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4 / #24. 후원.
자국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형 혹은 큰형 등으로 불리는 사내가 있다.
이는 그에 대한 존경심과 동경의 마음이 함께 우러나올 결과로써, 사내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충분히 그럴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인디언 존슨!
WHA의 2대 협회장과 죽마고우로 알려져 있는 사내로써, 그는 타고난 탐험가이며 모험가였다.
그걸 증명하듯 현실 속 수많은 오지와 험지들을 찾아다니며 모험을 즐기는데, 이 대부분이 마수지대와 던전이었다.
게다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탐험가다운 면모를 발휘하며, 관련한 정보들을 무수히 많이 뽑아내며, 수많은 헌터들에게 지침서를 남겨주니, 절로 존경의 찬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향간에는 그가 WHA의 초대 협회장의 숨겨진 제자라, 영웅의 뜻을 받들고자 세상을 위해 봉사한다는 이야기마저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의 유일한 취미가 바로 만국공통의 오락거리 PP였는데, 여기서도 그는 탐험가로써의 활약을 아까지 않았다.
그 때문에 게이머들 사이에선 현실의 랭커보단, 게임 속 랭커로써의 이미지가 더 강하기도 했다.
사실, 한국인들도 이런 루트로 그에 대한 친밀도를 높인 경우가 많았다.
아직까진 방한을 한 적이 없던 만큼, 아무래도 현실보단 게임 속 공략집을 통한 접촉률이 더 높은 것이다.
‘나도 이 형님 공략집 깨나 읽었었지.’
거기에는 최근 들어갔던 앙마 던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당히 초창기의 공략집이었지만, 워낙 완성도가 높아서 1차적으로 읽은 뒤, 다른 공략본을 덧씌우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형님도 실체에 대해서는 언급 안 했었네.’
앙마 던전의 영상이나 사진이 없던 게 떠올랐다.
살짝 배신당한 느낌도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털어버렸다. 이 정도로 상처받기엔 존슨에게 품은 마음이 컸다.
대다수가 PP를 통해서 그를 인정하게 됐다면, 마루는 현실의 경험으로 그를 동경하게 된 케이스였다.
헌터이기에 당연한 흐름이기도 했다.
특히, 그 같은 비각성의 하급 헌터들에게 더더욱 큰 지침서가 된 게 바로 인디안 존슨이었다.
[몬스터 도감] [마굴에서 살아남기] [게이트 대응법]
등등, 다양한 저서들을 집필하며, 비각성 헌터들에게 특별한 가이드 역할을 해 준 것이다.
전문적인 서적이다 보니 헌터들이나 읽을 법한 내용이 가득해서, 일반인들에겐 부담스런 내용이 넘쳐났지만, 마루와 같은 헌터들에게는 성서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고는 했다.
존경했고 또 동경했다.
그런 영웅이 그의 공략집에 ‘좋아요’를 누르고, 거기에 더해 메시지까지 남겼다.
-놀라운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한 번 만나고 싶을 정도다. 언제든 연락 준다면 시간을 내 보겠다.
립 서비스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정말 만나보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어차피 현실도 아니고 게임인데.’
한 번쯤 만나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
인디안 존슨!
그를 아는 이들은 전부 인정하는 바가 있었다.
“그는 결코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파급력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그는 말의 영향력을 실감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킬 : 말의 무게]
그 같은 스킬을 지녔던 사람을 아는 까닭이었다.
마르코 더글라스!
대격변을 막은 사나이, 최초의 각성자, WHA의 초기 협회장 등등, 수많은 미사여구가 붙지만, 결국 ‘영웅’이라는 한마디로 정의 되는 사내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가 마지막에 남긴 말이 떠올랐다.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막겠다...라고 했었지.”
존슨은 영웅의 뒷모습이 떠올라 쓰게 웃어버렸다.
“아니. 갑자기 남의 꿈에 나와서, 사람 뒤숭숭하게 하고 지랄이야.”
갑자기 그를 떠올린 건, 간밤의 꿈자리 때문이었다. 그 이유를 짐작해 보니, 가장 그럴싸한 건 최근의 사건 밖에 없었다.
“역시, 던전 승급이 문제란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잠자리를 설치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한숨을 푸욱 내쉰 그가 숙소 밖으로 향했다.
그 순간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머무는데, 이는 그가 인디안 존슨임을 알아봐서가 아니었다.
“특이하네.”
“그러게.”
“외국인이 여관에서 나오네.”
여인숙이라 적힌 허름한 건물에서 나오는 외국인? 그 독특한 설정에 잠시 눈길을 뺏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선을 모았음에도, 어느 누구도 그가 인디안 존슨이란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 이유가 또 황당했다.
“외국인 노동잔가?”
“불법 체류자?”
“여인숙이 싸긴 싼가보다.”
“씻긴 한 걸까?”
“옷은 빤 걸까?”
안 씻어서 떡진 머리와 제대로 깎지 않아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더러워져도 티가 안 나는 알록달록한 밀리터리룩까지, 추레한 몰골 때문에 알아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존슨은 이런 시선을 뒤로한 채, 거침없이 길을 걸었다.
‘이 근처 맛집이 이쪽이던가?’
사실, 그는 한국을 처음 와 보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찾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어지간한 장소는 대부분 방문해봤을 정도였다.
심지어 히말라야까지 등정했을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지금처럼 몰골이 엉망인 상태로 돌아다니는 경우가 더 많다 보니, 제대로 알려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물론, 주로 활동하는 지역이 아닌 탓도 컸다. 그래도 제법 방문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게 또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한국도 슬슬 예전 영광을 찾아가려나. 옛 공백을 채울만한 실력자들이 제법 등장했으니, 제법 기대해도 되겠어.’
그가 이처럼 생각할 만큼, 과거 이 나라에는 뛰어난 각성자들이 많았는데, 한국은 그들과의 교류를 위해 방문했던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개중에 살아있는 이들은 몇 없고, 살아남은 이들도 대부분 외국으로 이민을 가 버린 탓인지, 이 나라에 그를 제대로 기억하는 이들은 몇 없었다.
그 중 한명이 현재 미국으로 넘어간 한국계 랭커였고, 다른 한 명은 수시로 한국의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러시아의 이반나였다.
‘간만에 이반나한테 데이트나 신청해 봐?’
흐흐, 웃어 보인 그가 101번째 퇴짜를 준비하며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
일단 시키니까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이 뭘 하는 것인지 모르겠고, 해야 할 이유나 필요성도 느낄 수가 없었다.
‘저 띨빡만 아니었어도.’
임수현은 그리 투덜거리며 자신의 누이를 바라봤다.
현재, 그들은 집 근처 운동장에서 게임 속 스킬을 재현하는 중이었는데, 한 차례 재현을 마치고 나자 급격히 현타가 밀려오며, 누이에 대한 원망이 샘솟은 것이다.
그의 경우에는 한동안 들들 볶인 탓인지, 더 이상 마루에 대한 콩깍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누이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아니. 더 심각해진 것 같은데.’
당혹스럽게도 그랬다. 마치 군대 조교처럼 들들 볶아댔건만, 오히려 눈빛의 애정도는 더욱 살아난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대답이 황당했다.
[전부 날 생각해서 저러는 거잖아.]
콩깍지가 각막만이 아니라, 안구 전체를 대처했음을 확신하던 순간이었다.
한숨을 푸욱 내쉬며 동작을 멈춘 그와 달리, 임지현은 여전한 모습으로 열심히 스킬 재현에 열을 쏟는 게 보였다. 저 역시 콩깍지의 여파였다.
[허튼 소리를 하실 분이 아니야!]
그렇게 외치며 오히려 그를 이상하게 보던 탓에, 오랜만에 깊은 빡침을 느껴야만 했다.
‘이 미친 짓을 얼마나 더 해야 돼?’
들어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자며 재촉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먼저 들어가란 말밖에 안 나오기에, 한숨을 푹 내쉬며 곁을 지켰다.
현타가 온 와중에도 스킬 재현을 잊진 않았다. 일단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게임 속에서 마루에게 어찌나 들볶였는지, 대충 설렁설렁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하나만큼은 제대로 나오고 있었다.
이런 그와 달리, 임지현은 전심전력으로 성심성의껏 열정을 불사르며 스킬 재현에 몰두했다.
그 때문일까?
‘...어라?’
기이한 감각과 조우할 수 있었다.
**
쌍둥이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간만에 폭렙했네.”
버스 운전수가 둘이나 되니, 레벨 작업이 너무도 수월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쩔을 받는 거지.”
마루는 그리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직 이후, 새로운 스킬들을 배우느라 레벨 작업에 소홀해져야 하건만, 쌍둥이들 덕분에 이런 부분을 메울 수 있었다.
그 결과,
[레벨 : 110]
단숨에 10레벨이나 뛰어버린 것이다.
2차 전직 이후 첫 전용스킬을 배울 시기였고, 그 때문에 사원을 찾아 이동 중이었다.
새롭게 추가된 스킬과 곧 추가할 전용스킬을 상기한 까닭일까?
문득, 2차 전직 당시의 일이 떠올랐다.
2차 전직을 하게 된다고 직업군에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신관, 성기사, 몽크, 마법사, 정령사 등등, 기본적인 직업군은 그대로 유지될 뿐이었다. 그렇다면 1차와 2차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직하며 추가되는 스탯이 5스탯에서 50스탯으로 늘어난 거?
그도 아니면 중앙 대륙의 진출권?
누군가는 장비창의 변화라고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악세사리 착용 부위가 늘어나기 때문인데, 기존의 3세트구간을 넘어, 5세트까지 착용 가능해지는 것이다.
스탯 뻥튀기가 가능해진단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차이점은 이런 게 아니었다. 바로 전직과 함께 발생하는 특수 이벤트야말로 진정한 포인트였다.
[신앙을 선택해 주십시오.]
라는 문구가 떠오르는데, 이는 PP에 있는 무수히 많은 신들 중, 자신의 믿음을 바칠 존재를 선택하는 거였다.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차후 육성 루트에도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었다.
예를 들면, 몽크들이 평균적으로 선택하는 신은 금강계열 신으로써, 이를 통해서 더욱 단단한 방어력을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다른 종류의 신앙을 품은 뒤, 좀 더 공격적인 육성루트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후원자 시스템!
이를 칭하는 단어로써, 그리 부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실제로 유저의 활약에 따라 신들이 후원금을 보내거나, 때론 스킬 및 스탯을 부여하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무런 신앙도 없이 육성하는 이들도 없진 않았다.
‘그 정도로 미친놈들은 몇 없지.’
하필이면 그 몇 안 되는 별종들이 몽크 쪽에 몰려있다는 게, 그들의 이미지를 더욱 난해하게 만들긴 했다.
[고행은 원래 고독한 거야.]
웬 이상한 소리와 함께 후원을 뒤로하는 이들이 종종 나왔다.
마루는 그 정도까지 별종은 아니었고, 여느 몽크들이 그러하듯 금강신을 품고 단단한 방어계열로 진로를 잡았었다.
이번에도 그와 같은 루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이름 없는 신이 당신을 반깁니다.]
‘What?’
멋대로 그의 신앙이 결정되어 버렸다.
데쟈뷰라고 해야 할까?
이와 비슷한 일이 과거에도 있던 게 기억났다.
‘1차 전직 때.’
당시에도 멋대로 ‘수호자’라는 직업군으로 넘어가버리지 않았던가.
‘설마, 이번에도?’
여의주가 어떤 작용을 했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이름 없는 신?’
너무도 생소한 신이었다.
이런 특이한 신이라면 분명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도 하기에, 더더욱 의아한 기분이었다.
신성 목록을 통해 관련한 설명을 확인할 수 있는 터라, 이를 클릭했다.
[격을 잃어버린 신, 차원을 떠도는 방랑신.]
짤막한 설명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여전히 아리송한 내용이었고, 그 때문에 더욱 머리가 복잡해졌다.
황망한 가운데 신의 메시지가 등록됐다.
-너의 길이 곧 나의 뜻이다.
난해한 내용에 뒷목이 뻐근해졌다.
그 와중에도 꾸준히 여의주와의 연관성을 상기한 덕분일까?
문득, 지나간 기억 하나가 떠오르는데, 그것은 1차 전직을 하고 ‘푸른 신수’의 꿈을 꿨던 다음날, 초롱이와 나눴던 대화였다.
꿈속에서 봤던 푸른 신수가 아빠라는 소리에 청룡을 언급하니, 아이는 이렇게 말했었다.
-아빠 청룡 아니야.
“그러면 뭔데?”
-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롱이에게 물었다.
“이젠, 아빠가 누군지 기억나?”
성화를 통해 훌쩍 성장한 만큼, 내심 기대하는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모르겠어.
이상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던 초롱이가 울상이 되어 말했다.
-우...우으...알겠는데. 모르겠어. 으으...
앞뒤가 안 맞는 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해가 돼버렸다.
[이름 없는 신]
황당하게도 그 단어가 뇌리를 두드리며, 상황과 맞물렸던 것이다.
‘어쩌면...’
그 즈음 상념을 마무리했다.
어느새 사원에 도착한 까닭이었다. 새로운 전용스킬을 익히고, 한층 성장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