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장갑.
겨우 1초짜리 영상이었다.
하지만 그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무려 인디언 존슨의 형제로 알려져 있는 사내의 영상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핵심 포인트가 1초일 뿐, 풀 영상으로 찍어놓은 걸 보면 그래도 제법 시간이 길었다.
단지, 그 시간 내내 가만히 누워서 저격 자세만 잡고 있는 탓에, 마땅히 의미가 있는지는 미지수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풀 영상을 원했다.
1초 만에 이뤄지는 고속연사와 저격이 아닌, 그 이전의 기나긴 대기시간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KHA의 심사관 장춘은 이들의 반응에 흡족해하는 한편,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거라 여기며 이리저리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생각이도 못한 사건이 터져버렸다.
[1초살!]
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으로써, 당혹스럽게도 그가 돈 계산을 하는 사이, 마루의 심사 영상이 멋대로 풀려버린 것이다.
‘누가?’
의문과 함께 답은 나왔다.
‘혜성 길드...마녀!’
김연희가 먼저 손을 써 버린 것이다. KHA 심사관의 수작에 잔뜩 독이 올라버린 탓인지, 마루에게 동의를 얻고 바로 영상을 올려버렸다.
아직 초기인 탓인지, 이번 심사 제도에 대해서는 아직 허술한 부분이 많았다. 사실 이는 의도적으로 틈을 만들어 둔 것인데, 하필이면 그 틈이 영상 소유권에도 닿아있었다.
김연희는 바로 이 부분을 찌르고 들어가며 한 방 먹인 것이다.
KHA만이 아니라 마루 역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조항을 앞세워, 그녀가 대리자의 신분으로써 영상을 유포해버렸다. 혜성 길드의 이름까지 걸어버린 탓에, 섣불리 태클을 걸 수도 없었다.
“이런, 젠장!”
더욱 황당한 건, 작정하고 판을 벌이려던 것인지, 김연희는 사냥감의 사체에 관한 정보까지 일부 흘렸고, 각 길드와 네임드급 헌터들은 굳이 장춘을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1초짜리 영상에 대한 환불 요청까지 뒤따르고 있는 터라, 쓸데없이 목소리를 높이기보단 쥐죽은 듯, 숨을 죽여야 하는 타이밍이란 생각에, 장춘은 급히 자세를 낮추고 모습을 숨겨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각종 포털 사이트는 마루의 이야기로 연일 화제가 되고 있었다.
이미 존슨의 형제라는 걸로 충분한 인지도를 지닌 상황에서, 김연희가 전문가를 사용해 제대로 영상 배포를 작업한 만큼, 달아오르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미쳤네.
-저격수가 트라굴을 잡는다고?
-한둘도 아니고, 아홉인데?
-웬 쩌리가 우리 존슨 성님과 의형제를 맺었나 싶었더니, 이건 인정이다. 와...싸버렸다.
-1초살! 짧고 굵네.
사람들은 올라온 영상과 추가적으로 딸려온 여러 자료들을 첨부하며, 다각도에서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몇몇 전문가들의 시선도 섞여있었는데, 이들의 추리는 제법 그럴싸했다.
-사냥 자체는 1초 만에 끝났지만, 진짜는 이 대기시간에 있지 않을까?
-유난히 긴 게, 스킬의 발동에 걸린 시간일 확률이 높네.
-한 번에 아홉을 쓸어버린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고속 연사로 순차적으로 저격한 거야.
-그게 겨우 1초 밖에 안 걸렸다는 게 놀랍지만.
전문가들은 풀 영상으로는 마땅히 파악되는 게 없었던 탓에, 사냥했던 몬스터를 해부해 놓은 자료에 좀 더 집중했다.
-총알은 전부 급소에 박혔습니다. 말도 안 되는 명중률이에요.
-게다가 여기 이 부분을 보세요. 한 부위에 연속해서 총알이 박혀들었어요. 이건 1초라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미묘한 시간차를 뒀다는 거죠.
-이건, 정말 미친 겁니다!
그리고 이 그 영상을 통해, 모든 이들이 확신했다.
-총기 각성자 맞네.
혹시나 하는 마음들이 있었다. 그도 그럴게 건가드 영상이나 지난 웨이브 사태에서 보여준 모습 등, 총기 각성자 치고는 몸을 너무나 잘 썼던 것이다.
당시에는 설계보다는 좀 더 순수하게 몸놀림으로 무대를 활보하는 느낌이 강했던 터라, 이런 의심이 더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강화계의 곁다리 총기 각성자일 줄 알았는데.
-튜닝인 줄 알았더니 순정이었어.
어설프게나마 신체강화도 발생하기 때문에, 그 방면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본 것이다.
-가속 계열이라고 보기에는, 저 명중률은 말이 안 되지.
-인정!
-백발백중 지렸다.
기존에 마루가 보여줬던 저격 솜씨는 15년 경력의 베테랑이 보여줄 수 있는, 전문가 특유의 경험치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저격 영상을 보고 있노라니 생각을 달리 할 수밖에 없었다.
-총기 스킬이 아니고선, 저런 저격은 불가능 하지.
-와...그렇다면 결국 건가드 영상은 순수 뇌지컬인가?
-아니, 대체 대가리가 얼마나 잘 돌아가는 거야?
-뇌가 두 개일 듯!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렸을지도 모름.
덕분에 마루의 건가드 영상이 사람들 사이에서 한 차례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각 길드들 역시도 마루를 다시 보게 됐다.
“과연, 김연희야!”
“혜성의 마녀가 또 한 건 올렸네.”
“뭔가 있을 줄 알았지만, 이 정도로 엄청날 줄이야.”
“늦깎이 각성자라서, 사념폐해에 빠지는 것도 그만큼 늦을 테니, 흠...매력적이군!”
마루의 가치가 한층 더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함께 떠오르는 관심사도 있었다.
“특수 스킬이겠지?”
“어떤 스킬일까?”
“저 고속 연사에서 저런 명중률이면, 기존 총기류 스킬 중에서도 손에 꼽히겠는데.”
“늦깎이가 로또 한 번 제대로 터트렸네.”
이래저래 마루의 유명세는 수직 상승 중이었다.
* * *
스토킬!
이는 PP 마총사들의 밥줄과도 같은 스킬 중 하나로써, 유도탄 기능을 하는 스킬이다 보니, 그들의 명중률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주는 꿀 같은 스킬이었다.
원거리에서 총기 사용시에만 발동된다는 제한이 있지만, 숙련도가 마스터 등급에 이를 경우, 원거리 제한이 사라지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극한까지 익혀도 사라지지 않은 제한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인원 제한이었다.
스토킬로 찍어낼 수 있는 최대 타겟 숫자는 총 5명 까지였다.
분명, 그래야 옳았다.
하지만 마루는 현실에서 스킬을 구현하고 마스터 등급에 올랐을 때, 놀랍게도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예감을 받았다.
그 때문에 수시로 사격장을 찾으며 연습을 하고는 했는데, 결과는 이번 1초살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홉까지 가능할지는 몰랐지만.’
스킬 제한은 풀어냈으나, 그만큼 과부하가 많이 걸렸고, 그 때문에 한 번의 스킬 발동으로 아찔한 두통과 함께, 뇌가 터질 것 같은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사격 후 호흡이 무거워졌던 건 그런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을 가장하며, 무거운 한숨 뒤에 바로 가벼운 언행으로 분위기를 압도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술도 한 잔 하고, 단야도 잠깐 들릴 생각이었는데.’
급격한 피로감 때문에 심사가 끝난 뒤, 바로 귀가해야만 했다. 호로로들에겐 다음에 따로 자리를 잡자고 메시지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김연희가 영상에 관한 문제를 언급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정신이 몽롱해서, 너무 쉽게 허락해버렸네.’
만약, 멀쩡한 상태였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허락했으려나?”
그 순간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장춘.’
심사관의 비릿한 미소가 그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했겠네. 어차피 유명세는 익숙해졌으니까.’
한동안은 이런 떠들썩한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을 터, 그렇다면 차라리 즐기는 게 맞았다.
게다가 장춘을 비롯해서 수작을 벌인 이들의 뒤통수도 칠 수 있었으니, 김연희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잘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어느새 오늘의 목적지가 코앞에 다다랐다.
[단야]
지난 심사 때 찾아오려 했건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오늘로 미뤄진 것인데, 원래 계획은 심사가 끝난 뒤 승급 사실을 들고 단야를 찾는 거였다.
‘이젠 B급이니까.’
거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장구류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 총기야 G-eye로 충분하지만, 몇몇 보호구는 새로 세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맨몸으로도 문제없지만.’
대외적인 시선이라는 게 있는 만큼, 보여주기 식으로 기본적인 장비 정도는 맞춰놔야 하는 것이다.
“삼촌~!”
안으로 들어가니, 단야 집안의 귀염둥이 막내 세나가 도도도 달려와 안겼다.
“어이쿠 우리 깜찍이 그새 또 많이 컸네.”
“히히! 나 이제 언니니까.”
올해로 초등학교 2학년이다 보니, 밑으로 동생들이 생긴 것이다.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하나는 작업 중?”
“쉬는 중이다.”
아이에게 물었건만 다른 방향에서 답이 들려왔다.
“웬일이냐?”
작업실 방향이 아닌, 다른 쪽에서 강하나가 나오는 게 보였다.
‘어째, 세나가 바깥쪽에 있더라니.’
마루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번에 승급해서.”
“장비 새로 맞추게?”
“그것도 있고, 전에 말했잖아. 다솜이 각성했다고.”
“아...다솜이 것도 세팅하게?”
“그리고 한 가지 더.”
“또?”
의문을 내비치는 그녀에게 마루가 이야기했다.
“사실, 이번에 제자를 하나 들였거든.”
“...제자라고?”
잠시 벙찐 표정이 됐던 강하나의 표정이 점차적으로 호기심으로 채워지는 가운데, 마루가 빠르게 이를 커트했다.
“어쩌다 보니 인연이 됐다고 해 두자.”
강하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그래서 제자 것까지 세팅해주게?”
“어. 내가 예전에 전역 후에 쓰던 거, 그대로 좀 세팅해 주라.”
군대에서 사체처리만 한 건 아니었다. 이런저런 귀동냥으로 제법 쓸 만한 정보들도 모았는데, 그걸 토대로 맞춘 훈련용 장비들이 있었다.
그 말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각성자야?”
마루의 훈련장비는 비각성자를 위해 세팅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어쩌다 보니.”
“뜬금없긴 하네.”
현재 마루의 인지도만 놓고 보면, 각성자들도 제자로 들어오고 싶어서 줄을 설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비각성자를 제자로 들였으니, 여러모로 의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앞서와 같은 대답을 줄 수밖에 없었다.
“말했잖아. 어쩌다 보니까 인연이 됐다고.”
“뭔 비밀이 이렇게 많은 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인 강하나가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저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더니 몇몇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데, 마루의 시선을 가장 먼저 잡아끈 건, 오래된 철제 상자였다.
“설마, 그거...”
너무도 익숙한 형태인지라 눈이 간 것이다. 강하나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 맞아. 네가 전에 훈련용으로 쓰던 거.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아 보여서 따로 팔 수 있을까 싶어서 놔뒀는데, 모양이 구려서 그런지 아무도 안 사더라고. 그래서 결국 창고로 직행했지.”
고철로 쓰기에도 애매했다는 말과 함께 상자를 건네 왔다. 마루는 이를 받아 잠시 쓰다듬었다. 지난 20대의 추억이 새록새록 샘솟았다.
그 모습에 강하나가 핀잔을 주며 말했다.
“쓸데없는 회상은 접고, 이거나 받아.”
“...어째, 낭만이 없누.”
“이거나 받으라니까.”
“어? 설마 다솜이 꺼?”
마루쯤 되면 장비의 형태만 봐도 대략적인 체형이 드러나는데, 지금 강하나가 주는 건 딱 여성용에 맞는 보호구였다.
“그래. 다솜이가 나하고 체형이 비슷하니까. 훈련용으론 이 정도면 충분할 거야.”
그러며 추가적으로 이야기한다.
“가슴은 알아서 줄이라고 해.”
문득, 마루는 강하나의 미드에 시선을 던졌다.
“눈깔!”
그 순간 날아든 일갈과 살기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며 여동생을 위해 눈가에 눈물을 찍었다.
‘괜찮아. 다솜이는 큐티 타입이니까.’
여러모로 섹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도 받아.”
또 다시 큼직한 철제 상자였는데, 마루는 이를 받으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지난 번 G-eye를 처음 받아들던 날이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설마 하는 눈빛으로 강하나를 보고 있노라니, 그의 표정을 읽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네 전용장비. G-eye처럼 특수 제련한 내 오리지널이야.”
또 다시 총기일까?
전에는 그녀가 만든 총이라기에 실망하며 받았지만, 한 차례 전용 총기의 특별함을 경험한 지금은 기대감이 충만할 수밖에 없었다.
‘G-eye급이면 대박일 텐데.’
그렇게 상자를 오픈한 순간, 전처럼 의문의 눈빛이 돼야 했다.
‘보호구?’
아니, 그보다는 무구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형태를 찬찬히 살피고 있노라니, 마루는 등 뒤가 서늘해지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강하나를 바라보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 장인 소리 듣는 사람이야. 체격이나 자세만 봐도 견적 정도는 뽑아낼 수 있다고.”
그러며 상자 안에서 무구를 꺼내들었다.
“네가 워낙 튀는 걸 싫어하니까. 건틀릿 보단 장갑 형태로 만들었다. 잘 맞는지 껴 봐.”
어찌나 놀랐던지, 마루는 아무런 말도 없이 턱만 떨치고 있었는데, 그런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오직 한 단어뿐이었다.
‘들켰다!’