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9화 (29/325)

< #4. 안녕, 친구들! >

그건 아주 사소한 습관 같은 거였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커피를 마실 때 새끼손가락을 세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기지개를 피고 내려올 때, 주먹 쥐고 새끼손가락만 바짝 세우는 버릇. 양손이 아니라 오른손 새끼손가락만 피는 게 포인트지.’

클놈이 자주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비록 한동안 못 봤다지만, 이전에 함께했던 시간이 상당했다.

게다가 그리 흔치 않은 특징이다 보니, 뇌리에 제법 박혀있는 습관이기도 했다. 때문에 거구사내의 오른 새끼손가락이 바짝 세워졌을 때, 저도 모르게 클놈을 떠올려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 보니 덩치도 클놈과 겹쳤다.

‘클놈 같은 거구가 흔한 게 아니지.’

결정적으로 한 가지 더,

‘대두!’

거기에 오늘 하나가 추가됐다.

‘대...머리...’

게임에서 유독 머리스타일을 신경 쓰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어쨌든 재차 물었다.

“클놈?”

“호로......로?”

“...끊어서 말하지 마. 기분 이상하니까.”

“아무래도 반응 보니까 진짠가 보네.”

실로 뜻밖의 만남이었다.

호로로와 클놈은 동시에 물었다.

“헌터?”

“헌터였어?”

서로 묻고 물음으로써 답을 들은 거나 다름없었다.

“일단, 저쪽 먼저.”

잠시간의 침묵 끝에 마루가 먼저 상황을 정리했다. 저 멀리 오크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게 보인 까닭이었다.

진지구축이 일단락 됐단 의미이리라.

고개를 끄덕인 거구사내, 클놈이 먼저 움직였다.

“난 이쪽으로 가지.”

“그럼 난 여기로.”

게임과 무관하게 현실에서는 첫 대면이었다.

서로간의 능력치도 제대로 모르는 만큼, 어설피 합을 맞추기보단 개별 행동이 더 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 차례 더 시선을 교환한 그들은 반대 방향으로 갈라지며 이동을 시작했다.

**

클놈, 장현성은 뜻밖의 만남에 당황하는 한편, 빠르게 상대를 스캔하며 그 능력치를 계산하기 바빴다.

그 결과가 바로 개별행동 이었는데, 이는 마루의 장비 때문이었다.

‘C급 게이트에 출동한 걸 보면 각성자일 확률이 높지만, 일단 총기를 들고 있단 점에서 상성이 별로네.’

그도 원거리 딜러인 까닭이었다.

[장현성]

[각성 등급 : B]

[컨디션 : 6]

[스킬 : 바람길]

주 무기는 활을 사용하는데, 스킬의 지원 덕분에 화살의 속도 및 위력을 배가시킬 수 있으며, 퇴로 확보에도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고는 했다.

총기도 사용하지만 딱 보조 정도의 역할이 끝이었다.

사용자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화기의 경우, 스킬 부여 및 간섭의 확률이 낮은 탓이었다. 발사되는 총알 한 발 한 발을 전부 인지하고, 그 안에 일일이 스킬을 담는다?

‘골 때리는 일이지.’

총기류 각성자가 그래서 특수한 것이다.

‘시야 확보가 용이한 곳이...저기가 좋겠네.’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한 그가 저격 위치를 찾아 움직였다.

‘장기 임무 때문에 컨디션은 낮지만.’

그래도 C급 게이트에 몸을 사릴 정도는 아니었다.

**

오크들은 무리생활이 기본이다 보니, 항시 4~5마리가 함께 뭉쳐서 다니고는 했다.

많을 땐 10마리 이상도 뭉쳐 다니는데, 놈들의 전체적인 규모에 따라서 이 숫자가 결정되고는 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목표물들은 7~8마리 수준으로써, 이를 통해서 게이트의 수준도 유추할 수 있었다.

‘저만큼 뭉쳤다면, 게이트 등급도 C급 중에서도 상급!’

뿐만 아니라 이런 소소한 부분들을 통해, 무리의 우두머리 수준도 짐작할 수 있었다.

‘10마리 초반대가 주술사였지.’

그렇다면 지금은?

‘오크 전사쯤 되려나.’

틈틈이 문자를 통해 관리부에 게이트 수준을 갱신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쯤에서 할까.”

도심 한복판이다 보니 높은 건물들이 많았고, 그만큼 저격 포인트를 잡기도 쉬웠다.

자리를 잡고 앉은 뒤 장전 그리고 발사.

투웅!

묵직한 총성과 함께 주변을 정찰하던 오크 한 놈이 넘어가는 게 보였다.

“허...이걸로도 부족하다고?”

브레스-9의 순수 위력을 믿고서 저격을 한 것이건만, 이를 맞은 오크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게 보였다.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재차 저격을 하자, 결국 드러눕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D급 특수탄으로는 딱 이정도인가.”

그나마도 브레스-9의 위력 덕분이리라.

“한 방에 보내려면 결국 C급 특수탄을 꺼내야 하나.”

돈 깨지는 소리가 환청마냥 들려와 짜증이 확 일었다.

‘관통 같은 스킬을 빨리 구해야겠네.’

크아아아!

크워어!

저 멀리 흥분한 오크들의 모습이 결정에 도움을 줬다.

“어쩔 수 없지.”

할 수 없다는 듯 C급 특수탄을 꺼내 재장전을 하고는 다시금 방아쇠를 당겼다.

투우우웅...

한층 묵직해진 총성이 울리고,

퍼억!

한 방에 오크의 머리가 터져나가는 게 보였다.

특수탄의 등급에 따라 추가 반동 역시 더해지지만, 이는 [고정] 스킬로 제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준] 스킬로 정확도 역시 높여 놓았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투웅! 퉁...투우우웅...

대부분의 저격이 한 발 이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번 당하고 나자 머리를 철저히 보호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를 뚫고 저격하기가 어려워졌다.

굳이 그걸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다른 놈을 노리면 되지.”

빠르게 다음 포인트로 이동해서 새로운 목표물을 찾아 방아쇠를 당기면 그만이었다.

‘타이밍도 딱 적당하고.’

그가 떠난 자리로 뒤늦게 도착한 오크 무리의 괴성이 들려왔다.

“맘 같아선 좀 더 파고들고 싶지만.”

C급 오크에게 얼마만큼 통할지, 직접적으로 부딪쳐보고 싶단 생각도 컸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거리감을 유지했다.

“오늘은 눈으로 확인한 걸로 만족하자.”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었다.

‘승급 소식을 숨기려면, 좀 더 사려야지.’

한 해도 아니고, 겨우 한 계절 만에 C급 승급?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총기류 각성자이기에 장비 위력으로, 어느 정도는 눈속임이 가능했다.

이걸로도 충분한 소란거리가 될 수 있건만, 거기에 더해 늦깎이 각성자라는 특이사항까지 품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 ‘최초’ 오크 게이트!”

만약 밝혀진다면?

‘레이버 1위도 가능하려나?’

게임 속 유명세 이상으로 세상이목이 집중될 터였다.

장관장은 PK유저들을 불러들였다.

허면, 정마루는?

‘쓸데없이 깝치진 말자.’

자제 또 자제해야 할 때였다.

각성범죄가 가장 많은 라인이다 보니, C등급까진 등록이 필수일 수밖에 없었고, 의심을 사면 필히 등급 재심사를 봐야만 했다.

하지만 B급이 되면?

혹여 그가 승급을 숨기다가 발각되더라도, 그 등급이 B급이라면 별다른 마찰이나 문제없이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더 큰 관심이 쏟아질 수 있는 만큼, 적당히 올 겨울까지만 버티다가 C급 승급심사를 볼 생각이었다.

“마석이 좀 아깝긴 하네.”

오크라면 초록색 마석까진 노릴 수 있는 놈들로써, 크기유무에 따라 수백만원 가량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올 초까지만 해도 초록색 마석은 구경도 못할 물건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길바닥 돌멩이마냥 무시하며 흘려보낼 수 있단 사실에, 새삼 그의 위치변화를 실감하게 만든 것이다.

‘돌멩이다. 저건 돌멩이다. 결코, 보석...마석이 아니다.’

살짝 최면이 필요하다는 건 비밀이었다.

“그나저나...”

마루의 시선이 슬쩍 저 한편으로 돌아갔다.

‘클놈.’

게임에서 느껴지던 거리조절의 묘한 괴리감, 그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서로의 저격 포인트가 겹치면 안 되다보니, 이동하는 와중에 틈틈이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상대의 사냥법을 훔쳐보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를 통해서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저 녀석, 궁수인가.’

PP는 전 세계적인 게임이다 보니, 헌터들 역시 즐기는 이들이 상당했는데, 그들의 경우 대부분 현실과 맞물리는 육성루트를 선택하기 마련이었다.

짐작건대 클놈의 본캐 역시도 궁수와 관련이 있을 터였다.

“그나저나 보통 솜씨가 아니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라고나 할까?

“C급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그 못지않은 거리에서 활과 화살로 한 방에 오크를 잡아내는 모습이 놀라웠다. 머리 몸 가릴 것 없이 화살 하나에 한 놈씩 꿰뚫리며 숨을 거두고 있었다.

‘위력도 장난 없네.’

둘씩 관통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게다가 건물에서 건물로 뛰어넘는 몸놀림을 보라, 마치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으음...”

저도 모르게 그간 게임에서 보였던 태도들을 되짚고 있었다.

‘건방떤 적 없지? 없겠지?’

괜히 불안해졌다.

**

C급 게이트의 위력이라고 해야 할까?

헌터들도 이번만큼은 관리부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수많은 헌터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고, 이내 그들만으로 형성한 경계선이 위험지역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B급의 실력자들도 상당수 섞여있었는데, 덕분인지 게이트 주변의 오크들은 빠르게 토벌됐고, 관리부가 도착했을 즈음에는 게이트 주변으로 세워진 ‘오크부락’까지 한창 해체되는 중이었다.

“휘유...얼추 일단락되긴 했네.”

장현성은 이마의 땀을 소매로 훔치며 짧게 호흡을 골랐다. 오크부락을 이끄는 전사까지 해결한 만큼, 여기부터는 관리부에 넘기고 물러나도 될 듯싶었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며 주변을 돌아봤다. 오래지 않아 한 사내에게로 시선이 고정됐다.

‘호로로.’

마침 사내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둘은 짧은 시선 교환을 나눈 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현장에서 한 걸음씩 물러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만남.

“거 참, 설마 이렇게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먼저 말문을 연 건 장현성이었다. 마루 역시도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업계 사람일 줄이야. 뜻밖이긴 하네.”

그러면서 묻는다.

“혹시, 다른 둘도?”

같은 업계 사람인지 묻는 것이었고, 장현성은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줬다.

“전에 말했잖아. 입사 동기야.”

헛웃음이 나왔다.

왠지 장현성과 동급의 실력자란 예감도 들었다.

“슬슬 통성명을 해도 될 것 같은데.”

거리낌이 없다고 해야 할까?

이번에도 장현성이 먼저 운을 띄우며 자신을 밝혔다.

“블록 길드의 장현성이라고 해.”

그러며 손을 내밀고, 마루가 이를 맞잡아 악수를 하며 답했다.

“정마루. 편하게 백수라고 생각해.”

사체 처리업체 바이트는 곧 사표를 쓸 예정이다 보니 그냥 그렇게 소개를 했다.

“솜씨 보니까 보통이 아니던데. 아직 소속이 없다고?”

장현성이 제법 놀랐다는 듯 그리 묻더니, 이내 자신의 명함을 한 장 꺼내들었다.

“혹시나 생각 있으면 한 번 구경이라도 와.”

짧게 살핀 정도였다. 하지만 마루의 저격 솜씨에 감탄하기엔 충분했고, 이처럼 명함을 건네게 만든 것이다.

“아직은 소규모지만, 이번에 혜성 길드의 지원으로 던전 하나 뚫어서 한참 기세를 타고 있으니까. 실망하진 않을 거야.”

그 말에 마루가 저도 모르게 가슴 어림을 훔쳤다.

‘혜성길드.’

여제가 줬던 명함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상의 안주머니에 담긴 지갑 속, 그녀가 준 명함이 곱게 꽂혀있었다.

장현성의 명함을 받아든 마루의 눈가에 옅은 이채가 스쳐갔다. 명함에 담겨있는 정보 때문이었다.

[B급 A형 장현성]

‘보통은 아닐 것 같더니만. B급이었나.’

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장현성이 뜻밖의 제안을 해 왔다.

“명함은 적당히 챙겨 넣고, 것보다 오늘 다른 둘하고도 만나서 한 잔 하기로 했는데. 이참에 같이 가서 얼굴 비추는 건 어때?”

패피와 루띠를 말하는 것이리라.

잠시 고민하던 마루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쉬는 날이기도 하고.’

할 게 없어서 밀린 영화나 보려하지 않았던가.

‘땀도 좀 뺐겠다.’

적당히 한 잔 걸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

“끄응...”

마루는 길게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늙긴 늙었네. 알콜 좀 부었다고 이리 몸이 무거울 줄이야.”

지난 밤 클놈과 패피 그리고 루띠 일행을 만나, 시원하게 한 잔 걸친 여파가 고스란히 따라왔다. 새삼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와 닿는 걸 느꼈다.

이미 게임에서 친분을 다져놨기 때문일까?

‘가살현실 효과로 어색한 것도 잠깐이었지.’

그 시작부터 나쁘지가 않았다.

“오빠라고 부르면 되죠?”

“오라버니?”

패피 김미애와 루띠 진수미가 첫 만남에 꺼낸 단어였다. 이는 장현성이 먼저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딱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뵈는데, 일단 형이라고 할게.”

물론, 말투 자체야 반말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먼저 운을 띄웠고, 실제로도 7살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련한 이야기를 두 여인에게도 전하면서 호칭 정리가 끝난 것이다.

‘괜찮은 동생들이 생겼네.’

그들과의 만남은 제법 괜찮은 시간이었다. 가볍게 한 잔 하러 갔다가 나쁘지 않은 분위기에 취해, 2차 그리고 3차까지 거치며, 새벽까지 들이 붓고서야 자리를 파했다.

삼겹살로 시작해서 노래방 그리고,

“크흠!”

마루는 민망함에 헛기침을 했다.

“이 나이 먹고 클럽이라니.”

그러면서 떠올리는 지난밤의 추억, 아니 기억.

“요즘 애들 참...화끈했어.”

주책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씰룩거리며 올라가는 입 꼬리를 부여잡기는 어려웠다.

잡념은 거기까지였다.

“오늘 중으로 50레벨 찍어야지.”

기상과 동시에 PP로 달려갔다.

전직까지 어느새 반걸음이었다.

< #4. 안녕, 친구들!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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