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초.
한국에서 발생했던 몬스터 웨이브!
그 사건은 꾸준히 화제가 되며, 시일이 제법 지난 지금까지도 각종 사이트에 열기를 모아놓고는 했다.
이유를 꼽아보자면 아시아 방면에선 가장 최근에 발생한 웨이브라는 점에, 무려 세계적 히어로인 인디안 존슨의 활약을 볼 수 있단 점까지, 여러모로 관심사가 쏟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두 번째 이유가 결정적이긴 했다.
크워어어어어...
영상 속으로 성난 몬스터들이 달려들며 이리저리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러 대는 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은 물러나는 일 없이 우직하게 전진 또 전진을 거듭하며, 마치 전차처럼 들이 받아버렸다.
-히어로 오브 스톤!
-브라보 히오스!
-진짜, 클라스가 남다르시다.
-남자는 직진!
-후퇴 따윈 없다.
시원시원한 그의 액션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극한 쾌감마저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그렇게 전장의 최전방, 웨이브의 중심지에서 굳건히 버티고 선 채,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나오는 족족 곤죽을 내는 모습이란, 그야말로 짜릿한 전율 그 자체였다.
보스를 잡을 때도 다를 게 없었다.
우직하게 서서 달려드는 보스 몬스터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 버린 것이다.
이에 당황한 듯 보스 몬스터의 손발이 점차 꼬이는가 싶더니, 종래에는 공포심을 느끼며 뒷걸음질을 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웨이브의 광기에 미쳐 있을 몬스터에겐 실로 드문 현상이었다.
그렇게 압도적인 모습으로 농락하더니, 이내 질겁하는 보스 몬스터의 멱살을 부여잡고 대가리를 후드려 패기 시작했다.
옷가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뻗어 강제로 쇄골에 박아 넣으니, 그게 멱살이나 다름없었다.
도망치려면 쇄골 하나는 뽑아놔야 할 판국이랄까?
“정말, 괴물은 괴물이군.”
제퍼드는 그리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어버렸다.
이 영상은 너무 화려할 만큼 존슨의 실력이 드러났다고 여겨졌는데, 그는 그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경고 한 번, 화끈하네.”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에게 보내는 경고장이리라. 그 때문에 주기적으로 돌려보며 존슨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는 것이기도 했다.
그도 A급 보스 몬스터 정도는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었지만, 저 정도로 압도적인 광경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았다.
아마도 이 영상은 그만이 아니라, 여러 랭커들에게도 공유되며 적잖은 전율을 느끼게 만들고 있으리라. 그가 경고라는 걸 알면서도 수시로 돌려볼 만큼, 인상적인 광경이기 때문이다.
모든 공격을 정면으로 받는 듯 보이지만, 절묘하게 흘려보내는 기술을 보고 있노라면, 적대적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 때문에 더더욱 기대가 됐다.
‘이런 강자를 찢어발기는 건, 어떤 맛일까?’
카일리에게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더더욱 기대가 되는 부분이었다.
입맛을 다시는 것도 잠시, 그는 최근의 관심사에 대해서도 확인했다.
‘정마루.’
무려 존슨의 의형제로 알려지면서, 대어를 낚기 위해 새로운 미끼로 낙점된 사내였다.
‘이반나 말고도 새로운 약점거리가 생기다니.’
그가 흥겨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놈을 잡고, 존슨까지 찢어발긴다면...그녀는 어떤 얼굴을 할까?’
입 꼬리가 살살 말아 올라갔다.
“호오? 그러고 보니 오늘이군.”
관심사의 정보를 확인하던 중, 목표물에 대한 중요한 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
마루는 간만에 혜성 본사에 출근했다.
원래대로라면 김연희의 계획아래 좀 더 빨리 정식 출근이 이뤄졌겠지만, 그간 이런저런 사정들이 꼬이면서 일정이 늦춰진 것이다.
특히,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혜성의 내부 상황이 복잡해지면서, 자잘한 소란들을 연달아 발생시켰고, 그로 인해 마루를 불러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마루 본인의 문제도 걸려있었다.
승급 심사!
황당하게도 근래 들어서 심사의 기준이 일부 바뀐 것이다.
원래는 측정기나 엔트라 데스크를 통한 기준점을 통과하는 걸로 충분했는데, 거기에 추가적으로 현장 경험까지 본다는 것이 아닌가.
김연희의 설명을 들어보자면 이랬다.
“엔트라 데스크만 통과해도 B급 A형 자격증이 발급되긴 하는데, 거기에 또 특수와 보통이란 기준이 붙는다고 발표가 났어요. 하필이면 B급부터 기준이 바뀐 거라서, 별도 시험을 봐야 할 거에요.”
이는 즉, 실전을 뛸 수 있는 현장요원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이라는 것인데, 실제로 B급의 능력치를 지니고도 사무직을 하는 이들이 상당하다 보니, 오래전부터 추진되어 왔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게 왜 하필 지금부터인데?’
마루의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굳이 볼 필요는 없어요. 마루씨 위치면 지난 경력으로 충분히 가산점이 붙고, 생생한 웨이브 영상까지 있으니까요. 자료만 잘 만들어서 제출하면 해결 될 부분이에요.”
김연희는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이에 마루는 고개를 저으며 당당히 심사를 통과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요즘 보는 눈들도 많은데.’
괜히 뒷말이 나오게 하고 싶진 않았다.
쓸데없는 유명세로 인해서 이래저래 불편함이 늘어버렸지만, 그 덕분에 편해진 것도 제법 있지 않던가.
‘고기도 더 싸게 사고. 흐흐...’
싸인 한 장으로 고기 급수가 올라갔다. 게다가 서비스라며 음식점에서 사리도 왕창 얹어주지 않았던가.
이래저래 장단이 있겠지만, 어쨌든 대중의 인지도를 얻어버린 이상, 그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그의 등 뒤에 있는 게 누구던가.
인디안 존슨!
대 영웅의 명성에 먹칠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적잖은 시간이 소비돼야만 했다. 무려 B급 헌터의 승급 심사다 보니, 그에 맞는 사냥터를 정해야 하는 것인데, 하필이면 던전 사냥으로 결정된 것이다.
‘쯧...마수지대가 뽑힐 것이지.’
이를 고르는 부분에서 살짝 개입할까 고민도 했다.
새로운 던전 지대에 출입했다가 승급 현상을 불러올까 걱정된 탓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혜성 내부의 던전에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조치가 취해졌고, 마침 그 지대가 이미 승급현상이 완료된 뒤, 안정화까지 끝난 구역이었다.
마루에게도 인연이 있는 장소였다.
블록 길드!
그들이 관리하는 던전으로써, 마루가 최초로 경험했던 던전이기도 했다.
이 근방에 강하나의 단야 대장간도 있었는데, 승급 현상으로 인해 C급 지대가 B급으로 올라가면서, 주변 땅값이 요동쳤다며, 강하나가 불만을 토로하던 게 잠깐 스쳐갔다.
여기로 정해진 건, 짐작건대 김연희 측에서 손을 쓴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작정하고 케어해 주네.’
그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다는 걸, 이런 식으로 틈틈이 보여주며 은근히 어필하는 것이리라.
현장 도착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터라, 반가운 마음이 제법 컸다.
저 한편에서 호로로 파티의 삼총사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던전 관리자로써 일종의 게스트로 참가할 터였다.
심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KHA의 심사관에 의해서 모든 상황이 통제되는 만큼, 따로 대화를 나눌 순 없었기에, 그저 눈짓으로 기본적인 의사표현만 할 뿐이었다.
게임 속에서야 간간히 만났지만, 현장에서 마주치는 건 오랜만이었다.
‘현장에서는 간만이니까. 제대로 좀 보여줘야겠네.’
얼마만큼 성장했는지도 보여줄 겸, 오늘은 작정하고 손가락 좀 놀려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던전 내부로 들어간 뒤, KHA에서 정한 사냥터와 사냥감을 확인했을 때, 저도 모르게 실소가 나와 버렸다.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닌가?’
총기류 각성자의 기준에서 보는 심사인 만큼, 저격 포인트와 그에 어울리는 사냥감이 잡혀야 하건만, 이게 웬일?
“트라굴이라고요?”
참관 중이던 김연희가 KHA 심사관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게 보였다. 이에 심사관 장춘이 태연한 음성으로 응수했다.
“저희가 양보를 한 만큼, 혜성 측에서도 양보를 해 주셔야지요.”
던전 선택권을 언급하는 거였다.
“이 사람들이 정말...”
김연희는 이 부분에서 혜성의 간부들이 개입했음을 직감했다.
‘빌어먹을 영감탱이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트라굴이 저격수에게 까다로운 몬스터인 탓이었다.
B급이라는 기준점은 맞지만, 일단 무리생활을 하는데다가 감이 좋은 놈들이다 보니, 한 놈을 잡는 순간부터 포인트는 노출 된다고 봐야 했다.
게다가 워낙 날랜 것도 문제였는데, 그 때문에 조준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골치 아픈 건 따로 있었다.
땅속 이동!
저격수에게 땅굴을 파는 놈들을 명중하라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다른 분들은 어렵겠지만, 정마루 헌터님의 솜씨를 생각해 봤을 때,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내린 결정입니다. 원거리만이 아니라 근거리에도 스페셜리스트라는 걸, 이미 세상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마루의 건가드 영상을 언급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저격 포인트도 이 따위인 겁니까?”
거칠어지는 김연희의 말투에도 불구하고, 장춘은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근접전까지 염두에 둔 조치일 뿐입니다.”
명확한 저격 포인트가 아닌, 어중간한 거리와 은신처를 잡아놓은 채, 첫 스타트를 끊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놈들의 접근 이후까지 보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실제 현장에서 저격 포인트는 고정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첫 자리만 저희가 골랐을 뿐, 다음 포인트부터는 얼마든지 옮겨가셔도 됩니다. 거리 조절을 하는 것까지, 모든 상황 자체가 심사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이 사람이 정말...”
더 내버려 뒀다가는 소란만 커질 듯하여, 마루는 적당히 말리기로 결정했다.
“그냥 하죠.”
심사관의 의도?
“명색이 존슨의 형제 소리까지 듣는데, 이 정도쯤은 씹어 먹어야죠.”
그러며 웃어버리는 모습에, 김연희는 그의 비밀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지.’
결국 발을 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냥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차후 이 부분을 놓고 KHA측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할 생각이었다. 길드 간부진도 별도로 들들 볶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마루가 지정한 포인트에 총기를 거치하는 모습에, 참관자들은 각자 일정 거리를 벌리며 자리를 잡았다.
문득, 이런 몇몇 절차들이 조금 허술한 느낌을 받았는데, 김연희는 그게 새로운 제도의 시행착오 과정이라기 보단,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빈틈이란 예감을 강하게 받았다.
‘신입의 실력을 작정하고 살필 생각이구나.’
그 과정을 통해 마루의 스킬을 파악하려는 의도와 명확한 수준 등, 다방면에 걸친 관찰을 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한편에서 심사에 관한 영상이 촬영 중이었는데, 분명 저 영상은 여러 길드 및 네임드들에게 팔려나갈 확률이 높았다.
존슨의 형제라는 이유로 인해, 마루는 등급여부와 무관하게 많은 이들의 관심대상이 된 상황이었다.
그의 스킬을 비롯하여 수준 등, 많은 것들이 돈이 될 터였다.
“시작하시죠.”
심사관이 그리 말하며 한 걸음 물러나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기이할 만큼 긴 정적이 무대 위로 흘렀다.
어쩐 일인지 마루가 방아쇠에 손가락만 올려놓은 채, 지겨울 만큼 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걸 본 장춘이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자신 있게 나서더니, 역시 부담되는 모양이지?’
트라굴이 무려 아홉이었다. 한 놈을 잡는다고 해도 여덟이 남는다. 어찌어찌 손이 빨라서 두엇을 더 잡더라도, 결국 여섯 혹은 다섯 놈에게 거리를 허용하고 말 터였다.
땅굴을 파는 놈들이기에 뒤를 잡힐 가능성도 높았다. 그 상황에서 보여줄 대처가 기대됐다.
‘잡아내면 잡아내는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그림이 되겠어. 흐흐...’
이 영상을 원하는 이들이 많은 만큼, 최대한 다양한 구도가 만들어지는 게 좋았다.
작게 실소를 흘리며 마루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그러다가도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것 같단 생각에, 슬쩍 제안을 하고자 입을 뗐다.
“혹시 부담되신다면, 새로운 사냥감으로...”
그렇게 운을 떼는 순간이었다.
타타타타타탕...
방아쇠에 걸쳐져있던 손가락이 움직였다.
마치 기관총을 쏘기라도 하듯, 한 순간에 탄창의 모든 총알을 비워내는 고속연사였는데, 놀라운 건 이후에 발생했다.
퍼퍼퍼퍼퍼퍼퍽...
짧은 소동, 긴 침묵이 이어졌다.
1초 남짓이나 될까?
한 순간에 쏟아낸 폭발적인 사격, 아니 저격이었고, 그 모든 탄환이 치명적인 급소에 명중하면서 아홉의 트라굴이 시체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모두의 시선이 마루에게로 쏟아졌다.
“후우우우우우...”
그들의 동공 속에서 마루가 무거운 숨을 토해내더니, 길게 기지개를 피며 일어나는 게 보였다. 가볍게 몸을 푼 그가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까?”
대답은 없었다.
그저 긴 침묵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B급 A형 헌터 정마루!
이날의 성과였다.
그리고,
1초짜리 영상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