망이 되어줄 서천영이 허무하게 사냥당한다면 그 리픈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아주 기대되는군.”
길르텐은 수줍게 미소 지었다. 자 신이 몰래 준비한 선물을 받았을 때,대상이 짓게 될 깜짝 놀란 표정 을 기대하면서.
“제 7번 게이트,준비 완료되었습 니다.”
“제 9번 게이트 루플렉시아로의 마 나 송출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 차원 차단막 활성화 완 료. 육체 전이 가동률 36%”
솔렝 오르앙은 팔짱을 낀 채 반마 력 유리창 너머의 상황을 지켜보았 다. 새하얀 로브를 입은 마법 연구 원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마법 장 치의 조작을 하자 새파란 글자가 유 리창 위에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그
곳에 표시되는 수치를 보면 ‘마스터 스피루나’의 소환 의식이 얼마나 진 행되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TT(정보화 기술)라니. 지구는 놀라 운 세계로군.’
지구에서의 ‘컴퓨터’라는 물건의 성능을 고작 1%도 흉내 내지 못한 아티팩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편리하게 솔렝 오르앙에게 모든 정보가 자동으로 전달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마법사들 이 수동으로 계산하고,정보를 종합 해야만 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법 공식 자체를 ‘컴퓨터 계산기’라는 것이 분석해주는 것만
으로도 이미 그들의 계획은 수년이 나 단축되었다.
인터넷,컴퓨터,자동화기기. 듣는 것만으로도 발상 자체를 뒤집어버리 는 말도 안 되는 기술력이 존재하는 세계,지구. 마법보다도 더욱 마법 같은 세계였다. 손바닥만한 기계 하 나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에서든 누 구와도 통화,문자가 가능하고 인터 넷을 틀어 각종 정보를 공유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음식이나 물건을 원하는 장소에 마음대로 배달시킬 수 있는 세계라니.
‘그야말로 전설 속에나 등장하던 아카식 레코드와 다를 게 뭐란 말인
인터넷. 그곳에는 모든 것이 기록 되어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진 일이 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기록되는 기 억의 창고, 우주의 도서관,초차원적 정보 집합체.
그저 전설일 뿐이라고,그 어떤 세 계를 가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 했던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데다가 그 정보를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든 마음대로 꺼내서 볼 수 있다니.
그런 세계에 사는 인간들은 정말이 지 축복 받았다고밖에 볼 수 없었 다.
이곳에는 지구 출신 마법사들이 수 백이 넘는다. 일곱 다리의 연결자에 서는 진작 타차원에서 건너오는 정 보와 기술의 가치를 알아채고 미리 영입을 해놓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 깝게도 그들이 가진 지식으로도 IT 라는 것을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는 없었다.
그 기술 하나에는 수많은 기술들이 접목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컴퓨 터,소프트웨어,인터넷,멀티미디어 와 무형•유형적인 가치를 가진 정보 가 필요했고 그것들을 모두 입력하 기에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했 다. 필히 장기적인 개발 과정이 필
요할 것이다.
‘……IT산업은 일곱 다리를 모두 연결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는다.’
어찌 보면 지구의 IT산업은 그들에 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길르텐 펄 리쉬. 그녀와 함께하는 일곱 다리의 연결자들의 계획,‘그 랜드 디멘션’ 7개를 모조리 연결하 여 지배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무 엇보다도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솔렝 오르앙은 일곱 차원이 모조리 통합되면 가장 먼저 IT산업을 발전 시킬 생각이었다.
“육체 가동률 54%”
“차폐막 차단률은 어느 정도지?”
“99%입니다.”
“완벽하군. 조금 더 신경 쓰도록.”
솔랭 오르앙은 그렇게 말한 뒤 뒤 돌아서 연구실의 중앙에 있는 계단 을 을라갔다. 작은 제단처럼 형성되 어있는 이곳에는 ‘용의 큐브’가 떡 하니 올려져 있었다. 바로 이것의 무한한 마력과,용언이라는 기이한 기술력을 이용해 마스터 스피루나를 소환하고 있는 것이었다.
‘용이 만든 물건으로 용 사냥꾼을 소환하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군.’
마스터 스피루나의 육신을 바라본 다. 새하얗고 반투명한 막 안에 덩 치가 30m를 가뿐히 넘는 거대한 갑 옷 덩어리가 불길한 연기에 휩싸인 채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아직 영혼을 가져오지 않아 육신은 텅 비 어있는 채였다.
‘저 얇은 막이 무려 차원 차폐막이 라니……
분명 육안으로는 마스터 스피루나 의 육신이 이 장소에 꼭 나타난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반투명 한 막 안에 휩싸인 저 공간은 엄연 히 다른 차원이었다. 무려 임의로 만들어낸 ‘간이 차원’이다. 그 무엇
도 간섭할 수 없는 공간. 파지직,파지지지직!
“차폐막에 이상 발생!”
“지정 좌표가 흐트러졌습니다.”
“수정해.”
“예,지금 고착화 완료했습니다.”
“공간 마나의 흐름이 다시 진정됩 니다.”
‘듣던 대로 사나운 놈이군.’
아직 영혼을 부여하지도 않았는데, 육체가 완성되자마자 벌써부터 간이 차원을 찢어발기고 튀어나오려고 발 버둥을 친다. 정말 무식한 생명체가
아닐 수 없다.
“육체 전이 가동률 99%”
“준비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목표 좌표는 블랭시움의 황금 요 새 ‘골덴 메르시옴’의 상공 300m, 게이트는 최소한으로 축소하겠습니 다.”
“영혼 부여를 시작하겠습니까?”
기계적으로 묻는 마법사들의 질문 에 솔렝 오르앙은 잠시 망설였다.
‘……어째서 길르텐 님은 이런 과 격한 방법을 사용하시려는 걸까.’
길르텐을 향한 그의 충성도는 무한
했다. 그녀가 지금 당장 자살하라고 하면,가장 과격하고 잔인한 방법으 로 죽어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하 지만 그도 살아있는 인간인 이상 궁 금한 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 었다.
일곱 다리의 연결자의 최대 목표는 어디까지나 ‘7개의 그랜드 디멘션’ 을 모두 연결하여,그들만이 독점하 고 있는 차원학으로 그 세계를 완벽 하게 정복하고 통합하는 것이었다. 모든 차원이 연결되지만 정보력과 기술력은 모조리 일곱 다리의 연결 자 소속의 마법사들만이 갖게 된다.
비록 일곱 다리의 연결자라는 그룹
하나만으로는 그들을 지배할 수 없 을지 몰라도,7개나 되는 위대한 차 원의 기술을 핵심만 골라서 흡수한 다면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독 재자가 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굳이 파괴적인 행위를 벌일 이유가 없었다. 차원 게이트를 열어놓는 것이야,‘그랜드 디멘션’을 여는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쳐도 이번에 난데없이 드래 곤 슬레이어를 소환해 제국의 수도 를 파괴하면서까지 서천영을 죽이려 는 이유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 다.
‘아니,아니지. 길르텐 님의 뜻이
다. 나는 그것을 이행하기만 하면 돼.’
솔렝 오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신호를 받자마자 마법사가 용 의 큐브 아래에 놓여 있던 마나 전 송 장치를 가동시켰다. 그러자 묽은 빛에 휩싸이며 용의 큐브가 돌연 사 라졌다.
그것이 다시 나타난 자리는,드래 곤 슬레이어 ’마스터 스피루나'의 가 슴팍. 용의 물건이 용 사냥꾼의 심 장 역할을 하게 되었다.
솔랭 오르앙이 말했다.
“지금 당장,록 제국의 황금 요새
상공에 드래곤 슬레이어를 투하한 다. 그의 영혼에게 각인시켜.”
너의 적은 ‘서천영’이다.
그를 죽여라.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