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74화
칼라할 교단의 교황,리우펠리우스 는 급히 전달받은 소식에 표정을 굳 혔다.
“16개의 차원이 또다시 열렸단 말 인가?”
“예,그리고 신성 결계 중 아홉 장 소가 무너졌습니다.”
“그럴수가……
신성 결계. 다른 차원에서의 침입
을 막기 위해 임의로 세워둔 마법 적, 과학적,신성적인 의미가 종합되 어 담겨있는 아주 중요한 장소였다. 하지만 하나만으로는 그리픈 전 대 륙을 보호하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신성 결계는 대륙 곳곳에 수많은 숫 자로 나뉘어 분포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병력이 분산되는 것 은 어쩔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신성 결계를 지키는 힘이 약해진다.
심지어는 신성 결계는 그저 인간들 이 만들었을 뿐이기에 너무나도 쉽 게 무너지며 그 위력 또한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교황들을 모두 소집해주게.”
이제 칼라할 교단의 교황이 하는 말이면 다른 4개의 교단은 껌백 죽 는다. 물론,이러한 상황이니 이미 다른 교단 역시 ‘신성 대회의’를 준 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신성 대회의가 끝난 지 반 년이 채 지나지도 않았거늘.’
그 때에는 주기적으로 모여서 하는 회의였지만 지금 같이 위급한 상황 일 경우에는 임의로 모이는 것 또한 가능했다.
“회의 주제는 역시 대륙의 안보에 관해서입니까?”
“아니다. 성기사들은 이미 곳곳에 파견해둔 상태고,다른 교단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어떤 주제로……
“그것보다 더 중요한 주제이지.”
리우펠리우스는 표정을 잠시 굳히 더니,이내 입을 열었다.
“이 취약한 신성 결계를 보완할 방 법에 대해 의논할 필요가 있다.”
강철과도 같은 피부,무엇이든 압
축해버리는 악력,지옥불에 의해 단 련된 뿔,천리 밖의 먼지조차 꿰뚫 어보는 시력, 태풍 속을 자유로이 날 수도 있는 거대한 날개.
그 모든 것이 ‘마스터 스피루나’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는 강했다.
무려 용을 다섯 개체나 사냥했을 정도로.
하지만 용 다섯 개체를 사냥한 대 가로 마스터 스피루나의 신체는 7등 분이 되어 온갖 차원에 찢어지고 영 혼은 차원의 틈새에 갇히고 말았다. 그렇게 수천 년이 지났다.
마침내 자신의 신체가 재결합되어 다시 등장했을 땐 너무나도 약해진 상태였다.
‘고작 인간들의 제국 하나를 멸망 시키는데,30분이나 걸리다니.’
스피루나는 자신의 발밑을 응시했 다. 그가 현재 걸터앉아있는 곳은 황금 요새라고도 불리는 골덴 메르 시움이 무너진 폐허였다. 황금 요새 는 거대하고 또 굉장히 높게 지어져 있어 그것이 무너졌다 한들 그 잔해 만으로도 이미 하늘을 넘볼 수준이 었다.
“이곳의 인간들은 용의 기술과 비
숫한 것을 사용하는군.”
용의 기술이란 즉 마법을 이야기하 는 것이었다.
‘이전 세계의 인간들은 신체를 극 한까지 단련시켜 마침내는 인간의 본질 자체를 초월하여 그 존재가 가 히 공포스러웠건만……
그리픈.
이 대륙의 인간들은 수천 년 전에 들렀던 차원의 인간들의 무력에 발 끝만큼도 미치지 못했다. 기술력 또 한 어떤가. 기계를 주로 다루던 세 계의 인간들이 다루던 것에 비하면 조잡하고 어린 아이의 수준일 뿐이
다.
이런 인간들 따위는 과거의 자신이 었다면 콧바람을 부는 것만으로도 가볍게 멸망시킬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존심이 상하게도 직접 몸을 움직여 대상을 때려 부숴 야만 했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 신 체가 분리되고 영혼이 빠져나간 채 로 살아왔던 탓이다.
“마스터 스피루나.”
누군가의 목소리에 스피루나는 슬 쩍 눈길을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목 소리의 주인은 만족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검은색의 로브가 거의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날 소환한 것이 너희들인가.”
“그렇습니다.”
“그래,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두 지. 나는 그 지옥보다도 더 끔찍한 곳에서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벌레 의 발이라도 할을 의향이 있었거
드 ”
스피루나가 전혀 농담조가 아닌 어 투로 농담을 날리자 마법사는 대꾸 를 하지 않았다. 이럴 때에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해보
아라. 하나 정도는 들어주도록 하 지.”
“저희가 당신을 왜 불렀겠습니까. 당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지요.”
“하하하!”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의 말에 스피루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냄새가 풀풀 풍기던 참이다. 이 향기롭고도 자극적인 냄새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거든.”
스피루나는 힘껏 콧구멍을 벌렁거 렸다. ‘냄새’라는 것을 맡아보는 게 대체 얼마만이란 말인가. 그것도 무
려 ‘용의 향기’를 말이다.
“상대는 아직 성체가 되지도 못한 어린 용입니다.”
“성체가 아니라고?”
마법사의 말에 스피루나는 흥미가 생겼는지 짐승의 것과도 비슷한 거 대한 귀를 펄럭였다.
“예,저희의 부탁은 그저 그 용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치워버리는 것. 그 방법은 마스터 스피루나가 원하 시는대로 하면 됩니다.”
“후후후……
스피루나가 원하는 것은,불 보듯 뻔했다.
그는 용을 원했다. 탐하고 싶고, 겁탈하고 싶고,소유하고 싶고,너무 나도 사랑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용 을 죽였다. 용은 너무나도 강력했기 때문에 소유하기 위해서는 죽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성체가 되지 못한 용이라면 어떨까?
아무리 약해진 상태의 스피루나라 지만 용언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용은 그저 장난감일 뿐이다. 굳이 죽이지 않고도 손에 넣을 수 있었 다.
혀로 입술을 할으며 스피루나가 즐
겁다는 둣 웃었다.
“너희들에게는 정말 감사 인사를 해야겠군. 마치 나만을 위해 신이 직접 구원해주기 위해 보내준 사자 같단 말이야.”
“하하하,아닙니다. 저희들이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마스터 스피루나는 두고두고 써먹 을 데가 많았다. 그는 비록 드래곤 슬레이어였지만 차원을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러므로 일곱 다리의 연결자 쪽이 갑이었다. 그들 은 마스터 스피루나 역시 부하로 두 고 써먹을 계획인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 무지막지하게 강한 모양이군.’
아무리 과거 전설의 대마법사 에니 안이 온다 해도 고작 30분만에 록 제국의 수도를 이렇게 완전히 파괴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남겨진 것 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개미 새 끼 하나조차,스피루나는 살리지 않 았다.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군사력의 상징,아름다움의 번화가, 문화의 꽃,대륙의 심장부. 그 모든 것을 상징하던 록 제국의 수도 블렝 시옴은 그저 스피루나라는 단 하나 의 개체에게 장난감처럼 굴림 받다 가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렸
다.
“지금 당장 ‘서천영’을 잡으러 가 시겠습니까?”
“아니,그럴 필요는 없지. 나는 이 나만의 황좌가 썩 마음에 드는구 나.”
황좌(皇座). 그 단어와는 썩 어울 리지 않는 장소였다. 모든 것이 폐 허였으니까. 하지만 마스터 스피루 나의 고향은 ‘모든 것이 무너진 세 계’였으므로 오히려 고향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므로 이곳은 스 피루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었 다.
“나는 인간들의 제국을 멸망시킴으 로써,세상에 공포를 각인시켰다. 그 럼 용이 어떻게 하겠느냐?”
“……악을 물리치기 위해,찾아올 것입니다.”
“그래,그렇지. 나는 나에게 직접 찾아온 그놈의 날개를 뜯어 다시는 하늘을 날 수 없게 만들고 뿔을 뽑 아 내 황좌에 장식할 것이다. 나만 의 제국이 생겼는데,내가 직접 갈 필요는 없겠지.”
마스터 스피루나가 그리 말하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 ‘솔렘 오르앙’은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 그는 잔뜩 든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이 대륙은 온전히 우 리들의 것이 될 터였다. 일곱 다리 의 연결자는 7개의 그랜드 디멘션을 모조리 지배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텐데…… 어째서 어째서 우리들의 마스터는 이런 다루기도 힘든 존재 를 소환한 것이지?’
단순히 용에 대한 증오심?
솔랭 오르앙은 도저히 자신의 마스 터,길르텐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 영원히 이해할 수 없 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잔뜩
의심을 가진 채로 길르텐을 따른다. 그는 이미 심장을 걸고서 그녀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맹세한 몸. 설령 그녀가 잘못된 길을 간다 하여도 솔 렝 오르앙은 그것을 제지할 수 없었 다.
그는 충성을 다하는 신하였지만 진 정된 충신(忠臣)은 아니었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군 재백이 직접 디자인해준 흑색의 한복 외투 를 걸친다. 사실 이미 그에게 있어
장비는 아무런 기대치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것보다도 서천영이 항상 두르고 다니는 마법이 월등히 성능 이 좋았으니까.
“……직접 가시는 겁니까?”
“네,레이븐 형 오면 말 좀 전해줘 요. 금방 오겠다고.”
“하지만……
제이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최근 레이븐의 동향 또한 심상치 않았다. 자주 마탑에 돌아오긴 했지 만 언제라도 떠나버릴 것처럼 ‘인 사’를 꼬박꼬박 했기 때문이다. 본 디 레이븐은 인사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별 인사를 레이븐 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안 됩니다. 차기 마탑주가 위험에 처하면,금색 별 마탑의 존폐 자체 가 위험해집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가지 말고 여기서……
“……근데 내가 안 가면 그리픈의 존폐가 위험해집니다.”
상대방은 무려 록 제국의 수도를 단 30분 만에 멸망시켜버린 괴물이 다.
아마 서천영이 직접 찾아가도 상대 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버 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아마 가볍게 농락만 당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서천영은 용이다.
한 차원을 아우르는 희망,모든 생 명체들이 기댈 수 있게 꼿꼿하게 서 있을 필요가 있는 기둥.
어째서 일까.
용은 어째서 그래야만 하는 것일 까.
잘 모르겠다.
인간으로 태어났을 땐, 세상만사 모든 것에 욕심을 부리며 죽을 때까 지 경쟁만 하다가 죽어가는 삶을 사 는 것처럼,용이 된 이상 세상을 구 하기 위해 멍청하게 희생만 하다 살 아가는 운명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 다.
‘드래곤이라. 사기 치기 참 좋은 호구들이겠군.’
그리 생각하며 천영은 마탑 꼭대기 로 올라갔다. 본체로 돌아가 날아오 르기에 딱 제격인 장소였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눈을 감는다. 긴 장이 조금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착하게 살 았다고.’
모르겠다.
천영은 본디 이기적이고 본인밖에 모르며 남 속이고 살아가는 것을 좋 아할 뿐인 아주 지극히도 평범한 인 간이었다.
‘정말로 모르겠군.’
그러니 모르니까. 그저 본능이 시 키는 대로 한다. 그것이 드래곤이라 면 드래곤이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면.
천영은 언젠가 거미 인간이 나오는 슈퍼 히어로 영화를 상기해냈다. 그
영화
하곤
속 주인공의 삼촌은 그에게 말 했다.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어쩌면 용이라는 존재는 불합리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는 대 신 순수함과 책임감이라는 대가를 지니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천영,나도 같이 가겠다.” “……네청 님?”
고개를 돌린다. 흑발을 휘날리며 네청이 비스듬히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어쩐지 그녀는 평소보다도 더욱 활기찬 표정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너 혼자 가는 것보다는 놈을 제압 할 가능성이 올라가지 않겠느냐?”
맞는 말이었다. 여기서 네청을 데 려가지 않는 것은 단순한 고집에 불 과했다. 그녀를 데려가지 않을 이유 강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천영은 그녀를 데려가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이유는 없다.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빨리 출발하자꾸나.”
“……알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주어진 선택지 앞에서 본능은 본능으로 묻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네청을 거절할 별 다른 이
유가 없었다.
“……출발합시다.”
“그래.”
그렇게 해서 어린 용과 이무기가 드래곤 슬레이어를 잡기 위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