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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 #23. 초롱초롱.

성화!

그건 두 번째 전직의 순간 마주하게 되는 축복으로써, 그 정화의 불길 속에서 변화를 끝마쳤을 때, 놀라운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다.

-건물주?

그의 소환도 없이, 대뜸 초롱이가 등장한 것이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

그러더니 뜬금없는 대사를 내뱉었다.

‘나?’

일단, 직화로 구워지고 있는 상태다 보니, 자연스레 드는 의문이었는데, 초롱이가 바라보는 건 그가 아니라, 그를 휘감을 불길이었다.

전직이 끝나고 성화가 사그라들고 있었는데, 대뜸 초롱이가 이를 향해 뛰어든 것이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두 번째 점화가 시작됐다.

화르르륵...

거기서 초롱이의 진화가 일어났다.

‘뿔?’

머리 위로 그토록 기다리던 뿔이 생겨난 것이다. 변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는데, 이를 알아챈 건 불길이 사그라진 이후였다.

붉은 불빛 때문에 눈치 채지 못했던 두 번째 변화가 있었다.

‘색깔이...’

놀랍게도 초롱이의 피부가 붉게 물들어 있던 것이다.

-헤헤! 빨간색이다. 어때? 강해 보여?

자신의 변화가 만족스러운 듯, 초롱이가 그의 어깨와 머리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기분 좋게 물었다.

이 와중에 드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전에는 초록색이라 초롱이가 어울렸는데.’

붉은빛이라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이젠, 빨갱이라 불러야 하나?’

다행히도 그럴 일은 없었다.

-얍!

초롱이가 묘한 기합성을 터트리는가 싶더니, 그 피부가 다시금 기존의 초록빛으로 변한 것이다.

-히히! 어때? 나 이젠 변신도 할 수 있다? 멋지지?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

마루는 지난 전직의 순간을 떠올리며 초롱이를 바라봤다.

[나 이제 건물주 따라갈 수 있어.]

회상의 끝자락에서 그렇게 말하더니, 정말로 현실까지 쫓아와버린 것이다.

[우와~! 반짝반짝해.]

그렇게 초롱이의 21C 적응기가 시작되었다. 다시금 PP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초롱이는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아기 드래곤 뚜루뚜뚜~! 귀여운 뚜루뚜뚜~!

TV라는 마법의 물품에 흠뻑 빠져버린 탓이다. 오래지 않아 핸드폰도 알게 될 것이고, 인터넷까지 영역을 넓힐 거라 예상하지만, 그래도 일단 아직까진 TV하나로 컨트롤 할 수 있었다.

성화로 인한 성장효과를 톡톡히 본 것인지, 더 이상 꿈나라만 찾던 아기가 아니었다.

“초롱아 밥 먹자.”

-나 아직 배불러.

실소가 절로 나왔다. 밥 먹은지 한참 지났건만 아직까지 배가 부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뚫어져라 TV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이유를 모를 수가 없었다.

“TV 끌까?”

-여기서 먹으면 안 돼?

시무룩한 초롱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애처롭게 처진 날개가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 약해지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 채 리모컨을 들었다.

그 순간 초롱이가 돌변했다.

-갑의 횡포다! 악덕 건물주!

투덜거리며 식탁으로 날아왔다. 그제야 리모컨을 내려놨고,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됐다.

-잘 먹을게. 건물주도 잘 먹자.

나름 예의범절이라 할 법한 것도 가르친 덕분인지, 초롱이는 식사 전에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식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마루가 물었다.

“어째, 정리는 좀 됐어?”

그 말에 접시에 코를 박은 채, 와구와구 고기를 먹던 초롱이가 고개를 들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무슨 말이야? 라는 표정을 시전 했다.

“던전.”

그 말에 몇 차례 눈을 끔뻑거리던 초롱이가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거.

2차 전직과 초롱이의 성장이 이뤄졌던 날, 던전에 대해 물었는데, 생각보다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알 것 같아. 그런데 정리가 안 됐어. 좀 기다려.]

그리고 오늘 식사시간을 통해 슬쩍 이를 언급해 본 것이다.

-어. 이제 정리 끝났어.

기다리던 대답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물으려는 찰나, 초롱이가 말했다.

-식사시간에 떠드는 거 아니랬어.

“...어, 미안. 밥 묵자.”

한 소리 들어버렸다.

**

초롱이는 던전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다락방이야.

“뭐?”

-던전은 PP에 붙어있는 다락방이야.

즉, 둘이 연결된 건 확실하단 의미였다. 그렇다면 왜 둘 사이를 인식할 수 없는 걸까?

-건물주 바보야?

“응?”

-층이 다르잖아.

같은 집에 있다고 같은 공간에 있다고 정의하긴 어려웠다. 0.5층의 차이도 분명 층계가 다르긴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오의 층계 덕분에 마루에게 소소한 간섭효과가 작용한 것이기도 했다. 비구현 스킬의 발현이 바로 그 증거였다.

직접적인 간섭은 어려운 탓에, 상태창이나 아이템 등을 비롯한 여러 혜택을 누리기가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이 즈음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PP는 뭘까?’

초롱이는 그에 대해서도 정의를 내려줬다.

-셋방살이야.

좀 전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현실이 1층이면 PP는 2층이고, 던전은 거기 끼어있는 다락방이란 것이다.

흥미로운 건, 결국 그 셋이 옆집이나 건너 집으로 나눠진 게 아니라, 하나의 토지 안에 지어진 건축물이란 점이었다.

다른 차원, 다른 주거지가 아닌, 한 집에 살고 있을 줄이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히히! 어때? 이해가 쏙쏙 되지?

“어...확 와 닿네.”

마루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잘했어?

“그래. 잘 했다.”

재차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순간, 초롱이가 그 조막만한 앞발을 내밀었다.

-그러면 핸드폰 사줘.

“...어?”

-21C야. 나 뒤쳐졌어.

그러며 앞발을 탕탕 내리친다.

-사 줘!

“...어.”

아이의 세상은 그렇게 TV를 넘어, 리튜브까지 뻗어나갔다.

**

키홀 클랜의 카일리 바이프는 긴장어린 표정으로 입국장을 지키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한국으로 넘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까닭이었는데, 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만큼, 현재 바싹 굳어있는 상태였다.

키홀이 유럽의 이면에서 명성을 떨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존재로써, 당장 특별한 직급이 있는 건 아니지만, 클랜장의 동생이라는 특수한 포지션이 이를 대신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두려워하는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순수하게 존재 그 자체가 두렵기에 입안이 바싹 타는 것이다.

[키홀 클렌에는 괴물이 산다.]

바로 그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랭커!

그 등급만 놓고 봐도 긴장하는 게 당연하건만, 상대는 이면을 살아가는 랭커였다. 오금이 저리는 걸 넘어, 오줌을 지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을 즈음, 저 멀리 입국장이 열리며 기다리던 인물이 걸어 나왔다.

‘젠장! 언제 봐도 믿기지 않는 얼굴이군.’

딱 봐도 훤칠한 키에 곱상한 외모, 그리고 선한 눈매와 부드러운 미소까지, 절로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인상의 사내였다.

찰랑이는 금발 때문에 더 밝아 보이는 느낌도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잠시 넋을 놓고 있노라니, 사내가 먼저 말문을 건네 왔다. 그제야 깜짝 놀라서는 급히 대화를 진행시켰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제퍼드님.”

사내, 제퍼드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게 안 멀었어요. 요 옆에 중국에서 일 좀 보고 있었거든요.”

말투까지 정중하니, 외모와 너무 잘 어울린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내의 본질을 알기 때문인지, 그 모습이 오히려 더욱 두렵게 여겨졌다.

“아...그렇습니까.”

무슨 일인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괜한 트집을 피하고자 애써 호기심을 삼켜야만 했다.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웃어 보이는데, 너무도 싱그러운 미소였다.

제퍼드의 본성을 알기 때문일까?

시선을 빼앗기는 것과 동시에 등허리가 오싹해지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궁금하면 물어봐도 돼요.”

그 말에 카일리가 급히 생각을 바꿔먹었다. 저건 오히려 말하고 싶다는 신호임을 캐치한 것이다. 급히 삼켰던 호기심을 뱉어냈다.

“중국은 무슨 일로 가셨는지, 혹시 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흑련이라고 알죠?”

“무림맹과 대척하고 있는 집단 아닙니까?”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격변의 시대로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중국은 그들만의 자존심이 상당히 강렬했다.

이는 헌터업계도 마찬가지였는데, 무림맹은 중국 헌터업계가 세계 헌터 협회(WHA)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낸 단체였다.

“사흑련이 아니었다면, 사실 10년 전에 이미 무림맹의 체계가 완성됐을 겁니다.”

중국 이면의 헌터들이 모여서 탄생한 집단으로써, 무림맹의 독립에 지대한 똥물을 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의 등장으로 인해, 무림맹은 여전히 WHA와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후후! 사흑련이 원래는 무림맹 산하기관으로 준비된 건 아나요?”

“아...그랬습니까?”

깜짝 놀랄 이야기였다.

“좀 복잡한 내용이 있긴 한데, 간단히 말씀드리죠. 무림맹이 물먹고 좋아하는 게 누굴까요?”

“...설마?”

카일리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후후! WHA도 우리 못지않게 음흉하죠.”

그러며 다시금 이야기의 본론으로 돌아왔다.

“사흑련을 찾아간 이유가 거기 있답니다.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잖아요?”

이야기의 흐름 덕분인지, 카일리는 바로 정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위저드입니까?”

“예. 우리 동네도 무림맹처럼 슬슬 독립 준비를 하고 있잖아요.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거죠.”

중국에 무림맹이 있다면 유럽에는 위저드가 있었다.

“아직까지 우리 쪽은 사흑련 포지션이 없죠. 마침 저희 키홀이 유럽 쪽에선 힘깨나 쓰니까요. 그래서 제가 대표로 움직였답니다.”

바로 그 부분 때문에 이번 일정이 잡힌 거였다.

“...저희도 단체가 만들어지는 겁니까?”

제퍼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침 사흑련 놈들이 먼저 손을 내밀더라고요. 잘 됐다 싶어서 잡았죠. 그 지저분한 자들이 도와준다니. 웃기는 이야기죠. 코미디가 따로 없다니까요. 후후!”

카일리는 지금껏 이어진 이야기의 흐름을 통해, 이번 지원의 핵심은 사흑련이 아님을 짐작해냈다.

‘한 다리 건너서 손을 뻗은 거구나.’

손의 주인이 누군지 알기에, 그의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이를 읽어낸 제퍼드가 웃으며 말했다.

“후훗! 역시 눈치가 빠르다니까.”

그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WHA의 영광도 이젠 옛일이죠.”

‘역시!’

“자기들 밥그릇 지키는데 혈안에 돼선, 초대 협회장이 저승에서 통곡하겠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최초의 랭커로써 대격변을 막기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한 게 바로 WHA의 초대 협회장이었다. 그로 인해서 WHA의 이름값이 훌쩍 뛴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업적을 등에 업은 채, 지금의 규모까지 키운 게 2대 협회장이었다.

“3대까진 잘 유지되더니만, 4대로 넘어와선 엉망이 돼버렸네요. 중국에 그런 말이 있더군요.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권력은 10년을 가지 못하고,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뜻이랍니다. 결국, 영원한 건 없는 거고, WHA도 슬슬 내리막길인 거죠.”

그 즈음, 제퍼드가 카일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고 생각해요?”

“...새로 만들어질 단체에 제 자리가 있습니까?”

“역시, 눈치가 빨라요. 형님이 아끼는 이유가 있다니까.”

‘아낀다고?’

“후후! 모르는 눈치네. 아끼니까 이런 중요한 장소에도 보낸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는 물었다.

“요즘 재밌는 일이 있었다면서요? 어떻게 나만 떠들게 할 건가요? 당신도 좀 들려주시죠.”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카일리가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

PP에 접속하니, 뜻밖의 골드 선물이 날아왔다.

“어라? 이게 어디서 온 거야?”

마루는 의아해하며 확인하곤, 깜짝 놀라야만 했다.

“내 공략집이 이렇게 인기가 있다고?”

그 횟수에 따라 골드가 축적된 뒤, 이처럼 골드가 선물로 날아오는 것인데, 어찌나 인기가 좋았던지 장비 값이 나와 버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인지도가 낮은 앙마 던전의 공략 게시판이 아니던가.

‘내가 글 솜씨가 좋긴 하지만. 크흠! 그래도 이만한 골드가 나올 이유가 없는데.’

의아한 마음에 급히 게시판을 확인했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인디안 존슨!

그가 공략집에 반응한 것이다.

[좋아요]

던전 탐험가라 불리는 PP의 진짜배기 랭커로써, 수많은 공략집을 집필하며 유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존재이기도 했다.

랭커!

이는 PP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S등급 헌터, 인디안 존슨!

당당하게 현실 속 이름을 아이디로 만든 그는, 현실과 게임 모두 스페셜한 삶을 살아가는 진짜배기 랭커였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등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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